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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N-SUN · 1905–1988

정암 박윤선

평양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에서 공부하고, 고려신학교·총신·합신 세 신학교에서 가르치며, 한 사람이 신구약 성경 전체의 주석을 써낸 신학자의 생애와 신학, 평가, 관련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계시의존사색성경주석 20권세 신학교의 스승

한눈에

호는 정암(正岩). 고려신학교를 처음부터 가르친 신학자이며, 한 사람이 신구약 성경 전체의 주석을 써낸 드문 예입니다. 고신에서 14년, 그 뒤 합동과 합신에서 가르쳤으므로 고신의 역사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인물입니다.

평양신학교→웨스트민스터→만주→고려신학교 (1946–60)→총신 (1960년대–80)→합신 (1980–88)
가장 단단한 사실

1946년 9월 고려신학교가 문을 열 때부터 1960년 9월까지 교장으로 가르쳤고, 1949년 『요한계시록 주석』부터 1979년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 주석』까지 구약 12권, 신약 8권의 『성경주석』을 완간했습니다. 백과사전, 교단지, 교계 신문이 모두 같게 적습니다.

생애 연표

  1. 1905

    출생

    평안북도 철산.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 선천 신성중학교에 들어가 재학 중 기독교인이 됨. 백과
  2. 1931–34

    평양에서

    숭실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들어가 1934년 졸업. 백과
  3. 1934–39

    두 번의 웨스트민스터 유학

    1934–36년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석사. 귀국해 평양신학교에서 성경 원어를 가르치며 주석을 쓰기 시작. 1938–39년 다시 가서 변증학과 성경 원어를 연구. 백과
  4. 1940–45

    만주

    봉천노회에서 목사 안수, 오황가교회 담임, 만주신학원 교수. 1944년 만주에서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기 시작함. 이 시기에 신사참배를 한 번 한 일이 있고, 뒷날 "나도 단 한 번이지만 신사참배를 한 범과가 있으므로 나는 언제나 그 일로 인하여 원통함을 금할 수 없었다"고 공적으로 고백하고 회개함. 백과 언론
  5. 1946

    고려신학교

    2월 월남해 서울에 머물던 중 한상동의 요청을 받고 부산으로 내려감. 진해 신학 강좌에서 성경신학, 조직신학, 창세기, 시편, 로마서, 히브리서, 계시록을 혼자 강의함. 고려신학교 설립 취지문을 썼고, 설립자를 주남선과 한상동으로 하자고 제의함. 9월 20일 개교, 교장 서리. 백과 증언
  6. 1949

    첫 주석

    『요한계시록 주석』 출간. 언론
  7. 1953–54

    네덜란드

    1953년 10월 자유대학에서 신약학 연구. 1954년 부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 귀국함. 백과 언론
  8. 1956

    교단과의 틈

    총회 개편 때 신학교 재정 지원과 소송 문제 등을 두고 교단에 공개적으로 과제 해결을 요구함. 교단지
  9. 1957

    소송 논쟁

    교회 건물을 두고 신자끼리 법정에서 다투는 일을 놓고 송상석과 맞섬. 두 사람의 글이 『파수군』에 실림. 박윤선은 한때 학교를 떠났다가 그해 가을에 돌아옴. 교단지
  10. 1959.12–1960.05

    세 번째 도미

    학위 논문을 위해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머물다 1960년 5월 29일 귀국. 교단지
  11. 1960.07–09

    주일성수 문제와 사임

    아래 "1960년, 주일 아침의 일" 참조. 교단지
  12. 1961–74

    서울

    1961년 2월 동산교회 담임. 이후 총회신학교와 총신대학 교수. 백과
  13. 1974–79

    주석에 전념

    미국에 머물며 주석 저술. 1979년 2월 귀국해 3월 총신대학 대학원장.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명예 신학박사. 백과
  14. 1979.10.09

    성경주석 완간

    총신대학교 강당에서 완간 감사예배. 한부선 선교사가 미국에서 와서 설교함. 언론
  15. 1980.11

    합신

    총신대학 대학원장을 사임하고 교단을 떠나 합신 교단과 합동신학원(수원)을 세움. 초대 원장. 백과
  16. 1985–88

    말년

    1985년 3월 합동신학교 명예교장. 1988년 6월 30일 별세. 장례는 합동신학교장으로 치름. 백과 언론

신학의 뿌리

고신의 터를 놓은 신학자

고려신학대학원장을 지낸 허순길은 "고신교회는 고려신학교를 떠나 생각할 수 없고 고려신학교는 박윤선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사정은 이렇습니다. 증언

1960년, 주일 아침의 일

박윤선이 고신을 떠나게 된 일입니다. 고신뉴스가 2023년에 이상규 교수의 글로 여러 차례에 걸쳐 당시 문서를 소개했습니다. 아래 경과는 그 연재에 따른 것입니다. 교단지

날짜일어난 일
1960.07.17 (주일)안식년으로 귀국하는 미국 정통장로교회 서아도(Spooner) 선교사를 전송하러 택시를 타고 부산 부두로 감. 전송한 뒤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할 생각이었으나, 승선이 늦어져 선교사 가족과 배 위에서 예배하고 나오니 공적 예배 시간이 지나 있었음
1960.08고려신학교 이사회(이사장 한상동)가 이 일이 문제가 되고 있음을 통보함. 박윤선은 구두로 교장직 사면을 말하고 자리를 떠남
1960.09.06–09부산노회(범천교회). 박윤선은 부득이한 일이었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답함. 노회는 "부득이한 일"의 한계를 총회에 묻기로 함
1960.09.20총회(부산남교회). "본인이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하여도 남에게 부덕이 되어 건덕상 문제화할 때는 도의적 책임을 지도록" 가결
1960.09.23이사회가 도의적 책임과 사과를 요구함. 박윤선이 거부함
1960.09.24이사회가 교장제를 없애고 교수회 회장 윤번제로 바꾸기로 결의. 교장직은 자연 해임되고, 책임을 지는 표시가 있을 때까지 교수 시무를 중지함
여기는 갈립니다

박윤선의 주장: 선교사 전송은 성경이 권하는 선한 일이고,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은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다. 주일을 범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그는 이 입장을 『파수군』에 「주일 지키는 법에 대하여」라는 글로 밝혔습니다.

이사회의 견해: 전송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공적 예배 시간을 거기에 쓴 것이 잘못이다. 예배모범이 말하는 "위급한 일"은 생명에 관계되거나 천재지변 같은 일이며 전송은 여기에 들지 않는다. 교장직 처리는 치리가 아니라 행정 조치다.

뒤의 평가: 교단지 스스로 "단순히 주일성수 문제만이 아닌 복합적인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다"고 적습니다. 1956년부터 쌓인 신학교 재정과 운영을 둘러싼 갈등이 배경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백과사전은 이 일을 설명하지 않고 "1960년 9월 고려신학교를 사임하고 고려파를 떠나"라고만 적습니다.

같은 해 12월 13일 고신은 승동측과 합동합니다. 교단지는 박윤선의 이탈이 고려신학교의 변화를 불러 합동으로 이어졌다고 보아 1960년을 "전환의 해"라 부릅니다.

성경주석

35년1944년 만주에서 쓰기 시작해 1979년에 마쳤습니다.
20권구약 12권, 신약 8권. 영음사에서 간행했고 2016년에는 한 권으로 묶은 『정암 박윤선 주석성경』이 나왔습니다.
설교를 위한 주석설교 요약 989개와 설교 재료 500여 개가 들어 있습니다.

세 신학교의 스승

시기신학교교단떠난 계기
1946–1960고려신학교 (부산)고신주일성수 문제
1960년대–1980총회신학교, 총신대학 (서울)합동1980년 11월 사임. 교단을 떠남
1980–1988합동신학원 (수원)합신별세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그의 호를 따 해마다 정암신학강좌를 엽니다. 2024년 제36회의 주제는 "정암 박윤선의 변증과 기도"였습니다. 2012년 제24회에는 고신 쪽 교수가 강사로 섰습니다. 고신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나서도 세 교단이 함께 기억하는 이름입니다. 언론

딸의 책이 던진 물음

여기는 갈립니다

2014년 12월 둘째 딸 박혜란 목사가 『목사의 딸』(아가페북스)을 냈습니다. 부제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입니다. 책은 아버지가 가정에 무관심했고 가족에게 폭력을 썼다고 증언하며, 그의 신학과 주석에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합니다. 석 달 만에 만 부가 팔렸습니다.

책을 지지하는 쪽: 지도자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풍토를 돌아보게 한다. 추천사를 쓴 김상복 목사는 "매우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책이라 했습니다.

책을 비판하는 쪽: 박영선 목사는 가정에서의 실패로 그의 공헌을 깎아내릴 수 없다고 했고, 안만수 목사는 평가가 왜곡되었다고 했으며, 허순길 박사는 내용의 대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글은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지 않습니다. 가족의 증언과 제자들의 증언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만 적어 둡니다.

박윤선에 관한 자료

직접 쓴 것

『성경주석』 전 20권
영음사. 1949–1979년. 한 권으로 묶은 『정암 박윤선 주석성경』(2016)도 있습니다.
『성경과 나의 생애』
영음사, 1992. 자서전. 신학적 자서전으로 불립니다.
그 밖의 저서
『성경신학』(1976), 『헌법주석』(198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988), 『개혁주의 교리학』(영음사, 2003, 유작). 서점의 저자 소개와 서평 기사로 확인했습니다.
「주일 지키는 법에 대하여」
『파수군』, 1960. 고신을 떠나며 자신의 입장을 밝힌 글.
「성경해석방법론」
『신학지남』 32권 2호, 1966.

그에 관한 책

『박윤선의 생애와 사상』
합동신학교출판부 엮음, 1995.
서영일, 『박윤선의 개혁신학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0. 주석의 공헌과 한계를 함께 다룬 연구서.
박혜란, 『목사의 딸』
아가페북스, 2014. 딸의 회고. 위의 "딸의 책이 던진 물음" 참조.
정성구, 『나의 스승 박윤선 박사』
킹덤북스, 2018. 제자의 회고.

논문

『한국개혁신학』 25호 (2009.04) 특집
김영한 「정암 박윤선 신학의 특성: 계시의존 사색을 중심으로」(2–18쪽), 최윤배 「정암 박윤선의 성령신학」(19–50), 류호성 「박윤선의 신약성서 해석에 대한 재조명: '성찬' 해석을 중심으로」(51–73), 이승구 「정암의 개혁파적 교회론에 대한 한 고찰」(74–94), 유응열 「인격을 통한 진리의 선포: 박윤선의 설교 신학」(95–111), 이신열 「박윤선의 개혁주의적 종말론」(112–130), 이은선 「박윤선 목사님의 개혁신앙의 재평가」(131–158).
권성수, 「박윤선 박사의 성경해석학」
『신학지남』, 1989.12.
정암신학강좌 발표문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다시 듣는 정암 박윤선의 설교」(정창균, 제22회, 2010), 「정암 박윤선과 개혁주의 언약사상」(제24회, 2012) 등.

기사

고신뉴스 KNC, "고신총회의 역사문서: 박윤선과 주일성수 문제" 연재
이상규, 2023년 5–6월. 1960년의 노회·총회·이사회 문서를 소개. (1) (6)
코람데오닷컴, "고신초기와 박윤선"
허순길, 2013.05.13. 조교였던 이의 회고. 기사
기독신문, "〈성경주석〉 20권 완간, 강단에 단비되다"
2018.06.12. 주석의 특징과 평가. 기사
뉴스앤조이, "〈목사의 딸〉, 한국교회에 득일까 독일까"
2015.02.26. 책에 대한 엇갈린 평가. 기사

위 책과 논문은 서지와 목차, 이를 소개한 기사로 확인한 것이며 본문을 읽은 것은 아닙니다. 기사 네 편은 본문을 읽었습니다.

예전에 정리해 둔 자료와의 대조

2026년 2월부터 5월 사이에 AI 대화로 받아 둔 자료 세 건을 이번에 확인한 자료와 맞추어 보았습니다. "정암 박윤선 박사 연대기"(3월 8일), "박윤선 박사 개혁신학 연구 개요"(2월 18일), "한국기독교 분파 분열의 역사와 고려파 계보도"(5월 2일까지)입니다. 세 자료 모두 본문에 출처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옮기지 않고, 확인된 것은 이 글의 본문에 넣고 다른 곳은 표로 남깁니다.

연대기 (3월 8일)

항목예전 연대기이번에 확인한 내용판단
호의 한자靜菴正岩 (학술지 논문 제목 등)다름
출생지와 생일평북 의주, 음력 1월 25일평북 철산 (백과사전). 위키백과는 음력 12월 11일다름
평양신학교1929년 입학, 1933년 졸업1931년 4월 입학, 1934년 3월 졸업다름
첫 유학1933년 웨스트민스터 입학1934년 9월 입학, 1936년 5월 신학석사입학 연도가 다름
1938년네덜란드 자유대학 유학, 도이어베르트 등에게 배움1938–39년은 웨스트민스터 재유학. 자유대학은 1953년 10월. 도이어베르트에게 배웠다는 근거는 찾지 못함다름
귀국 뒤1938년 귀국 후 고려신학교 설립 준비1940–45년 만주에서 목회와 교수. 설립 논의는 1946년다름
고려신학교 설립박형룡 등과 함께 설립설립자는 주남선과 한상동. 박형룡은 1947년 10월에 교장으로 옴다름
고려신학교 재직1946년부터 1980년대까지 교수1960년 9월 사임. 이후 총신과 합신에서 가르침다름
교단 분리1951년 고려파 분리1951년 법통노회, 1952년 9월 총노회표현이 부정확함
주석 집필1955년 시작, 1970–80년대 완성1944년 시작, 1949년 첫 권 출간, 1979년 완간다름
저서『성경신학』, 『개혁주의 교리학』, 『기독교 윤리학』, 『성령론』앞의 두 권은 확인. 뒤의 두 권은 찾지 못함일부만 확인
별세1988년 6월 30일, 향년 83세1988년 6월 30일. 나이는 83세 또는 84세로 자료마다 다름맞음
신사참배반대하여 끝까지 절개를 지킴본인이 "단 한 번 신사참배를 한 범과"가 있다고 고백하고 회개함다름
별칭"한국의 칼빈"이렇게 부른 자료를 거의 찾지 못함확인 못 함
최대 업적한국인 최초로 신구약 전권 주석 완성여러 자료가 같게 적음맞음

열다섯 항목 가운데 맞는 것은 둘, 일부만 확인된 것이 하나이고 나머지는 다르거나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개혁신학 연구 개요 (2월 18일)

항목예전 자료이번에 확인한 내용판단
고려신학교가 선 곳1946년 경남 진주에 설립부산. 진주는 1952년 총노회가 조직된 곳다름
반틸의 영향전제주의 변증학을 배워 가르침그의 "계시의존사색"이라는 말이 반틸의 가르침에서 왔다고 여러 글이 적음맞음
신학의 두 뿌리웨스트민스터의 개혁신학과 네덜란드 개혁신학구프린스턴에서 웨스트민스터로 이어진 전통과 19세기 화란 개혁신학을 함께 받았다고 적은 글이 있음맞음
바르트 비판신정통주의를 비판함반틸 아래에서 위기신학을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바르트의 성경관을 비판했다고 적은 글이 있음맞음
머레이, 메이천, 보스의 영향세 사람에게 깊이 영향받음이번에는 근거를 찾아보지 못함확인 못 함
도여베르트의 영향자유대학에서 그의 철학을 접함근거를 찾지 못함확인 못 함
조직신학 저술개혁주의 조직신학을 체계적으로 저술함교의학 저서는 생전에 없었고, 유작 『개혁주의 교리학』이 2003년에 나옴표현이 부정확함
프린스턴, 웨스트민스터, 자유대학의 역사세 기관의 역사를 길게 서술박윤선과 직접 관계된 사실이 아니어서 이번에 따로 대조하지 않음대조하지 않음

분열의 역사와 고려파 계보도 (5월 2일까지)

이 대화는 처음 만든 계보도를 뒤에 스스로 검증해 여러 번 고쳤습니다. 아래는 고친 뒤의 내용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항목예전 자료이번에 확인한 내용판단
초대 총노회장이약신. 한상동은 부회장같음맞음
승동측과의 합동처음에는 1959년, 고친 뒤에는 1960년 12월 13일1960년 12월 13일고친 뒤의 것이 맞음
환원1962년 복구 선언, 1963년 결별1962년 10월 복교 선언, 1963년 9월 환원총회맞음
박형룡의 사임1947년 10월 취임, 1948년 4월 떠남백과사전은 "6개월 만에 사임"으로 적음. 서로 맞아떨어짐맞음
1957년의 박윤선소송 문제로 잠시 떠났다가 돌아옴1957년 소송 논쟁으로 송상석과 대립했고, 그해 가을 고려신학교에 복귀했다고 교단지가 적음맞음
박윤선과 총신"총신대로 간 것이 아니다"1960년에 곧바로 간 것은 아니나, 뒤에 총회신학교와 총신대학의 교수가 됨표현이 부정확함
소송 허용과 고려측 분리1974년 소송 허용 결의, 경기노회 행정보류, 반고소 고려측 분리분리의 쟁점이 신자 간 소송이었다는 점은 같음. 연도는 1974, 1975, 1976년으로 자료마다 다르고, 경기노회에 관한 부분은 확인하지 못함일부만 확인
스푸너 선교사의 이름보이스 스푸너 (Boyce Spooner). 1956–60년 부산 사역교단지는 서아도(Arthur Boyce Spooner)로 적음. 1960년 7월 안식년으로 귀국맞음
미국 정통장로교회(OPC)의 한국 선교1928년 브루스 헌트(한부선) 입국, 1938년 OPC 선교사, 1941–42년 투옥과 추방, 1946년 귀환과 고려신학교 합류, 1976년 은퇴, 2009년경 선교 종료한부선이 초기 고려신학교에서 가르쳤다는 것만 교단지로 확인. 연도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함확인 못 함

세 자료를 합쳐 보면, 뒤에 검색으로 검증을 거친 대목은 대체로 맞았고 처음에 출처 없이 적힌 대목은 틀린 곳이 많았습니다. 이 탭의 생애 연표는 백과사전과 교단지, 교계 신문에 따른 것입니다.

자료 표시

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항목.
교단지
고신뉴스 KNC의 역사 연재. 총회록과 당시 문서를 인용하지만 고신 교단 안의 시각입니다.
언론
교계 신문과 인터넷 매체의 보도.
학술
논문과 연구서. 서지와 초록, 이를 인용한 기사로만 확인했습니다.
증언
가까이에서 본 사람의 회고.

"여기는 갈립니다" 상자는 자료나 평가가 서로 어긋나는 자리입니다. 양쪽을 다 적고 어느 쪽도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윤선 · 고신뉴스 KNC 박윤선과 주일성수 문제(1) · (6) · 고신뉴스 KNC 고신교회 70년 역사 산책(25) · 코람데오닷컴 고신초기와 박윤선 · 기독신문 성경주석 20권 완간 · 뉴스앤조이 목사의 딸 · 한국개혁신학 25호 · 위키백과 박윤선
정리 2026-10-10. 책과 논문은 서지로만 확인했고, 기사와 백과사전 항목은 본문을 읽었습니다. 고신 교단의 역사 속에서 본 박윤선은 한국 고신교회사에 따로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