← 참새아빠의 성경공부

SON YANG-WON · 1902–1950

손양원 목사

한센병 환자들의 목자였고,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옥에 갇혔으며, 두 아들을 죽이는 데 가담한 청년을 아들로 삼았고, 환자들 곁을 지키다 순교한 손양원 목사의 삶을 정리했습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와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을 가려 적었습니다.

정리 2026-10-11 · 성경 인용은 개역개정 · 『사랑의 원자탄』은 목차와 공개된 발췌까지만 확인

한센병 환자의 목자신사참배 거부원수를 아들로순교

한눈에

손양원(孫良源, 1902–1950)은 한센병 환자들의 교회인 여수 애양원교회의 목회자였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다섯 해 가까이 옥에 갇혔고, 해방 뒤 두 아들을 잃었으나 아들들을 죽이는 데 가담한 청년을 살려 양아들로 삼았으며, 6·25 때 환자들 곁을 떠나지 않다가 총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삶은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삶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만큼 전해 오는 이야기와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이 섞여 있습니다. 이 글은 둘을 가려 적으려 했습니다. 날짜와 숫자가 자료마다 다른 곳이 서른 군데쯤 되어, 본문에 그때그때 밝혔습니다.

세 번의 선택. 손양원의 삶은 세 번의 선택으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1940년, 신사에 절하지 않고 옥에 갇히는 쪽을 택했습니다. 1948년, 두 아들을 죽이는 데 가담한 청년을 벌하지 않고 아들로 삼는 쪽을 택했습니다. 1950년, 피난하지 않고 한센병 환자들 곁에 남는 쪽을 택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만 섬기라는 계명에, 둘째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에, 셋째는 양을 버리지 않는 목자의 길에 닿아 있습니다. 이 묶음은 정리자가 붙인 것입니다.
손양원의 생애1902년 출생에서 1950년 순교까지 손양원의 생애를 다섯 시기로 나눈 막대 그림190019101920193019401950자라고 배움칠원, 서울, 도쿄전도사와 신학교부산 나병원 교회, 평양애양원한센병 환자의 목자옥중신사참배 거부해방 뒤두 아들, 순교
애양원에 부임한 지 한 해 남짓 만에 붙잡혀 다섯 해 가까이 갇혔고, 풀려난 뒤 다섯 해를 더 목회하다 순교했습니다. 48년 남짓의 삶입니다.
때일나이
1902경남 함안군 칠원에서 태어남
1926부산 감만동 나병원 교회의 전도사가 됨24세
1938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함36세
1939여수 애양원교회에 부임함37세
1940.09.25신사참배 거부로 붙잡힘38세
1945.08.17풀려남43세
1946.02경남노회에서 목사가 됨43세
1948.10.21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순천에서 죽임당함46세
1950.09.28여수 미평에서 총에 맞아 순교함48세

나이는 태어난 해를 뺀 만 나이로 정리자가 셈한 것입니다. 순교 때의 나이를 자료는 47세, 48세, 49세로 다르게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