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준 목사가 쓴 손양원 목사의 전기입니다. 두 아들을 잃은 손양원 목사가 그 일에 가담한 청년을 아들로 삼은 일을 한국 교회에 처음 알린 책입니다. 이 쪽은 책의 짜임과 판본의 내력, 책이 읽혀 온 길, 책의 서술과 다른 기록이 엇갈리는 곳, 그리고 설교와의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정리 2026-10-11 · 책 본문은 읽지 못함 · 서지와 목차와 책 소개는 예스24와 알라딘으로, 머리말의 한 대목은 두란노몰로, 지은이와 판본의 내력은 1965년 국민보 기사와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상영회 안내 글과 연구자들의 글로, 책 속 문장은 독자 서평과 기사에 옮겨진 것으로,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로 확인 · 자료로 확인하지 못한 내용은 [확인필요]로 표시함(이 쪽에는 그렇게 표시한 항목이 없음)
손양원 목사 전기아홉 가지 감사원수를 아들로본편과 속편
한눈에
『사랑의 원자탄』은 안용준 목사가 쓴 손양원 목사의 전기다. 손양원 목사의 삶은 같은 사이트의 손양원 목사 쪽에 따로 정리되어 있다. 이 쪽은 생애를 다시 쓰지 않고 '책'을 다룬다.
지금 서점에서 볼 수 있는 판은 성광문화사가 2009년 12월 10일에 낸 개정판(양장, 556쪽)이다. 부제는 "손양원 목사의 순교 일대기"다. 머리말과 본편 18장, 그리고 따로 머리말이 붙은 속편 13장과 맺는 글 '붓을 놓고 나서'가 한 권에 묶여 있다. 서점의 책 소개는 이 책을, 애양원교회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던 손양원 목사가 1948년에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잃고도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여 양아들로 삼은 순교 일대기라고 알린다.
책은 한 번에 쓰이지 않았다. 순천의 예술공간 돈키호테가 2019년 상영회 안내 글에 정리한 바로는, 두 아들의 죽음과 안재선을 아들로 삼은 일을 담은 '전편'이 1949년에 먼저 나왔고, 손양원 목사가 1950년에 순교한 뒤 그가 남긴 글과 함께 엮은 '속편'이 1952년에 나왔다. 그러므로 본편은 손양원 목사가 살아 있을 때 쓰인 글이고 속편은 순교한 뒤에 쓰인 글이다.
이 책은 손양원 목사를 아는 데 가장 먼저 꼽히는 책이면서, 기록과 증언과 지은이의 그림이 섞인 신앙 전기다. 그래서 이 쪽은 책이 전하는 내용과 다른 기록이 전하는 내용을 가려 적었다. 책 본문을 구하지 못해 장마다의 내용은 많이 비어 있다. 비어 있는 곳은 비어 있다고 적었다.
제목의 뜻. 책을 읽은 한 교회의 서평(2010년)에 따르면, 지은이는 손양원 목사가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삼은 일을 20세기의 '2대 경이'라고 불렀다. 부수는 쪽에서는 원자탄이 나타난 것이고, 세우는 쪽에서는 인류애가 다시 나타난 것이라는 뜻이다. 책의 그 문장은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총신대학교 박용규 교수와 고신대학교 이상규 교수도 안용준이 손양원을 '사랑의 원자탄'에 비유했다고 적는다.
책 정보
항목
내용
제목과 부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순교 일대기(2009년 개정판의 부제)
지은이
안용준 목사. 고려신학교의 잡지 〈파수군〉의 편집인이었고(나삼진), 1965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의 총무과장이었다(국민보). 손양원의 옥중 편지와 심문 조서, 일기를 모아 정리했다. 태어난 해와 세상을 떠난 해는 확인하지 못했다.
처음 나온 때
흔히 1949년이라 한다.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글은 1949년 기독교신문사에서 안용준 목사와 손의원의 공저로 '전편'이 나왔고 1952년에 안용준이 혼자 쓴 '속편'이 나왔다고 적는다. 이만열 교수는 '1950년 발간'이라고 말했다. 초판의 판권은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한 판
성광문화사 개정판, 2009년 12월 10일, 양장, 556쪽, 153×224×35밀리미터, 928그램, 정가 25,000원. 국제표준도서번호(ISBN) 9788972524533. 본편 18장과 속편 13장.
그 밖의 판
성광문화사 1972년 3월 31일판(219쪽, 13장), 성광문화사 1999년 9월 10일판(230쪽, 절판). 전자책 두 가지(2024년 4월 20일, 2024년 6월 15일). 연구자들의 글에는 신망애사판(1966년, 1977년 제11판)도 나온다.
번역
영국 기독학생회(IVF) 출판부가 1965년에 영어 번역본 'The Seed Must Die'를 냈다(국민보). 키아츠(KIATS)가 2009년에 영문판 'The Atomic Bomb of Love'를, 2018년에 중국어 번체판 전자책을 냈다(알라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영어와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었다고 적는다.
영화
「사랑의 원자탄」. 강대진 감독, 안용준 원작, 김용진 각본, 남아진흥 제작. 1977년 11월 9일 개봉, 105분(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판매 상태
2026년 10월 11일에 본 예스24에는 2009년 개정판 종이책이 일시품절로 표시되어 있고, 알라딘과 두란노몰에는 주문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전자책은 예스24와 알라딘에 있다.
책의 열쇠 말
말
뜻
애양원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세운 한센병 환자 요양 시설. 여수에 있다. 손양원 목사가 목회한 애양원교회가 그 안에 있다.
산돌
손양원 목사의 호. 속편 2장의 제목이 '산돌이 이야기'다.
본편과 속편
2009년 개정판을 이루는 두 묶음. 자료에 따라 전편과 속편, 상권과 하권이라고도 부른다.
아홉 가지 감사
손양원 목사가 두 아들의 장례에서 한 답사로 전해지는 글. 이 책에 실려 있다.
파수군
고려신학교가 낸 잡지. 지은이 안용준이 편집인이었고, 손양원의 옥중 편지와 심문 조서가 이 잡지에 먼저 실렸다.
여수·순천 10·19 사건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하던 군부대에서 일어난 봉기와 그 진압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 사건. 예전에는 '여순 반란 사건'이라 불렀고 지금 법률이 쓰는 이름은 '여수·순천 10·19 사건'이다. 옛 기사와 영화 자료는 그때의 이름을 쓴다. 이 쪽은 자료의 말을 옮길 때가 아니면 지금의 이름을 쓴다.
실기(實記)
실제로 있었던 일을 적은 글. 1965년 기사는 이 책을 손양원 목사의 '실기'라고 부른다.
책의 짜임
아래 목차는 예스24에 실린 2009년 개정판(성광문화사, 556쪽)의 것을 그대로 옮겼다. 알라딘에 실린 목차도 같다. 본편 18장과 속편 13장이며, 본편과 속편에 머리말이 따로 있고 끝에 '붓을 놓고 나서'가 있다. 장이 시작하는 쪽은 서점 자료에 나오지 않는다.
1972년판은 장의 수와 제목이 다르다(13장). 그 목차는 '13장 판' 탭에 따로 옮겼다.
묶음
제목
본편
머리말
본편
제1장 바람 불기 전
본편
제2장 아내의 권고
본편
제3장 지옥이 된 낙원
본편
제4장 옥중서한
본편
제5장 어린 전도자
본편
제6장 제 2해산
본편
제7장 한센환자의 종
본편
제8장 추모의 밤
본편
제9장 늙은 중학생들
본편
제10장 추수할 일꾼
본편
제11장 총맞은 중학생들
본편
제12장 눈물의 바다
본편
제13장 사랑의 원자탄
본편
제14장 부자상봉
본편
제15장 청춘일기
본편
제16장 복수
본편
제17장 제2바울은 아라비아로
본편
제18장 산 순교자의 기도
속편
머리말
속편
제1장 애양원 손양원
속편
제2장 산돌이 이야기
속편
제3장 옥중 6년간
속편
제4장 전도일지
속편
제5장 신앙수필
속편
제6장 한국의 겟세마네
속편
제7장 이십세기 심판정(審判廷)
속편
제8장 대신 온 생명
속편
제9장 말 없는 세 무덤
속편
제10장 노천(露天)추모의 날
속편
제11장 되어진 배신
속편
제12장 흘러간 옛 꿈
속편
제13장 그가 만일 오늘날 살아 있었다면!
끝
붓을 놓고 나서
표시에 대하여. 이어지는 탭에서 [확인필요] 표시가 붙은 대목은 정리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부가 틀릴 수 있으니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 표시가 없는 대목은 서점의 책 소개나 목차, 백과사전, 기사처럼 실제로 열어 본 자료에 나온 내용입니다.
책이 나온 길: 지은이, 판본, 번역, 영화
이 책은 일흔 해 넘게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꼴로 나왔다. 아래는 자료에서 확인한 것만 적었다. 자료끼리 다른 곳은 다른 대로 적었다.
지은이 안용준
나삼진의 글(코람데오닷컴, 2020년)은 안용준을 고려신학교의 잡지 〈파수군〉의 편집인 '안용준 교수'라고 부른다. 그가 손양원의 설교와 편지를 찾아 알리는 데 앞장섰고, 손양원의 옥중 편지와 심문 조서를 정리해 〈파수군〉에 먼저 실은 뒤 이를 엮어 전기를 펴냈다고 적는다.
같은 글에 따르면 안용준이 모은 손양원의 재판 기록과 일기와 편지가 엮여 '2부작' 『사랑의 원자탄』이 되었다. 손양원이 순교한 뒤 안용준은 그의 설교 '신앙과 생활'을 시의 꼴로 고쳐 〈파수군〉에 싣기도 했다.
미주 한인 신문 국민보의 1965년 6월 2일 기사는 안용준 목사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 총무과장으로 소개한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면서 손양원 목사의 실기를 쓰기 시작했고, 두 해 동안 손 목사의 행적을 조사하며 사건 때의 증인들을 찾아다녔다. 기사는 이것을 '18년 전'의 일이라고 적는다.
같은 기사는 그가 700여 장(쪽)의 『사랑의 원자탄』 상권과 하권, 『손양원 목사 설교집』 상권과 하권을 냈고, 한때 이 이야기를 '향'이라는 제목의 희곡으로 고쳐 서울 중앙극장에서 올린 일도 있다고 전한다.
기사에는 지은이가 안재선에게서 들은 말이 실려 있다. 사실대로 쓰자니 이름이 문제라고 하자, 그때 고려고등성경학교에 다니던 안재선이 쓰라고 했다는 것이다. 쓰지 않아도 자기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지 않으냐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지은이가 기자에게 한 말이며 다른 자료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
나삼진의 글에 따르면 손양원이 순교한 뒤 안용준이 중심이 되어 대한기독교순교자유가족원호회를 꾸려 순교자의 유가족을 도우려 했다. 고신 쪽이 중심이 되어 시작한 일이어서 총회 쪽의 협력을 받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글은 이 책 제11판(1977년) 머리말을 옮겼다. 거기서 지은이는 1972년 5월에 길이 열려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고 적는다. 1977년 8월 7일에는 '한국 초대교회 약사와 사랑의 원자탄'을 소개하는 환등(슬라이드)을 만들어 로스앤젤레스의 한 한인 교회에서 공개했다고 한다.
안용준은 손양원에 관한 책을 더 엮었다. 박용규 교수의 참고문헌에는 그가 엮은 『산돌 손양원목사 설교집』(신망애사, 1963년)이 올라 있다. 한국 교회와 신사참배를 다룬 한 글의 각주에는 그의 책 『태양신과 싸운 이들』이 신사참배에 맞선 이들의 예심 종결서를 실은 책으로 인용된다. '손양원 목사' 쪽은 『손양원 목사님의 옥중서신집』(1952년)도 그가 엮었다고 적는다.
안용준이 태어난 해와 세상을 떠난 해, 손양원 목사와 처음 만난 때와 사이는 믿을 만한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처음 나온 때와 속편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글(2019년)은 이렇게 정리한다. 원작은 안용준 목사와 손의원의 공저로 1949년 기독교신문사에서 초판이 나왔다. 초판은 '전편'에 해당하며, 1948년에 손양원의 두 아들이 순천에서 죽임당한 일과 거기에 가담한 안재선을 손양원이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은 일을 담았다. 1952년에 안용준이 혼자 쓴 '속편'이 나오면서 책이 완성되었다. 속편은 1950년 9월에 목숨을 잃은 손양원을 기리며 그가 쓴 글과 함께 엮은 것이다.
초판의 연도는 자료마다 조금 다르다. 설교노트와 여러 글은 1949년이라 한다. 이만열 교수는 2013년 학술 모임에서 '1950년 발간된' 책이라고 말했다(뉴스앤조이). 1965년 국민보 기사는 지은이가 '13년 전'에 손 목사의 생애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고 적는데, 이것은 속편이 나온 1952년과 맞는다. 초판의 판권을 직접 보지 못했으므로 어느 쪽이 맞는지는 확정하지 못했다.
초판을 함께 지었다는 '손의원'이 누구인지는 이 글에 설명이 없고, 다른 자료에서도 확인하지 못했다. 공저라는 것도 이 글 한 곳에서만 보았다.
같은 글에 따르면 1952년 전쟁 가운데 경향신문 광고란에 '총액 일천오백만원 씨나리오 현상공모'가 실렸다. 전편과 속편의 출간을 기념해 한국기독교순교자유가족원호회가 연 것이다.
그 뒤의 판
연구자들의 글에는 여러 판이 인용된다. 박용규 교수의 참고문헌에는 '서울: 신망애사, 1966'이 있고, 나삼진의 글에는 '성광문화사, 1977'과 '제11판, 신망애사, 1977'이 함께 나온다. 한국 교회와 신사참배를 다룬 한 글의 각주에는 '7판'이 나온다. 한 교회의 2010년 서평은 '12판까지 출판된' 책이라고 적는다.
예스24에는 성광문화사가 1972년 3월 31일에 낸 판(219쪽)이 절판으로 올라 있다. 이 판은 13장이다. 알라딘에는 성광문화사가 1999년 9월 10일에 낸 판(230쪽, 148×210밀리미터)이 절판으로 올라 있고, 개정판이 나와 유통을 그쳤다고 적혀 있다.
2009년 12월 10일에 성광문화사가 개정판(양장, 556쪽)을 냈다. 예스24의 책 소개는 이것을 '1972년 출간된 『사랑의 원자탄』의 개정판'이라고 적는다. 본편 18장과 속편 13장이 한 권에 들어 있다.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글은 전편과 속편을 합본으로 엮어 성광문화사가 지금까지 계속 내고 있다고 적는다.
나삼진의 글이 인용하는 1977년판의 쪽수는 69쪽에서 550쪽까지 걸쳐 있다. 그러므로 1977년에도 본편과 속편을 합친 두꺼운 판이 있었다. 13장으로 된 얇은 판(1972년, 1999년)과 본편과 속편을 합친 두꺼운 판이 나란히 나온 셈인데, 두 갈래가 어떤 관계인지 밝힌 자료는 찾지 못했다.
전자책은 성광문화사에서 두 가지가 나왔다. 2024년 4월 20일의 것은 230쪽짜리 1999년판을, 2024년 6월 15일의 것은 556쪽짜리 개정판을 옮긴 것이다(알라딘).
번역
1965년 국민보 기사는 영국 기독학생회(IVF) 출판부가 이 책의 영어 번역본 'The Seed Must Die'를 냈다고 전한다. 기사는 우리말 제목을 '씨알은 죽어서'라고 옮겼다. 미국에서도 완역이 거의 끝나 곧 책이 나온다고 했다.
1972년판의 제4장 제목이 '씨앗은 죽어서'다. 영어판의 제목과 뜻이 같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글은 경향신문 1977년 11월 8일 광고를 근거로, 1974년에 이미 아홉 나라에서 간추린 번역본이 나와 있었다고 적는다.
알라딘에는 키아츠(KIATS, 한국고등신학연구원)가 낸 영문판 'The Atomic Bomb of Love'(종이책 2009년 12월 1일, 전자책 2018년 2월 26일, 514쪽)와 중국어 번체판 전자책 '愛的原子彈'(2018년 3월)이 올라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손양원' 항목은 이 책이 영어와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었다고 적는다.
영화와 무대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영화 「사랑의 원자탄」은 강대진 감독, 안용준 원작, 김용진 각본, 남아진흥 제작으로 1977년 11월 9일에 개봉했다. 105분이며 개봉 극장은 '대한'으로 적혀 있다. 이신재가 손양원 목사를, 송승환이 안재선을, 이경희가 손 목사의 아내를, 이형준이 동인을 맡았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이 영화 문서는 원작자를 '박용준'으로 적어 놓았는데,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의 '안용준'과 다르다.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글에 따르면 영화는 순천과 여수와 고흥 일대에서 찍었다. 지은이는 제11판 머리말에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던 사람이 그 전에 네댓 차례 있었으나 이루지 못했고 촬영을 다 해 놓고 녹음만 남긴 채 멈춘 일도 있었다고 적었다.
영화는 책과 같지 않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의 줄거리에는 '영실'이라는 인물을 사이에 둔 동인과 안재선의 이야기가 나오고, 손 목사의 장례에서 안재선이 "죽을 자 살려놓고 아버지 먼저 가시다니" 하며 통곡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대목들이 책에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같은 제목의 무대 작품도 있다. 2002년 6월 대구에서 창작 오페라 「사랑의 원자탄」이 올랐고(매일신문), 2005년에는 뮤지컬 「사랑의 원자탄」이 광주에서 공연되었다(경향신문).
자료에서 확인한 판본
때
펴낸 곳과 꼴
나온 곳
1949년
기독교신문사. 안용준과 손의원의 공저. '전편'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글(2019년)
1952년
'속편'. 안용준이 혼자 씀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글. 국민보 1965년 기사의 '13년 전'과 맞음
1965년
영어 번역본 'The Seed Must Die', 영국 기독학생회(IVF) 출판부
국민보 1965년 6월 2일
1966년
신망애사
박용규 교수의 참고문헌
1972년 3월 31일
성광문화사, 219쪽, 13장
예스24
1977년
제11판(신망애사). 성광문화사 1977년판으로도 인용됨. 550쪽이 넘음
나삼진의 글,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글
1999년 9월 10일
성광문화사, 230쪽
알라딘
2009년 12월 10일
성광문화사 개정판, 양장, 556쪽, 본편 18장과 속편 13장
예스24, 알라딘
2009년 12월 1일
영문판 'The Atomic Bomb of Love', 키아츠
알라딘
2024년
성광문화사 전자책 두 가지(4월 20일, 6월 15일)
알라딘, 예스24
본편: 손양원 목사가 살아 있을 때 쓰인 글
본편은 머리말과 18장이다. 서점 자료에는 머리말의 한 대목과 장의 제목만 있고 장마다의 줄거리는 없다. 책을 읽은 사람이 장의 이름을 들어 내용을 적은 글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아래에는 제목과, 다른 자료에서 그 대목에 대해 확인되는 것만 적었다. 제목과 내용을 잇는 풀이는 정리자의 짐작이며 그렇게 밝혔다.
머리말
두란노몰의 2009년 개정판 쪽에 머리말의 한 대목이 실려 있다. 지은이는 이 글이 일제 때 순교한 선배들의 행적을 찾아보려는 첫 출발이라고 적는다. 이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세히 적어서 알려 주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지은이는 누구를 위해 쓰는지도 밝힌다. 옥에서 순교를 기다리다가 아직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아 순교하지 않은 '산 순교자들', 세상에서 버림받은 기도의 투사인 여수 애양원의 성도들, 깊은 산골에 숨은 성도들에게 작게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산 순교자'라는 말은 본편 마지막 장의 제목 '산 순교자의 기도'에도 나온다.
지은이는 이 책이 그들을 사람으로서 숭배하거나 그들을 중심으로 편을 가르려는 것이 아니라고 적는다. 그들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묻어 둘 수 없어서 쓴다고 하고, 마태복음 5장 13~16절(세상의 소금과 빛)을 든다.
머리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지은이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여러 번 눈물을 흘렸고, "눈물로 시작해서 눈물로 마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이 머리말은 '산 순교자'가 아직 살아 있는 때의 글이므로 손양원이 순교하기 전에 쓴 본편의 머리말로 보인다. 두란노몰은 어느 머리말인지 밝히지 않았다.
같은 쪽에는 박형룡 박사의 추천의 글도 실려 있다. 이렇게 위대한 경건인, 전도자, 신앙의 용사, 한센병 환자의 친구, 원수를 사랑한 사람, 순교자를 한마디로 부를 이름은 '성자'라는 높임말일 것이라는 내용이다. 한국 교회 역사에 이런 성자가 일찍이 없었고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도 이렇게 여러 면을 갖춘 성자는 보기 어렵다고 했다. '손양원 목사' 쪽은 박형룡이 손양원의 장례 때 같은 뜻의 말을 했다고 적는다.
제1장 ~ 제4장
장의 제목은 '바람 불기 전', '아내의 권고', '지옥이 된 낙원', '옥중서한'이다. 이 네 장의 본문은 서점 자료에 실려 있지 않다.
제4장의 제목으로 보아 손양원이 옥에서 쓴 편지가 본편에 실려 있다. 나삼진의 글은 안용준이 옥중 편지와 심문 조서를 〈파수군〉에 먼저 싣고 이를 엮어 이 책을 냈다고 적는다. 편지의 문장은 이번에 책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나삼진의 글은 손양원이 1940년 9월 25일 수요 기도회 뒤에 붙잡힌 일의 근거로 이 책(1977년판) 69쪽을, 그 뒤 구금소로 옮겨진 일의 근거로 72쪽을 든다. 그러므로 붙잡히고 갇힌 일이 책의 앞쪽에 실려 있다. 몇 장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지옥이 된 낙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손양원이 갇힌 뒤 가족이 애양원의 사택에서 쫓겨난 일이 다른 기록에 있으나, 이 장이 그 일을 다루는지는 제목만으로 알 수 없다.
제5장 ~ 제10장
장의 제목은 '어린 전도자', '제 2해산', '한센환자의 종', '추모의 밤', '늙은 중학생들', '추수할 일꾼'이다. 본문은 서점 자료에 실려 있지 않다.
'늙은 중학생들'이라는 제목은 두 아들의 사정과 맞닿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아버지가 갇힌 동안 두 아들은 부산의 공장에서 일했고, 죽을 때 동인은 23세, 동신은 18세의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 장의 내용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며 정리자의 짐작이다.
김명혁 목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책을 읽은 일을 돌아보는 글에서 책 속의 한 장면을 적었다. 손양원 목사가 한센병을 앓는 어린이들과 소풍을 갔는데, 아이들이 병이 옮을까 봐 멀리 떨어져 도시락을 먹자 목사가 다가가 그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어느 장에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제목으로는 '한센환자의 종'이 가깝다.
제11장 ~ 제13장 (총맞은 중학생들, 눈물의 바다, 사랑의 원자탄)
제목으로 보아 이 세 장이 두 아들의 죽음과 장례, 그리고 책의 제목이 된 일을 다룬다. 13장으로 된 1972년판에도 '눈물은 바다를 이루고'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장이 잇달아 있다. 장의 내용을 서점 자료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
뉴스앤조이의 2013년 기사는 책(성광문화사) 167쪽을 들어 두 형제의 마지막을 옮겼다. 형제가 "너희도 그러지 말고 예수를 믿으라, 우리 동족끼리 상쟁하지 말자, 참다운 예수 정신으로 살아야 우리 민족이 복을 받는다"고 전하다가 총에 맞았다는 것이다. 기사는 어느 해의 판인지 밝히지 않았다.
1965년 국민보 기사는 책이 전하는 같은 장면을 이렇게 옮겼다. 두 아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만 하면 면할 수 있는 죽음 앞에서 "나를 죽여도 신앙은 남는다"고 외쳤고, 이것은 목격자의 증언이라고 했다. 누구의 증언인지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손양원 목사' 쪽은 공개된 발췌에서 확인한 책 속 장면을 따로 적어 두었다. 형 동인이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 총에 맞기 전에 기도하는 장면, 아우 동신이 형의 뒤를 따르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번 조사에서 그 발췌를 다시 찾지는 못했다.
아홉 가지 감사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책을 읽은 한 독자가 74쪽의 글로 첫째부터 여섯째까지를 옮겨 적었다. 이 독자가 읽은 판은 쪽수로 보아 13장으로 된 판이다. 2009년 개정판에서는 몇 장 몇 쪽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글귀는 '13장 판' 탭에 적었다.
제14장 ~ 제18장
장의 제목은 '부자상봉', '청춘일기', '복수', '제2바울은 아라비아로', '산 순교자의 기도'다. 본문은 서점 자료에 실려 있지 않다.
'복수'는 13장으로 된 1972년판에도 '사랑의 원자탄' 바로 다음 장의 제목으로 나온다. 책의 흐름에서 이 제목은 원수를 아들로 삼은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정리자의 짐작이다.
김명혁 목사는 위의 글에서, 책이 마지막 부분에서 손양원 목사가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적었다. 말로만 용서한 것이 아니고 자기 집으로 데려와 양아들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가 고등학생 때 읽은 책은 본편으로 보인다.
'부자상봉', '청춘일기', '제2바울은 아라비아로'가 누구의 무슨 일을 가리키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안재선이 손양원의 도움으로 부산의 고려고등성경학교에 들어간 일이 여러 기록에 있으나, 이 장들과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본편은 손양원이 살아 있을 때 쓰인 글이므로 그의 순교가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장의 제목 '산 순교자의 기도'가 이 점과 맞는다.
속편: 순교한 뒤에 엮은 글
속편에는 머리말이 따로 있고 13장 뒤에 '붓을 놓고 나서'가 붙어 있다. 예술공간 돈키호테의 글에 따르면 속편은 1950년에 목숨을 잃은 손양원을 기리며 그가 쓴 글과 함께 엮은 것이다. 장의 제목에서도 그의 일기와 수필을 싣는 장, 순교와 장례를 다루는 장이 갈린다.
제1장 ~ 제5장 (애양원 손양원, 산돌이 이야기, 옥중 6년간, 전도일지, 신앙수필)
제목으로 보아 앞의 다섯 장은 손양원의 삶을 처음부터 다시 훑고 그가 남긴 글을 싣는다. '산돌'은 손양원의 호다. 13장으로 된 1972년판에도 '산돌이 이야기'라는 장이 있다.
'옥중 6년간'이라는 제목은 옥살이를 여섯 해로 센다. '손양원 목사' 쪽이 정리한 날짜로는 1940년 9월 25일에 붙잡혀 1945년 8월 17일에 풀려났으니 다섯 해가 조금 못 된다. 1965년 국민보 기사와 영화의 줄거리도 '6년'이라 적는다. 햇수로 세어 생긴 차이로 보인다.
책에는 손양원의 일기가 실려 있다. 나삼진의 글은 손양원의 1949년 6월 3일 일기를 이 책(1977년판) 364쪽에서 인용한다. 부산에서 연 전도 집회에 관한 일기로, 집회의 열매를 아내와 애양원교회 교인들과 고려신학교 선생과 학생들의 기도 덕으로 돌리는 내용이다. 364쪽이 어느 장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제목으로는 '전도일지'가 가깝다.
나삼진의 글은 안용준이 손양원이 남긴 수필을 시의 꼴로 고쳤다고 적는다. '신앙수필' 장에 실린 글이 손양원이 쓴 그대로인지 지은이가 손본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제6장 ~ 제10장 (한국의 겟세마네, 이십세기 심판정, 대신 온 생명, 말 없는 세 무덤, 노천 추모의 날)
본문은 서점 자료에 실려 있지 않다. 제목으로 보아 6·25 전쟁과 손양원의 순교, 장례를 다루는 대목이다. '손양원 목사' 쪽도 같은 짐작을 적어 두었다.
'말 없는 세 무덤'은 애양원에 있는 손양원과 두 아들의 무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3장으로 된 1972년판에도 같은 제목의 장이 있다.
'대신 온 생명'은 손양원이 순교한 날에 태어난 막내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날 막내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손양원 목사' 쪽에 정리되어 있다. 제목과 잇는 것은 짐작이다.
'이십세기 심판정'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제11장 ~ 제13장, 붓을 놓고 나서 (되어진 배신, 흘러간 옛 꿈, 그가 만일 오늘날 살아 있었다면!)
본문은 서점 자료에 실려 있지 않다. 제목이 가리키는 일도 확인하지 못했다.
책의 끝쪽에는 기록에 가까운 대목이 있다. 나삼진의 글은 이 책(1977년판) 541쪽을 손양원의 심문 조서에 나오는 증인들의 진술의 근거로, 544쪽을 손양원이 순교 직전에 순천노회로 옮긴 것으로 보는 근거로, 550쪽을 순교자유가족원호회에 관한 근거로 든다. 이 쪽들이 어느 장에 드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나삼진의 글에 실린 표를 보면 손양원의 심문 조서('체형조서')는 〈파수군〉에 여러 차례 나뉘어 실렸다. 그 조서가 이 책에 얼마나 실려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13장으로 된 판(1972년, 1999년)과 독자가 옮긴 문장
예스24에 올라 있는 1972년판은 13장이며 2009년 개정판과 장의 제목이 다르다. 한 권 안에서 붙잡힘, 두 아들의 죽음, 원수를 아들로 삼은 일, 순교, 무덤까지를 다룬다. 책을 읽고 쪽수와 함께 문장을 옮긴 독자의 글 한 편은 쪽수로 보아 이 갈래의 판을 읽은 것이다.
1972년판의 짜임
예스24에 실린 1972년판(성광문화사, 219쪽)의 목차는 아래 표와 같다. 책 소개 글은 2009년 개정판의 것과 같다.
알라딘의 1999년판(230쪽) 쪽에는 목차가 실려 있지 않다. 1999년판이 1972년판과 같은 13장인지는 서점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아래 독자가 옮긴 쪽수(74쪽에 아홉 가지 감사, 196쪽에 '사랑으로 승리를'이라는 말)가 13장의 차례와 들어맞는다.
한 독자가 쪽수와 함께 옮긴 문장
아래는 2026년 3월에 한 독자가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독서 기록에서 본 것이다. 책 본문과 대조한 것은 아니다. 이 독자는 출판사를 성광문화사로 적었고 판은 밝히지 않았다.
17쪽. 일제의 정책에 맞추어 스스로 성경을 고치고 찬송가를 빼겠다고 하는 지도자들을 두고, 하나님보다 일본인을 더 무서워하는 지도자들이었다고 적은 대목.
27쪽. 기독교 신앙은 고난을 지나며 밝아지므로 자기를 옥에 가둔 것이 자기에게는 유익이고 가둔 쪽이 헛수고를 했다는 말. 누구의 말인지는 이 독자의 글에 나오지 않는다. 옥에 갇힌 사람이 가둔 쪽에게 하는 말이다.
32쪽과 33쪽. 누구의 글인지는 이 독자의 글에 나오지 않는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니 신앙의 인격 생활에 힘쓰라는 말, 그리고 "자족을 느끼는 자는 한 줌의 밥과 한 잔의 물에도 기쁨이 있으리라"는 말이 있다.
44쪽. 자손에게 논밭을 물려주기보다 믿음 하나를 전해 주겠다는 말. 누구의 말인지는 이 독자의 글에 나오지 않는다.
53쪽. 아들들의 소식을 들은 뒤의 기도. 누군지 모르나 아들을 죽인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달라고 구한다.
74쪽. 아홉 가지 감사 가운데 첫째부터 여섯째까지. 첫째는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을 낳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이다. 둘째는 많은 성도 가운데 이런 보배를 자기에게 맡겨 주신 것, 셋째는 삼남 삼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맏이와 둘째를 바치게 된 것, 넷째는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한데 두 아들이 순교한 것, 다섯째는 전도하다가 총살 순교를 당한 것, 여섯째는 미국에 가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간 것을 감사한다.
127쪽. "우리 기독교란 잘 살기 위한 종교가 아니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 위해서 잘 죽기 위한 종교입니다."
196쪽. 모든 일에 사랑으로 승리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 1972년판의 제12장 제목이 '사랑으로 승리를'이다.
1972년판(성광문화사, 219쪽)의 목차와 2009년 개정판에서 닮은 제목
1972년판
2009년 개정판에서 닮은 제목
제1장 봄 동산에 회오리 바람
본편 제1장 바람 불기 전(뜻이 닮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함)
제2장 손과 발이 묶이다
같은 제목 없음
제3장 죽어서 말하는 할아버지
같은 제목 없음
제4장 씨앗은 죽어서
같은 제목 없음. 1965년 영어 번역본의 제목 'The Seed Must Die'와 뜻이 같음
제5장 눈물은 바다를 이루고
본편 제12장 눈물의 바다
제6장 사랑의 원자탄
본편 제13장 사랑의 원자탄
제7장 복수
본편 제16장 복수
제8장 산돌이 이야기
속편 제2장 산돌이 이야기
제9장 겟세마네 동산까지
속편 제6장 한국의 겟세마네
제10장 알곡은 모아 곡간에
같은 제목 없음
제11장 말 없는 세 무덤
속편 제9장 말 없는 세 무덤
제12장 사랑으로 승리를
같은 제목 없음
제13장 죽도록 충성한 사람
같은 제목 없음
책이 읽혀 온 길, 그리고 다른 기록과 엇갈리는 곳
이 책은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가 한국 교회에 퍼진 첫 길목이다. 그만큼 책의 서술이 그대로 사실로 굳은 대목이 많다. 아래에는 책이 어떻게 읽혀 왔는지와, 연구자들과 다른 기록이 책의 서술에 덧붙이거나 달리 말하는 곳을 적었다. 여수·순천 10·19 사건은 지금도 견해가 갈리는 일이므로 어느 한쪽을 옳다고 적지 않았다.
한국 교회에서 읽혀 온 길
나삼진의 글에 따르면 이 책이 나왔을 때는 기독교 서적의 출판이 많지 않던 때였고, 고등학생들까지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박용규 교수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적는다. 판매 부수를 적은 자료는 찾지 못했다.
김명혁 목사는 서울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남대문 네거리의 서점에서 이 책을 사서 남산 숲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울며 읽었고, 그 뒤로 손양원 목사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돌아보았다(크리스천투데이, 2020년).
'손양원'이라는 이름보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오를 만큼 책의 제목이 그의 별명이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그가 안재선을 구해 양자로 삼은 일로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적는다.
안재선의 아들 안경선은 고등학교 3학년 겨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손양원 목사의 막내아들 손동길 목사가 건넨 이 책을 읽고서야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고 말했다(디지털여수문화대전). 그는 목사가 되어 함안 손양원기념관의 첫 관장을 지냈다.
책은 영화(1977년), 오페라(2002년), 뮤지컬(2005년)로 옮겨졌다.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가 교회 밖에까지 알려진 데에는 영화의 몫도 컸다. 다만 영화에는 꾸민 대목이 있어 책과 같지 않다.
값어치: 지은이가 직접 모은 기록
이 책의 바탕은 지은이가 모은 재판 기록과 일기와 편지다. 지은이는 사건의 증인들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국민보, 1965년). 나삼진을 비롯한 뒤의 연구자들은 날짜와 사실의 근거로 지금도 이 책의 쪽수를 든다.
이만열 교수는 2013년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의 학술 모임에서, 이 책을 넘어서는 손양원 목사의 역사 기록이 없다며 뒤에 온 연구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손 목사의 편지와 설교와 일기와 역사 자료를 모아 전집을 내자고 했다(뉴스앤조이).
한계: 신앙 전기라는 성격
'손양원 목사' 쪽에 따르면 고신대학교 이상규 교수는 논문에서, 손양원에 관한 글들이 성인의 전기를 쓰는 방식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사실을 따져 밝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이 책의 이름을 직접 든 평가는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 그 논문을 다시 열어 보지는 못했다.
이만열 교수는 같은 학술 모임에서 한국 교회가 순교를 제대로 평가하기보다 '순교자 만들기'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 여수 지역에서 이념의 갈등이 심했다면 두 형제가 그 갈등과 아무 상관이 없었는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 개신교의 순교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뉴스앤조이).
한 독자는 손동희의 책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를 간추린 글에서, 딸 손동희가 자기 책을 낸 까닭을 이렇게 밝혔다고 적었다. 안용준 목사의 『사랑의 원자탄』이 오래전에 나왔으나 자료가 모자라고 사실이 부분적으로 맞지 않는 점이 있어 아쉬웠다는 것이다. 손동희의 책에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지은이는 두 아들이 죽던 자리에 없었다. 책이 전하는 형제의 마지막 말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의 증언에 기댄 것으로 보인다. 1965년 기사도 '목격자의 증언'이라고 적는다. 누구의 증언인지, 책이 그 이름을 밝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두 아들의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책과 서점의 책 소개는 두 아들의 죽음을 순교로 적는다. 애양원 교인들이 세운 두 형제의 묘비도 그들이 스데반처럼 전도하다 순교했다고 적는다(뉴스앤조이).
국사편찬위원회의 김득중은 여순사건 공동 수업 자료집에서 다르게 적었다. 두 형제는 기독교 신자이면서 우익 학생 단체에서 활동한 반공 의식이 강한 청년이었고, 다른 우익 청년들과 함께 봉기군에 맞서다 붙잡혀 총살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죽음에는 종교적인 까닭만이 아니고 좌익과 우익의 정치적 싸움이라는 성격도 있었으며, 손양원 목사가 가담자를 양아들로 삼으면서 정치적인 뜻은 옅어지고 '순교'라는 뜻이 짙어졌다고 본다(뉴스앤조이가 인용).
디지털여수문화대전의 한 글은 더 나아가 두 형제의 죽음을 이념에 희생된 정치적 죽음이라고 본다. 박용규 교수는 두 형제가 평소 반공주의를 내세운 것을 좌익 학생들이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적으면서도 그 죽음을 순교라고 부른다.
'손양원 목사' 쪽은 두 서술이 서로를 다 지우지 않는다고 정리했다. 믿음 때문에 미움을 산 것과 좌우의 싸움 한가운데 있었던 것은 그때 함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 쪽도 그 정리를 따른다.
안재선에 관한 서술
책 계통의 서술은 안재선을 두 아들을 죽인 사람으로 그린다. 1965년 기사는 그를 '살해범'이라고 부르고, 서점의 책 소개는 '아들을 죽인 원수'라고 적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살해에 가담했던'이라고 적는다. 여수의 한 목사는 2013년 학술 모임에서, 안재선이 총살 현장에 있었으나 직접 총을 쏘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뉴스앤조이).
책에 그의 이름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는 책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1965년 기사에 실린 지은이의 말로는 안재선이 이름을 쓰라고 했다고 한다. 나무위키의 '손양원' 문서는 책에 따라 그의 이름이 안재선으로도, 강철민으로도 적혀 있다고 하나 어느 책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그 뒤의 삶에 대해서도 자료가 갈린다. 1965년 기사는 그가 그때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적었다. 디지털여수문화대전의 글은 그가 성경학교를 마친 뒤 잠시 전도사로 있었다고 하면서, 아들 안경선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전한다. 주위의 눈총 때문에 목회자의 길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았다는 것이다. 한 목사의 글(코람데오닷컴, 2024년)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신학교에 가라고 했다고 적는다.
구명의 경위도 책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손양원 목사' 쪽은 다른 자료들이 전하는 세 갈래(손양원이 직접 계엄 사령관을 찾아갔다, 딸을 시켜 탄원서를 보냈다, 나덕환 목사를 통해 구명했다)를 정리해 두었다. 박용규 교수가 옮긴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의 기록도 손 목사가 친구인 목사를 군 사령관에게 보냈다고 적는다.
책 계통의 서술과 다른 기록
대목
책과 책 소개, 책을 따른 글
다른 기록과 연구자
두 아들의 죽음
끝까지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다 죽은 순교
우익 학생 단체에서 활동하다 봉기군에 맞서 붙잡혀 총살됨. 종교적 까닭과 정치적 싸움의 성격이 함께 있었다고 봄(김득중)
안재선이 한 일
두 아들을 죽인 사람
살해에 가담함(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현장에 있었으나 직접 쏘았는지는 알 수 없음(여수의 한 목사)
안재선의 그 뒤
독실한 신앙생활을 함(1965년 기사에 실린 지은이의 말)
아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았음(디지털여수문화대전)
옥살이의 길이
6년(속편의 장 제목, 1965년 기사)
1940년 9월 25일부터 1945년 8월 17일까지, 다섯 해가 조금 못 됨('손양원 목사' 쪽)
책이 처음 나온 해
1949년(여러 글)
1950년 발간(이만열). 1949년 전편과 1952년 속편(예술공간 돈키호테)
설교와 이 책
김진영 담임목사는 2022년 10월 2일 주일설교 "압살롬의 분노"(사무엘하 13장 23~33절)에서 손양원 목사 이야기를 하셨다. 누이의 일로 품은 분노를 풀지 못하고 형을 죽인 압살롬과 견주어, 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원수를 용서한 사람으로 손양원 목사를 드신 것이다.
이 책은 그 대목에서 한 번 나온다. 목사님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을 읽은 분도, 영화를 본 분도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책을 읽으라고 권하시거나 책의 문장을 인용하신 것은 아니다. 지은이의 이름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뒤로 설교에서 '사랑의 원자탄'은 영화의 이름으로 두 번 더 나온다.
설교에 나온 내용. 목사님은 화면에 손양원 목사와 두 아들 동인, 동신의 사진을 띄우셨다. 두 아들이 1948년에 죽임당했고, 손 목사가 아들들을 죽인 안재선이라는 학생을 용서하여 양자로 삼았으며, 6·25 때 순교할 때까지 그와 매일 함께 식사하고 함께 지내며 끝까지 사랑했다고 하셨다. 이어서 손 목사가 두 아들의 장례 때 드린 아홉 가지 감사를 회중과 함께 화면을 보며 하나씩 읽으셨다. 목사님은 일곱째 감사(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것)를 다시 보라고 하시고, 그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하셨다. 영화의 한 장면도 드셨다. 손 목사가 군 책임자의 사무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 학생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자 장교가 사형을 거두는 장면이다.
책에 대한 언급은 한 번뿐이다. 설교노트에 적힌 것은 이 책을 읽은 분도 있을 것이라는 말씀 하나다. 이 쪽은 그 언급을 계기로 책을 정리한 것이며, 목사님이 이 책을 추천하셨다고 적지 않는다.
아홉 가지 감사는 이 책에 실려 있다. 책을 읽은 한 독자가 74쪽의 글로 첫째부터 여섯째까지를 옮겨 적었다(독자의 독서 기록). 일곱째부터 아홉째까지가 책에 어떤 글귀로 실려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설교의 일곱째 감사는 박용규 교수가 옮긴 글귀, 그리고 '손양원 목사' 쪽이 애양원교회 누리집에서 옮긴 글귀와 뜻이 같다(박용규 교수의 글).
글귀는 전하는 곳마다 조금씩 다르다. 설교노트의 셋째 감사는 "가장 귀여운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고, 독자가 책에서 옮긴 글귀는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 차자"다. 설교노트의 첫째는 "순교의 자식을 나게 하시니"이고 책에서 옮긴 글귀는 "순교의 자식을 낳게 하셨으니"다. 설교노트는 이 대목이 화면을 보며 읽은 것을 자동 자막으로 옮긴 것이어서 번호가 뒤섞여 들렸고, 둘째 감사 뒤의 한 문장은 화면의 글인지 목사님이 덧붙이신 말씀인지 가리기 어렵다고 적어 두었다.
두 아들의 이름(동인, 동신)과 원수를 양아들로 삼았다는 것은 책과 맞는다. 서점의 책 소개가 그대로 적고 있다(예스24). 여섯째 감사의 '미국에 가려고 준비하던 아들'도 책에서 옮긴 글귀에 있다.
"두 아들을 총으로 죽인" 학생이라는 말씀은 책 계통의 서술과 같고, 다른 자료는 조금 다르게 적는다. 백과사전은 '살해에 가담했던'이라고 적고, 직접 쏘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읽혀 온 길' 탭과 '손양원 목사' 쪽에 적었다.
"순교하실 때까지 매일 함께 식사하고 함께 지냈다"는 말씀은 확인하지 못했다. 책의 해당 대목을 보지 못했다. 다른 기록은 손양원 목사가 안재선을 성경학교에 보냈다고 전한다. 박용규 교수는 고려성경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고 적고, 1965년 국민보 기사는 지은이가 책을 쓸 때 그가 고려고등성경학교에 다니고 있었다고 적는다. 김명혁 목사는 책이 손 목사가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양아들로 삼았다고 전한다고 적었다. 그러므로 한집에서 지낸 때가 있었다는 것은 책이 전하는 내용으로 보이나, 순교할 때까지 날마다 함께 식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딸들이 화를 내며 식탁에서 나갔다는 말씀도 책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설교노트도 함께 지낸 기간 같은 세부는 전기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해진다고 적어 두었다.
영화의 구명 장면은 영화의 것이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의 줄거리에는 이 장면이 따로 적혀 있지 않아, 영화에 그 장면이 있는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다. 영화는 책에 없는 인물과 이야기를 넣은 대목이 있다. 실제 구명의 경위는 자료에 따라 세 갈래로 전하며 책이 어떻게 적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제목의 뜻. 목사님은 죄가 기승을 부리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 성령님이 주시는 용서의 마음이 원자탄처럼 터진 것이어서 영화 제목이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풀이하셨다. 한 서평이 전하는 지은이의 풀이는, 부수는 쪽의 놀라운 일이 원자탄이라면 세우는 쪽의 놀라운 일은 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목사님의 풀이는 목사님의 말씀으로 두고 책의 내용으로 옮기지 않았다.
사건의 이름. 설교에서는 '여순 반란 사건'이라고 하셨다. 1965년 기사와 영화의 줄거리 자료도 '반란 사건'이라는 그때의 이름을 쓴다. 책이 어떤 이름을 쓰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지금 법률이 쓰는 이름은 '여수·순천 10·19 사건'이며, 설교노트의 참고자료도 그렇게 밝혀 두었다.
설교노트의 참고자료. 설교노트는 이 책을 '안용준 목사가 쓴 손양원 목사 전기(1949년 첫 출간)'라고 적고 같은 제목의 영화가 1977년에 나왔다고 적었다. 영화의 해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와 맞는다. 책이 처음 나온 해는 1949년으로 적은 자료가 여럿이나 1950년으로 말한 연구자도 있어, 이 쪽에는 둘을 함께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