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덕만 교수의 강의 「한국 기독교 역사 한 번에 다 보기」(잘잘법 164회)를 정리한 영상 노트입니다. 선교사들이 가져온 복음주의적 영성에서 2000년대의 총체적 영성까지, 지금 한국 교회 안에 함께 있는 일곱 가지 신앙의 결이 언제 어디서 왔는지를 따라갑니다.
영상 42분 28초 · 정리 2026-10-11 · 성경 인용은 개역개정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유튜브 '잘잘법' 164회에서 한국 개신교 130여 년의 역사를 '영성'이라는 낱말 하나로 꿰어 설명한 42분짜리 강의를 정리했습니다. 연대순으로 사건을 늘어놓는 교회사가 아니라, 지금 한국 교회 안에 함께 살아 있는 일곱 가지 신앙의 결이 각각 언제 어디서 왔는지를 짚는 강의입니다.
강사는 영성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풀이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맺는 관계, 그리고 거기서 빚어진 우리의 삶이 영성이며, 그 안에는 신학도, 사람도, 운동도, 사건도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영상 0:00–0:40]
| 흐름 | 강사가 짚은 때 | 한 줄로 | 강사가 든 사람과 사건 |
|---|---|---|---|
| ① 복음주의적 영성 | 1884–1885년부터 처음 30년 | 미국 장로교·감리교 선교사가 가져온 네 가지 선물: 성경, 전도, 성령, 재림 |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매서인, 1907년 평양 사경회, 백만인 구령 운동, 날 연보, 길선주 |
| ② 오순절 영성 | 1920년대 말–1980년대 | 성령 체험이 삶의 변화(성결)에서 은사(방언, 신유)로 옮겨 감 | 이용도, 메리 럼지, 조선오순절교회, 대한수도원, 용문산 기도원, 조용기와 최자실 |
| ③ 토착적 영성 | 1930–1960년대 | 선교사의 영향을 적게 받고 한국의 흙에서 복음을 다시 읽으려 한 사람들 | 이세종, 이현필, 최흥종, 서서평, 유영모, 함석헌 |
| ④ 자본주의적 영성 | 1960–1980년대 | 가난을 벗어나려는 시대에 축복과 긍정의 메시지가 교회를 지배함 | 조용기의 오중복음, 노먼 빈센트 필, 초대형 교회 |
| ⑤ 민중신학적 영성 | 1970년대부터 | 산업화의 그늘에 있던 노동자의 고통을 신학과 목회의 과제로 끌어안음 | 도시산업선교회, 전태일, 민중신학, 민중교회 |
| ⑥ 수도원적 영성 | 1990년대부터 | 성장이 멈추고 치부가 드러난 때, 속도와 규모 대신 침묵과 묵상을 찾음 | 머튼, 나우웬, 키팅, 포스터, 피터슨, 엄두섭, 최일도, 김영봉 |
| ⑦ 총체적 영성 | 2000년대부터 | 개인과 교회 안에 머물던 신앙을 사회와 온 세계로 넓히려는 흐름 | 기독교 세계관, 평신도 신학 |
표의 연대는 강사가 말한 대로 옮겼습니다. 강의 순서는 위 표와 같고, 강사가 끝에서 다시 꼽을 때는 자본주의, 민중신학, 토착의 순서로 말했습니다. 토착적 영성(1930년대부터)이 오순절 운동의 절정(1950년대 말 이후)보다 먼저 시작되는 것처럼, 일곱 흐름은 시간으로 깔끔하게 줄 서 있지 않고 서로 겹칩니다.
미국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처음 30년 동안 한국 교회에 심어 준 신앙의 바탕. 강사는 이것을 성경, 전도, 성령, 재림이라는 네 가지 선물로 묶습니다.
강사는 한국 개신교가 시작된 해를 보통 1884년이나 1885년으로 본다고 말합니다. 1884년은 호러스 알렌이 평신도로 들어온 해이고, 1885년 4월 5일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제물포에 닿은 날입니다. 강사가 여기서 무겁게 보는 것은 날짜보다 사람입니다. 뒤에 영국과 독일의 선교사도 들어왔지만, 첫 삽을 뜬 사람들이 미국의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였다는 점입니다. [영상 0:41–1:17]
교파는 갈라졌고 여러 현상이 들어왔지만, 교파와 지역과 시대를 넘어 한국 교회를 빚은 씨앗은 처음 30년 동안 선교사들이 한 일에서 나왔다고 강사는 봅니다. 그리고 그들이 들고 온 선물 꾸러미를 '복음주의적 영성'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 안에 든 것을 넷으로 꼽습니다. [영상 1:17–1:50]
| 선물 | 강사의 설명 | 강사가 든 근거 |
|---|---|---|
| 성경 | 한국 교회는 교파를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 성경을 신앙의 첫째 근거요 기준이요 권위로 삼는다 |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만주와 일본에서 성경이 먼저 한글로 옮겨졌다. 성경을 팔며 복음을 전한 매서인(성서 판매원)이 있었고 그들 손으로 처음 교회가 서기도 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은 사경회, 곧 성경을 공부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에도 성경을 거듭 고쳐 옮겼다 |
| 전도 |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느 나라 못지않게 무거운 신앙의 과제가 되었다 | 1909년 온 교단이 힘을 모은 백만인 구령 운동. 돈으로 헌금할 수 없던 사람들이 자기의 날(시간)을 바쳐 그날 나가서 전도한 '날 연보'. 강사는 이것이 100년 남짓한 사이에 국민의 20퍼센트 넘는 사람이 신자가 된 바탕이라고 본다 |
| 성령 | 성경을 귀히 여기되 글자와 지식에 머물지 않고 성령의 임재를 몸으로 겪는 체험적 신앙 | 1903년 원산의 기도회, 1907년 평양 대부흥, 그리고 1920·30·50년대에 전국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 한국에서는 신학자보다 부흥 강사나 기도원 원장이 더 큰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고 말할 만큼 체험적 신앙이 강했다 |
| 재림 |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망이 가난과 전쟁과 식민 지배 아래 있던 신자들의 위로가 되었다 | 일제 말 신사참배를 강요당할 때 '다시 오실 왕'을 기다리는 신앙이 강했고, 일제가 성결교, 구세군, 침례교 같은 교단을 해산시켰다. 첫 전국구 부흥사 길선주 목사의 부흥회는 요한계시록 강의였고 그는 「말세학」 강의를 책으로 냈다 |
강사는 평양 사경회를 이렇게 그립니다. 전국에 교회가 서고 있었지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선교사와 목사는 아직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양의 신자들이 평양에서 가장 큰 장대현교회에 모였고, 선교사들이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거기에 성령이 임해 대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영상 2:21–2:58]
강사는 이 네 가지가 한국 교회가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얻은 첫 선물이며 한국 교회 영성의 토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영상 6:30–6:46]
자막에는 "평양 장대원 교회", "말세야 강"처럼 적혀 있습니다. 앞뒤 문맥으로 보아 장대현교회와 길선주의 말세학 강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고쳐 적었습니다. 평양 대부흥과 장대현교회는 평양 대부흥운동의 시작과 끝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국민의 20퍼센트 이상"이라는 수치는 강사가 말한 대로 옮긴 것이며, 통계 자료와 대조하지 않았습니다.
성령 체험의 무게가 삶의 변화(성결)에서 방언과 신유 같은 은사로 옮겨 간 흐름. 한국 안에서 스스로 일어난 갈래와 미국 오순절 운동에서 들어온 갈래가 만났습니다.
강사는 1930년 무렵부터 성령 운동의 무게가 옮겨 갔다고 봅니다. 1907년 대부흥 때의 성령 체험은 죄를 고백하고, 술과 담배를 끊고, 첩을 내보내는 것처럼 삶이 윤리적으로 바뀌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성령 세례가 곧 성결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1930년대부터는 이 전통과 나란히 은사(카리스마)를 강조하는 성령 운동이 강하게 터져 나와 퍼졌고, 강사는 이것을 오순절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영상 6:49–7:31]
1907년부터 통성 기도가 보편화되고 새벽 기도가 퍼졌습니다. 강사는 여기서 여성을 눈여겨봅니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은 교회 안의 역할과 지위가 매우 좁았고 목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배우지 못해 성경을 술술 읽지 못하고 신학을 몰라도,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이 열려 있던 자리가 기도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기도가 깊어지면서 은사를 경험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세워졌습니다. [영상 7:31–8:25]
1920년대 말이 되면 감리교의 이용도 목사, 백남주, 김성도 같은 사람이 기도에 능한 이로 알려지고, 그들이 모이는 자리에 성령의 강한 임재와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로교 쪽에서는 지나친 열광주의, 지나친 신비주의가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강사는 이것을 한국 교회 안에서 오순절 영성이 '자생적으로' 일어난 일로 봅니다. [영상 8:27–9:02]
| 때 | 강사가 말한 일 |
|---|---|
| 1901년 | 미국 캔자스에서 감리교 목사 찰스 파햄이 운영하던 신학교에서 방언이 터짐 |
| 1906년 |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에서 흑인 목사 윌리엄 시무어의 집회에 더 강한 방언과 은사가 나타남. 이 부흥이 1909–1910년까지 이어졌고, 다녀간 사람들이 그 불꽃을 미국과 온 세계로 퍼뜨림. 이 운동을 오순절 운동(Pentecostalism)이라 부름 |
| 1928년 또는 1930년 | 아주사 집회에 참여했던 여성 메리 럼지가 한국에 들어옴. 성령 세례를 받은 증거가 방언이라는 교리를 가르치는 성령 운동을 들여옴 |
| 그 뒤 | 럼지가 허홍, 박성산과 함께 서울 서빙고에 조선오순절교회를 세움 |
| 1945년 앞뒤 | 기도원이 생기기 시작함. 강원도 철원의 대한수도원, 나운몽 장로의 용문산 기도원. 기도하는 가운데 방언, 입신, 성령춤 같은 현상이 나타남 |
| 해방 뒤 | 럼지가 세운 오순절 운동이, 다시 들어온 미군 장교들 가운데 오순절 신자들을 통해 미국의 오순절 교단 하나님의성회와 이어지며 다시 짜임 |
| 1950년대 말 | 그 교단이 세운 신학교의 동기 조용기와 최자실이 서울 대조동에 순복음교회를 세움. 강사는 이것을 정점을 찍은 사건으로 봄 |
강사는 대조동에서 방언을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이 본격적으로 폭발했다고 말합니다. 조용기 목사의 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되어 교인이 70만 명에 이르는, 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기도원 운동은 1980년대까지 성령 운동의 요람이었고, 심령 대부흥회와 부흥 강사들이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그 결과 오순절 교회나 용문산 기도원 출신만이 아니라 교파를 가리지 않고 방언과 성령 세례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영상 11:48–12:39]
강사는 오순절 영성이 복음주의적 영성과 나란히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고 정리합니다. 스스로 일어난 흐름과 미국에서 들어온 흐름, 두 갈래가 만나 한 축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자막의 사람 이름은 많이 깨져 있습니다("찰스 파람", "윌리엄 조세 무어", "메리 럼지 아고", "메릴 엄지", "최저식" 등). 찰스 파햄(Charles Parham),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 메리 럼지(Mary Rumsey), 최자실로 고쳐 적었습니다. "허홍", "박성산", "백남주", "김성도"는 자막에 적힌 소리대로 옮겼으며 한자 이름과 대조하지 못했습니다.
럼지가 들어온 해에 대해 강사 자신이 1928년이라고도 하고 요즘은 1930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 글은 둘 다 적었습니다.
용문산 기도원의 위치를 말하는 대목은 자막이 깨져 알아들을 수 없어 싣지 않았습니다. "70만 명"은 강사가 말한 수치입니다.
선교사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고, 한국에서 활동한 평신도와 목회자가 한국의 토양 안에서 복음을 다시 풀이하고 살아 내려 한 흐름. 주류 교회와 색깔이 달랐던 "한국적 기독교"의 시도입니다.
강사는 1930–1940년대에 또 하나 눈여겨볼 흐름이 생겼다고 말하고 이것을 토착적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선교사의 영향은 가장 적게 받고, 한국에서 활동하던 평신도나 목회자가 강한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거나 한국의 토양 안에서 복음을 다시 풀이하려 한 노력입니다. 강사는 이 운동을 이끈 사람들이 전라도 지역에 많이 모여 있다는 점을 흥미롭게 봅니다. [영상 12:39–13:22]
| 사람 | 강사의 설명 |
|---|---|
| 이세종 | 전라도 화순을 중심으로 활동 |
| 이현필 | 이세종의 제자. 스승과 함께 화순에 한국형 수도원을 처음으로 만듦 |
| 최흥종 |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장로교 목사 |
| 서서평 | 그들과 같은 지역에서 벗으로 함께 활동한 선교사 |
| 유영모 (호 다석) | YMCA를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 종교와 복음을 조화시키려 함. 기독교 신자로 출발하여 불교와 유교의 경전을 성경과 함께 어떻게 읽을지를 묻고 독창적인 사상을 만듦 |
| 함석헌 (호 씨알) | 유영모의 제자. 기독교의 눈으로 한국의 역사를 다시 서술한 책을 썼고, 뒤에 평화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뛰어듦 |
이세종과 이현필의 수도원은 금욕과 성경 묵상과 가난을 강조했습니다. 여수·순천 사건과 6·25를 겪으며 그 지역에 생긴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했고, 광주 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영상 14:13–14:41]
강사는 이들의 모양이 저마다 달랐지만 기존의 주류 교회와 색깔이 조금 달랐다는 점에서 한데 묶어 토착적 영성이라 부르겠다고 말합니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주류 교회와 사뭇 다른 '한국적 기독교'를 찾은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영상 15:13–15:32]
그때에는 이단 논쟁도 있었고 주류 교회의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영성 신학이 중요해지면서 물음이 달라졌습니다. 늘 외국 것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에는 수도원 문화, 묵상의 문화, 복음과 실천이 함께 간 전통이 없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이 물음 앞에서 이세종, 이현필, 유영모, 함석헌, 최흥종, 서서평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한국 교회의 새로운 영적 대안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강사는 전합니다. [영상 15:32–16:07]
강사는 한 곳에서 "강원도 화순"이라고 말하는데, 앞에서는 "전라도 화순"이라고 했습니다. 화순은 전라남도에 있으므로 말이 헛나온 것으로 보고 전라도로 적었습니다.
자막에는 함석헌의 책이 "성서로 본 조선 역사"로 적혀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책 이름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이며 뒤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고쳐 나왔습니다. 이것은 정리자가 덧붙인 것입니다.
자막의 "이사종", "이연필", "최종", "서서이"는 이세종, 이현필, 최흥종, 서서평으로 고쳐 적었습니다. 서서평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엘리자베스 셰핑(Elisabeth Shepping)의 한국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정리자 덧붙임).
오랜 가난 끝에 산업화가 시작된 시대에,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병도 낫고 살림도 나아진다는 축복과 긍정의 메시지가 교파를 넘어 교회를 지배한 흐름.
강사는 먼저 시대를 그립니다. 해방 뒤 냉전 체제에 들어갔고, 1961년 뒤 박정희 정권이 산업화와 근대화를 밀어붙였습니다. '잘 살아 보세', 새마을 운동, 경제 개발이 구호였고 고속도로와 산업 단지가 섰습니다. 그 앞의 시간은 길고 지독한 가난이었습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특히 1931년 만주사변 뒤로 한반도가 전쟁 동원 체제에 들어가 놋그릇까지 바치고 배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보릿고개가 숙명처럼 여겨졌고, 가난은 벗어날 수 없다는 패배주의와 숙명론이 깊이 배어 있었습니다. [영상 16:09–17:17]
이 시대의 분위기가 교회와 맞물렸다고 강사는 말합니다. 나라가 '잘 살아 보세'를 외칠 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대표로 하여 교회에서도 같은 결의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영상 17:17–17:33]
| 강사가 든 것 | 내용 |
|---|---|
| 오중복음 | 하나님의성회는 본래 중생, 성령 세례, 신유, 재림을 믿는데, 조용기 목사가 여기에 '축복'을 더했다. 근거로 든 말씀은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구하는 요한삼서의 구절이며, 영혼이 잘되는 복, 병이 낫는 복, 범사가 잘되는 복이 교리로 들어왔다 |
| 누가 들었나 | 처음 순복음교회는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모인 곳이었다. 성령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으면 병도 고치고 물질로도 나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가, 산업화 시대에 시골에서 올라와 도시 빈민촌을 이룬 가난한 노동자와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에게 설득력 있고 감동적으로 다가갔다 |
| 미국에서 온 바람 | 같은 때 미국에서 교회 성장론, 적극적 사고방식, 긍정의 복음이 유행했다. 「가이드포스트」를 만든 노먼 빈센트 필 목사가 적극적 사고(positive thinking)를 강조했고 이것이 한국에도 들어왔다 |
| 결과 |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폭발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다른 교단에 영향을 주었다. 1960–1980년대 30년 동안 교파를 넘어 한국 교회의 지배적인 메시지가 되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가 그때 사람들에게 가장 큰 희망의 말씀이었을 것이라고 강사는 짐작한다 |
강사는 그 전과 견줍니다. 전에는 수도원의 영성과 청교도의 영성이 커서 청빈, 곧 물질에 대한 탐욕을 이기는 것이 신앙이라고 여겼고, 가난을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삶의 양식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빈곤을 지나 국가가 이끄는 산업화로 넘어가면서 교회의 긍정과 축복의 메시지가 대중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교단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나타났습니다. [영상 19:30–20:06]
강사가 흥미롭게 보는 점은, 그 초대형 교회들이 자기 교단의 전통적인 교파 신학을 가르치는 교회가 아니라 성령과 은사와 물질적 축복을 강조하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나온 논문들 가운데 한국의 초대형 교회는 모두 오순절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있다고 강사는 전합니다. 오순절 영성을 지닌 사람들이 믿음의 눈에 보이는 열매로 물질적 축복과 번영을 강조하게 되면서 한국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강사의 진단입니다. [영상 20:06–20:44]
강사는 두 가지를 함께 말합니다. 그 시절에는 이것이 매우 알맞았고 필요했으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교회의 오랜 가르침이 약해졌고, 잘사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복에서 빠진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은 것은 부작용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자본주의적 영성이라 부를 만한 흐름이 한국 교회에 널리 퍼졌다고 정리합니다. [영상 20:47–21:27]
자막에는 축복의 근거 구절이 "요한 1세"로 적혀 있습니다. 인용한 내용은 요한삼서 1:2(개역개정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이므로 요한삼서로 적었습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빌 4:13, 재물에 관한 두 말씀은 마 6:24와 딤전 6:10입니다. 장절은 정리자가 덧붙였습니다.
"한국의 초대형 교회는 모두 오순절적이었다"는 논문이 누구의 어떤 글인지 강사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사중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은 본래 성결교회의 표어이기도 합니다. 한국 성결교회사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산업화의 그늘에서 혹독하게 일하던 노동자의 고통을 그리스도인이 먼저 알아보고, 그것을 신학의 물음과 목회의 과제로 끌어안은 흐름. 자본주의적 영성과 같은 때에 나타난 정반대의 영성입니다.
강사는 자본주의적 영성이 뿌리내리던 바로 그때 정반대의 영성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먼저 배경입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어디서나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산업화의 초기에는 노동법도 노조도 없고, 가진 사람이 약자에게 지는 도덕적 책임도 충분히 인식되지 않아 모순이 많이 드러났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저임금 노동자들이 매우 나쁜 환경에서 혹독하게 일했고, 건의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쫓겨났습니다. 노동 환경, 휴식, 수당, 최저 임금을 놓고 사용자와 이야기할 길 자체가 없었습니다. 병이 들면 그대로 잘렸습니다. [영상 21:27–22:46]
강사가 그리는 현장은 이렇습니다. 청계천과 동대문에 봉제 공장이 들어섰고, 경공업 중심으로 산업화되면서 1950–1960년대에 영등포, 구로, 부평에 실과 천을 다루는 모직·방직 회사가 많이 생겼습니다. 거기서 일한 사람은 대부분 초등학교를 마치고 올라온 열서너 살의 어린 소녀들이었습니다. 환풍기도 없는 곳에서 하루 열몇 시간씩 재봉틀을 돌렸고, 삼 년이 지나면 거의 다 폐결핵에 걸렸다고 강사는 말합니다. 회사는 치료해 주지 않고 내보냈습니다. [영상 22:55–23:40]
| 단계 | 강사가 말한 일 |
|---|---|
| 도시산업선교회 | 이 문제에 가장 먼저 눈을 돌린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었다. 미국에서 온 감리교·장로교 선교사와 목사들이 인천과 영등포에 도시산업선교를 만들었다. 본래는 운동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 생긴 공단의 여공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만든 단체였다 |
| 사정을 듣다 | 교회에 나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회사 안에 참담한 일이 너무 많았다. 사장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했지만 잘 듣지 않았다 |
| 노동법을 읽다 | 법을 살펴보니 노조를 만들 권리가 나라의 법으로 인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노조를 조직하는 법을 가르치고 단체 협상에 관여하면서 교회가 노동운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
| 탄압 |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로 들어 준 사람도 있었지만, 부당한 간섭과 방해로 여긴 사람들은 이들을 용공 분자로 몰았다. 유신 정권 때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가고 탄압을 받았다 |
| 1970년 전태일 | 청계피복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여 죽었다. 그의 죽음이 알려진 뒤 청계천에서 그의 벗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 전에도 노조는 있었지만 노동자를 대변하기보다 관리하려고 만든 노조였다고 강사는 말한다 |
| 신학자들의 충격 | 이 일이 서울의 감신대, 한신대, 연세대 교수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같은 서울 안에서 우리 딸 같은 아이들이 저렇게 일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무관심했다는 자각이었다. 강도 만난 사람에게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는 물음 앞에 한 무리의 신학자가 응답했다 |
| 민중신학과 민중교회 | 신학자들이 노동 문제를 신학의 문제로 끌어안아 성서학, 조직신학, 교회사에서 물었고 한국적 신학을 만들었다. 이것이 민중신학이다. 그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이 공단 지역에 들어가 교회를 세우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민중교회가 섰다 |
강사는 민중신학도 시들었고 민중교회도 대부분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 산업 사회, 도시화가 낳은 사회 문제를 신학의 과제이자 목회의 주제로 끌어안았던 그 노력은 모양과 형태를 달리하여 지금도 한국 교회의 중요한 과제로 내려오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뜻에서 이것을 민중신학적 영성이라 부를 만하다고 정리합니다. [영상 26:48–27:20]
자막에는 "1970년대 전태이"로 적혀 있습니다. 전태일이 분신한 해는 1970년으로 알려져 있어 그렇게 적었습니다(날짜는 정리자가 따로 대조하지 않았습니다).
"삼 년이면 거의 100퍼센트 폐결핵", "열세 살" 같은 수치와 나이는 강사의 말을 옮긴 것이며 자료와 대조하지 않았습니다. 강사는 그 소녀들이 대부분 전라도에서 올라왔다고 말했는데, 이것도 강사의 말 그대로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에 관한 물음은 눅 10:25–37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가리킵니다(정리자 덧붙임).
교세가 꼭대기에 오른 바로 그때 성장이 멈추고 교회의 치부가 드러나자, 힘과 속도와 규모 대신 침묵과 묵상과 공동체를 찾기 시작한 흐름.
강사는 1990년대를 한국 교회가 눈에 보이는 규모에서 꼭대기에 오른 때로 그립니다. 해방 무렵 인구의 5퍼센트쯤이던 신자가(강사는 자기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197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늘어, 1990년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한국에 있었고 인구의 20–25퍼센트가 개신교인이라고 말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가, 대기업 경영자, 교수, 변호사, 언론인, 의사 같은 여론을 이끄는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가장 많아졌습니다. 대통령을 뽑는 데 영향을 줄 정치적 힘을 가졌고, 교회의 예산은 불교나 가톨릭보다 자릿수가 하나 더 많을 만큼 물질의 바탕이 단단해졌습니다. [영상 27:23–28:38]
강사가 흥미롭게 보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한국 종교계의 꼭대기에 선 바로 그때부터 성장이 멈추었고, 점점 빠르게 줄어드는 일이 벌어졌으며, 2000년대에 들어 더 뚜렷해졌습니다. 한국 사회를 하나님 나라에 가장 가깝게 만들 힘을 손에 쥔 그때에 일어난 일을 강사는 이렇게 꼽습니다. [영상 28:38–29:48]
| 어디서 | 강사가 든 일 |
|---|---|
| 밖에서 |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며 비판하는 안티 기독교 세력이 급증함. 교회를 떠나는 이른바 '가나안 성도'가 급증함. 이단과 사이비가 일어나 교회를 위협함 |
| 안에서 | 교회 세습. 목회자의 성적 추문. 교회의 재산과 권력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으로 이어짐. 시사 고발 프로그램과 뉴스의 단골 소재로 한국 기독교의 치부가 드러남 |
이것을 바깥의 비난과 공격으로만 여긴 사람도 있었지만, 한쪽에서는 다르게 물었다고 강사는 말합니다. 그동안 열심히 성령을 체험하고 성경을 읽고 전도하고 헌신하여 교세를 불렸는데 왜 세상 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모습이 자꾸 드러나는가. 그 까닭이 우리 영성의 왜곡이 아닌가. 지난 30년 동안 한국 교회가 힘(파워)과 속도(스피드)와 규모에 모든 것을 걸어 온 것은 아닌가. 이제는 빨리 가기보다 속도를 늦추고, 많이 갖기보다 덜 갖고, 규모보다 질을, 겉보다 속을 들여다볼 때가 아닌가. [영상 29:48–30:41]
강사는 이것을 4세기에 견줍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교회가 겉으로는 크게 부풀었지만 그것이 안으로는 타락의 전환점이 된다고 여겨, 더 깊이 기도하고 금욕하며 하나님과 하나 되려고 광야로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에도 그처럼 새로운 영성을 찾는 흐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영상 30:41–31:02]
| 순서 | 강사가 든 사람 | 한국 교회에 소개된 것 |
|---|---|---|
| 먼저 가톨릭의 영성가 | 토마스 머튼, 헨리 나우웬, 토마스 키팅 | 그동안 이단이라며 들춰 보지 않던 가톨릭 영성가의 글이 처음으로 개신교인 사이에서 읽힘. 관상 기도와 영적 독서(렉시오 디비나)가 알려짐 |
| 다음으로 개신교의 영성가 | 리처드 포스터, 유진 피터슨 | 개신교 계열 영성가의 책이 소개됨 |
| 그리고 한국의 목회자 | 은성수도원의 엄두섭 목사, 최일도 목사, 김영봉 목사 | 기도, 영성,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퍼짐 |
강사는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두 가지로 짚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이 읽고 외웠느냐에 힘쓰던 데서 밤낮으로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기도에 대해서는, 통성 기도와 방언 기도와 40일 금식 기도를 하지만 기도가 하나님과 나누는 영적 대화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일어나 관상 기도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영상 31:32–32:03]
강사는 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 영성이 여전히 있지만 그것과 대비되어, 침묵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깊이 읽고 참된 뜻의 수도원적 공동체를 이루는 데 무게를 둔 영성이 1990년대부터 소개되기 시작했다고 정리하고, 이것을 수도원적 영성이라 부릅니다. [영상 32:33–32:57]
자막의 "헨리 나우인", "토마스 키딩", "엄두 목사", "플레이션 관상 기도"는 헨리 나우웬, 토마스 키팅, 엄두섭 목사, 관상 기도로 고쳐 적었습니다. "추정 60분"은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프로그램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신자 비율(5퍼센트, 20–25퍼센트)과 예산 비교는 강사가 말한 대로이며 통계와 대조하지 않았습니다. 관상 기도를 개신교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교단과 신학자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주제인데, 이 강의는 그 논쟁을 다루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가 된 교회가, 개인의 구원과 교회 안에 머물던 신앙을 사회 전체와 온 세계로 넓히려는 흐름. 사회 참여와 깊은 영성을 함께 붙들려 합니다.
강사가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것은 2000년대에 벌어진 흐름입니다. 21세기에 들어 한국 기독교는 더는 밖에서 들어온 종교나 소수의 종교가 아니라 숫자에서도, 정치·사회·경제·문화 모든 영역에서도 영향력이 가장 큰 종교가 되었다고 강사는 말합니다. 대통령이 잇달아 그리스도인이었고 장관과 국회의원 다수가 그리스도인이며, 서울 강남 3구의 복음화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고, 여론을 이끄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인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상 33:00–33:45]
그렇게 되면 교회가 자기의 생존이나 종교만의 문제에 머물 수 없게 됩니다. 교회가 가진 사람과 돈과 정치적 힘으로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의 당락에 영향을 주고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막을 수 있으며, 학자를 모아 새로운 이론과 문화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자리에 선 교회가 개인이나 자기 종교만을 위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상 33:45–34:26]
그래서 다시 중요하게 들어온 것이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강사는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학문을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신앙을 자기 학문의 영역에 어떻게 담을지, 정치를 하더라도 기독교의 가치를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개인의 마음이나 교회 담장 안이 아니라 사회 전체, 우주 전체에 미치게 하려는 고민입니다. [영상 34:26–34:55]
| 무엇이 | 전에는 | 달라진 쪽 |
|---|---|---|
| 사람을 보는 눈 | 영혼만 강조 | 영과 육을 함께 강조 |
| 구원 | 개인의 구원 | 개인과 사회의 변화, 그리고 생태에 대한 책임까지 |
| 교회의 구조 | 성직자와 평신도의 차이와 위계를 강조하는 교권 구조 | 평신도와 성직자가 저마다 할 일이 있고 함께 교회를 세운다. 평신도가 할 일이 더 많을 수도 있다 |
| 기도 | 개인 기도 | 개인 기도와 사회를 위한 기도 |
| 사역의 범위 | 교회 성장과 개인의 영적 성숙 | 사회의 변화와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 교회 안과 밖, 국내와 세계를 함께 |
강사는 이 흐름이 공부를 요구한다고 말합니다. 기독교가 정치와 사회에 영향을 끼치던 이른바 크리스텐덤 체제의 나라들, 곧 영국, 네덜란드, 미국, 독일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있었는지를 소개하고, 기독교가 사회 전체에 어떻게 좋은 구실을 할지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니 신학이 시대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고 정치와 경제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저 사회 운동에 그치지 않으려면 깊은 영성이 있어야 하므로 수도원적 영성에 대한 관심도 함께 깊어집니다. [영상 36:11–36:46]
그래서 아주 보수적인 것 같으면서 매우 진보적이고, 사회 참여적이고 행동적인 것 같으면서 깊은 영성을 단호하게 찾는, 이런 것들이 한데 버무려진 영성이 추구되었다고 강사는 말합니다. 이것을 총체적 영성이라 부르며, 이런 운동이 한국 교회 한쪽에서 지난 20년 동안 치열하게 펼쳐져 왔다고 봅니다. [영상 36:46–37:15]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강남 3구의 복음화율, 대학 안의 신자 비율에 관한 말은 모두 강사의 말을 옮긴 것이며 통계와 대조하지 않았습니다.
강사는 이 대목에서 사람이나 단체의 이름을 들지 않았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다듬은 신칼뱅주의 전통과 고신의 관계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와 고신에 일부 정리했습니다(정리자 덧붙임).
강사는 1880년대 후반부터 21세기의 20년까지, 한국 교회 안에서 태어났고 동시에 한국 교회를 이루고 바꾸어 온 영성의 흐름을 일곱으로 나누어 소개했다고 정리합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 교회에는 이것들이 대부분 함께, 저마다의 영역에서 나름의 크기를 지키며 있다고 봅니다. 이런 영성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 교회가 있다는 것이 강사의 생각입니다. [영상 37:15–37:57]
그러면서 과제를 내놓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은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놓칠 수 없는 기독교의 유전자이니 붙잡아야 하고, 어떤 것은 시대가 지나며 쓸모와 값어치가 줄어들고, 어떤 것은 도려내고 버려야 할 것임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이 여러 흐름을 깊이, 정직하게 살피고 분석하여 무엇을 이을지,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고치고 보태어 가지고 갈지를 고민하자는 것입니다. [영상 38:00–38:43]
진행자가 이 역사에서 배울 것을 묻자 강사는 누가복음의 한 장면을 듭니다. 예수께서 회당에서 사역을 시작하시며 이사야서 61장을 읽으신 장면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눌린 자와 갇힌 자가 놓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강사는 여기서 세 가지를 꺼냅니다. [영상 38:43–39:27]
| 붙들 것 | 강사의 설명 |
|---|---|
| 성령의 체험 | 한국 교회가 잃어서는 안 된다. 신앙이 관념이나 제도에 머물지 않으려면 계속 성령의 역사 가운데 서야 하고 그것을 구해야 한다 |
| 바른 복음 |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어떤 복음을 전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
| 가난한 사람 | 그 복음이 향하는 곳은 가난한 사람이다. 물질로 가난한 사람, 정신으로 가난한 사람, 정치적으로 가난한 사람 등 여러 까닭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이 흘러 들어가야 한다 |
강사는 이 세 가지를 잣대로, 지난 100여 년의 영성 가운데 무엇을 모아 '드림팀'으로 다시 짤지, 무엇을 더 보탤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영상 40:28–40:42]
진행자가 기독교 안에도 진보와 보수가 있어 서로 옳다 그르다 하는데 그것은 선 자리가 다른 것이냐고 묻습니다. 강사는 이렇게 답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선 자리에서만 활동할 수 있고, 거기서만 볼 수 있으며, 할 수 있는 영역도 거기까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영성의 흐름은, 내가 있지 못한 자리에서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나를 대신해 해 주는 동지입니다. 적으로 대할 사람이 아니라 내가 빚진 사람,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며, 거꾸로 나도 그들에게 그런 이웃이 됩니다. [영상 40:42–41:27]
그래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과 정죄가 아니라 힘을 모아 선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사는 말합니다. 마지막에 가서 누가 복음에 충실했고 기독교의 유전자를 제대로 지녔는지를 열매로 가리자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너는 하지 마라, 경기에 나오지 마라" 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삶과 사역으로 열매를 맺도록 격려하고, 나도 뒤지지 않도록 내게 주어진 길을 내 방식대로 달려가자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선한 경주를 해야지, 처음부터 서로 경기에 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끌어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로 강의가 끝납니다. [영상 41:27–42:25]
강사는 예수께서 이사야서를 읽으신 회당을 "가버나움 회당"이라고 말한 것으로 들립니다(자막은 "갑보 나온 회당"). 누가복음 4:16–21에서 그 회당은 예수께서 자라나신 곳 나사렛의 회당입니다. 가버나움은 그 뒤 4:31에 나옵니다. 읽으신 말씀은 이사야 61:1–2입니다.
눅 4:18–19(개역개정):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정리자가 기억으로 옮긴 것이니 쓰시기 전에 성경과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선한 경주"는 딤후 4: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이나 히 12:1의 경주 비유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강사는 장절을 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