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수 (N. H. Gootjes)
해방파가 보낸 교수 선교사. 1980년 2월 한국에 와서 1989년까지 아홉 해 동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서론, 신론)과 헬라어·라틴어를 가르쳤습니다. '고재수'라는 이름은 이근삼 교수가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1989년 캐나다 개혁교회의 신학교로 옮겼고 2023년 8월 20일 캐나다에서 7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신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기념 신학 강좌가 열립니다.
고신이 외국 교회와 맺은 첫 공식 관계인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파)와의 자매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어떻게 서로 알게 되었고, 무엇을 주고받았으며, 2017년 뒤로 어떻게 흔들렸는지를 교단지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에서 확인되는 만큼 옮겼습니다.
고신이 외국 교회와 맺은 첫 공식 관계는 네덜란드의 한 개혁교회와 맺은 자매 관계였습니다. 이 관계는 50년 넘게 이어지며 신학교 건물, 교수, 유학생을 통해 고신의 신학에 깊은 자국을 남겼고, 2017년 그 교회가 여성에게 모든 직분을 열면서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 글은 그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고, 무엇을 주고받았으며,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를 적습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파)는 1967년 11월 총회에서 고신과 자매 관계를 맺기로 결정했고, 1980년부터 교수 두 사람을 고려신학대학원에 보냈으며, 2017년 6월 여성에게 목사·장로·집사 직분을 열었습니다. 고신은 2018년 제68회 총회에서 그 결정을 다시 생각해 달라고 권면하기로 했습니다. 교단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 교단 안 매체가 같게 적습니다. 교단지 학술
| 시기 | 일어난 일 | 성격 |
|---|---|---|
| 1950년대 | 고신 사람들이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으로 유학. 해방파 주간지가 한국 교회를 소개함 | 개인의 유학, 서로 알아 가는 때 |
| 1965–1967 | 고신 총회의 우호 결의와 해방파 총회의 자매 결연 결정 | 교회와 교회의 공식 관계 |
| 1967–1985 | 신학교 건축 헌금, 운영비 보조, 유학생 후원, 교수 방문 | 받는 관계 |
| 1980–1989 | 고재수, 박도호 두 교수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침 | 신학의 전수 |
| 1982–2000년대 | 국제개혁교회협의회(ICRC)에 함께 참여. 1997년 서울 회의를 고신이 주관 | 함께 서는 관계 |
| 2017–현재 | 해방파의 여성 직분 결정, ICRC 회원권 정지, 고신의 권면과 관계 조정 | 흔들리는 관계 |
"네덜란드 개혁교회"라고 하면 한 교단처럼 들리지만, 고신과 관계된 교회는 둘입니다. 이 둘을 가르지 않으면 이야기가 엉킵니다.
| 갈래 | 어떤 교회인가 | 신학교 | 고신과의 관계 |
|---|---|---|---|
| 총회파 개혁교회 | 1892년에 두 흐름이 합쳐 생긴 화란개혁교회의 본줄기.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교회 | 암스테르담 자유대학 | 공식 관계는 없음. 박윤선(1953–54), 이근삼, 손봉호(1965) 등 개인이 자유대학에서 공부함 |
| 해방파 (31조파, 자유 개혁교회) | 1944년 스킬더 교수의 해임을 계기로 본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교회 | 캄펀 신학대학 | 1967년부터 자매 관계. 건축 헌금, 교수 파송, 유학생 교육. 이 글의 주인공 |
한국어 자료는 해방파를 "화란개혁교회(해방)", "31조파", "자유 개혁교회" 등 여러 이름으로 부릅니다. 모두 같은 교회입니다. 이 글에서는 "해방파"로 통일합니다. 2000년에 고신과 자매 관계를 맺은 네덜란드기독개혁교회(신학교는 아펄도른)는 또 다른 교단입니다.
이때 해방파는 두 가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하나는 두 교회의 신앙고백과 교회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고신은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를 쓰는 장로교회이고 해방파는 대륙의 개혁교회 전통에 서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고신이 196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개혁교회 세계 대회(REC)에 회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회를 총회파가 이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해방파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해방파가 갈라선 총회파 쪽 모임과는 거리를 둔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정리자의 해석입니다. 교단지
자매 관계는 몇 년에 맺어졌는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2018)와 교단 70주년 기념 글(2023)은 1967년으로 적습니다. 2020년 해방파 총회를 다녀온 사절단의 보고서는 "1969년 자매관계를 맺은 이후"라고 적습니다. 1967년은 해방파 총회가 결정한 해이므로, 두 교회가 절차를 마친 해가 다를 가능성이 있으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글은 1967년을 따릅니다. 학술 교단지
해방파가 보낸 교수 선교사. 1980년 2월 한국에 와서 1989년까지 아홉 해 동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서론, 신론)과 헬라어·라틴어를 가르쳤습니다. '고재수'라는 이름은 이근삼 교수가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1989년 캐나다 개혁교회의 신학교로 옮겼고 2023년 8월 20일 캐나다에서 7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신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기념 신학 강좌가 열립니다.
고재수와 같은 해인 1980년에 함께 파송되어 여덟 해 동안 가르쳤습니다.
두 교수에 관한 내용은 교단 안 매체(개혁정론)의 글을 직접 열지 못하고 검색 결과의 요약으로 확인했습니다. 연도와 과목은 여러 글의 요약이 같게 적습니다. 두 사람이 고신의 설교와 교리 교육에 끼친 영향은 자주 이야기되지만, 이번에 글로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았습니다.
| 때 | 일어난 일 |
|---|---|
| 2014 | 해방파 총회가 여성 직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논의의 길은 열어 둠 |
| 2017.04.07 | 캄펀에서 공부한 유해무 교수가 고신을 대표해 해방파 메펄 총회에서 연설함. 받은 유산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를 당부하고, "한국의 개혁교회는 아직 여러분을 실질적으로 도울 만큼 강하지 못하다"고 말함 |
| 2017.06.15–16 | 메펄 총회가 여성에게 집사·장로직(찬성 23, 반대 9)과 목사직(찬성 21, 반대 10, 기권 1)을 열기로 결정함 |
| 2017.07.17 | ICRC가 해방파의 회원권을 정지함(찬성 25, 반대 4, 기권 2). 미국 정통장로교회가 제안함 |
| 2017.09 | 고신 제67회 총회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 1년 동안 대책을 연구하게 함 |
| 2018.09 | 고신 제68회 총회가 교수회 보고서를 받음. 해방파에 결정을 다시 생각하도록 권면하고, 2021년 ICRC 회의 때까지 지켜보며, 다른 자매 교단들과 협의하기로 함 |
| 2020.01 | 김재윤 교수와 유해신 목사가 사절로 해방파 총회를 방문함. 해방파는 2020년 총회에서 여성 직분을 최종 확정함 |
| 2021.09 | 고신 제71회 총회가 자매 관계를 한 단계 낮은 우호 관계로 바꾸는 헌법 개정을 청원하기로 함 |
| 2022 | ICRC가 해방파의 회원 자격을 끝냈다고 해외 개혁교회 쪽 글은 전함(검색 요약으로 확인) |
위 표는 교수회 보고서(2018), 교단지의 사절단 보고서(2020), 교단 70주년 기념 글(2023), 유해무 교수의 연설문으로 확인했습니다. 학술 교단지 언론
바로 끊을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
교수회 보고서 (2018): "현시점에서 화란개혁교회와의 관계를 바로 단절하거나 조정하는 것은 지혜로워 보이지 않는다." ICRC와 걸음을 맞추고, 네덜란드기독개혁교회와 미국·캐나다·호주의 자매 교단과 협의하자고 했습니다. 학술
사절단 보고서 (2020): 해방파에 여성 안수 철회를 요청하고, 철회하지 않으면 2021년 총회에서 자매 관계를 끊는다는 서신을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는 해방파가 청한 공동 포럼도 열지 않기로 했는데, 여성 안수 금지가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이어서 토론할 일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절단은 해방파의 해외 자매 교회 54곳 가운데 13곳이 이미 관계를 끊거나 미루거나 낮추었다고 전했습니다. 교단지
해방파 쪽의 설명: 사절단이 전한 바로는, 해방파 총대들은 성경의 권위를 존중해서 내린 결정이며, 문화가 바뀌면 성경 해석도 달라질 수 있고, 여성의 지도력이 복음을 전하는 데 접촉점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해방파의 설명을 해방파 자신의 문서로 읽지는 못했습니다. 교단지
2021년에 청원하기로 한 헌법 개정이 그 뒤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지금 두 교회의 관계가 공식으로 어떤 이름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교류가 끊겼다"고 적은 인터넷 자료가 있으나 총회 결의로 확인되지 않아 싣지 않았습니다. 해방파가 2023년 다른 교단과 합쳐 새 교단이 되었다는 해외 글의 제목을 보았으나 본문은 읽지 못했습니다.
위 세 묶음은 사실을 묶어 본 정리자의 해석입니다.
교수회 보고서는 해방파가 달라진 까닭을 네 가지로 짚었습니다. 스킬더 시대의 열정이 약해진 것, 캄펀 신학교에 새로운 성경 해석이 들어오고 2005년부터 정부의 재정 보조를 받게 된 것, 오후 예배와 교리문답 설교가 약해지는 등 교단 전체가 세속화된 것, 그리고 1967년에 갈라졌던 다른 교단과 다시 합치려고 걸림돌을 치운 것입니다. 이것은 고신 쪽의 분석이며 해방파의 자기 이해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학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