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목사 안수 반대 논증을 세 기둥으로 세워 보고, 각 기둥이 얼마나 무게를 견디는지 따져 본 글
조사 2026-09-19 · 정리 2026-10-10 · 성경 인용은 개역개정
여성 목사 안수를 반대하는 쪽의 논증을, 목사직 하나에 집중해 정리한 글입니다. 반대 논증을 그 논자들이 세우는 방식 그대로 세워 본 뒤, 각 논거가 실제로 얼마나 무게를 견디는지 표시했습니다. 논쟁 중인 지점을 합의된 것처럼 적지 않았습니다.
반대 논증은 세 문장으로 압축된다.
이 논증이 성립하려면 세 문장이 모두 참이어야 한다. 하나라도 무너지면 결론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논쟁은 언제나 이 세 지점에서 벌어진다.
장로교 전통에서 목사는 세 가지를 한다.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집행하고, 교회를 다스린다. 장로회 정치에서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로, 치리 장로와 함께 당회를 구성한다. 즉 목사직은 치리직이다.
고신 헌법이 이 구조를 그대로 담고 있다.
강도사는 설교하되 다스리지 않고, 목사는 설교하며 다스린다. 조문이 둘을 정확히 갈라 놓았다.
이 정의를 받아들이면 문제는 "여자가 설교해도 되는가"가 아니게 된다. 설교는 강도사도 하고 전도사도 한다. 진짜 물음은 이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포함한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을 가질 수 있는가.
반대 측이 갈라디아서 3:28("남자나 여자나… 하나")을 논박할 때 쓰는 논리가 여기서 나온다. 그 본문은 구원에서의 동등성을 말하지 직분 질서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론과 직분론은 다른 범주라는 주장이다.
강하다. 목사를 치리직으로 보는 것은 장로교 전통의 표준적 이해이며, 찬성 측도 대체로 부정하지 않는다. 다툼은 다음 기둥에서 시작된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이 네 절이 반대 논증의 심장이다. 구조를 뜯어보면 이렇다.
| 요소 | 헬라어 | 쟁점 |
|---|---|---|
|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 οὐκ ἐπιτρέπω (현재 능동 직설법 1인칭) | "나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현재형이다. 영구 규범인가, 바울이 그 상황에서 취한 조치인가 |
| "가르치는 것" | διδάσκειν | 모든 가르침인가, 권위 있는 공적 교리 교육인가 |
| "주관하는 것" | αὐθεντεῖν | 신약에 단 한 번 나오는 단어. "권위를 행사하다"인가 "권위를 참칭하다·전횡하다"인가 |
| "이는" | γάρ (이유 접속사) | 금지의 근거를 대는 절. 여기가 결정적이다 |
13절의 "이는(γάρ)"은 앞 금지의 이유를 댄다. 그리고 바울이 댄 이유는 에베소 교회의 사정이 아니라 창세기의 창조 기사다 —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반대 측 논증의 핵심이 여기 있다.
금지의 근거가 문화라면, 문화가 바뀔 때 금지도 풀린다.
금지의 근거가 창조라면, 문화가 바뀌어도 금지는 남는다.
바울이 댄 근거는 창조다. 그러므로 이 금지는 초문화적이다.
이것이 단순한 본문 인용이 아니라 본문 자체가 문화적 독법을 차단한다는 형태의 논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신약학자 토머스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가 이 노선의 대표 논자로 인용된다.
고린도전서 14:34-35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σιγάτωσαν)… 오히려 복종할 것이요"
같은 서신 11:5에서 바울은 여자가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전제하고 말한다. 그래서 34절의 "잠잠"이 전면 침묵이 아니라 특정 상황(예언 판별? 질문? 회중 심의?)을 가리킨다는 읽기가 반대 측 안에서도 나온다. 이 본문은 반대 논증에서 보조 역할에 그친다.
디모데전서 3:2 · 디도서 1:6 — 감독·장로의 자격을 "한 아내의 남편"(μιᾶς γυναικὸς ἄνδρα, 직역하면 "한 여자의 남자")으로 규정한다.
반대 측은 이것을 직분자가 남성임을 전제한 표현으로 읽는다. 찬성 측은 당시 직분자가 실제로 남성이었던 현실을 반영한 관용구이며 요구하는 바는 "성적 정절"이지 성별이 아니라고 읽는다. 이 논거는 단독으로는 결정적이지 않다. 같은 논법을 밀면 미혼자와 무자녀자도 배제되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1:3 —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κεφαλή(머리)를 "권위"로 읽느냐 "근원"으로 읽느냐가 수십 년째 논쟁 중이다. 어느 쪽으로 읽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사도의 선택 —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모두 남자로 세우셨다.
반대 측은 이를 창조 질서의 확인으로 본다. 찬성 측은 열둘이 모두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그 선택에서 곧바로 규범을 끌어내면 이방인 목사도 불가능해진다고 반박한다.
본문의 수는 많지만 무게는 고르지 않다. 실질적으로 반대 논증을 지탱하는 것은 디모데전서 2:12-13 하나다. 나머지는 그 본문의 결론을 보강하는 역할이며, 각각 단독으로는 결정적이지 않다.
그래서 이 논쟁은 성경 구절 개수 싸움이 아니다. 디모데전서 2:13의 γάρ를 어떻게 읽느냐 하나에 거의 전부가 걸려 있다.
반대 논증이 반드시 방어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그건 여성 차별 아닌가."
이에 대한 응답이 상호보완론(complementarianism) 이다.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존 파이퍼(John Piper)가 대표 논자로 인용된다.
그러므로 여성 안수 반대는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안수 직분을 성경이 정한 질서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라는 논지다.
두 가지를 정직하게 짚어야 한다.
첫째, 삼위일체 유비는 위험한 도구다. "성자가 성부께 순종하시되 본질에서 열등하지 않으시듯"이라는 유비가 자주 동원되는데, 성자의 영원한 기능적 종속을 주장하는 것은 보수 진영 안에서도 종속론 혐의로 비판받아 왔다. 이 유비는 반대 논증의 필수 요소가 아니며, 빼도 논증은 선다.
둘째, 적용 범위가 고르지 않다. 고신 헌법은 집사도 남자로 한정한다(제76조). 그런데 장로교 전통에서 집사는 치리직이 아니다. 사도행전 6장의 일곱 집사 선출이 남자였다는 점을 들 수는 있으나, "다스림의 권한" 논거로는 집사의 성별 제한을 설명할 수 없다. 논증과 제도 사이에 틈이 있다.
| 찬성 측 | 반대 측 재반론 | 평가 |
|---|---|---|
| 갈 3:28 남자나 여자나 하나 | 구원의 동등성이지 직분 질서가 아니다 | 재반론이 본문 문맥에 부합한다. 이 논거만으로 안수를 도출하기는 어렵다 |
| 문화적 상황론 — 에베소의 거짓 교사·여성의 낮은 교육 수준이 배경이다 | 바울이 든 이유는 문화가 아니라 창조 기사다(2:13) | 여기가 진짜 전선이다. 아래 5번 항목에서 따로 다룬다 |
| αὐθεντεῖν 재해석 — "권위를 행사하다"가 아니라 "전횡하다·찬탈하다"이며, 금지 대상은 여성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 태도다 | 신약 유일 용례라 문맥으로 정할 수밖에 없는데, 13절이 창조를 근거로 드는 이상 태도 문제로 좁힐 수 없다 | 양쪽 다 결정적 증거가 없다. 원어 하나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 |
| 여성 사역자 실례 — 브리스길라(행 18:26), 뵈뵈(롬 16:1, διάκονος), 유니아(롬 16:7, "사도들 중에 유명히 여김을 받고") | 사역과 안수 직분은 다르다. 브리스길라는 개인적으로 가르쳤고, 뵈뵈의 διάκονος는 직분명인지 불확실하며, 유니아가 "사도들 사이에서 유명한"인지 "사도들 중 하나로 유명한"인지 번역이 갈린다 | 재반론에 일리가 있으나, 성경이 여성의 실질적 사역을 전제한다는 사실 자체는 남는다 |
| 은사론 — 성령의 은사는 성별로 나뉘지 않는다 | 은사가 있다는 것과 그 직분에 세워지는 것은 다른 범주다 | 재반론이 성립한다. 은사만으로 직분이 정해진다면 안수 절차 자체가 불필요하다 |
| 실천 논거 — 여성 사역자가 실제로 교회를 떠받치는데 제도만 막는다 | 현실의 필요가 성경 해석을 바꿀 근거는 되지 못한다 | 재반론이 원칙적으로 옳다. 다만 이 물음은 제도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므로 따로 답해야 한다 |
표를 다 읽고 나면 전선이 하나로 모인다.
바울이 창조 기사를 근거로 든 명령은, 시대를 넘어 구속력을 갖는가.
반대 측: 창조는 타락 이전이고 문화 이전이다. 바울이 굳이 창조를 든 것은 이 명령이 문화에 매이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서다. 이것을 문화적 지침으로 돌리면, 성경의 어떤 명령이 시대적이고 어떤 것이 영구적인지 가리는 기준을 사람이 쥐게 된다. 그 기준을 쥐는 순간 성경의 권위는 해석자에게 넘어간다.
찬성 측: 바울이 창조를 인용했다고 그 결론이 초문화적이 되지는 않는다.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바울은 같은 창조 논증으로 머리 가리개를 요구했는데, 오늘 그것을 지키는 교회는 거의 없다. 창조를 근거로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영구 규범이 확정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이 반증은 반대 측이 반드시 답해야 하는 대목이다. 통상적인 응답은 "머리 가리개는 문화적 표지이고 남녀 질서는 그 표지가 가리키는 실체이며, 바울이 폐기한 것은 표지이지 실체가 아니다"이다. 논리적으로 가능한 구분이지만, 무엇이 표지이고 무엇이 실체인지 가리는 기준을 다시 제시해야 한다. 그 기준을 세우는 순간, 반대 측이 찬성 측에게 제기했던 바로 그 문제("누가 가리는가")를 스스로 떠안는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 논쟁은 성경 본문의 개수나 원어 지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해석 원리의 문제이고, 그래서 수십 년째 평행선이다.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규범으로는 확정돼 있다. 고신 헌법 제40조는 목사를 "남자 세례교인"으로 규정한다. 제97조는 치리회를 목사와 장로로 조직한다고 규정한다. 관행이 아니라 성문 규정이다.
그런데 총회가 채택한 문서에서 위 논증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번 조사 범위에서, 딤전 2:11-15·고전 14:34-35·창조 질서·머리됨을 근거로 든 문서는 부결된 연구문(2016 권도사 건)과 개인의 글이었다. 2015년 총회가 채택한 신학위원회 보고서는 권사 안수를 다루며 전혀 다른 논리(직분이 성경에서 유래했는가)를 썼고, 창조 질서를 인용하지 않았다. 여성 목사 안수를 정면으로 다룬 고신 공식 연구보고서는 존재 자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 제72회(2022)에서 연구 요청이 기각됐기 때문이다.
또 하나. 고신 신학대학원(M.Div)은 여성에게 열려 있다. 그런데 졸업해도 강도사가 될 수 없다고 알려져 있고, 강도사 조문(제89조 1항)에는 성별 문구가 없다. 그 배제의 조문상 근거를 찾지 못했다.
이 세 가지를 합치면 이렇게 된다. 고신에서 여성 목사 안수 거부는 헌법 조문으로 확정돼 있고, 절차적으로 논의가 차단돼 있으며, 그 사이를 메우는 공식 신학 문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것은 고신이 신학 없이 이 입장을 유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개혁주의 전통 안에 축적된 논증이 있고 구성원 다수가 그것을 공유한다. 다만 "고신 총회의 공식 논증"으로 인용할 문서가 없다는 사실은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논증을 세워 본 결과를 정리하면 이렇다.
견고한 부분
취약한 부분
본 보고서의 판단 — 이 논증은 성립 가능한 논증이며 개혁주의 해석 전통 안에서 일관되게 서 있다. 그러나 반대 측이 흔히 주장하는 만큼 "성경이 명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논증의 하중이 한 본문의 한 접속사에 집중돼 있고, 정면 반증(고전 11장)에 대한 응답이 추가 전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찬성 측 논거들도 대부분 재반론 앞에서 약해진다. 양쪽 다 상대를 논파하지 못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자료에 충실한 평가다.
이 판단은 본 보고서의 해석이며, 어느 교단의 입장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