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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METHODIST CHURCH · 1884–2026

한국 감리교회사

1885년 아펜젤러의 입국에서 지금까지, 한국 감리교회가 걸어온 길을 네 시기로 나누어 정리했습니다. 감독과 연회와 파송이라는 제도, 웨슬리를 따르는 신학, 장로교와 다른 점을 함께 적었습니다.

정리 2026-10-11 · 범위는 한국 · 교단 누리집과 언론 보도에서 확인되는 만큼 옮김

선교합동분열과 통합성장과 갈등

한눈에 보기

한국 감리교회는 1885년 부활주일에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들어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같은 날 같은 배로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북쪽 감리교회와 남쪽 감리교회가 따로 선교하다가 1930년에 하나로 합쳐 스스로 서는 한국 교회가 되었고, 지금의 이름은 기독교대한감리회입니다. 줄여서 '기감' 또는 '감리회'라고 부릅니다.

이 글은 한국 안의 역사에 한해 정리했습니다. 감리교는 18세기 영국에서 존 웨슬리의 신앙 운동으로 시작되었고(첫 연회 1744년), 미국 감리교회는 1784년에 따로 섰습니다. 한국에 온 것은 이 미국 감리교회입니다.

장로교인이 먼저 알아 둘 세 가지. 첫째, 감리교는 감독이 있는 교회입니다. 교단의 대표를 감독회장, 지역(연회)의 대표를 감독이라 부릅니다. 둘째, 장로교의 노회에 해당하는 것이 '연회'이고, 목사는 원칙상 청빙이 아니라 '파송'을 받습니다. 셋째, 신학에서는 칼뱅의 예정론을 받지 않고, 웨슬리를 따라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거룩해져 가는 성화를 힘주어 말합니다.
한국 감리교회사의 네 시기1884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를 네 시기로 나눈 막대 그림18801900192019401960198020002020① 선교의 시작두 선교부, 학교와 병원② 일제기1930 합동, 일제 말의 변질③ 분열과 통합세 번 갈라지고 세 번 합침④ 지금까지성장, 분쟁, 감소
네 시기는 이 글의 탭과 같습니다. 1930년에 남북 감리회가 합쳐 '기독교조선감리회'가 되었고, 1949년에 '기독교대한감리회'라는 지금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시기한 줄로기억할 해
① 선교의 시작 (1884–1910)미국 북감리회와 남감리회가 따로 들어와 학교와 병원으로 시작함1884 고종의 윤허, 1885 아펜젤러 입국, 1887 벧엘예배당, 1903 원산 부흥, 1907 협성신학교
② 일제기 (1910–1945)3·1운동에 앞장섰고, 두 감리회가 합쳐 자치 교회가 되었으나, 일제 말에 일본 교단에 흡수됨1919 3·1운동, 1930 기독교조선감리회, 1941 교단 개편, 1945 일본기독교조선교단
③ 분열과 통합 (1945–1978)해방 뒤 세 번 갈라졌다가 세 번 다시 합침1946 분열, 1949 통합과 새 이름, 1955 호헌총회, 1959 합동, 1974 분리, 1978 합동총회
④ 지금까지 (1978–현재)크게 자랐고, 신학 재판과 감독회장 선거 분쟁을 겪었으며, 지금은 줄어드는 교세와 씨름함1992 변선환 교수 출교, 2004 첫 4년 전임 감독회장, 2008 선거 분쟁, 2012 세습 금지법, 2025 본부 이전
항목지금의 모습근거
이름기독교대한감리회 (1949년부터)교단 누리집
본부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연수원. 2025년 5월 12일 서울 광화문 감리회관에서 옮김노컷뉴스 2025.05.13
교세약 6,700개 교회, 113만 7천여 명 (2025년 5월 보도가 전한 '지난해 통계')노컷뉴스 2025.05.15
연회13개 (국내 11개, 미주자치연회, 서부선교연회)교단 누리집 「감리회 조직」
감독회장김정석 (2024년 10월 31일 제36회 총회에서 취임, 임기 4년)교단 누리집 약사
신학교감리교신학대학교, 목원대학교, 협성대학교교단 누리집 「교육활동」

교세는 보도에 따라 숫자가 다릅니다. 2016년 보도는 '150만', 2019년 통계는 1,304,856명, 2025년 보도는 113만 7천여 명이며, 한때 160만 명이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공식 통계표는 직접 읽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