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INARIES AND THEOLOGICAL FACULTIES · 47 SCHOOLS · 2026
세계 주요 신학교
미국, 유럽, 아시아와 한국의 신학교와 대학 신학부 마흔일곱 곳을 일곱 묶음으로 나누어, 학교마다 기원, 역사, 현황, 관련 교단, 신학 성향, 한국 교회와의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학교가 스스로 밝히는 말과 바깥의 평가를 나누어 적었고, 확인하지 못한 것은 그렇게 표시했습니다.
정리 2026-10-12 · 학교 공식 누리집과 교단 자료를 먼저 보고 실제로 연 자료에 나온 것만 적음 · 인용문은 원문과 낱낱이 대조하지 못함 · 고른 것은 정리자이며 순위가 아님
기원과 역사관련 교단신학 성향한국 교회와의 관계
한눈에
세계의 신학교 마흔일곱 곳을 일곱 묶음으로 나누어, 학교마다 기원, 역사, 현황, 관련 교단, 신학 성향, 한국 교회와의 관계를 적었습니다. 조사한 날은 2026년 10월 12일입니다.
어떻게 골랐나. 읽는 사람이 한국의 장로교(고신) 교인이라는 점을 생각해 장로교·개혁파 학교를 많이 넣었습니다. 견주어 볼 수 있도록 복음주의·침례교 학교, 대학의 신학부, 유럽 대륙의 신학부를 넣었고, 개신교 밖에서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의 학교를 한 곳씩 넣었습니다. 한국의 학교는 여덟 곳입니다. 고른 것은 정리자이며, 학교의 순위를 매긴 것이 아닙니다. 빠진 학교가 많습니다.
읽는 법
실제로 연 자료에 나온 것만 적었습니다. 학교의 공식 누리집과 교단 자료를 먼저 보았고, 인가 기관(ATS), 백과사전, 언론 기사를 더했습니다. 위키백과에서만 본 것은 '(위키백과)'라고 밝혔습니다.
'확인필요' 표시는 검색 결과의 요약에서만 보았거나 다른 자료로 확인하지 못한 내용입니다. 사실로 옮기지 마십시오.
신학 성향은 두 겹으로 적었습니다. 학교가 스스로 밝히는 말(신앙고백, 사명 선언)을 먼저 적고, 바깥의 평가는 누가 한 말인지 밝혔습니다. 바깥의 평가를 찾지 못한 학교가 많고, 그런 학교에는 '보수', '진보' 같은 말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인용문. 영어와 그 밖의 말로 된 인용문은 쪽을 읽어 주는 도구가 돌려준 글자입니다. 원문과 한 글자씩 대조하지 못했으니, 옮겨 쓰실 때는 출처의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숫자. 학생 수는 기준 연도와 출처가 학교마다 다릅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학교는 ATS의 2025년 가을 보고 수치를 주로 썼습니다. 숫자는 해마다 바뀝니다.
눈에 띄는 점
일곱 묶음의 조사 결과에서 정리자가 골라 묶은 것입니다. 근거와 출처는 각 묶음 탭의 '조사하며 알게 된 것'과 학교 칸에 있습니다.
교단과의 묶임이 세 갈래입니다. 한 교단이 세우고 다스리는 학교(커버넌트, 칼빈, 남침례, 위트레흐트, 아펄도른, 에든버러 신학교, 고베개혁파, 캐나다개혁신학교, 고려신학대학원 등), 여러 교단을 섬기는 독립 학교(웨스트민스터, 리폼드, 풀러, 고든콘웰, 리젠트 등), 대학의 한 부분인 신학부(하버드, 예일, 시카고, 튀빙겐, 하이델베르크, 제네바, 바젤, 에든버러 뉴 칼리지, 스텔렌보스 등)입니다.
신앙고백을 내거는 정도가 크게 다릅니다. 미국의 개혁파 신학교들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나 세 일치신조(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를 교리 표준으로 들고, 교수가 서약하는 곳이 여럿입니다. 독일어권과 제네바의 대학 신학부 네 곳, 미국의 대학 신학부 여섯 곳에서는 연 자료에서 교수가 서명하는 신앙고백을 찾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관한 조항의 글귀가 학교마다 다릅니다. 미국 복음주의 학교 일곱 곳의 글귀를 '미국 복음주의·침례교' 탭의 표에 나란히 적었습니다. '틀림이 없다'는 말을 쓰는 곳과 쓰지 않는 곳이 갈립니다.
최근 몇 해 사이에 자리, 이름, 소속이 바뀐 학교가 많습니다.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는 캐나다의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교로 넘어갔습니다. 캄펀의 신학대학은 2022~2023년 위트레흐트로 옮기고 이름이 바뀌었으며, 소속 교단도 2023년에 합쳐졌습니다.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의 신학부는 2025년 4월 다른 학부와 합쳐졌습니다. 에든버러 대학은 목사 후보생 과정(BD, MDiv)을 닫기로 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그레고리오 대학교는 2024년 두 연구소를 품어 한 법인이 되었습니다.
재정의 어려움이 드러난 곳이 있습니다. 미국 복음주의 학교 일곱 곳 가운데 넷(트리니티, 고든콘웰, 사우스웨스턴, 풀러)이 2020년대를 앞뒤로 땅이나 건물을 팔았거나 팔려 했습니다.
학생 수. 독일어권 개신교 신학부는 확인된 곳마다 줄었거나 작습니다. 네덜란드의 새내기 수는 2024년부터 늘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한국은 2026학년도 목회학석사 경쟁률이 여덟 곳 모두 2대 1에 못 미칩니다(한 언론 기사의 분석이며 원자료와 대조하지 못했습니다).
190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는 1901년부터 1959년까지의 역사를 똑같이 자기 학교의 역사로 적습니다. 이 글은 어느 쪽이 옳은지 가리지 않고 각 학교의 말을 '한국' 탭에 나란히 적었습니다.
고신과의 관계가 자료로 확인된 곳. 위트레흐트 신학대학(2026년 협력 기관 목록에 고려신학대학원), 아펄도른 신학대학(교수 개인의 교류), 고베개혁파신학교(2016년 기사: 고신과 선교 협력, 고려신학대학원과 정기 교류), 캐나다개혁교회(2013년 교단 문서: 1992년부터 교회 교류)입니다. 박윤선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관계는 '미국 장로교·개혁파' 탭에 적었습니다.
묶음별 전체 요약
한 열이 한 묶음입니다. 아래 '학교별 요약' 표의 내용을 묶음마다 다시 간추린 것입니다. 묶음 이름을 누르면 그 탭으로 갑니다. 좁은 화면에서는 옆으로 밀어 보십시오.
개혁파 표준 문서를 삼는 곳은 둘(고베, 캐나다개혁). 무어는 39개조, 리젠트는 복음주의
고려신학대학원과 합신은 성경 무오와 웨스트민스터 표준. 한신은 "진보적", 감신과 서울신대는 웨슬리 전통
한국 교회와의 관계
일곱 곳 모두 기록 있음. 한경직, 박윤선, 칼빈의 한국 학생 20%
풀러의 한국어 과정 졸업생 1,600여 명. 고든콘웰과 댈러스는 찾지 못함
듀크와 감신대의 양해 각서(2025년). 시카고는 찾지 못함
위트레흐트와 아펄도른만 확인(고려신학대학원, 총신, 합신)
하이델베르크만 확인(한국인 신학 박사 49명)
고베와 캐나다개혁교회만 확인(둘 다 고신)
(나라 밖 교류) 고려신학대학원과 캄펀, 합신과 웨스트민스터·아펄도른
학교별 요약: 기원, 관련 교단, 신학 성향
각 묶음 탭의 학교 칸을 정리자가 줄여 적은 표입니다. 신학 성향은 학교가 스스로 밝히는 말이고, 바깥의 평가는 '바깥:'으로 따로 적었습니다. 평가를 찾지 못한 학교에는 적지 않았습니다. 따옴표 안의 말은 조사 자료의 인용을 옮긴 것이며, 자세한 내용과 출처는 묶음 이름을 눌러 그 탭의 학교 칸에서 보십시오. 한국 학교의 마지막 칸은 나라 밖 교류입니다.
글의 탭 차례대로 놓았습니다. 나라 밖의 여섯 묶음을 칸으로 놓고, 한국은 맺음 문장과 메모에 적었습니다. 칸의 글은 각 탭의 '조사하며 알게 된 것'에서 옮겼습니다.
학교가 스스로 밝히는 말과 바깥의 평가를 나누어 적고, 확인하지 못한 것은 그렇게 표시했다
이 글이 지킨 원칙
미국 장로교·개혁파프린스턴, 웨스트민스터 등 7곳교리 표준이 세 갈래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만 드는 곳, 세 일치신조를 받는 곳, 둘을 함께 드는 곳이 있다. 1929년의 일을 프린스턴과 웨스트민스터가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미국 복음주의·침례교풀러, 남침례 등 7곳성경 조항의 글귀가 학교마다 다르다. 교단의 공식 소속인 곳과 초교파인 곳이 갈린다. 2020년대에 재정 때문에 땅과 건물을 판 학교가 넷이다.
미국 대학 신학부하버드, 예일 등 6곳세운 교단과 지금의 소속이 같은 곳은 감리교 계열 두 곳뿐이다. 여러 종교를 함께 가르치는 정도가 학교마다 다르다.
네덜란드·영국위트레흐트(옛 캄펀), 에든버러 등 7곳일곱 곳 가운데 다섯 곳이 최근 다섯 해 안에 자리, 이름, 소속이 바뀌었거나 바뀌는 중이다. 1854년 캄펀의 한 신학교에서 세 갈래가 나왔다.
독일어권·가톨릭·정교회튀빙겐, 제네바, 그레고리오 등 6곳네 곳의 대학 신학부는 모두 주립 대학교에 속한다. 목사 후보생 교육은 대학과 교회가 일을 나눈다. 개신교 신학부의 학생 수는 확인된 곳마다 줄었거나 작다.
아시아·오세아니아·아프리카·캐나다무어, 고베개혁파, 스텔렌보스 등 6곳장로교와 개혁파의 표준 문서를 학교의 표준으로 삼는 곳은 여섯 가운데 둘(고베, 캐나다개혁신학교)이다. 이 둘이 고신과의 관계가 자료로 확인된 곳이기도 하다.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는 1901년부터 1959년까지의 역사를 똑같이 자기 학교의 역사로 적는다. 이 글은 어느 쪽이 옳은지 가리지 않고 각 학교의 말을 나란히 적었다. ('한국' 탭)
'확인필요' 표시검색 결과의 요약에서만 보았거나 다른 자료로 확인하지 못한 내용이다. 사실로 옮기지 않는다. 위키백과에서만 본 것은 '(위키백과)'라고 밝혀 두었다.
숫자학생 수는 기준 연도와 출처가 학교마다 다르다. 미국과 캐나다의 학교는 ATS의 2025년 가을 보고 수치를 주로 썼다. 숫자는 해마다 바뀐다.
한국의 여덟 곳고려신학대학원, 총신, 장신, 합신, 한신, 감신, 서울신대, 침신. 2026학년도 입시 숫자는 한 언론 기사가 공시를 분석한 것에서 왔고 원자료와 대조하지 못했다.
옮겨 쓸 때학교의 사정은 빠르게 바뀐다. 옮겨 쓸 때는 각 학교의 공식 누리집을 다시 확인한다.
미국 장로교·개혁파
조사한 날: 2026-10-12
조사 방법: 웹 검색으로 찾은 쪽을 실제로 열어, 그 쪽에 글자로 나온 것만 적었다. 출처 번호는 학교마다 따로 매겼다(각 학교 끝의 "출처").
위키백과에서만 본 것은 "(위키백과)"라고 밝혔다. 열지 못한 쪽은 출처로 쓰지 않았다.
학생 수는 ATS(미국·캐나다 신학교 협의회) 회원 학교 쪽의 2025년 가을 보고 수치를 기본으로 삼았다. "머릿수"는 등록한 사람 수이고, "FTE"는 전일제로 환산한 수다.
학교 이름을 누르면 조사한 내용이 펼쳐집니다. 대괄호 안의 숫자는 그 학교 칸 끝(또는 이 탭 끝)에 있는 출처의 번호입니다.
프린스턴 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1812년 미국 장로교 총회가 세운 첫 신학교. 지금은 미국장로교(PCUSA) 소속 신학교다
곳: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2]
한 줄 소개: 1812년 미국 장로교 총회가 세운 첫 신학교. 지금은 미국장로교(PCUSA) 소속 신학교다 [1][3].
기원:
학교 누리집은 "1812년에 세워졌고, 장로교 총회가 세운 첫 신학교"라고 적는다. 첫 교수는 아치볼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이고 한 해 동안은 혼자였다. 이듬해 새뮤얼 밀러(Samuel Miller)가 둘째 교수로 왔다 [1].
세운 까닭: 학교 누리집은 뉴저지 대학(지금의 프린스턴 대학교)이 신학 전문 교육에 더 많은 힘을 쏟을 수 없어 이 계획을 지지했다고 적는다. 세울 때의 "신학교의 목적"은 "마음의 경건과 탄탄한 학문을 하나로 묶는 것"이었다 [1].
프린스턴 대학교 기록보존소 글은 1810년 장로교 총회가 신학교를 세우기로 했고, 1812년 5월 30일 이사(directors) 31명을 뽑았으며, 6월 2일 알렉산더를 교수로 뽑았고, 8월 12일 알렉산더의 취임과 학생 3명의 등록으로 문을 열었다고 적는다. 같은 글은 대학교와 신학교가 "서로 다른 기관"이며 1811년의 합의 말고는 "조직으로 이어진 적이 없다"고 적는다 [4].
역사:
1812년: 개교 [1][4].
1902~1913년: 프랜시스 랜디 패튼 총장. 1914~1936년: J. 로스 스티븐슨 총장. 학교 누리집은 스티븐슨이 "몇 해의 소란스러운 시기를 지나도록 학교를 이끌었다"고만 적는다 [1].
1929년: 학교 운영 구조가 바뀌었다(아래 "1929년의 일" 참고). 메이천 등 교수 넷이 떠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다 [2][5][6].
1936~1959년: 존 A. 매카이 총장. 학교 누리집은 그가 "교회 일치(에큐메니컬)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적는다 [1].
2018년: 보고서 《프린스턴 신학교와 노예제》를 냄. 학교 누리집은 20가지가 넘는 실천 계획이 뒤따랐다고 적는다 [1]. 위키백과는 2019년 학교가 노예제와의 역사적 관련을 다루는 장학금 등에 2,700만 달러를 쓰기로 발표했다고 적는다 [2].
2021년: 도서관 이름을 첫 흑인 졸업생 시어도어 S. 라이트의 이름으로 바꿈. 2022년 1월 25일: 새뮤얼 밀러가 노예제와 관련되었다는 항의 뒤 밀러 채플의 이름을 바꿈 (위키백과) [2].
2023년 1월: 조너선 리 월튼(Jonathan Lee Walton)이 제8대 총장이 됨 [1]. 위키백과는 그를 첫 흑인 총장이자 첫 비장로교인 총장으로 적는다 [2].
1929년의 일 (양쪽의 설명):
프린스턴 쪽: 학교 공식 역사 쪽에는 1929년, 메이천, 웨스트민스터, 재조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스티븐슨 총장 시기를 "소란스러운 시기"라고만 부른다 [1]. 프린스턴 신학교 도서관 특별자료실은 "메이천 원고 모음"을 가지고 있고, 그 안내문은 "1929년 프린스턴 신학교 재조직에 관한 자료"가 들어 있다고 적으며, 메이천의 경력을 "1914~1929 프린스턴 신학교 신약 조교수, 1929~1937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신약 교수"로 적는다 [7].
웨스트민스터 쪽: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옛 안내 쪽은 "프린스턴이 성경적 신학을 붙드는 것을 끝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1929년 프린스턴 신학교는 현대주의의 영향 아래 재조직되었다"고 적는다 [5].
정통장로교회(OPC) 누리집에 실린 에드윈 리안의 책 《장로교의 갈등》 3장(웨스트민스터 쪽 사람의 글)은 과정을 이렇게 적는다. 학교는 본래 교육을 맡은 이사회(board of directors)와 재산을 맡은 재단이사회(board of trustees), 두 이사회가 다스렸다. 스티븐슨 총장은 학교가 "장로교회 전체를 대표해야지 어느 한 분파를 대표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1926년 6월 2일 총회가 조사 위원회를 세웠고, 위원회는 어려움의 뿌리가 "두 이사회 제도"에 있다고 보았다. 1929년 총회는 33명으로 된 하나의 이사회를 만들고 총장의 권한을 넓혔다. 새 이사회에는 오번 선언(Auburn Affirmation)에 서명한 두 사람(W. 비티 제닝스, 에이사 J. 페리)이 들어갔다. 로버트 딕 윌슨, 메이천, O. T. 앨리스, 코르넬리우스 반틸은 새 이사회 아래에서 가르치기를 거절했다 [6].
반틸의 강의 발췌(OPC 기관지에 실림)는 메이천이 떠난 까닭을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이 그곳에서 더는 타협 없이 가르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 데 두었다고 전한다 [8].
위키백과는 "1929년 신학교는 현대주의 노선에 따라 재조직되었다"고 적는다 [2].
현황:
학위 과정(ATS 승인): MDiv, MA, 기독교교육과 형성 MA, 신학과 생태 MA, MTS, ThM, PhD. (신학 MA는 "중단"으로 표시되어 있다.) [3]
학생 수: 2025년 가을 머릿수 300명, FTE 285.20 [3]. 위키백과는 2023년 가을 약 276 FTE, 1980년대에는 약 900명이었다고 적는다 [2].
교수 수: 2025년 가을 전임 34명(FTE 39.50) [3]. 위키백과는 전임 40명, 시간제 21명으로 적는다(기준 연도 없음) [2].
2024~2026년: 2026년 5월 16일 졸업식에서 석사·박사 학위 98개를 줌. 2026년에 다니엘 미글리오리 명예교수(3월 2일)와 스콧 헨드릭스 명예교수(2월 15일)가 세상을 떠났고, 신학과 교수 더크 스미트, 조지 헌싱어, 마크 루이스 테일러가 2026년에 은퇴한다는 내용이 검색 결과 요약에 보였으나, 해당 쪽을 직접 열지는 않았다 확인필요. 총장 교체, 합병, 이전, 재정 위기에 관한 2024~2026년 소식은 찾지 못함.
관련 교단: 공식 소속. ATS는 교단을 "Presbyterian Church (U.S.A.)"로 적는다 [3]. 학교는 스스로를 "교단 학교이면서 교회 일치적이고 교단을 넘어서며 세계에 걸친 구성원을 가진 학교"라고 적는다 [1].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is a Presbyterian school in the Reformed tradition" (프린스턴 신학교는 개혁파 전통 안에 있는 장로교 학교다) [9]. 같은 쪽은 학교를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하는 삶의 중심으로 삼는, 교회 일치적이고 국제적이며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공동체"라고 적고, "한 번 개혁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늘 개혁된다"는 말을 든다. 이 쪽은 특정 신앙고백 문서의 이름을 들지 않는다 [9].
교수 서약: 1997년 미국장로교 총회 소식 기사에서 당시 총장 톰 길레스피는 "프린스턴에서는 종신 교수 모두가 다섯 가지 물음에 답해야 하고, 그 가운데 처음 셋은 교단 헌법(Book of Order)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10]. 지금도 그런지는 확인하지 못함.
(나) 바깥의 평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1929년 이후의 프린스턴을 "현대주의의 영향 아래 재조직되었다"고 평가한다 [5]. 위키백과도 "현대주의 노선에 따라"라고 적는다 [2].
알려진 사람 (위키백과 [2]):
교수: 찰스 하지, A. A. 하지, B. B. 워필드, J. 그레셤 메이천, 게르할더스 보스, 에밀 브루너, 브루스 메츠거.
졸업생: 루이스 벌코프, 바트 어만, 가가와 도요히코.
한국 교회와의 관계:
한경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가 "미국 엠포리아 대학 1년을 수료(1926)한 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적는다(졸업 연도는 없음) [11]. 위키백과는 졸업 연도를 1929년으로, 영락교회를 세운 사람이자 템플턴상 수상자로 적는다 [2].
2014년 서울신문 기사: "한국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의 해외 동문이 가장 많은 나라다. 지금까지 83명의 한국인이 신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2년 이곳을 졸업한 최초의 한국인 제임스 정 이래 고 한경직 목사와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 등이 졸업했다." [12]
G. 톰슨 브라운(1950년 졸업): 선교사, 호남신학원(지금의 호남신학대학교)을 세운 사람 (위키백과) [2].
2025년 6월 20일 월튼 총장이 계명대학교를 찾아 학술교류협정을 갱신했다(공동 학술 모임, 교원 교류, 연구 자료 교환, 단기 과정) [13].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생 수: 300명(머릿수, ATS 2025 가을)과 285 FTE(위키백과 2025)는 같은 보고의 다른 셈법으로 보인다. 교수 수는 ATS(전임 34명)와 위키백과(전임 40명)가 다르다.
1929년의 일에 대한 프린스턴 쪽의 자세한 공식 설명은 찾지 못했다. 위에 적은 자세한 과정은 웨스트민스터·정통장로교회 쪽 글에서 나온 것이다.
위키백과는 웨스트민스터가 "펜실베이니아 글렌사이드에" 세워졌다고 적지만, 웨스트민스터 누리집은 첫 수업이 필라델피아의 한 가정집 1층에서 열렸다고 적는다.
지금의 교수 서약 문구, 미국장로교 총회가 총장과 이사를 인준하는 절차의 현재 모습은 직접 확인하지 못함.
기금 액수는 위키백과에서만 봄.
출처:
[1]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History", ptsem.edu (읽은 날 2026-10-12)
[3] ATS,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회원 학교 쪽, ats.edu (2026-10-12)
[4] Princeton University Archives, "Dear Mr. Mudd: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universityarchives.princeton.edu (2026-10-12)
[5]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History and Government" (옛 학생 안내 쪽. 2023-06-08 보존본), web.archive.org (2026-10-12)
[6] Edwin H. Rian, The Presbyterian Conflict, 3장 "The Reorganization of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opc.org (2026-10-12)
[7]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Library, Special Collections, "The John Gresham Machen Manuscript Collection", princetonseminaryarchives.libraryhost.com (2026-10-12)
[8] "Van Til on the Reorganization of Princeton", Ordained Servant 6권 4호(1997년 10월), opc.org (2026-10-12)
[10] Julian Shipp, "Faith and Life Committee Rejects Resolution on Professor Candidates' Statements of Belief", Worldwide Faith News, 1997-06-18, archive.wfn.org (2026-10-12)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글렌사이드(필라델피아 근교). 주소 2960 Church Road, Glenside, PA1929년 프린스턴 신학교를 떠난 메이천과 동료 교수들이 세운 독립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교리 표준으로 삼는다
곳: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글렌사이드(필라델피아 근교). 주소 2960 Church Road, Glenside, PA [5][9]
한 줄 소개: 1929년 프린스턴 신학교를 떠난 메이천과 동료 교수들이 세운 독립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교리 표준으로 삼는다 [1][5].
기원:
학교 누리집: 세워진 일은 1929년, 프린스턴에서 23년을 학자로 지낸 J. 그레셤 메이천이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프린스턴은 으뜸가는 개혁파 신학교였으나 "자유주의가 그곳에 발판을 얻어 가고 있었다". "1929년 대공황 한 달 전에 설립자들이 문을 열었다." 첫 수업은 필라델피아의 한 가정집 1층에서 열렸다 [1].
옛 학생 안내 쪽: "1929년 프린스턴 신학교는 현대주의의 영향 아래 재조직되었다. … 프린스턴 재조직 직후 이 네 사람(로버트 딕 윌슨, J. 그레셤 메이천, 오스월드 T. 앨리스, 코르넬리우스 반틸)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다." [5]
프린스턴 쪽의 설명은 위 "프린스턴 신학교"의 "1929년의 일"에 함께 적었다. 프린스턴의 공식 역사 쪽은 이 일을 따로 말하지 않는다.
역사:
1929년: 개교 [1]. 1930년: 펜실베이니아주 설립 인가 (위키백과) [2].
1936년: 정통장로교회(OPC)가 6월 11일에 세워짐. 메이천이 세우는 일을 도왔다 [2][6]. 학교 누리집은 메이천이 교회에서 목사 자격을 빼앗겼다고 적는다(날짜 없음) [1].
1954년: 중부 주 고등교육위원회(Middle States)의 인가 (위키백과) [2].
1966년: 에드먼드 클라우니가 첫 총장이 됨 (위키백과) [2]. 학교 누리집도 클라우니를 첫 총장으로 적는다 [1].
1981년: 칭의에 관한 견해 때문에 노먼 셰퍼드가 해임됨 (위키백과) [2].
2008년: 구약 교수 피터 엔즈가 책 《영감과 성육신》 때문에 직무 정지됨. 2008년 7월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기사는 이사회가 3월에 그를 정지시켰고, 전해에 교수회는 12대 8로 그를 남기기로 표결했다고 적는다 [7]. 위키백과는 2008년 해임으로 적는다 [2].
2009년: 댈러스 분교가 리디머 신학교로 세워짐. 2017년: 그 학교가 리폼드 신학교(RTS)의 댈러스 캠퍼스가 됨 (위키백과) [2].
학생 수: 2025년 가을 머릿수 1,354명, FTE 465.40. 전임 교수 8명(FTE 38.47)으로 적혀 있다 [3].
인가: ATS "양호한 상태로 인가됨" [3]. 중부 주 고등교육위원회 인가(1954년부터) (위키백과) [2].
총장 교체: 지역 언론 글렌사이드 로컬의 2025년 10월 1일 기사에 따르면 이사회가 만장일치 결의로 데이비드 B. 가너(David B. Garner) 박사를 총장으로 정했고, 2026년 7월 1일부터 일한다. 가너는 그때까지 학사 부총장, 세계 사역 부총장, 조직신학 교수였다. 피터 릴백(Peter A. Lillback)은 "20년이 넘는" 총장 일을 마치고 명예총장(President Emeritus)이 된다 [8]. ATS 쪽도 대표를 가너로 적고 [3], 학교 첫 화면에는 가너의 취임식 안내가 있다 [9].
2024년 7월 1일: 줄리어스 J. 김(Julius J. Kim) 박사가 "한국 사역 책임자(Executive Director of Korean Initiatives)"로 옴 [10].
재정, 캠퍼스 변화에 관한 2024~2026년 소식은 찾지 못함.
관련 교단: 특정 교단 소속이 아님. ATS는 "Inter/Multidenominational(여러 교단)"로 적는다 [3]. 학교는 스스로 뽑는 이사회가 다스린다. 이사는 15명 이상 30명 이하이고, 절반 이상 5분의 3 이하가 목사여야 하며, 이사는 "학교의 헌신과 장로교·개혁파 유산을 함께하는 교회의 치리 장로나 가르치는 장로"여야 한다 [5]. 위키백과는 정통장로교회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다고 적는다 [2].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사명: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exists to train specialists in the Bible to proclaim the whole counsel of God"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선포할 성경 전문가를 기르려고 있다) [11].
핵심 가치: "Scripture, as the very Word of God written, is absolutely authoritative and without error."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인 성경은 절대 권위가 있고 오류가 없다) [11].
교리 표준: "Reformed orthodoxy, as informed by the system of doctrine contained in the Westminster Standards, and secondarily in other Reformed confessions"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담긴 교리 체계, 그리고 그다음으로 다른 개혁파 신앙고백들이 알려 주는 개혁파 정통) [11].
교수·이사 서약: 옛 안내 쪽은 이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정관에 따라 "교수에게 요구되는 것과 비슷한 성격의 서약"에 서명해야 한다고 적는다 [5]. 2008년 인콰이어러 기사는 교수 서약이 1646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어긋나는 것을 "심어 주거나 가르치거나 넌지시 비치지 않겠다(inculcate, teach or insinuate)"는 내용이며, 학교가 이 서약을 1936년에 채택했다고 적는다 [7].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학교가 스스로를 "프린스턴의 역사적 신학 전통을 충실히 이어 가는 곳"으로 본다고 적는다 [2]. 2008년 엔즈 사건 때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청문회를 "이단 재판"이라고 불렀다고 인콰이어러가 전한다 [7].
알려진 사람:
학교 누리집이 "설립자들" 아래 드는 사람: J. 그레셤 메이천, 코르넬리우스 반틸(언약적 변증학), 존 머리(조직신학), 에드먼드 클라우니(실천신학, 첫 총장), 네드 스톤하우스(신약, 게르할더스 보스의 제자) [1].
그 밖(위키백과): 오스월드 T. 앨리스, 로버트 딕 윌슨, 팀 켈러, 싱클레어 퍼거슨, 번 포이트레스 [2].
한국 교회와의 관계:
박윤선: 한국어 위키백과는 그가 1934년 8월 미국으로 떠나 9월에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들어갔고, 1936년에 신학석사(Th.M) 학위를 받았으며, 1938년부터 1939년까지 다시 웨스트민스터에서 변증학과 성경 원어를 연구했다고 적는다. 1946년 9월 고려신학교 교장서리, 1948년 제2대 교장이 되었고, 1960년 9월 고려신학교를 사임했다. 1963년부터 총회신학교(지금의 총신대학교) 교수였고, 1980년부터 합동신학교 초대 원장을 지냈다 (한국어 위키백과) [12]. 영어 위키백과는 그가 하지, 메이천, 워필드, 카이퍼, 바빙크, 스킬더, 흐레이다너스를 한국에 소개했다고 적는다 [13]. 위키백과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사람들" 목록은 그를 졸업생과 명예박사 수여자 양쪽에 올린다 [14].
그 밖에 위키백과가 졸업생으로 올린 한국 이름: 한철하, 김의환(John Euiwhan Kim), 오덕교, 손봉호, 이영훈 (설명 없이 이름만) [2]. 명예박사 목록: 이종윤, 이원상, 옥한흠 [14].
한국어 과정: 학교는 "한국 교회와 협력하여" 한국어 목회학 박사(Korean DMin)와 한국어 신학 석사(Korean MATS)를 연다고 적는다 [15]. 한국어 DMin은 "한국어로만 진행"되고, 대부분의 과목은 웨스트민스터 교수가 동시통역으로 가르치며, 해마다 여름 2주 동안 필라델피아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는다. 해마다 15명을 뽑는다. 멘토로 권성수(대구동신교회), 김남준(열린교회), 이규현(수영로교회), 한규삼(충현교회), 화종부(남서울교회) 등이 올라 있다 [16]. 한국어 MATS는 온라인 과정이고 36학점이다 [17].
학생 구성: 학교는 "학생 셋 가운데 하나는 외국에서 왔거나 이민 2세"라고 적는다 [15].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세운 사람: 옛 안내 쪽은 윌슨, 메이천, 앨리스, 반틸 넷을 든다 [5]. 지금 누리집의 "설립자들" 대목은 메이천, 반틸, 머리, 클라우니, 스톤하우스를 든다 [1]. 위키백과는 메이천, 머리, 앨리스, 윌슨, 반틸을 든다 [2].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캘리포니아Westminster Seminary California ·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스콘디도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의 분교로 시작해 독립한 개혁파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세 일치신조를 함께 교리 표준으로 삼는다
곳: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스콘디도 [1]
한 줄 소개: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의 분교로 시작해 독립한 개혁파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세 일치신조를 함께 교리 표준으로 삼는다 [1][2].
기원: 학교 누리집은 1979년에 운영자들이 "캘리포니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열려고" 옮겨 왔고, 1980년에 첫 학생이 들어왔다고 적는다 [1]. 위키백과는 1979년 설립, 1980년 가을 첫 학생, "1982년까지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분교"였다고 적는다 [3].
역사:
1979년: 설립 준비. 1980년: 첫 학생 [1].
1980~1984년: 샌마코스의 임시 캠퍼스. 1984년: 에스콘디도 새 캠퍼스에서 수업 시작 [4]. (학교의 다른 쪽은 에스콘디도로 옮긴 해를 1982년으로 적는다 [1].)
독립: 학교 누리집은 1984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독립한 기관이 되었다고 적는다 [1]. 위키백과는 1982년이라고 적는다 [3].
총장: 로버트 B. 스트림플(1982), 로버트 G. 덴 덜크(1988), W. 로버트 고드프리(1993), 조엘 은일 김(Joel Eunil Kim, 2017년 임명) [1].
1997년: ATS의 첫 인가 (위키백과) [3].
2014년: 캠퍼스 남쪽에 붙은 9에이커 땅을 기부받아 캠퍼스가 두 배가 됨. 2016년 9월: 학생 가족 주택 64채를 짓는 터 닦기 시작 [4]. 2018년 6월: 학생 주택에 첫 입주 [1].
현황:
학위 과정: MDiv, 성경학 MA, 역사신학 MA, 신학 MA, 복수 학위 과정 [1].
학생 수: 학교 누리집과 ATS 쪽에서 전체 수를 찾지 못함(ATS 쪽은 빈 틀만 열렸다). 위키백과 정보 상자는 98명(2025년), 본문은 "전일제 학생 약 155명"이라고 적어 서로 다르다 [3]. 학교는 교수 대 학생 비율을 1:10, 외국 학생을 15~20%(37개국 넘음)라고 적는다 [1].
인가: WASC(서부 학교·대학 협회)와 ATS. 학교는 스스로를 "미국 서부 해안에서 온전히 인가받은 유일한 개혁파 신학교"라고 적는다 [1].
2024~2026년: 2025년에 45번째 학년을 시작했다는 것이 검색 결과 요약에 보였으나 그 쪽을 직접 열지는 않았다 확인필요. 총장 교체, 재정, 캠퍼스 변화 소식은 찾지 못함. 현재 총장은 조엘 김 [1].
관련 교단: 특정 교단 소속이라는 말이 학교 누리집에 없다. 학교는 주된 목적을 "특히 장로교와 개혁파 교단에서 안수받아 목회할 남자를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적는다 [1]. 위키백과는 미국장로교회(PCA), 정통장로교회(OPC), 북미연합개혁교회(URCNA), 재미한인예수교장로회(KAPC)와 가까운 관계라고 적는다 [3].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Committed to the Word of God and Reformed theology" (하나님의 말씀과 개혁파 신학에 헌신한다) [1]. 교리 표준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 여섯 문서를 든다. 교수와 이사가 될 사람은 일을 맡기 전에 이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을 "성경의 충실한 요약으로 받들겠다"는 서약에 서명해야 한다 [2].
1994년 개혁파 신자 통신(Reformed Believers Press Service) 기사는 이 학교 교수 서약의 한 대목을 이렇게 옮긴다: 교수는 표준문서에 "어긋나거나 거스르는 것을 심어 주거나 넌지시 비치지 않겠다고 엄숙히 약속"하고, 장로교 정치 형태의 "근본 원리 어느 것에도 반대하지 않겠다"고 해야 한다 [5]. 지금 문구가 같은지는 확인하지 못함.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앤드루 샌들린이 이 학교의 두 왕국론 견해를 "에스콘디도 신학"이라고 부르고 비판하는 책을 썼다고 적는다 [3].
알려진 사람 (위키백과 [3]): W. 로버트 고드프리, 마이클 호튼, 메러디스 클라인, 존 프레임, R. 스콧 클라크, 데이비드 반드루넨. 졸업생으로 줄리어스 김, 로이드 김.
한국 교회와의 관계:
현 총장 조엘 김은 인천에서 태어나 아홉 살에 미국으로 갔다. 아버지는 한국의 장로교 목사였다. 이 학교에서 MDiv, 칼빈 신학교에서 ThM을 받았고, 2005년부터 이 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미국장로교회(PCA) 한인 서남노회의 위원회에서 일했다 [6].
1994년 기사: 졸업하는 MDiv 학생의 45% 넘는 수가 한국계였다 [5].
졸업생 줄리어스 김은 2024년부터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의 한국 사역 책임자다(위 학교 항목 참고).
한국의 교단이나 신학교와의 공식 자매 관계: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독립한 해: 1984년(학교 누리집 [1], 1994년 기사 [5])과 1982년(위키백과 [3]).
에스콘디도로 옮긴 해: 1982년 [1]과 1984년 [4]. 둘 다 학교 누리집이다.
세운 사람의 이름은 연 쪽에서 글자로 확인하지 못했다(검색 결과 요약에는 학교 요람이 스트림플과 덴 덜크를 든다고 나왔으나 요람 파일이 커서 열지 못함) 확인필요.
[4] Westminster Seminary California, "Building the Campus", wscal.edu (2026-10-12)
[5] Darrell Todd Maurina, "A Profile of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in California", Reformed Believers Press Service #1994-40, 1994-08-20, ftp-test.nic.funet.fi (2026-10-12)
[6] Westminster Seminary California, "Q&A with President Joel E. Kim", 2017-10-14, wscal.edu (2026-10-12)
칼빈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 ·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 주소 3233 Burton St SE북미기독개혁교회(CRCNA)의 목회자를 기르려고 1876년에 세운 교단 신학교
곳: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 주소 3233 Burton St SE [1]
한 줄 소개: 북미기독개혁교회(CRCNA)의 목회자를 기르려고 1876년에 세운 교단 신학교 [1][2].
기원: 학교 누리집은 "1876년에 세워졌다"고 적는다 [1]. 학교 글은 첫 지도자 헤이르트 에흐버츠 부르(Geert Egberts Boer)가 1876년 기독개혁교회의 신학교를 여는 일을 도왔다고 적는다 [3]. 위키백과는 "기독개혁교회의 목사를 준비시키려는 목적으로 1876년에 세워졌다"고 적는다 [2].
역사 (위키백과 [2]. 따로 표시한 것 빼고):
1876년: 그랜드래피즈 스프링 거리에서 시작.
1894년: 신학교에 들어올 학생을 위한 예비 과정 여덟 과목 시작. 1900년: 그 과정이 넓어져 신학생 아닌 학생에게도 열림.
1919~1920년: 대학 총장을 따로 두고 4년째 과정을 더해 칼빈 대학(지금의 칼빈 대학교)이 생김.
1960년: 지금의 놀크레스트 캠퍼스에서 수업 시작.
2010년: 줄 메덴블릭(Jul Medenblik)이 총장으로 부름받음 [4].
2012년: 총회가 옛 서약 양식 대신 "직분자 언약(Covenant for Officebearers)"을 채택 [5].
2026년: 설립 150돌. 총장 은퇴 발표(아래 현황) [3][4].
현황:
학위 과정(ATS 승인): MDiv, MA(성경과 신학), 기독교 지도력 MA, 임상 정신건강 상담 MA, 선교적 신학 MA, MTS, ThM, DMin, PhD [6]. 학교는 여러 과정을 대면, 혼합, 온라인, 역량 기반 방식으로 연다고 적는다 [1].
학생 수: 2025년 가을 머릿수 378명, FTE 218.40. 전임 교수 11명(FTE 16.95) [6]. 위키백과는 학생 379명, 교수 35명(기준 연도 없음) [2].
인가: ATS "양호한 상태로 인가됨" [6].
총장 교체: 2026년 8월 26일 CRCNA 소식에 따르면 메덴블릭 총장이 은퇴할 뜻을 밝혔다(안에서는 11월에 먼저 알림). 은퇴하면 16년의 총장 일이 끝난다. 이사회는 추천위원회(이사 4, 교수 3, 일반 3, 직원 1, 학생 1)를 꾸리고 인재 검색 회사를 두었다. 은퇴 날짜와 후임자는 기사에 없다 [4]. 2026년 8월 14일 학교 글은 "아홉째 총장으로 넘어갈 준비를 한다"고 적는다 [3]. 2026-10-12 현재 후임자 발표는 찾지 못함. ATS 쪽 대표는 아직 메덴블릭이다 [6].
2026년 총회: 헌의안 15는 "신학교 이사회와 교수가 신앙고백 헌신 언약에 서명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총회 자문위원회는 받아들이지 말 것을 권고했다. 까닭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 이사는 모두 기독개혁교회 교인이다. 교수 지위를 가진 사람은 모두 직분자 언약에 서명했고 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의안 18(다음 총장에게 바라는 자질을 미리 밝히자)은 추천위원회에 넘기도록 권고했다 [7]. 교단지 《배너》는 2026년 총회가 신학교의 일을 "지지했다"고 적고, 신학교가 교단의 정체성과 신앙고백 헌신을 둘러싼 "최근 논의의 한가운데" 있었다고 적는다 [8].
관련 교단: 공식 소속. ATS는 교단을 "Christian Reformed Church"로 적는다 [6]. CRCNA 소식은 이 학교를 "북미기독개혁교회를 섬기는 신학교"라고 부른다 [4]. 이사회는 총회에 보고서를 낸다 [7]. 위키백과는 칼빈 대학교와 "가깝게 이어져 있으나 이사회는 따로"라고 적는다 [2].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All our teaching and formation grow from a shared understanding of God's Word as articulated in the Reformed confessions." (우리의 모든 가르침과 양성은 개혁파 신앙고백들이 밝힌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이해하는 데서 자란다) [1].
교리 표준과 서약: CRCNA는 벨직 신앙고백(156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 도르트 신조를 받는다 [9]. 2012년 총회가 채택한 직분자 언약은 "모든 목사, 장로, 집사, 그리고 칼빈 대학과 칼빈 신학교의 교수"가 서명해야 한다 [5]. 2026년 자문위원회 문서도 교수 지위를 가진 사람은 모두 서명해야 한다고 적는다 [7].
(나) 바깥의 평가: 연 자료에서 제3자가 이 학교에 붙인 성향 평가는 찾지 못함. 교단 안에서 교수와 이사의 신앙고백 서약을 더 요구하자는 헌의가 2026년에 올라왔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7].
알려진 사람 (위키백과 [2]): 루이스 벌코프, 게르할더스 보스, 코르넬리우스 반틸, 앤서니 후크마, 헤르만 훅세마, 리처드 멀러, 코르넬리우스 플랜팅가.
한국 교회와의 관계:
2016년 CRCNA 소식(전 총장 제임스 드용의 말): 벌코프의 《조직신학》이 1930년대에 한국어로 옮겨져 한국 장로교 지도자들이 높이 여겼고, 그 책 때문에 2차 대전 뒤 한국 학생 몇이 오기 시작해 "1980년대에는 밀물처럼" 늘었다. 지금의 PhD 과정을 열도록 밀어붙인 것도 한국 학생들이었다 [10].
2023년 1월 CRCNA 소식: "오늘 칼빈 신학교에는 한국 학생이 51명 있다. 학생 전체의 20%다." [11]
학교 글(2015년 겨울 처음 실림): 학생 다섯 가운데 거의 하나가 한국에서 왔고, 많은 수가 장로교 출신이며 졸업한 뒤 돌아가 장로교회를 섬긴다 [12].
고신 쪽 신학교 교수 가운데 이 학교 졸업생이 몇인지는 검색 결과 요약에만 보였고 해당 쪽이 열리지 않아 적지 않는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생 수 378명(ATS 2025 가을)과 379명(위키백과, 연도 없음). 교수 수 11명 전임(ATS)과 35명(위키백과).
2026년 총회가 헌의안 15를 최종으로 어떻게 표결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함. 자문위원회의 권고문만 보았다.
2022~2024년 CRCNA의 성(性) 문제 결정이 신학교에 미친 영향은 연 쪽에서 글자로 확인하지 못함.
세운 사람과 초기 역사에 대한 학교 공식 역사 쪽은 열지 못함(주소를 찾지 못함). 초기 연표는 위키백과에 따른 것이다.
리폼드 신학교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RTS · 본교는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 여러 도시에 캠퍼스가 있다1966년 남장로교(PCUS) 안의 보수파가 교단에서 독립해 세운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따르고 성경 무오를 고백한다
곳: 본교는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 여러 도시에 캠퍼스가 있다 [1][3]
한 줄 소개: 1966년 남장로교(PCUS) 안의 보수파가 교단에서 독립해 세운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따르고 성경 무오를 고백한다 [1][2][4].
기원:
학교 누리집: 1963년 6월 목사 다섯이 멤피스의 한 호텔 방에서 새 신학교를 위해 기도하려고 모였다. 1966년 가을 미시시피주 잭슨에서 문을 열었다. 1966년 9월 6일 첫 개강 예배 설교는 C. 다비 풀턴이 했다. 샘 패터슨을 "RTS의 설립 전도자"라고 부른다. 첫해 학생은 17명 [1].
2016년 미국 상원 결의안(50돌 기념): 학교의 구상은 미시시피 목사 다섯(샘 패터슨, 어스킨 잭슨, 존 리드 밀러, 제임스 스펜서, 윌리엄 스탠웨이)의 기도 모임에서 나왔다. 세운 사람은 샘 패터슨, 로버트 캐나다, 어스킨 웰스, 프랭크 호턴, 밥 케닝턴, 프랭크 틴들이다. 1966년 "8개 대학, 3개 교단에서 온 학생 14명"으로 문을 열었다 [5].
세운 까닭: 위키백과는 남장로교의 보수파가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의 영향이 커지는 것"을 걱정해 세웠다고 적는다 [4].
역사:
1963년: 기도 모임. 1966년: 잭슨에서 개교 [1].
1973년: 그해 세워진 미국장로교회(PCA)를 주로 섬기게 됨 (위키백과) [4].
1990년대 초: 올랜도 캠퍼스에서 원격 교육 시작. 1998년: 원격 교육이 따로 "글로벌 캠퍼스"가 됨 (위키백과) [4].
2010년 4월: 브루스 월키 교수가 진화에 관한 견해로 논란이 인 뒤 사임 의사를 밝힘 (위키백과) [4].
캠퍼스: 학교 누리집은 학위를 주는 캠퍼스 아홉(잭슨, 올랜도, 샬럿, 워싱턴 DC, 애틀랜타, 휴스턴, 댈러스, 브라질 상파울루, 글로벌 교육)과 일부 과정만 여는 뉴욕 캠퍼스를 든다 [1]. ATS는 본교를 잭슨으로, 승인된 추가 장소를 샬럿, 휴스턴, 잭슨, 매리에타(조지아), 오비에도(플로리다), 리처드슨(텍사스), 상파울루, 타이슨스(버지니아)로 적는다 [3].
학생 수: 2025년 가을 머릿수 1,050명, FTE 540.20. 전임 교수 32명(FTE 37.00) [3]. 위키백과는 1,022명(2024년) [4].
인가: ATS "양호한 상태로 인가됨". 다음 종합 평가 방문은 2032년 봄 [3]. 남부 대학·학교 협회(SACSCOC) 인가 (위키백과) [4].
대표: J. 리곤 던컨 총재 겸 최고경영자 [3][4].
2025~2026년 학교 소식 쪽에서 본 것: 2025년 11월 13일 릴리 재단에서 거의 100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칼레오 사업"을 시작(개혁파·장로교회의 목회자 후보 부족을 다루는 5년 사업). 2026년 3월 19일 올랜도 캠퍼스에 고대 문헌 연구소 개설. 2026년 10월 8일 폴 맥널티(전 그로브시티 대학 총장)를 이사로 임명. D. 블레어 스미스는 2025년부터 샬럿 캠퍼스 총장 [8].
잭슨 캠퍼스 총장으로 데이비드 T. 어빙이 2025년 6월 1일부터 일한다는 것은 검색 결과 요약에만 보였고 해당 쪽을 직접 열지 않았다 확인필요.
폐교, 합병, 재정 위기 소식은 찾지 못함.
관련 교단: 교단 소속이 아님. 학교는 "RTS is free from denominational control"(RTS는 교단의 통제에서 자유롭다)고 적는다. 다만 관계된 사람은 저마다 자기 교단 교회 법정의 관할 아래 있다고 덧붙인다 [2]. ATS는 "Inter/Multidenominational"로 적는다 [3]. 위키백과는 미국장로교회(PCA), 복음장로교회(EPC), 연합개혁장로교회(ARP)를 주로 섬겼고 최근에는 특수침례교와 독립 교회 출신 학생도 많다고 적는다 [4].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이사, 고위 운영자, 표결권 있는 교수가 받는 "신앙 선언"은 (1) 삼위일체 하나님, (2) "Scripture is the inspired, inerrant Word of God, the final authority"(성경은 영감받은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최종 권위다), (3) "Reformed theology as set forth i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and the Larger and Shorter Catechisms"(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에 밝혀진 개혁파 신학)을 담는다. 서명하는 사람은 "나는 위의 진술을 진심으로 내 것으로 삼아 믿으며 굳게 변함없이 붙들겠다"고 하고, "아무 유보 없이" 여기에 묶이며, 믿음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곧바로 교무처장에게 글로 알리겠다고 약속한다 [2].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이 학교가 "옛 학파(Old School)" 장로교 노선의 독립 신학교로 세워졌다고 적는다 [4].
알려진 사람 (위키백과 [4]): R. C. 스프로울, 존 프레임, 로저 니콜, 더글러스 켈리, 리처드 프랫, 마이클 크루거, 브루스 월키, 팀 켈러(교수진 목록).
한국 교회와의 관계: 리곤 던컨 총재는 2014년 글에서 "한국의 교회, 신학교, 대학에서 일하는 RTS 졸업생이 꽤 많다"고 적었다 [6]. 한국어 과정이나 한국 교단·신학교와의 공식 관계는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첫해 학생 수: 17명(학교 누리집 [1])과 14명(상원 결의안 [5]).
처음 모인 목사 다섯: 학교 누리집은 "멤피스 호텔 방"이라 하고 이름을 들지 않는다 [1]. 상원 결의안은 "미시시피 목사 다섯"이라 하고 이름을 든다 [5].
학생 수: 1,050명(ATS 2025 가을)과 1,022명(위키백과 2024). 2016년 상원 결의안은 "현재 학생 1,500명 넘음, 전임 교수 40명 넘음"이라고 적었다 [5].
캠퍼스 목록이 자료마다 다르다. 2016년 상원 결의안에는 멤피스와 매클레인(버지니아)이 있고 댈러스와 상파울루는 없다 [5]. 캠퍼스마다 문을 연 해는 연 쪽에서 찾지 못함.
커버넌트 신학교Covenant Theological Seminary ·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크리브쿠어). 주소 12330 Conway Road미국장로교회(PCA)의 교단 신학교. 교수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서약한다
곳: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크리브쿠어). 주소 12330 Conway Road [1][2]
한 줄 소개: 미국장로교회(PCA)의 교단 신학교. 교수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서약한다 [1].
기원: 학교 누리집은 "1956년 커버넌트 대학과 신학교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작되었다"고 적고, 성경장로교회(Bible Presbyterian Church)의 교육 기관이었다고 적는다 [1]. 위키백과는 커버넌트 대학의 자매 기관으로 1956년에 세워졌고, 세운 사람들은 교단이 "자유주의로 기우는 영향에 맞설 튼튼한 신학교가 필요하다"고 믿었다고 적는다. 첫 총장은 로버트 G. 레이번(1956~1977) [2].
역사:
1956년: 성경장로교회(콜럼버스 대회)의 기관으로 설립 [1][2].
1964년: 커버넌트 대학이 조지아주 룩아웃마운틴으로 옮김. 1966년: 대학과 신학교가 공식으로 나뉨 (위키백과) [2].
그 뒤 교단 통합을 따라 복음장로교회(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 개혁장로교회 복음대회(RPCES) 소속이 됨 (위키백과) [2].
1982년: "합류와 영접(joining and receiving)" 절차로 미국장로교회(PCA)에 들어가 그 교단의 공식 신학교가 됨 [1][2].
1994~2010년: 브라이언 채플 총장. 2012~2021년: 마크 댈비 총장 (위키백과) [2].
학생 수: 2025년 가을 머릿수 557명, FTE 300.90 [3]. 위키백과는 2025년 약 300 FTE [2].
인가: ATS와 고등교육위원회(HLC) [1][3].
총장: 토머스 C. 깁스 [1][3].
2024~2026년:
2024년 1월 이사회가 새 전략 계획을 채택했다. "목회에 뜻을 둔 학생을 우선"하는 데 초점을 두고, 신학 준비, 영성 형성, 선교, PCA와의 관계,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다룬다. 2023년 가을 신입생은 150명으로 43% 늘었다. 릴리 재단에서 119만 달러 지원금을 받았다 [4].
2024년 6월 PCA 제51회 총회는 학교의 권고안과 이사 후보를 모두 승인했다 [5].
2026년 PCA 제53회 총회 요약: 학교는 70돌을 맞았고, 릴리 재단에서 거의 1,000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았다. "학교 역사에서 가장 큰 단일 지원금"이다. 캐머런 클로징 박사가 2026~2027학년도에 조직신학 교수로 온다 [6].
총장 교체, 캠퍼스 이전이나 매각 소식은 찾지 못함.
관련 교단: 공식 소속. "Covenant is the denominational seminary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PCA)."(커버넌트는 미국장로교회의 교단 신학교다) 이사회는 해마다 PCA 총회의 승인을 받는다. 학교는 스스로를 "PCA에 목사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곳"이라고 적는다 [1]. ATS도 교단을 PCA로 적는다 [3].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Our faculty subscribe to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along with the Shorter and Larger Catechisms."(우리 교수진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소·대요리문답에 서약한다) [1]. 사명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되, 그분의 종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걷도록 훈련함으로써" 하는 것 [1].
(나) 바깥의 평가: 연 자료에서 제3자가 붙인 성향 평가는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위키백과 [2]): 로버트 G. 레이번(첫 총장), 브라이언 채플(총장, 졸업생), 리곤 던컨(졸업생), 낸시 피어시(졸업생), 개빈 오틀런드(졸업생). 학교 소식에 따르면 C. 존 "잭" 콜린스 교수가 32년을 가르치고 은퇴한다는 것이 검색 결과 요약에 보였으나 해당 쪽을 열지 않았다 확인필요. 프랜시스 쉐퍼 연구소가 이 학교에 있다 [2].
한국 교회와의 관계: 위키백과는 졸업생으로 임택권(Taek Kwon Lim,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전 총장)을 올린다 [2]. 한국어 과정이나 한국 교단과의 공식 관계는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생 수 557명은 머릿수이고 FTE는 300.90이다. 온라인 학생이 포함된다(위키백과).
세운 사람의 이름은 학교 누리집에 없다. 교단 이력(복음장로교회, RPCES를 거친 과정)의 연도는 위키백과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학생 수: 2025년 가을 머릿수 582명, FTE 207.00. 전임 교수 11명(FTE 14.00) [4]. 학교 누리집은 협력 학교를 넣어 "30개 넘는 나라의 학생 600명 넘게"를 섬긴다고 적는다 [1].
인가: ATS "양호한 상태로 인가됨" [4].
대표: 총장 아드리안 C. 닐러, 총재 조엘 R. 비키, 부총장 제럴드 M. 빌크스 [1][4].
2024~2026년: 총장 교체, 재정, 캠퍼스 변화 소식은 찾지 못함. 교수 소개에 김영호(Young Ho Kim) 박사가 한국 합동신학대학원에서 10년(2015~2025) 가르친 뒤 이 학교로 왔다고 적혀 있다 [1].
관련 교단: ATS는 교단을 "Heritage Reformed Congregations (USA and Canada)"로 적는다 [4]. 위키백과는 헤리티지 개혁교회와 북미자유개혁교회 둘을 든다 [2]. 2023년 총장 교체는 헤리티지 개혁교회 대회를 거쳤다 [3]. 교수진에는 미국장로교회(PCA), 정통장로교회(OPC) 등 다른 교단 사람도 있다 [1].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We subscribe to the Three Forms of Unity (i.e., the Belgic Confession, Heidelberg Catechism, and Canons of Dort)"(우리는 세 일치신조, 곧 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에 서약한다). 같은 쪽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도 "우리의 신앙고백적 헌신"으로 든다 [1]. 사명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와 학계를 섬기도록 학생을 훈련하는 것" [1].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이 학교를 미국의 대륙 개혁파 교단 신학교로 분류한다 [2]. 그 밖에 제3자의 성향 평가는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조엘 R. 비키(설립 때부터 총장, 지금 총재), 아드리안 C. 닐러(총장), 제럴드 M. 빌크스(부총장), 마이클 배럿, 대니얼 티머 [1].
한국 교회와의 관계: 교수 김영호 박사가 합동신학대학원에서 2015~2025년에 가르쳤다 [1]. 한국어 과정이나 한국 교단·신학교와의 공식 관계는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생 수: 582명(ATS 2025 가을, 머릿수)과 "600명 넘게"(학교 누리집, 협력 학교 포함). FTE는 207.00으로 머릿수와 차이가 크다.
관련 교단: ATS는 헤리티지 개혁교회 하나만 적고, 위키백과는 북미자유개혁교회도 함께 든다. 북미자유개혁교회와의 공식 관계가 어떤 것인지(소유, 협약)는 학교나 교단 문서로 확인하지 못함.
학교의 역사 쪽과 교리 표준 쪽은 열리지 않았다(404). 위 내용은 "About" 쪽의 앞부분에서 본 것이다. 그 쪽은 길어서 뒤쪽 대부분을 읽지 못했다.
해외 캠퍼스(런던, 알렉산드리아, 대만, 프리토리아, 상파울루)가 있다는 것은 검색 결과 요약에만 보였고 직접 확인하지 못함 확인필요.
교리 표준이 세 갈래다.
-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만 드는 곳: 리폼드 신학교, 커버넌트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필라델피아)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앞세우고 "그다음으로 다른 개혁파 신앙고백들"을 든다.
- 세 일치신조(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를 받는 곳: 칼빈 신학교(교단 CRCNA의 표준).
- 둘을 함께 드는 곳: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캘리포니아(여섯 문서), 청교도개혁신학교.
- 프린스턴 신학교의 사명·비전 쪽은 특정 신앙고백 문서의 이름을 들지 않고 "개혁파 전통 안의 장로교 학교"라고만 적는다.
교단과의 관계도 세 갈래다.
- 교단 소속: 프린스턴(PCUSA), 칼빈(CRCNA), 커버넌트(PCA), 청교도개혁(HRC). 커버넌트는 이사회가 해마다 PCA 총회의 승인을 받고, 칼빈은 이사회가 총회에 보고하며 총회에 헌의안이 올라온다.
- 독립: 웨스트민스터(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캘리포니아, 리폼드. 셋 다 스스로 뽑는 이사회가 다스리고 여러 장로교·개혁파 교단을 섬긴다. ATS는 웨스트민스터와 리폼드를 "여러 교단"으로 적는다.
교수 서약을 글로 밝혀 둔 정도가 다르다. 리폼드 신학교는 서약문 내용을 누리집에 그대로 올려 두었고(성경 무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믿음이 바뀌면 글로 알릴 것), 웨스트민스터 캘리포니아는 서명해야 할 문서 여섯을 밝히며, 커버넌트는 교수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서약한다고 한 줄로 밝힌다. 칼빈은 교단의 "직분자 언약"에 교수가 서명한다. 웨스트민스터(필라델피아)의 서약 원문은 지금 누리집에서 찾지 못했다.
2025년 가을 ATS 보고 학생 수(머릿수 / FTE):
- 웨스트민스터(필라델피아) 1,354 / 465.40
- 리폼드 1,050 / 540.20
- 청교도개혁 582 / 207.00
- 커버넌트 557 / 300.90
- 칼빈 378 / 218.40
- 프린스턴 300 / 285.20
- 웨스트민스터 캘리포니아: ATS 쪽이 비어 있어 확인하지 못함
머릿수와 FTE의 차이가 큰 학교(웨스트민스터, 청교도개혁)가 있고, 거의 같은 학교(프린스턴)가 있다.
2023~2026년 사이 대표가 바뀌었거나 바뀌는 중인 곳이 넷이다.
- 프린스턴: 2023년 1월 조너선 리 월튼.
- 청교도개혁: 2023년 8월 1일 아드리안 닐러(조엘 비키는 총재로).
- 웨스트민스터(필라델피아): 2026년 7월 1일 데이비드 B. 가너(피터 릴백은 명예총장으로).
- 칼빈: 2026년 8월 줄 메덴블릭 총장의 은퇴 계획 발표. 후임 찾는 중.
1929년의 일을 두 학교가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웨스트민스터는 자기 역사 쪽의 첫머리에 프린스턴의 "자유주의"와 메이천의 사임을 둔다. 프린스턴의 공식 역사 쪽은 그 일을 말하지 않고 스티븐슨 총장 때를 "소란스러운 시기"라고만 적는다.
한국 교회와 이어진 모습이 학교마다 다르다. 웨스트민스터(필라델피아)는 한국어 DMin과 한국어 MATS를 열고 한국 사역 책임자를 두었다. 칼빈은 2023년에 한국 학생이 51명(20%)이라고 교단 소식이 적었다. 웨스트민스터 캘리포니아는 총장이 인천 태생의 한국계 미국인이다. 프린스턴은 2014년 기사에 한국인 학위 취득자 83명이라고 나온다. 리폼드, 커버넌트, 청교도개혁은 한국어 과정이나 공식 관계를 찾지 못했다.
조사의 한계
열리지 않은 쪽이 많았다. 프린스턴의 "Fast Facts", 웨스트민스터의 "beliefs"·"leadership", 칼빈의 역사 쪽, 리폼드의 역사 쪽(다른 내용이 나옴), 커버넌트의 역사 쪽, 청교도개혁의 역사·교리 표준 쪽, 미국장로교(PCUSA)의 신학교 안내 쪽, 브리태니커의 메이천 항목(403), ECFA의 웨스트민스터 캘리포니아 쪽이 모두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초기 역사와 알려진 사람은 위키백과에 기댄 곳이 많다. 그런 곳은 "(위키백과)"로 표시했다.
웨스트민스터 캘리포니아의 2024~2025 요람(PDF)은 크기가 커서 열지 못했다. 세운 사람 이름과 서약 원문이 거기 있을 가능성이 있다.
기금, 예산 같은 재정 수치는 프린스턴(위키백과)을 빼고는 찾지 못했다. 어림값은 적지 않았다.
"(나) 바깥의 평가"는 출처가 분명한 것만 적었다. 칼빈, 커버넌트, 청교도개혁은 제3자의 평가를 찾지 못해 비워 두었다. '보수', '진보' 같은 딱지는 붙이지 않았다.
박윤선의 웨스트민스터 유학 연도(1934~1936, 1938~1939)는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만 보았다. 그가 메이천이나 반틸에게 직접 배웠다는 내용은 연 쪽에서 글자로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았다. 고신 교단지나 고려신학대학원 자료로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고신 총회나 고려신학대학원과 이 일곱 학교 사이의 공식 자매 관계나 협약은 검색에서 찾지 못했다. 없다는 뜻이 아니라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확인필요를 붙인 것은 검색 결과 요약에만 보이고 해당 쪽을 직접 열지 못한 내용이다. 글에 쓰기 전에 다시 확인해야 한다.
미국 복음주의·침례교
조사한 날: 2026-10-12. 아래의 모든 사실은 그날 실제로 연 쪽에 글자로 나온 것이다. 출처 번호는 학교마다 따로 매겼다.
읽기 전에 알아 둘 것 세 가지.
학생 수의 두 가지 숫자. 미국·캐나다 신학교 인가 기관인 ATS(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 신학교 협의회)는 학교마다 "머릿수(등록한 사람 수)"와 "FTE(전일제로 환산한 수. 시간제 학생 여럿을 전일제 한 명으로 쳐서 셈한 값)"를 함께 싣는다. 아래에서 "1489명(FTE 664.90)"처럼 적은 것은 ATS 회원 학교 쪽에 "reported Fall 2025(2025년 가을 보고)"라고 나온 값이다.
바로 열리지 않은 쪽. 풀러 신학교(fuller.edu), 고든콘웰 신학교(gordonconwell.edu), 뱁티스트 프레스(baptistpress.com)는 직접 열면 403(접근 거부)이 나왔다. 이 세 곳의 쪽은 글자만 뽑아 주는 중계 읽기 도구(r.jina.ai)를 거쳐 읽었다. 내용은 그 학교와 언론의 원래 쪽 그대로이지만, 직접 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출처에 "(중계 읽기)"로 표시했다.
위키백과에서만 본 것은 그 자리에서 "(위키백과에서만 봄)"이라고 밝혔다.
학교 이름을 누르면 조사한 내용이 펼쳐집니다. 대괄호 안의 숫자는 그 학교 칸 끝(또는 이 탭 끝)에 있는 출처의 번호입니다.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 ·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주소는 135 North Oakland Avenue, Pasadena, CA. 학교 스스로는 패서디나, 휴스턴, 애리조나, 그리고 온라인에서 가르친다고 적는다. ATS가 승인한 추가 교육 장소로는 텍사스주 휴스턴 한 곳이 올라 있다1947년 라디오 전도자 찰스 풀러와 보스턴의 목사 해럴드 오켕가가 세운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 신학, 선교학, 심리학, 가족 치료를 함께 가르친다
곳: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주소는 135 North Oakland Avenue, Pasadena, CA [1]. 학교 스스로는 패서디나, 휴스턴, 애리조나, 그리고 온라인에서 가르친다고 적는다 [2]. ATS가 승인한 추가 교육 장소로는 텍사스주 휴스턴 한 곳이 올라 있다 [1].
한 줄 소개: 1947년 라디오 전도자 찰스 풀러와 보스턴의 목사 해럴드 오켕가가 세운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 신학, 선교학, 심리학, 가족 치료를 함께 가르친다 [2].
기원:
1940년대 중반, 라디오 방송 "The Old Fashioned Revival Hour"로 알려진 전도자 찰스 풀러(Charles E. Fuller)가 서부 해안에 젊은 전도자와 선교사를 기를 학교를 세우려 했다. 보스턴 파크 스트리트 교회의 목사 해럴드 존 오켕가(Harold John Ockenga)가 뜻을 같이하면서, 전도자만이 아니라 지적으로 탄탄하고 문화를 읽을 줄 아는 복음주의 목사를 길러야 한다고 권했다 [2].
1947년 5월 두 사람과 다른 복음주의 학자 네 명이 시카고에서 만나 학교를 세우기로 했다. 학교 이름은 찰스 풀러 자신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헨리 풀러의 이름을 딴 것이다 [2].
1947년 9월 29일 학생 39명으로 첫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 쓰려던 저택이 시의 용도 규정에 걸려, 레이크 애비뉴 회중교회의 유치부 주일학교 교실에서 수업했다. 처음 교수는 에버렛 해리슨, 칼 헨리, 해럴드 린드셀, 윌버 스미스였다 [2].
역사:
1953년: 학생이 250명으로 늘어 오클랜드 애비뉴에 새로 지은 페이턴 홀로 옮겼다 [2].
1954년: 에드워드 존 카넬이 2대 총장이 되었다(연도는 위키백과에서만 봄) [5]. 학교 쪽은 카넬 재임 중인 1957년에 미국 신학교 협의회의 정식 인가를 받았고, 카넬이 1959년에 물러났다고 적는다 [2].
1963년: 데이비드 앨런 허버드가 3대 총장이 되어 30년 동안 일했다(연도는 위키백과에서만 봄) [5]. 학교 쪽은 허버드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성경의 무류성(infallibility)을 둘러싼 논쟁의 시기"를 이끌었고, 그의 재임 중에 심리학 대학원과 세계 선교 대학원이 세워졌으며, 1969년에 세 대학원이 서부 지역 인가 기관(WASC)의 인가를 받았다고 적는다 [2].
1965년: 도널드 맥가브란이 세계 선교 대학원의 첫 학장이 되었다(위키백과에서만 봄) [5].
1993~2013년: 리처드 마우가 4대 총장(연도는 위키백과에서만 봄) [5]. 2013년: 마크 래버튼이 5대 총장 [2].
2018~2019년: 패서디나 교정을 팔고 포모나로 옮기려 했으나 2019년 10월 이사회가 계획을 접었다(위키백과에서만 봄) [5].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풀러가 2018년에 지역 분교 세 곳을 닫았고, 이듬해 패서디나 땅을 팔기로 결의했으나 학교가 전에 시와 맺은 개발 협약 때문에 이전이 막혔다고 적었다 [8].
2022년: 데이비드 이매뉴얼 고틀리가 6대 총장으로 지명되었다 [2].
현황:
학위 과정: ATS가 승인한 과정은 목회학 석사(MDiv), 여러 문학 석사(MA), 신학 석사(ThM), 목회학 박사(DMin), 글로벌 리더십 박사, 철학 박사(PhD. 신학, 선교학, 교차문화 신학) 등이다. ATS는 이 인가가 "선교와 신학 대학원(School of Mission and Theology)의 과정에만 해당하고 심리학·결혼 가족 치료 대학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따로 적어 두었다 [1].
학생 수: 1489명(FTE 664.90), 2025년 가을 보고 [1]. 전임 교수는 FTE 67.96 [1].
인가: ATS "Accredited in Good Standing(정상 인가 상태)". 다음 종합 방문은 2031년 가을. ATS가 요구한 보고서로 2026년 11월 재정, 2027년 11월 계획, 2029년 11월 재정이 올라 있다 [1].
기금: 1억 2280만 달러(2024년 6월 30일 기준. 위키백과에서만 봄) [5].
2024~2026년의 변화:
2024년: 학교의 성(性) 윤리 입장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지 않은 선임 책임자 루스 슈미트를 해고했다 [6][7].
2025년 5월: 이사회가 5월 18~19일 회의에서 혼인과 성에 대한 "역사적 신학 이해"를 다시 확인했다. 총장 고틀리는 이 이해를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 그리고 그 결합 안에서의 성적 친밀함"이라고 밝히면서, 동시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연구와 영적 분별과 삶의 경험을 거쳐 다른 언약적 형태의 관계를 긍정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썼다. 학교 대변인은 학생이 지켜야 하는 공동체 규범에는 바뀐 것이 없다고 확인했다 [6][7].
2026년 5월: 이사회가 신앙 선언을 다시 확인하고, 학교의 신학적 정체를 풀어 쓴 "신조(Tenets)" 문서를 승인했다(문서에 적힌 날짜 2026년 5월 18일, 학교 누리집에 올린 날 2026년 5월 21일) [3][4].
관련 교단: 초교파. ATS의 교단 칸에는 "Inter/Multidenominational(여러 교단에 걸침)"이라고 되어 있다 [1]. 학교 스스로도 "교단 중심이 아니다(We are not denominationally centered)"라고 적는다 [3].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신앙 선언 제3조(성경). 원문: "All the book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given by divine inspiration, are the written word of God, the only infallible rule of faith and practice." 옮김: "신구약의 모든 책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믿음과 실천의 오직 하나뿐인 무류한(그르침이 없는) 규범이다." 이어서 성경은 "그 문맥과 목적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고 적는다 [3].
이 신앙 선언에는 '무오(inerrant, 틀림이 없음)'라는 낱말이 없다. 2026년 신조 문서는 그 까닭을 스스로 이렇게 밝힌다. 원문: "This led us to back away from terms like 'inerrancy' and 'literal' ... in favor of emphasizing the 'authority' and 'inspiration' of Scripture, and leading to the conviction that Scripture is the only 'infallible' rule of faith and practice." 옮김: "이 때문에 우리는 '무오'나 '문자적' 같은 낱말에서 물러서고,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힘주어 말하게 되었으며, 성경이 믿음과 실천의 오직 하나뿐인 '무류한' 규범이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4]
누가 서명하는가: 모든 교수, 경영진 전원, 이사가 신앙 선언에 동의하고 해마다 다시 확인한다 [3][4].
같은 문서는 학교를 "복음주의,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세계적, 다민족"이라고 부르고, 교회 지도력에서 남녀가 평등하다는 확신(egalitarian convictions)을 밝힌다.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거룩한 언약"이라는 역사적 이해를 지킨다고 적는다 [4].
(나) 바깥의 평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2022년 5월)는 풀러가 고든콘웰, 트리니티와 함께 "20세기 복음주의를 규정하고 빚는 데 큰 몫을 했다"고 적었고, 세 학교가 인종, 성별, 성(性), 정치를 둘러싼 다툼 속에서 교회와 후원자의 신뢰를 지키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적었다 [8].
뱁티스트 뉴스 글로벌(2025년 5월)은 풀러가 "교단 소속이 없고 100개 교단의 학생이 다니는" 점에서 미국의 큰 신학교들 가운데 독특하다고 적었다. 같은 기사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를 따서, 동성 관계를 긍정하는 교회에 다니는 교수가 열두 명 넘게 있다고 전했다 [7].
위키백과는 학교 안에 "무제한 무오"를 믿는 사람과 "제한 무오(성경이 구원의 일에는 참되지만 역사와 과학의 기록에는 틀림이 있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함께 있다고 적는다(위키백과에서만 봄) [5].
알려진 사람: 칼 헨리, 해럴드 린드셀, 에버렛 해리슨, 윌버 스미스(처음 교수) [2]. 에드워드 존 카넬, 데이비드 허버드, 리처드 마우(총장) [2]. 조지 엘던 래드, 피터 와그너, 랠프 윈터, 도널드 맥가브란(위키백과에서만 봄) [5].
한국 교회와의 관계:
학교의 코리안센터 쪽(한국어)은 이렇게 적는다. "한국어 프로그램은 90년대 초에 목회학과 선교학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현재까지 1,6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습니다." [9]
같은 쪽에 따르면 한국어로 하는 목회학 과정과 선교학 과정이 있고, 2014년부터 한국인을 위한 선교학 박사 과정을 열었으며, 2022년 가을부터 그 과정에 일터(Marketplace) 트랙을 새로 두었다. 한국어 교차문화 신학 철학 박사(PhD-Intercultural Theology) 과정도 있다 [9].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생 수가 자료마다 크게 다르다. ATS: 1489명, FTE 664.90(2025년 가을) [1]. 위키백과 정보 상자: "1,401 FTE(2025)"인데 같은 글 본문에는 "약 664 FTE", "2022년 2,370명", "2,897명"이 함께 나온다 [5]. 학교 역사 쪽: "거의 3,500명"(기준 연도 없음. 같은 쪽이 "창립 뒤 75년"이라고 적으므로 2022년 무렵의 글로 보이나 연도는 글에 없다) [2]. 뱁티스트 뉴스 글로벌: ATS의 "지난해" 자료로 머릿수 1,620명, FTE 713 [7]. ATS의 2025년 가을 값이 가장 새롭고 기준이 분명하다.
고틀리 총장의 연도: 학교 쪽은 "2022년에 6대 총장으로 지명"이라고 적고 [2], 위키백과는 2023년에 6대 총장이 되었다고 적는다 [5]. 지명한 해와 취임한 해의 차이일 수 있으나 이를 밝힌 글은 열지 못했다.
1962년의 이른바 "검은 토요일(Black Saturday)"과 1972년에 신앙 선언의 성경 조항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이번에 연 쪽 어디에도 글자로 나오지 않았다. 확인필요
교수 수: ATS는 전임 교수 FTE 67.96 [1], 뱁티스트 뉴스 글로벌은 "전임 교수 34명" [7]. 세는 기준이 다른 것으로 보이나 확인하지 못했다.
출처:
[1] ATS 회원 학교 쪽 "Fuller Theological Seminary". ats.edu (읽은 날 2026-10-12)
[2] 풀러 신학교 "History and Facts". fuller.edu (중계 읽기. 읽은 날 2026-10-12)
[3] 풀러 신학교 "Our Statement of Faith". fuller.edu (중계 읽기. 읽은 날 2026-10-12)
[4] 풀러 신학교 "Theological Identity & Distinctive Tenets"(PDF, 2026년 5월 18일) fuller.edu , 그리고 알림 글 "Fuller Seminary Reaffirms Statement of Faith and Articulates Theological Tenets"(2026-05-21) fuller.edu (중계 읽기. 읽은 날 2026-10-12)
[5] 위키백과(영어) "Fuller Theological Seminary". en.wikipedia.org (읽은 날 2026-10-12)
[6] MinistryWatch(RNS 기사 옮겨 실음) "Fuller Seminary Reaffirms Stance on Biblical Marriage"(2025-05-29). ministrywatch.com (읽은 날 2026-10-12)
[7] Baptist News Global "Fuller Seminary affirms historic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marriage"(2025-05-30). baptistnews.com (읽은 날 2026-10-12)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EDS · 옮기는 중이다. 2025~2026학년도까지는 미국 일리노이주 배넉번(시카고 북쪽. 디어필드라고도 적힘)에 있었다. ATS는 지금 이 학교의 이름을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at Trinity Western University"로, 주소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랭리(22500 University Drive, Langley, BC)로 싣고 있다미국 복음주의 자유교회(EFCA)와 이어진 신학교. 1960년대 뒤로 여러 복음주의 전통의 교수와 학생이 모이는 학교가 되었고, 2025년 캐나다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교(TWU)로 넘어가기로 했다
곳: 옮기는 중이다. 2025~2026학년도까지는 미국 일리노이주 배넉번(시카고 북쪽. 디어필드라고도 적힘)에 있었다 [2][3]. ATS는 지금 이 학교의 이름을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at Trinity Western University"로, 주소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랭리(22500 University Drive, Langley, BC)로 싣고 있다 [1].
한 줄 소개: 미국 복음주의 자유교회(EFCA)와 이어진 신학교. 1960년대 뒤로 여러 복음주의 전통의 교수와 학생이 모이는 학교가 되었고, 2025년 캐나다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교(TWU)로 넘어가기로 했다 [2][3].
기원: 학교 쪽은 "1897년 교회 지하실의 작은 학교로 시작해, 뒤에 미국 복음주의 자유교회(EFCA)가 된 교단의 목회자를 길렀다"고 적는다 [3]. RNS 기사는 이 학교가 "1940년대에 시카고의 스웨덴계 성경 학교와 미네소타의 노르웨이·덴마크계 성경 학교가 합쳐져 생겼다"고 적는다 [5]. 두 설명은 서로 다른 시점을 가리킨다(아래 "자료마다 다른 것" 참조).
역사:
1897년: 시작(학교 쪽 설명) [3].
1940년대: 스웨덴계 학교와 노르웨이·덴마크계 학교의 합침(RNS) [5].
1963년: 일리노이주 디어필드로 옮김. 학교 쪽은 케네스 캔처(Kenneth Kantzer)의 지도 아래 "교단 신학교를 넘어 복음주의 사상의 중심"이 되었다고 적는다 [3]. RNS는 캔처가 1960년부터 1978년까지 학장이었다고 적는다 [5].
2023년: 모체인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TIU)가 학부의 대면 과정을 포함한 일부 교내 과정을 닫았다 [5][6].
2025년 4월 8일: TEDS가 캐나다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교(TWU)에 인수된다고 두 학교가 발표했다 [5][6].
2026년 2월 2일: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가 배넉번 교정의 매각을 마쳤다고 알렸다 [4].
현황:
학위 과정: ATS 승인 과정은 MDiv, 문학 석사(신학 연구, 기독교 사역, 윤리·신학·문화, 정신 건강 상담 등), ThM, DMin, PhD(교육학, 선교학, 신학) [1]. 학교의 안내는 옮긴 뒤에도 MDiv, MA/TS, ThM, DMin, PhD는 새 학생을 받는다고 적고, 일부 과정은 다시 짠다고 적는다 [2].
학생 수: 746명(FTE 368.20), 2025년 가을 보고 [1]. 전임 교수 FTE 38.94 [1].
줄어든 흐름: RNS에 따르면 2015년 1,182명(FTE 753)에서 2024년 가을 813명(FTE 403)으로 줄었다 [5]. 뱁티스트 뉴스 글로벌은 30년 전 FTE가 1,510명이었다고 적는다 [6].
인가: ATS "Accredited in Good Standing". ATS는 2026년 가을에 "합병과 교정 이전(Merger & Campus Relocation)"을 살피는 방문을 잡아 두었고, 2026년 11월 교육 평가 보고서, 2027년 11월 재정 보고서를 요구했다 [1].
2024~2026년의 변화(이 학교에서 가장 큰 일):
2025년 4월: TWU가 TEDS의 소유권을 넘겨받는 정식 합의 [2][5].
학교가 밝힌 일정: 2025년 4월부터 12월까지 실사, 소유권 이전은 2025년 12월 31일에 마무리, 2025~2026학년도까지는 배넉번에 머물고, 2026년 가을에 랭리 교정에서 첫 학생을 받는다 [2].
까닭: 학교는 "작은 종합대학을 위해 지은 배넉번 교정을 유지하는 재정 부담"을 들었다 [2]. RNS는 모체 대학이 2023년에 1,730만 달러, 2024년 감사에서 760만 달러 적자였고, 2026년에 갚아야 하는 1,900만 달러 장기 대출이 있으며, 교정을 판 돈으로 이를 갚는다고 적었다. TWU는 TEDS의 빚을 떠안지 않는다 [5][6].
지도부: TIU 총장 케빈 콤펠리언이 2025년 6월 30일 은퇴하고, TEDS 학장 데이비드 파오(David W. Pao)가 7월 1일부터 임시 총장을 겸했다 [2]. ATS에도 대표와 학무 책임자가 모두 파오로 올라 있다 [1].
상담 과정: 정신 건강 상담 석사(MA/MHC)는 2026년 봄 뒤로 이어 갈 수 없어, 다른 학교로 옮길 길을 마련했다 [2].
남는 것: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는 온라인 과정과 캘리포니아 샌타애나의 법학 대학원을 계속 운영한다 [2][5].
지금 상태: 학교 누리집 아래쪽에 "TEDS has officially transitioned to become the divinity school of Trinity Western University(TEDS는 공식적으로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교의 신학 대학원으로 옮겨 갔다)"라는 알림이 붙어 있다 [7]. TWU 누리집에도 TEDS가 학교의 한 과정으로 올라 있다 [8].
관련 교단: 미국 복음주의 자유교회(Evangelical Free Church of America, EFCA). ATS의 교단 칸에 그렇게 적혀 있다 [1]. 학교의 안내는 옮긴 뒤에도 EFCA와의 관계를 이어 가면서 캐나다 복음주의 자유교회와의 관계를 넓힌다고 적는다. TWU도 EFCA에서 나온 학교이며 두 학교가 같은 신앙 선언을 쓴다고 적는다 [2][3].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이 학교는 EFCA의 신앙 선언을 그대로 쓴다 [7].
성경 조항. 원문: "As the verbally inspired Word of God, the Bible is without error in the original writings, the complete revelation of His will for salvation, and the ultimate authority by which every realm of human knowledge and endeavor should be judged." 옮김: "낱말까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원본에서 틀림이 없으며,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의 완전한 계시이고, 사람의 모든 앎과 일을 판단하는 마지막 권위이다." [7]
학교 소개: "성경의 무오에 헌신하면서도 신학의 다양함을 자랑으로 여기는, 폭넓은 복음주의 학교"라고 스스로 적는다 [9].
학장 파오는 학교의 사명을 "무오한 말씀(the inerrant Word)의 변화시키는 힘을 온 세계에 증언하도록 사람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3].
(나) 바깥의 평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2022년 5월)는 이 학교가 풀러, 고든콘웰과 함께 20세기 복음주의를 규정하는 데 큰 몫을 했다고 적었다 [10].
뱁티스트 뉴스 글로벌(2025년 4월)은 이 학교가 "한때 미국 신학교들 가운데 강자였다"고 적었다 [6].
알려진 사람: 케네스 캔처(학장) [3][5]. 케빈 밴후저(2025년에 강의하고 있음이 학교 글에 나옴) [11]. 데이비드 파오(학장) [1][2]. 칼 헨리, D. A. 카슨, 웨인 그루뎀, 더글러스 무(위키백과에서만 봄) [12].
한국 교회와의 관계:
ATS가 이 학교에 승인한 추가 교육 장소가 "Seoul, South Korea(대한민국 서울)" 한 곳이다 [1].
학교 소개 쪽은 "일리노이, 한국, 그리고 미국 안의 분교에서 박사와 석사 과정을 연다"고 적는다 [9]. 다만 이 글은 옮기기 전의 글로 보인다.
한국어 과정의 이름, 한국인 학생 수는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세운 해. 학교 쪽과 위키백과는 1897년 [3][12], RNS는 "1940년대에 두 학교가 합쳐져 생겼다" [5]. 위키백과는 "1963년 트리니티 신학교와 성경 대학의 합침으로 법인이 됨"이라고도 적는다 [12]. 1897년은 뿌리가 되는 학교의 시작, 1940년대는 합침의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이 사이를 차례대로 풀어 쓴 공식 연표는 열지 못했다.
소유권이 넘어간 날. 학교의 안내는 2025년 12월 31일을 예정일로 적었다 [2]. 2026년 2월 2일의 TIU 알림은 아직 "TEDS를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 조치의 하나로 적는다 [4]. 지금 누리집에는 "공식적으로 옮겨 갔다"는 알림이 있으나 날짜가 없다 [7]. 실제로 마무리된 날은 확인하지 못했다.
2026년 가을에 랭리에서 수업이 시작되었는지를 알리는 글은 열지 못했다. ATS 주소가 랭리로 바뀌어 있고 [1] TWU 누리집에 과정이 올라 있는 것 [8]까지만 확인했다.
교수 가운데 몇 명이 캐나다로 옮겼는지는 찾지 못함. 2025년 4월 기사에서도 "알 수 없다"고 했다 [5].
학생 수: 위키백과 본문은 "1,200명 넘는 대학원생"이라고 적으나 연도가 없고, 정보 상자는 "368 FTE(2025)"이다 [12]. ATS 2025년 가을 값(746명, FTE 368.20)과 맞는 것은 정보 상자 쪽이다.
곳의 이름: 학교 글과 위키백과에 "배넉번"과 "디어필드"가 섞여 나온다 [3][11][12].
출처:
[1] ATS 회원 학교 쪽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at Trinity Western University". ats.edu (읽은 날 2026-10-12)
[2] TEDS "FAQ: TEDS at TWU Transition". tiu.edu (읽은 날 2026-10-12)
[3] TEDS "Singular Vision"(합침을 알리는 글). tiu.edu (중계 읽기. 읽은 날 2026-10-12)
[4] Trinity International University "Trinity International University Completes Sale of Bannockburn Campus Property"(2026-02-02). tiu.edu (읽은 날 2026-10-12)
[5] The Banner(RNS 밥 스미타나 기사 옮겨 실음. 원 기사 2025-04-08)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Will Move to Canada in Acquisition Deal". thebanner.org (읽은 날 2026-10-12. RNS 원래 쪽은 403으로 열지 못함)
[6] Baptist News Global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will merge into Canadian school"(2025년 4월). baptistnews.com (읽은 날 2026-10-12)
[7] TEDS "Statement of Faith". tiu.edu (읽은 날 2026-10-12)
[8] Trinity Western University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wu.ca (읽은 날 2026-10-12)
고든콘웰 신학교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 미국 매사추세츠주 사우스 해밀턴(130 Essex Street, South Hamilton, MA). 그 밖에 보스턴(록스베리),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플로리다주 잭슨빌, 온라인1969년 빌리 그레이엄, 해럴드 오켕가, 하워드 퓨의 주도로 보스턴과 필라델피아의 두 침례교 계통 학교가 합쳐져 생긴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
곳: 미국 매사추세츠주 사우스 해밀턴(130 Essex Street, South Hamilton, MA) [1]. 그 밖에 보스턴(록스베리),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플로리다주 잭슨빌, 온라인 [1][3].
한 줄 소개: 1969년 빌리 그레이엄, 해럴드 오켕가, 하워드 퓨의 주도로 보스턴과 필라델피아의 두 침례교 계통 학교가 합쳐져 생긴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 [2].
기원:
뿌리는 1800년대 말 동부의 두 도시 학교다. 하나는 보스턴의 클래런던 침례교회 목사 A. J. 고든이 이끈 보스턴 선교사 훈련원(Boston Missionary Training Institute), 다른 하나는 필라델피아의 그레이스 침례교회(침례교 성전) 목사 러셀 콘웰이 이끈 템플의 과정이다. 두 학교는 도시로 몰려든 이민자에게 사역 교육의 길을 열려 했다 [2].
1969년: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해럴드 존 오켕가, 자선가 J. 하워드 퓨가 "북동부에 튼튼한 복음주의 신학교가 필요하다"고 보고, 콘웰 신학교(본디 필라델피아 템플 대학교의 일부)와 고든 신학교(전 보스턴 선교사 훈련원)를 합쳤다 [2].
세운 이들이 밝힌 뜻. 원문: "an independent, interdenominational seminary whose constituents are united in the belief that the Bible is the infallible, authoritative Word of God". 옮김: "성경이 무류하고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으로 하나 된, 독립적이고 초교파적인 신학교" [2].
역사:
1888년, 1889년: 두 뿌리 학교의 시작(연도는 위키백과에서만 봄. 어느 해가 어느 학교인지는 아래 참조) [5].
1969년: 합침. 해밀턴에서 수업 시작 [2][5].
1976년: 보스턴 록스베리에 도시 사역 교육 센터(CUME) 세움(위키백과에서만 봄) [5].
1992년: 샬럿 과정 시작. 2006년 2월: 잭슨빌 개설(위키백과에서만 봄) [5].
2019년: 스콧 선퀴스트가 7대 총장이 됨 [5][6].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에 따르면 그때 뉴잉글랜드 인가 기관이 학교가 재정 자원 기준을 "채우지 못할 위험"에 있다고 알렸고, 선퀴스트는 두 해 동안 약 120만 달러의 지출을 줄였다 [6].
2022년 5월: 해밀턴 본교정(102에이커)을 팔고 보스턴으로 옮기겠다는 계획 발표 [6][7].
그 뒤: 해밀턴에 남기로 하고 쓰임이 적은 아파트만 팔기로 방향을 바꿈(위키백과에서만 봄. 위키백과는 "이듬해"라고 적고 2024년 기사 제목 "Gordon-Conwell Will Stay on the Hamilton Campus"를 든다) [5].
2026년 9월 8일: 아파트 여섯 동의 매각을 마치고 빚이 없는 학교가 되었다고 발표 [4].
현황:
학위 과정: MDiv, 문학 석사(기독교 상담, 기독교 사역, 상담, 신학 연구), ThM, DMin, 신학 연구 철학 박사(PhD). ATS 목록에는 성서 언어, 구약, 신학 등 여러 문학 석사가 "중단됨"으로 올라 있다 [1]. 학교는 해밀턴에서 신학 연구 PhD 과정을 새로 열어 2026년 9월 첫 학생 여섯 명을 받았다고 적는다 [4].
학생 수: 1294명(FTE 703.30), 2025년 가을 보고 [1]. 전임 교수 FTE 38.22 [1].
줄어든 흐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가 ATS 자료를 따서 적은 바로는 FTE가 2012년 1,230명에서 2021년 633명으로 줄었다 [6].
인가: ATS "Accredited in Good Standing", 다음 종합 방문 2035년 가을 [1]. 학교는 2026년에 뉴잉글랜드 고등교육 위원회(NECHE)와 ATS의 10년 인가가 갱신되었고, 상담 과정은 CACREP의 인가를 따로 받는다고 적는다 [4].
2024~2026년의 변화:
2025년 12월: 해밀턴 시가 아파트 터의 용도 변경을 승인(필요한 3분의 2를 크게 넘는 찬성) [4].
2026년 9월 8일: 아파트 여섯 동을 팔아 빚을 모두 갚음. 학교는 102에이커 사우스 해밀턴 교정에서 기숙 교육을 이어 간다고 밝혔다 [4].
그에 앞서 록스베리 워런가 90번지의 CUME 건물을 팔았고, 그 건물의 공간은 계속 쓸 수 있다고 한다 [4].
2025년: 릴리 재단에서 100만 달러 보조금을 받아 "목회 형성 사업"을 시작 [4].
2026년 5월 14일: 선퀴스트 총장이 2027년 말에 은퇴한다고 발표 [8].
관련 교단: 초교파. ATS 교단 칸은 "Inter/Multidenominational" [1]. 학교는 학생이 85개 교단, 50개 나라에서 온다고 적는다 [3]. 두 뿌리 학교는 침례교회에서 시작했다 [2].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신앙 선언 제1조. 원문: "The sixty-six canonical books of the Bible as originally written were inspired of God, hence free from error. They constitute the only infallible guide in faith and practice." 옮김: "성경의 정경 66권은 처음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고, 그러므로 틀림이 없다. 이 책들은 믿음과 실천의 오직 하나뿐인 무류한 길잡이이다." [9]
이 조항은 '무오(inerrant)'라는 낱말을 쓰지 않지만 "틀림이 없다(free from error)"고 적는다 [9].
학교 소개: "역사적으로 정통이며 복음주의"라고 스스로 적고, "믿음의 핵심이 아닌 부분에서는 생각이 다른 교수와 학생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적는다 [3].
(나) 바깥의 평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2022년 5월)는 "역사 있는 복음주의 신학교"라고 부르고, 풀러, 트리니티와 함께 20세기 복음주의를 규정하는 데 큰 몫을 했다고 적었다 [6].
위키백과는 이 학교를 "개신교이며 복음주의이고 성경 무오 같은 교리를 가르친다"고 적는다(위키백과에서만 봄) [5].
알려진 사람: 해럴드 오켕가(첫 총장), 빌리 그레이엄(세운 이) [2][5]. 졸업생으로 팀 켈러와 캐시 켈러, 마크 데버, 케빈 드영, 에서 매콜리, 벤 위더링턴 3세(크리스채너티 투데이) [6]. 교수로 고든 피, 월터 카이저, 데이비드 웰스, 해던 로빈슨(위키백과에서만 봄) [5]. 애즈베리 신학교의 8대 총장 티머시 테넌트는 여기서 11년 동안 세계 선교학 교수였다(애즈베리 쪽 글) [10].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ATS에 학무 책임자가 "Seong H Park"으로 올라 있으나 [1], 이 사람의 출신이나 한국 교회와의 관계를 밝힌 글은 열지 않았으므로 여기서 미루어 말하지 않는다. 한국어 과정이나 한국인 학생 수도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뿌리 학교의 시작 해. 학교의 역사 쪽은 연도 없이 "1800년대 말"이라고만 적는다 [2]. 위키백과 본문은 고든 쪽이 1889년(고든 성경 학원), 템플 쪽이 1888년(템플 칼리지 인가)이라고 적는데, 같은 글의 정보 상자는 "1888년(고든 신학교), 1889년(콘웰 신학교)"로 두 해를 뒤바꿔 적었다 [5]. 크리스천 포스트는 학교가 "18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적는다 [7].
[7] The Christian Post "Gordon-Conwell Seminary to sell 100-acre main campus to preserve 'long-term fiscal health'"(2022-05-20). christianpost.com (읽은 날 2026-10-12)
[8] 고든콘웰 소식 목록(2026-05-14 은퇴 발표의 제목과 첫머리). gordonconwell.edu (중계 읽기. 읽은 날 2026-10-12)
[9] 고든콘웰 "Statement of Faith". gordonconwell.edu (중계 읽기. 읽은 날 2026-10-12)
댈러스 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 DTS ·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3909 Swiss Avenue, Dallas, TX). ATS가 승인한 추가 교육 장소는 애틀랜타, 오스틴, 버지니아주 버크, 과테말라시티, 휴스턴, 샌안토니오1924년 루이스 스페리 체이퍼가 세운 초교파 신학교. 세대주의(하나님이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다스리신다고 보는 성경 해석 체계)와 전천년설을 교리 선언에 담고 있다
곳: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3909 Swiss Avenue, Dallas, TX) [1]. ATS가 승인한 추가 교육 장소는 애틀랜타, 오스틴, 버지니아주 버크, 과테말라시티, 휴스턴, 샌안토니오 [1].
한 줄 소개: 1924년 루이스 스페리 체이퍼가 세운 초교파 신학교. 세대주의(하나님이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다스리신다고 보는 성경 해석 체계)와 전천년설을 교리 선언에 담고 있다 [2][3].
기원:
1924년 "복음주의 신학 대학(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 [3].
세운 이는 롤린 체이퍼와 그의 동생 루이스 스페리 체이퍼, 그리고 윌리엄 헨리 그리피스 토머스다. 루이스 체이퍼가 첫 반 학생 13명을 가르쳤고, 토머스는 첫 신학 교수가 될 예정이었으나 첫 수업 전에 세상을 떠났다. 세운 뜻은 성경 강해 설교를 가르치는 학교였다(위키백과에서만 봄) [5].
1935년: 신학 석사(Th.M.) 과정 시작. 학교의 80주년 글은 4년 과정이 1935년에 시작되었다고 적는다 [4].
1936년: 이름을 "댈러스 신학교 및 신학 대학원"으로 바꿈.
1952년: 존 월부어드가 2대 총장.
1969년: 남부 대학 협의회(SACS)의 인가. 이름을 "댈러스 신학교"로 바꿈.
1975년: 처음으로 여학생을 받음.
1986년: 도널드 캠벨 3대 총장. 1993년: Th.D.의 이름을 Ph.D.로 바꿈.
1994년: 찰스 스윈돌 4대 총장. ATS 인가.
2001년: 마크 베일리 5대 총장.
2020년: 마크 야브로가 총장이 됨(위키백과에서만 봄) [5]. ATS에도 대표가 야브로로 올라 있다 [1].
현황:
학위 과정: 문학 석사 여럿(변증과 전도, 성경 번역, 군목과 돌봄 사역, 기독교 교육, 상담, 유대학 등), 성서·신학 연구 석사, STM, ThM, 교육 목회학 박사, DMin, EdD, PhD [1]. 누리집에는 중국어 과정과 스페인어 과정이 따로 올라 있다 [2].
학생 수: 2622명(FTE 1377.80), 2025년 가을 보고 [1]. 학교 누리집은 "학생 2,600명, 졸업생 16,000명"이라고 적는다 [2]. 전임 교수 FTE 86.88 [1].
인가: ATS "Accredited in Good Standing", 다음 종합 방문 2034년 봄 [1]. SACS 인가(1969년부터) [3].
2024~2026년의 변화: 합병, 이전, 재정 위기 같은 큰 변화는 찾지 못함. ATS 쪽에도 재정 보고 요구는 없고, 2027년과 2028년의 "교육 실험" 보고와 2028년 교육 평가 보고만 올라 있다 [1].
관련 교단: 교단에 속하지 않음. ATS 교단 칸은 "Nondenominational(무교단)" [1]. 위키백과는 ATS 인가 학교 가운데 가장 큰 무교단 신학교라고 적는다(위키백과에서만 봄) [5].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교리 선언 제1조(성경). 원문: "We believe that the whole Bible in the originals is therefore without error." 옮김: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전체가 원본에서 틀림이 없다고 믿는다." 바로 앞 문장은 하나님의 영감이 원본에 나타난 대로 역사, 시, 교리, 예언의 모든 부분에 똑같이 온전히 미친다고 적는다. [2]
세대주의와의 관계. 교리 선언에 "제5조 세대(The Dispensations)"가 따로 있다. 원문 첫 문장: "We believe that the dispensations are stewardships by which God administers His purpose on the earth through human beings under varying responsibilities." 옮김: "우리는 세대란 하나님이 서로 다른 책임 아래 있는 사람들을 통해 땅 위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청지기 직분이라고 믿는다." 이 조항은 성경이 길게 밝히는 세대로 모세 율법의 세대, 지금의 은혜의 세대, 앞으로 올 천년 왕국의 세대 셋을 들고, 이 셋은 "서로 구별되며 섞거나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적는다 [2].
같은 조항은 세대가 "구원의 길이 아니며" 구원은 어느 세대에서나 "은혜로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피에 바탕을 두고" 주어진다고 덧붙인다. 또 세대는 "은혜 언약을 집행하는 서로 다른 방법이 아니다"라고 적는다 [2]. 이 마지막 말은 장로교의 언약 신학이 쓰는 표현과 선을 긋는 대목이다(이 풀이는 조사자의 설명이며, 선언문 자체는 장로교를 이름 붙여 말하지 않는다).
종말 조항: 제18조 복된 소망, 제19조 환난, 제20조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어진다. 제19조는 "교회가 옮겨진 뒤에 이스라엘의 일흔째 이레가 이루어지고, 그 동안 교회는 하늘에 있을 것"이라고 적고, 제20조는 재림하신 그리스도가 "천년 시대를 여시고 이스라엘을 그 땅으로 회복시키신다"고 적는다 [2]. 곧 환난 전 휴거와 전천년설이다.
누가 어디까지 동의해야 하는가. 교수와 이사는 해마다 교리 선언 전체(21개 조)에 동의한다. 학생과 직원은 일곱 가지 기독교 핵심(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성과 인성, 인류의 영적 타락, 그리스도의 대속과 몸의 부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구원, 그리스도의 몸으로 다시 오심, 성경의 권위와 무오)에만 동의하면 된다 [2]. 세대주의는 이 일곱 가지에 들어 있지 않다.
학교의 사명 선언. 원문: "to glorify God by equipping godly servant-leaders for the proclamation of his Word and the building up of the body of Christ worldwide." 옮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온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경건한 섬김의 지도자를 길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6].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이 학교가 "세대주의 신학 체계를 널리 퍼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적고, 그 바탕으로 체이퍼의 "조직신학" 8권(1948년)을 든다(위키백과에서만 봄) [5].
학교 도서관의 80주년 글도 체이퍼의 "조직신학"(1947~1948년 펴냄)을 "전천년, 세대주의 성경 해석을 처음으로 체계로 세운 책"이라고 적고, 지금도 학교의 교재라고 적는다 [4].
위키백과는 이 학교가 근본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고, 졸업생들이 미국 남부에 성경 대학과 독립 근본주의 교회를 세웠다고 적는다. 교수 명단에는 크레이그 블레이징을 "진보적 세대주의(progressive dispensationalism)의 지지자"로 적어 두었다(위키백과에서만 봄) [5].
알려진 사람: 루이스 스페리 체이퍼(세운 이, 첫 총장), 존 월부어드(2대 총장), 찰스 스윈돌(4대 총장, 졸업생) [3][5]. 졸업생으로 데이비드 제러마이아, 앤디 스탠리, 토니 에번스(위키백과에서만 봄) [5].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학교 누리집의 다른 언어 과정으로는 중국어와 스페인어만 보였고 한국어 과정은 보이지 않았다 [2]. 한국인 학생 수도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이름을 바꾼 해. 공식 연표에는 1936년에 "댈러스 신학교 및 신학 대학원"으로, 1969년에 "댈러스 신학교"로 바꾸었다고 두 번 나온다 [3]. 위키백과 머리글은 1924년 이름만 적는다 [5]. 연표대로라면 이름이 두 번 바뀐 것이다.
인가. 위키백과는 1944년 뉴욕주 교육 당국의 인가를 처음 인가로 적고 [5], 공식 연표에는 1944년 항목이 없고 1969년 SACS 인가부터 나온다 [3].
교수 서명에서 "세대주의 서약"이 느슨해졌다는 이야기는 인터넷 게시판 글의 주장으로만 검색에 걸렸고 열어서 확인한 쪽이 없다. 적지 않는다. 확인필요
진보적 세대주의와 학교의 공식 관계를 학교 스스로 밝힌 글은 찾지 못함.
출처:
[1] ATS 회원 학교 쪽 "Dallas Theological Seminary". ats.edu (읽은 날 2026-10-12)
[2] 댈러스 신학교 "Doctrinal Statement". dts.edu (읽은 날 2026-10-12)
[3] 댈러스 신학교 터핀 도서관 "Major Events in the History of Dallas Theological Seminary". dtslib.dts.edu (읽은 날 2026-10-12)
[4] 댈러스 신학교 터핀 도서관 "History of Dallas Theological Seminary"(80주년 글). biblos.dts.edu (읽은 날 2026-10-12)
[5] 위키백과(영어) "Dallas Theological Seminary". en.wikipedia.org (읽은 날 2026-10-12)
남침례 신학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SBTS. '서던 신학교'라고도 부름 ·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2825 Lexington Road, Louisville, KY). ATS 승인 추가 교육 장소는 테네시주 잭슨1859년에 세워진, 미국 남침례회(Southern Baptist Convention, SBC)의 첫 신학교. 1993년 앨버트 몰러 총장의 취임 뒤로 학교의 방향이 크게 바뀌었다
곳: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2825 Lexington Road, Louisville, KY) [1]. ATS 승인 추가 교육 장소는 테네시주 잭슨 [1].
한 줄 소개: 1859년에 세워진, 미국 남침례회(Southern Baptist Convention, SBC)의 첫 신학교. 1993년 앨버트 몰러 총장의 취임 뒤로 학교의 방향이 크게 바뀌었다 [2][4].
기원:
1856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침례교인들이 제임스 보이스(James P. Boyce)와 모여 신학교의 재정을 의논했고, 1857년 보이스가 루이빌의 총회에서 학교를 세우는 안을 통과시켰다. 1859년 가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학생 26명으로 첫 학년을 시작했다(위키백과에서만 봄) [5].
학교의 처음 헌장은 1858년에 채택되었고, 거기에 교리 표준인 "원리 요약(Abstract of Principles)"이 들어 있다 [3].
1998년: 보이스 대학(4년제 성경 대학)을 엶 [6]. 학교 쪽은 1974년부터 성인 교육 센터였던 보이스를 몰러가 4년제 인가 대학으로 바꾸었다고 적는다 [4].
1990년대의 방향 전환: 양쪽의 설명
바탕이 되는 사실(양쪽이 함께 적는 것): 남침례회 안에서 "보수 재기(conservative resurgence)"라 불리는 움직임이 일어나 보수 쪽이 교단 기관 이사회의 다수를 차지해 갔다. 1990년까지 이 학교 이사회에서도 보수 쪽이 다수가 되었다. 1992년 허니컷 총장이 물러나고 1993년 몰러가 33세에 총장이 되었다. 그 뒤 몇 해 사이에 교수가 크게 바뀌었다 [4][6].
학교 쪽의 설명(학교 문서 보관소의 "재기: 1993~현재") [4]:
허니컷 총장은 1985년 개강 연설에서 보수 쪽에 대해 "거룩한 전쟁(holy war)"을 선언했다. 그는 보수 쪽이 침례교의 자유 전통에서 떠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몰러의 선출은 "성경 무오에 대한 헌신이 서던에 다시 나타났다는 표시"였다. 그의 지도 아래 모든 교수는 성경에 틀림이 없으며, 학교의 고백인 "원리 요약"과 남침례회의 고백인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가 성경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나타낸다고 믿어야 하게 되었다.
그 결과를 학교는 "서던은 처음 세울 때의 뜻에 다시 헌신했다"고 적는다. 학교의 다른 쪽은 몰러가 취임 연설에서 학교가 "원리 요약에 밝힌 고백적 뿌리로 돌아갈 것"을 선언했다고 적는다 [2].
온건한 교수들에 대해서는 "떼를 지어 떠났다(departed in droves)"고 적는다.
비판하는 쪽의 설명(온건 침례교 쪽 언론 뱁티스트 뉴스 글로벌의 2009년 기사. 본디 Associated Baptist Press 기사) [6]:
보수 재기의 지도자들은 이사회의 다수를 "체계적으로" 차지한 다음 그 표로 온건한 기관장을 자기들과 생각이 맞는 사람으로 바꾸었다.
몰러는 박사 과정 학생 때 온건한 전임 총장 허니컷의 조수로 일했으나, 1989~1993년 조지아주 교단 신문의 편집장으로 있는 동안 보수 쪽으로 돌아섰다.
몰러의 첫 충돌은 이 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친 첫 여성이자 하나뿐인 여성인 몰리 마셜과의 일이었다. 마셜은 1994년 "이단 혐의로 고발하겠다는 위협 아래" 학교를 떠났다.
그 뒤 네 해 동안 "교수의 약 60퍼센트가 강제로든 스스로든 떠났다." 빈자리는 성경 무오와, 교회와 가정에서의 여성의 자리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받아들이는 교수들로 채워졌다.
1995년 몰러는 "성경이 여성의 담임 목사직을 금한다는 믿음을 모든 교수가 긍정해야 한다"는 요구에 맞선 다이애나 갈런드를 학장직에서 해임했다. 1997년 이사회는 사회복지학이 "너무 세속화되고 자유주의화되었다"는 몰러의 권고에 따라 카버 사회복지 대학원을 없앴다.
2005년 학교는 상담학과의 방향을 바꾸어, 세속 심리학과 성경 훈련을 아우르던 "목회 돌봄" 모형에서 성경에만 초점을 둔 교회 중심의 길로 옮겼다. 기사는 이것이 이 학교에서 45년을 가르친 웨인 오츠가 세운 방향을 뒤집은 것이라고 적는다.
위키백과의 설명(위키백과에서만 봄): 몰러는 교수들에게 "원리 요약"을 말로 하든 속으로 하든 아무 유보 없이 긍정하라고 요구했고,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도 긍정하라고 했다. "압도적 다수의 교수가 원리 요약은 긍정했으나, 더 보수적인 쪽으로 고쳐진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의 일부 교리는 긍정하기를 거절했다." 그 뒤 많은 교수가 해임되거나 물러났다 [5].
현황:
학위 과정: MDiv, 문학 석사(변증, 윤리와 공공 신학, 이슬람 연구, 신학 연구, 성경적 상담, 기독교 교육, 교회 사역, 지도력, 선교학, 예배 인도), ThM, 교육 목회학 박사, DMin, EdD, PhD [1]. 학부 과정인 보이스 대학이 딸려 있다 [4].
학생 수: 3422명(FTE 1964.40), 2025년 가을 보고 [1]. 이번에 맡은 일곱 학교 가운데 가장 많다. 전임 교수 FTE 55.00 [1].
인가: ATS "Accredited in Good Standing", 다음 종합 방문 2033년 봄 [1]. 위키백과는 SACSCOC 인가도 적는다 [5].
2024~2026년의 변화:
2024년 6월: ATS가 "기독교 연구" 집중의 PhD를 승인하고, 이 학위를 실시간 온라인 수업으로 주는 5년 실험을 승인했다 [1].
2026년 4월 13일: 이사회 봄 회의에서 2026~2027학년도 운영 예산 5,870만 달러(전해보다 4.7퍼센트 늘어남)를 채택했다. 총장은 여전히 몰러다 [7].
합병, 이전, 재정 위기 같은 변화는 찾지 못함.
관련 교단: 미국 남침례회(Southern Baptist Convention)의 공식 소속 신학교. ATS 교단 칸에 "Southern Baptist Convention"이라고 되어 있다 [1]. 학교의 사명 선언은 스스로를 "남침례회 교회들의 종"이라고 적는다 [2]. 헌장은 모든 교수가 "정규 침례교회의 교인"이어야 한다고 정한다 [3].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원리 요약" 제1조(성경). 원문: "The Scriptur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were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are the only sufficient, certain and authoritative rule of all saving knowledge, faith and obedience." 옮김: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으며, 구원에 이르는 모든 앎과 믿음과 순종의 오직 하나뿐인, 넉넉하고 확실하며 권위 있는 규범이다." [3]
이 조항에는 '무오'나 '틀림이 없다'는 낱말이 없다. 그러나 학교 문서 보관소는 몰러 취임 뒤로 모든 교수가 "성경에 틀림이 없다(without error)"고 믿어야 한다고 적는다 [4].
헌장의 교수 서약. 원문: "to teach in accordance with, and not contrary to, the Abstract of Principles". 옮김: "원리 요약에 맞게, 그리고 그에 어긋나지 않게 가르친다." 여기서 벗어나면 사임하거나 이사회가 해임할 까닭이 된다 [3].
"원리 요약"에는 선택(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영생으로 택하심이 "미리 보신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의 자비 때문"이라는 조항), 성도의 견인, 침수 침례(믿는 사람을 물에 잠그는 세례), 주의 날 지키기 조항이 들어 있다 [3].
남침례회의 고백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 2000"의 성경 조항. 원문: "It has God for its author, salvation for its end, and truth, without any mixture of error, for its matter. Therefore, all Scripture is totally true and trustworthy." 옮김: "성경은 하나님을 지은이로, 구원을 목적으로, 조금의 틀림도 섞이지 않은 진리를 내용으로 한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온전히 참되고 믿을 만하다." [8]
사명 선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받들고, 지상 명령을 우리의 임무로 삼으며, 남침례회 교회들의 종이 된다" [2].
(나) 바깥의 평가:
뱁티스트 뉴스 글로벌은 이 학교를 남침례회의 "대표(flagship) 신학교"라고 부르고, 몰러 아래에서 "여성 설교자를 북돋우던 분위기가 가정에서 아내의 순종과 교회에서 여성끼리의 사역을 힘주어 말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적었다 [6].
위키백과는 2018년에 학교가 노예제와의 관계를 밝힌 보고서를 냈다고 적는다(위키백과에서만 봄) [5].
알려진 사람: 제임스 보이스(세운 이, 첫 총장), 존 브로더스(2대 총장), E. Y. 멀린스(총장), 앨버트 몰러(9대 총장. 이 학교 졸업생) [4][5]. 몰러가 데려온 교수로 톰 네틀스, 브루스 웨어, 톰 슈라이너, 로버트 스타인 [4]. 떠난 사람으로 몰리 마셜, 다이애나 갈런드, 웨인 오츠 [6]. 풀러 신학교의 6대 총장 데이비드 고틀리도 이 학교에서 MDiv와 PhD를 받았다(풀러 쪽 글) [9].
한국 교회와의 관계: 2005년 6월 뱁티스트 프레스 기사에 따르면, 그때 이 학교 루이빌 교정에 한국에서 태어난 학생이 148명 있었고, 메릴랜드주 실버 스프링의 분교에 약 40명이 더 있었다. 이 분교는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 이민 온 한국계 지도자를 기르려고 만든 곳이었다 [10]. 지금도 그 분교나 한국어 과정이 있는지는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떠난 교수의 수. "약 60퍼센트"는 뱁티스트 뉴스 글로벌의 숫자이며 [6], 학교 쪽 글은 숫자 없이 "떼를 지어 떠났다"고만 적는다 [4]. 학교 기록으로 확인한 숫자는 찾지 못함.
교수들이 무엇에 서명하기를 거절했는가. 위키백과는 "원리 요약은 받아들였으나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의 일부를 거절했다"고 적는데 [5], 이 설명의 바탕이 되는 글은 열지 못했다. 또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가 크게 고쳐진 것은 2000년이므로(문서 이름이 "2000") [8] 1990년대의 일과 시점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번 조사로는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필요
시카고 성경 무오 선언, 댄버스 선언, 내슈빌 선언에 교수가 서명하는지는 이번에 연 학교 쪽에 나오지 않았다. 찾지 못함.
학생 수: 위키백과는 "2015년 FTE 3,300명 넘음", "2017년 5,000명 넘음(학교 역사상 가장 많음)"이라고 적는다 [5]. ATS 2025년 가을은 3422명, FTE 1964.40이다 [1]. 위키백과의 숫자는 학부(보이스 대학)를 넣은 것일 수 있으나 확인하지 못했다.
출처:
[1] ATS 회원 학교 쪽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ats.edu (읽은 날 2026-10-12)
[2] 남침례 신학교 "Why Southern". sbts.edu (읽은 날 2026-10-12)
[3] 남침례 신학교 "Abstract of Principles". sbts.edu (읽은 날 2026-10-12)
[4] 남침례 신학교 문서 보관소 "Resurgence: 1993 – Present". archives.sbts.edu (읽은 날 2026-10-12)
[5] 위키백과(영어)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en.wikipedia.org (읽은 날 2026-10-12)
[6] Baptist News Global(ABP 기사) "Mohler era brings change"(2009-04-22). baptistnews.com (읽은 날 2026-10-12)
[7] 남침례 신학교 "Southern Seminary Trustees Affirm Faithful Stewardship and Advance Mission at Spring 2026 Meeting". sbts.edu (읽은 날 2026-10-12)
[8] 남침례회 "The Baptist Faith and Message 2000". bfm.sbc.net (읽은 날 2026-10-12)
[9] 풀러 신학교 "History and Facts". fuller.edu (중계 읽기. 읽은 날 2026-10-12)
[10] Baptist Press "Seminaries, NAMB help fuel growth of Korean churches"(2005-06-14). baptistpress.com (중계 읽기. 읽은 날 2026-10-12)
사우스웨스턴 침례 신학교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SWBTS ·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2001 W. Seminary Drive, Fort Worth, TX). ATS 승인 추가 교육 장소는 독일 보른하임1908년 B. H. 캐럴이 텍사스 침례교인들과 세운 남침례회 신학교.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교였고, 2022년 무렵 큰 재정 위기를 겪은 뒤 2026년 6월에 인가 기관의 제재에서 벗어났다
곳: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2001 W. Seminary Drive, Fort Worth, TX) [9]. ATS 승인 추가 교육 장소는 독일 보른하임 [1].
한 줄 소개: 1908년 B. H. 캐럴이 텍사스 침례교인들과 세운 남침례회 신학교.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교였고, 2022년 무렵 큰 재정 위기를 겪은 뒤 2026년 6월에 인가 기관의 제재에서 벗어났다 [3][4][6].
기원:
20세기 들머리, 미국 서부 변경에 훈련받은 목회자가 필요했다. 웨이코 제일 침례교회의 목사였던 버네이자 하비 캐럴(Benajah Harvey Carroll)이 텍사스 침례교인들을 이끌어 학교를 세웠다. 1905년 베일러 대학교의 한 부분으로 시작해 1908년 3월 14일 정식 인가를 받았다 [3].
세운 까닭을 학교는 두 가지로 적는다. 하나는 루이빌의 남침례 신학교가 "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어" 남서부의 필요를 채울 수 없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북부 신학교들의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오류의 밀물"을 막을 "튼튼한 둑"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3].
캐럴은 대학에 딸린 신학교보다 "교단이 직접 다스리는 독립 신학교"가 낫다고 보아 베일러가 자기 신학교를 내놓도록 설득했다 [3].
역사:
1908년: 텍사스주 웨이코에서 인가. 처음부터 여성이 수업에 등록했다 [3].
1910년: 포트워스로 옮김 [3].
1925년: 학교의 관할이 텍사스 침례교 총회에서 남침례회로 공식적으로 넘어감 [3].
1994년 3월 9일: 이사회가 26 대 7로 6대 총장 러셀 딜데이를 해임(남침례회의 보수 재기 때의 일. 표결 숫자와 날짜는 위키백과에서만 봄) [5]. 학교의 연표는 딜데이가 1978년 8월부터 1994년 3월까지 총장이었다고만 적는다 [3].
2003~2018년: 페이지 패터슨이 8대 총장 [3]. 2018년 5월 이사회가 패터슨을 해임(달은 위키백과에서만 봄) [5]. RNS는 그 까닭을 "전 직장에서 한 여학생의 성폭력 피해 호소를 잘못 다룬 일"이라고 적는다 [6].
2019년 2월 27일~2022년 9월 23일: 애덤 그린웨이가 9대 총장 [3].
2022년 9월 27일: 데이비드 다커리가 임시 총장. 2023년 4월 19일 10대 총장으로 선출 [3].
현황:
학위 과정: MDiv, 문학 석사(신학, 성경적 상담, 기독교 교육, 교회 음악, 선교학, 예배 인도), 음악 석사, MTS, ThM, 교육 목회학 박사, 음악 박사(DMA), DMin, 예배학 박사, EdD, PhD [1]. 학부 과정인 텍사스 침례 대학(Texas Baptist College)이 딸려 있다 [3].
학생 수: 2282명(FTE 991.40), 2025년 가을 보고 [1]. 전임 교수 FTE 52.66 [1].
과정별 숫자(RNS, 2025년 6월 기사. ATS 자료를 땀): 목회학 석사 650명(FTE 346), 석사 과정 1,018명(FTE 420), 목회학 박사 308명(FTE 92). 2025년 5월 졸업생은 415명으로 2002년 뒤로 가장 많았다 [6].
인가: ATS "Accredited in Good Standing", 다음 종합 방문 2031년 봄. ATS가 2026년 11월 재정 보고서와 2027년 11월 교육 평가 보고서를 요구해 두었다 [1]. 남부 대학 협의회 대학 위원회(SACSCOC) 인가, 음악 대학 협의회 인가 [2].
최근의 재정 문제:
드러난 규모: 2023년 이사회가 20년에 걸친 재정 운영 실패를 밝힌 보고서를 냈다. 거기에 따르면 학교는 1억 4,000만 달러의 운영 적자를 쌓았고, 해마다 평균 667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6].
위기의 바닥: 다커리의 말로는 "2022년 9월에 단기 빚이 420만 달러였고 신용 한도는 다 찼으며, 그 학년도를 넘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2022년 회계 연도는 약 900만 달러 적자로 끝났다 [6]. 학교의 2026년 발표는 2022년 7월 31일 감사에서 운영 손실 890만 달러, 순자산 감소 1,530만 달러가 나왔고, 2019년 회계 연도에도 운영 손실 980만 달러, 순자산 감소 890만 달러가 있었다고 적는다 [4].
인가 기관의 제재: 2023년 6월 SACSCOC가 "경고(warning)"를 내렸다 [4][7]. 위키백과는 그 까닭을 "학교 지배 구조, 재정 자원, 재정상의 이해 충돌 기준을 크게 어김"이라고 적고, 두 해 뒤인 2025년 6월에 "정당한 사유에 따른 관찰 처분(Probation for Good Cause)"으로 바뀌었다고 적는다. 이것은 인가 취소 바로 앞의 가장 무거운 제재다(이 두 가지는 위키백과에서만 봄) [5].
벗어남: 2026년 6월 11일 SACSCOC 이사회가 모든 제재를 풀었다. 총장 다커리는 "사우스웨스턴은 더는 정당한 사유에 따른 관찰 처분 아래 있지 않으며 SACSCOC 인가 기준을 온전히 지키고 있다"고 알렸다. 2026년 4월 6~8일 특별 위원회의 방문이 있었다 [4].
한 일: 학교는 지난 세 해 동안 등록금 순수입과 운영 수입을 늘리고, 인건비와 운영비를 줄이고, 땅을 팔았다고 적는다 [4]. RNS는 2023년에 20에이커의 땅을 약 1,400만 달러에 팔아 빚을 없앴다고 적는다 [6].
지금의 지표(학교 발표): 지출 줄임과 수입 늚으로 1,000만 달러의 개선, 순자산 4,000만 달러 개선, 현금 보유가 한 해 예산의 50퍼센트에 이름 [4]. RNS(2025년 6월)는 기금 1억 6,000만 달러, 땅 150에이커 남짓, 현금 1,000만 달러를 적었다 [6].
그 밖의 어려움(RNS): 2018년 뒤로 학교는 두 번째 총장도 내보냈고(그 총장은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학교를 돕던 재단을 두고 옛 직원들과 법정 다툼을 했으며, 법무부의 조사를 받았다 [6].
관련 교단: 미국 남침례회의 공식 소속 신학교. ATS 교단 칸에 "Southern Baptist Convention" [1]. 남침례회의 여섯 신학교 가운데 하나다 [6]. 학교의 사명 선언은 "남침례회 교회들을 돕는다"고 적는다 [2].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핵심 가치 "성경에 뿌리를 둠". 원문: "All our curriculum is built on and every member of our faculty is dedicated to the unchanging, inerrant, and infallible Word of God." 옮김: "우리의 모든 교과 과정은 변하지 않고 무오하며 무류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 있고, 모든 교수가 그 말씀에 헌신한다." [2]
핵심 가치 "고백에 이끌림":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가 우리 학교의 핵심 교리를 밝힌다." [2] 그 성경 조항은 성경이 "조금의 틀림도 섞이지 않은 진리(truth, without any mixture of error)"를 내용으로 한다고 적는다 [8].
역사 쪽: 처음부터 모든 교수가 "뉴햄프셔 신앙고백"에, 1925년 뒤로는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에 동의를 서약했다 [3].
여섯 핵심 가치: 은혜가 가득함, 그리스도 중심, 성경에 뿌리를 둠, 고백에 이끌림, 학생에 초점, 세계를 향함 [2].
(나) 바깥의 평가:
RNS(2025년 6월)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큰 신학교"였던 이 학교가 "지난 십 년의 대부분을 좋지 않은 까닭으로 신문에 올랐다"고 적고, 베일러 대학교의 역사학자 배리 핸킨스의 말을 따서 다커리 아래에서 안정을 찾은 것이 놀랍지 않다고 전했다 [6].
위키백과는 8대 총장 패터슨을 남침례회 "보수 재기 운동의 중심 인물"로 적는다(위키백과에서만 봄) [5].
알려진 사람: B. H. 캐럴(세운 이, 첫 총장), L. R. 스카버러(2대 총장), 러셀 딜데이(6대 총장), 페이지 패터슨(8대 총장), 데이비드 다커리(10대 총장. 앞서 유니언 대학교와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의 총장) [3][6].
한국 교회와의 관계:
2005년 6월 뱁티스트 프레스 기사: 남침례회 신학교들 가운데 한국 국적 학생이 가장 많은 곳이 이 학교였다. 2005년 봄 학기 203명(2004년 가을 176명, 2004년 봄 150명). 2005년 가을부터 목회학 박사 과정의 일부 세미나를 한국어로 열 예정이었고, 한국에 사는 학생 79명이 이 과정에 들어 있었다. 이들은 과정의 절반을 한국의 침례신학대학교(Korea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절반을 사우스웨스턴에서 한다. 한인 학생회도 있었다 [10].
지금: 학교의 교수 소개 쪽에 제러마이아 김(Jeremiah I. Kim)이 "신학 부교수이자 한국어 목회학 박사 과정 책임자(director of Korean DMin Studies)"로 올라 있다. 그는 "침례교 조직신학"(서울: 요단출판사, 2016)의 공동 지은이다 [9].
지금의 한국인 학생 수는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적자를 센 기간. RNS는 "2002년부터 2023년까지" 해마다 평균 667만 달러라고 적는다 [6]. 위키백과는 "2002년부터 2022년까지 1억 4,010만 달러"라고 적는다 [5]. 667만 달러에 21년을 곱하면 약 1억 4,000만 달러이므로 2002~2022 회계 연도(21개 연도)로 보는 쪽이 셈이 맞으나, 이사회 보고서 원문은 열지 못했다.
적자의 책임. 위키백과는 "패터슨 총장의 지나친 지출 때문"이라고 적는다 [5]. 학교의 2026년 발표는 사람 이름을 들지 않고 2019년과 2022년 회계 연도의 손실을 적는다 [4]. 그 기간의 총장은 패터슨(2003~2018)과 그린웨이(2019~2022) 두 사람이다 [3]. 누구에게 얼마의 책임이 있는지를 가린 글은 열지 못했다.
관찰 처분의 날짜. 2025년 6월이라는 날짜는 위키백과에서만 보았다 [5]. 학교 발표는 "2023년 6월 경고로 시작된 제재"와 "더는 관찰 처분 아래 있지 않다"는 말만 적는다 [4].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교"라는 말: 위키백과는 "2005년에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교들 가운데 하나" [5], RNS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큰 신학교" [6], 다커리는 2026년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교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4]. ATS 2025년 가을 숫자로는 이번에 맡은 일곱 곳 가운데 남침례 신학교(3422명)와 댈러스(2622명)보다 적다 [1].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의 어느 판(1925, 1963, 2000)을 쓰는지는 학교 소개 쪽에 판 이름 없이 나온다 [2].
출처:
[1] ATS 회원 학교 쪽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ats.edu (읽은 날 2026-10-12)
[2] 사우스웨스턴 침례 신학교 "About". swbts.edu (읽은 날 2026-10-12)
[3] 사우스웨스턴 침례 신학교 "History". swbts.edu (읽은 날 2026-10-12)
[4] 사우스웨스턴 침례 신학교 "SACSCOC restores full accreditation to Southwestern"(2026-06-11). swbts.edu (읽은 날 2026-10-12)
[5] 위키백과(영어)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en.wikipedia.org (읽은 날 2026-10-12)
[6] MinistryWatch(RNS 밥 스미타나 기사 옮겨 실음) "After Years of Crisis,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Finds Its Path"(2025-06-03). ministrywatch.com (읽은 날 2026-10-12)
[7] Baptist Press "Dockery discusses SWBTS' 'systemic' financial, leadership issues in BP interview"(2023-09-12). baptistpress.com (중계 읽기. 첫머리만 읽음. 읽은 날 2026-10-12)
[8] 남침례회 "The Baptist Faith and Message 2000". bfm.sbc.net (읽은 날 2026-10-12)
[9] 사우스웨스턴 침례 신학교 교수 소개 "Jeremiah I. Kim". swbts.edu (읽은 날 2026-10-12)
[10] Baptist Press "Seminaries, NAMB help fuel growth of Korean churches"(2005-06-14). baptistpress.com (중계 읽기. 읽은 날 2026-10-12)
애즈베리 신학교Asbury Theological Seminary · 미국 켄터키주 윌모어(204 North Lexington Avenue, Wilmore, KY). 학교는 본교 말고 멤피스와 털사에 분교가 있다고 적고,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플로리다 더넘 교정"도 적는다1923년 감리교 성결 운동의 전도자 헨리 클레이 모리슨이 세운, 웨슬리안(존 웨슬리의 가르침을 잇는) 전통의 초교파 신학교
곳: 미국 켄터키주 윌모어(204 North Lexington Avenue, Wilmore, KY) [1]. 학교는 본교 말고 멤피스와 털사에 분교가 있다고 적고,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플로리다 더넘 교정"도 적는다 [2].
한 줄 소개: 1923년 감리교 성결 운동의 전도자 헨리 클레이 모리슨이 세운, 웨슬리안(존 웨슬리의 가르침을 잇는) 전통의 초교파 신학교 [2][3].
기원:
1923년 H. C. 모리슨이 학생 세 명으로 시작했다. 학교의 표어는 "온 세계를 위한 온 성경(The Whole Bible for the Whole World)"이다 [2].
모리슨은 30년 동안 미국과 해외를 다닌 감리교 전도자였고 20년 동안 "펜테코스털 헤럴드"의 편집인이었다. 1910년 애즈베리 대학(지금의 애즈베리 대학교)의 총장이 되었고, 1923년 그 대학의 대학원으로 신학교를 세웠다. 주변에서는 돈과 학생이 어디서 올지 모른다며 말렸으나 그는 1923년 봄에 "9월에 첫 반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2].
모리슨이 적은 세운 뜻: "그리스도를 통해 수백만의 잃은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 목회자를 훈련하는 신학교" [2].
역사:
1923년: 윌모어에서 시작 [2].
1940년: 인가 요건을 채우려고 애즈베리 대학에서 떨어져 나옴(연도는 위키백과에서만 봄) [4]. 학교 쪽은 연도 없이, 모리슨이 학교를 "자기 교정과 이사회를 가진 독립된 대학원 기관"이 되도록 이끌었다고 적는다 [2].
1942~1962년: 줄리언 맥피터스 총장. 비슨 집안의 큰 기부로 재정 기반이 놓임 [2].
1983년: E. 스탠리 존스 세계 선교·전도 대학원 개설(데이비드 매케나 총장 때) [2].
1990년대 말: 올랜도 교정 시작, 온라인 교정 개설(맥시 더넘 총장 때) [2].
2009년 7월~2024년 6월: 티머시 테넌트가 8대 총장 [2].
2020년: 온라인과 짧은 대면 수업을 섞은 "애즈베리 신학교 글로벌" 시작 [2].
현황:
학위 과정: MDiv, 문학 석사(성서 연구, 선교학, 신학 연구, 기독교 사역, 영성 지도, 지도력, 결혼 가족 상담, 정신 건강 상담, 목회 상담 등), ThM, DMin, PhD(성서 연구, 선교학) [1].
학생 수: 1632명(FTE 869.00), 2025년 가을 보고 [1]. 학교 누리집은 "80개 넘는 교단, 40개 나라에서 온 1,700명 넘는 학생"이라고 적는다(기준 연도 없음) [2]. 전임 교수 FTE 67.20 [1].
졸업생: 13,000명 넘음 [2].
기금: 2억 1,730만 달러(2025년. 위키백과에서만 봄. 위키백과는 대학 재정 담당자 협의회 NACUBO 자료를 출처로 든다) [4].
인가: ATS "Accredited in Good Standing", 다음 종합 방문 2035년 봄. 요구된 보고서는 2027년과 2029년의 "계획" 보고뿐이고 재정 보고 요구는 없다 [1]. 위키백과는 SACS 대학 위원회 인가도 적는다 [4].
2024~2026년의 변화:
2024년 7월: 테넌트가 15년 만에 총장에서 물러나 교수로 돌아가고, 데이비드 기어트슨이 임시 총장(2024년 7월~2025년 7월)이 됨 [2].
2025년 7월 1일: 데이비드 F. 왓슨이 9대 총장이 됨. 그는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유나이티드 신학교에서 19년 동안 신약 교수와 행정 책임자로 일했고, 온라인 잡지 "파이어브랜드"의 책임 편집인이다 [2].
합병, 이전, 재정 위기는 찾지 못함.
관련 교단: 어느 교단에도 공식 소속되지 않은 초교파 학교. ATS 교단 칸은 "Inter/Multidenominational" [1]. 학교는 스스로를 "거의 100개의 서로 다른 교단을 섬기는 다교단 복음주의 신학교"이며 "웨슬리안 전통에 뿌리를 둔다"고 적는다 [3]. 역대 총장은 감리교 전도자, 연합감리교회 목사, 자유감리교회 지도자 출신이었다 [2].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신앙 선언의 머리말은 이것이 "1923년 애즈베리 신학교가 세워진 바탕인 웨슬리안-아르미니우스 신학 교리"를 줄여 적은 것이라고 밝힌다 [5].
성경 조항. 원문: "In the divine inspiration, truthfulness and authority of both the Old and New Testaments, the only written Word of God, without error in all it affirms. The Scriptures are the only infallible rule of faith and practice." 옮김: "(우리는 믿는다)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의 영감과 참됨과 권위를. 성경은 오직 하나뿐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것이 긍정하는 모든 것에서 틀림이 없다. 성경은 믿음과 실천의 오직 하나뿐인 무류한 규범이다." [5]
'무오(inerrant)'라는 낱말은 쓰지 않고 "긍정하는 모든 것에서 틀림이 없다(without error in all it affirms)"고 적는다 [5].
웨슬리안의 특징이 드러나는 조항 둘. 선행 은총: "하나님은 선행 은총으로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 감각을 회복시키시고, 모든 사람이 원하면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고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신다." 온전한 성화. 원문: "That God calls all believers to entire sanctification in a moment of full surrender and faith subsequent to their new birth in Christ." 옮김: "하나님은 모든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뒤에 오는 온전한 굴복과 믿음의 한 순간에 온전한 성화로 부르신다." 이어서 "이 은혜가 믿는 사람을 흠 없게 하거나 죄에 빠질 가능성을 막는 것은 아니다"라고 적는다 [5].
사명 선언. 원문: "to prepare theologically educated, sanctified, Spirit-filled men and women to evangelize and to spread scriptural holiness throughout the world." 옮김: "신학 교육을 받고 성화되고 성령 충만한 남녀를 길러,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성경적 성결을 퍼뜨리게 한다." [2]
(나) 바깥의 평가(둘 다 위키백과에서만 봄) [4]:
"웨슬리안-성결 운동의 가장 큰 신학교".
"목회와 안수에서 남녀에게 같은 자리를 주는 평등주의(egalitarianism)를 내세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가 따온 책(크리스천 콜린스 윈 엮음, "From the Margins", 2007)은 연합감리교회 안에 남아 있는 성결 운동의 흐름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이 애즈베리 대학과 애즈베리 신학교가 이끄는 무리"라고 적는다.
알려진 사람: 헨리 클레이 모리슨(세운 이), 맥시 더넘(총장), 티머시 테넌트(8대 총장. 앞서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11년 동안 세계 선교학 교수), 데이비드 왓슨(9대 총장) [2]. 교수로 크레이그 키너(신약), 존 오스왈트(구약), 벤 위더링턴 3세(신약)(위키백과에서만 봄) [4].
한국 교회와의 관계:
서울신학대학교와의 협력: 2016년 12월 8일 두 학교가 협력 관계를 새로 맺었다. 학교 글은 서울신학대학교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전통을 따르며, "애즈베리의 한국인 박사 과정 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서울신학대학교 졸업생"이라고 적는다. 교수 교류, 함께 여는 과목, 도서관 자료 나눔, 공동 학술 대회를 계획했다 [6].
광림교회와 김선도 감독: 광림감리교회의 김선도 감독(2022년 11월 25일 서울에서 별세)은 1993년 이 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고, 1996년부터 이사, 2018년 명예 이사가 되었으며, 2014년 이사회가 그를 명예 이사장으로 뽑았다(외국인으로는 처음). 그와 교회는 "김선도 전도·실천신학 석좌 교수직"(2005년 봉헌)을 세웠고 많은 한국인 학생과 장학금을 도왔다. 독신 남학생 기숙사에 "김선도 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광림교회는 테넌트 총장을 명예 목사로 삼았다 [7].
한국어로 하는 학위 과정은 찾지 못함. 한국인 학생 수도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대학에서 떨어져 나온 해(1940년)는 위키백과에서만 보았다 [4]. 학교 쪽 글에는 연도가 없다 [2].
총장의 수. 학교 쪽은 "아홉 명의 총장과 한 명의 임시 총장"이라고 적으면서 이름을 아홉 개(임시 포함) 들고 그 뒤에 왓슨을 따로 적는다 [2]. 또 엘즈워스 캘러스는 2006년 임시 총장이었다가 2008년에 총장이 되었다고 적는다 [2]. 누구를 몇 대로 세는지는 학교 글만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학생 수. ATS 2025년 가을 1632명 [1], 학교 누리집 "1,700명 넘음"(연도 없음) [2], 위키백과 1,708명(연도 없음) [4].
나라 수. 학교 소개 쪽은 "40개 나라" [2], 검색에 걸린 학교의 다른 쪽은 "50개 나라"라고 했으나 그 쪽은 열지 않았다.
연합감리교회나 글로벌감리교회가 이 학교를 목회자 교육 기관으로 공식 승인했는지는 찾지 못함. 확인필요
교수가 신앙 선언에 서명하는지는 연 쪽에 나오지 않았다. 찾지 못함.
출처:
[1] ATS 회원 학교 쪽 "Asbury Theological Seminary". ats.edu (읽은 날 2026-10-12)
[6] 애즈베리 신학교 "Asbury Seminary renews partnership with Seoul Theological University"(2016-12-12). asburyseminary.edu (읽은 날 2026-10-12)
[7] 애즈베리 신학교 "Asbury Seminary Mourns the Passing of Bishop Sundo Kim"(2022-11-25). asburyseminary.edu (읽은 날 2026-10-12)
이 묶음을 조사하며 알게 된 것
일곱 학교를 견주어 볼 때 눈에 띄는 점(사실만)
1. 성경 조항의 글귀가 학교마다 다르다. 모두 각 학교의 신앙 선언에서 그대로 옮긴 것이다.
학교
성경 조항의 핵심 글귀
'틀림이 없다'는 말이 있는가
풀러
"the only infallible rule of faith and practice"(믿음과 실천의 오직 하나뿐인 무류한 규범)
없다. 학교 스스로 2026년 문서에서 '무오'라는 낱말에서 "물러섰다"고 밝힌다.
트리니티(TEDS)
"without error in the original writings"(원본에서 틀림이 없다)
있다.
고든콘웰
"inspired of God, hence free from error ... the only infallible guide"(영감되었고 그러므로 틀림이 없다. 오직 하나뿐인 무류한 길잡이)
있다.
댈러스
"the whole Bible in the originals is therefore without error"(성경 전체는 원본에서 틀림이 없다)
있다.
남침례(SBTS)
"the only sufficient, certain and authoritative rule"(오직 하나뿐인, 넉넉하고 확실하며 권위 있는 규범)
1858년의 "원리 요약"에는 없다. 그러나 학교는 1993년 뒤로 교수가 성경에 틀림이 없다고 믿어야 한다고 적고, 교단의 고백은 "조금의 틀림도 섞이지 않은 진리"라고 적는다.
사우스웨스턴
"the unchanging, inerrant, and infallible Word of God"(변하지 않고 무오하며 무류한 하나님의 말씀)
있다. 일곱 곳 가운데 'inerrant'라는 낱말을 직접 쓴 것은 이 학교의 핵심 가치 글과 트리니티의 학교 소개 글이다.
애즈베리
"without error in all it affirms ... the only infallible rule"(긍정하는 모든 것에서 틀림이 없다. 오직 하나뿐인 무류한 규범)
있다. 다만 "긍정하는 모든 것에서"라는 말이 붙는다.
2. 교단과의 관계는 세 갈래다.
교단의 공식 소속: 남침례 신학교와 사우스웨스턴 침례 신학교(둘 다 미국 남침례회). ATS 교단 칸에 교단 이름이 적혀 있다.
한 교단과 이어져 있으나 여러 전통에 열린 학교: 트리니티(미국 복음주의 자유교회). 교단의 신앙 선언을 그대로 쓴다.
초교파 또는 무교단: 풀러, 고든콘웰, 애즈베리(ATS 칸은 "여러 교단에 걸침"), 댈러스(ATS 칸은 "무교단"). 이 가운데 애즈베리는 웨슬리안 전통을, 댈러스는 세대주의 교리 선언을 분명히 가진다.
3. 학생 수(ATS, 2025년 가을 보고. 모두 같은 기준).
학교
머릿수
FTE(전일제 환산)
남침례(SBTS)
3422
1964.40
댈러스
2622
1377.80
사우스웨스턴
2282
991.40
애즈베리
1632
869.00
풀러
1489
664.90
고든콘웰
1294
703.30
트리니티(TEDS)
746
368.20
이 숫자는 신학 대학원 과정만 센 것이다. 풀러의 심리학 대학원은 ATS 인가 밖이라고 ATS가 따로 적어 두었고, 남침례와 사우스웨스턴의 학부 대학도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이 점은 ATS 쪽에 글자로 나오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
4. 2020년대에 재정 때문에 땅과 건물을 판 학교가 넷이다.
트리니티: 교정 전체를 팔고(2026년 2월 마무리) 학교가 다른 나라의 대학으로 넘어갔다. 일곱 곳 가운데 가장 큰 변화다.
고든콘웰: 2022년에 본교정을 팔겠다고 했다가 남기로 하고, 아파트 여섯 동과 보스턴의 건물을 팔아 2026년 9월에 빚을 다 갚았다.
사우스웨스턴: 2023년에 땅 20에이커를 팔았고, 2023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인가 기관의 제재 아래 있었다.
풀러: 2018~2019년에 교정을 팔고 옮기려다 접었고, 그 무렵 지역 분교 세 곳을 닫았다.
댈러스, 남침례, 애즈베리에서는 이런 일을 찾지 못했다. ATS가 재정 보고서를 따로 요구해 둔 학교는 풀러, 트리니티, 고든콘웰, 사우스웨스턴 넷이고, 나머지 셋에는 재정 보고 요구가 없다.
5. 같은 사람들이 여러 학교에 걸쳐 나온다.
해럴드 오켕가: 풀러의 공동 설립자이자 첫 총장이면서 고든콘웰의 공동 설립자이자 첫 총장.
데이비드 다커리: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의 총장을 지낸 뒤 사우스웨스턴의 총장.
티머시 테넌트: 고든콘웰의 교수였다가 애즈베리의 총장.
데이비드 고틀리: 남침례 신학교 졸업생으로 풀러의 총장.
스콧 선퀴스트: 고든콘웰의 총장.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2018년 기사 제목은 그를 풀러의 선교학자라고 부른다(기사 본문은 열지 않았고, 2022년 기사 안의 링크 주소에서 본 것이다).
6. 1990년대 남침례회의 "보수 재기"가 두 학교의 총장을 바꾸었다. 남침례 신학교에서는 1993년 몰러가 취임했고, 사우스웨스턴에서는 1994년 딜데이가 해임되었다. 같은 일을 학교 쪽은 "처음 세운 뜻으로 돌아감"이라 적고, 온건 침례교 쪽 언론은 "이사회를 체계적으로 차지해 기관장을 바꾼 일"이라 적는다.
7. 한국 교회와의 관계가 글자로 확인된 곳.
풀러: 1990년대 초부터 한국어 과정, 졸업생 1,600여 명, 한국어 박사 과정 여럿(학교의 한국어 쪽).
트리니티: ATS 승인 추가 교육 장소가 서울.
사우스웨스턴: 한국어 목회학 박사 과정과 그 책임 교수(지금), 2005년 한국 국적 학생 203명.
남침례: 2005년 한국 출생 학생 148명과 한국계를 위한 분교(지금 상태는 모름).
애즈베리: 서울신학대학교와의 협력(2016년), 광림교회 김선도 감독과의 오랜 관계.
고든콘웰과 댈러스는 찾지 못함.
읽는 이가 고신 교단 교인이라는 점에서 덧붙이면, 이 일곱 학교 가운데 장로교 신학교는 하나도 없다. 뿌리로 보면 침례교(남침례, 사우스웨스턴, 고든콘웰의 두 뿌리 학교), 복음주의 자유교회(트리니티), 감리교 성결 운동(애즈베리), 무교단(댈러스), 초교파(풀러)다. 고신 교단이나 고려신학대학원과의 관계는 어느 학교에서도 찾지 못했다.
조사의 한계
직접 열지 못한 누리집이 있다. 풀러, 고든콘웰, 뱁티스트 프레스는 403으로 막혀 중계 읽기 도구를 거쳤다. RNS의 원래 기사 쪽도 403이어서, 같은 기사를 옮겨 실은 The Banner와 MinistryWatch의 쪽으로 읽었다. 인터넷 아카이브는 요청 제한(429)에 걸려 고든콘웰 역사 쪽 하나만 읽을 수 있었다.
위키백과에 기댄 연도가 여럿 있다. 풀러의 총장 연도와 2018~2019년 이전 계획, 고든콘웰의 뿌리 학교 연도와 "해밀턴에 남는다"는 결정, 댈러스의 설립자와 첫 반 이야기, 남침례 신학교의 19세기 역사, 사우스웨스턴의 1994년 표결과 2025년 관찰 처분 날짜, 애즈베리의 1940년 분리. 모두 그 자리에 "(위키백과에서만 봄)"이라고 적었다. 올리기 전에 학교의 공식 연표나 브리태니커로 한 번 더 맞춰 볼 만하다. 브리태니커는 이번에 열지 못했다.
바깥의 평가가 얇다. 학자의 책(풀러에 대한 조지 마스든의 "근본주의 개혁하기", 남침례 신학교에 대한 그레고리 윌스의 150년사 등)은 위키백과의 참고 문헌 목록에서 제목만 보았고 본문을 열지 못했다. 그래서 (나) 바깥의 평가는 주로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RNS, 뱁티스트 뉴스 글로벌 같은 언론과 위키백과의 말이다. 뱁티스트 뉴스 글로벌은 남침례회의 보수 쪽에 비판적인 온건 침례교 계통 언론이고, 뱁티스트 프레스는 남침례회의 공식 통신사라는 점을 함께 알아 두어야 한다(이 성격 규정은 조사자의 배경 지식이며 이번에 연 쪽에서 글자로 확인한 것이 아니다. 확인필요).
한국 관련 자료는 대부분 학교 쪽 글이다. 한국어 언론이나 한국 교단 자료는 검색에 걸리지 않았다. 남침례 계열의 한국인 학생 숫자는 2005년 것이어서 지금과 다를 수 있다.
트리니티의 지금 상태는 계속 바뀌고 있다. 소유권 이전이 끝난 날, 2026년 가을 랭리 수업의 시작, 옮겨 간 교수의 수는 확인하지 못했다. ATS가 2026년 가을에 "합병과 교정 이전" 방문을 잡아 두었으므로 그 결과가 나오면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은 것. 풀러의 1962년 "검은 토요일"과 1972년 신앙 선언 개정, 댈러스의 교수 서약 완화 이야기, 남침례 신학교 교수의 시카고 선언·댄버스 선언 서명 여부, 애즈베리와 연합감리교회·글로벌감리교회의 공식 승인 관계. 이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일 수 있으나 이번에 연 쪽에 글자로 나오지 않았으므로 본문에 사실로 적지 않았다.
미국 대학 신학부
조사한 날: 2026-10-12. 양식과 지킬 것은 BRIEF.md를 따랐다.
읽기 전에 알아 둘 것
아래의 사실은 모두 이날 실제로 연 쪽에 나온 것이다. 출처 번호는 학교마다 따로 매겼다.
쪽을 여는 도구가 본문을 간추려서 돌려주었다. 그래서 따옴표 안의 영어 원문은 도구가 그대로 옮겨 준 구절만 적었고, 문장 전체가 아니라 한 토막인 경우가 많다. 글에 그대로 실으려면 원문 쪽에서 문장을 다시 맞추어 보아야 한다.
검색 결과의 요약에만 나오고 그 쪽 자체는 열지 못한 내용은 출처 번호를 붙이지 않고 검색 요약으로만 봄이라고 적었다. 이것은 확인된 사실로 쓰면 안 된다.
ATS는 미국과 캐나다 신학교들의 인가 기관(The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이다. ATS 회원 학교 쪽의 학생 수는 "Fall 2025 보고"로 적혀 있다.
학교 이름을 누르면 조사한 내용이 펼쳐집니다. 대괄호 안의 숫자는 그 학교 칸 끝(또는 이 탭 끝)에 있는 출처의 번호입니다.
하버드 신학대학원Harvard Divinity School, HDS ·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학교 안의 대학원이다1816년에 세워졌고, 미국에서 처음으로 특정 교파에 매이지 않은 신학교라고 소개되는 학교다. 지금은 여러 종교를 함께 연구하고 가르치는 곳으로 스스로를 내세운다
곳: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학교 안의 대학원이다. [2]
한 줄 소개: 1816년에 세워졌고, 미국에서 처음으로 특정 교파에 매이지 않은 신학교라고 소개되는 학교다. 지금은 여러 종교를 함께 연구하고 가르치는 곳으로 스스로를 내세운다. [3][4]
기원:
하버드 칼리지는 1636년에 청교도(회중교회) 계열 학교로 세워져 오랫동안 목회자를 길렀다. [2] (위키백과에서만 봄)
1805년에 유니테리언인 헨리 웨어가 홀리스 신학 교수로 뽑혔다. 이에 맞서 정통 칼뱅주의자들이 1807년에 앤도버 신학교를 세웠다. [2] (위키백과에서만 봄)
(보강, 학교 공식 쪽) 학교의 History and Mission 쪽은 이렇게 적는다. "In 1811, the first graduate program for ministerial candidates was organized; and in 1816, Harvard Divinity School itself was established to ensure that "every encouragement be given to the serious, impartial, and unbiased investigation of Christian truth.""(1811년 목회 후보생을 위한 첫 대학원 과정이 짜였고, 1816년 하버드 신학대학원이 세워졌다. "기독교 진리를 진지하고 공평하며 치우침 없이 탐구하는 일을 힘껏 북돋우려는" 것이었다.) 같은 쪽은 "The Divinity School, the first nonsectarian theological school in the country, was the second professional school established at Harvard"(이 나라의 첫 비교파 신학교인 신학대학원은 하버드에 세워진 둘째 전문대학원이었다)라고 적는다. [9]
(보강, 학교 공식 쪽) 학교의 200주년 쪽은 유니테리언과의 관계를 이렇게 적는다. "Despite formal nonsectarianism, HDS was founded by Unitarians, nurtured by their support, and shaped from the outset by their interest in non-Christian religions."(형식으로는 비교파였지만 하버드 신학대학원은 유니테리언들이 세웠고, 그들의 도움으로 자랐으며, 처음부터 기독교 밖의 종교에 대한 그들의 관심으로 모양이 잡혔다.) 19세기에 학교가 살아남은 재정의 바탕도 대부분 유니테리언 교회와 목사와 평신도의 도움이었다고 적는다. [10]
1816년에 신학대학원이 세워졌다. 하버드 크림슨(학생 신문)과 하버드 매거진은 "미국 최초의 비교파(non-sectarian) 신학교"라고 적는다. [3][4] 위키백과는 "the first non-denominational divinity school in the United States"라고 적는다. [2]
역사:
1816년부터 약 100년 동안 비공식적으로 미국 유니테리언주의와 이어져 있었다. [2] (위키백과에서만 봄)
1826년 디비니티 홀 봉헌. 1838년 랠프 월도 에머슨이 이곳에서 '신학부 연설'을 했다. [2] (위키백과에서만 봄)
1908년 앤도버 신학교가 하버드 신학대학원과 제휴했다. 같은 해 학술지 Harvard Theological Review가 창간되었다. [2] (위키백과에서만 봄)
1960년 세계종교연구소(Center for the Study of World Religions)가 세워졌다. [2] (위키백과에서만 봄)
2012년 불교 사역 과정(Buddhist Ministry Initiative)이 로버트 호 가족 재단의 도움으로 시작되었다. [5] 하버드 매거진은 2011년이라고 적는다. [4]
2014년 4월 신학박사(Th.D.) 과정의 입학을 멈추었다. 박사 과정은 대학원(GSAS)의 종교학 위원회를 통해 Ph.D.로 한다. [2] (위키백과에서만 봄)
2021년 '종교와 공적 삶' 석사(Master of Religion and Public Life) 과정이 시작되었다. [4]
현황:
학위 과정: ATS가 승인한 학위는 MDiv(목회학 석사), Master of Religion in Public Life, MTS(신학 석사), ThM이다. [1]
학생 수: ATS 회원 학교 쪽에는 2025년 가을 보고로 "295 (397.70)"이라고 적혀 있다. 칸의 이름은 "Number of Students (FTE)"이다. 295가 사람 수인지, 괄호 안이 전일제 환산 수인지는 그 쪽에 설명이 없다. 사람 수가 환산 수보다 적은 것은 보통의 경우와 달라서 다시 확인해야 한다. [1] 위키백과의 정보 상자에는 학생 377명, 박사 과정 108명, 교수 131명이라고 되어 있으나 기준 연도가 없다. [2]
(보강, 학교 공식 쪽) 학교의 'HDS at a Glance' 쪽은 2025년 가을 석사 과정 등록을 MTS 156명, MDiv 130명, MRPL 9명으로 적는다. 더하면 295명으로 ATS의 295와 같다. 같은 쪽의 박사 과정(PhD)은 76명이다. [11]
전임 교수: 30명(환산 41.17), 2025년 가을 보고. [1]
인가: ATS 인가, 상태는 양호(Accredited in Good Standing). 다음 종합 방문은 2034년 가을. [1]
지원자 수는 2024년에 전년보다 12.8%, 2025년에 25% 늘었다. [4]
기금: 찾지 못함.
최근 변화(2024~2026):
2024년 1월 1일 말라 프레더릭(Marla F. Frederick)이 학장이 되었다. 앞의 학장은 2012년부터 맡은 데이비드 헴프턴이다. 프레더릭은 바로 앞서 에모리대 캔들러 신학대학원 교수였다. [6]
2025년 1월 '종교와 공적 삶'(RPL) 과정의 책임자 다이앤 무어가 예정보다 한 학기 일찍 물러났고, 부책임자 후세인 라시드는 사임을 알리며 학교의 대응을 비판했다. [7]
2025년 3월 말 학교는 RPL 아래의 '종교, 갈등, 평화 사업'(Religion, Conflict, and Peace Initiative)을 멈춘다고 알렸다. 학교가 든 까닭은 재정 지원이 끊긴 것과 다음 해 예산이 줄어드는 것, 그리고 방향을 다시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한쪽으로만 다룬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2024년 5월 하버드 유대인 동문회 보고서 등). 학생과 동문 일부는 멈춘 결정에 반대했다. [7][8]
2024년 가을에 전략 계획 세우기를 시작했고, 2025년 10월 말에 5개년 전략 계획을 내놓았다. 네 가지 우선 과제는 종교의 학문적 연구를 굳게 하는 것, 여러 종교가 함께하는 학문 환경을 이루는 것, 여러 종교가 함께 사는 세상에서 이끌 사람을 기르는 것, 학교를 더 널리 알리는 것이다. [4][5]
2025년 11월 13일 크림슨은 학교가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새 사명 선언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기사 목록 쪽의 제목과 한 줄 요약으로 확인. 기사 본문은 열지 못함). [8]
2026년 봄 프레더릭 학장은 홍콩, 한국,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이슬람 사역 과정과 힌두 사역 과정을 준비하고 있고, 유대교 지도자 과정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5]
관련 교단: ATS는 교단 소속을 "Inter/Multidenominational"(여러 교단에 걸침)로 적는다. [1] 특정 교단의 공식 소속이 아니다. 유니테리언과의 옛 관계는 비공식이었다고 위키백과는 적는다. [2]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학교 공식 쪽(History and Mission, Strategic Priorities)은 모두 403 오류로 열지 못했다. 그래서 사명 선언의 원문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검색 요약으로만 봄 새 사명 선언은 "Harvard Divinity School advances scholarly research on religions around the world and educates students for intellectual leadership, professional service, and ministry in a multireligious environment."(하버드 신학대학원은 세계 여러 종교에 대한 학문 연구를 넓히고, 여러 종교가 함께하는 환경에서 학생들을 지적 지도력, 전문 봉사, 사역을 위해 교육한다)로 검색 요약에 나온다. 반드시 원문 쪽에서 다시 확인해야 한다.
(보강, 학교 공식 쪽에서 원문 확인) 사명 선언: "Harvard Divinity School advances scholarly research on religions around the world and educates students for intellectual leadership, professional service, and ministry in a multireligious environment."(하버드 신학대학원은 세계 여러 종교에 대한 학문 연구를 넓히고, 여러 종교가 함께하는 환경에서 학생들을 지적 지도력, 전문 봉사, 사역을 위해 교육한다.) [9] 200주년 쪽은 학교의 길을 "from Harvard Divinity School's Unitarian origins to a multireligious divinity school in the twenty-first century"(유니테리언에서 비롯된 학교가 21세기의 여러 종교가 함께하는 신학대학원이 되기까지)라고 적는다. [10]
학장의 말(크림슨 보도): 프레더릭 학장은 하버드 신학대학원이 역사적으로 사역 준비보다 종교의 학문적 연구에 더 강했다고 말했다. 또 모스크에서 섬기려는 사람이 지금까지 "기독교 사역을 통해 훈련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한 전통을 공부하는 학생도 다른 전통의 과목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5]
(나) 바깥의 평가: 하버드 매거진은 2025년 전략 계획이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헌신"을 강조한다고 적었다. [4] 크림슨에 실린 재학생 케일럽 브랜틀리의 말은 "that's the mission of HDS is to advance pluralism, religious pluralism at that"(하버드 신학대학원의 사명은 다원주의, 곧 종교 다원주의를 넓히는 것)이다. [5] 2016년 크림슨은 학교가 비교파 학교에서 여러 종교의 학교로 바뀌어 왔다고 적었다. [3]
알려진 사람:
교수: 폴 틸리히, 하비 콕스, 헨리 나우웬(1983~85),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 캐런 킹, 코넬 웨스트. [2] (위키백과에서만 봄)
졸업생: 랠프 월도 에머슨, 시어도어 파커, 엘리자베스 이튼(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 의장 주교). [2] (위키백과에서만 봄)
한국 교회와의 관계: 2026년 봄 학장과 학교 간부들이 홍콩, 한국, 일본에서 동문과 협력 기관을 만났다는 보도가 있다. [5][8] 한국의 어느 기관을 만났는지, 한국인 졸업생이 누구인지는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보강) 처음 조사 때 학교 공식 누리집은 읽기 도구에 403 오류를 돌려주었다. 2026-10-12 Aside 브라우저로 세 쪽([9][10][11])을 열어 읽었고, 위의 '보강' 대목은 그때 화면에 나온 글자다. 다른 도구로는 여전히 403이어서 두 가지 방법으로 겹쳐 확인하지는 못했다. 아래는 처음 조사 때 적은 것이다.
학교 공식 누리집(hds.harvard.edu)의 모든 쪽이 403 오류로 열리지 않았다. 세운 까닭, 사명 선언 원문, 학교가 내는 학생 수(Harvard Divinity School by the Numbers)를 공식 쪽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세울 때의 성격: 크림슨과 하버드 매거진은 "non-sectarian", 위키백과는 "non-denominational"이라고 쓰고, 위키백과는 첫 100년 동안 유니테리언과 비공식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인다. 서로 어긋난다기보다 강조점이 다르다.
불교 사역 과정이 시작된 해: 2012년 [5], 2011년 [4].
학생 수: ATS 295(괄호 397.70, 2025년 가을) [1], 위키백과 377명과 박사 108명(연도 없음) [2].
새 사명 선언의 시점: 크림슨 목록은 2025년 11월 보도 [8]. 검색 요약으로만 봄 학교 쪽은 "2025년 초에 고쳤다"고 적는다고 한다.
기금 규모, 교단별 학생 비율: 찾지 못함.
출처:
[1] ATS 회원 학교 쪽 "Harvard University Divinity School", ats.edu (읽은 날 2026-10-12)
[3] The Harvard Crimson, "HDS Kicks Off 200th Year"(2016-09-02), thecrimson.com (2026-10-12)
[4] Harvard Magazine, "Harvard Divinity School Sets New Priorities", harvardmagazine.com (2026-10-12)
[5] The Harvard Crimson, "Harvard Divinity School Dean Announces Hindu, Muslim Ministry Initiatives During Asia Trip"(2026-04-06), thecrimson.com (2026-10-12)
[6] Harvard Gazette, "Marla Frederick named next dean of Harvard Divinity School"(2023-08-24), news.harvard.edu (2026-10-12)
[7] The Harvard Crimson, "Harvard Divinity School Suspends Religion, Conflict, and Peace Initiative"(2025-04-02), thecrimson.com (2026-10-12)
[11] Harvard Divinity School, "HDS at a Glance", hds.harvard.edu (2026-10-12, Aside 브라우저로 읽음)
[8] The Harvard Crimson, 꼬리표 쪽 "Harvard Divinity School"(2025~2026년 기사 목록), thecrimson.com (2026-10-12)
예일 신학대학원Yale Divinity School, YDS ·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프로스펙트 거리의 스털링 신학 쿼드랭글. 예일대학교 안의 대학원이다1822년에 시작된 예일대학교의 신학대학원. 스스로를 교파에 매이지 않은 초교파 학교라고 하면서 "전통적으로, 그리고 주로 기독교적"이라고 밝힌다
곳: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프로스펙트 거리의 스털링 신학 쿼드랭글. 예일대학교 안의 대학원이다. [1][2]
한 줄 소개: 1822년에 시작된 예일대학교의 신학대학원. 스스로를 교파에 매이지 않은 초교파 학교라고 하면서 "전통적으로, 그리고 주로 기독교적"이라고 밝힌다. [1]
기원:
예일 칼리지는 1701년에 세워졌고, 기독교 목회자를 기르는 것이 세운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학교 요람의 문장은 "Training for the Christian ministry was a main purpose of the founding of Yale College in 1701."이다. [2] 위키백과는 코네티컷 식민지의 회중교회 목회자를 기르려는 뜻이 있었다고 적는다. [4]
1822년 학생들의 청원에 따라 신학 교수직이 세워졌고, 이것을 신학대학원의 시작으로 본다. [1][2] 위키백과는 1822년에 예일 이사회가 따로 신학교를 세웠다고 적는다. [4]
역사:
1835~36년 지금의 올드 캠퍼스에 디비니티 칼리지 건물을 지었다. [1][2]
1867년 첫 신학사(B.D.) 학위를 주었다. [1]
1932년 스털링 신학 쿼드랭글이 문을 열었고, 여성이 처음으로 B.D. 과정에 입학했다. [1][2]
1971년 성공회 신학교인 버클리 신학교(Berkeley Divinity School, 1854년 코네티컷 미들타운에 세워짐, 1928년 뉴헤이븐으로 옮김)가 제휴했다. 같은 해 B.D.의 이름이 M.Div.로 바뀌었다. [1][2]
1973년 예일 교회음악 연구소(Institute of Sacred Music)가 세워졌다.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교회음악 학교를 이어받은 것이다. [1]
2017년 앤도버 뉴턴 신학교가 제휴하여 '예일 신학대학원의 앤도버 뉴턴 신학교'가 되었다. 회중제 전통(개교회가 스스로 다스리는 전통)의 목회자 양성을 맡는다. [1][2]
학생 수: 287명(전일제 환산 280.00), 2025년 가을 보고. [3] 위키백과는 285명(2025)이라고 적는다. [4]
전임 교수: 45명(환산 53.50), 2025년 가을 보고. [3]
인가: ATS 인가, 상태 양호. 다음 종합 방문은 2033년 봄. [3]
학비: 2015년에 세운 목표대로 2022년까지, 재정 도움이 필요하다고 인정된 학생 모두에게 학비 전액을 대 주게 되었다. 그런 학생이 전체의 95%이다. [5]
모금: 지금의 모금 운동에서 1억 4,750만 달러 넘게 모았다. [5]
기금 총액: 찾지 못함.
최근 변화(2024~2026):
2025년 8월 '리빙 빌리지'(Living Village) 기숙사에 첫 학생들이 들어갔다. 환경에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돌려주도록 지은 건물이라고 대학은 설명한다. [5] 검색 요약으로만 봄 개관 행사는 2025년 10월 6일.
2012년부터 학장을 맡은 그레고리 스털링(신약학)은 2026~2027학년도 끝에 학장직을 마친다. 다음 학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대학 교무처가 찾는 위원회를 꾸린다. [5]
검색 요약으로만 봄 버클리 신학교의 새 학장으로 가브리엘 토머스가 2026년 7월 1일에 취임한다고 한다.
관련 교단: 공식 소속 교단은 없다. ATS는 "Inter/Multidenominational"로 적는다. [3] 학교는 스스로 "interdenominational and nonsectarian"(초교파이며 비교파)이라고 한다. [1] 교단과의 제도적 끈은 두 제휴 기관으로 이어진다. 성공회는 버클리 신학교로, 회중제 전통은 앤도버 뉴턴으로. [1] 그 밖에 교단별 수료 과정이 있다: 아프리카 감리교 감독교회, 침례교, 가톨릭 평신도 사역, 그리스도의 제자회, 성공회, 루터교, 미국장로교(PCUSA), 개혁교회 연구, 유니테리언 유니버설리즘, 그리스도연합교회(UCC), 연합감리교회. [1]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사명 선언의 첫머리는 "The mission of the Divinity School is to foster the knowledge and love of God through rigorous scholarly inquiry"(신학대학원의 사명은 엄밀한 학문 탐구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 사랑을 기르는 것)이다. 이어서 "Traditionally and primarily Christian in character, the school welcomes persons of all faiths and those of no faith."(전통적으로, 그리고 주로 기독교적인 성격을 지니며, 모든 신앙의 사람과 신앙이 없는 사람을 환영한다)라고 밝힌다. [1] 교수진은 기독교의 주요 전통과 다른 세계 종교에서 왔다고 한다. [1] 학교 요람은 "Today, YDS is a thriving ecumenical school inclusive of a wide range of Christian traditions."(오늘 예일 신학대학원은 폭넓은 기독교 전통을 아우르는 활발한 초교파 학교다)라고 적는다. [2]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19세기 중반 이후 "more ecumenical"(더 초교파적)이 되었다고 적는다. [4] '진보'나 '자유주의' 같은 말로 이 학교를 평가한 출처는 이번에 연 쪽들에서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교수(위키백과에서만 봄): 미로슬라브 볼프, 윌리 제임스 제닝스, 캐스린 태너, 해럴드 애트리지(전 학장), 니컬러스 월터스토프(전직). 지난 교수로 H. 리처드 니버, 브레버드 차일즈, 헨리 나우웬(1971~1981), 레티 러셀(1974~2001). [4]
졸업생: 마이클 커리(M.Div. 1978, 미국 성공회 의장 주교), 세린 존스(유니온 신학교 전 총장), 장상(아래). [4][6]
한국 교회와의 관계:
장상: 1970년 M.Div. 졸업.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신약학자, 이화여자대학교 전 총장. 2002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무총리에 지명되었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에서 아시아 회장으로 뽑혔다. [6]
제임스 레이니(B.D. 1954): 뒤에 주한 미국 대사를 지냈다. [4] (위키백과에서만 봄. 캔들러 대목도 볼 것)
검색 요약으로만 봄 김명혁 목사가 1967년 예일 신학대학원에서 STM을 받았다는 것, 재학생 모임 Yale Divinity School Korean Students Association(YDSKA)이 있다는 것이 검색 요약에 나온다. 해당 쪽은 열지 않았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세운 해의 뜻: 학교 쪽은 1822년에 "신학 교수직이 세워졌다"고 하고, 위키백과는 "따로 신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위키백과는 1869년에 독립된 신학부가 되었다고도 적는다. [1][4]
앤도버 뉴턴과의 제휴: 학교 쪽은 2017년 [1][2], 대학 교무처 쪽은 스털링 학장이 2016년 제휴를 이끌었다고 적는다 [5].
첫 흑인 학생 솔로몬 콜스의 입학: 같은 쪽 안에서 1871년과 1872년이 함께 나온다. [1]
학생 수: ATS 287명 [3], 위키백과 285명 [4].
리빙 빌리지의 수용 인원: 위키백과는 "155명을 위한" 계획이라고 적고 [4], 검색 요약으로만 봄 2023년 기사에는 51명이라고 한다.
학생의 교단별 비율, 기금: 찾지 못함. 학교 쪽은 학생이 "수십 개 교단과 신앙 집단"에서 온다고만 적는다. [1]
[5] Yale 교무처(Office of the Provost), "Dean of Yale Divinity School", provost.yale.edu (2026-10-12)
[6] Yale News, "Divinity alumni elected to key posts in World Council of Churches"(2013-12-11), news.yale.edu (2026-10-12)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the City of New York · 미국 뉴욕시 맨해튼, 브로드웨이 3041번지1836년 장로교 목사들이 세웠고 1893년에 교단의 감독에서 벗어난 독립 신학교. 지금은 스스로 "진보 신학"(progressive theology)의 자리라고 말하며 불교와 이슬람 과정도 둔다
곳: 미국 뉴욕시 맨해튼, 브로드웨이 3041번지. [3]
한 줄 소개: 1836년 장로교 목사들이 세웠고 1893년에 교단의 감독에서 벗어난 독립 신학교. 지금은 스스로 "진보 신학"(progressive theology)의 자리라고 말하며 불교와 이슬람 과정도 둔다. [1][2][5][8]
기원: 1836년에 장로교 목사 아홉 사람이 세웠다. 이민자가 몰려들고 가난과 인종 갈등이 커지던 뉴욕에서 "도시의 한복판에서 목회자를 기르려는" 뜻이었다고 학교는 설명한다. [1] 1839년 뉴욕주 의회의 인가로 법인이 되었다. [3] 위키백과는 미국장로교의 앞선 교단에 속한 사람들이 세웠으나 처음부터 모든 교파의 학생에게 열려 있었다고 적는다. [5]
역사:
1891년 성서신학 교수로 취임한 찰스 브릭스가 취임 연설에서 성경의 축자 영감을 의심하는 말을 했다. 장로교 총회는 그의 임용을 거부하고 그를 이단으로 면직했다. 1893년 유니온은 총회가 교수 임용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없애고 완전히 독립했다. [5] (위키백과에서만 봄)
1928년 컬럼비아대학교와 제휴했다. 행정, 학위, 이사회는 따로 둔다. [5] (위키백과에서만 봄)
1929년 라인홀드 니버 부임. 1933년 12월 독일을 떠난 폴 틸리히 부임. 디트리히 본회퍼는 1930년에 연구생으로 왔고 1939년에 다시 왔다가 돌아갔다. [5] (위키백과에서만 봄)
1964년 이웃한 유대교 신학교(Jewish Theological Seminary)와 제휴했다. [5] 지금은 유대교 신학교, 히브리 유니온 칼리지와 서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8]
1970년 제임스 콘(흑인 신학)이 가르치기 시작했다(2018년 세상을 떠남). [5] (위키백과에서만 봄)
2004년 도서관(버크 도서관)이 컬럼비아대학교 도서관 체계에 통합되었다. [5] (위키백과에서만 봄)
2016년 '이슬람 연구' 과정과 '불교와 종교 간 만남' 과정이 정식으로 세워졌다. [8]
2017년 재정난으로 매사추세츠의 교정을 판 성공회 신학교(Episcopal Divinity School, EDS)가 유니온과 제휴했다. 2023년 3월 31일 유니온은 이 공식 제휴를 끝낸다고 알렸고, 성공회 연구 과정은 따로 이어 간다고 했다. [7]
현황:
학위 과정: MDiv, MA in Religion, MA in Social Justice(온라인), Master of Professional Studies(교정 시설에서 여는 1년 과정), STM, DMin, PhD. [3][4][6]
학생 수: 257명(전일제 환산 234.20), 2025년 가을 보고. [4] 위키백과 정보 상자는 학생 210명, 교수 38명(연도 없음)이라고 적는다. [5]
전임 교수: 20명(환산 31.00), 2025년 가을 보고. [4]
인가: ATS 인가(상태 양호, 다음 종합 방문 2028년 봄), 중부 지역 고등교육 인가 기관(MSCHE) 인가(2019년 3월 14일 재확인). 인가 범위에 베드퍼드 힐스 교도소와 싱싱 교도소의 교육 장소가 들어 있다. [3][4]
기금: 2019년 기준 1억 1,260만 달러. [5] (위키백과 정보 상자에서만 봄)
최근 변화(2024~2026):
2024년 5월 9일 이사회가 "팔레스타인 전쟁에서 이익을 얻는 기업"에서 투자를 거두기로 했다. [5] (위키백과에서만 봄)
2025년 봄 학기에 기독교의 가르침과 함께 힌두교, 불교의 가르침을 다루는 신학 입문 과목을 처음 열었다. [8]
2025년 7월 세린 존스 총장(2008년 취임, 첫 여성 총장)이 2025~26학년도 끝에 물러난다고 알렸다. 그의 재임 동안 불교와 이슬람 전공 석사 과정이 더해지고, 4,000만 달러 모금 운동을 시작했으며, 교정을 전면 고치는 일이 마무리 단계라고 미국장로교 소식은 전한다. [6]
2026년 4월 이사회가 리사 톰슨을 제17대 총장으로 뽑았고, 2026년 7월 1일에 취임했다. 톰슨은 바로 앞서 밴더빌트 신학대학원 교수였고 2016~2019년에 유니온에서 가르쳤다. [9][5]
2020년대 초 교정 안에 41층 주거 건물(클레어몬트 홀)이 들어서면서 강의 공간을 얻었다. [5] (위키백과에서만 봄)
관련 교단: 공식 소속 교단은 없다. ATS는 "Inter/Multidenominational"로 적는다. [4] 세울 때는 장로교 목사들이 세웠으나 1893년에 장로교 총회의 감독에서 벗어났다. [1][5] 지금 미국장로교(PCUSA)와의 공식 관계를 적은 자료는 찾지 못했다. 미국장로교 소식 누리집이 총장 선임을 보도하지만 그 기사에 교단과의 공식 관계는 나오지 않는다. [9]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사명과 비전 쪽의 첫 문장은 "Progressive theology has long taken shape at Union, where faith and scholarship meet to reimagine the work of justice."(진보 신학은 오랫동안 유니온에서 모양을 갖추어 왔다. 이곳에서 신앙과 학문이 만나 정의의 일을 새로 그린다)이다. 교육은 기독교 전통들의 폭에 대한 비판적 이해에 깊이 뿌리를 두되 다른 신앙들의 영향도 받는다고 한다. 가치 선언에는 "가난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선택", 땅을 살리는 삶이 들어 있다. [2] 소개 쪽은 "모든 신앙의 사람과 신앙이 없는 사람"을 사회 정의의 일을 위해 기른다고 적는다. [1] 학교 블로그는 유니온을 "historically Christian seminary"(역사적으로 기독교 신학교)라고 부르고, 종교 간 만남을 환경, 인종, 성 정의와 같은 무게의 정의 문제로 본다고 적는다. [8]
(나) 바깥의 평가: 미국장로교 소식은 유니온이 진보적이고 사회 정의에 힘쓰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적는다. [9] 제프 월턴(글이 처음 실린 곳은 Juicy Ecumenism이라는 누리집. 글쓴이의 소속과 성향은 그 쪽에서 확인하지 못함)은 유니온을 "among the most theologically progressive U.S. seminaries"(미국에서 신학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 가운데 하나)라고 부르며 정치 활동과 정체성 중심의 해방 신학에 기울었다고 비판한다(Anglican Ink에 실린 의견 글, 2023-04-01). [7]
알려진 사람: 라인홀드 니버(1929년 부임), 폴 틸리히(1933년 부임), 디트리히 본회퍼(1930년 연구생), 제임스 콘(1970년부터), 코넬 웨스트(2012년 부임, 2021년 다시 옴). [5] (위키백과에서만 봄)
한국 교회와의 관계:
현경(정현경, Chung Hyun Kyung): 1956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학사(1979)와 석사(1981), 1989년 유니온 신학교 Ph.D. 유니온의 에큐메니컬 신학 부교수로 올라 있다. 1991년 캔버라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연설이 큰 논란을 일으켰고 혼합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10][5] (위키백과에서만 봄)
한국의 신학교나 교단과 맺은 공식 협력, 그 밖의 한국인 졸업생: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교 누리집의 역사 쪽(utsnyc.edu/about/history/)이 404 오류로 열리지 않았다. 브리태니커 쪽도 403 오류였다. 그래서 브릭스 사건, 컬럼비아 제휴, 니버와 틸리히와 본회퍼의 연도는 위키백과에서만 보았다.
장로교와 갈라선 해: 위키백과는 1893년 [5]. 검색 요약으로만 봄 1892년으로 적는 자료도 있다.
세운 사람들의 교단: 학교는 "장로교 목사 아홉 사람" [1], 위키백과는 "미국장로교의 앞선 교단의 구성원들" [5]. 신학파 장로교(New School)였는지는 연 쪽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학생 수: ATS 257명(2025년 가을) [4], 위키백과 210명(연도 없음) [5]. 검색 요약으로만 봄 미국 교육부 자료로 약 250명이라는 보도도 있다.
성공회 신학교(EDS)와의 지금 관계: 2023년에 공식 제휴가 끝났다는 보도 [7]. 그런데 위키백과는 켈리 브라운 더글러스를 "유니온의 성공회 신학교 학장"으로 적고 [5], 검색 요약으로만 봄 2024~25학년도 MDiv 안내서에 "Anglican Studies (EDS at Union)"이라는 표기가 남아 있다. 지금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다.
2025년 7월 기사는 "188년 역사"라고 적는데 [6] 1836년부터 세면 189년이다.
출처:
[1] Union Theological Seminary, "About", utsnyc.edu (2026-10-12)
[2] Union Theological Seminary, "Mission & Vision", utsnyc.edu (2026-10-12)
[3] Union Theological Seminary, "Institutional Information", utsnyc.edu (2026-10-12)
[4] ATS 회원 학교 쪽 "Union Theological Seminary", ats.edu (2026-10-12)
[6] Presbyterian News Service(미국장로교), "Union Theological Seminary President Serene Jones to retire after 18 years of leadership"(2025-07-22), pcusa.org (2026-10-12)
[7] Jeff Walton, "Liberal Union Seminary Cuts Loose Episcopal Divinity School", Anglican Ink(2023-04-01, 원 글은 Juicy Ecumenism 2023-03-31), anglican.ink (2026-10-12)
[8] Union Theological Seminary 블로그, "Union's Commitment to Interreligious Engagement"(2024-11-12), utsnyc.edu (2026-10-12)
[9] Presbyterian News Service, "Rev. Dr. Lisa L. Thompson will be Union Theological Seminary's 17th president"(2026-04-14), pcusa.org (2026-10-12)
시카고대학교 신학부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하이드 파크, 시카고대학교 중앙 뜰 한가운데의 스위프트 홀침례교 신학교에서 비롯되어 시카고대학교의 첫 전문대학원이 된 곳. 지금은 스스로를 "범주로서의 종교와 세계의 종교들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곳: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하이드 파크, 시카고대학교 중앙 뜰 한가운데의 스위프트 홀. [7]
한 줄 소개: 침례교 신학교에서 비롯되어 시카고대학교의 첫 전문대학원이 된 곳. 지금은 스스로를 "범주로서의 종교와 세계의 종교들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1][2]
기원:
학교 역사 쪽은 "First chartered in 1865, the Divinity School was incorporated into the University soon after the latter's inception in 1890."(1865년에 처음 인가를 받았고, 1890년 대학이 생긴 직후 대학에 들어왔다)라고 적는다. [2]
시카고대학교의 첫 총장 윌리엄 레이니 하퍼는 셈어 학자이자 침례교 목사였다. 그는 연구 대학의 중심 일 가운데 하나가 종교의 학문적 연구여야 한다고 믿어, 침례교 신학 연합(Baptist Theological Union)의 모건 파크 신학교를 하이드 파크로 옮겨 왔다. 이로써 신학부가 대학의 첫 전문대학원이 되었다. [2]
학교가 2026년 3월에 실은 글(리처드 로젠가튼 교수)은 신학부가 1892년에 미국 침례교인들에 의해 세워졌고, 교회의 목회와 대학의 가르침이라는 두 공적 역할을 한 교수진과 한 교육 과정으로 준비시키는 것이 처음부터의 짜임새였다고 적는다. [4]
역사:
1865년 침례교 신학 연합이 옛 시카고대학교(1856년 개교, 1886년 파산으로 문을 닫음) 곁에 신학교를 세웠다. [6] (위키백과에서만 봄)
1890년대 초 하퍼 총장이 이 신학교를 새 시카고대학교의 신학부로 들였다. [2][6]
1926년 스위프트 홀 완공, 본드 채플 개관. [6] 2025~26년에 학교는 스위프트 홀 100주년 행사(Swift 100)를 열었다. [3]
20세기에 종교사학, 미국 종교사, 비교 종교철학 같은 분야를 더했다. 기독교에 대한 초점을 지키면서 종교를 사람의 현상으로 넓게 연구했다고 학교 글은 적는다. [4]
1970년대에 대학에 딸린 신학대학원 대부분이 박사 과정을 인문과학 쪽으로 옮겨 종교학과 신학을 나누었으나, 시카고는 조지프 기타가와 학장(1970~1980) 때 종교학 박사 과정을 신학부 안에 그대로 두었다. 그 때문에 목회 과정의 매력이 줄어 1980년대 초에는 지원자가 크게 모자랐고, 되살리는 데 10년쯤 걸렸다. [4]
1979년 10월 종교 고등연구소가 문을 열었고 1998년 마틴 마티 센터로 이름이 바뀌었다. [6] (위키백과에서만 봄)
현황:
학위 과정: ATS가 승인한 학위는 MDiv, MA, MA(Religious Studies)(학교에서는 AMRS라 부름), PhD이다. 온라인 교육은 승인받지 않았다. [5] 학부의 종교학 과정도 맡는다. [3]
학생 수: ATS 쪽에는 2025년 가을 보고로 "231 (FTE 8.80)"이라고 적혀 있다. 전일제 환산 8.80은 사람 수 231과 맞지 않아 보인다. 박사 과정 학생을 뺀 숫자인지, 잘못 적힌 것인지 그 쪽에 설명이 없다. [5] 학교 '숫자로 보는 신학부' 쪽에는 전체 학생 수가 없다. [7]
전임 교수: 46명(환산 46.00), 2025년 가을 보고. [5]
박사 과정 합격률: 2022년 입학 기준 7%. 학교는 ATS 회원 학교 가운데 가장 경쟁이 센 박사 과정이라고 적는다. [7]
인가: ATS 인가, 상태 양호. 다음 종합 방문은 2030년 가을, 그에 앞서 2026년 가을에 특정 사안을 보는 방문이 잡혀 있다. [5]
학술지: The Journal of Religion, History of Religions(시카고대학교 출판부). [7]
기금: 찾지 못함.
최근 변화(2024~2026):
제임스 로빈슨(중세 유대교 연구)이 2022년부터 학장이다. 2003년부터 이 학교 교수였다. [3]
학장은 2026년 4월의 문답에서 교수진이 늘었고, 종교와 과학, 종교와 예술 사업이 커졌으며, 해마다 모금과 지원자 수가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숫자는 없음). [3]
검색 요약으로만 봄 2025년 8월 시카고대학교의 인문예술 대학원과 사회과학 대학원이 재정 문제로 2026~27학년도 박사 과정 신입생 모집을 여러 전공에서 멈추었다는 보도가 있다. 신학부가 여기에 들어가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검색 요약으로만 봄 2026년 4월 MDiv 학생을 위한 새 채플린 수료 과정 소식이 학교 소식란에 있다고 한다.
관련 교단: 공식 소속 교단은 없다. ATS는 "Nondenominational"(비교파)로 적는다. [5] 위키백과는 침례교의 후원 아래 세워졌고 지금은 교파 소속이 없다고 적는다. [6] 그리스도의 제자회(Disciples of Christ)의 일곱 신학 교육 기관 가운데 하나인 제자회 신학관(Disciples Divinity House)이 신학부와 함께 기숙 장학 과정을 운영하며, 그 장학생은 신학부에서 MDiv, MA, PhD를 한다. [8][9]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소개 쪽은 학교가 "dedicated to the critical study of religion as a category and the religions of the world"(범주로서의 종교와 세계의 종교들에 대한 비판적 연구에 힘쓴다)라고 적는다. [1] 신앙고백이나 교리 표준은 연 쪽들에 없었다. 학장은 학교를 "uniquely hybrid"(유례없이 섞인 모습)라고 부르며, 여러 학문에 걸친 종교 연구와 종교 지도자 양성을 한자리에서 한다고 말한다. [3] 로젠가튼 교수의 글은 학교의 핵심 다짐이 종교 연구의 학문적 탁월함이고, 가장 좋은 학문은 비판과 되살림의 균형을 잡는다고 적는다. 그 글은 옛 학장들의 말을 끌어 온다. 종교는 "a force for good or for ill"(선에도 악에도 쓰이는 힘, W. 클라크 길핀), 종교 연구는 "like playing with fire"(불장난과 같다, 마거릿 미첼). [4]
(나) 바깥의 평가: 이번에 연 쪽들에서는 이 학교의 신학 성향을 평가한 바깥 출처를 찾지 못함. 위키백과는 미국 국가연구위원회의 교수진 평가에서 종교 연구 분야 1위라고 적는다. [6] 검색 요약으로만 봄 학교의 MDiv 안내 쪽(403 오류로 열지 못함)은 MDiv를 "multi-religious program"(여러 종교의 과정)이라 하고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된다고 적는다고 한다.
알려진 사람:
교수(위키백과에서만 봄): 미르체아 엘리아데, 폴 틸리히, 폴 리쾨르, 조너선 Z. 스미스, 웬디 도니거, 마틴 마티. 셰일러 매슈스는 1908~1933년 학장. [6]
졸업생: 연 쪽들에서 확인된 이름이 없음.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검색 요약으로만 봄 한국 기독교사 연구자 티머시 리가 이 신학부에서 Ph.D.를 받았다는 것이 학교 소식지 2001년 호에 나온다고 하나, 해당 쪽은 열지 않았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세운 해가 세 가지로 나온다. 학교 역사 쪽은 1865년 인가, 1890년 대학 설립 직후 편입 [2]. 학교가 실은 2026년 글은 1892년 설립 [4]. 위키백과는 1865년 신학교 설립, 분류에는 1891년 [6].
학교 역사 쪽은 첫 문단 뒤가 잘려서 읽지 못했다. '시카고 학파'에 대한 학교 자신의 설명을 확인하지 못했다.
학생 수: ATS의 231명과 환산 8.80이 맞지 않는다 [5]. 학교가 내는 전체 학생 수는 찾지 못함.
MDiv 안내 쪽과 학위 과정 쪽이 403, 404 오류로 열리지 않았다.
2025년 대학 전체의 박사 과정 모집 중단이 신학부에 미쳤는지 확인하지 못함.
출처:
[1] 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 "About", divinity.uchicago.edu (2026-10-12)
[2] 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 "History", divinity.uchicago.edu (2026-10-12. 첫 문단만 읽힘)
[3] 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 소식, "UChicago Leadership Q&A Series: James T. Robinson, Dean of the Divinity School"(2026-04-17), divinity.uchicago.edu (2026-10-12)
[4] Richard A. Rosengarten, "The Idea of the 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2026-03-25), divinity.uchicago.edu (2026-10-12)
[5] ATS 회원 학교 쪽 "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 ats.edu (2026-10-12)
[6] 위키백과(영어) "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 en.wikipedia.org (2026-10-12)
[7] 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 "Divinity School Facts", divinity.uchicago.edu (2026-10-12)
[9] 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 "Our community", divinity.uchicago.edu (2026-10-12)
듀크 신학대학원Duke Divinity School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 듀크대학교 안의 대학원이다1926년에 듀크대학교의 첫 전문대학원으로 문을 연, 연합감리교회가 세우고 돕는 13개 신학교 가운데 하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고 증언하는 교육을 사명으로 내건다
곳: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 듀크대학교 안의 대학원이다. [1][3]
한 줄 소개: 1926년에 듀크대학교의 첫 전문대학원으로 문을 연, 연합감리교회가 세우고 돕는 13개 신학교 가운데 하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고 증언하는 교육을 사명으로 내건다. [1][2]
기원:
1838년 감리교인과 퀘이커 교인이 함께 유니온 인스티튜트를 세웠고, 이것이 1859년 트리니티 칼리지가 되었다. 표어는 Eruditio et Religio(지식과 신앙)이다. [3][1]
1924년 담배 사업가 제임스 B. 듀크의 신탁 기금으로 트리니티 칼리지가 듀크대학교로 커졌다. [2][3]
1926년 종교학교(School of Religion)가 새 대학의 첫 전문대학원으로 문을 열었다. 1926~27학년도에 일을 시작했고 개교 행사는 1926년 11월 9일이었다. 첫해 학생은 23명이었다. [2][3]
역사:
문을 연 지 5년 안에 학생이 150명이 되었고, 미국 18개 주와 한국, 일본에서 왔다. [3]
1940년 이름이 듀크 신학대학원(Duke Divinity School)으로 바뀌었다. [2]
역대 학장 가운데: 로버트 쿠시먼(1958~71), 토머스 랭퍼드(1971~81), 데니스 캠벨(1982~97), L. 그레고리 존스(1997~2010, 2018~21), 리처드 헤이스(2010~15), 일레인 히스(2016~18). [2]
2005년 웨스트브룩 건물과 굿슨 채플이 문을 열었다. [4] (위키백과에서만 봄)
2021년 7월 1일 에드가르도 콜론 에메릭이 학장이 되었다. [2]
현황:
학위 과정: MDiv(교실 과정과 혼합 과정, 보통 3~4년), MA in Christian Practice, MTS, ThM, DMin, ThD. [2][5]
학생 수: 599명(전일제 환산 592.20), 2025년 가을 보고. [5] 위키백과는 2017년 전일제 환산 543명이라고 적는다. [4]
전임 교수: 45명(환산 55.75), 2025년 가을 보고. [5]
2025년 가을 새 학생: 219명. MDiv 120명(교실과 혼합), MTS 32명, DMin 34명, ThM 7명, MA 6명, ThD 5명, 신학과 보건 수료 과정 14명. MDiv 새 학생은 25개 교단에서 왔다. [6]
인가: ATS 인가, 상태 양호. 다음 종합 방문은 2035년 봄. [5]
기금: 찾지 못함.
최근 변화(2024~2026):
2025년 8월 29일 제99회 개강 예배를 드렸다. 2026년이 개교 100년이 되는 해다. [6]
2025년 한국의 감리교신학대학교와 양해 각서를 맺었다(아래 한국 교회와의 관계). [9]
2025년 리처드 헤이스 전 학장(신약학)이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4] (위키백과에서만 봄)
합병, 이전, 교단 관계의 변화: 연 쪽들에서 찾지 못함. 연합감리교회의 2019~2023년 교회 이탈과 2024년 총회 결정이 이 학교에 미친 영향을 적은 자료도 찾지 못함.
관련 교단: 연합감리교회(UMC). ATS는 교단을 "United Methodist Church"로 적는다. [5] 학교는 "One of 13 seminaries founded and supported by the United Methodist Church"(연합감리교회가 세우고 돕는 13개 신학교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한다. [1] 요람은 학교가 기독교 전통 안에 서 있고 "continuing obligation to the United Methodist Church"(연합감리교회에 대한 이어지는 책무)를 진다고 적으면서, 여러 교단의 학생을 받는다고 덧붙인다. [2] MDiv 학생의 약 40%와 교수의 거의 절반이 연합감리교회나 웨슬리 전통의 교회에 속한다(쪽에 날짜 없음). [8] 교단별 '연구의 집'이 있다: 성공회(앵글리칸), 침례교, 감리교(연합감리교회와 AME, AMEZ, CME, 나사렛, 자유감리교, 웨슬리안), 장로교와 개혁교회. 그 밖에 아시아, 히스패닉 연구의 집과 흑인 교회 연구실이 있다. [7]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사명은 "engage in spiritually disciplined and academically rigorous education in service and witness to the Triune God"(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고 증언하며, 영적으로 훈련되고 학문적으로 엄밀한 교육에 힘쓴다)이다. [1][2] 교육 방침은 기독교 이해가 "joyfully evangelical, generously orthodox, and robustly catholic"(기쁘게 복음적이고, 너그럽게 정통적이며, 굳세게 보편적)이기를 바란다고 적는다. [2] 또 학교가 "ecumenical in aspiration, teaching, and practice, as well as in its faculty"(지향과 가르침과 실천, 교수진에서 초교파적)라고 한다. [2]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교수였던 스탠리 하우어워스를 후기 자유주의(postliberal) 신학, 이야기 신학과 이어서 소개하고, 2001년 타임이 그를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꼽았다고 적는다. [4] 학교 전체를 '보수'나 '진보'로 평가한 출처는 연 쪽들에서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교수: 스탠리 하우어워스(2013년 은퇴), 리처드 헤이스(전 학장), 엘런 데이비스(구약학, 2015~16년 임시 학장), 프레더릭 헤르조그(1960~1995). [2][4]
졸업생(위키백과에서만 봄): 윌리엄 바버 2세(1989, 민권 운동가), 그레고리 파머(1979, 연합감리교회 감독회 의장 2008~2010). [4]
한국 교회와의 관계:
문을 연 지 5년 안에 이미 한국에서 온 학생이 있었다. [3]
2025년 듀크 신학대학원과 한국의 감리교신학대학교(MTU)가 양해 각서를 맺었다. 듀크 신학대학원이 한국의 신학교와 맺은 첫 공식 협력이다. 2026년 1월 8일 감리교신학대학교 유경동(Kyung-dong Yoo. 한글 이름은 영문 표기를 옮긴 것이라 확인 필요) 총장이 학부 합창단 학생 약 40명, 교직원 5명과 함께 듀크를 찾아 감리교 선교 140주년을 기념했고, 합창단이 듀크 채플에서 노래했다. [9]
아시아 연구의 집이 있고, 듀크 쪽에서 Jung Choi, Sangwoo Kim 교수 등이 이 방문을 맞았다(한글 이름은 확인하지 못함). [7][9]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교 누리집의 역사 쪽(divinity.duke.edu/about/history)이 404 오류였다. 역사는 요람과 대학 기록관 글에서 보았다.
이름이 바뀐 해: 요람은 1940년 [2]. 검색 요약으로만 봄 대학 기록관의 연표는 1941년이라고 한다. 기록관 글에는 간행물 이름이 1941년부터 'Duke Divinity School Bulletin'으로 나온다 [3].
지금 학장의 취임일: 요람은 2021년 7월 1일 [2], 위키백과는 2021년 8월 31일 [4].
2025년 새 학생 수: 기사의 합계는 219명인데 과정별 숫자를 더하면 218명이다. [6]
학생 수: ATS 599명(2025년 가을) [5], 위키백과 543명(2017, 환산) [4].
연합감리교회 학생의 정확한 비율과 기준 연도: "약 40%"라는 쪽에 날짜가 없다 [8]. 검색 요약으로만 봄 2021년 MDiv 새 학생의 38%였다는 학교 소식이 있다.
연합감리교회 고등교육사역부(GBHEM)의 승인 신학교 목록 쪽은 시간 초과와 잘림으로 읽지 못했다. '13개 신학교'라는 숫자는 학교 쪽과 에모리 쪽에서만 확인했다.
[5] ATS 회원 학교 쪽 "Duke University Divinity School", ats.edu (2026-10-12)
[6] Duke Divinity School 소식, "Duke Divinity's 99th Opening Convocation"(2025-09-03), divinity.duke.edu (2026-10-12)
[7] Duke Divinity School, "Houses of Study"(A Spiritual Home for Our Students), divinity.duke.edu (2026-10-12)
[8] Duke Divinity School, "Ordination", divinity.duke.edu (2026-10-12)
[9] Duke Divinity School 소식, "Duke Divinity and MTU Celebrate 140 Years..."(2026-03-02), divinity.duke.edu (2026-10-12)
캔들러 신학대학원Candler School of Theology, Emory University ·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드루이드 힐스, 에모리대학교 교정1914년 남감리교회가 밴더빌트대학교를 잃은 뒤 세운 신학교. 에모리대학교의 첫 단과였고, 지금은 연합감리교회의 13개 공식 신학교 가운데 하나다
곳: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드루이드 힐스, 에모리대학교 교정. [2][3]
한 줄 소개: 1914년 남감리교회가 밴더빌트대학교를 잃은 뒤 세운 신학교. 에모리대학교의 첫 단과였고, 지금은 연합감리교회의 13개 공식 신학교 가운데 하나다. [2][3][5]
기원:
1914년 남감리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가 내슈빌의 밴더빌트대학교를 잃었다. 교단은 대학 둘을 세우기로 했고, 교육 위원회가 동남부 학교의 교수진을 모았다. [2][3] 검색 요약으로만 봄 갈라선 달은 1914년 3월이라고 한다.
코카콜라 회사를 세운 에이사 캔들러가 100만 달러를 약속했다. 그의 동생이자 남감리교회 감독인 워런 에이킨 캔들러가 총장이 되었다. [2][3]
1914년 9월 애틀랜타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첫 학장은 플레이토 더럼(1914~1919)이다. [3][5]
1915년 1월 에모리대학교가 디캘브 카운티에서 인가를 받았고, 신학교가 대학의 일부가 되었다. 이사회가 학교 이름을 '캔들러'로 정했다. 에이사와 워런 가운데 누구를 기린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학교는 적는다. [2][3][5]
역사:
1916년 드루이드 힐스 교정의 첫 건물인 신학관으로 옮겼다. [2][3]
1922년 교수회가 여학생을 받기로 했다. 남감리교회가 여성 안수를 막고 있던 때였다. 그 뒤 10년 넘게 여학생이 없었고, 1938년 메리 본 존슨이 여성으로 처음 에모리의 신학사 학위를 받았다. [2]
1957년 조지아주 법은 흑인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의 면세 지위를 빼앗게 했다. 에모리가 이 법에 맞서 1962년 조지아주 대법원에서 이겼고, 1965년 오티스 터너가 캔들러의 첫 흑인 학생이 되었다. [2]
1969~1976년 제임스 레이니 학장 때 교수진이 4년 사이에 50% 늘고 학생 수가 8년 사이에 37% 늘어, 미국에서 가장 큰 연합감리교회 신학교가 되었다. [2]
1975년 하트퍼드 신학교의 도서관 장서를 사들여 피츠 신학 도서관의 장서가 30만 권을 넘었다. [2]
1981년 캐넌 채플 완공. 2008년과 2014년 새 건물 1, 2단계 완공. [2]
2007년 잰 러브가 첫 여성 학장이 되었다. [2]
현황:
학위 과정: MDiv, MA in Religion and Leadership, Master of Religion and Public Life, MTS, ThM, DMin. 생명윤리, 경영, 개발, 법, 공중보건과의 복수 학위가 있다. [5][6]
학생 수: 507명(전일제 환산 431.40), 2025년 가을 보고. [6] 에모리대 소식(2026년 5월)은 "500명 넘는 학생, 전임 교수 40명"이라고 적는다. [4] 위키백과 정보 상자는 467명이라고 적으나 출처 표시가 필요하다는 딱지가 붙어 있다. [8] 옛 수치로 2004년 539명이 있다. [3]
전임 교수: 37명(환산 49.10), 2025년 가을 보고. [6]
인가: ATS 인가(상태 양호, 다음 종합 방문 2033년 가을), 연합감리교회 대학 평의회(University Senate) 인가. [5][6] 위키백과는 1938년부터 ATS 인가라고 적는다. [8]
스페인어, 한국어, 영어를 쓰는 사람을 위한 혼합형 수료 과정 '라 메사 아카데미'가 있다. [4][5]
기금: 찾지 못함.
최근 변화(2024~2026):
2024년 8월 1일 조너선 스트롬이 잰 러브의 뒤를 이어 학장이 되었다. [8] (위키백과에서만 봄)
2026년 5월 7일 에모리대학교가 테런스 L. (코조) 존슨을 다음 학장으로 발표했고, 2026년 8월 1일에 5년 임기를 시작했다. 캔들러의 11번째 학장이다. 존슨은 하버드 신학대학원의 '종교와 공적 삶' 책임자이자 교수였고, 아프리카 감리교 감독교회(AME)의 안수받은 순회 장로다. 스트롬은 교수로 돌아갔다. [1][4]
검색 요약으로만 봄 캔들러가 2026년 연합감리교회 연회에 낸 보고서에는 학생 507명, 11개 나라, 42개 주, 45개 교단, 34개 연회 출신이고 지난 가을 10여 년 만에 가장 큰 새 학년을 맞았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보고서 쪽은 403 오류로 열지 못했다.
합병, 이전, 교단 관계의 변화: 연 쪽들에서 찾지 못함.
관련 교단: 연합감리교회(UMC). ATS는 교단을 "United Methodist Church"로 적는다. [6] 학교 요람은 캔들러가 연합감리교회의 13개 공식 신학교 가운데 하나이고 연합감리교회 대학 평의회의 인가를 받았다고 적는다. [5] 학교는 "감리교의 모든 갈래"를 섬긴다고 한다. [2] 교단별 과정으로 침례교, 흑인 교회, 성공회, 감리교 연구가 있다. [8] 2004년에는 학생의 절반 이상이 연합감리교인이었고 30개 넘는 다른 교단에서도 왔다. [3] 지금의 비율은 찾지 못함. 새 학장은 연합감리교회가 아니라 아프리카 감리교 감독교회 소속이다. [4]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누리집의 문구는 "Candler educates faithful and creative leaders for the church's ministries throughout the world."(캔들러는 온 세계에서 교회의 사역을 맡을 신실하고 창의적인 지도자를 기른다)이다. [1][9] 스스로를 "A theology school embedded in a top-tier university and a hub for Christian learning"(최상위 대학 안에 자리한 신학교이자 기독교 배움의 중심)이라고 소개한다. [1] 사명과 비전의 정식 문장 전체는 연 쪽에서 읽히지 않았다. 조지아 백과사전(글쓴이는 캔들러의 피터 폴슨, 2006년)은 학교의 사명이 기독교 신앙과 웨슬리 전통에 터를 두고 복음적 경건, 초교파적 열림, 사회적 관심을 강조한다고 옮긴다. [3]
(나) 바깥의 평가: 이번에 연 쪽들에서는 캔들러의 신학 성향을 평가한 바깥 출처를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제임스 레이니: 학장을 지낸 뒤 에모리대 총장(1993년까지), 이어서 주한 미국 대사. [2]
워런 캔들러(1857~1941): 감독, 첫 총장. [3]
다니모토 기요시(1940년 졸업):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때 그곳 감리교회를 섬겼고 뒤에 핵무기 반대 운동을 했다. 데즈먼드 투투(전 방문 교수), 버니스 킹(1988년 졸업). [8] (위키백과에서만 봄)
한국의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교환 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다. [8] (위키백과에서만 봄. 학교 쪽에서 확인하지 못함)
라 메사 아카데미가 한국어를 쓰는 사람을 대상에 넣고 있다. [4][5]
검색 요약으로만 봄 2004년 에모리대 보도 자료에 에모리의 첫 한국인 졸업생이 윤치호(1893년 에모리 칼리지 졸업)이고, 헨리 루스 재단의 27만 달러 지원으로 한국 학생 장학과 한국어 자료를 늘리는 3년 사업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그 쪽은 404 오류로 열지 못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1914년 처음 수업한 곳: 위키백과는 웨슬리 기념 교회 [8]. 검색 요약으로만 봄 오번 애비뉴의 웨슬리 기념 건물이라고 적는 자료도 있다.
레이니의 학장 임기: 학교 역사 쪽은 1969~1976년으로 읽히고 [2], 위키백과는 1969~1977년 [8].
학생 수: ATS 507명(2025년 가을) [6], 에모리 소식 "500명 넘음" [4], 위키백과 467명(출처 없음) [8]. 검색 요약으로만 봄 학장 초빙 공고에는 425명, 전임 교수 41명이라고 한다.
전임 교수: ATS 37명 [6], 에모리 소식 40명 [4].
사명 선언 전문, 연합감리교인 학생의 지금 비율, 기금: 찾지 못함.
2019~2023년 연합감리교회의 교회 이탈과 2024년 총회 결정이 캔들러에 미친 영향: 연 쪽들에서 찾지 못함.
출처:
[1] Candler School of Theology, "About", candler.emory.edu (2026-10-12)
[2] Candler School of Theology, "Candler History"(More than a century of serving God, the church, and the world), candler.emory.edu (2026-10-12)
[3] New Georgia Encyclopedia, Peter M. Paulsen, "Candler School of Theology"(2006-02-03, 마지막 고침 2013-12-04), georgiaencyclopedia.org (2026-10-12)
[4] Emory News Center, "Terrence L. Johnson named dean of Emory's Candler School of Theology"(2026-05-07), news.emory.edu (2026-10-12)
[6] ATS 회원 학교 쪽 "Candler School of Theology of Emory University", ats.edu (2026-10-12)
[7] (쓰지 않는 번호)
[8] 위키백과(영어) "Candler School of Theology", en.wikipedia.org (2026-10-12. 이 글에는 홍보성 문체, 출처 부족 딱지가 붙어 있음)
[9] Candler School of Theology, "Mission, Vision & Values", candler.emory.edu (2026-10-12. 정식 문장 전체는 읽히지 않음)
이 묶음을 조사하며 알게 된 것
여섯 학교를 견주어 볼 때 눈에 띄는 점 (사실만)
세운 교단과 지금의 소속이 같은 곳은 감리교 계열 두 곳뿐이다.
학교
세운 때와 세운 쪽
ATS가 적는 지금의 교단
학생 수(ATS, 2025년 가을 보고)
하버드
1816년. 비교파로 세워졌다고 소개됨. 첫 100년은 유니테리언과 비공식 관계(위키백과)
Inter/Multidenominational
295 (괄호 397.70)
예일
1822년. 예일 칼리지(1701)는 목회자 양성이 주된 목적이었음
Inter/Multidenominational
287 (환산 280.00)
유니온
1836년. 장로교 목사 9명. 1893년 총회 감독에서 벗어남(위키백과)
Inter/Multidenominational
257 (환산 234.20)
시카고
1865년 인가 또는 1892년 설립. 침례교
Nondenominational
231 (환산 8.80으로 적혀 있음)
듀크
1926년. 감리교 계열 트리니티 칼리지가 듀크대학교로 커지면서
United Methodist Church
599 (환산 592.20)
캔들러
1914년. 남감리교회
United Methodist Church
507 (환산 431.40)
여러 종교를 함께 가르치는 정도가 학교마다 다르고, 학교 자신의 말에서 그 차이가 드러난다.
- 하버드: 2012년부터 불교 사역 과정이 있고, 2026년에 이슬람과 힌두 사역 과정을 준비한다고 학장이 밝혔다. 2025년 전략 계획의 과제에 "여러 종교가 함께하는 학문 환경"이 들어 있다.
- 유니온: 2016년에 불교와 이슬람 과정을 정식으로 세웠다. 스스로 "역사적으로 기독교 신학교"라고 하면서 종교 간 만남을 학교 일의 한가운데라고 말한다.
- 시카고: 스스로를 "종교와 세계의 종교들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연 쪽들에 신앙고백이 없다.
- 예일: "전통적으로, 그리고 주로 기독교적"이라고 밝히면서 모든 신앙의 사람과 신앙이 없는 사람을 받는다.
- 듀크: 사명 선언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오고 "복음적, 정통적, 보편적"이라는 말을 쓴다. 여섯 곳 가운데 교리의 말이 가장 뚜렷하다.
- 캔들러: "교회의 사역을 위한 지도자"와 "기독교 배움의 중심"을 내세운다.
여섯 곳 모두 연 쪽들에서 장로교 표준 문서(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나 교수가 서명하는 신앙고백을 두고 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예일과 듀크에는 장로교, 개혁교회 학생을 위한 수료 과정이나 '연구의 집'이 있다.
학생 수는 감리교 계열 두 곳(듀크 599, 캔들러 507)이 나머지 네 곳(231~295)의 두 배쯤이다. 다만 하버드와 시카고는 박사 과정이 대학원의 다른 조직과 얽혀 있어 ATS 숫자가 전체를 담지 못할 수 있다.
2024~2026년에 여섯 곳 가운데 네 곳에서 지도자가 바뀌었거나 바뀔 예정이다. 하버드(2024년 1월 프레더릭), 유니온(2026년 7월 톰슨), 캔들러(2024년 8월 스트롬, 2026년 8월 존슨), 예일(스털링이 2027년에 마침). 사람이 학교 사이를 옮긴 것도 보인다. 프레더릭은 캔들러에서 하버드로, 존슨은 하버드에서 캔들러로 갔다.
2025년 하버드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루던 사업이 멈추고 그 과정의 책임자들이 떠났다. 유니온에서는 2024년 이사회가 전쟁 관련 기업에서 투자를 거두기로 했다(위키백과). 같은 문제에 두 학교가 다르게 움직였다.
한국과의 공식 관계가 확인된 것은 듀크(2025년 감리교신학대학교와 양해 각서)뿐이다. 사람으로는 장상(예일 1970년 졸업), 현경(유니온 박사, 교수), 레이니(캔들러 학장, 주한 미국 대사)가 확인되었다. 확인된 한국 쪽 상대는 감리교, 기독교장로회, 이화여대 쪽이고, 고신이나 합동 같은 보수 장로교단과의 관계는 연 쪽들에서 나오지 않았다.
조사의 한계
하버드 신학대학원 공식 누리집은 한 쪽도 열리지 않았다(403 오류). 하버드 대목은 ATS, 하버드 가제트, 하버드 매거진, 크림슨, 위키백과에 기대었다. 사명 선언 원문과 학교가 내는 통계는 반드시 따로 확인해야 한다.
열리지 않은 쪽: 유니온의 역사 쪽(404), 듀크의 역사 쪽(404), 시카고의 MDiv 안내와 학위 과정 쪽(403, 404), 브리태니커의 유니온 항목(403), 연합감리교회 고등교육사역부의 승인 신학교 목록(시간 초과), 캔들러의 2026년 연회 보고서(403), 에모리의 2004년 한국 관련 보도 자료(404), 인터넷 기록 보관소(도구가 막음).
쪽을 여는 도구가 본문을 간추려 돌려주므로, 영어 인용은 짧은 토막만 그대로이고 나머지는 간추린 뜻이다. 연도와 숫자는 도구가 돌려준 대로 적었으나, 글에 싣기 전에 중요한 것(세운 해, 학생 수, 사명 선언)은 원문 쪽에서 한 번 더 맞추어 보는 것이 안전하다.
위키백과 하버드와 유니온 항목은 길어서 앞부분 10만 자만 읽었다.
바깥의 평가는 유니온에 대한 것만 찾았다(미국장로교 소식, Anglican Ink에 실린 비판적 의견 글). 나머지 다섯 곳에 대해 '보수'나 '진보' 같은 평가를 내린 출처는 이번에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딱지를 붙이지 않았다.
기금 규모는 유니온(위키백과, 2019년)만 숫자가 나왔다. 나머지는 찾지 못했다.
연합감리교회의 2019~2023년 교회 이탈과 2024년 총회 결정이 듀크와 캔들러에 미친 영향은 따로 검색했으나 연 쪽들에서 나오지 않았다.
네덜란드·영국
조사한 날: 2026-10-12. 아래 내용은 이날 실제로 열어 읽은 쪽에 글자로 나온 것만 적었다. 사실 끝의 [번호]는 파일 끝 "출처 목록"의 번호다.
검색 결과의 요약으로만 보고 본문을 열지 못한 것은 본문에 섞지 않고 학교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칸에 따로 적었다.
위키백과에서만 본 것은 "(위키백과)"라고 밝혔다.
먼저 알아 둘 교단 이름 (이 파일에서 쓰는 줄임말)
줄임말
원어 이름
우리말
GKv
Gereformeerde Kerken vrijgemaakt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파). 1944년에 생김
옛 NGK
Nederlands Gereformeerde Kerken
1967년 해방파에서 갈라져 나온 교회
새 NGK
Nederlandse Gereformeerde Kerken
2023년 5월 1일 GKv와 옛 NGK가 합쳐 생긴 교회. 이름이 한 글자(-e)만 다르다
CGK
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en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
GKN
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1892년에 생긴 개혁교회의 본줄기(이 사이트의 다른 글에서는 "총회파")
PKN
Protestantse Kerk in Nederland
네덜란드 개신교회. 2004년에 생김
학교 이름을 누르면 조사한 내용이 펼쳐집니다. 대괄호 안의 숫자는 그 학교 칸 끝(또는 이 탭 끝)에 있는 출처의 번호입니다.
위트레흐트 신학대학Theologische Universiteit Utrecht, TUU. 예전의 캄펀 신학대학 Theologische Universiteit Kampen, 브루더베흐 Broederweg ·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Plompetorengracht 3. 2022년까지는 캄펀(Kampen)에 있었다1854년 캄펀에서 시작한 분리 쪽 교회의 신학교를 이어받은 학교로, 1944년 뒤로는 해방파(GKv)의 학교였고 지금은 2023년에 합쳐 생긴 새 NGK의 학교다
곳: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Plompetorengracht 3 [6]. 2022년까지는 캄펀(Kampen)에 있었다 [1][3].
한 줄 소개: 1854년 캄펀에서 시작한 분리 쪽 교회의 신학교를 이어받은 학교로, 1944년 뒤로는 해방파(GKv)의 학교였고 지금은 2023년에 합쳐 생긴 새 NGK의 학교다 [1][5].
기원:
1854년 12월 6일 캄펀에서 "신학교(Theologische School)"로 세워졌다(위키백과 영어판) [2]. 세운 곳은 기독분리개혁교회(Christelijke Afgescheiden Gereformeerde Kerk)의 즈볼러(Zwolle) 총회이고, 첫 교사는 브룸멜캄프(A. Brummelkamp), 헬레니우스 더 콕(Helenius de Cock), 더 한(T.F. de Haan), 판 펠전(S. van Velzen)이다(위키백과 네덜란드어판) [1]. 언론 기사도 1854년 즈볼러 총회가 세웠고 분리(Afscheiding)는 1834년의 일이라고 적는다 [13].
세운 까닭: 자기 교회의 목사를 기르기 위해서였다(위키백과 영어판) [2].
역사:
1882년: 총회가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등을 교사로 임명했다(위키백과) [1].
1892년: 기독개혁교회가 카이퍼 쪽 교회(Nederduits Gereformeerde Kerken)와 합쳐 개혁교회(GKN)가 되었다. 그 뒤로 이 교회에는 목사를 기르는 곳이 캄펀과 암스테르담 자유대학 두 곳이었다(위키백과) [1].
1902년: 아른험 총회가 캄펀의 학교를 자유대학 신학부와 합치기로 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바빙크와 비스터펠트(Biesterveld)가 많은 학생과 함께 자유대학으로 옮겼다(위키백과) [1].
1939년: 이름이 "신학 고등학교(Theologische Hogeschool)"로 바뀌었다(위키백과 영어판과 네덜란드어판) [1][2].
1944년: 클라스 스킬더(Klaas Schilder) 교수가 정직되고 면직되었으며 흐레이다뉘스(Greijdanus) 교수도 정직되었다. 이 일로 "해방(Vrijmaking)"이 일어나 GKv가 갈라져 나왔다. 학교도 둘로 갈려 GKN 쪽은 캄펀 아우더스트라트(Oudestraat), GKv 쪽은 캄펀 브루더베흐(Broederweg)에 자리 잡았다(위키백과) [1]. 언론 기사도 1944년에 학교가 갈라졌고 해방파가 브루더베흐의 건물을 얻었다고 적는다 [13].
1975년: 왕령(1975년 3월 8일)으로 학문적 신학 교육 기관으로 인정받았다(위키백과) [1].
1986년 또는 1987년: "신학대학(Theologische Universiteit)"이 되었다. 영어판은 1986년, 네덜란드어판은 이름이 바뀐 해를 1987년으로 적는다 [1][2].
2016~2017년: 아펄도른 신학대학(CGK)과 하나의 대학을 만들 계획이 있었으나 2017년 CGK 총회가 부결했다(위키백과) [1][19].
2021년: 9월에 2022~2024년에 걸쳐 위트레흐트로 옮기기로 결정했다(위키백과) [1]. 교육부 장관이 이전 계획을 승인했다(위키백과 영어판) [2]. 학교는 2021년 11월 27일 소식에서 2022년 9월부터 Plompetorengracht의 건물에서 학사 1학년과 예비 석사 과정 수업을 시작하고, 이전은 3년에 걸쳐 차례로 하며, 그동안의 이름은 "Theologische Universiteit Kampen|Utrecht"라고 알렸다 [3].
2023년: 5월 1일 GKv와 옛 NGK가 합쳐 새 NGK가 되었다 [8][9]. 2023년 중반부터 모든 수업이 위트레흐트에서 열리고 이름이 "Theologische Universiteit Utrecht"로 바뀌었다(위키백과) [1]. 2023년 11월 29일 학교 소식은 캄펀에서 마지막 신학 교육 기관이 사라졌다고 적는다 [15].
현황:
학위 과정: 신학 학사, 석사, 영어로 하는 "개혁신학 상호문화 석사(MIRT, Master of Intercultural Reformed Theology)", 박사 연구가 있다 [6]. 목사 과정은 학사와 목회학 석사(Master of Divinity)를 합쳐 6년이고, MIRT는 2015년에 시작했다(위키백과 영어판) [2].
사람 수: 학교 누리집의 직원 목록에는 이사회 2, 강사 12, 교수 16, 연구 19, 지원 직원 40, 명예 교수 4, 방문 교수 3으로 나온다(기준일 없음. 분류가 겹치는지는 적혀 있지 않음) [6].
학생 수: 전체 학생 수는 찾지 못했다. 부분 숫자만 있다. (가) 진학 안내 누리집(Studiekeuze123)은 신학 학사 과정에 "학생 56명, 1학년 18명"이라고 적는데 기준 연도가 없다 [12]. (나) 일간지 RD(2026-08-26)는 학사 새내기가 지난 두 해에 해마다 약 25명(기록)이었고 2026년에는 약 15명을 예상하며, 따로 직업대학(hbo)이나 다른 대학에서 넘어오는 학생이 31명이라고 전한다 [11].
지도부: 이사회 의장 J.W. (Pim) Boven, 총장(rector magnificus) George Harinck 교수 [5].
최근 변화: 위트레흐트 이전과 이름 바뀜(위). 2025년 9월 26일 일간지 ND는 PThU와 TUU가 앞으로 더 협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합병 이야기는 없다 [14]. 네 "세계관 대학"(TUU, PThU, TUA, 인문주의 대학 UvH)이 협의체를 이룬다 [6][18].
관련 교단: 공식 소속. 감독 이사회(Raad van Toezicht)와 자문 위원회의 위원을 새 NGK의 총회가 임명한다. 원문: "De leden van de raad van toezicht worden benoemd door de Synode van de Nederlandse Gereformeerde Kerken." [5]
교단의 내력: 1834년 분리 → 1892년 GKN으로 합침 → 1944년 GKv가 갈라져 나옴 → 1967년 GKv에서 옛 NGK가 갈라져 나옴 → 2023년 5월 1일 둘이 다시 합쳐 새 NGK [1][8][9]. 1967년에 갈라선 까닭을 북미 기독개혁교회(CRCNA) 소식은 "참된 교회"가 누구인가를 둘러싼 다툼이었다고 적는다 [8].
새 NGK의 크기(위키백과): 2023년 첫 연감에 약 320 교회 146,568명, 2024년 133,708명, 2025년 추정 318 교회 130,842명 [9].
새 NGK의 신앙고백(위키백과): 사도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여성 안수를 허용한다 [9].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The mission of Utrecht Theological University is to study the Bible and the reality of God in order to form new generations for their service in church and society." (위트레흐트 신학대학의 사명은 성경과 하나님의 실재를 연구하여 새 세대를 교회와 사회를 섬기도록 기르는 것이다.) 이어서 "We do this in line with the Reformed tradition, which we continually re-examine, update and connect to the world of today and tomorrow" (우리는 이 일을 개혁파 전통의 줄기 안에서 하며, 그 전통을 계속 다시 살피고 새롭게 하여 오늘과 내일의 세계에 잇는다)라고 적는다 [4]. 사명과 비전 쪽에는 특정 신앙고백 문서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4].
(나) 바깥의 평가: 국제개혁교회협의회(ICRC)는 2017년 GKv가 모든 직분을 여성에게 연 일로 GKv의 회원권을 정지했고, 2022년 10월 나미비아 회의에서 회원 자격을 끝냈다. 이것은 캐나다 개혁교회 계열 목사 웨스 브레던호프(Wes Bredenhof)의 글(2022-10-14)에 따른 것이며, 그는 그 결정이 성경에 어긋난다고 평가한다 [10]. 이 평가는 학교가 아니라 교단을 향한 것이다. 학교 자체의 신학 성향을 평가한 바깥 글은 이번에 열어 읽지 못했다.
알려진 사람: 헤르만 바빙크(교의학. 1882년 임명, 1902년 자유대학으로 옮김), 클라스 스킬더(1933/1944~1952), 야콥 판 브루헌(Jakob van Bruggen. 신약학, 1967~2001), 요험 다우마(Jochem Douma. 1970~1997), 지금의 교수로 스테판 파스(Stefan Paas. 선교학), 조지 하링크(George Harinck. 네덜란드 교회사) (모두 위키백과) [1][2].
한국 교회와의 관계:
학교가 2026년에 낸 협력 기관 목록(Partnerinstellingen TUU 2026)의 아시아 칸에 한국 학교 세 곳이 있다. "Korea Theological Seminary"(천안. 고신의 고려신학대학원. 누리집 주소 center.kosin.ac.kr), "Chongshin Theological University"(서울. 총신), "Theological Seminary IRC Korea"(안양. 누리집 주소 sub.anyang.ac.kr) [7]. PDF의 표가 깨져 이름과 도시를 줄 맞춰 읽어야 했다. 협약의 내용과 맺은 해는 목록에 없다.
합신(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은 이 목록에 없다 [7].
고신과 해방파 교회의 자매 관계는 이 사이트의 글 「네덜란드 개혁교회와 고신」에 정리되어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그 내용을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전체 학생 수와 기준 연도(학교의 연례 보고서를 찾지 못함).
이름이 바뀐 정확한 날. 위키백과 네덜란드어판은 "2023년 중반", 학교의 2021년 소식은 2022년부터 과도기 이름 "Kampen|Utrecht"를 쓴다고 했다 [1][3]. 2026년 8월의 RD 기사는 "약 2년 전에 옮겼다"는 투로 적는다 [13].
세운 해가 위키백과 영어판 본문은 1854년인데 같은 글의 분류에는 "1944년에 세워진 대학"이 붙어 있다 [2]. 1944년은 해방파 학교로 갈라선 해다.
학교 영어 누리집의 "운영과 조직" 쪽은 2020년 12월 기준의 옛 이사 이름과 tukampen.nl 전자우편을 그대로 두고 있고, 임명 주체도 옛 두 교단의 총회로 적혀 있다. 네덜란드어 쪽이 최신이다 [5][55].
학교가 어떤 신앙고백에 묶여 있는지를 학교 정관(Statuut)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정관 PDF가 있다는 것만 보았다 [5].
아펄도른 신학대학Theologische Universiteit Apeldoorn, TUA · 네덜란드 아펄도른, Wilhelminapark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CGK)에 딸린 신학대학으로, 1894년에 세워져 1919년부터 아펄도른에 있다
곳: 네덜란드 아펄도른, Wilhelminapark [16].
한 줄 소개: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CGK)에 딸린 신학대학으로, 1894년에 세워져 1919년부터 아펄도른에 있다 [16][17].
기원:
학교 누리집: 1894년에 세워졌고 1919년부터 아펄도른의 빌헬미나 공원 곁에 있다 [16].
위키백과 영어판: 1894년 기독개혁교회의 첫 총회 때 여덟 교회가 헤이그(Den Haag)에서 신학교를 열었고 1919년에 아펄도른으로 옮겼다 [19].
세운 교단의 내력(위키백과): 1834년 분리에서 나온 교회들이 1869년에 합쳐 기독개혁교회(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 in Nederland)가 되었다. 1892년 대부분이 GKN으로 합쳤으나 작은 부분이 남아 옛 이름을 지켰다. 1947년에 지금의 이름(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en)이 되었다 [20].
역사:
1894년: 세움 [16][19].
1919년: 아펄도른으로 옮김 [16][19].
1968년: CGK의 목사 후보생이 아닌 학생도 받기 시작(위키백과) [19].
1980년: 신학 박사 학위를 줄 권한을 얻음(위키백과) [19].
2008년: 5월 28일 총회가 TUA를 독립된 법인으로 선언 [17].
2017년: 10월 CGK 총회가 캄펀의 신학대학, 옛 NGK의 목사 교육과 합쳐 "개혁 신학대학"을 만드는 계획을 부결(위키백과) [19]. 같은 해 미국 그랜드래피즈의 청교도개혁신학교(PRTS)와 "청교도 연구소"와 공동 박사 과정을 시작 [18][19].
2021년: 9월에 시간제 석사 "살아 있는 개혁신학(Living Reformed Theology. 네덜란드어 줄임말 HGT)" 시작(위키백과) [19].
2024년: 4월 1일부터 새 기관 계획(2024~2029) "삶을 위한 신학(Theologie voor het leven)" 시행. 11월 13일 CGK 총회가 교수 임명 권한을 총회에서 학교 이사회(College van Bestuur)로 넘기고 이사회가 총회를 대신하는 감독 기구(Curatorium)의 협력을 얻어 임명하도록 바꿈 [18].
현황:
학위 과정: 3년 신학 학사(180학점), 3년 신학 석사(180학점), 시간제 석사 HGT(60학점), 박사 과정(Graduate Program) [16][18].
학생 수(학교의 2024년 연례 보고서. 기준일 2024년 10월 1일): 전일제 116명과 시간제 37명으로 모두 153명. 이 밖에 계약 수강생이나 다른 대학 소속 수강생 81명, 박사 과정생 71명(그 가운데 42명이 외국에서 옴) [18]. 같은 보고서 표의 10월 1일 학생 수: 2020년 77, 2021년 96, 2022년 100, 2023년 108, 2024년 153 [18].
새내기: 2024년 가을에 학사 새내기가 세 배로 늘어 기록이었다 [18]. 일간지 RD(2026-08-26)는 2024년 50명, 2025년 "거의 40명", 2026년 43명(잠정)이라고 전한다 [11].
교직원: 2024년 10월 1일 기준 24.48 전일제 환산 인원(fte). 2023년은 21.43 [18].
지도부: 이사회 의장 A.J. Dorst, 총장 M.J. Kater 교수 [18].
평가: 진학 안내서(Keuzegids Universiteiten 2025)에서 신학 학사가 89점으로 그 분야 1위였다고 학교 보고서는 적는다 [18].
재정: 2026년부터 정부 보조금이 10% 줄 것으로 보고 예산을 짰다 [18].
최근 변화(교단의 위기): 보고서는 "CGK 안의 교회적 변화가 TUA를 비껴가지 않으므로" 이사회가 전략 선택의 방향을 잡는 시나리오 문서를 만들었다고 적는다 [18]. 그 배경은 아래 "관련 교단"에 적는다.
관련 교단: 공식 소속. 학교 누리집 원문(영어): "The Theological University is part of the Christian Reformed Churches." 총회(General Synod)가 CGK의 가장 높은 회의이자 TUA의 가장 높은 기구이며 3년에 한 번 모인다. 감독 기구(Curatorium)는 CGK 목사 아홉 명으로 이루어지고 학교의 "개혁파 신앙고백적 성격"을 살피며 목사 후보생의 입학과 설교 허락을 맡는다 [17].
교단의 크기(위키백과): 2012년 1월에 181 교회 74,286명, 2014년 73,692명 [20].
교단의 위기: 2025년 1월 29일 CGK 총회가 2022년의 결정(여성은 직분을 맡을 수 없다)에 맞선 이의 50건을 모두 기각했다 [21]. 2026년 9월 26일 RD 기사에 따르면 CGK의 182 교회 가운데 56곳이 레인스뷔르흐(Rijnsburg) 쪽의 움직임에 관여하고 있고(참여 35, 참관 20이라고 적혀 있어 합이 55다), 보통이면 2027년에 모일 총회가 한 해 앞당겨 2026년 9월 29일 호허페인(Hoogeveen)에서 모였다. 까닭은 여성 직분, 동성 관계, 성경 해석을 둘러싼 교단의 깊은 위기라고 기사는 적는다 [22]. 10월 2일 RD 기사에 따르면 이 총회는 교회됨에 관한 깊은 논의의 "길잡이 계획"을 만들고 12월 8~11일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 [23].
이 위기와 학교: 감독 기구 의장은 2026년 6월에 "될 수 있는 한 오래 서로 가까이 있고 싶다"고 했고, 법률가들은 갈라지더라도 TUA를 함께 쓰는 것을 공동의 일로 들었다 [22]. 2026년 10월 총회는 TUA 교수가 총회에 자문하는 규정을 바꾸었고(자문 교수가 CGK 교인일 필요가 없고 자문을 미리 글로 내야 함), 케이터 총장은 이 결정이 지혜롭지 못하며 학교와 교회의 유대를 굳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23].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구호는 "Denken om te dienen"(섬기기 위해 생각한다). 사명 원문: "De TUA heeft als doel om door middel van academisch onderzoek en onderwijs bij te dragen aan doordenking en verdieping van de klassiek-gereformeerde theologie." (TUA의 목적은 학문적 연구와 교육으로 고전적 개혁신학을 깊이 생각하고 깊게 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18] 보고서는 성경을 "개혁신학을 하는 데 유일하고 권위 있는 근원"이라 부르고 "학문과 경건"을 함께 추구한다고 적는다 [18]. 입학 조건 가운데 하나가 "개혁파 신앙고백서들에 동의하거나 그것을 존중함(Instemming met of respecteren van de gereformeerde belijdenisgeschriften)"이다 [18]. 영어 누리집은 "성경에 뿌리를 둔 개혁신학의 발전과 갱신"에 힘쓴다고 적는다 [16].
교단의 교리 표준(위키백과): 세 고대 신경과 세 일치 신조(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조). 직분자는 이 바탕에 어긋나게 가르치지 않겠다고 서명한다 [20].
(나) 바깥의 평가: 학교의 신학 성향에 딱지를 붙인 바깥 글은 이번에 열어 읽지 못했다. 사실로 확인되는 것은 이 학교가 속한 교단이 2022년과 2025년에 여성 직분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것 [21], 그리고 2024년 연구 평가단이 연구의 범위와 넓이를 좋게 보았다는 것(학교 보고서가 전함) [18]이다.
알려진 사람: 헤르만 셀더르하위스(Herman Selderhuis. 교회사. 종교개혁 연구 연합 REFORC 회장), 에릭 페일스(Eric Peels), 아르놀트 하위헌(Arnold Huijgen), 빌럼 크레머(Willem Kremer. 1954~1969) (위키백과) [19]. 셀더르하위스가 REFORC와 유럽 종교학회의 회장이라는 것은 학교 보고서에도 나온다 [18].
교수들이 개인으로 교류하는 곳으로 "천안의 고신 신학교(Kosin Presbyterian Seminary te Chon-Ahn)와 수원의 HTS"가 적혀 있다 [18].
2024년에 박사 논문 지도를 받은 외국 학생 가운데 한국에서 온 사람이 6명이다(미국 11명 다음으로 인도네시아와 함께 많음) [18].
위키백과 영어판은 학생이 "특히 한국, 인도네시아와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온다고 적는다 [19].
고신과 CGK의 교단 관계: 위키백과 영어판의 CGK 글은 고신(Presbyterian Church in Korea, Koshin)을 "제한된 교류(limited correspondence)" 칸에 적는다 [20]. 이 사이트의 글은 2000년에 "자매 관계"를 맺었다고 적는다. 어긋날 수 있는 곳이다(아래 "조사하며 알게 된 것").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2024년 학사 새내기 수가 같은 보고서 안에서 머리말은 50명, 본문은 48명이다 [18].
처음 세워진 곳이 헤이그라는 것은 위키백과에서만 보았다. 학교 누리집은 세운 해와 1919년부터 아펄도른에 있다는 것만 적는다 [16][19].
위키백과의 "학생 130명 남짓"은 기준 연도가 없다 [19]. 학교 보고서의 숫자를 따랐다.
2025년 1월 표결이 31 대 18이었다는 것과 이의를 낸 교회가 181곳 가운데 46곳이었다는 것은 검색 요약으로만 보았다(본문을 연 ND 기사에는 표결 수가 없다).
레인스뷔르흐 쪽 교회들이 새 교단을 공식으로 세웠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기사들은 "새 노회 구조", "총회(algemene vergadering)"라는 말을 쓴다 [22][23].
2025년과 2026년 10월 1일의 학생 수(2025년 연례 보고서를 찾지 못함).
출처: [11][16][17][18][19][20][21][22][23]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의 종교·신학부Vrije Universiteit Amsterdam, School of Religion and Theology. 예전의 신학부 Faculteit der Godgeleerdheid, 그 뒤 Faculty of Religion and Theology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1880년 아브라함 카이퍼가 앞장서 세운 사립 대학의 가장 오래된 학부로, 지금은 여러 종교와 여러 교단의 신학교를 함께 품은 "종교·신학 학교"이고 2025년 4월부터 새 "사회과학·인문학부"에 들어가 있다
곳: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한 줄 소개: 1880년 아브라함 카이퍼가 앞장서 세운 사립 대학의 가장 오래된 학부로, 지금은 여러 종교와 여러 교단의 신학교를 함께 품은 "종교·신학 학교"이고 2025년 4월부터 새 "사회과학·인문학부"에 들어가 있다 [24][26].
기원:
대학 누리집: 자유대학은 1880년에 세워졌고 창립 모임은 1880년 10월 20일에 열렸다. 가장 두드러진 설립자는 신학자이자 언론인,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이며 그가 첫 총장이었다 [24].
"자유(vrije)"의 뜻: 정부와 네덜란드 국가 교회(Hervormde Kerk)의 간섭에서 독립해 있다는 뜻이다 [24][28].
위키백과: 1880년 카이퍼와 네 명의 교수가 신학, 법학, 인문학 세 학부로 강의를 시작했다 [28].
역사:
1880년: 세움. 신학부는 처음 세 학부 가운데 하나 [24][28].
1902년: 캄펀의 바빙크와 비스터펠트가 많은 학생과 함께 자유대학으로 옮김(위키백과 네덜란드어판의 캄펀 글) [1].
1930년과 1950년: 과학부, 의학부가 더해짐(위키백과) [28].
1970년: 다른 네덜란드 대학처럼 주로 정부 돈으로 운영되기 시작. 그 전까지는 기부금으로만 운영했다. 이 해에 학생이 이미 1만 명이었다 [24].
그 뒤: 대학 누리집은 "전통적인 '개혁파' 정체성에서 차츰 멀어졌고" 학문, 종교, 사회를 둘러싼 새 정체성이 생겼다고 적는다 [24].
2025년: 4월 1일부터 종교·신학 학교가 새로 만든 "사회과학·인문학부(Faculty of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FSH)"의 일부가 됨 [26]. 2026년 8월 RD 기사는 이것을 "학부 합병"이라 부른다 [11].
현황:
이름: 지금 대학 누리집은 "VU School of Religion and Theology (VU SRT)"라고 쓴다 [25][26].
안에 든 신학교: "우리는 저마다의 신앙 공동체를 섬길 지도자를 기르는 아홉 신학교를 품고 있다(We host nine seminaries...)" [26]. 아홉 곳의 이름은 그 쪽에 나오지 않는다. RD 기사는 회복개혁교회의 신학교(HHS. 암스테르담. 학장 W. van Vlastuin 교수)를 자유대학과 나란히 적는다 [11].
다루는 범위: 이슬람, (이주민) 교회, 힌두교, 불교를 포함한 네덜란드의 여러 세계관을 다루는 과정이 있고, 성경과 꾸란 같은 경전 연구를 한다 [26]. 연구소 목록에는 헤르만 바빙크 개혁·복음주의 신학 센터, 국제개혁신학연구소(IRTI), 이슬람 신학 센터, 불교와 대화 센터, 오순절·은사 운동 연구 센터(Hollenweger Center), 동방 기독교 연구소, 항론파 신학의 아르미니우스 연구소가 함께 있다 [27].
학생 수: 학부(학교) 전체 학생 수는 찾지 못했다. RD 기사(2026-08-26)는 지난 학년도 학사 새내기가 35명이었고 2026년에는 지원이 62건(전일제 27, 시간제 35)이라고 전한다 [11].
대학 전체: 위키백과는 등록 학생을 31,548명(2026년 6월 기준이라고 적혀 있음)으로 적는다. 위키백과에서만 보았다 [28].
관련 교단: 지금은 특정 교단의 학교가 아니다. 세워질 때는 개혁파 그리스도인 집단과 가까이 이어져 있었다고 대학 누리집은 적는다 [24]. 1892년 뒤 GKN의 목사 교육 기관은 캄펀과 자유대학 두 곳이었다(위키백과) [1]. 지금은 여러 교단의 신학교 아홉 곳이 안에 들어와 있는 꼴이다 [26].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The VU School of Religion and Theology (VU SRT) advances and enriches understanding of theology and religion" (자유대학 종교·신학 학교는 신학과 종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풍성하게 한다) [25][26]. 대학 누리집은 대학의 역사를 말하며 전통적인 개혁파 정체성에서 차츰 멀어졌다고 스스로 적는다 [24].
(나) 바깥의 평가: 이번에 열어 읽은 바깥 평가는 없다. 사실로 확인되는 것은 한 학교 안에 개혁신학 연구소와 이슬람, 불교, 오순절, 동방 정교, 항론파 연구소가 함께 있다는 것이다 [27].
알려진 사람: 아브라함 카이퍼(설립자, 신학 교수, 뒤에 수상), 헤르만 바빙크, 베르카우어(G.C. Berkouwer), 알더르스(G.Ch. Aalders), 폴렌호번(D.H.Th. Vollenhoven) (위키백과) [28].
한국 교회와의 관계: 이번에 연 쪽에서는 찾지 못했다. 이 사이트의 글 「네덜란드 개혁교회와 고신」은 박윤선(1953~54), 이근삼, 손봉호가 자유대학에서 공부했다고 적고 있으나 이번 조사에서 그 내용을 다시 확인하지는 않았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신학부가 "Faculty of Religion and Theology"로, 다시 "School"로 이름이 바뀐 해. 누리집 주소에 두 이름이 섞여 있으나 바뀐 날을 적은 쪽은 찾지 못했다.
아홉 신학교의 이름. 검색 요약에는 메노파 신학교(Mennonite Seminary), 회복개혁 신학교(Restored Reformed Seminary), 침례교 신학교(Baptist Seminary)가 나왔으나 그 쪽들은 열리지 않았다(404).
학부 전체 학생 수와 교수 수.
2023년 대학 소식이 이 학부를 "자유대학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작은 학부"라고 불렀다는 것은 검색 요약으로만 보았다(쪽이 열리지 않음).
PThU가 2012년부터 자유대학 안에 암스테르담 자리를 두었다가 2024년에 떠난 일은 아래 4번에 적었다.
출처: [1][11][24][25][26][27][28]
개신교 신학대학Protestantse Theologische Universiteit, PThU ·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찾아가는 주소 Jansdam 14, 우편 주소 Janskerkhof 12네덜란드 개신교회(PKN)의 목사를 기르는 대학으로, 2007년에 여러 신학 교육 기관이 합쳐 생겼고 2024년에 암스테르담과 흐로닝언에서 위트레흐트로 옮겼다
곳: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찾아가는 주소 Jansdam 14, 우편 주소 Janskerkhof 12 [29].
한 줄 소개: 네덜란드 개신교회(PKN)의 목사를 기르는 대학으로, 2007년에 여러 신학 교육 기관이 합쳐 생겼고 2024년에 암스테르담과 흐로닝언에서 위트레흐트로 옮겼다 [29][30][32][34].
기원:
학교 누리집: "PThU는 2007년, 이미 있던 세 대학이 하나로 합쳐 생겼다" [30]. 같은 누리집은 "400년이 넘는 역사", "네 세기의 신학 교육"이라고도 적는다 [29].
위키백과 네덜란드어판: 2006년 4월 7일 PKN 총회의 결정에 따라 2007년 1월 1일에 세워졌다. 합친 곳은 넷이다. 캄펀 신학대학(ThUK. 곧 GKN 쪽의 캄펀 아우더스트라트 학교), 위트레흐트와 레이던의 신학 학술원(ThWI), 위트레흐트의 복음주의 루터교 신학교(ELS), 도른의 신학교(Theologisch Seminarium). 합친 목적 가운데 하나는 PKN 안 목사 교육들 사이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었다 [32].
역사:
2004년: 5월 1일 네덜란드 국가 교회 계열의 개혁교회(Nederlandse Hervormde Kerk), GKN,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합쳐 PKN이 됨(위키백과) [35].
2007년: PThU 세움 [30][32].
2010년: 4월에 위트레흐트, 캄펀, 레이던 자리를 닫고 암스테르담(자유대학)과 흐로닝언(흐로닝언 대학)으로 옮긴다고 발표(위키백과) [32].
2012년: 9월 1일부터 석사 과정을 암스테르담과 흐로닝언 두 곳에서 엶. 흐로닝언 대학과의 학사 협력은 2011년 9월 1일부터(위키백과) [32].
2022년: 4월 13일 위트레흐트로 옮기겠다고 발표, 4월 21일 PKN 총회가 승인(위키백과) [32][33].
2023년: 위트레흐트 도심 얀스케르크호프의 건물(Janskerkhof 12/Jansdam 14)을 삼. 6월 15일 지역 언론은 2024년 9월에 옮길 예정이라고 전함 [34].
2024년: 8월 위트레흐트의 임시 자리(Daltonlaan)로 옮김(위키백과) [32]. 2월에 교육부 장관이 위트레흐트의 새 학사 과정을 승인하지 않았으나 11월에 그 과정의 재정 지원을 받게 됨(위키백과) [32].
2025년: 2월 얀스담/얀스케르크호프의 영구 자리로 옮김(위키백과) [32][33]. 2025년 가을에 자체 신학 학사 과정이 17명으로 시작 [11].
2026년: 고쳐 지은 얀스케르크(Janskerk)에서 2026~2027 학년도를 엶 [29].
현황:
학위 과정: 신학 학사, 3년 신학 석사(교회 목사 과정 Gemeentepredikant), 영어로 하는 1년 신학 석사(위키백과) [32]. 학교는 "교회 목사, 영적 돌봄 일꾼, 학문 연구자"가 될 신학자를 기른다고 적는다 [29].
학생 수: 학교 누리집은 "학생 240명, 4%가 외국 학생"이라고 적는다(기준 연도 없음) [29]. 위키백과 네덜란드어판: 2012년 350, 2017년 280, 2018년 261, 2020년 228, 2022년 212, 2024년 236 [32].
새내기(RD, 2026-08-26): 학사 약 20명 예상, 예비 석사 약 36명, 목사 석사는 31명에서 약 40명으로 늘 것으로 예상 [11].
지도부: 총장 Martha Frederiks 교수 [31].
최근 변화: 위트레흐트 이전(위). TUU와의 협력 강화(2025-09-26 보도. 두 학교는 약 400미터 떨어져 있다) [14].
관련 교단: 공식 소속. 원문: "The members of the Supervisory Board are appointed by the synod of the Protestant Church in the Netherlands." (감독 이사회의 위원은 네덜란드 개신교회 총회가 임명한다.) [30] PKN의 크기(위키백과): 2023년 교인 1,387,000명, 2025년 1월 1일 기준 1,458 교회 [35]. 2004년 합칠 때 따르지 않은 국가 교회 쪽 교회들이 회복개혁교회(Hersteld Hervormde Kerk)를 세웠다(위키백과) [35].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We use our theological knowledge and experience to inspire and renew the church, science and society." (우리는 신학의 지식과 경험으로 교회와 학문과 사회에 영감을 주고 그것을 새롭게 한다.) 핵심 가치: "Our theology is deeply rooted, broadly oriented, sharp-minded and rich in spirituality." (우리의 신학은 뿌리가 깊고, 눈길이 넓고, 생각이 날카롭고, 영성이 풍부하다.) 스스로를 개신교적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끌린다고 적는다 [30].
교단의 교리 표준(위키백과): 세 고대 신경, 루터교 전통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과 루터 요리문답, 개혁파 전통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네바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조. 바르멘 신학 선언과 로이엔베르크 합의도 인정한다 [35].
(나) 바깥의 평가: 이번에 열어 읽은 바깥 평가는 없다.
알려진 사람: 이번에 연 쪽에서는 지금의 총장 Martha Frederiks만 확인했다 [31]. 2026년 9월 15일 학교 소식은 Hector Patmore가 45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한다 [29]. 그 밖의 교수나 졸업생은 확인하지 못했다.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합친 기관의 수: 학교 누리집은 "세 대학", 위키백과 네덜란드어판은 네 기관 [30][32].
위트레흐트로 옮긴 때: 지역 언론의 예고는 2024년 9월 [34], 위키백과 네덜란드어판은 2024년 8월 임시 자리, 2025년 2월 영구 자리 [32], 위키백과 영어판은 2025년 2월에 이전이 마무리되었다고만 적는다 [33]. 학교 누리집이 "2024년 9월부터 위트레흐트"라고 적는다는 것은 검색 요약으로만 보았다.
위키백과 영어판은 PThU의 내력을 1854년 캄펀의 신학교에서 시작해 적고, 암스테르담과 흐로닝언으로 옮긴 해를 2010년으로 적는다 [33]. 네덜란드어판은 2010년은 발표, 2012년 9월이 석사 과정의 시작이라고 적는다 [32]. 1854년의 학교는 PThU의 여러 앞선 기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400년이 넘는 역사"가 어느 기관에서부터 센 것인지 누리집에 설명이 없다 [29].
학생 수의 기준 연도(누리집 240명), 교수 수.
2023년과 2024년의 학교 소식 쪽(이전 발표, 얀스케르크 임대 계약)은 주소를 열어도 본문이 나오지 않아 쓰지 않았다. 임대 계약이 2024년 6월 18일에 30년 기한으로 맺어졌다는 것은 검색 요약으로만 보았다.
출처: [11][14][29][30][31][32][33][34][35]
에든버러 대학 뉴 칼리지New College, University of Edinburgh. 신학부 School of Divinity ·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마운드(the Mound)1843년 대분열 때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신학교로 시작해 1935년 에든버러 대학 신학부와 합친 곳으로, 지금은 대학의 신학부(School of Divinity)가 쓰는 건물이자 그 이름이다
곳: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마운드(the Mound).
한 줄 소개: 1843년 대분열 때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신학교로 시작해 1935년 에든버러 대학 신학부와 합친 곳으로, 지금은 대학의 신학부(School of Divinity)가 쓰는 건물이자 그 이름이다 [36][37].
기원:
대학의 신학 교육: 에든버러 대학은 1583년에 세워졌고 처음에는 대체로 스코틀랜드 교회의 성직자를 기르는 신학교였다. 로버트 폴록(Robert Pollock. 흔히 Rollock으로도 적음 확인필요)이 첫 학장이고 1587년에 신학 교수가 되었다 [36].
뉴 칼리지: 1843년 5월 18일 데이비드 웰시(David Welsh) 목사가 약 200명의 목사를 이끌고 총회에서 걸어 나갔다. 영적인 일에 국가가 간섭한다고 보아 목사의 3분의 1이 스코틀랜드 교회를 떠났고 스코틀랜드 자유교회가 생겼다. 뉴 칼리지는 1843년에 세워졌고 그해 11월 168명의 학생이 토머스 차머스(Thomas Chalmers) 아래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36].
역사:
1846년: 6월 3일 차머스가 건물의 머릿돌을 놓음 [36]. 건물은 윌리엄 헨리 플레이페어(William Henry Playfair)의 설계로 1845~1850년에 지음(위키백과) [37].
1900년: 자유교회의 대부분이 연합장로교회와 합쳐 연합자유교회(United Free Church)가 됨 [46]. 뉴 칼리지 건물은 연합자유교회에 주어졌고, 남은 자유교회는 1907년부터 새 건물에서 신학교를 이어 감(위키백과) [37][45].
1929년: 스코틀랜드 교회와 연합자유교회가 다시 합침. 거의 90년 만에 에든버러의 두 신학 교육 중심이 한데 모임 [36].
1935년: 뉴 칼리지가 대학의 신학부(Faculty of Divinity)와 합쳐 대학의 일부가 됨. 합친 학부가 뉴 칼리지 건물을 씀 [36].
1961년: 뉴 칼리지가 에든버러 대학에 넘겨짐. 총회 회관(Assembly Hall)은 지금도 스코틀랜드 교회의 것이고 해마다 총회가 거기서 열린다 [36].
1910년: 총회 회관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림. 1999~2004년에는 스코틀랜드 의회의 임시 회의장으로 쓰임(위키백과) [37].
학생 수: 위키백과는 "해마다 학부생이 거의 300명", 전임 교수 "거의 40명", 학생의 출신 나라 "30개국 넘게"라고 적는다. 기준 연도가 없다 [37]. 2026년 9월 기독교 언론은 그해 신학부에 새 학생이 200명 넘게 들어왔다고 전한다 [38]. 학교 공식 숫자는 찾지 못했다.
연구 평가: 2021년 영국 연구 평가(REF)에서 신학 연구가 스코틀랜드 1위, 영국 5위(위키백과) [37].
최근 변화 (2026년):
2026년 1월 6일 글래스고 대학 소식: 스코틀랜드 교회가 목사 교육의 새 "주 학문 협력 기관(lead academic partner)"으로 글래스고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추천했고, 2026년 총회가 최종 결정한다. 뉴 칼리지(에든버러), 크라이스트 칼리지(애버딘), 하일랜드 신학교는 지역 안수 목사(Ordained Local Ministers), 독경자(Readers), 수습생의 교육을 계속 맡는다 [39].
2026년 9월 24일 기독교 언론(Christian Today): 에든버러 대학이 신학사(BD)와 목회학 석사(MDiv) 과정을 닫는다. 대학은 이것을 스코틀랜드 전체 목사 교육의 변화, 곧 스코틀랜드 교회가 전국 목사 교육을 한 기관에 모으기로 한 결정과 잇는다. 대학 전체로는 인문·사회과학 대학의 90개 과정이 영향을 받으며 1억 4천만 파운드의 재정 부족을 메우려는 구조 조정의 일부다. 신학, 종교, 철학, 윤리의 기존 교육은 이어지고 2027년과 2028년에 새 과정을 만든다 [38].
같은 기사에서 스코틀랜드 교회 쪽(David Clarkson 목사)은 "핵심 문제는 학문의 질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목사 교육에 더 분명한 지도력과 더 깊은 통합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38].
관련 교단: 대학의 한 학부이며 교단 소속은 아니다. 다만 스코틀랜드 교회(Church of Scotland)가 에든버러에서 목사 후보생을 기르는 곳이었다 [36]. 뉴 칼리지 학장(Principal)은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가 임명하고, 신학부의 장(Head of School)은 대학이 임명한다(위키백과) [37]. 2026년의 결정으로 전국 목사 교육의 중심은 글래스고로 옮겨 간다 [38][39].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신앙고백이나 교리 표준을 내건 글은 학교 누리집에서 찾지 못했다. 학교 역사 쪽은 1583년의 시작을 스코틀랜드 교회 성직자를 기르던 신학교로, 지금을 대학의 신학부로 적는다 [36].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교수나 학생에게 신앙고백 시험이 없다(There is no confessional test for staff or students)"고 적고, 교수진을 "종교 문제에서 여러 견해를 지닌 국제적 학자 집단"이라고 적는다. 종교학 과정은 토착 종교,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불교, 힌두교를 다룬다. 학부생 대부분은 목사 후보생이 아니다 [37].
알려진 사람 (위키백과): 토머스 차머스(첫 학장), 윌리엄 커닝엄(William Cunningham. 학장 1847~1861), 존 베일리(John Baillie. 학장 1950~1956), 토머스 토런스(Thomas F. Torrance), 휴 로스 매킨토시(Hugh Ross Mackintosh), 앤드루 월스(Andrew Walls), 래리 허타도(Larry Hurtado), F. F. 브루스, 올리버 오도노번(Oliver O'Donovan). 지금의 학장은 앨리슨 잭(Alison Jack. 2022년부터) [37].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연 쪽에 한국에 관한 내용이 없음).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세운 해: 학교 역사 쪽은 1843년에 세워졌고 그해 11월에 수업을 시작했으며 머릿돌은 1846년에 놓았다고 적는다 [36]. 위키백과는 한 글 안에서 "1846년에 문을 열었다"와 "1843년 11월에 168명에게 문을 열었다"를 둘 다 적는다 [37]. 학교가 "175주년"을 2021년에 기념한 것으로 보아(누리집 차림표의 제목만 봄) 학교는 1846년을 건물의 기준 해로 쓰는 듯하다.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가 2026년 5월 17일에 트리니티 칼리지를 주 협력 기관으로 확정했고 새 과정이 2027년 9월에 시작한다는 것은 검색 요약으로만 보았다. 스코틀랜드 교회 누리집의 그 소식은 열리지 않았다(403).
신학사(BD) 과정이 2026년 9월 입학생까지 받고 그 뒤로 새 입학을 받지 않는다는 것, 신학부에서 모두 10개 과정이 없어진다는 것도 검색 요약으로만 보았다. 학교의 그 쪽은 로그인 화면으로 넘어가 열리지 않았다.
학교 공식 학생 수와 기준 연도.
학교 역사 쪽에는 1900년의 일이 나오지 않는다 [36].
출처: [36][37][38][39][45][46]
에든버러 신학교Edinburgh Theological Seminary, ETS. 예전의 자유교회 대학 Free Church College ·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마운드(the Mound). 1907년부터 지금의 건물을 쓴다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 of Scotland)가 직접 운영하는 신학교로, 1843년 대분열 때 세운 자유교회 대학을 이어받았고 2014년에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곳: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마운드(the Mound). 1907년부터 지금의 건물을 쓴다 [41].
한 줄 소개: 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 of Scotland)가 직접 운영하는 신학교로, 1843년 대분열 때 세운 자유교회 대학을 이어받았고 2014년에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40][43].
기원:
1843년 약 450명의 복음주의 목사가 교회 일에 대한 국가의 간섭 때문에 스코틀랜드 교회를 떠나 스코틀랜드 자유교회를 이루었고, 이 교단은 그해 11월에 첫 대학을 열었다 [41].
영국 고등교육 품질보증원(QAA)의 2025년 평가 보고서: "이 기관은 1843년에 자유교회 대학(Free Church College)으로 세워졌다" [43].
곧 5번의 뉴 칼리지와 뿌리가 같다. 위키백과는 이 학교가 "1843년 대분열 때 세워진 에든버러 뉴 칼리지에서 기원을 찾는다"고 적는다 [45].
역사:
1843년: 세움 [41][43].
1900년: 자유교회의 대다수가 연합장로교회와 합쳐 연합자유교회가 됨. 목사 약 27명과 약 100 교회가 합치지 않고 남음 [46].
1905년: 상원(House of Lords)이 이 남은 무리를 1843년 교회의 참 상속자로 판결(교단 누리집이 적은 해) [46].
1907년: 뉴 칼리지 건물이 연합자유교회에 주어진 뒤, 남은 자유교회가 새 건물로 옮김(위키백과) [45]. 학교 누리집도 지금의 마운드 건물을 1907년부터 쓴다고 적는다 [41].
2014년: 이름을 "에든버러 신학교"로 바꿈. QAA 보고서는 "더 널리 닿는 이름을 만들려고" 바꾸었다고 적는다 [43][45].
2024년: 2월 글래스고 대학이 신학사(BTh) 교육 과정의 개정을 승인. 시간제(수련 목사) 학생이 주 사흘 수업을 듣고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지역 교회에서 일할 수 있게 함 [43].
2025년: 자유교회 총회가 토머스 데이비스(Thomas Davis) 박사를 다음 학장으로 임명. 지금의 학장 아이버 마틴(Iver Martin) 목사가 은퇴하는 2028년 6월에 취임한다(복음주의 신문 Evangelicals Now, 2025-06-28) [47].
현황:
학위 과정: 신학사(BTh), 신학 수료증과 디플로마(CertHE, DipHE), 신학 석사(MTh) 세 가지(연구, 스코틀랜드 교회사, 선교학), 신학 입문 과정, 토요 과정, 독립 교회 사역 수료 과정 [40].
학생 수(QAA 평가 보고서. 평가는 2025년 4월, 보고서는 2025년 6월 26일 공개): 모두 80명. 신학사 40명, 신학 석사(수업과 연구) 40명. 교직원은 전임과 시간제를 합쳐 9명이고 그 가운데 교수가 6명, 행정이 3명이다 [43][44].
졸업생(위키백과): 2024년에 신학사 13명, 신학 석사 6명 [45].
인가: 글래스고 대학의 "준회원 지위를 지닌 인증 기관(Validated Institution having Associate Status)"이며 학위 과정의 인증 기관(validator)이 글래스고 대학이다 [43]. 학교 누리집은 "글래스고 대학의 협력 기관"이라고 적는다 [40]. QAA의 평가를 받으며 2025년 평가에서 기준을 채웠다는 표시를 받았다 [44].
어려움: QAA 보고서는 이 학교의 큰 과제로 영국 전체에서 신학을 공부하려는 학생이 모자란 것과 원격 교육을 든다 [43].
관련 교단: 공식 소속(교단이 직접 운영). 원문: "Edinburgh Theological Seminary is operated by the Free Church of Scotland" [40]. 총회가 임명하는 신학교 이사회(Seminary Board)가 다스리고, 날마다의 운영은 전임 교수 전원과 학생 대표 등으로 이루어진 평의회(Senate)가 맡는다 [43]. 교단은 스코틀랜드에 100개가 넘는 교회가 있고 북미와 런던에도 교회가 있다고 적는다 [46].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학교는 자기를 "AVOWEDLY CONFESSIONAL"(신앙고백을 공개로 내거는 학교)이라고 적고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함께한다"고 적는다 [42]. 교리의 바탕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다 [41]. 교단은 "성경을 최고의 표준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버금 표준으로(the Bible as its supreme standard and the Westminster Confession as its subordinate standard)" 삼는다고 적는다 [46]. 사명 여섯 가지 가운데 첫째는 "21세기의 목회, 선교, 전도를 위한 신학 교육과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다 [42].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글래스고 대학의 인증이 "신학교의 신앙고백적 입장과 총회의 권리를 지키는 조건"으로 이루어진다고 적는다 [45]. QAA는 품질 평가 기관이어서 신학 성향은 평가하지 않는다 [43].
알려진 사람 (위키백과): 학장 존 매클라우드(John Macleod. 1927~1942), 도널드 매클라우드(Donald Macleod. 1999~2010), 존 매케이(John L. Mackay. 2010~2013), 아이버 마틴(2013년부터). 교수 핀레이슨(Roderick A. Finlayson), 렌윅(A. M. Renwick), 앨런 하먼(Allan Harman). 졸업생 이언 캠벨(Iain D. Campbell) [45].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연 쪽에 한국에 관한 내용이 없고, 고신과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관계를 찾는 검색에서도 관련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상원 판결의 해: 교단 누리집은 1905년으로 적는다 [46]. 흔히 1904년으로 알려져 있어 확인필요 다른 자료와 견주어 볼 필요가 있다.
1843년에 떠난 목사의 수: ETS 누리집은 "약 450명" [41], 에든버러 대학 누리집은 총회에서 걸어 나간 사람 "약 200명"과 "목사의 3분의 1" [36], 교단 누리집은 "약 3분의 1" [46]. 서로 다른 것을 센 숫자일 수 있다.
글래스고 대학과의 관계가 시작된 해. 2001년 11월 8일에 협력 기관으로 승인되었다는 것, 신학 석사 선교학 과정이 2018년에 새로 인증되었다는 것은 검색 요약으로만 보았다(글래스고 대학의 그 쪽은 열리지 않음).
위키백과는 글래스고 대학이 신학 석사 과정을 인증한다고만 적고, QAA 보고서는 신학사와 신학 석사 둘 다 글래스고 대학의 인증 아래 있다고 적는다 [43][45].
2000년 자유교회에서 다시 갈라져 나간 무리(Free Church Continuing)의 일은 교단 누리집에 나오지 않아 적지 않았다 [46].
QAA 보고서의 제목은 2025년 4월, 파일 이름은 2025년 5월로 되어 있다 [44].
출처: [36][40][41][42][43][44][45][46][47]
위클리프 홀, 옥스퍼드Wycliffe Hall, Oxford · 영국 잉글랜드 옥스퍼드(우편번호 OX2 6PW)1877년 성공회 안의 복음주의 전통을 지키려고 세운 목사 양성 학교로, 1996년부터 옥스퍼드 대학의 "상설 사립 홀(Permanent Private Hall)"이다
곳: 영국 잉글랜드 옥스퍼드(우편번호 OX2 6PW) [52].
한 줄 소개: 1877년 성공회 안의 복음주의 전통을 지키려고 세운 목사 양성 학교로, 1996년부터 옥스퍼드 대학의 "상설 사립 홀(Permanent Private Hall)"이다 [48][49][50].
기원:
학교 누리집: "위클리프 홀은 1877년 옥스퍼드 한가운데에 복음주의 목사 양성 대학으로 세워졌다(Wycliffe Hall was established in 1877 as an evangelical ministerial college at the heart of Oxford)" [50].
세운 까닭: 옥스퍼드 대학과 잉글랜드 교회 양쪽의 변화에 대한 응답이었다. 19세기 중반까지 대학이 점점 세속화되어 목사 교육의 새 틀이 필요했고, 성경적 신앙과 선교에 헌신한 복음주의자들이 자기들의 유산을 지키고 앞날의 지도자를 기르려 했다 [49].
이름: 14세기 옥스퍼드 베일리얼 칼리지의 학장이던 존 위클리프에서 땄다(위키백과) [53].
역사:
1877년: 세움. 첫 학장 로버트 베이커 거들스톤(Robert Baker Girdlestone. 1877~1889)(위키백과) [50][53].
초기: 라일(J. C. Ryle), 프랭크 차바스(Frank Chavasse), 그리피스 토머스(Griffith Thomas)와 이어져 있었다 [49].
1960년대: 학생 수가 크게 줄었다. 학교 누리집은 이것을 그때의 더 자유주의적인 신학 입장과 잇는다 [49].
1970년: 새 학장이 임명된 뒤 회복. 그 뒤로 "성경적 정통에 대한 분명한 헌신"을 힘주어 왔다고 학교는 적는다 [49].
1996년: 옥스퍼드 대학의 상설 사립 홀이 됨 [49]. 그때 학장은 앨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1995~2005)(위키백과) [53].
2007년: 교수들이 학교를 떠나고, 전 학장 세 사람이 직원들의 괴롭힘 호소가 무시된다고 이사회 의장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으며, 교수들이 리처드 턴불(Richard Turnbull) 학장을 상대로 고충을 제기했다. 2009년 주교단 감사는 실천·목회 신학에 "신임 없음"을 밝혔다(위키백과) [53].
2013년: 마이클 로이드(Michael Lloyd) 박사가 학장이 됨(위키백과) [53]. 2026년 9월의 학교 소식에서도 그가 학장이다 [51].
2019년: 옥스퍼드 기독교 변증 센터(OCCA)와의 관계가 끝남(위키백과) [53].
현황:
과정: 성공회 안수 후보생 교육이 중심이고, 옥스퍼드 대학의 한 부분으로서 신학 학위 과정을 한다 [48][50]. 최근 음악 훈련 과정(Theomousikos), 영화 제작자 상주, 미국 댈러스의 "세계 친구 시범 거점" 같은 새 일을 벌였다(날짜 없는 학교 소식) [51].
학생 수: 학교 공식 전체 숫자는 찾지 못했다. (가) 2025년 12월 학교 소식: 그 학년도에 새 안수 후보생 30명이 들어왔고 여성이 43%, 남성이 57%다 [52]. (나) 위키백과(기준 연도 없음): 정보 상자는 학부생 약 90명, 대학원생 약 30명, 방문 학생 약 50명. 본문은 잉글랜드 교회 안수 후보생 약 60명, 그 밖의 학생 약 60명, 방문 학생 50명까지 [53].
지도부: 학장 마이클 로이드 [48][51].
최근 변화: 2024~2026년에 합병, 이전, 이름 바뀜은 찾지 못했다. 2025년 12월 1일 학교는 2005~2012년 학장이던 리처드 턴불의 별세를 알렸다 [51].
관련 교단: 잉글랜드 교회(Church of England)의 안수 후보생을 기르는 학교다. 원문: 위클리프는 "ordained ministry in the Church of England"를 위해 사람을 기른다 [48]. 학교의 신탁 증서(Trust Deed)가 "성경 신학과 기독교 선교에 대한 복음주의적 헌신"을 지킨다 [49]. 교단이 직접 운영하는 학교인지, 독립 재단인지는 누리집에 자선 단체 등록 번호(1156892)만 나온다 [48].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We were founded to nurture and maintain the evangelical tradition of Anglicanism" (우리는 성공회의 복음주의 전통을 기르고 지키려고 세워졌다). 스스로를 "옥스퍼드 한가운데의 복음주의 대학"이라 부르고, "성경의 증언에 순종하고 그것으로 빚어지기를" 바란다고 적는다 [50]. 표어는 "Via, Veritas, Vita"(길, 진리, 생명) [48].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이 학교가 "복음주의 성공회에 뿌리를 두고 그 역사를 지녔다"고 적고, "잉글랜드 교회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엘리트 신학교"라고도 적는다. 뒤의 말은 2015년 잉글랜드 교회의 정기 외부 평가를 각주로 달고 있으나 위키백과 글 자체에 출처 보강이 필요하다는 딱지가 붙어 있다 [53]. 2009년 주교단 감사의 "신임 없음"도 위키백과에서만 보았다 [53].
알려진 사람 (위키백과): 졸업생 J. I. 패커(J. I. Packer), 도널드 코건(Donald Coggan. 뒤에 캔터베리 대주교), N. T. 라이트(N. T. Wright), 니키 검블(Nicky Gumbel), 올리버 오도노번. 학장 R. T. 프랜스(R. T. France. 1989~1995), 앨리스터 맥그래스(1995~2005) [53]. 학교 소식에는 교수 앤드루 애서스톤(Andrew Atherstone)이 2024년 8월 옥스퍼드 대학의 정교수 칭호를 받았다는 것과 N. T. 라이트가 2026년 여름 학교에서 강의했다는 것이 나온다 [51].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전체 학생 수와 기준 연도. 2023년 학교의 의견 수렴 자료에 "학생 136명, 그 가운데 약 40%가 안수 후보생"이라고 나온다는 것은 검색 요약으로만 보았다.
위키백과가 적은 "2020년 4월 기준 현직 잉글랜드 교회 주교 약 116명 가운데 21명이 이 학교 출신"은 학교 누리집이 근거라고 되어 있으나 그 쪽은 직접 열지 못했다 [53].
잉글랜드 교회의 최근 감사 결과.
위키백과 글은 길어서 앞 10만 자만 읽었다. 뒤쪽은 읽지 못했다 [53].
출처: [48][49][50][51][52][53]
이 묶음을 조사하며 알게 된 것
견주어 볼 때 눈에 띄는 점 (사실만)
일곱 곳 가운데 다섯 곳이 최근 다섯 해 안에 자리, 이름, 소속이 바뀌었거나 바뀌는 중이다.
- TUU: 2022~2023년 캄펀에서 위트레흐트로 옮기고 이름이 바뀜. 2023년 소속 교단이 합쳐짐 [1][3][8].
- PThU: 2024~2025년 암스테르담과 흐로닝언에서 위트레흐트로 옮김 [32][34].
- 자유대학 신학부: 2025년 4월 독립된 학부에서 새 "사회과학·인문학부" 안의 학교로 바뀜 [26].
- 뉴 칼리지: 2026년 스코틀랜드 교회가 전국 목사 교육의 중심을 글래스고로 정했고, 에든버러 대학은 BD와 MDiv 과정을 닫기로 함 [38][39].
- TUA: 건물과 이름은 그대로지만 소속 교단 CGK가 2026년 가을 현재 갈라지는 중이고, 학교는 이에 대비한 시나리오 문서를 만듦 [18][22].
네덜란드의 세 신학대학 가운데 둘이 한 도시의 한 동네에 모였다. TUU(Plompetorengracht)와 PThU(Janskerkhof)는 약 400미터 떨어져 있고 2025년 9월에 협력을 넓히기로 했다 [14].
1854년 캄펀의 한 신학교에서 세 갈래가 나왔다. 1892년 합동에 들어가지 않은 무리의 학교가 TUA(1894), 1944년 해방파가 된 쪽이 지금의 TUU, GKN에 남은 쪽(캄펀 아우더스트라트)이 2007년 PThU로 들어갔다 [1][19][20][32].
에든버러의 두 학교는 1843년의 한 학교에서 갈라졌다. 1900년 합동에 들어간 다수가 건물(뉴 칼리지)을 가졌고, 남은 소수(지금의 자유교회)가 1907년 새 건물에서 신학교를 이어 간 것이 지금의 ETS다. 두 학교는 지금도 같은 언덕(마운드)에 있다 [36][41][45][46].
교단이 직접 임명권을 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가 갈린다. TUU(새 NGK 총회가 감독 이사회 임명) [5], TUA(CGK 총회가 가장 높은 기구) [17], PThU(PKN 총회가 감독 이사회 임명) [30], ETS(자유교회 총회가 이사회 임명) [43]는 교단의 학교다. 뉴 칼리지와 자유대학 신학부는 대학의 한 부분이다 [26][36]. 위클리프 홀은 대학의 사립 홀이면서 성공회 후보생을 기른다 [48][49].
신앙고백을 학교 글에 내건 정도가 다르다. ETS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교리의 바탕으로 적고 [41], TUA는 입학 조건에 개혁파 신앙고백서들에 대한 동의나 존중을 둔다 [18]. TUU의 사명 글은 "개혁파 전통"이라고만 적는다 [4]. 뉴 칼리지는 신앙고백 시험이 없다(위키백과) [37].
학생 수(기준이 서로 달라 바로 견주기는 어렵다). TUA 153명(2024-10-01, 학교 보고서) [18]. PThU 240명(누리집, 연도 없음) 또는 236명(2024, 위키백과) [29][32]. ETS 80명(2025년 평가) [43]. TUU, 자유대학 신학부, 뉴 칼리지, 위클리프 홀은 공식 전체 숫자를 찾지 못했다.
네덜란드의 새내기 수는 2024년부터 늘었다. TUA는 2024년에 세 배(50명)로 늘었고 [18], RD는 2026년 가을 "200명 넘는 젊은이가 신학을 공부하러 간다"는 제목으로 학교별 숫자를 실었다 [11].
한국과 글로 확인되는 관계는 네덜란드의 두 학교에만 있었다. TUA는 총신(2015), 합신(2019)과 양해 각서를 맺었고 고신 신학교와는 교수 개인의 교류가 있다고 적는다 [18]. TUU는 2026년 협력 기관 목록에 고려신학대학원(천안), 총신, 안양의 한 신학교를 올려 두었다 [7].
조사의 한계
네덜란드어 쪽은 번역 도구의 요약으로 읽었다. 낱말 하나하나의 옮김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원문을 그대로 실은 곳은 PDF를 글자로 풀어 직접 읽은 TUA의 2024년 연례 보고서와 TUU의 협력 기관 목록뿐이다.
쪽을 열 때 쓰는 도구가 작은 모델로 쪽을 간추려 돌려준다. 따옴표 안의 원문은 그 간추림에 나온 대로 옮겼으며, 긴 쪽은 일부만 읽혔다(위키백과의 위클리프 홀, 자유대학 글은 앞 10만 자만).
위키백과에 기댄 곳이 많다. 특히 TUU와 PThU의 내력, 뉴 칼리지와 위클리프 홀의 사람 이름과 숫자는 거의 위키백과다. 본문에 "(위키백과)"로 표시했다.
열리지 않은 쪽: 스코틀랜드 교회 누리집의 2026년 총회 소식(403), 에든버러 대학 신학부의 BD 과정 쪽(로그인 요구), 글래스고 대학의 ETS 규정 쪽(404), 자유대학의 학부 소개와 신학교 쪽 몇 곳(404), TUU의 옛 영어 주소(404), PThU의 2023년과 2024년 소식 쪽(본문이 나오지 않음).
찾지 못한 연례 보고서: TUU, PThU, 자유대학 신학부, 위클리프 홀. 그래서 이 네 곳의 학생 수는 공식 숫자가 없거나 기준 연도가 없다.
바깥의 평가(신학 성향)는 거의 찾지 못했다. 학교가 스스로 밝히는 말과 교단의 결정 같은 사실만 적었다.
한국 교회와의 관계는 학교 쪽 자료에서만 찾았다. 한국 쪽 자료(고려신학대학원, 합신, 총신의 누리집과 교단지)는 검색에 걸리지 않아 열지 못했다. 유학한 사람의 이름은 이번에 하나도 확인하지 못했다.
본문에 확인필요를 붙인 두 곳(에든버러 대학 첫 학장 이름의 철자, 상원 판결의 해)은 연 쪽에 나온 것과 흔히 알려진 것이 달라 보여 표시한 것이다.
이 묶음의 출처
읽은 날짜는 모두 2026-10-12.
[1] 위키백과 네덜란드어판, "Theologische Universiteit Utrecht". nl.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어판, "Theological University of the Reformed Churches". en.wikipedia.org
[3] Theological University Kampen 소식, "TU Will Settle in Utrecht's University Quarter" (2021-11-27). en.tukampen.nl
[21] Nederlands Dagblad, "Geen plaats voor vrouwelijke ambtsdragers in CGK: synode wijst alle bezwaren af" (2025-01-29). nd.nl
[22] Reformatorisch Dagblad, "Synode 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en staat voor grote uitdaging" (2026-09-26). rd.nl
[23] Reformatorisch Dagblad, "Synode 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en wil 'diepgaand doorpraten over kerkzijn', ook met kerken rond algemene vergadering" (2026-10-02). rd.nl
[52] Wycliffe Hall 소식, "Wycliffe Hall celebrates an encouragingly large intake of ordinands" (2025년 12월). wycliffe.ox.ac.uk
[53] 위키백과 영어판, "Wycliffe Hall, Oxford" (앞 10만 자만 읽음). en.wikipedia.org
[55] TUU 영어 쪽, "Management and Organization" (2020년 12월 기준의 옛 내용이 남아 있음). tuu.nl
독일어권·가톨릭·정교회
조사한 날: 2026-10-12
맡은 학교: 튀빙겐, 하이델베르크, 제네바, 바젤, 그레고리오 대학교, 성 블라디미르 신학교
적는 법: 실제로 연 쪽에 글자로 나온 것만 적었다. 출처 번호는 학교마다 따로 매겼다(T=튀빙겐, H=하이델베르크, G=제네바, B=바젤, R=그레고리오, V=성 블라디미르). 검색 결과의 요약에서만 보고 그 쪽을 직접 열지 못한 것은 출처 번호를 붙이지 않고 확인필요라고 적었다.
숫자를 담은 PDF(바젤, 튀빙겐, 제네바, 교황청 보도 자료)는 내려받아 글자를 뽑아 읽었다.
학교 이름을 누르면 조사한 내용이 펼쳐집니다. 대괄호 안의 숫자는 그 학교 칸 끝(또는 이 탭 끝)에 있는 출처의 번호입니다.
튀빙겐 대학교 개신교 신학부Evangelisch-Theologische Fakultät, Eberhard Karls Universität Tübingen ·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튀빙겐. 주립 대학교 안의 학부이다1477년 대학과 함께 세워져 1535년 무렵 종교개혁으로 개신교(루터파) 학부가 된 곳이다. 목사 후보생을 돕는 기숙 학사인 튀빙겐 슈티프트(Evangelisches Stift)는 뷔르템베르크 주교회가 따로 운영한다
곳: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튀빙겐. 주립 대학교 안의 학부이다.
한 줄 소개: 1477년 대학과 함께 세워져 1535년 무렵 종교개혁으로 개신교(루터파) 학부가 된 곳이다. 목사 후보생을 돕는 기숙 학사인 튀빙겐 슈티프트(Evangelisches Stift)는 뷔르템베르크 주교회가 따로 운영한다.
기원:
학부는 1477년 튀빙겐 대학교가 세워질 때부터 있었다. 원문: "Die Theologische Fakultät besteht seit der Gründung der Universität Tübingen im Jahre 1477." [T1]
처음에는 중세 스콜라 전통의 학문 중심지였다. [T2]
종교개혁 때 새로 짜였다. 학부 소개 쪽은 "1535/36년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종교개혁 과정에서 새로 정비되었다"고 적고 [T1], 학부 역사 쪽은 "1535년 뷔르템베르크의 울리히 공작이 대학에 종교개혁을 들여오면서 개신교가 되었다"고 적는다. 원문: "Sie wurde 1535 protestantisch, als Herzog Ulrich von Württemberg die Reformation in der Universität einführte." [T2]
역사:
1477년: 대학과 함께 신학부가 세워짐. [T1]
1535년(또는 1535/36년): 울리히 공작의 종교개혁으로 개신교 학부가 됨. 그 뒤 루터파 종교개혁 신학이 공부의 바탕이 됨. [T1][T2]
1536년: 슈티프트가 세워짐(아래 따로 적음). [T2][T4]
16~17세기: 손꼽히는 루터파 학부가 됨. [T1] 17~18세기에도 루터파 신학이 주류였고, 학부 역사 쪽은 "경건주의와 유럽 계몽주의에는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적는다. 원문: "Wenig Beachtung wurden dem Pietismus und der europäischen Aufklärung geschenkt." [T2]
1817년: 같은 대학에 가톨릭 신학부가 세워짐. 그때부터 이 학부를 '개신교(evangelisch)' 신학부라고 부름. [T1]
1826년: 페르디난트 크리스티안 바우어(Ferdinand Christian Baur)가 부임해 '새 튀빙겐 학파(Jüngere Tübinger Schule)'를 세움. 역사비평 연구가 힘을 얻음. [T2]
1898년: 아돌프 슐라터(Adolf Schlatter) 부임. 1920년부터 칼 하임(Karl Heim)이 가르침. [T2]
나치 시대: 학부 역사 쪽이 스스로 이렇게 적는다. 교수들이 나치 국가의 정치 행동을 대체로 비판하지 않았고, 연구와 교육의 일부는 분명히 반유대적이었으며, 1933년 뒤 학부 전체는 '고백교회'와 분명한 거리를 두었다. 원문: "Das politische Agieren des NS-Staates wurde von Lehrstuhlinhabern weithin nicht kritisiert" [T2]
1945년 뒤: 고백교회 쪽 배경을 가진 신학자들(게르하르트 에벨링, 뒤에 헤르만 딤)이 임용됨. 에벨링은 튀빙겐을 해석학적 신학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1968년에 떠남. [T2]
1536년 뷔르템베르크의 울리히 공작이 세웠다. 원문: "Die Einrichtung wurde 1536 durch Herzog Ulrich von Württemberg gestiftet" [T4]
옛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건물에 자리 잡았다. [T4]
지금은 대학의 기관이 아니라 주교회의 기관이다. 원문: "Das Evangelische Stift ist das Studienhaus der Evangelischen Landeskirche in Württemberg"(슈티프트는 뷔르템베르크 개신교 주교회의 학사이다). 대학과 가깝게 이어져 있다. [T4][T5]
뷔르템베르크에서 목사가 되려는 학생이나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김나지움 교사가 되려는 학생이 여덟 학기 동안 장학금(먹고 자는 것과 학업 지도)을 받는다. 원문: "erhalten hier für acht Semester ein Stipendium" [T4] 학업을 돕는 '레페텐트(Repetent)' 지도진이 있다. [T5]
슈티프트 출신으로 학교 쪽이 드는 이름: 요하네스 케플러, 헤겔, 횔덜린 [T4], 셸링 [T2].
현황:
학과 자리: 구약(I, II와 성서고고학 연구소), 신약(I, II, III), 교회사(I, II와 교회법), 조직신학(I 해석학 연구소, II 윤리 연구소, III), 실천신학(I, II, III), 종교학과 유대학. [T1]
과정: '개신교 신학, 교회 졸업 시험(Kirchlicher Abschluss)' 과정이 있다. 표준 수학 기간 10학기.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자격(Latinum, Graecum, Hebraicum)을 중간 시험 신청 전까지 갖추어야 한다. 그 밖에 박사(Dr. theol.)와 교수 자격(Habilitation) 과정이 있다. [T1][T6]
학생 수: 대학 통계표 "학부와 졸업 목표로 나눈 학생 수"에 개신교 신학부는 2011년 575명, 2019년 490명, 2023년 413명, 2024년 385명, 2025년 359명으로 나온다. [T7] 같은 표에서 대학 전체는 2025년 26,756명이다. [T7] (표에는 연도만 있고, 아래쪽에 'Sommersemester(여름 학기)'라는 말이 따로 적혀 있다. 각 숫자가 어느 학기 기준인지는 표만으로 확실히 알 수 없다.)
교수 수: 찾지 못함.
인가: 독일 주립 대학교의 학부이다. 따로 된 인가 기관 자료는 찾지 못함.
최근 변화: 2024년 6월 3일 몰트만이 98세로 튀빙겐에서 세상을 떠났다. [T3] 학부 누리집에는 구약 정교수(W3) 공개 모집 공고와, 윤리와 종교교육 강좌를 이번 겨울 학기에 대리 교수가 맡는다는 알림이 올라 있다. [T1] 학생 수는 2011년부터 2025년까지 줄곧 줄었다. [T7] 합병이나 이름 바뀜 같은 큰 변화는 찾지 못함.
관련 교단:
학부는 주립 대학교에 속하고, 교단 소속 신학교가 아니다.
목사가 되는 길에서 대학과 교회가 일을 나눈다. 대학은 가르치고, 졸업 시험은 교회의 시험이다. 과정 안내 쪽은 첫 시험을 "1. Evangelisch-Theologische Dienstprüfung(제1차 개신교 신학 직무 시험)"이라고 부르고, 튀빙겐에서 이 시험을 치려면 '뷔르템베르크 신학생 명부'에 올라 있어야 한다고 적는다. 명부에 오르려면 뷔르템베르크 개신교 주교회 담당자와 면담해야 한다. [T6]
수련 목회(Vikariat)에 들어가려면 뷔르템베르크 주교회가 '교회 사전 실습(Kirchliches Vorpraktikum)'을 요구한다. 대학 공부나 졸업의 조건은 아니다. [T6]
뷔르템베르크 주교회는 슈티프트를 운영해 신학 후진을 돕는다. [T2][T4]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신앙고백이나 교리 표준을 내건 글은 찾지 못함. 학부 소개의 말은 이렇다. 원문: "Sie ist eine der traditionsreichsten und forschungsstärksten theologischen Fakultäten des deutschsprachigen Raums."(독일어권에서 전통이 가장 깊고 연구 역량이 가장 센 신학부 가운데 하나이다.) [T1] 역사 쪽은 스스로를 루터파 전통에서 출발해 19세기에 역사비평 연구로, 20세기 후반에 해석학적 신학으로 이어진 곳으로 그린다. 슐라터에 대해서는 "자유주의 신학의 신약 연구 방식과,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하나로 보는 관점을 잇고자 했다"고 적는다. [T2]
(나) 바깥의 평가: 누가 한 말인지 밝힐 수 있는 평가는 연 쪽에서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페르디난트 크리스티안 바우어(1826년 부임) [T2], 아돌프 슐라터(1898년 부임) [T2], 칼 하임(1920년부터) [T2], 게르하르트 에벨링(1968년까지) [T2], 위르겐 몰트만(1967~1994년) [T3]. 슈티프트 출신: 케플러, 헤겔, 횔덜린, 셸링 [T2][T4].
한국 교회와의 관계: 연 쪽에서 확인된 것은 찾지 못함. (검색 요약에 몰트만이 1975년에 처음 한국을 찾았다는 말과 김세윤 교수가 튀빙겐에서 공부했다는 책 소개가 보였으나, 그 쪽을 직접 열어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필요)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종교개혁으로 바뀐 해: 학부 소개 쪽은 "1535/36년", 학부 역사 쪽은 "1535년". [T1][T2]
슈티프트에 사는 학생 수, 여학생을 받기 시작한 해: 슈티프트 누리집에 없음. 찾지 못함.
슈티프트 장학 기간: 슈티프트 누리집은 여덟 학기 [T4]. (검색 요약에 뜬 장학금 안내 사이트는 아홉 학기라고 적었으나 직접 열지 않았다. 확인필요)
교수 수, 학생 수 숫자의 기준 학기.
출처:
[T1] Universität Tübingen, "Evangelisch-Theologische Fakultät: Fakultät", uni-tuebingen.de (읽은 날 2026-10-12)
[T2] Universität Tübingen, "Geschichte der Evangelisch-Theologischen Fakultät", uni-tuebingen.de (2026-10-12)
[T3] Universität Tübingen, 소식지 Uni Tübingen aktuell 2024년 3호, "Warum Glauben und Handeln stets zusammengehören: Nachruf auf Professor Jürgen Moltmann", uni-tuebingen.de (2026-10-12)
[T4] Evangelisches Stift Tübingen, "Geschichte und Tradition", evstift.de (2026-10-12)
[T5] Evangelisches Stift Tübingen, 첫 쪽, evstift.de (2026-10-12)
[T6] Universität Tübingen, 과정 안내 "Evangelische Theologie - Kirchlicher Abschluss", uni-tuebingen.de (2026-10-12)
[T7] "Studierende an der Eberhard-Karls-Universität nach Fakultäten und Abschlussziel"(출처 표기: Studierendenstatistik der Eberhard-Karls-Universität Tübingen), 튀빙겐 시 웹 보관소 2026-03-25 판, webarchiv.tuebingen.de (2026-10-12)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부Theologische Fakultät, 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 ·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하이델베르크. 주립 대학교 안의 학부이다1386년에 세워진 대학의 신학부로, 16세기 후반에 몇십 년 동안 유럽 개혁파의 학문 중심지였고(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주 저자 우르시누스가 여기서 가르쳤다), 지금은 독일 개신교 목사 양성의 큰 자리 가운데 하나라고 스스로 소개한다
곳: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하이델베르크. 주립 대학교 안의 학부이다.
한 줄 소개: 1386년에 세워진 대학의 신학부로, 16세기 후반에 몇십 년 동안 유럽 개혁파의 학문 중심지였고(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주 저자 우르시누스가 여기서 가르쳤다), 지금은 독일 개신교 목사 양성의 큰 자리 가운데 하나라고 스스로 소개한다.
기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1386년에 세워졌다. 신학부 역사 쪽은 학부의 역사가 대학과 함께 길게 이어졌고, 크게 영향을 미친 때와 기운 때가 번갈아 있었다고 적는다. [H1]
종교개혁과의 관계: 1518년 4월 25~26일, 대학 옆 아우구스티누스 은자 수도원에서 루터의 '하이델베르크 논쟁'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마르틴 부처, 마르틴 프레히트, 에르하르트 슈네프, 요하네스 브렌츠가 종교개혁 편으로 돌아섰다. [H1]
역사:
1386년: 대학이 세워짐. [H1]
1518년: 루터의 하이델베르크 논쟁. [H1]
1559년: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즉위. 팔츠 선제후국을 개혁파 쪽으로 이끎. 그 뒤 몇십 년 동안 대학과 신학부가 유럽 개혁파의 지적 중심지가 됨. 이때의 신학자로 히에로니무스 찬키,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주 저자),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 임마누엘 트레멜리우스, 다비트 파레우스를 든다. [H1]
1576~1583년: 선제후가 바뀌어 처음으로 신앙고백이 바뀜. 신학 교수와 다른 학부 교수들이 해임됨. [H1]
1620~1622년: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가 1620년 프라하 근처 백산 전투에서 짐. 1622년 팔츠 도서관(Bibliotheca Palatina)이 로마로 옮겨짐. 대학에 가톨릭 신앙이 강제됨. 그 뒤 신앙고백이 여러 번 바뀌는 긴 침체기. [H1]
1807년: 가톨릭 신학 교수들이 프라이부르크로 떠나, 신학부가 다시 개신교만의 학부가 됨. [H1]
19세기~20세기 초: 합리주의 성경 해석의 H. E. G. 파울루스, 자유주의 신학의 리하르트 로테, 종교사학파의 에른스트 트뢸치(1894~1914년 하이델베르크에서 가르침). [H1]
나치 시대: 제국 교육부가 학부를 없애려고 계획함. 신약학자 마르틴 디벨리우스(1915~1947년 재직)가 대부분의 동료와 달리 나치에 굳게 맞섰다고 학부 역사 쪽은 적는다. [H1]
1945년 뒤: 전쟁 뒤 25년 동안 세계적 명성을 얻음. 1947년 에드문트 슐링크의 제안으로 에큐메니칼 연구소가, 1954년 헤르베르트 크림 아래 디아코니아학 연구소가 세워짐. [H1]
현황:
과정: 여러 전공 조합의 과정이 있고, 목사직 과정과 김나지움 종교 교사 과정을 함께 든다. 영어로 하는 새 'Master of Theological Studies' 과정이 누리집에 안내되어 있다. [H2][H3]
학생 수: 독일어 첫 쪽은 "mit rund 550 Studierenden (Stand Juni 2023)"(약 550명, 2023년 6월 기준)이라고 적는다. [H3] 영어 첫 쪽은 "around 700 students (as of November 2019)"(약 700명, 2019년 11월 기준)이라고 적는다. [H2]
교수 수: 찾지 못함.
최근 변화: 2024~2026년의 합병, 이름 바뀜 같은 큰 변화는 찾지 못함. 누리집 숫자로는 2019년 11월 약 700명에서 2023년 6월 약 550명으로 줄었다. [H2][H3]
관련 교단:
학부는 주립 대학교에 속한다. 교단 소속 신학교가 아니다.
학부는 스스로를 독일 개신교 교회들의 목사직을 위한 가장 중요한 교육 자리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한다. 영어 원문: "one of the most important training centres in Germany for the Protestant pastorate" [H2] 독일어 쪽에도 같은 뜻의 말("für das Pfarramt der evangelischen Kirchen")이 있다. [H3]
바덴 개신교 주교회(Evangelische Landeskirche in Baden)와의 관계: 주교회의 '수련 목회 법(Lehrvikariatsgesetz, 2019년 4월 12일 제정, 2024년 10월 24일 마지막 개정)' 제1조는 대학을 마친 뒤의 실천신학 수련을 이렇게 적는다. 원문: "Die praktisch-theologische Ausbildung erfolgt im Zusammenwirken von Theologischer Fakultät der 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 und der Evangelischen Landeskirche in Baden"(실천신학 수련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부와 바덴 개신교 주교회가 함께 한다). 수련 목회자는 주교회의 교회에서 지도 목사 아래 배우고,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주교회의 설교자 신학원 페터스슈티프트(Predigerseminar Petersstift)에서 대학 교수들과 주교회가 맡긴 강사들의 수업을 듣는다. 수련에 받아들이는 일은 주교회 최고 행정 기구(Evangelischer Oberkirchenrat)가 한다. [H4]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신앙고백이나 교리 표준을 내건 글은 찾지 못함. 스스로 내세우는 특징은 에큐메니칼 연구소(1947년)와 디아코니아학 연구소(1954년)이고, 역사 쪽은 이 둘이 "지금도 학부에 뚜렷한 얼굴을 준다"고 적는다. [H1] 역사 쪽은 16세기의 개혁파 시기, 19세기의 합리주의와 자유주의 신학, 종교사학파를 모두 제 역사로 적는다. [H1]
(나) 바깥의 평가: 누가 한 말인지 밝힐 수 있는 평가는 연 쪽에서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1534~1583),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1536~1587), 에른스트 트뢸치(1894~1914년 재직), 마르틴 디벨리우스(1915~1947년 재직), 게르하르트 폰 라트(1945년 뒤 구약 교수), 에드문트 슐링크(조직신학). 모두 [H1].
한국 교회와의 관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국제 학제 신학 연구소(FIIT) 쪽에 따르면 1984년에서 2015년 사이에 한국에서 온 박사 과정 학생 49명이 이 신학부에서 신학 박사(Dr. theol.) 학위를 받았다. 원문: "Between 1984 and 2015, 49 doctoral students from South Korea received the degree" 같은 쪽은 한신대학교의 '과학과 종교 연구소'가 FIIT와 협력하고, 서울신학대학교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와 잇따른 협의를 시작했다고 적는다. [H5]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생 수: 같은 누리집의 영어 쪽(약 700명, 2019년 11월)과 독일어 쪽(약 550명, 2023년 6월)이 다르다. 기준 때가 다르다. [H2][H3] 2024년 뒤의 숫자는 찾지 못함.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나온 해(1563년)는 신학부 역사 쪽에 글자로 나오지 않는다. 그 쪽은 우르시누스가 주 저자라는 것만 적는다. [H1]
신학부가 정확히 언제부터 가르쳤는지(대학 설립 해와 같은지)는 역사 쪽에 따로 적혀 있지 않다.
바덴 주교회의 신학 시험 규정(누가 시험관이 되는지)은 검색 요약에서만 보았다. 확인필요
출처:
[H1] Theologische Fakultät Heidelberg, "History"(글쓴이 Christoph Strohm 교수), theologie.uni-heidelberg.de (2026-10-12)
[H4] Evangelische Landeskirche in Baden, "Kirchliches Gesetz über die praktisch-theologische Ausbildung (Lehrvikariatsgesetz - LehrVG)", kirchenrecht-ekiba.de (2026-10-12)
[H5] Universität Heidelberg, FIIT, "Concepts of Peace in Asia and the West", uni-heidelberg.de (2026-10-12)
제네바 대학교 신학부Faculté de théologie, Université de Genève. 공식 이름 Faculté autonome de théologie protestante · 스위스 제네바. 주립 대학교 안에 있으면서 따로 된 재단이 함께 다스리는 '자율' 학부이다1559년 칼뱅이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학부로, 대학교 자체가 이 신학 교육에서 시작되었다
곳: 스위스 제네바. 주립 대학교 안에 있으면서 따로 된 재단이 함께 다스리는 '자율' 학부이다.
한 줄 소개: 1559년 칼뱅이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학부로, 대학교 자체가 이 신학 교육에서 시작되었다.
기원:
1541년 칼뱅의 '교회 법령' 초안이 일반 공부를 하는 콜레주와 높은 공부를 하는 아카데미를 내다보았다. [G1]
1559년 아카데미가 세워졌다. 칼뱅 아래 세워졌고 테오도르 드 베즈가 첫 학장(Recteur)이었다. 원문: "J. Calvin et T. de Bèze fondent l'Académie de Genève."(칼뱅과 베즈가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운다.) [G2] 처음에 가르친 과목은 신학(칼뱅과 베즈가 나누어 맡음), 히브리어, 그리스어, 인문(철학) 넷이었다. [G1]
학부는 스스로 이렇게 적는다. 원문: "La Faculté de théologie existe depuis la fondation de l'Académie de Genève en 1559."(신학부는 1559년 제네바 아카데미가 세워진 때부터 있다.) [G3]
역사:
1559년: 아카데미 설립. [G1][G2]
약 1570~1650년: 아카데미가 국제적인 곳이 됨. 낭트 칙령(1598년)과 그 폐지(1685년) 사이에 프랑스 학생이 많이 옴. 칼뱅주의 스콜라 신학의 중심지가 됨. [G1]
1809년: 나폴레옹의 1809년 1월 13일 법령으로 아카데미가 세 학부(개혁파 신학, 과학, 문학)로 나뉨. 신학이 '학부'로 짜임. [G2] 프랑스 점령이 끝날 때까지 프랑스 여러 도의 개혁파 목사를 기르는 신학교 구실을 함. [G1]
1873년: 의학부가 생기면서 아카데미가 제네바 대학교가 됨. [G1][G2]
1907년과 1927년: 1907년 교회와 국가를 가르는 법으로 국가의 예배 예산이 없어짐. 1920년대에 논의가 이어졌고, 1927년 11월 2일 재단을 세우는 법이 통과됨. 이때부터 '자율 학부'가 됨. [G1][G2]
1952년: 보세 에큐메니칼 연구소(세계교회협의회 소속)와 협력 시작. [G4]
1998년: 제네바 대학교의 첫 원격 학사 과정을 엶. [G4] (2014년 대학 보도 자료도 1998년부터 온전히 인터넷으로 공부할 수 있게 했다고 적는다. [G5])
2004년 9월 23일: 제네바, 로잔, 뇌샤텔 세 대학교가 신학부 연합(Fédération)을 맺음. 2009년 8월 1일 세 대학('트리앙글 아쥐르')이 개신교 신학과 종교학 협력 협약을 맺음. [G1]
2015년: 뇌샤텔 대학교 신학부가 문을 닫음. 이에 맞추어 제네바에 기부로 두 석좌(실천신학의 이렌 픽테 석좌, 자크 드 스나르클랑 석좌)가 2015년 가을부터 생김. 로잔과 함께 원격 석사 과정도 엶. [G5]
2016년: 제네바 로마 가톨릭 교회와 협력해 가톨릭 신학 강의를 엶. [G4]
현황:
과정: 기본 과정 7가지. 학사, 석사, 보충 수료증, 박사 등. 학사와 석사는 로잔 대학교 신학 종교학부와 함께 운영한다. 강의실 수업과 원격 수업을 다 할 수 있다. [G3][G6]
학생 수(출처 표기: 제네바 대학교 통계국, 학부 소식지 2024년판에 실림): 모두 합쳐 2021년 156명, 2022년 136명, 2023년 132명, 2024년 145명. 2024년의 속을 보면 기본 과정 99명(학사 69명, 석사 13명, 보충 수료증 7명, 석사 진입 보충 과정 10명), 심화 과정 31명(그중 박사 29명), 보세 연구소와 함께하는 과정 15명. [G6]
대학 보도 자료(2021년 7월 7일)는 "지금 학생 200명을 받고 있다"고 적었다. 원문: "la Faculté de théologie accueille aujourd'hui 200 étudiant-es" [G7]
교수 수: 찾지 못함.
최근 변화: 2024년에 새 길을 냈다. 다른 전공의 학사 학위가 있는 사람이 '신학 기초 보충 수료증'(60학점. 제네바에서는 2025년부터)을 거쳐 석사에 들어올 수 있게 했고, 석사에 한 학기 현장 실습(교회 등)이 든 둘째 방향을 2025년부터 더했다. 학장은 이것이 "프랑스어권 개혁교회들의 사역을 '늦게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여는 것"이 목적이라고 적는다. [G6] 2021년 7월 15일부터 엘리자베트 파르망티에가 학장을 맡았고, 여성으로는 처음이었다. [G7] 2024년 소식지에서 그는 이것이 학장으로서 마지막 소식지라고 적었다. [G6] 지금 학장이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못함.
관련 교단:
다스리는 틀: 학부는 대학교 안에 있으면서 자율이다. 예산을 대학과 교회가 나누어 낸다. 국가, 대학, 제네바 개신교 국민교회(Église nationale protestante de Genève)의 대표들이 모인 재단 이사회(Conseil de Fondation)가 학부를 다스리고 교수를 임명한다. [G1] 2014년 대학 보도 자료도 이 학부가 "대학 총장단에만 달려 있지 않고 재단에도 달려 있다"고 적는다. [G5]
제네바 개신교회(Église Protestante de Genève)와의 관계: 2024년 학장의 글은 새 석사 방향이 "교회들의 필요에 맞고 제네바 개신교회의 지지를 받는다"고 하고, 교회와의 관계를 "살아 있는 서로 간의 협력이며 우리 재단 이사회가 눈여겨 살핀다"고 적는다. [G6] 목회 사역을 뜻하는 학생이 실습하는 학기의 비용은 그 학생의 교회가 맡는다. [G6]
다른 교회 전통과의 협력: 보세 에큐메니칼 연구소(세계교회협의회), 샹베지 정교회 신학 고등 연구소(해마다 가을 학기에 그곳 학생들이 와서 개신교 신학 입문을 배움), 제네바 로마 가톨릭 교회(가톨릭 신학 강의 후원). [G1][G4][G6]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신앙고백이나 교리 표준을 내건 글은 찾지 못함. 학부 소개는 이렇게 적는다. 원문: "Forte de ses racines protestantes"(개신교 뿌리에 힘입어), "un lieu de dialogue et de liberté intellectuelle"(대화와 지적 자유의 자리). 어떤 배경, 어떤 신념의 학생과 연구자도 받는다고 적는다. [G3] 2021년 학장의 말: "La Faculté de théologie s'oppose à toute forme de fanatisme grâce à l'étude critique et l'interprétation des textes anciens et actuels."(신학부는 옛 글과 오늘의 글을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풀이함으로써 온갖 광신에 맞선다.) [G7]
(나) 바깥의 평가: 누가 한 말인지 밝힐 수 있는 평가는 연 쪽에서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장 칼뱅과 테오도르 드 베즈(1559년 신학을 나누어 가르침) [G1], 자크 드 스나르클랑(1960년 조직신학 정교수, 1966년 학장. 보도 자료는 그를 칼 바르트의 제자라고 적는다) [G5], 에릭 푹스(윤리학 교수이자 명예 학장, 2023년 10월 24일 별세) [G6], 엘리자베트 파르망티에(실천신학, 2021년부터 학장) [G7].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이름에 '개신교(protestante)'가 붙은 때: 학부 역사 쪽은 공식 이름 "Faculté autonome de théologie protestante de l'Université de Genève"가 1927년부터라고 적는다. [G1] 대학 기록 보관소 쪽은 "1927년부터 자율 신학부, 1973년부터 자율 개신교 신학부"라고 적는다. [G2]
학생 수: 2021년 대학 보도 자료는 200명 [G7], 학부 소식지에 실린 대학 통계국 표는 2021년 156명 [G6]. 세는 범위가 다를 수 있으나 어느 쪽도 까닭을 적지 않았다.
로잔과의 협력이 시작된 때: 학부 소개 쪽은 로잔 신학 종교학부와 "2015년부터" 협력한다고 적고 [G3], 역사 쪽은 세 대학 연합이 2004년, 협약이 2009년이라고 적는다 [G1]. 가리키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재단 이사회에 대표를 보내는 교회의 지금 이름: 역사 쪽은 "Église nationale protestante de Genève", 2024년 소식지는 "Église Protestante de Genève"라고 적는다. [G1][G6]
2025~2026년의 학생 수와 새 학장: 찾지 못함.
출처:
[G1] Université de Genève, Faculté de théologie, "Historique", unige.ch (2026-10-12)
[G2] Université de Genève, Archives, "Historique de l'Université", unige.ch (2026-10-12)
[G3] Université de Genève, "Présentation de la Faculté de théologie", unige.ch (2026-10-12)
[G4] Université de Genève, Faculté de théologie, 과정 안내 전단(연표 "Un peu d'histoire"가 실림), unige.ch (2026-10-12)
[G5] Université de Genève, 보도 자료 "Création de deux chaires en théologie", 2014-10-06, unige.ch (2026-10-12)
[G6] Université de Genève, Faculté de théologie, "Nouvelles de la Faculté 2024", unige.ch (2026-10-12)
[G7] Université de Genève, 보도 자료 "Théologie et GSEM: nouvelles nominations à l'UNIGE", 2021-07-07, unige.ch (2026-10-12)
바젤 대학교 신학부Theologische Fakultät, Universität Basel · 스위스 바젤. 주립 대학교 안의 학부이다1460년 대학과 함께 시작해 스스로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신학부"라고 부르는 곳으로, 종교개혁 때 개혁파 대학으로 다시 문을 열었고 20세기에 칼 바르트가 가르쳤다
곳: 스위스 바젤. 주립 대학교 안의 학부이다.
한 줄 소개: 1460년 대학과 함께 시작해 스스로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신학부"라고 부르는 곳으로, 종교개혁 때 개혁파 대학으로 다시 문을 열었고 20세기에 칼 바르트가 가르쳤다.
기원:
바젤 공의회(1431~1449년)가 계기가 되어 1432년 '공의회 대학'이 생겼고, 학부 역사 쪽은 이것을 지금 대학의 앞선 모습으로 본다. [B1]
1459년 11월 12일 교황 비오 2세가 만토바에서 대학 설립 문서에 서명했다. 1460년 4월 4일 바젤 대성당 예배로 대학이 문을 열었다. [B2] 요하네스 폰 베닝겐 주교가 게오르크 폰 안들라우를 첫 총장으로 세웠다. [B1]
학부 역사 쪽은 신학부를 대학의 역사적 중심이라 하고, 처음에는 학생 대부분이 신학부에 적을 두었다고 적는다. [B1]
역사:
1460년: 대학 개교. [B1][B2]
1523년: 시 의회가 종교개혁 지지자를 공격한 교수 넷의 봉급을 끊고, 외콜람파트(Oekolampad)와 펠리칸을 신학 교수로 임명함. [B2]
1529년: 종교개혁이 들어오자 많은 교수와 강사가 프라이부르크로 떠남. 6월에 시 의회가 대학을 정지시키고 홀, 도장, 규정집, 돈을 거두어 감. 1529~1532년 사이에도 일부 교수는 계속 가르침. [B2]
1532년: 9월에 새 규정으로 대학이 시 의회 아래 놓임. 11월에 "개혁된 대학"이 다시 문을 엶. [B2] 1539년 고친 규정이 대학의 자치를 되살리고 넓힘. [B2]
학부 역사 쪽은 개혁파 도시 바젤이 신학부가 뚜렷이 개혁파 신학에 서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고 적는다. 외콜람파트는 대학을 지키려고 애썼다고 적는다. [B1]
1822년: 베를린 대학교에서 쫓겨난 드 베테(de Wette)가 바젤 교수가 됨. 역사비평 주석의 중심 인물. [B1]
1870년: 프란츠 오버베크가 신약과 고대 교회사 교수로 임명됨(니체의 가까운 벗). 1888년부터 구약학자 베른하르트 둠이 가르침. [B1]
1935년: 나치 정권이 칼 바르트의 가르칠 자격을 빼앗자, 바르트가 태어난 곳 바젤로 돌아옴. [B1]
1938~1972년: 오스카 쿨만이 고대 교회사와 신약 교수로 가르침. 교황 요한 23세의 초청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공식 참관인으로 감. [B1]
1945년: 칼 루트비히 슈미트가 학술지 Theologische Zeitschrift를 창간함. [B1]
2015년 5월 22일: '칼 바르트 개혁 신학 센터'가 정식으로 세워짐. [B3]
칼 바르트와의 관계:
학부 역사 쪽의 말: 바르트의 그리스도 중심 신학은 19세기 말의 문화 신학에 맞섰고, 국제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많은 사람이 바젤로 신학을 공부하러 오게 했다. [B1]
바젤 대학교와 칼 바르트 재단(Karl Barth Stiftung)의 협약으로 '칼 바르트 개혁 신학 센터(Karl Barth Zentrum für reformierte Theologie)'가 신학부의 한 부분으로 세워졌다. 원문(영어 쪽): "founded the 'Karl Barth Center of reformed Theology' as a part of the Theological Faculty and as the mark of a long-lasting cooperation" 센터는 바르트의 신학 정신으로 개혁 신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을 맡는다. 칼 바르트 문서 보관소(Bruderholzallee 26)와 신학부(Nadelberg 10) 두 곳에 자리가 있다. [B3]
바르트가 바젤에서 가르친 마지막 해(은퇴한 해)는 학부 쪽에서 글자로 확인하지 못했다. (검색 요약에는 1962년 은퇴라고 나왔다. 확인필요)
현황:
과정: 신학 전 과정(Vollstudium). 개신교 신학 석사 두 가지('Master of Theology', 그리고 다른 길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위한 과정. 뒤의 것은 취리히 대학교와 협력). 철학 역사 학부와 함께하는 종교학과 유대학. 취리히, 루체른 대학교와 함께하는 '종교, 경제, 정치' 과정. [B4]
학생 수(대학 통계 "전공별 학생"): 2024년 가을 학기 101명(학사 28명, 석사 47명, 박사 26명, 여성 54명, 새로 들어온 사람 12명). 2025년 가을 학기 95명(학사 31명, 석사 42명, 박사 22명, 여성 48명, 새로 들어온 사람 12명). [B5][B6]
교수 수: 찾지 못함. 학장은 조냐 암만(Sonja Ammann) 교수이다. [B4]
최근 변화: 학생 수가 2024년 가을 101명에서 2025년 가을 95명으로 줄었다. [B5][B6] (검색 요약에는 2016년 128명, 2018년 119명이라고 나왔으나 그 표는 직접 읽지 않았다. 확인필요) 2025년 5월 22일에 칼 바르트 센터 기념 행사 안내문이 검색에 떴으나 내용은 열어 보지 않았다. 확인필요
관련 교단:
학부는 주립 대학교에 속한다. 학부 누리집 첫 쪽에는 교회와의 관계가 적혀 있지 않다. [B4]
목사가 되는 길: 스위스 독일어권 개혁교회들의 '협약(Konkordat, 개혁교회 목사를 함께 기르고 교회 일에 받아들이는 일에 관한 협약)'이 있다. 이 협약에는 베른-쥐라-졸로투른 개혁교회를 뺀 독일어권 주(칸톤) 교회가 모두 들어 있다. [B7]
다른 직업에서 목사로 옮기는 과정 'Quest'의 안내문에 따르면, 석사 공부는 바젤이나 취리히 신학부에서 한다. 165학점 가운데 120학점은 대학이 석사 과정으로 가르치고, 45학점은 교회 쪽이 여름과 겨울 집중 수업으로 가르친다. 석사를 마친 뒤 교회가 책임지는 한 해의 수련 목회(Lernvikariat)를 하고, 이것을 마치면 안수를 받는다. 원문: "Auf den Masterabschluss folgt das einjährige Lernvikariat in kirchlicher Verantwortung, das nach erfolgreichem Abschluss zur Ordination führt." 바젤에서 받는 학위는 'Master of Theology, 심화 방향 Christianity'이다. 들어오려면 교회의 선발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B7]
일반 과정으로 목사가 되는 길의 규정(협약 본문)은 직접 열지 못했다. 확인필요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신앙고백이나 교리 표준을 내건 글은 찾지 못함. 학부 역사 쪽(영어)은 학부가 "개혁파 성격이 두드러진 신학적 다원주의(theological pluralism)"로 알려졌다고 적고, 교수를 뽑을 때 제 분야의 주류를 대표하지 않는 사람, 다른 대학이라면 학문이나 정치의 까닭으로 받지 않았을 사람을 자주 골랐다고 적는다. [B1] 칼 바르트 재단은 협약 머리글에서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면서 에큐메니칼한 바탕 위의 신학"을 북돋우려 한다고 밝힌다. [B3]
(나) 바깥의 평가: 누가 한 말인지 밝힐 수 있는 오늘의 평가는 찾지 못함. 역사 속의 평가로, 학부 역사 쪽은 드 베테를 경건주의 쪽 사람들이 처음에 "너무 자유주의적"이라고 불렀다고 적는다. [B1]
알려진 사람: 요하네스 외콜람파트(종교개혁자), 드 베테(1822년 부임), 프란츠 오버베크(1870년 부임), 칼 바르트(1935년 부임), 오스카 쿨만(1938~1972년). 모두 [B1].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바르트에게 배운 한국 신학자들을 검색했으나 연 쪽에서 확인된 것이 없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1529년에 대학이 온전히 닫혔는지: 대학 역사 연표는 시 의회가 대학을 "정지"시켰으나 1529~1532년에도 일부 교수가 계속 가르쳤다고 적는다. [B2] (검색 요약에 따르면 옛 연구는 완전히 닫혔다고 보았다. 확인필요)
바젤의 종교개혁이 정식으로 들어온 해는 학부 역사 쪽에 글자로 없다. 연표에는 1529년 항목에 "종교개혁이 들어와서"라는 말이 있다. [B1][B2]
신학부만의 설립 해가 대학과 같은 1460년인지는 학부 쪽에 따로 적혀 있지 않다.
교수 수, 바르트의 은퇴 해, 협약 본문.
출처:
[B1] Theologische Fakultät Basel, "History of the Faculty of Theology Basel", theologie.unibas.ch (2026-10-12)
[B5] Universität Basel, "Studierende nach Fachrichtung HS2024", unibas.ch (2026-10-12)
[B6] Universität Basel, "Studierende nach Fachrichtung HS2025", unibas.ch (2026-10-12)
[B7] 스위스 개혁교회 목사 교육 기관(Aus- und Weiterbildung der Pfarrerinnen und Pfarrer), "Quest: Quereinstieg in den reformierten Pfarrberuf" 안내문(검색 결과에는 2021년 자료로 나옴), evref.ch (2026-10-12)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Pontificia Università Gregoriana · 이탈리아 로마, 필로타 광장 4번지(Piazza della Pilotta, 4)1551년 예수회를 세운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로마에 연 학교(로마 콜레지오)에서 이어지는 로마 가톨릭의 교황청립 대학교로, 예수회가 맡아 운영한다. 2024년에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와 동방 연구소를 품어 한 대학이 되었다
곳: 이탈리아 로마, 필로타 광장 4번지(Piazza della Pilotta, 4). [R1]
한 줄 소개: 1551년 예수회를 세운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로마에 연 학교(로마 콜레지오)에서 이어지는 로마 가톨릭의 교황청립 대학교로, 예수회가 맡아 운영한다. 2024년에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와 동방 연구소를 품어 한 대학이 되었다.
개신교 독자를 위한 견줌(사실만):
세워진 때가 종교개혁 시대이다. 1551년은 제네바 아카데미(1559년)보다 8년 앞선다. [R2] (세운 까닭을 종교개혁에 맞서는 것이라고 적은 글은 학교 쪽에서 찾지 못했다.)
국립 대학의 학부가 아니다. 교황청 아래 있고, 학위는 교황청의 권위로 주는 교회법상의 학위이다. [R3]
한 교단(로마 가톨릭 교회)의 학교이되 한 나라의 학교가 아니다. 학생이 약 120개 나라에서 온다. [R3][R4]
주된 목적은 사제직, 수도 생활, 평신도 교회 사역을 위한 양성이다. [R4]
기원:
1551년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몇몇 예수회원이 로마에 "문법, 인문, 그리스도교 교리를 값없이 가르치는 학교"를 열었다. 원문(영어 쪽): "free school of grammar, humanities and Christian doctrine" 이것을 로마 콜레지오(Collegio Romano)라고 불렀다. [R2][R3]
교황청 보도 자료는 이 대학을 "로마의 교황청립 대학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라 하고, 로마 콜레지오가 '모든 민족의 대학(Universitas omnium Nationum)'으로도 불렸다고 적는다. [R4]
역사:
1551년: 로마 콜레지오 시작. [R2]
1552년: 교황 율리오 3세가 학위를 줄 권한을 줌. 1556년 바오로 4세가 말로 다시 확인했고, 1566년 비오 5세가 글로 남기게 함. [R2] (대학의 사명 쪽은 "1556년에 학위를 줄 권한을 받았다"고만 적는다. [R1])
1584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마련한 새 건물이 문을 엶. 대학은 그를 "세운 이이자 지켜 준 이"라고 부름. [R2] 보도 자료는 세워진 지 33년 뒤 그레고리오 13세가 이미 거의 1,000명이던 학생을 받을 새 건물과 기금을 주었다고 적는다. [R4]
1773년: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예수회를 해산함. 로마 콜레지오는 교구 사제들에게 맡겨짐. [R2]
1814년과 1824년: 비오 7세가 예수회를 되살림(1814년). 레오 12세가 콜레지오를 예수회에 돌려줌(1824년). [R2]
1870년과 1873년: 이탈리아 정부가 학교를 콜레지오 로마노 건물에서 내보냄. 1873년 비오 9세가 이름을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로 정함. [R2]
1928년: 비오 11세가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1909년 설립)와 동방 연구소(1917년 설립)를 그레고리오 대학교와 '연합'시킴. [R3]
1930년 11월 6일: 지금의 필로타 광장 건물이 문을 엶. [R2]
2019년 12월 17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두 연구소를 그레고리오 대학교에 합치라는 자필 문서(키로그라포)에 서명함. [R5]
2024년 5월 19일(성령 강림 주일): 새 총규정이 효력을 얻어 성서 연구소와 동방 연구소가 대학교 안으로 들어옴. [R1][R5]
현황:
짜임: 총장 한 사람과 그를 돕는 평의회가 대학 전체를 다스린다. 평의회에는 세 '사명(Mission)'을 맡는 의장 셋이 들어간다. 세 사명은 콜레지움 막시뭄(Collegium Maximum. 지금까지의 그레고리오 대학교 학부, 연구소, 센터를 묶은 것),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 교황청립 동방 연구소이다. 두 연구소는 제 이름과 사명을 지키면서 대학과 "같은 법인"이 되었다. [R4][R5]
학부: 신학, 교회법, 철학, 교회사와 문화유산, 선교학, 사회과학. 여기에 성서 연구소의 성서 학부와 고대 근동 학부, 동방 연구소의 동방 그리스도교 학부와 동방 교회법 학부. 연구소: 영성, 심리학, 인간학. 센터 다섯(유대학을 위한 베아 추기경 센터, 종교 간 연구 센터 등). [R6] 보도 자료는 신학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부 가운데 하나"이고 다섯 학과로 되어 있다고 적는다. [R4]
학생 수: 교황청 공보실이 낸 보도 자료(2024년 5월 19일의 통합을 지난 일로 적은 자료. 낸 날짜는 문서에 없음)는 한 곳에서 "약 2,952명, 121개가 넘는 나라", 다른 곳에서 "약 3,000명, 6개 대륙 121개 나라와 지역"이라고 적는다. [R4] 학생 구성: 사제와 수사 40%, 신학생 30%, 평신도 여성 12%, 평신도 남성 10%, 수녀 8%. 출신 대륙: 유럽 50%, 중남미 15%, 북미 11%, 아프리카 11%, 아시아 11%, 오세아니아 2%. [R4]
위키백과(보조)는 2018~2019학년도 2,754명이라고 적고, 대학 보고서를 출처로 든다. [R7]
도서관: 약 65만 권. [R3]
학위: 교황청 권위 아래의 교회법상 학위이며 볼로냐 과정을 따른다(교황청은 2003년에 서명). [R3]
최근 변화: 2024년 2월 11일 교황청 문화교육부가 새 총규정을 승인했고, 3월 15일 총장 마크 루이스(Mark Lewis) 신부가 예수회 총장 아르투로 소사 신부(대학의 부총재)에게서 교령을 받았으며, 5월 19일 효력이 생겼다. 같은 날 세 의장(콜레지움 막시뭄의 주세페 디 루치오 신부, 성서 연구소의 페터 두보프스키 신부, 동방 연구소의 서니 토머스 코카라바키일 신부)이 3년 임기를 시작했다. [R5] 2025년 9월 25일 총장 평의회가 새 사명 선언을 승인했다. [R1] 위키백과(보조)는 2024년 9월 28일 이탈리아 정부의 교령으로 이 변화가 국법상 효력을 얻었다고 적는다. [R7]
관련 교단: 로마 가톨릭 교회. 교황청립 대학교이고 예수회에 맡겨져 있다. 원문(영어 쪽): "entrusted to the Society of Jesus" [R3] 2006년 11월 3일 베네딕토 16세가 연설에서 예수회에 맡긴 것을 다시 확인했다. [R2] 보도 자료는 교황이 총장을 고르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적는다. [R4]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원문 "at the service of the Church and the World"(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Committed to the pedagogical tradition of the Society of Jesus"(예수회의 교육 전통에 헌신하며). [R3] 사명 선언(2025년 승인)은 대학이 "성 이냐시오의 정신을 지키고 역사적 뿌리와 사명에 충실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오늘의 과제에 맞선다고 하고, 에큐메니칼 대화와 종교 간 대화에 힘쓴다고 적는다. [R1] 보도 자료의 말: "Rooted in Ignatian spirituality, it seeks to be at the service of the Church in every part of the world."(이냐시오 영성에 뿌리를 두고 온 세계의 교회를 섬기려 한다.) [R4]
(나) 바깥의 평가: 누가 한 말인지 밝힐 수 있는 평가는 연 쪽에서 찾지 못함. (브리태니커의 해당 항목은 열리지 않았다.)
알려진 사람:
졸업생 숫자로, 교황청 보도 자료는 성인 27명, 복자 57명, 교황 16명, 추기경단의 36%, 세계 가톨릭 주교의 24%를 든다. [R4]
위키백과(보조. 위키백과에서만 봄)는 교황 17명, 성인과 복자 72명이라고 적고 2010년 대학 자료를 출처로 든다. 이름으로는 교황 그레고리오 15세, 우르바노 8세, 레오 13세, 비오 12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성인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알로이시오 곤자가, 막시밀리아노 콜베, 수학자 크리스토퍼 클라비우스, 신학자 버나드 로너건을 들지만 이름마다 출처가 달려 있지는 않다. 요제프 라칭거(뒤의 베네딕토 16세)가 1972~1973년 신학 초빙 교수였다는 것에는 출처가 달려 있다. [R7]
동방 연구소의 졸업생으로 보도 자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 1세를 든다. [R4]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한국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는 따로 검색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위를 줄 권한을 받은 해: 대학 역사 쪽은 1552년(율리오 3세), 1556년은 바오로 4세의 재확인 [R2]. 대학 사명 쪽은 1556년 [R1]. 위키백과에 관한 검색 요약도 1556년을 든다.
학생 수: 같은 보도 자료 안에서 "약 2,952명"과 "약 3,000명" [R4]. 위키백과는 2,754명(2018~2019) [R7]. 2025~2026학년도의 공식 숫자는 찾지 못함. 두 연구소가 합쳐진 뒤의 숫자가 두 연구소 학생을 넣은 것인지도 글자로 확인하지 못함.
졸업생 교황 수: 보도 자료 16명 [R4], 위키백과 17명 [R7]. 성인과 복자: 보도 자료는 성인 27, 복자 57(합 84) [R4], 위키백과는 합 72 [R7].
학부 수: 옛 누리집 소개는 머리말에서 "아홉 학부, 두 연구소, 다섯 센터"라 하면서 목록에는 여섯 학부와 세 연구소를 든다. [R3] 지금 누리집 목록에는 학부 열 곳이 나온다. [R6]
예수회 총장의 교령 날짜: 교황청 발표는 총장이 3월 15일에 받았다고 적는다. [R5] (검색 요약에는 성서 연구소 쪽 알림이 3월 4일이라고 적었다고 나오나 직접 열지 않았다. 확인필요)
[R7] Wikipedia, "Pontifical Gregorian University", en.wikipedia.org (2026-10-12)
성 블라디미르 정교회 신학교St Vladimir's Orthodox Theological Seminary, SVOTS · 미국 뉴욕 주 용커스(Yonkers), 575 Scarsdale Rd. 1962년부터 이곳에 있다1938년 뉴욕에서 러시아 정교회 계통의 미국 교회(메트로폴리아)가 세운 동방정교회 신학교로, 지금은 미국 정교회(OCA) 수장 아래 있고 석사 과정 중심의 작은 기숙 신학교이다
곳: 미국 뉴욕 주 용커스(Yonkers), 575 Scarsdale Rd. 1962년부터 이곳에 있다. [V1]
한 줄 소개: 1938년 뉴욕에서 러시아 정교회 계통의 미국 교회(메트로폴리아)가 세운 동방정교회 신학교로, 지금은 미국 정교회(OCA) 수장 아래 있고 석사 과정 중심의 작은 기숙 신학교이다.
개신교 독자를 위한 견줌(사실만):
유럽의 대학 신학부와 달리 교회가 세우고 교회 수장 아래 있는 독립 신학교이다. [V1][V2]
미국 신학교 인가 기관(ATS)의 인가를 받았다. 미국의 개신교 신학교들과 같은 인가 틀 안에 있다. [V1][V3]
중심 과정이 목회학 석사(M.Div.)이다. [V1]
학생이 한 교회에서만 오지 않는다. 2025년 새 학생 27명은 여섯 관구에서 왔다(OCA 15명, 안티오키아 대교구 6명,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3명, 그 밖에 시리아, 말란카라, 에티오피아 정교회 각 1명). 뒤의 넷은 동방정교회와 갈래가 다른 오리엔트 정교회이다. [V4]
기원:
누리집 역사 쪽은 1794년 러시아 수도사 여덟 명이 알래스카에 와서 정교회의 씨를 뿌리고 코디악 섬에 학교를 세우려 한 일부터 이야기한다(연도 1794년은 그 쪽에서 글자로 확인하지 못했고, "여덟 명의 러시아 수도사가 알래스카에 왔다"는 말만 확인했다). [V1]
1937년 10월 '러시아 메트로폴리아'의 제6차 전미 교회 회의(Sobor)에서 바실 벤센(Basil M. Bensen) 박사가 신학교를 다시 열자고 제안했고 받아들여졌다. [V2]
1938년 10월 수업을 시작했다. 여는 예배는 브루클린의 성 삼위일체 교회에서 테오필루스 수도대주교가 드렸다. 이름은 988년 키예프 루스에 정교회를 들여온 성 블라디미르에서 왔다. [V2]
역사:
1938년: 맨해튼 동 121번가 구세주 그리스도 교회의 사택에서 수업 시작. [V2]
1939년: 제너럴 신학교(성공회) 교정에 임시로 자리 잡음. 그 뒤(학교 쪽은 1950년대 초부터, 위키백과는 1940년대까지라고 적음) 유니언 신학교에서 빌린 서 121번가 아파트를 씀. [V2][V5]
1962년: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크레스트우드의 지금 교정을 얻음. 알렉산더 슈메만(Alexander Schmemann)이 학장이 되어 1983년 12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맡음. [V1][V2]
1966년 6월 ATS 준회원, 1973년 정식 인가. 1967년 3월 신학사(B.D.) 학위를 줄 권한을 얻음. [V2]
1970년 4월 10일: 러시아 정교회 거룩한 시노드(총대주교 알렉시 1세)가 메트로폴리아에 자치 독립(autocephaly)을 주는 문서(토모스)에 서명함. 이로써 '미국 정교회(OCA)'가 됨. [V6] 학교 역사 쪽은 슈메만과 메이엔도르프가 이 독립을 얻는 데 구실을 했다고 적는다(해는 적지 않음). [V2]
1984년 3월~1992년 6월: 존 메이엔도르프(John Meyendorff)가 학장. 1992년 9월부터 토머스 홉코(첫 미국 태생 학장). 2002년 7월부터 존 에릭슨(첫 평신도이자 첫 개종자 학장). 2007~2017년 존 베어(John Behr). [V2]
2021년 11월 5일: 이사회가 교정을 옮기기로 표결함(옮길 곳은 정하지 않음). 까닭으로 뉴욕 지역의 높은 생활비, 넓힐 수 없는 땅, 지역 규제, 낡은 시설을 고치는 데 드는 수천만 달러를 들었다. [V7]
2024년 8월 9일: 이사회가 이전을 "기한 없이 멈춘다"고 결정함(발표는 8월 20일). 새 총장 찾기, 재정 튼튼히 하기, 전략 세우기에 힘쓰기로 함. [V8]
현황:
과정: 목회학 석사(M.Div.), 문학 석사(M.A.), 신학 석사(Th.M.), 목회학 박사(D.Min.). [V1] ATS 명부는 여기에 '정교회 그리스도교 연구 박사(PhD in Orthodox Christian Studies)'도 승인된 학위로 올려 두었다. [V3]
학생 수: ATS 명부는 2025년 가을 83명(전일제 환산 75.10명), 전임 교수 7명(환산 8.83명)이라고 적는다. [V3] OCA의 2025년 9월 23일 기사는 2025~2026학년도가 8월 25일 새 학생 27명(M.Div. 19명, M.A. 7명, 특별 과정 1명)으로 시작했고 네 과정을 합쳐 87명이라고 적는다. [V4] 위키백과(보조)는 2024년 가을 93명, 전임 교수 8명이라고 적고 ATS 명부를 출처로 든다. [V5]
인가: ATS 인가("Accredited in Good Standing"). 다음 종합 방문은 2028년 봄. 뉴욕 주 대학 당국의 인가를 받은 학교이다. [V3][V9]
기금: 찾지 못함.
최근 변화: 채드 햇필드(Chad Hatfield) 신부가 2024년 6월 총장에서 물러났고, 학장이던 이오누츠 알렉산드루 투도리에(Ionuț-Alexandru Tudorie) 박사가 2024년 7월부터 임시 총장을 맡았다. 2025년 2월 26일 그가 총장으로 임명되었다(임기 2025년 7월 1일~2030년 6월 30일). 선발 위원회 의장은 OCA 수장 티혼 수도대주교였다. 학교는 그가 임시 총장인 동안 200만 달러에 가깝던 적자를 뒤집어 회계 연도 첫 여섯 달을 10만 달러 흑자로 마쳤다고 발표했다. ATS는 2025년 1월 특별 방문 보고서에서 이를 좋게 평가했다고 학교는 적는다. [V9] 교정 이전은 2024년 8월에 멈추었다. [V8]
관련 교단: 미국 정교회(Orthodox Church in America, OCA). 누리집은 학교가 OCA 수장의 "오모포리온(주교의 어깨띠. 관할을 뜻함) 아래" 있다고 적는다. 원문: "under the omophorion of the Primate of the Orthodox Church in America (OCA)" [V1] ATS 명부의 교단 칸도 OCA이다. [V3] 다만 학생은 여러 정교회 관구에서 온다. [V4]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비전 원문: "Our VISION is to serve the Church, engage the world, and awaken hearts to the Gospel of Jesus Christ."(우리의 비전은 교회를 섬기고, 세상과 마주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깨우는 것이다.) 사명: "train pastors, lay leaders, and scholars through theological education and Christian formation"(신학 교육과 그리스도인 양성으로 목회자, 평신도 지도자, 학자를 기른다). 가치: 겸손한 섬김, 살아 있는 예배, 학문의 탁월함, 기도하는 분별, 기관의 정직과 책임. [V10] 역사 쪽은 플로롭스키의 말을 든다. 정교회는 "지역의 전통이 아니라 본디 에큐메니칼(온 교회적)인 전통"이다. 슈메만의 말로는 "신학생은 세 길만 알면 된다. 교실로 가는 길, 도서관으로 가는 길, 예배당으로 가는 길"을 든다. [V2]
(나) 바깥의 평가: 누가 한 말인지 밝힐 수 있는 평가는 연 쪽에서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게오르기 플로롭스키(학장 1951~1955년), 알렉산더 슈메만(학장 1962~1983년), 존 메이엔도르프(학장 1984~1992년), 토머스 홉코(학장 1992년부터), 존 베어(학장 2007~2017년). 모두 [V2]. 학교 출판부 SVS Press는 스스로를 영어권에서 가장 크고 활발한 정교회 책 출판사라고 소개한다. [V2]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한국 정교회와의 관계를 검색했으나 나온 것이 없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2025년 가을 학생 수: ATS 83명 [V3], OCA 기사 87명 [V4]. 세는 날이나 범위가 다를 수 있다.
플로롭스키가 학장이 된 해: 학교 역사 쪽 1951년 [V2], 위키백과 1950년 [V5]. 위키백과는 1938~1950년에 학장 셋, 1955~1962년에 레온티우스(투르케비치)를 더 적지만 그 명단에는 출처가 달려 있지 않다. [V5]
출판부(SVS Press)가 시작된 해: 학교 역사 쪽 본문은 1950년대 중반, 같은 쪽 다른 자리는 1968년 설립 [V2], 위키백과는 1962년 [V5].
유니언 신학교 아파트를 쓴 때: 학교 쪽 1950년대 초부터 [V2], 위키백과 1940년대까지 [V5].
사명 선언의 말: 지금 누리집의 사명 [V10]과 2010~2019년 요람의 사명("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와 세상을 섬긴다...")이 다르다고 검색 요약에 나왔으나 요람은 직접 열지 않았다. 확인필요
설립자: 누리집 소개 쪽에는 세운 사람의 이름이 없다. 역사 쪽에 제안자(벤센)와 교회 회의만 나온다. [V1][V2]
기금 규모, 이전 계획의 2025~2026년 뒷이야기(멈춘 뒤 새 결정이 있었는지): 찾지 못함.
출처:
[V1] St Vladimir's Orthodox Theological Seminary, "About", svots.edu (2026-10-12)
[V2] St Vladimir's Orthodox Theological Seminary, "Our History", svots.edu (2026-10-12)
[V3]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 회원 학교 명부 "St. Vladimir's Orthodox Theological Seminary", ats.edu (2026-10-12)
[V4] Orthodox Church in America, "2025 Fall Semester Underway at OCA Seminaries", 2025-09-23, oca.org (2026-10-12)
[V9] SVOTS, "SVOTS Appoints Dr Ionuț-Alexandru Tudorie as New President", 2025-02-26, svots.edu (2026-10-12)
[V10] SVOTS, "Vision, Purpose, Mission"(주소 끝 /about/vpm), svots.edu (2026-10-12)
이 묶음을 조사하며 알게 된 것
견주어 볼 때 눈에 띄는 점(사실만)
네 곳의 대학 신학부는 모두 주립 대학교에 속하고, 연 쪽 어디에도 신앙고백이나 교리 표준을 내건 글이 없었다. 스스로를 소개하는 말은 '연구 역량'(튀빙겐 [T1]), '대화와 지적 자유'(제네바 [G3]), '개혁파 성격의 신학적 다원주의'(바젤 [B1]) 같은 것이다. 교단 신학교가 신앙고백에 서명하게 하는 것과 다른 틀이다.
목사 후보생 교육은 대학과 교회가 일을 나눈다. 나누는 꼴은 곳마다 다르다.
- 튀빙겐: 대학이 가르치고, 졸업 시험은 교회의 직무 시험이며, 시험을 치려면 주교회의 신학생 명부에 올라야 한다. 기숙 학사(슈티프트)는 주교회의 것이다. [T4][T6]
-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마친 뒤의 수련을 주교회 법이 "신학부와 주교회가 함께 한다"고 정하고, 주교회의 설교자 신학원에서 대학 교수와 교회 강사가 같이 가르친다. [H4]
- 제네바: 학부 자체를 국가, 대학, 교회 대표가 모인 재단 이사회가 다스리고 교수를 임명한다. 예산도 대학과 교회가 나눈다. 네 곳 가운데 교회가 학부 운영에 가장 깊이 들어와 있는 꼴이다. [G1]
- 바젤: 대학이 석사를 가르치고, 그 뒤 교회가 책임지는 한 해의 수련 목회를 거쳐 안수한다(다른 직업에서 옮겨 오는 과정의 안내문에서 확인). [B7]
세운 때와 종교개혁의 관계가 서로 다르다.
- 튀빙겐(1477년)과 바젤(1460년)과 하이델베르크(1386년)는 종교개혁 전에 세워진 대학이 뒤에 개신교로 바뀐 경우이다. 튀빙겐은 1535년 무렵 루터파로 [T2], 바젤은 1532년 개혁파 대학으로 다시 열렸고 [B2], 하이델베르크는 1559년부터 개혁파의 중심이 되었다가 1620년대에 가톨릭이 강제되었고 1807년에 다시 개신교만의 학부가 되었다 [H1].
- 제네바(1559년)는 종교개혁자가 처음부터 세운 학교이다. [G1][G2]
- 그레고리오 대학교(1551년)는 같은 시대에 예수회가 세웠다. [R2]
- 성 블라디미르(1938년)는 20세기 미국의 이민 교회가 세웠다. [V2]
개신교 신학부의 학생 수는 확인된 곳마다 줄었거나 작다. 튀빙겐 575명(2011년)에서 359명(2025년) [T7], 하이델베르크 약 700명(2019년 11월)에서 약 550명(2023년 6월) [H2][H3], 바젤 101명(2024년 가을)에서 95명(2025년 가을) [B5][B6], 제네바 145명(2024년) [G6]. 제네바는 2021년 156명에서 2023년 132명으로 줄었다가 2024년 145명으로 늘었다. [G6]
학생 수가 줄자 다른 직업에서 들어오는 길을 넓힌 곳이 둘 있다. 제네바는 2025년부터 다른 전공 학사 졸업자가 보충 수료증을 거쳐 석사에 들어오고 교회 실습 학기를 하는 길을 열었다 [G6]. 바젤과 취리히는 30~54세 대학 졸업자를 위한 'Quest' 과정을 교회와 함께 운영한다 [B7]. (튀빙겐에도 '직업 자격자를 위한 개신교 신학' 4학기 과정이 주교회와 함께 만들어졌다고 검색 요약에 나왔으나 직접 열지 않았다. 확인필요)
대학 신학부끼리 합치는 흐름이 스위스 프랑스어권에서 있었다. 뇌샤텔 신학부가 2015년에 닫혔고, 제네바와 로잔이 학사와 석사를 함께 운영한다. [G5][G6]
개신교 밖의 두 학교는 2024~2025년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레고리오 대학교는 2024년 5월 19일 성서 연구소와 동방 연구소를 품어 한 법인이 되었다. [R5] 성 블라디미르는 2021년에 정한 교정 이전을 2024년 8월에 멈추고, 2025년 2월 새 총장을 세웠다. [V8][V9]
크기가 크게 다르다. 그레고리오 대학교는 약 3,000명 [R4], 성 블라디미르는 83~87명 [V3][V4]이다.
한국과의 관계가 숫자로 확인된 곳은 하이델베르크 하나였다(1984~2015년 한국인 신학 박사 49명). [H5]
조사의 한계
바깥의 평가(신학 성향에 대한 제3자의 말)는 여섯 학교 모두 연 쪽에서 찾지 못했다. 브리태니커는 그레고리오 대학교 항목을 열려고 했으나 막혔다(403). 그래서 신학 성향은 학교가 스스로 한 말과 학교가 쓴 제 역사에만 기댔다. '보수', '진보' 같은 딱지는 붙이지 않았다.
교수 수는 성 블라디미르(ATS) 말고는 찾지 못했다. 기금은 한 곳도 찾지 못했다.
숫자를 담은 PDF는 글자를 뽑아 읽었다. 표의 칸이 흐트러진 채 뽑혀서, 바젤의 2025년 전공별 속 숫자와 튀빙겐 표의 기준 학기는 확실히 읽지 못했다. 합계 줄과 학부 줄의 숫자는 칸 순서대로 읽어 합이 맞는 것을 확인했다(바젤 2024년 28+47+26=101, 2025년 31+42+22=95).
누리집 쪽은 요약 도구를 거쳐 읽었다. 원문 한 줄로 옮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문장은 그 도구가 돌려준 글자이다. 글에 올리기 전에 중요한 인용문은 원문 쪽에서 한 번 더 눈으로 맞추어 보는 것이 좋다.
직접 열지 못하고 검색 요약에서만 본 것은 본문에 확인필요로 적었고 출처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여기에 드는 것: 바르트의 은퇴 해(1962년), 스위스 개혁교회가 안수의 조건으로 국립 대학 석사를 요구한다는 말(스위스 개신교회 대표 리타 파모스의 강연문), 바덴 주교회의 시험 규정, 튀빙겐 슈티프트 규정(1974년 제정), 몰트만의 1975년 한국 방문, 바젤의 2016년과 2018년 학생 수.
한국 교회와의 관계는 하이델베르크 말고는 확인된 것이 없다. 튀빙겐, 바젤에서 공부한 한국 신학자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번에 연 쪽에서 이름과 학위를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적지 않았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해(1563년), 제네바 아카데미와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관계, 바르트와 바르멘 선언 같은 것은 독자에게 쓸모가 있겠으나 이번에 연 학교 쪽에는 글자로 나오지 않아 적지 않았다. 글을 쓸 때 따로 출처를 찾아야 한다.
아시아·오세아니아·아프리카·캐나다
조사한 날: 2026-10-12
조사 방법: 웹 검색으로 찾은 쪽을 실제로 열어 읽은 것만 적었다. 출처 번호 [n]은 파일 끝의 목록과 맞춘다.
표시 풀이
확인필요: 검색 결과의 요약 글에서만 보았고 해당 쪽을 열지 못했거나, 한 자료에서만 본 것.
"위키백과에서만 봄": 학교나 교단의 공식 자료로는 확인하지 못한 것.
알림: 쪽을 여는 도구가 긴 글을 줄여서 돌려주기 때문에, 원문 인용은 짧은 구절만 실었다. 신앙고백의 전문은 싣지 못했다.
학교 이름을 누르면 조사한 내용이 펼쳐집니다. 대괄호 안의 숫자는 그 학교 칸 끝(또는 이 탭 끝)에 있는 출처의 번호입니다.
무어 신학교Moore Theological College ·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뉴타운(Newtown). 시드니 대학교 옆시드니 성공회 교구의 목회자를 주로 길러 온 성공회 신학교. 학교 스스로 "the Anglican Diocese of Sydney(시드니 성공회 교구)에 가장 큰 섬김을 해 왔다"고 적는다
곳: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뉴타운(Newtown). 시드니 대학교 옆 [1][2].
한 줄 소개: 시드니 성공회 교구의 목회자를 주로 길러 온 성공회 신학교. 학교 스스로 "the Anglican Diocese of Sydney(시드니 성공회 교구)에 가장 큰 섬김을 해 왔다"고 적는다 [1].
기원:
1856년 뉴사우스웨일스주 리버풀(Liverpool)에서 문을 열었다 [1]. 위키백과는 날짜를 1856년 3월 1일로, 연 사람을 프레더릭 바커(Frederic Barker) 주교로 적는다 [2].
학교는 세운 사람을 한 명으로 적지 않는다. "여러 사람 덕분에 생겼다"고 하고, 초기 정착민 토머스 무어(Thomas Moore)가 교육을 위해 재산을 남긴 것과 시드니 성공회 주교 프레더릭 바커를 든다 [1].
처음에는 학생 3명, 전임 교사 1명이었다(위키백과에서만 봄) [2].
역사:
1856년: 리버풀에서 개교 [1].
1888년: 신학 논쟁과 학생 감소로 수업을 멈춤(위키백과에서만 봄) [2].
1891년: 시드니 대학교 가까이 있으려고 리버풀에서 뉴타운으로 옮김 [1].
1950년대 말부터: 교정을 넓히고, 큰 신학 도서관을 갖추고, 4년 과정을 들임 [1].
1959~1985년: 브로턴 녹스(Broughton Knox)가 학장(위키백과에서만 봄) [2]. 1994년에 그의 이름을 딴 브로턴 녹스 교육관이 열림 [1].
2008년: 여성 과정 학생의 훈련과 돌봄을 학교가 온전히 맡음 [1].
2011년: 스스로 과정을 인가하는 고등교육 기관이 됨. 2021년 7월 1일: 호주 고등교육 품질 기구(TEQSA)에서 'Australian University College'로 인정받음(둘 다 위키백과에서만 봄) [2].
2026년: 개교 170년 [1].
현황:
학위 과정: 신학사(Bachelor of Theology), 신학사(Bachelor of Divinity), 고급 디플로마(Advanced Diploma), 신학석사(ThM)의 이름이 자료에 나온다 [2][3]. 과정 전체의 목록은 학교 누리집에서 따로 확인하지 못했다.
학생 수: 최근(2024~2026년)의 공식 숫자는 찾지 못함. 찾은 숫자는 아래와 같고, 서로 기준이 다르다.
2009년 6월: "This year 475 students are enrolled at Moore."(올해 무어에 475명이 등록) [4]
2020년: BD, BTh, 고급 디플로마 과정에 253명. 2021년: 전일제 학부 새 등록이 95명을 넘어 앞 해(32명)의 두 배 이상 [3].
위키백과: 본문에는 BTh와 ThM 과정의 전일제 학생 약 300명, 정보 상자에는 학생 600명과 교수 20명. 기준 연도가 없고 서로 다르다 [2].
확인필요 시드니 교구 총회에 낸 2024년 연례 보고에 "지난 5년 동안 전일제 등록이 70% 늘고 전체 학생이 90% 늘었다"는 글이 있다고 검색 결과 요약에 나왔으나, 그 쪽(sds.asn.au)은 열리지 않았다.
졸업생과 학장: 학교는 "학장 13명, 졸업생 6천 명 이상"이라고 적는다 [1]. 위키백과는 졸업생 5천 명 이상으로 적는다 [2].
최근 변화:
2026년 6월 5일, 제13대 학장 마크 톰프슨(Mark D. Thompson)이 2027년 12월 31일에 물러난다고 알렸다. 후임 공고는 2026년 하반기에 나온다고 했다. 이사회 의장은 캐니시카 라펠(Kanishka Raffel) 대주교다 [5]. 톰프슨은 2012년 11월 30일에 임명되어 2013년 6월 6일에 취임했다 [1].
2026년 10월 12일 현재 후임 학장 발표는 찾지 못함.
확인필요 폴 그리먼드(Paul Grimmond)가 2026년 1월 1일부터 부학장이 된다는 소식이 검색 결과 요약에 있었으나 그 쪽은 열지 않았다.
관련 교단: 호주 성공회 시드니 교구. 이사회 의장이 시드니 대주교다 [5]. 위키백과는 가프콘 신학교육 네트워크(GAFCON Theological Education Network), 호주 뉴질랜드 신학교 협의회(ANZATS)와의 관계도 적는다 [2].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교수진의 입장: "The Faculty endorses the Protestant Reformed tradition as expressed in the Anglican Thirty-nine Articles of Religion."(교수진은 성공회 39개조 신조에 나타난 개신교 개혁파 전통을 따른다.) [6]
성경에 대하여: "accepts the Scriptures as God's written word, containing all that is necessary for salvation"(성경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은 것으로 받는다.) 삶과 믿음의 모든 일에서 성경이 마지막 권위이며, 역사적 신조들도 받는다고 적는다 [6].
학교가 내세우는 가치의 첫 항목 '기독교 신앙': "Trust in God and his purposes as these are revealed in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신뢰함.) [1]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이 학교가 "a strong tradition of conservative evangelical theology"(보수적 복음주의 신학의 강한 전통)를 지녔다고 적는다. 그 글에는 '출처 보강 필요' 표시가 붙어 있다 [2]. 다른 기관의 평가는 따로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모두 위키백과에서만 봄) [2]:
학장: 브로턴 녹스(1959~1985), 피터 젠슨(Peter Jensen, 1985~2001), 존 우드하우스(John Woodhouse, 2002~2013), 마크 톰프슨(2013~).
교수: 도널드 로빈슨(Donald Robinson), 그레이엄 골즈워디(Graeme Goldsworthy), 폴 바넷(Paul Barnett), 피터 오브라이언(Peter O'Brien).
졸업생: 시드니 대주교 글렌 데이비스(Glenn Davies, 2013~2021), 피터 젠슨(2001~2013), 캐니시카 라펠(2021~).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최근 학생 수의 공식 숫자를 찾지 못했다. 475명(2009년) [4], 253명(2020년, 세 과정만) [3], 약 300명과 600명(위키백과, 연도 없음) [2]이 서로 다르다.
졸업생 수: 학교 6천 명 이상 [1], 위키백과 5천 명 이상 [2].
39개조에 교수가 서약하는지, 학교의 정관(교구 조례)에 교리 표준이 어떻게 적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6]은 학교의 문서 위키에 실린 교수진 소개 글이다.
1888년의 휴교, 2011년과 2021년의 인가 변화는 위키백과에서만 보았다.
트리니티 신학교Trinity Theological College, 三一神學院 · 싱가포르 어퍼 부킷 티마 로드 490번지(490 Upper Bukit Timah Road)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신학교.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루터교 네 교단이 함께 다스리는 연합 신학교(union college)
곳: 싱가포르 어퍼 부킷 티마 로드 490번지(490 Upper Bukit Timah Road) [7].
한 줄 소개: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신학교.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루터교 네 교단이 함께 다스리는 연합 신학교(union college) [8][9].
기원:
1948년 10월 4일에 세웠다. 싱가포르 국가유산청 누리집은 "Founded on 4th October in 1948"라 적고, 지도자를 기르려고 세운 첫 신학교라고 한다 [10].
세운 까닭: 일본 점령기에 창이(Changi) 감옥에 갇혀 있던 선교사들이, 교회를 섬길 일꾼을 기를 연합 신학교를 꿈꾸었고, 전쟁이 끝난 뒤 교단들이 그것을 이루었다고 학장 인사말이 적는다 [8]. 기독교 언론 Salt&Light는 창이 감옥에 갇힌 개신교 목사와 선교사가 54명이었다고 적는다 [11].
처음의 교단: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7][11].
역사(학교 누리집의 연표) [12]:
1948년: 마운트 소피아(Mount Sophia)에 '트리니티 칼리지'로 세움.
1952년: 중국어부를 둠.
1954년: 이름을 '트리니티 신학교'로 바꿈.
1957년: 동남아시아 신학교육 협의회(ATESEA)를 세운 16개 학교 가운데 하나 [13].
1963년: 루터교회가 다스리는 교단으로 들어옴 [10][11].
1967년: 동남아시아 신학대학원(SEAGST) 아래에서 대학원 학위를 줌.
1993년: 대학원을 두어 자체 신학석사(MTh)를 줌. 2000년: 신학박사(ThD) 과정.
1996년: 정부가 마운트 소피아 교정을 수용. 1999년 새 터 기공. 2001년 이사. 2002년 지금의 어퍼 부킷 티마 교정 개원.
2014년: 공공 기독교를 위한 에토스 연구소(ETHOS Institute for Public Christianity) 세움.
2016년: 말레이시아 교단들이 이사회에서 나감.
2018년: 70주년. 2023년: 여섯째 기금을 받아 기독교 역사 석좌 교수직을 둠.
현황:
학위 과정: 신학사 겸 목회학석사(BD/MDiv), 신학연구석사(MTS), 목회석사(MMin), 신학석사(ThM), 문학석사(MLitt), 신학박사(ThD). 영어와 중국어(만다린) 두 말로 가르친다(위키백과에서만 봄) [7].
인가: 학위는 동남아시아 신학교육 협의회(ATESEA)의 인가를 받는다 [13].
학생 수: 학교 공식 숫자는 찾지 못함.
위키백과: 학생 "거의 200명", 그 가운데 3분의 1이 대학원 과정. 기준 연도 없음 [7].
확인필요 2002년 무렵 싱가포르 감리교 소식지 기사에 전일제 학생 220명(그 가운데 중국 출신 13명)이라는 글이 검색 결과 요약에 있었다. 그 쪽은 열지 않았다.
확인필요 2025년 5월 17일 제75회 졸업 예배에서 47명이 졸업했다는 글이 학교 동문 소식지(2025년 8월)의 검색 결과 요약에 있었다. 파일은 받았으나 글자를 읽지 못했다.
졸업생: 1948년부터 2018년까지 2,400명 [11].
학장: 에드윈 테이(Rev Dr Edwin Tay) [8]. 임명된 해는 찾지 못함.
최근 변화(2024~2026년): 합병, 이전, 이름 바뀜 같은 큰 변화는 찾지 못함.
관련 교단: 공식으로 네 교단이 다스린다. 성공회 싱가포르 교구(The Diocese of Singapore), 싱가포르 감리교회, 싱가포르 장로교회, 싱가포르 루터교회. 네 교단의 대표들이 연합 규약(Articles of Union)에 따라 이사회를 뽑는다 [9]. 학교는 "모든 교회와 교단을 섬긴다"고도 적는다 [9].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As a union college, TTC is an extension of the ministry of our Governing Churches."(연합 신학교로서 본교는 다스리는 교회들의 사역이 이어진 것이다.) [8]
신앙 선언: 네 교단은 16세기 종교개혁에 뿌리를 두고, 성경이 으뜸 권위이며 교회의 모든 전통이 성경 아래 있다고 믿는다.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을 받는다. 그 신경들이 고백하는 내용으로 "God has sent his eternal Son to the world, for us and for our salvation"(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영원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를 든다. 학교는 이 주류 개신교 교단들(mainline Protestant churches)이 세우고 다스리는 연합 신학교로서 이 교리 표준을 지킨다고 적는다 [9].
교육 목표: "The primary goal of our curriculum is to teach and transmit the apostolic faith"(교과 과정의 으뜸 목표는 사도적 신앙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 [8].
(나) 바깥의 평가: 찾지 못함. 개혁파나 장로교의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 등)을 학교의 표준으로 삼는다는 글은 보지 못했다.
알려진 사람: 학장 에드윈 테이 [8]. 그 밖의 교수와 졸업생은 확인된 자료를 찾지 못함(위키백과에도 목록이 없음) [7].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교 누리집의 '역사' 쪽 하나는 열리지 않아(404) 연표 쪽 [12]으로 대신했다.
최근 학생 수의 공식 숫자를 찾지 못했다.
위키백과는 싱가포르의 독립을 1959년으로 적은 대목이 있는데, 같은 쪽의 다른 틀은 1965년을 쓴다 [7]. 위키백과 글에는 "주요 기여자가 학교와 가까운 관계일 수 있다"는 알림이 붙어 있다 [7].
신앙 선언의 전문은 옮기지 못했다.
고베개혁파신학교神戸改革派神学校, Kobe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 일본 효고현 고베시 기타구 쇼부가오카 3-1-3 (兵庫県神戸市北区菖蒲が丘3-1-3)일본기독개혁파교회(日本キリスト改革派教会)가 운영하는 교단 신학교. 학교는 스스로 "歴史的改革派神学と福音主義に堅固に立つプロテスタントの神学校"(역사적 개혁파 신학과 복음주의에 굳게 선 개신교 신학교)라고 적는다
곳: 일본 효고현 고베시 기타구 쇼부가오카 3-1-3 (兵庫県神戸市北区菖蒲が丘3-1-3) [14].
한 줄 소개: 일본기독개혁파교회(日本キリスト改革派教会)가 운영하는 교단 신학교. 학교는 스스로 "歴史的改革派神学と福音主義に堅固に立つプロテスタントの神学校"(역사적 개혁파 신학과 복음주의에 굳게 선 개신교 신학교)라고 적는다 [14].
기원:
앞선 학교: 1907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고베신학교(神戸神学校)를 세웠다. 메이지학원 신학부가 자유주의 성향의 조직신학 교과서를 쓰는 데 반대한 것이 배경이라고 학교 연혁이 적는다 [15].
1946년 4월 일본기독개혁파교회가 세워졌고, 교사와 장로 10명으로 된 이사회 아래 신학교 운영이 시작되었다. 1947년 4월 고베개혁파신학교가 문을 열었다 [15].
세운 사람의 이름은 학교 연혁 쪽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필요 다른 대학의 자료에 "1942년에 닫은 중앙신학교의 졸업생 오카다 미노루(岡田稔) 등이 설립에 관여했다"는 글이 검색 결과 요약에 있었으나 그 쪽은 열지 않았다.
역사(학교 연혁) [15]:
1907년: 고베신학교 설립.
1927년: 미국 북장로교 계열의 오사카신학원과 합쳐 '중앙신학교(中央神学校)'로 이름을 바꿈.
1941년: 남장로교 선교부의 단독 운영으로 돌아감.
1942년 3월 9일: 신사 참배를 우상 숭배로 보아 거부한 끝에 중앙신학교가 스스로 문을 닫음. 같은 때 쇼와신학연구소가 세워짐.
1946년 4월: 일본기독개혁파교회 설립, 신학교 운영 시작. 1947년 4월: 개교.
1950년: 남장로교 선교부가 고베시 나다구 구스가오카(롯코)에 학교 시설을 지어 값없이 빌려 줌.
1953년 8월 19일: 법인 설립. 1961년: 선교부가 모든 재산을 일본기독개혁파교회에 넘김.
1996년 9월: 지금의 기타구 쇼부가오카로 옮김(예배당, 교사, 기숙사, 교사 주택).
1999년: 교단 이름 표기를 '日本キリスト改革派教会'로 바꿈. 같은 해 목사 후보생이 아닌 사람을 위한 별과(別科) 과정을 둠.
2016년 4월: 일한선교연구소(日韓宣教研究所)를 엶 [16].
현황:
과정: 본과와 별과.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필수이며, 성경을 원전으로 읽는 목사, 설교자, 기독교 봉사자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14]. 학생은 원칙으로 기숙사에서 함께 산다 [17].
학생 수: 찾지 못함. 학교 누리집에 현재 학생 수가 없다 [14].
졸업생: 2014년도까지 졸업생과 특별연구생이 모두 388명 [15]. 일본어 위키백과는 "창립 60주년 때 300명 이상"이라고 적는다 [18].
교장: 요시다 다카시(吉田隆) [14]. 일본어 위키백과는 그가 고시엔교회 목사를 겸한다고 적고, 현직 교수로 요시다 다카시, 요시오카 게이스케(吉岡契典, 학감), 스테판 판 데르 와트(ステファン・ファン・デア・ヴァット), 오니시 요시쓰구(大西良嗣)를 든다(위키백과에서만 봄) [18].
인가: 찾지 못함(일본 문부과학성의 대학 인가 여부 등은 확인하지 못함).
최근 소식(학교 누리집 공지) [14]: 2026년 10월 8일 학술지 『改革派神学』 제49호 발행. 2026년 8월 26일 학교 소식지 제101호 발행. 2026년 10월 23일 일한선교연구소 공개 세미나 [19]. 합병, 이전, 폐교 같은 큰 변화는 찾지 못함.
관련 교단: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교단 신학교(공식 소속) [14][16].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학교의 기본 방침) [17]:
「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基準に表されている歴史的改革派神学を純粋かつ厳密に確信し」(웨스트민스터 신앙 표준에 나타난 역사적 개혁파 신학을 순수하고 엄밀하게 확신하고) 이를 연구하고 변증하고 전하고 가르친다.
성경에 맞지 않는 신학 사상에 대해 학문으로 맞서는 '논쟁적' 입장을 지킨다.
신도, 유교, 불교 같은 이교의 원리와 관습이 교회에 섞여 드는 것을 거부한다.
교육 방침의 한 구절: 「恭虔と祈祷をもって福音を宣布する忠実な伝道者を養成する」(경건과 기도로 복음을 선포하는 충실한 전도자를 기른다.)
(나) 바깥의 평가: 일본 기독교 언론 크리스천투데이(2016년)는 이 학교를 「日本における保守的な長老派の神学校」(일본의 보수적인 장로파 신학교)라고 적는다 [16].
알려진 사람(위키백과에서만 봄) [18]: 옛 교수 오카다 미노루(岡田稔), 이치카와 야스노리(市川康則), 하루나 스미토(春名寿章), 와타나베 고헤이(渡辺公平). 다른 교단에서 일하는 졸업생으로 아사오카 마사루(朝岡勝, 일본동맹기독교단), 오시마 시게노리(大嶋重徳, 복음자유교회).
한국 교회와의 관계:
크리스천투데이 2016년 4월 8일 기사는 이 학교(와 그 교단)가 한국에서 「大韓イエス教長老会(高神派)との宣教協力関係」(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과의 선교 협력 관계)와 「大韓イエス教長老会(合同派)との友好関係」(합동과의 우호 관계)를 공식으로 맺고 있으며, 「高麗神学大学院との定期的な交流」(고려신학대학원과의 정기 교류)가 있다고 적는다. 한국 유학생을 많이 받아 왔다고도 적는다 [16].
2016년 4월에 연 일한선교연구소는 일본 선교를 뜻하는 한국인 선교사와 헌신자의 교육과 연수, 두 나라 교회의 협력 연구, 자료 수집을 한다. 첫 강연(2016년 5월 31일)의 강사는 신성일(申成日) 목사로, 기사는 그를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첫 한국인 목사라고 적는다 [16].
2026년 10월 23일 공개 세미나의 주제는 「日本の無牧教会を立て直す日韓宣教協力」(목회자 없는 일본 교회를 다시 세우는 일한 선교 협력)이고, 강사는 일본기독교회의 김산덕 목사다 [19].
정리: 기사 [16]이 쓰는 말은 고신과 "선교 협력 관계"다. "자매 교회"라는 말을 쓴 자료, 고신 총회나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공식 문서는 찾지 못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현재 학생 수, 교수 수, 인가 여부를 찾지 못했다.
중앙신학교가 문을 닫은 해: 학교 연혁은 1942년 3월 9일 [15], 일본어 위키백과는 1941년으로 읽히는 서술 [18].
세운 해: 운영 시작 1946년 4월, 개교 1947년 4월 [15]. 자료에 따라 어느 쪽을 창립으로 치는지 다를 수 있다.
졸업생 수: 388명(2014년도까지) [15], 300명 이상(60주년 때) [18].
고신과의 관계는 일본 언론 기사 한 건 [16]으로만 확인했다. 한국 쪽(고신 총회, 고려신학대학원) 자료에서는 찾지 못했다.
스텔렌보스 대학교 신학부Faculty of Theology, Stellenbosch University ·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케이프주 스텔렌보스네덜란드 개혁교회(DRC, 아프리칸스어로 NG Kerk)가 1859년에 세운 신학교에서 나온 대학 신학부. 지금은 스스로 "an open and ecumenical faculty of Stellenbosch University"(스텔렌보스 대학교의 열린 에큐메니컬 학부)라고 적는다
곳: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케이프주 스텔렌보스.
한 줄 소개: 네덜란드 개혁교회(DRC, 아프리칸스어로 NG Kerk)가 1859년에 세운 신학교에서 나온 대학 신학부. 지금은 스스로 "an open and ecumenical faculty of Stellenbosch University"(스텔렌보스 대학교의 열린 에큐메니컬 학부)라고 적는다 [20].
기원:
대학의 안내 쪽: "The Faculty of Theology (established in 1963) developed out of the Theological Seminary of the Dutch Reformed Church (DRC), which was founded in 1859."(신학부는 1963년에 세워졌고, 1859년에 세워진 네덜란드 개혁교회 신학교에서 나왔다.) [21][22]
이 신학교는 흔히 '크베이크스콜(Kweekskool)'이라 불렸다. 1994년 스텔렌보스 대학교의 E. 브라운(E. Brown)의 논문은 신학교가 "104년 뒤"에 대학의 신학부가 되었고, 대학이 협약으로 신학교를 학부로 받아들이면서 이름과 정체성을 지키게 했다고 적는다 [23]. 1859년에 104년을 더하면 1963년이다.
확인필요 대학의 100년사 쪽에 "신학교가 11월 1일 스텔렌보스에서 문을 열었다. 교회에 목사가 크게 모자랐고, 네덜란드에서 목사를 기르는 방식에 불만이 있었다"는 글이 있다고 검색 결과 요약에 나왔으나 그 쪽은 열리지 않았다.
역사:
1859년: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신학교로 세움 [21][24].
1963년: 스텔렌보스 대학교의 신학부가 됨 [21][22][23].
1970년대: 유색인 학생을 받지 않았다(같은 학부 헨드릭스 교수의 글) [24].
1990년: 이 학부의 빌리 용커(Willie Jonker) 교수가 루스텐버그(Rustenburg) 교회 대회에서 "publicly confessed the sin of apartheid on behalf of himself, his church and his people"(자신과 자기 교회와 자기 민족을 대신해 아파르트헤이트의 죄를 공개로 고백했다) [24].
1996년 10월 14~16일: 신학부와 네덜란드 개혁교회 스텔렌보스 노회가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에 스스로 나가, 나라에서 잘못된 일에 대한 자기들의 몫과 책임을 증언했다 [24].
2000년: 남아프리카 연합개혁교회(URCSA) 쪽 신학 교육 기관의 교수가 모두 스텔렌보스 신학부에 임용되고 학생이 모두 이 학부에 등록했다 [24]. 확인필요 대학 쪽 글에 "2000년부터 이 학부는 특정 교단에 매이지 않는다"는 문장이 있다고 검색 결과 요약에 나왔으나 그 쪽은 열리지 않았다.
2006년 무렵: 대학원 학생의 64%가 흑인. 1997~2005년에 다른 아프리카 나라 출신 23명이 신학박사(DTh)를 받음 [24].
현황:
학위 과정: 학부는 4년제 신학사(BDiv, 주로 목사 후보생), 3년제 신학사(BTh), 4년제 시간제 신학사(BTh). 헬라어와 히브리어는 일부 교회의 목회를 준비하는 BDiv 학생에게만 필수다 [21]. 여섯 분과: 구약, 신약, 조직신학, 실천신학, 교회사와 교회법, 선교학 [21].
학생 수: 찾지 못함. 대학 쪽은 "one of the smallest faculties at the University"(대학에서 가장 작은 학부 가운데 하나)라고만 적는다 [21][22]. 외국인 대학원생 비율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20].
학부장: 확인필요 레지널드(레지) 넬(Reginald Nel) 교수가 2018년 초부터 학부장이고 2023년에 두 번째 임기라는 글이 검색 결과 요약에 있었으나 그 쪽은 열리지 않았다. 2026년 현재의 학부장은 확인하지 못했다.
최근 변화(2024~2026년): 찾지 못함.
관련 교단: 한 교단에 속한 학교가 아니다. 협약에 따라 여러 교단의 목회자를 기른다.
대학원 안내 쪽: 네덜란드 개혁교회(DRC), 연합개혁교회(URC), 남아프리카 연합장로교회(UPCSA), 남아프리카 성공회(ACSA)와 협약이 있다 [20].
학부 안내 쪽: 위 네 교단에 폴크스케르크(Volkskerk), 남아프리카 연합복음루터교회(UELCSA)를 더해 여섯 교단 [21][22].
(보강, 학부 공식 쪽) 학부 누리집의 'Church Partners' 쪽에 여섯 곳이 올라 있다. "Dutch Reformed Church Curatorium", "Uniting Reformed Church in Southern Africa Curatorium", "Uniting Presbyterian Church in Southern Africa", "Anglican Church of Southern Africa", "Volkskerk van Afrika", "United 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Southern Africa". 성공회에 대해서는 "The Anglican Church of Southern Africa has been a partner of Stellenbosch University since March 2012"(남아프리카 성공회는 2012년 3월부터 스텔렌보스 대학교의 협력 교회다)라고 적고, 이것이 1998년부터 학부의 에큐메니컬 사업에 성공회가 함께해 온 일의 맺음이라고 적는다 [46].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an open and ecumenical faculty of Stellenbosch University"(스텔렌보스 대학교의 열린 에큐메니컬 학부). 뿌리는 1859년까지 올라가며 "sixteen decades of theology has been taught at Stellenbosch"(스텔렌보스에서 160년 동안 신학을 가르쳤다)고 적는다 [20]. 학부 자체의 신앙고백이나 교리 표준은 찾지 못했다.
(나) 바깥의 평가: 따로 찾지 못함. 아래 '아파르트헤이트와 벨하 신앙고백' 대목의 글들은 학부 교수와 교단 지도자가 스스로 한 말이다.
아파르트헤이트와 벨하 신앙고백(학교와 교단 자신의 설명을 중심으로):
교단의 자기 평가: 네덜란드 개혁교회 총회 의장 넬리스 판 렌스버그(Nelis van Rensburg)는 2019년 4월 남아공 신문 메일 앤드 가디언에 "We provided the theological base for apartheid."(우리가 아파르트헤이트의 신학적 바탕을 내주었다.)라고 말했다. "Atonement is always necessary."(속죄는 언제나 필요하다.)라고도 했다. 같은 기사는 이 교회가 1986년에야 모든 인종이 한 지붕 아래 예배하도록 받아들였다고 적는다 [25].
학부의 자기 평가: 스텔렌보스 신학부의 H. J. 헨드릭스(Hendriks) 교수는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At first it provided the theological rationale for apartheid."(처음에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신학적 근거를 내주었다.)라고 적고, 그 뒤 학부의 입장이 바뀌어 간 과정을 1990년 용커 교수의 고백, 1996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 증언, 2000년 연합개혁교회 쪽 교수와 학생의 합류로 적는다 [24].
벨하 신앙고백(Belhar Confession): 1982년 아프리칸스어로 쓰였고, 1986년 네덜란드 개혁선교교회(유색인 교회)가 신앙고백으로 받았다. 1994년에 남아프리카 연합개혁교회(URCSA)가 세워졌다(위키백과에서만 봄) [26].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반응(위키백과에서만 봄) [26]: 처음에는 정치 문서나 해방신학이라 하여 받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용이 참되다고 인정했다. 2011년 총회는 벨하 신앙고백을 교회의 고백 바탕에 넣는 절차를 지도부가 시작하도록 정했다.
2014년의 표결: 총회가 교회 질서(Kerkorde) 제1조를 고쳐 고백의 바탕을 넓히자고 제안했다. 고백을 고치려면 각 지역 총회(sinode)의 3분의 2와 모든 당회(kerkraad)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동부 총회에서는 2014년 9월 회중의 58%가 반대했고, 2014년 10월 총회 자체는 73%로 찬성했다(스텔렌보스 신학 학술지 2018년 논문의 초록) [27].
전국의 마지막 결과(2015년 무렵)를 직접 적은 자료는 열어 보지 못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2026년 현재 벨하 신앙고백을 공식 고백으로 받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세계개혁교회연맹(WARC)과의 관계: 위키백과는 이 교회가 1982년 세계개혁교회연맹에서 "expelled"(쫓겨났다)되었고 연맹이 아파르트헤이트를 죄로 선언했으며, 1986년 총회에서 입장을 바꾸어 모든 인종에게 문을 열었고, 뒤에 연맹에 다시 받아들여졌다고 적는다(위키백과에서만 봄. 다시 받아들여진 해는 적혀 있지 않음) [28].
확인필요 1986년 총회가 정책 문서 「교회와 사회(Kerk en Samelewing)」를 받았다는 것, 1990년 총회가 "벨하는 세 일치 신조와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도 고백으로 받지는 않았다는 것은 검색 결과 요약에서만 보았고 해당 논문은 열지 않았다.
알려진 사람: 빌리 용커(Willie Jonker, 이 학부 교수. 1990년 루스텐버그 고백) [24]. 베이어스 나우데(Beyers Naudé)는 확인필요 1930년대에 스텔렌보스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가 학부에 있다는 글이 검색 결과 요약에 있었으나 그 쪽은 열지 않았다. 그 밖은 확인하지 못함.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보강, 학부 공식 쪽에서 원문 확인) 학부 소개 쪽: "As an ecumenical faculty, we bring together students and scholars from diverse church traditions and contexts to reflect on faith, justice and transformation in today's world."(에큐메니컬 학부로서 우리는 여러 교회 전통과 여러 자리에서 온 학생과 학자를 한데 모아 오늘의 세상에서 믿음과 정의와 변혁을 깊이 생각한다.) 같은 쪽의 "Our Mission and Values" 대목은 학부가 대학에서 가장 작은 학부이고, 연구와 공적 토론과 남아프리카 안팎의 신앙 공동체에 이바지한다고 적으며, 가치로 "Justice"(정의: 사회와 비판적으로 마주하고 더 정의롭고 품이 넓은 세상에 이바지함)와 "Excellence"(탁월함: 가르침, 연구, 지역 사회 참여에서)를 든다 [45]. 이 쪽들에도 학부 자체의 신앙고백이나 교리 표준은 없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보강) 2026-10-12 Aside 브라우저로 학부 누리집의 두 쪽([45][46])을 열어 읽었고, 위의 '보강' 대목은 그때 화면에 나온 글자다. 다른 도구로는 여전히 403이어서 두 가지 방법으로 겹쳐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 쪽들에서 학부의 역사(1859년 설립 등)와 학생 수는 찾지 못했다. 아래는 처음 조사 때 적은 것이다.
대학의 본 누리집(sun.ac.za, su.ac.za)의 학부 쪽은 여러 번 시도했으나 열리지 않았다(연결 거부, 403). 그래서 대학의 과정 안내 쪽 [20][21], 대학의 입학 안내 블로그 [22], 학부 교수의 논문 [23][24][27]에 기댔다.
학생 수, 교수 수, 현재 학부장, 2024~2026년의 변화를 확인하지 못했다.
'세운 해'가 두 가지로 쓰인다. 신학교는 1859년, 대학의 학부는 1963년이다 [21]. 대학 쪽 글은 뿌리를 1859년으로 친다 [20].
협약 교단의 수: 네 교단 [20], 여섯 교단 [21][22].
벨하 신앙고백에 대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마지막 결정, 세계개혁교회연맹에서 쫓겨난 것인지 자격이 멈춘 것인지는 위키백과 [28] 말고는 확인하지 못했다.
교단의 공식 누리집과 총회 회의록은 열어 보지 못했다. 교단의 설명은 총회 의장의 신문 인터뷰 [25]로 대신했다.
리젠트 칼리지Regent College ·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UBC) 교정 안평신도에게 대학원 수준의 신학 교육을 하려고 세운 초교파 복음주의 대학원. 학교의 사명 선언은 "Regent College cultivates intelligent, vigorous, and joyful commitment to Jesus Christ, His church, and His world."(리젠트 칼리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와 그분의 세상에 대한 지적이고 힘 있고 기쁜 헌신을 기른다.)
곳: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UBC) 교정 안 [29][30].
한 줄 소개: 평신도에게 대학원 수준의 신학 교육을 하려고 세운 초교파 복음주의 대학원. 학교의 사명 선언은 "Regent College cultivates intelligent, vigorous, and joyful commitment to Jesus Christ, His church, and His world."(리젠트 칼리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와 그분의 세상에 대한 지적이고 힘 있고 기쁜 헌신을 기른다.) [31]
기원:
1960년대 중반 밴쿠버 지역의 한 무리가 뜻을 모았다. 학교의 연표는 꿈을 품은 사람으로 E. 마셜 셰퍼드(E. Marshall Sheppard), 제임스 M. 휴스턴(James M. Houston), 도널드 틴더(Donald Tinder), 워드 가스크(Ward Gasque) 등을 든다 [29].
1968년 법인 설립. 1969년 공식 개교식과 첫 여름 학기(학생 56명) [29].
1970년 제임스 휴스턴이 가족과 함께 밴쿠버로 옮겨 초대 학장(founding Principal)이 되었다. 학교는 평신도를 신앙으로 교육하도록 꾸려졌다 [30].
휴스턴은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에서 자랐다 [30]. 학교가 형제단의 학교로 세워졌다는 글은 학교 자료에서 보지 못했다.
역사:
1968년 법인 설립, 1969년 개교식 [29].
1971년: 등록 학생이 4명에서 44명으로 늚 [29].
1973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와 제휴(학교 공식 쪽) [32]. 위키백과는 1975년으로 적는다 [33].
1979년: 목회자를 기르는 과정을 시작(위키백과에서만 봄) [33].
1985년: 북미신학교협의회(ATS) 인가 [29].
1989년: 지금의 자체 건물로 옮김. 2006년: 도서관(John Richard Allison Library)과 풍탑(Windtower)을 더함(위키백과에서만 봄) [33].
2025년 7월: 폴 스필스버리(Paul Spilsbury)가 제6대 총장이 됨 [33][34].
2026년 3월 15일: 초대 학장 제임스 휴스턴이 밴쿠버에서 103세로 별세(1922년 11월 21일 에든버러 출생) [30].
현황:
학위 과정(ATS 승인): 목회학석사(MDiv), 기독교학 석사(MA in Christian Studies), 신학연구 석사(MA in Theological Studies), 리더십·신학·사회 석사(MA in Leadership, Theology and Society), 신학석사(ThM) [32][35].
인가: 북미신학교협의회(ATS) 인가 위원회의 인가. 상태 "Accredited in Good Standing"(정상 인가). 다음 방문 심사 2030년 가을 [35]. 제휴한 대학교의 평의회가 과목을 심사하거나 학점을 자동으로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학교가 밝힌다 [32].
학생 수(2025년 가을 보고, ATS): "311 (132.80)". 학생 311명, 전일제 환산 132.80으로 읽힌다 [35]. 전임 교수 "10 (23.30)" [35].
위키백과: 2024~25년 학생 319명, 교수 12명 [33].
확인필요 학교 누리집의 다른 쪽에 "매 학기 600명 넘는 학생(전일제와 시간제), 40개국 이상, 30개 넘는 교단"이라는 글이 있다고 검색 결과 요약에 나왔으나 그 쪽은 열리지 않았다(522 오류). ATS의 311명과 크게 다르다.
최근 변화 [34]:
2025년 6월 말 제5대 총장 제프리 그린먼(Jeffrey Greenman) 은퇴.
2025년 4월 23일: 4월 30일에 끝나는 회계 연도를 잘 마치려면 25만 캐나다 달러를 모아야 한다고 알림.
2025년 1월 9일: 옛 주차장을 2024년에 폴리곤 홈스(Polygon Homes)에 팔았다고 알림.
2025년 10월 28일: 제리 황(Jerry Hwang)을 학사 학장(Academic Dean)으로 임명.
관련 교단: 초교파. ATS는 "Inter/Multidenominational"(초교파, 여러 교단)이라고 적는다 [35]. 학교는 여러 교단 전통의 사람이 함께한다고 적는다 [31].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As an evangelical institution, we confess a statement of faith modeled on that of the World Evangelical Fellowship."(복음주의 기관으로서 우리는 세계복음주의협의회의 신앙 선언을 본뜬 신앙 선언을 고백한다.) [31]
신학 입장(Theological Position)은 두 부분이다. 교리 선언은 성경과 역사적 신조를 인정하고 여덟 가지 핵심 믿음을 든다. 하나님의 주권, 성경의 권위, 사람의 죄성, 그리스도의 대속, 믿음으로 얻는 칭의, 믿는 이 안의 성령의 일, 교회의 하나 됨,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다. 도덕적 비전은 거룩함의 성장, 사람 생명의 존엄, 이웃 사랑, 결혼과 독신에 대한 특정한 견해, 정의, 창조 세계의 돌봄을 든다 [31].
학생은 학교의 신학 입장에 서명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것을 알고 존중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31].
(나) 바깥의 평가: 위키백과는 "interdenominational"(초교파), "evangelical Christian"(복음주의 기독교)으로 적는다 [33]. 다른 기관의 평가는 따로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초대 학장 말고는 위키백과에서만 봄) [33]:
제임스 휴스턴(초대 학장, 1970~1978) [30].
교수(명예 교수 포함): J. I. 패커(J. I. Packer), 고든 피(Gordon Fee),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 브루스 월키(Bruce Waltke).
역대 학장과 총장: 칼 아머딩(Carl Armerding, 1978~1988), 월터 라이트(Walter Wright Jr., 1988~2000), 로드 윌슨(Rod Wilson, 2000~2015), 제프리 그린먼(2015~2025), 폴 스필스버리(2025~).
한국 교회와의 관계: 찾지 못함. 한국 유학생이나 한국 교회와의 관계를 적은 자료를 한국어와 영어로 찾아보았으나 확인되는 것이 없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세운 해: 1968년 법인 설립, 1969년 개교식, 1970년 초대 학장 부임과 첫 전일제 학생 [29][30]. 위키백과는 1968년 설립으로 적는다 [33].
대학교와 제휴한 해: 1973년(학교) [32], 1975년(위키백과) [33].
학생 수: 311명(ATS, 2025년 가을) [35], 319명(위키백과, 2024~25년) [33], "매 학기 600명 이상"(검색 요약, 확인 못 함).
ATS 쪽의 교수 숫자 "10 (23.30)"은 앞이 전임 교수 수, 뒤가 전일제 환산으로 보이나 쪽에 풀이가 없다 [35].
신학 입장의 전문은 옮기지 못했다.
캐나다개혁신학교Canadi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CRTS · 캐나다 온타리오주 해밀턴, 웨스트 27번가 110번지(110 West 27th Street, Hamilton, Ontario)캐나다개혁교회(Canadian Reformed Churches)가 세우고 그 교회 연합에 책임을 지는 교단 신학교. 주된 목적은 "to train students to serve as faithful, effective ministers of the Gospel"(학생을 복음의 충실하고 유능한 사역자로 기르는 것)이다
곳: 캐나다 온타리오주 해밀턴, 웨스트 27번가 110번지(110 West 27th Street, Hamilton, Ontario) [36].
한 줄 소개: 캐나다개혁교회(Canadian Reformed Churches)가 세우고 그 교회 연합에 책임을 지는 교단 신학교. 주된 목적은 "to train students to serve as faithful, effective ministers of the Gospel"(학생을 복음의 충실하고 유능한 사역자로 기르는 것)이다 [37].
기원:
1954년 매니토바주 홈우드에서 열린 캐나다개혁교회 첫 총회가 신학교를 세울 계획을 시작했다 [38].
1962년 해밀턴 총회가 임시 교육을 마련하고, 교회를 섬기던 목사들을 교수 자리에 임명했다 [38].
1968년 11월 20일 오렌지빌 총회가 전임 교수 3명과 강사 2명을 둔 정식 신학대학을 세우기로 정했다 [38].
1969년 9월 10일 온타리오주 해밀턴에서 공식으로 문을 열었다. 초대 학장 J. 파버(J. Faber)가 '벨직 신앙고백의 보편성(The Catholicity of the Belgic Confession)'이라는 제목으로 취임 강연을 했다 [38].
역사:
1954년, 1962년, 1968년, 1969년: 위와 같음 [38].
1981년: 온타리오주 의회가 '캐나다개혁신학대학 법'(Canadian Reformed Theological College Act)을 통과시켜 목회학석사(MDiv) 등 학위를 줄 수 있게 됨 [38].
1985년: 해밀턴 언덕 위의 새 터로 옮김(위키백과에서만 봄) [39].
2010년: 벌링턴 총회가 운영 이름을 '캐나다개혁신학교(Canadi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로 바꿈. 옛 이름 'Theological College of the Canadian Reformed Churches'는 법적 이름으로 남음 [38][39].
2011년: 북미신학교협의회(ATS) 회원이 됨. 2013년: 목회학석사 과정이 ATS의 정식 인가를 받음. 같은 해 카먼 총회가 다섯째 전임 교수 임명을 승인 [38].
현황:
학위 과정: 목회학석사(MDiv), 신학사(Bachelor of Theology), 신학 디플로마, 선교학 디플로마, 목회자 안식 과정 [36]. ATS가 승인한 학위는 MDiv 하나다 [40].
인가: ATS. 상태 "Accredited in Good Standing"(정상 인가). 다음 방문 심사 2030년 봄 [40][41].
학생 수(2025년 가을 보고, ATS): "26 (30.40)". 전임 교수 "5 (5.30)" [40]. 앞 숫자가 사람 수, 괄호 안이 전일제 환산으로 보이나, 환산값(30.40)이 사람 수(26)보다 커서 뜻이 분명하지 않다.
졸업 통계(학교, 2020~2025년): 목회학석사 과정을 마친 비율 97%(36/37). 졸업생 36명 가운데 33명(92%)이 교회나 선교지에서 목사로 세워짐 [41].
2026년 9월 11일 학위 수여식: 6명이 목회학석사를 받음 [42].
지금까지: 50년 동안 170명 넘게 목회학석사를 받았고, 그 가운데 20% 넘게 대학원 공부를 더 했다 [38].
학장: 제이슨 판 플리트(Jason Van Vliet) [43]. 전임 교수 5명: 야네스 스미스(Jannes Smith, 구약), 윌리엄 덴 홀란더(William den Hollander, 신약), 제이슨 판 플리트(교의학), 루번 브레덴호프(Reuben Bredenhof, 목회와 선교), 시어도어 판 랄터(Theodore G. Van Raalte, 교회론)(교수 이름과 분야는 위키백과에서만 봄) [39].
최근 변화(2024~2026년): 합병, 이전, 이름 바뀜 같은 큰 변화는 찾지 못함.
관련 교단: 캐나다개혁교회의 교단 신학교(공식 소속). 학교는 "established by and accountable to the federation of Canadian Reformed Churches"(캐나다개혁교회 연합이 세웠고 그 연합에 책임을 진다)라고 적는다 [37]. ATS도 교단을 "Canadian Reformed Churches"로 적는다 [40].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CRTS submits to the doctrine of the infallible Word of God as summarized in the ecumenical creeds"(본교는 보편 신조들에 간추려진, 오류 없는 하나님 말씀의 교리에 순복한다)라고 하고, 이어서 "the Belgic Confession, the Heidelberg Catechism, and the Canons of Dort"(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를 든다 [37]. 이 세 문서는 흔히 '세 일치 신조'라 부르는 것이지만, 학교의 그 쪽은 이 이름을 쓰지 않는다.
(나) 바깥의 평가: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초대 학장 J. 파버 [38]. 현 학장 제이슨 판 플리트 [43]. 그 밖은 확인된 자료를 찾지 못함.
한국 교회와의 관계:
교단 사이의 관계는 캐나다개혁교회의 공식 문서로 확인된다. 2013년 카먼 총회에 낸 북미교회 교류 위원회의 보충 보고서는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Kosin) with whom the Canadian Reformed Churches have had Ecclesiastical Fellowship since 1992"(캐나다개혁교회가 1992년부터 교회적 교제를 맺어 온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라고 적는다 [44].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1980~1992년 사이 여러 총회에서 이 관계를 두고 오래 논의했는데 걸림돌은 언어와 거리였고, 고신을 참된 교회로 보는 결론은 다툼이 없었다. 1992년 링컨 총회는 고신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장로교 정치를 충실히 지킨다고 보고 고신이 제안한 교제를 받아들였다 [44].
보고서는 고신을 "an existing sister church of ours"(우리의 기존 자매 교회)라고 부른다. 또 재미한인예수교장로회 고신(KPCA Kosin)의 북미 장로교 개혁교회 협의회(NAPARC) 가입을 권고한다 [44].
2026년 현재 이 관계가 그대로인지를 적은 최근 문서는 열어 보지 못했다.
신학교 차원의 관계(고신 학생의 유학, 고려신학대학원과의 교류)는 찾지 못함. 2026년 졸업생 6명 가운데 "K. Cho"라는 이름이 있으나 [42], 국적이나 소속 교회는 적혀 있지 않아 한국과의 관계로 볼 근거가 없다.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생 수는 ATS의 "26 (30.40)" 하나뿐이고 뜻이 분명하지 않다 [40]. 학교 누리집에는 전체 학생 수가 없다.
학교의 인가 쪽은 "37명이 과정을 마쳤다"와 "36/37(97%)"를 함께 적어 숫자가 맞지 않는다 [41].
1985년의 이전은 위키백과에서만 보았다 [39].
고신과의 관계를 적은 가장 최근의 공식 문서는 2013년 것이다 [44]. 한국 쪽(고신 총회) 자료에서는 찾지 못했다.
이 묶음을 조사하며 알게 된 것
견주어 볼 때 눈에 띄는 점(사실만)
교단과의 묶임이 세 갈래다.
- 한 교단이 세우고 책임지는 학교: 고베개혁파신학교(일본기독개혁파교회) [14], 캐나다개혁신학교(캐나다개혁교회) [37]. 무어 신학교는 시드니 성공회 교구와 묶여 있고 대주교가 이사회 의장이다 [5].
- 여러 교단이 함께 다스리거나 협약을 맺은 학교: 트리니티 신학교(네 교단이 이사회를 뽑음) [9], 스텔렌보스 신학부(네 교단 또는 여섯 교단과 협약) [20][21].
- 초교파: 리젠트 칼리지 [35].
교리 표준을 밝히는 방식이 다르다.
- 역사적 신앙고백을 표준으로 드는 학교: 고베(웨스트민스터 신앙 표준) [17], 캐나다개혁신학교(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 [37], 무어(성공회 39개조) [6].
- 보편 신경과 종교개혁의 전통을 드는 학교: 트리니티(니케아 신경, 사도신경) [9].
- 자체 신앙 선언을 둔 학교: 리젠트(세계복음주의협의회의 선언을 본뜸) [31].
- 학부 차원의 교리 표준을 찾지 못한 곳: 스텔렌보스. 스스로 '열린 에큐메니컬 학부'라고 한다 [20].
장로교와 개혁파의 표준 문서를 학교의 표준으로 삼는 곳은 여섯 가운데 둘(고베, 캐나다개혁신학교)이고, 이 둘이 고신과의 관계가 자료로 확인된 곳이기도 하다 [16][44].
크기의 차이가 크다. 2025년 가을 ATS 보고로 리젠트는 311명, 캐나다개혁신학교는 26명이다 [35][40]. 나머지 네 곳은 같은 기준의 최근 숫자를 찾지 못했다.
전쟁과 박해, 인종 차별의 역사가 학교의 내력에 들어 있는 곳이 셋이다. 고베의 앞선 학교는 1942년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스스로 문을 닫았다 [15]. 트리니티는 일본 점령기 창이 감옥에서 구상되었다 [8][11]. 스텔렌보스는 교단이 아파르트헤이트의 신학적 근거를 내주었다는 것을 학부 교수와 교단 지도자가 스스로 적고 말한다 [24][25].
2025~2026년에 지도자가 바뀌거나 바뀔 예정인 곳이 둘이다. 리젠트는 2025년 7월 새 총장이 왔고 [34], 무어는 학장이 2027년 말 은퇴를 알렸다 [5].
조사의 한계
스텔렌보스 대학교의 본 누리집(sun.ac.za, su.ac.za)이 열리지 않아, 학부의 역사와 현황을 대학의 과정 안내 쪽과 학부 교수의 논문으로 적었다. 학부의 공식 '역사' 쪽과 '교회 협력' 쪽은 읽지 못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공식 누리집과 총회 회의록도 읽지 못했다. 벨하 신앙고백에 대한 그 교회의 마지막 결정은 확인하지 못했다.
무어, 트리니티, 고베, 스텔렌보스는 최근 학생 수의 공식 숫자를 찾지 못했다.
쪽을 여는 도구가 내용을 줄여서 돌려주므로, 신앙 선언의 전문과 긴 인용은 싣지 못했다. 짧은 인용도 글을 올리기 전에 원문 쪽에서 한 번 더 맞춰 보는 것이 안전하다.
확인필요를 붙인 것은 검색 결과의 요약 글에서만 본 것이어서 출처 번호를 달지 않았다. 글에 쓰려면 해당 쪽을 열어 확인해야 한다.
위키백과에서만 본 것(무어의 1888년 휴교와 인가 변화, 트리니티의 과정과 학생 수, 고베의 교수와 졸업생 이름, 리젠트의 역대 학장과 교수 이름, 캐나다개혁신학교의 1985년 이전과 교수 이름, 벨하 신앙고백의 내력)은 그렇게 밝혔다. 무어와 트리니티의 위키백과 글에는 출처나 중립성에 관한 알림이 붙어 있다.
고신과의 관계는 상대 쪽 자료로만 확인했다. 일본 쪽은 언론 기사 한 건(2016년) [16], 캐나다 쪽은 교단 위원회 보고서 한 건(2013년) [44]이다. 고신 총회의 공식 자료(자매 교회 목록 등)는 한국어 검색으로 찾지 못했다. 고베에 대해서는 '자매 교회'가 아니라 '선교 협력 관계'라는 말만 확인되었다.
무어, 트리니티, 스텔렌보스, 리젠트와 한국 교회의 관계는 찾지 못했다.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번 조사에서 확인되는 자료를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묶음의 출처
읽은 날짜는 모두 2026-10-12.
[1] Moore Theological College, "About" (학교 공식 누리집). moore.edu.au
[2] Wikipedia (영어), "Moore Theological College". en.wikipedia.org
[3] Sydney Anglicans, Tara Sing, "Ministry enrolments double" (2021-03-07). sydneyanglicans.net
[4] Phillip Jensen 누리집, "Moore College Mission at St Andrew's" (2009-06-08). phillipjensen.com
[5] Moore Theological College, "Retirement announced" (2026-06-05). moore.edu.au
[20] Stellenbosch University, 대학원 과정 안내 "Faculty of Theology". www0.sun.ac.za
[21] Stellenbosch University, 학부 과정 안내 "Theology". www0.sun.ac.za
[22] Stellenbosch University Open Day 블로그, "Faculty of Theology". blogs.sun.ac.za
[23] E. Brown, "Kweekskool teenoor teologiese fakulteit: Die ervaring van die Nederduitse Gereformeerde Kerk", HTS Teologiese Studies 50(1/2), 1994 (초록 쪽). hts.org.za
[24] H. J. Hendriks, "Can a leopard change its spots? Long walk to diversity", NGTT 48권 1호로 보이는 글(파일 이름으로 미루어 봄. 2006년 학회 발표문). ojs.reformedjournals.co.za
[25] Mail & Guardian, Lester Kiewit, "NG Kerk is repenting for apartheid" (2019-04-18). mg.co.za
[27] Carl Louwrens, Jurgens Hendriks, "Geloofsonderskeiding in die Oostelike Sinode van die NG Kerk tydens die besluitnemingsprosesse oor die wysiging van Artikel 1 van die Kerkorde", Stellenbosch Theological Journal 4(1), 2018 (초록 쪽). ojs.reformedjournals.co.za
[28] Wikipedia (영어), "Dutch Reformed Church in South Africa (NGK)". en.wikipedia.org
[44] Canadian Reformed Churches, Committee for Contact with Churches in North America, "Supplementary Report to General Synod Carman, 2013. Re: Application of Korean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Kosin) for membership in NAPARC" (PDF 6쪽, 2013-02-13 작성). canrc.org
방법: 학교 공식 누리집의 쪽을 직접 열어 글자를 읽었고, 열리지 않은 곳은 백과사전, 위키백과, 언론 기사로 채웠다. 사실마다 출처 번호를 붙였다. 출처 번호는 파일 전체에서 이어지는 번호이고, 학교마다 그 학교에서 쓴 번호를 다시 적었다.
확인필요는 연 쪽에서 글자로 보지 못한 것이다.
입시 숫자에 대하여: 2026학년도 숫자는 모두 아이굿뉴스의 2026년 9월 5일 기사 한 편에서 왔다[6]. 그 기사는 교육부 '대학알리미'의 2026년 공시를 분석했다고 밝힌다. 대학알리미 원자료는 직접 열지 못했다. 2025년 공시 숫자는 공공데이터를 가공해 보여 주는 김박사넷에서 읽었다(그 사이트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실제 공시데이터를 확인하라"고 적는다)[7][11][25].
학교 이름을 누르면 조사한 내용이 펼쳐집니다. 대괄호 안의 숫자는 그 학교 칸 끝(또는 이 탭 끝)에 있는 출처의 번호입니다.
고려신학대학원KOREA THEOLOGICAL SEMINARY · 충남 천안시 동남구 충절로 535-31(삼룡동)학교 스스로의 말로 "웨스트민스터 교리표준서를 신조로 받아들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의 직영 목회자양성 기관"
곳: 충남 천안시 동남구 충절로 535-31(삼룡동)[1]
한 줄 소개: 학교 스스로의 말로 "웨스트민스터 교리표준서를 신조로 받아들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의 직영 목회자양성 기관"[2].
기원: 1946년 5월 고려신학교 설립기성회 조직, 6월 23일 제1회 하기 신학강좌 개설, 9월 20일 부산시 부산진에 "고려신학교" 개교[1]. 세운 사람의 이름과 세운 까닭은 학교 누리집의 역사 쪽에는 적혀 있지 않다[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검색 결과에는 "1946년 9월 목사 주남선·한상동이 고려신학교로 설립"이라고 나오나 그 항목 쪽을 직접 열지는 못했다 확인필요.
역사[1]:
1947.10.16 박형룡 박사가 제1대 교장으로 취임. 1948.5 박윤선 박사가 제2대 교장으로 취임.
대학알리미 계열 자료에서는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충남, 사립 특수대학원)"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7].
최근 변화: 학교 첫 화면에 "개교 80주년 감사예배 및 기념강좌", "오는 10월 29일 열리는 80주년 감사예배" 공지가 있다(2026년)[5]. 누리집 연혁은 2019.11 "백석대신총회와 M.O.U. 체결"에서 끝난다[1]. 그 뒤의 일은 연혁에 없다.
아이굿뉴스는 "고신대는 5년 전 191명과 올해 190명으로 지원자 규모를 사실상 그대로 유지해, 정원 조정 없이 횡보한 단일 신대원"이라고 적었다[6].
관련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직영[2]. 1964년 총회 결의로 총회직영이 되었다고 학교가 적는다[1].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신·구약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임을 믿으며, 웨스트민스터 교리표준서를 신조로 받아들이는"[2]. 누리집 쪽마다 위에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이라는 구호가 붙어 있다[1][2]. 교과에 "한국교회사와고신정신", "신조교의학"이 있다[4].
(나) 바깥의 평가: 이번에 연 자료에서는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박형룡(제1대 교장), 박윤선(제2대 교장), 한상동(제8대 학장, 1969), 이근삼, 오병세, 홍반식, 허순길(역대 교장, 학장, 원장)[1]. 지금 원장은 기동연[3].
190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와의 관계를 학교가 어떻게 말하는가: 연 쪽들(역사, 교육이념, 인사말)에는 평양신학교를 말한 글이 없다. 역사는 1946년에서 시작한다[1][2][3].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세운 사람과 세운 까닭은 학교 누리집에서 글자로 보지 못했다.
1946년 개교 때의 교장(또는 교장 서리)이 누구였는지는 학교 연혁에 없다. 연혁은 박형룡을 "제1대 교장"(1947.10), 박윤선을 "제2대 교장"(1948.5)으로 적는다[1].
교수 수, 재학생 수, 재정은 찾지 못함.
고신대학교와의 통합이나 분리 논의, 2024~2026년의 다른 변화에 대한 보도는 검색에서 찾지 못함.
출처: [1] [2] [3] [4] [5] [6] [7]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CHONGSHIN UNIVERSITY · 신학대학원 입시 누리집에 적힌 주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읍 학촌로 110.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학교를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학촌로에 있는 사립 신학대학교"라고 적는다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신학대학원이 있는 대학교(위키백과의 말)
곳: 신학대학원 입시 누리집에 적힌 주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읍 학촌로 110[12].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학교를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학촌로에 있는 사립 신학대학교"라고 적는다[8].
한 줄 소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신학대학원이 있는 대학교(위키백과의 말)[10].
먼저 밝혀 둘 것: 총신대학교 공식 누리집(www.csu.ac.kr)은 화면이 스크립트로만 그려져서 연혁과 설립이념 쪽을 글자로 읽지 못했다. 아래의 연혁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8], 교단 신문인 기독신문의 기사[9], 위키백과[10]에서 왔다.
기원: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가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의 설립을 결의함에 따라 1901년 5월 15일 평양 대동문 옆 모펫(S. A. Moffet, 한국명 마포삼열) 선교사의 자택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로 개교하였다"[8].
역사:
1907년 6월 제1회 졸업생 7명(서경조, 방기창, 한석진, 양전백, 송인서, 길선주, 이기풍)[8].
1918년 3월 『신학지남』 창간. "1938년 신사참배 거부로 일제에 의하여 폐교"[8].
"광복 후 제35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결의에 의하여 1948년 5월 서울 남산에서 장로회신학교로 재개교"[8].
"19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신학교로 개편하고 대구시 중구 대신동으로 교사를 이전", 1953년 서울 중구 회현동으로 이전[8].
1965년 서울 사당동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 "1969년 4년제 정규대학인 총신대학으로 개편"[8].
1980년 신학대학원 신설, 1983년 양지캠퍼스 준공, 1995년 3월 총신대학교로 교명 변경[8].
190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와의 관계를 학교 쪽이 어떻게 말하는가:
기독신문(2021.11.30, '총신 120주년 특별기획'): "총신대학교(이재서 총장)는 1901년 본교의 전신(前身)인 평양 조선예수교장로회 신학교(초대교장 마포삼열 박사)가 '개혁신학, 개혁신앙, 개혁실천'이라는 건학이념을 토대로 설립된 이후…", "조선예수교장로회 신학교는 1901년 설립된 이후 1938~1948년까지 폐교를 경험했으나, 1948년 5월 서울 남산에서 재개교했다. 이후 19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제36회 총회결의로 총회신학교를 직영으로 지정(교장:감부열 목사)"[9].
위키백과는 이렇게 적는다(위키백과에서만 본 글): 1901년 평양에 개교하여 1938년 폐교한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를 "장로회신학대학교와 함께 양 대학교에서 서로 남한에서 재개교한 모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상은 … 설립주체와 운영 주체, 교사, 학적, 학사 등 전혀 관련이 없다"[10]. 이 문장에는 출처가 붙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현황:
2026학년도: 393명 모집에 513명 지원(1.31대 1), 신입생 충원율 104.8%, 입학생 412명(정원외 포함). 정원외 지원자 38명으로 분석 대상 11개 학교 가운데 가장 많고, 정원 내 기준으로 다시 셈하면 경쟁률 1.21대 1, 충원율 100.5%[6].
"총신대는 개교 이래 2023학년도에 첫 정원 미달(0.94대 1) 사태를 겪은 뒤 회복세를 이어왔다. 올해 513명은 전년 저점(433명) 대비로는 큰 폭의 회복이지만 2021년 557명에는 못 미친다"[6].
2025년 공시: 입학정원 393명, 정원내 지원 406명, 정원내 입학 367명, 신입생 충원률 93.4%, 재학생 1,102명[11].
학위 과정의 공식 이름과 교수 수는 학교 누리집에서 읽지 못함.
관련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위키백과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신학대학원이 있는 대학교"[10], 기독신문은 1951년 총회가 "총회신학교를 직영으로 지정"했다고 적는다[9]. 지금의 법적 관계(직영인지, 이사 구성)는 학교나 총회의 공식 쪽에서 확인하지 못함.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보강) 신학대학원 누리집 첫 쪽에 "개혁주의 보수신학 준비된 지도자"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42]. 건학이념, 연혁, 신앙고백 쪽은 이번에도 읽지 못했다. 기독신문이 전하는 건학이념은 "개혁신학, 개혁신앙, 개혁실천", 교훈은 "신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성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목자가 되라"[9].
(나) 바깥의 평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교육목표로 "캘빈주의적 학문의 정립, 청교도적인 훈련 도장 구축"을 든다[8]. 위키백과는 "개혁주의 신학을 기반으로, 보수적인 장로교 교단"의 학교라고 적는다[10].
알려진 사람: 마포삼열(초대 교장), 감부열(1951년 총회신학교 교장), 박형룡[8][9][10]. 위키백과의 역대 총장 목록에는 박윤선(1963.12.11~1964.12.10), 명신홍, 김의환이 있다(위키백과에서만 봄)[10].
한국 교회와의 관계(나라 밖 교류): 찾지 못함.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공식 누리집의 연혁, 설립이념, 신앙고백을 읽지 못했다. 이 학교 항목은 모두 2차 자료다.
1948년 남산 개교의 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기독신문은 5월[8][9], 장로회신학대학교 누리집은 6월[13][14].
1969년의 이름: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총신대학으로 개편"[8]. 위키백과 검색 요약에는 1975년에 학교 이름을 줄였다는 말이 있으나 직접 연 쪽에서는 보지 못했다 확인필요.
1960년 용산 한강로 이전은 위키백과에만 있다[10].
2018년 무렵의 학내 사태와 그 뒤의 이사회 체제, 2024~2026년의 총장 관련 변화는 검색에서 기사를 찾지 못했다.
출처: [6] [8] [9] [10] [11] [12] [42]
장로회신학대학교서울 광진구 광장동(1960.9.5 "서울 광진구 광장동 353번지에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 지금의 도로명 주소는 연 쪽에서 읽지 못함설립목적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직할하에서 성경적 신학에 기초하고 장로회신조와 헌법에 기준하여 교회의 지도자와 교역자 양성을 위한 고등교육을 실시함"이라고 적는 학교
곳: 서울 광진구 광장동(1960.9.5 "서울 광진구 광장동 353번지에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14]. 지금의 도로명 주소는 연 쪽에서 읽지 못함.
한 줄 소개: 설립목적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직할하에서 성경적 신학에 기초하고 장로회신조와 헌법에 기준하여 교회의 지도자와 교역자 양성을 위한 고등교육을 실시함"이라고 적는 학교[15].
기원: "본 대학교는 북장로회 선교사 마포삼열(S.A.Moffett)이 평양에서 선교 활동을 하면서, 1901년부터 김종섭, 방기창 두 사람을 데리고 그의 사랑방에서 신학반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1903년 공의회는 이것을 '장로회신학교'로 하기로 결의하여 공식적으로 신학교육이 시작되었다"[13]. 연혁은 "1901. 봄 마포삼열 박사가 평양 대동문 옆 자택에서 방기창, 김종섭 두 학생으로 신학반을 시작하다", "1903. '장로회공의회'가 장로회신학교 설립을 결의하다"로 적는다[14].
역사:
1907년 첫 졸업생 7명(길선주, 양전백, 서경조, 한석진, 송인서, 방기창, 이기풍). 그해 9월 17일 독노회 성립[13]. 1908.5 평양 하수구리 100번지에 교사[13][14].
1938.9 신사참배 문제로 가을학기 개학이 무기한 연기됨. 1939.4.13 제34회 졸업식[13]. 연혁은 "1938. 09. 20. 학교 당국은 일본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무기 휴학할 것을 선언하다"[14].
1940.4.11 "소위 (후)평양신학교"가 총독부 인가를 받아 개교, 채필근 목사가 제3대 교장[13]. 학교는 이 학교의 교장을 자기 학교의 역대 교장 번호에 넣어 센다(제3대 채필근, 제4대 김인준, 제5대 이성휘)[13][14].
광복 뒤 북한에서 평양 장로회신학교가 재건되었고, 1950년 감리교의 성화신학교와 강제로 통합되어 '조선 기독신학교'가 된 뒤 그해 7월 문을 닫았다고 적는다[13].
"남한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5회 총회가 1948년 6월 서울 남산에서 개교한 장로회신학교를 평양에서의 신학교육을 계승한 학교로 인준했고, 제6대 교장에 박형룡 박사가 취임"[13]. 연혁은 이 인준의 날짜를 1949.04.23로 적는다[14].
1951.05.30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6회 총회는 교명을 '총회신학교'로 결의하고, 제7대 교장에 감부열(A. A. Campbell)박사를 인준". 1951.9.18 부산에서 대구로 옮김. 1953.8.6 제8대 교장 박형룡. 1953.10.18 서울 남산 교사로 복귀[14].
190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와의 관계를 학교가 어떻게 말하는가: 위에 옮긴 그대로다. 약사의 제목은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시초가 되다 마포삼열 박사"이고, 초대 교장 마포삼열의 재임을 "1901.05.01 ~ 1925.10.29"로 적으며[18], 1959년의 일은 "합동측이 이탈"로 적는다[14].
현황:
2026학년도 신학대학원: 232명 모집에 412명 지원(1.78대 1로 분석 대상 11개 학교 가운데 가장 높음), 신입생 충원율 103%, 입학생 239명(정원외 포함). "올해 정원을 264명에서 232명으로 32명 줄인 영향", "5년 전과 비교하면 지원자는 591명에서 412명으로 30.3% 급감"[6].
과정별 교육목표가 대학, 신학대학원, 대학원으로 나뉘어 적혀 있다[16]. 학위 이름의 목록, 교수 수, 재학생 수는 연 쪽에서 읽지 못함.
통폐합 논의(보도):
국민일보(쪽에서 날짜를 읽지 못함. 본문에 "오는 9월 교단 제102회 정기총회"라는 말이 있음): 예장통합 정책기획기구개혁위원회가 "단일법인, 7개 캠퍼스 운영 계획안"을 총회 임원회에 보고. 7개 신학대는 장로회신학대, 호남신대, 한일장신대, 영남신대, 대전신대, 부산장신대, 서울장신대[19].
기독일보(2022.09.06): 신학교육부 7개신학대학교구조조정위원회가 "각 7개 신학대학원의 입학정원을 매년 4%, 향후 3년에 걸쳐 총 12% 정도를 감축"하는 안을 청원하기로 함[20].
크리스천투데이(2025.09.24): 제110회 총회에서 7개 신학대 통폐합을 두고 토론한 뒤 "총대들은 토론 후 '1년 더 연구' 의견을 선택했다". 규칙부장은 통폐합에 앞서 각 학교 정관을 고쳐야 하는데 "호남신대만 반영했다"고 말함[21].
2026년 9월 제111회 총회에서 이 안건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찾지 못함.
관련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직할(학교의 말)[15]. 학교 쪽에는 '통합'이라는 말이 붙어 있지 않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라고만 적는다[15].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교육이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와 하나님나라의 구현", 교육목표 "경건의 훈련, 학문의 연마, 복음의 실천"[16]. '장신신학의 정체성' 자료에 역사적 성명서로 "본교의 목적과 신경(1920년)", "신학성명(1985년)", "신학교육성명서(2003년)", "신학성명(2015년)"이 실려 있다[17]. 성명서 본문(PDF)은 열지 못함.
(나) 바깥의 평가: 이번에 연 자료에서는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마포삼열(초대 교장), 라부열(제2대 교장), 남궁혁(1925년 첫 한국인 교수), 박형룡(1928년 임시 교수, 제6대와 제8대 교장), 한경직(1951년 부산 피난 교사에서 가르친 교수로 이름이 나옴), 계일승, 이종성(학장)[13][14][18]. 졸업생으로 길선주, 이기풍 등 첫 졸업생 7명과 3·1운동 민족대표 양전백, 유여대, 김병조, 길선주[13].
한국 교회와의 관계(나라 밖 교류): 1960년 교사 신축은 "미국 연합장로회 선교부의 후원"[14]. 그 밖의 교류 현황 쪽은 열지 않음.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첫 졸업식 날짜가 학교 누리집 안에서 다르다. 약사는 1907년 6월 20일[13], 연혁은 1907.06.10[14].
1901년의 날짜: 연혁은 "1901. 봄"[14], 역대 교장 쪽은 "1901.05.01"[18],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총신대학교 항목은 "1901년 5월 15일"[8].
3·1운동 민족대표인 졸업생 네 사람의 이름은 같으나, 3·1운동 때의 휴교 기간 등 세부는 연혁에만 있다[14].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중앙로 50(원천동)"1980년 11월 11일 개교한 합동신학교의 설립이념을 이어받아,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교육이념으로" 하는 학교
곳: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중앙로 50(원천동)[23]
한 줄 소개: "1980년 11월 11일 개교한 합동신학교의 설립이념을 이어받아,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교육이념으로" 하는 학교[22].
기원: 1980.11.11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을 이념으로 하여 … 서울시 강남구 반포동 271-45 소재 남서울교회에서 합동신학원을 개교하다". 11.18 "합동신학원 초대원장에 박윤선 박사가 취임하다"[23]. 누가, 왜 세웠는지(어느 교단, 어느 학교에서 나왔는지)는 연 쪽에 적혀 있지 않다[22][23].
190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와의 관계를 학교가 어떻게 말하는가: 연 쪽들에는 평양신학교를 말한 글이 없다. 역사는 1980년에서 시작한다[22][23].
현황:
과정: 입학안내 메뉴에 M.Div., M.A., M.T.S., Th.M., 박사가 있다[23].
2026학년도: 101명 모집에 123명 지원(1.22대 1), 충원율 96%[6].
2025년 공시: 입학정원 101명, 정원내 지원 86명, 정원내 입학 83명(경쟁률 0.85:1)[25].
통폐합 논의: 보도를 찾지 못함. (고신과 합신의 교단 통합 움직임을 적은 위키 문서가 검색 결과에 있었으나 그 쪽을 열지 않았다 확인필요.)
관련 교단: 연 쪽들(설립이념, 연혁, 신앙고백)에는 교단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22][23][24]. (보강)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총회 누리집의 「현교단통계」 쪽은 "총회 인준신학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라고 적는다[43]. 곧 총회 쪽 자료로는 직영이 아니라 인준 신학교다. 이사 구성은 확인하지 못했다.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신앙고백 9개 조. 제1조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임을 믿는다." 제9조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가장 잘 표현된 전통적 개혁신앙이 성경의 교훈에 충실한 것으로 믿는다."[24] 설립이념은 "'바른 신학'이란 칼빈주의 신학(혹은 개혁주의 신학)을 의미하며 성경의 객관적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롬 11:36)을 높이는 신학"[22].
(나) 바깥의 평가: 이번에 연 자료에서는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박윤선(초대 원장, 1985년 명예교장), 신복윤(제2대 교장, 제5대 학장), 김명혁(제3대 교장), 윤영탁(제4대 교장), 박형용(제6대 총장), 오덕교, 성주진, 조병수, 정창균, 김학유(역대 총장)[23]. 1989년부터 '정암신학강좌'를 연다[23].
한국 교회와의 관계(나라 밖 교류): 2015~2016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프랑스 존 칼빈 신학교를 비롯하여" MOU, 2018.11 미국 퓨리탄 리폼드신학대학원, 2019.5 네덜란드 아펠도른신학교와 MOU[23].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처음 이름이 학교 누리집 안에서 다르다. 설립이념 쪽은 "1980년 11월 11일 개교한 합동신학교"[22], 연혁은 "합동신학원을 개교"[23].
세운 배경(총신에서 나온 교수들 등)은 학교 누리집에서 글자로 보지 못함.
교단과의 공식 관계, 교수 수, 재학생 수.
2023년 2월 뒤의 연혁은 누리집에 없다.
출처: [6] [22] [23] [24] [25] [43]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Hanshin University · 신학대학원은 서울캠퍼스, 서울특별시 강북구 인수봉로 159. 대학 본교는 경기도 오산시 한신대길 137"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명실상부한 목회자양성 교육기관"
곳: 신학대학원은 서울캠퍼스, 서울특별시 강북구 인수봉로 159. 대학 본교는 경기도 오산시 한신대길 137[27].
한 줄 소개: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명실상부한 목회자양성 교육기관"[28].
1957.04 서울 수유리에 캠퍼스를 조성하고 이전[27]. (대학 연혁은 "1958 서울캠퍼스(수유리) 시대 개막"[26].)
1980.03 종합화에 따라 교명을 "한신대학"으로 변경, 1980.11 특수대학원으로 "신학대학원" 신설 인가. 1992.04 "한신대학교"로 변경[27].
2001.07 "신학전문대학원" 신설 인가(석사 100명, 박사 25명). 2008.03 "신학전문대학원에서 신학대학원(특수대학원; 석사 95명 정원)으로 체제 전환"[27].
2017.03 신학석사(M.Div.-야간) 과정 신설. 2020.02 일반대학원 신학석사, 박사과정, 목회학박사과정을 서울캠퍼스로 옮겨 "신학교육 일원화". 2022.12 온라인 신학일반 석사과정(M.T.S.)을 "신학분야 최초로 교육부 승인". 2025.09 김희헌 신학대학원장 취임[27].
190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와의 관계를 학교가 어떻게 말하는가: 연 쪽들에는 평양신학교를 말한 글이 없다. 학교는 "1940년 한국 최초의 신학대학으로 개교"했다고 적는다[26].
현황:
과정: "신학석사(M.Div.)과정[주간/야간], 신학일반석사(M.T.S.)과정, 에큐메니칼(Th.M.)과정"[28]. 학교는 M.Div.를 '신학석사'라고 부른다[28].
2026학년도: 75명 모집에 92명 지원(1.23대 1). 2021년도에는 0.85대 1이었고, 지원자는 5년 사이 64명에서 92명으로 늘었다[6].
총회와의 관계를 보여 주는 최근 일: 한신대 총장 강성영이 한국기독교장로회 제110회 총회에서 인준을 받았다는 보도(대학저널. 기사 날짜는 쪽에서 읽지 못함)[29].
통폐합 논의: 보도를 찾지 못함.
관련 교단: 한국기독교장로회. 학교는 M.Div.를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목사를 양성하기 위한 전통적인 목사후보생 교육과정"이라고 적는다[28]. 총회가 신학대학원 건축과 장학을 위해 2002년(제87회)과 2011년(제96회)에 "100분의 1 헌금"을 결의했다고 연혁에 적는다[27].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교육이념 "진리, 자유, 사랑".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학문과 교육을 지향하는 자유의 이념". 교육목표 첫째 "성서와 개혁교회 전통으로부터 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목사후보생을 훈련시킨다". 교육과정 설명에 "세계 신학의 조류를 선도하고 한국 사회의 개혁과 교회의 발전에 이바지해 온 기장성과 한신성"[28]. 대학 연혁의 제목은 "진보대학이 걸어온 신념의 길, 한신의 역사"[26].
(나) 바깥의 평가: 이번에 연 자료에서는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김대현(1939년 헌금으로 재단 구성)[26]. 연혁에 '장공도서관', '장공관', '만우기념관', '장준하 통일관'이라는 건물 이름이 나온다[26][27]. 이 이름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연 쪽에 풀이가 없다 확인필요. 최근 신학대학원장으로 연규홍, 김주한, 전철, 김희헌[27].
한국 교회와의 관계(나라 밖 교류): 2012.09 에큐메니칼석사과정(Studies in Ecumenism and Social Transformation) 신설[27]. 2019 팔레스타인 베들레헴대학교와 협약[26].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정규대학이 된 해가 학교 누리집 안에서 다르다. 신학대학원 연혁은 "1947. 07 정규대학 인가"[27], 대학 연혁은 "1948 정규대학 승인"[26].
수유리로 옮긴 해도 다르다. 신학대학원 연혁은 1957.04[27], 대학 연혁은 1958[26].
총장의 대수: 대학 연혁은 2021년 "제20대 총장 강성영 박사 취임"[26], 대학저널 기사는 "제9대 총장"[29].
신입생 충원율(2026)과 2025년 공시 숫자, 교수 수, 재학생 수.
김재준 등 초기 교수의 이름은 이번에 연 학교 쪽에는 나오지 않는다.
출처: [6] [26] [27] [28] [29]
감리교신학대학교Methodist Theological University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독립문로 56(냉천동 31)학교 스스로의 말로 "대한민국 최초의 신학교". 신학전공의 첫 목표는 "감리교회를 섬기는 전문직 교역자 양성"
곳: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독립문로 56(냉천동 31)[30]
한 줄 소개: 학교 스스로의 말로 "대한민국 최초의 신학교"[30]. 신학전공의 첫 목표는 "감리교회를 섬기는 전문직 교역자 양성"[32].
기원: "1887. 09. 미감리교 한국선교회(미감리회 1888년 연회보고서)가 한국인 목회자 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한국 학생들에게 신학교육을 최초로 실시하다"[31].
역사[31]:
1893.08 아펜젤러가 배재대학 학교장과 신학부장으로 겸임 발령됨. 1899 신학부가 신학회(Theological Association)로 발전. 1901 "신학회의 일원인 김창식과 김기범이 한국 최초의 목사 안수를 받다".
190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와의 관계: 해당 없음(감리교). 다만 '가장 먼저'라는 말은 눈여겨볼 만하다. 감신은 1887년을 들어 "대한민국 최초의 신학교"라고 하고[30], 한신은 "1940년 한국 최초의 신학대학"이라고 한다[26].
현황:
목회학석사는 '웨슬리신학대학원'에 있다. 2년 과정(감리교신학대학교, 목원대학교, 협성대학교 학부에서 신학을 전공한 사람), 3년 과정, 토요집중수업 3년 과정이 있고, "졸업 후 기독교대한감리회 수련목회자 선발고시에 응시할 수 있습니다"[34]. 따로 '대학원'에는 Ph.D., MTS, MA 과정이 있다(대학원 소개 쪽, mId=455)[34].
통폐합(보도): "기독교대한감리회는 2021년 제34회 총회 입법의회에서 감신대·목원대·협성대 3개 신대원을 통합해 '웨슬리신학대학원'을 운영한다는 임시조치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단일 통합은 학교와 교단 구성원 사이 이견 속에 기한 내 성사되지 못했고, 지난해 10월 임시조치법이 폐기되면서 현재는 3개교가 각각 '웨슬리신학대학원' 명칭으로 공동학위제·공동강의 등을 통해 통합 운영하는 체제로 알려져 있다." "'대학알리미'에서는 감신·목원·협성의 기존 신학대학원이 폐교 조치된 것으로 확인", "감신대 웨슬리신학대학원의 학생정원(218명→416명)·재학생(160명→319명)이 한 해 만에 배 가까이 증가"(아이굿뉴스 2026.09.05. '지난해'는 2025년)[6].
관련 교단: 기독교대한감리회. 학교 쪽에는 '직영'이라는 말은 없고, "감리교회를 섬기는 전문직 교역자 양성"[32], 졸업 뒤 기독교대한감리회 수련목회자 선발고시 응시[34], 1969년 "교단 위탁 과정으로 선교대학원을 설치"[31]라고 적는다. 법인은 "학교법인 감리교신학원"[31].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교육이념 "경건, 학문, 실천". 교육목표에 "성서적 체험적 신앙의 양육", "기독교 에큐메니칼 전통의 확립", "전통문화와의 간학문적 대화", "종파, 인종, 계층, 성을 초월한 평화와 생명의 구현"[32]. 신학지침은 "우리 신학은 성서와 존 웨슬리의 체험적 신앙에 입각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에 대한 찬양과 감사에서 출발한다", 성서 해석에 "여러 가지 유익한 비평 방법들을 수용한다", "사도신경은 물론이요 니케아, 칼케돈, 아타나시우스 신조 등을 비롯한 에큐메니칼 신조들을 우리의 교정적 지침으로 삼는다", "복음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과 … 다른 이념과 종교를 신봉하는 이웃들과의 대화를 할 책임을 갖는다"고 적는다[33].
(나) 바깥의 평가: 이번에 연 자료에서는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아펜젤러(1893년 신학부장), 김창식과 김기범(1901년 목사 안수), 하디(1913년 협성신학교 교장), 홍현설(1959년 초대 학장), 윤성범(제2대 학장), 변선환(제6대 학장)[31].
한국 교회와의 관계(나라 밖 교류): 빅토리아대학교(토론토), 케냐감리교대학교, 일본 관서학원대학교(2010), 브라질 상파울루 감리교대학교(2014)와 협정[30].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학교 누리집 안의 연도 표기가 엇갈린다. 메뉴와 본문은 "1887", 그 쪽의 큰 제목은 "1877 ~ 1999", 그 아래에는 "122년 대한민국 최초의 신학교"라고 적혀 있다[31].
연혁의 1931.12.14 줄은 "교명을 감리교신학대학교로 개칭하고 전문학교령에 준하여 4년제 남녀공학을 실시"라고 적혀 있고, 바로 다음 1932.04 줄은 "교명을 감리교(회)신학교로 개명"이라고 적혀 있다[31]. 1931년 줄의 이름은 잘못 적힌 것으로 보이나 판정하지 않는다.
2025년 10월의 임시조치법 폐기는 아이굿뉴스 기사 한 곳에서만 보았다. 교단 공식 자료로는 확인하지 못함.
교수 수, 재학생 수의 학교 공시.
출처: [6] [30] [31] [32] [33] [34]
서울신학대학교SEOUL THEOLOGICAL UNIV. ·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호현로 489번길 52"웨슬리안 복음주의 성결운동의 전통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헌법에 입각하여 기독교 사역자 및 전문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
곳: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호현로 489번길 52[35]
한 줄 소개: "웨슬리안 복음주의 성결운동의 전통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헌법에 입각하여 기독교 사역자 및 전문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36].
기원: 1911.03.13 "성서학원 개교(서울 무교동에서) 제1대 원장 존 토마스씨 취임"[35]. 누가 세웠는지(동양선교회 등)는 연혁 쪽에 적혀 있지 않다[35].
역사[35]:
1921.04 충정로로 교사 신축 이전. 1930 제5대 원장 이명직 목사 취임.
1940.05.31 "경성신학교로 개칭(구제 전문학교령에 의한 4년제) 제1대 교장에 이명직 목사 취임".
1943.12.29 "일제의 탄압으로 교단 해체 및 폐교당함". 1945.11.20 "조국 광복으로 개교, 서울신학교로 개칭".
1950.06.28 "제2대 교장 이건 목사 및 교수 다수 납북당함".
1959.02.26 "서울신학대학으로 인가(신학과 정원 200명)". 1974.09.25 경기도 부천시로 교사 신축 이전.
관련 교단: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건학이념과 신앙선언문이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헌법",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교리"를 바탕으로 한다고 적는다[36][37]. 직영인지, 이사 구성이 어떤지는 연 쪽에서 읽지 못함.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신앙선언문 머리말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웨슬리안 복음주의 성결운동의 전통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교리 및 우리의 신앙 양심에 따라". 항목은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형상과 죄인, 중생과 성결, 신유와 재림, 교회, 하나님 나라. '중생과 성결' 항목은 "거듭난 자는 성령세례와 충만케 하시는 능력으로 성결 곧 완전한 사랑 가운데 살 수 있으며"라고 적는다[37].
(나) 바깥의 평가: 이번에 연 자료에서는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존 토마스(제1대 원장), 어네스트 길보른(제3대 원장), 이명직(원장, 교장, 초대 학장), 이건(제2대 교장, 납북), 에드윈 길보른(제2대 학장), 조종남(제3~6대 학장, 제9대 학장)[35].
한국 교회와의 관계(나라 밖 교류): Azusa Pacific University의 Haggard School of Theology(2003), Alan Walker College of Evangelism(2001), Providence College and Seminary(1996) 등과 자매결연[35].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처음 이름: 학교 연혁은 "성서학원"이라고만 적는다[35]. '경성성서학원'이라는 이름은 이번에 연 학교 쪽에는 없다.
누리집 연혁의 2005년 뒤 부분은 이번에 읽은 범위에 들어 있지 않다(쪽이 길어 2004년 줄부터 읽었다). 2024~2026년의 변화는 확인하지 못함.
기원: "1952년 제42회 교단 연차총회에서 … 세계가 요구하는 침례교 복음 사역자 양성을 목적으로 대전에 성경학원을 개설하기로 하고, 이듬해인 1953년 2월에 「침례회성경학원」으로 개원하여 원장에 나요한(John A. Abernathy) 선교사"[39]. 약사의 표는 이것을 "침례회성경학원(대한기독교침례회와 미국 남침례회 한국선교회 공동)"이라고 적는다[39].
관련 교단: 기독교한국침례회. 약사의 제목이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신학 교육기관 역사"이고, 1952년 교단 연차총회의 결정으로 세웠다고 적는다[39]. 약사는 "1950 (제40차 점촌총회) 미국 남침례교와 교단 제휴"도 적는다[39]. 누리집 관련 사이트에 미국 남침례교단의 신학교 6곳(Southern, Southwestern, New Orleans, Gateway, Midwestern, Southeastern)이 올라 있다[40].
신학 성향:
(가) 스스로 밝히는 말: 교훈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교육이념 "진리, 중생, 자유". 교육목표 "성경에 기초한 인재양성 혁신 대학"[41]. 신앙고백 쪽은 찾지 못함.
(나) 바깥의 평가: 이번에 연 자료에서는 찾지 못함.
알려진 사람: 나요한(John A. Abernathy, 초대 원장과 교장), 지대명(제3대 교장), 허긴(제5~7대 학장, 제9~10대 총장), 도한호(제11~12대 총장), 김장환(수도침례신학교 설립자. 2010년 명예철학박사), 피영민(제15대 총장)[40].
한국 교회와의 관계(나라 밖 교류): 미국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1982년 센터 설치 협약, 2025년 교류협약), 게이트웨이(옛 골든게이트), 미드웨스턴, 뉴올리언즈, 사우스이스턴 침례신학대학원과 교환협정[40]. 1981년 아세아침례신학대학교 한국 분원 설립[40].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
개교 날짜가 학교 누리집 안에서 다르다. 약사의 첫 문장은 "1953년 6월 1일 … '침례회성경학원'이라는 이름으로 개교", 같은 쪽의 표와 본문은 "1953.2.", "1953년 2월에 … 개원"[39]. 연혁은 "1953. 6. 1. 침례회 성경학원을 대전시 동구 중동에 설립(특수과 50명 입학)"[40].
'침례신학대학교'로 이름을 바꾼 때: 연혁은 1993.9.13 "교명 변경 승인"[40], 약사는 "1994년 3월 1일에 … 교명을 「침례신학대학교」로 변경"[39].
신학대학원 안내 쪽(gtheology.kbtus.ac.kr)은 열리지 않았다. 학위 과정의 공식 목록, 교수 수는 확인하지 못함.
출처: [6] [39] [40] [41]
이 묶음을 조사하며 알게 된 것
1. 평양 장로회신학교(1901)를 누가 잇는가: 각 학교의 말을 나란히
학교
그 학교(또는 그 교단 신문)가 적는 말
출처
장로회신학대학교
1901년 마포삼열의 신학반이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시초". 1940년의 (후)평양신학교 교장도 자기 학교의 제3대 교장으로 센다. "제35회 총회가 1948년 6월 서울 남산에서 개교한 장로회신학교를 평양에서의 신학교육을 계승한 학교로 인준". 1959년은 "합동측이 이탈하다".
[13][14]
총신대학교
(학교 누리집은 읽지 못함) 기독신문: "1901년 본교의 전신(前身)인 평양 조선예수교장로회 신학교", "1938~1948년까지 폐교를 경험했으나, 1948년 5월 서울 남산에서 재개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도 같은 줄거리로 적는다.
[8][9]
고려신학대학원
연 쪽에는 평양신학교를 말한 글이 없다. 역사는 1946년에서 시작한다. 박형룡이 1947년 제1대 교장이었다고 적는다.
[1]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연 쪽에는 평양신학교를 말한 글이 없다. 역사는 1980년에서 시작한다.
[22][23]
한신대학교
연 쪽에는 평양신학교를 말한 글이 없다. "1940년 한국 최초의 신학대학으로 개교". 1946년 남부총회가 총회직영신학교로 결의했다고 적는다.
[26][27]
장신과 총신은 1901년부터 1959년까지의 역사를 똑같이 자기 학교의 역사로 적는다. 1948년 남산의 장로회신학교, 1951년의 총회신학교, 교장 감부열과 박형룡이 두 쪽에 모두 나온다.
위키백과 총신대학교 항목은 두 학교의 주장을 함께 적으면서 둘 다 평양의 학교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쓴다[10]. 위키백과에서만 본 글이고 판정하지 않는다.
같은 사람 박형룡이 고려신학교의 제1대 교장(1947)[1], 남산 장로회신학교의 교장(장신은 제6대로 센다)[13], 총회신학교의 교장[14][10]으로 세 학교의 역사에 모두 나온다. 박윤선도 고려신학교 제2대 교장[1], 총신의 역대 총장 목록(위키백과)[10], 합동신학원 초대 원장[23]으로 세 학교에 나온다.
2. '가장 먼저'라는 말
감신: 1887년을 들어 "대한민국 최초의 신학교"[30][31].
한신: "1940년 한국 최초의 신학대학"[26].
장신: 1901년 신학반을 시초로 든다[13].
서울신대: 1911년 성서학원 개교. 2011년에 개교 100주년[35][38].
침신: 1953년[39].
판정하지 않고 나란히 적는다. '신학교'와 '신학대학'은 말이 다르다.
3. 교단과의 관계를 적는 말
"직영", "직할"이라는 말을 학교가 스스로 쓰는 곳: 고려신학대학원("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의 직영")[2], 장로회신학대학교("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직할하에서")[15].
교단 이름을 들어 목회자 양성기관이라고 적는 곳: 한신(한국기독교장로회)[28], 감신(기독교대한감리회 수련목회자 선발고시)[34], 서울신대(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헌법과 교리)[36][37], 침신(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신학 교육기관)[39].
같은 기사의 풀이: 2021년도와 견줄 수 있는 9개 신대원(감신, 합신 제외)의 지원자 합은 2,199명에서 2,143명으로 56명(2.5%) 줄었고, 입학정원 합은 1,741명에서 1,629명으로 112명(6.4%) 줄어 "평균 경쟁률만 1.26대 1에서 1.32대 1로 올라 보이는 구조"[6].
이 기사가 다룬 11개 학교에는 위 8곳 말고 백석대, 한세대 영산, 성결대가 들어 있다. 아이굿뉴스는 기사에서 백석대를 앞세워 다룬다[6]. 숫자의 원자료는 대학알리미라고 밝히나 원자료는 열지 못했다.
2025년 공시(김박사넷): 총신 정원 393, 정원내 지원 406, 입학 367[11]. 고신 정원 154, 지원 168, 입학 139[7]. 합신 정원 101, 지원 86, 입학 83[25].
5. 통폐합과 구조조정(보도와 학교 연혁에 나온 것만)
예장통합: 7개 신학대를 하나의 법인으로 묶는 안이 제102회 총회를 앞두고 보고됨[19]. 2022년 입학정원 3년간 12% 감축안[20]. 2025년 9월 제110회 총회는 통폐합을 "1년 더 연구"하기로 함[21].
감리교: 2021년 입법의회가 3개 신대원 통합 임시조치법을 통과시켰으나 기한 안에 이루지 못했고 2025년 10월 폐기. 지금은 3개교가 각각 '웨슬리신학대학원'이라는 이름을 씀[6].
침례교: 2006년 침례신학대학교와 수도침례신학교가 통합[40]. 2026년 4월 학부 5개 학과 모집중단[40].
고신, 합신, 기장, 성결교: 신학교 통폐합 보도를 찾지 못함.
7. 조사의 한계
총신대학교 공식 누리집은 한 쪽도 본문을 읽지 못했다. 총신 항목은 백과사전, 교단 신문, 위키백과, 입시 누리집의 주소 한 줄에 기대고 있다.
장신대의 신학성명 본문(PDF), 장신대 1961년 뒤의 연혁, 서울신대 2005년 뒤의 연혁, 침신대 신학대학원 안내 쪽은 열지 않았거나 열리지 않았다.
여덟 학교 모두 '바깥의 평가'를 출처와 함께 적을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보수', '진보' 같은 말은 학교나 백과사전이 스스로 쓴 경우에만 옮겼다(한신의 "진보대학", 위키백과의 "보수적인 장로교 교단").
교수 수, 재학생 수, 재정은 서울신대의 재적생 수(기준 연도가 분명하지 않음)와 김박사넷의 총신 재학생 수 말고는 찾지 못했다.
2026학년도 입시 숫자는 기사 한 편에 기대고 있다. 대학알리미 원자료와 맞추어 보지 못했다.
국민일보 기사[19]와 대학저널 기사[29]는 쪽에서 날짜를 읽지 못했다.
인가 기관(ATS 등)은 한국 학교에는 해당하지 않아 살피지 않았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기관평가인증은 한신대 연혁에만 나온다[26].
조사한 방법. 2026년 10월 12일에 웹 검색으로 찾은 쪽을 실제로 열어, 그 쪽에 글자로 나온 것만 적었습니다. 묶음마다 따로 조사했고, 출처 번호는 묶음이나 학교마다 따로 매겨져 있습니다. 출처는 모두 각 탭에 있습니다.
줄이지 않았습니다. 각 탭의 학교 칸은 조사 자료를 간추리지 않고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한눈에' 탭의 '눈에 띄는 점'과 '학교별 요약' 표만 정리자가 골라 묶고 줄여 적었습니다.
누리집을 읽지 못한 학교. 하버드 신학대학원, 스텔렌보스 대학교, 총신대학교는 공식 누리집이 열리지 않거나 글자가 읽히지 않아 다른 자료(인가 기관, 백과사전, 언론, 교단 신문)에 기댔습니다. 2026년 10월 12일에 브라우저로 다시 열어, 하버드는 사명 선언과 세운 까닭과 유니테리언과의 관계를, 스텔렌보스는 학부 소개와 협력 교회를, 총신은 신학대학원 첫 쪽의 글귀를, 합신은 총회와의 관계를 보탰습니다. 보탠 곳에는 '(보강)'이라고 적었습니다. 하버드와 스텔렌보스의 보강은 한 가지 방법으로만 읽은 것입니다. 총신의 건학이념과 연혁 쪽은 이번에도 읽지 못했습니다. 그 밖에도 열리지 않은 쪽이 학교마다 있으며, 각 묶음의 '조사의 한계'에 적었습니다.
인용문을 원문과 대조하지 못했습니다. 쪽을 읽어 주는 도구가 본문을 간추려 돌려주는 경우가 있어, 따옴표 안의 원문도 도구가 돌려준 글자입니다. 정리자가 학교 누리집에서 직접 다시 확인한 것은 세 가지뿐입니다.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가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교의 신학교가 되었다는 알림, 위트레흐트 신학대학의 이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새 총장 취임식 안내입니다.
바깥의 평가가 얇습니다. 신학 성향에 대한 제3자의 평가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신학 성향'은 주로 학교가 스스로 밝히는 말입니다. 학교가 스스로 하는 말과 실제 강의실의 모습은 다를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에 기댄 곳. 내력의 연도, 사람 이름, 일부 숫자는 위키백과에서만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그 자리마다 표시했습니다.
한국 학교의 입시 숫자. 2026학년도 숫자는 여덟 곳 모두 한 언론 기사(아이굿뉴스 2026년 9월 5일)가 대학알리미 공시를 분석한 것에서 왔고, 원자료와 대조하지 못했습니다.
자료끼리 어긋나는 곳. 세운 해, 학생 수, 이름이 바뀐 해처럼 자료마다 다른 것은 한쪽을 고르지 않고 양쪽을 적었습니다. 각 학교 칸의 '확인하지 못한 것, 자료마다 다른 것'에 있습니다.
고른 것은 정리자입니다. 마흔일곱 곳은 세계의 신학교를 대표하도록 뽑은 표본이 아닙니다.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인도, 중국어권의 학교는 거의 들어 있지 않고, 오순절 계통의 학교도 없습니다.
정리 2026-10-12. 학교의 사정은 빠르게 바뀝니다. 옮겨 쓰실 때는 각 학교의 공식 누리집을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