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침례교 역사신학자 토머스 네틀즈가 19세기 영국의 침례교 설교자 찰스 스펄전의 생애와 목회신학을 함께 다룬 두꺼운 평전입니다. 스펄전이 설교, 교회 운영, 전도, 자선, 논쟁, 고난의 모든 자리에서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따라 살았다는 것이 책의 줄기입니다. 책의 짜임과 장별 내용, 책에 대한 평가, 그리고 설교와의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정리 2026-10-11 · 한국어판 본문은 읽지 못함 · 한국어판 서지, 목차, 책 소개, 추천사는 예스24와 알라딘으로, 원서 서지는 출판사 누리집으로 확인 · 한국어 서평 두 편도 확인 · 장별 내용은 원서 출판사가 공개한 9장 견본과 미국의 한 교회 누리집에 올라 있는 원서 본문에서 머리말, 들어가는 말, 각 장의 첫머리와 절의 첫 부분, 맺음 부분을 읽어 확인(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은 아님) · 책에 대한 평가는 영어권 서평으로, 저자의 이력은 남침례신학교와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의 소식 글과 저자 인터뷰로 확인 · 자료로 확인하지 못한 내용은 [확인필요]로 표시함
계시된 진리목회신학칼과 삽내리막길 논쟁
한눈에
『스펄전 평전』(원제 Living by Revealed Truth: The Life and Pastoral Theology of Charles Haddon Spurgeon)은 미국 남침례신학교에서 역사신학을 가르친 토머스 네틀즈(톰 네틀즈)가 2013년에 낸 책이다. 원서 출판사는 저자가 이 책에 15년 넘게 매달렸다고 소개한다. 한국어판은 2016년 11월 부흥과개혁사에서 나왔고 부제는 "찰스 스펄전의 생애와 목회신학"이다. 1,056쪽의 양장본이다.
책은 열여덟 장이다. 앞의 세 장과 마지막 장은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시간의 차례를 따르고, 가운데 장들은 설교, 신학, 속죄, 교회 생활, 전도, 자선 사역, 책과 서평, 논쟁, 미국 침례교인과의 관계, 질병과 우울증 같은 주제별로 스펄전을 살핀다. 저자는 스펄전이 사역의 모든 면에서 잘 짜인 신학과 사람을 회심으로 이끌려는 뜻에 따라 움직였고, 그 둘을 다 성경에 계시된 진리에 맞는 것으로 여겼다는 점을 보이려 한다(원서 들어가는 말). 저자가 가장 많이 기댄 자료는 스펄전이 1865년부터 1892년까지 엮어 낸 월간지 《칼과 삽》이다.
제목이 나온 곳. 원제는 "계시된 진리로 살기"라는 뜻이다. 저자는 2013년 10월 남침례신학교 소식 글의 인터뷰에서, 스펄전이 신학의 원리에 따라 삶과 사역을 다스린 신학자로서 충분히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그가 한 일들에는 신학적인 까닭이 있었고 그래서 책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고 말했다. 9장의 마지막 문장도 스펄전의 전도와 권면과 경고가 모두 "계시된 진리로 살기로 한 목회자"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고 맺는다. 한 영어권 서평은 스펄전이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에서 한 마지막 설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계시된 진리를 알 수 있는 만큼 다 알기를 바란다고 한 말을 저자가 책의 실마리로 삼았다고 전한다.
책 정보
항목
내용
원제
Living by Revealed Truth: The Life and Pastoral Theology of Charles Haddon Spurgeon
저자
토머스 네틀즈(Thomas J. Nettles, 흔히 톰 네틀즈). 미국의 침례교 역사신학자. 1976년 1월부터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 미드아메리카 침례신학교,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남침례신학교(켄터키주 루이빌)에서 가르쳤다. 남침례신학교에서는 1997년부터 역사신학 교수로 있다가 38년의 교단 생활을 마치고 2014년 5월에 전임 교수직에서 은퇴했다(남침례신학교 소식 글). 열다섯 권의 책을 쓰거나 엮었고, 침례교의 성경관을 다룬 책과 침례교 역사 속의 칼빈주의를 다룬 책, 제임스 보이스의 전기가 알려져 있다.
원서
2013년 9월 20일 출간, 영국 크리스천 포커스(Christian Focus) 출판사의 멘토(Mentor) 임프린트, 양장본. 쪽수는 출판사 누리집에 700쪽으로, 서평 두 편에는 683쪽으로 적혀 있다. 서평들에 따르면 한 쪽을 두 단으로 짠 큰 판형이다.
한국어판
임원주·김재모 옮김, 부흥과개혁사, 2016년 11월 15일 출간, 양장본 1,056쪽. 부제 "찰스 스펄전의 생애와 목회신학". 옮긴이의 순서는 알라딘에는 임원주·김재모로, 예스24에는 김재모·임원주로 적혀 있다. 2026년 10월 현재 예스24에는 판매 중으로 나오고 알라딘 쪽에는 품절·절판 표시가 보인다.
평가
원서 출판사 누리집에 실린 한 추천평은 이 책을 2013년 최고의 책으로 꼽을 만하다고 했다. 남침례신학교 신학대학원장 그레고리 윌스는 2014년에 저자의 보이스 전기와 스펄전 전기를 "놀라운 성취"라고 평했다.
책의 열쇠 말
말
뜻
계시된 진리
하나님이 성경에 드러내 주신 진리. 저자는 스펄전이 설교, 교회 운영, 전도, 자선, 논쟁, 고난을 모두 이 진리에 맞추어 했다고 본다. 책의 원제에 들어 있는 말이다.
목회신학
목회의 일을 어떤 신학적 원리에 따라 하는지를 다루는 분야. 이 책은 스펄전의 생애를 따라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가 한 일마다 깔려 있던 신학을 정리하려 한다.
칼과 삽
스펄전이 1865년부터 1892년까지 엮어 낸 월간지(The Sword and the Trowel). 설교와 글, 서평, 교회와 기관의 소식, 개인 소식이 실렸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잡지를 연구의 중심 자료로 삼았다고 밝힌다.
은혜의 교리
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달려 있다는 가르침. 흔히 칼빈주의 5대 교리로 간추린다. 스펄전은 1861년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을 열 때 이 다섯 교리를 차례로 설교하게 했다(3장).
특수 침례교
그리스도의 속죄가 택하신 백성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칼빈주의 침례교. 저자는 스펄전이 교단으로나 신학으로나 1689년 신앙고백이 말하는 특수 침례교인으로 자신을 이해했다고 쓴다.
내리막길 논쟁
1887년 《칼과 삽》에 실린 "내리막길"이라는 글에서 시작된 논쟁. 스펄전은 침례교 연맹 안에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신학이 퍼지고 있다고 경고했고, 그해 10월 연맹에서 탈퇴했다(15장).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스펄전이 목회한 런던의 교회와 그 예배당.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가 커져서 새로 지은 예배당으로 1861년에 문을 열었다(3장).
책의 짜임
책은 부로 나뉘어 있지 않다. 한국어판은 추천사, 머리말, 들어가는 말 뒤에 열여덟 장이 이어진다. 원서는 머리말, 들어가는 말, 열여덟 장, 성경 찾아보기, 주제 찾아보기로 되어 있다. 한국어판에 찾아보기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아래 한국어 제목은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부흥과개혁사, 2016) 목차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영어 제목은 원서 본문을 올려 둔 미국의 한 교회 누리집의 차례에서 옮겼고, 9장의 제목은 원서 출판사가 공개한 견본으로도 확인했다.
구분
한국어판 제목
원서 제목
머리
추천사
(한국어판 목차에만 보임)
머리
머리말
Preface
머리
들어가는 말
Introduction
1장
출생에서 중생까지
Birth to New Birth
2장
복음 사역으로 부르심
Made for Gospel Ministry
3장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
The Metropolitan Tabernacle
4장
온전한 경륜의 선포
Preaching the Whole Counsel
5장
신학의 방법과 내용
Theological Method and Content
6장
그리스도의 화목 제사에 대한 교리
Spurgeon's Message of Christ's Atoning Sacrifice
7장
교회 생활과 예배
The Challenge of Church Life and the Governance of Worship
8장
복음은 전도다
The Gospel is Evangelism
9장
복음 전도자들과의 동역
Use of Evangelists
10장
자선 사역의 신학적 근거
Theological Foundations for a Benevolent Ministry
11장
경건서 저술에 대한 이론과 관점
Personal Theory and Preferences in the Production of Godly Literature
12장
옳고 그름과 진리에 대한 문헌
Literature about Right, Wrong, and Truth
13장
신학과 논쟁
Theology and Controversy
14장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Destroy or Be Destroyed
15장
내리막길 논쟁
The Downgrade Conflict
16장
스펄전과 미국의 침례주의자들
Spurgeon and Baptists in America
17장
질병과 고통과 우울증
Sickness, Suffering, Depression
18장
하나님 품으로
Conduct in the Face of Death
부록
(한국어판은 확인하지 못함)
Scripture Index · Subject Index
표시에 대하여. 이어지는 탭에서 [확인필요] 표시가 붙은 대목은 정리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부가 틀릴 수 있으니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 표시가 없는 대목은 서점의 책 소개나 목차, 백과사전, 기사처럼 실제로 열어 본 자료에 나온 내용입니다.
머리말, 들어가는 말, 1~3장: 태어남에서 런던의 큰 교회까지
책의 앞부분은 시간의 차례를 따른다. 스펄전의 어린 시절과 회심, 첫 설교와 런던 부임, 새 예배당을 짓기까지를 다룬다. 아래 내용은 원서 본문에서 확인한 것이며, 한국어판이 어떻게 옮겼는지는 대조하지 못했다.
머리말
저자는 어떤 자료로 이 책을 썼는지를 밝힌다. 중심 자료는 스펄전이 엮어 낸 월간지 《칼과 삽》이다. 1865년부터 1892년까지 달마다 쉰 쪽쯤 나왔고 언제나 스펄전이 편집자였다. 스펄전 자신도 이 잡지가 어떤 뜻에서는 자기의 자서전이 되었다고 썼다. 저자는 잡지의 서평란과 달마다 실린 짧은 소식란이 스펄전의 생애, 의견, 신학, 목회관을 이해하는 풍부한 자료라고 말한다.
그 밖에 아들 찰스가 모은 편지와 설교집을 썼다. 저자는 스펄전의 설교를 다 읽지는 못했으며 설교집의 각 권을 얼마씩 파고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앞선 전기들도 짚는다. 스펄전이 죽은 직후에 나온 홀든 파이크의 여섯 권짜리 전기, 내리막길 논쟁의 첫 연재 글을 쓴 로버트 쉰들러의 전기, 스펄전이 내보낸 전도자였던 풀러턴의 1920년 전기, 미국인 러셀 콘웰의 1892년 전기, 제자 칼라일의 1933년 전기를 든다. 모든, 델리모어, 드러먼드, 크루파의 전기와 이안 머리의 연구도 도움이 되었다고 적는다.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과 스펄전 대학에 있는 보관 문서는 직접 보지 못했다고 밝힌다. 그래도 구할 수 있는 일차 자료만으로 연구의 목표인 스펄전의 목회신학을 제시하기에 넉넉했다고 말한다.
들어가는 말
글은 1892년 2월 11일의 장례 행렬에서 시작한다. 행렬은 5마일에 이르렀고 수많은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길가에 섰다. 노우드 묘지에서 관 위에는 그의 회심 본문인 이사야 45장 22절이 펼쳐진 성경이 놓여 있었다.
같은 때 스펄전이 숨진 프랑스 멘톤(프랑스어 발음으로는 망통)에서도 추도 모임이 열렸다. 거기서 펠프스라는 사람은 스펄전의 힘의 비밀을 두 가지로 말했다. 하나는 그리스도를 전해 영혼을 얻는다는 한 가지 목표였고, 또 하나는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늘 먹고 사는 그 자신의 믿음이었다. 저자는 이 말이 스펄전을 움직인 힘을 가장 잘 짚었다고 본다.
저자는 책의 접근을 이렇게 밝힌다. 스펄전은 사역의 모든 면에서 잘 다듬어지고 분명하게 표현된 조직신학과 회심을 목표로 하는 사역에 이끌렸고, 둘 다 계시된 진리와 맞는 것으로 여겼다. 설교, 기관과 사업, 출판, 교회 생활에 대한 생각, 전도, 고난, 논쟁이 모두 성경에서 나온 진리의 체계에 대한 헌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스펄전이 교단으로나 신학으로나 1689년 신앙고백이 말하는 특수 침례교인으로 자신을 이해했다고 쓴다.
스펄전의 몸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도 미리 꺼낸다. 1856년 10월 19일 서리 가든 음악당 참사가 그의 마음에 우울을 박아 놓았고 그는 거기서 끝내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적는다. 병과 우울을 드러내 놓고 말한 것을 빌미로 그의 신학적 비판을 깎아내린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의 정신이 흐려졌다는 증거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스펄전이 사람은 사랑하되 사람을 가리는 제도와 오류는 미워했다고 그린다. 주교들은 사랑했으나 주교 제도는 미워했고,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품었으나 그 가르침의 특징은 해롭다고 보았다는 식이다. 그의 유머도 소개한다. 책방에서 누가 유아 세례를 다룬 책을 내밀며 "당신의 육체의 가시"라고 농을 하자, 스펄전은 그 구절을 끝까지 읽어 보라고, 곧 "나를 치는 사탄의 사자"라고 받아쳤다.
1장 출생에서 중생까지
스펄전은 1834년 6월 19일 에식스의 켈비던에서 태어났다. 열일곱 남매의 맏이였고 그 가운데 여덟만 어린 시절을 넘겼다. 가족은 그가 돌이 되기 전에 콜체스터로 옮겼다. 저자는 그가 비국교도 집안에서 난 것을 큰 영예로 여겼다고 쓴다.
어린 스펄전은 스탬본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며 어른들의 신학 토론을 듣고 청교도의 책을 접했다. 장의 한 절 제목이 "청교도의 공기를 마시며"다. 또래 아이가 없어 몸을 쓰는 일이 적은 생활이었다는 점도 적는다.
리처드 닐이라는 목사가 어린 스펄전을 두고 한 예언, 자녀가 회심하지 않으면 심판 날에 자녀를 거슬러 증언할 수밖에 없다고 기도한 어머니의 영향, 죄를 깨닫던 긴 과정을 차례로 다룬다.
회심은 콜체스터 아틸러리 스트리트의 원시 감리교 예배당에서 일어났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설교자가 "바라보라"는 말씀을 전했다. 저자는 스펄전이 이 일을 하나님의 뜻이 거스를 수 없게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했고, 평생 설교에서 이 경험을 은혜의 본보기로 되풀이해 들었다고 쓴다. 한 서평에 따르면 앞선 전기 작가 드러먼드가 스펄전이 기억한 회심 날짜를 의심했으나 네틀즈는 스펄전 자신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원서 37쪽).
회심 뒤 그는 성경을 읽다가 신약 성경이 보여 주는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신자의 침례를 행하지 않았으므로 어머니는 당황했다. 저자는 그를 이 길로 민 것이 계시된 진리에 꼼꼼히 순종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였다고 쓴다. 침례는 1850년 5월 아일럼에서 받았다.
장의 마지막 절 제목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저자는 회심 직후부터 드러나 평생 이어진 특징을 일곱 가지로 든다. 삶의 모든 일을 신학의 눈으로 풀이했다. 은혜의 교리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설교라는 일의 모든 면을 꼼꼼히 살폈다. 손에 닿는 모든 수단으로 전도했다. 병과 낙심에 빠지기 쉬웠다. 자기를 살피는 버릇이 있어 자기 경험을 여러 일의 잣대로 삼곤 했다. 당대의 자유주의 신학과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금석은 성경에 대한 헌신이었다고 덧붙인다. 한 서평은 이 일곱 가지가 책 전체의 뼈대가 되며 모두가 좋게만 그려지지는 않는다고 짚는다.
2장 복음 사역으로 부르심
회심한 스펄전은 섬길 기회마다 뛰어들었다. 뉴마켓에서 전도지를 돌렸고 일흔 사람을 정해 토요일마다 찾아갔다.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다가 평신도 설교자 모임에 들어갔다.
첫 설교는 1850년 가을 케임브리지에서 3마일 떨어진 테버셤에서 했다. 모임을 이끌던 제임스 빈터가 그곳에서 설교할 젊은이와 같이 가 주라고 보냈는데, 가 보니 설교할 사람이 스펄전 자신이었다. 1851년 10월에는 워터비치의 침례교 예배당에 갔다. 첫 주일의 청중은 열두 명이었다.
워터비치 시절 스테프니 대학의 교장 조지프 앵거스가 그를 눈여겨보았다. 정식 교육을 받으면 더 크게 쓰이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끝내 대학에 가지 않았다. 한 서평에 따르면 네틀즈는 이 결정을 하나님과 그분의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1853년 가을 런던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 윌리엄 올니가 그를 알게 되었다. 이 교회는 벤저민 키치, 존 길, 존 리폰이 목회한 교회다. 저자는 열아홉 살 청년이 다섯 해도 되기 전에 런던에서 가장 이름난 설교자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쓴다.
부임하자 사람들이 몰렸고 신문과 잡지의 조롱도 같이 커졌다. 스펄전은 1855년 3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신문의 비방에 마음 상하지 마시라고 했다. 첫 설교 날의 청중 가운데 있던 수재나 톰프슨과 결혼한 이야기도 이 장에 있다.
예배당이 좁아 큰 홀을 빌려 예배했다. 1856년 10월 19일 서리 가든 음악당의 첫 저녁 예배에서 갑자기 소동이 일어 사람들이 문으로 몰렸고, 일곱 사람이 죽고 스물여덟 사람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갔다. 스펄전은 10월 31일에야 자기 교회 강단으로 돌아왔다. 저자는 이 참사 뒤로 비판이 더 거세졌다고 쓴다.
1857년 10월 7일에는 인도의 세포이 항쟁을 계기로 정한 금식과 기도의 날에 수정궁에서 설교했다. 음악당에서는 1856년 11월 23일부터 1859년 12월 11일까지 아침 예배를 드렸다.
3장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
교회는 더 큰 예배당을 짓기로 하고 뉴잉턴에 터를 마련했다. 1859년 8월 16일 머릿돌을 놓았다. 그날 207년에 이르는 교회의 역사와 역대 목회자들을 소개하는 글이 낭독되었다. 박해받던 초기에 이 교회는 집에서 집으로 옮겨 다니며 몰래 모였다.
저자는 이름이 동네 이름인 "뉴 파크 스트리트"에서 "메트로폴리탄"(수도의)으로 바뀐 데서 스펄전의 뜻을 읽는다. 런던 온 도시를 복음으로 에워싸겠다는 사명 의식이라는 것이다.
예배당은 1861년에 문을 열었다. 여는 행사의 하나로 4월 11일 오후에 은혜의 교리 다섯 가지를 하나씩 맡은 설교들이 이어졌고, 그에 앞서 스펄전은 이 가르침 전체를 힘주어 변호했다. 그러면서도 칼빈주의자와 복음적인 아르미니우스주의자는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예배당은 아침 일곱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쉬지 않고 쓰였다. 여섯 해 만에 손을 보아야 해서, 1867년 3월 24일부터 4월 21일까지 다섯 주 동안은 이즐링턴의 농업 전시관에서 예배했다.
저자는 1861년에 예배당을 연 스펄전이 1885년쯤 도시와 교회들의 도덕과 신학이 기울어 가는 것을 보며 지게 될 마음의 짐을 그때는 내다볼 수 없었다고 덧붙여, 뒤의 논쟁 장들을 미리 가리킨다.
4~9장: 설교, 신학, 교회, 전도
여기서부터 책은 주제별로 바뀐다. 스펄전이 어떻게 설교했고 무엇을 믿었으며, 교회를 어떻게 꾸리고 전도를 어떻게 했는지를 차례로 다룬다.
4장 온전한 경륜의 선포
저자는 스펄전이 자기의 은사와 부르심이 복음 선포에 있음을 무엇보다 잘 알았다고 쓴다. 스펄전은 목회자 대학 지원자들에게 할 수만 있다면 목사가 되지 말라고 조언했다. 다른 길을 갈 수 없을 만큼 부르심이 분명한 사람만 그 길에 서야 한다는 뜻이다.
설교는 인쇄되어 더 멀리 퍼졌다. 스펄전은 인쇄된 설교의 독자를 "내 회중의 바깥 고리"라고 불렀고, 그 수가 직접 듣는 사람보다 훨씬 많음을 알았다.
전달 방식도 다룬다. 스펄전은 설교자가 까닭 없이 거슬리는 몸짓이나 꾸민 목소리로 전하는 말의 진지함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보았고, 학생들에게 전달법을 꽤 많이 가르쳤다.
저자는 스펄전이 강해 설교자였는지를 묻는다. 처음 인쇄된 설교에서 그는 앞뒤 문맥은 다루지 않고 본문의 말을 표어로 삼겠다고 했으므로 그것만 보면 의심할 만하다고 인정한 뒤, 그의 설교 전체를 살핀다. 이어 강해 설교는 곧 교리 설교라는 절이 온다. 스펄전에게는 교리의 내용이 설교의 첫째 목적이었다.
남이 만든 설교 개요집을 사서 쓰는 풍조에 대한 스펄전의 평, 듣는 사람과 때에 맞는 주제를 고르되 청중의 비위를 맞추려고 교리를 깎아서는 안 된다는 권면이 이어진다.
저자는 스펄전에게 설교가 십자가의 연장이었다고 정리한다. 십자가와 부활은 세대마다 되풀이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 그 영광을 세대마다 드러내신다고 스펄전은 믿었다. 예배당을 채우는 가장 좋고 오래가는 길은 복음을 자연스럽고 단순하고 흥미롭고 진지하게 전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로 장을 맺는다.
5장 신학의 방법과 내용
저자는 스펄전을 무엇보다 "목회자이자 신학자"로 부른다. 스펄전은 성경의 계시를 빼고 이성만으로 하나님을 논하는 자연 종교가 아무 데로도 이끌지 못한다고 보았고, 변증하는 자리에서도 복음을 온전히 내놓지 않는 것은 부르심을 저버리는 일로 여겼다.
그의 신학은 오직 성경에서 나온 신학이었다. 성경 전체를 하나로 묶는 틀은 언약 신학이었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가르침이 모든 참된 신학의 뿌리에 있다고 말했다.
신학의 체계에 대한 태도도 다룬다. 스펄전은 웨슬리파와 칼빈주의자 사이에 함께 가진 교리가 많다고 보았다. 그러나 칼빈주의가 전도를 꺼리는 극단으로 흐르고 웨슬리파가 사람의 힘을 믿는 쪽으로 오그라들 때는 둘 다 허물어야 한다고 했다.
"역사적 오해"라는 절에서 저자는 앞선 연구자들과 맞선다. 전기 작가 크루파와 역사가 언더우드는 스펄전의 입에 칼빈주의의 옛 말투는 남았으나 그 본뜻은 빠져나갔고, 그가 칼빈주의의 요구와 전도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했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 평가를 오해로 다룬다.
스펄전이 진리를 간추린 방식이 소개된다. 주일학교 교사들에게는 파멸, 구속, 중생의 세 가지를 꼭 가르치라고 했고, 더 나은 간추림은 칼빈주의의 다섯 교리에 있다고 했다.
이어 교리별로 살핀다. 어린아이도 타락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 중생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가 한순간에 이루시는 일이라는 것, 사람의 책임을 설명하려고 타고난 능력이 없는 것과 마음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갈라 본 것, 구원의 확신, 그리고 지옥에 대한 설교다. 조건적 불멸을 주장한 에드워드 화이트는 지난 스무 해 동안 자기 교리가 퍼지는 것을 스펄전만큼 막은 사람이 없다고 불평했고, 스펄전은 더 큰 걸림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6장 그리스도의 화목 제사에 대한 교리
저자는 스펄전의 설교와 사역이 십자가를 빼고는 이해될 수 없다고 쓴다. 스펄전은 모든 좋은 것이 십자가의 둘레 안에 있다고 말했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세계 역사의 돌쩌귀라고 불렀다.
십자가가 중심인 까닭을 네 가지로 든다. 성경 전체가 십자가를 전제로 하나로 엮인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람의 부패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 준다. 죄인은 십자가로 구원에 이끌린다. 십자가는 성경의 교리들을 하나로 잇는 고리다.
속죄를 이해하는 열쇠로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라는 고백을 든다. 스펄전은 속죄가 우리를 대신한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힌 것이라는 두 가지를 떼어 놓을 수 없고 양보할 수도 없는 것으로 보았다.
속죄가 택하신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교리도 다룬다. 스펄전이 런던에서 목회를 시작한 1854년에 미국의 주석가 앨버트 반스는 그런 교리는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글을 썼다. 설교자의 힘을 묶고 마음을 식힌다는 까닭이었다. 저자는 스펄전이 이와 반대로 그 교리를 깊이 묵상했고, 전도자에게는 확실함을 주고 죄인에게는 소망을 주는 힘으로 삼았다고 쓴다.
7장 교회 생활과 예배
저자는 스펄전이 큰 교회의 수많은 일을 지고 이른 죽음에 이르렀으며, 헌신된 직분자와 조력자들이 없었다면 그만큼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쓴다.
스펄전은 교회를 바깥의 어떤 기구에도 기대지 않는 온전한 가정으로 보았다. 교회에는 목사와 장로들과 집사들이 있고, 교회 위에 총회나 주교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교인이 되는 일의 무게, 달마다 해마다 보고된 통계가 소개된다. 1873년 2월의 보고에 따르면 1872년 한 해에 359명이 교회에 더해졌다. 스펄전은 영혼이 구원받는다면 붙들어 두기보다 다른 교회로 보내는 편이 낫다고 했다. 교회가 이미 충분히 컸기 때문이다.
거룩한 삶과 가정 예배를 강조한 것, 예배마다 앞서 기도회를 연 것, 회중 모두가 부르는 찬송을 지키려 한 것이 이어진다. 스펄전은 찬송을 이끄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당신의 노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고 일렀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곡이 가장 좋다고 했다.
주의 만찬에서는 침례받지 않은 신자에게도 자리를 열어 두었다. 스펄전은 침례 직후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주의 상에 나아갈 때는 다른 사람의 그런 차이를 잊어야 한다고 적었다. 저자는 이것이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문제였다고 쓴다.
교회 개척도 교회 생활의 한 부분으로 다룬다. 1874년 타버나클의 회중은 서비턴에 새 침례교 예배당을 열었다. 장은 눈에 띄지 않게 사람들을 예배에 데려오던 한 교인의 이야기로 맺으며, 교회의 모든 짜임과 직분과 예배가 그런 그리스도인을 길러 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정리한다.
8장 복음은 전도다
저자는 스펄전의 전도가 그의 신학에서 나왔다고 본다. 하나님이 영원한 뜻대로 구원하신다는 확신이 전도를 막지 않았다. 속죄가 꼭 있어야 했다면 그것을 전하는 일도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 스펄전의 논리였다.
교인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다룬다. 스펄전은 1888년 학생들에게 교인을 받을 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믿는다는 고백에는 거룩한 삶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믿으라는 부름은 지금 당장의 것이지만 사람이 믿음에 이르는 길은 길게 이어질 때가 많다는 점을 스펄전이 함께 붙들었다고 설명한다. 어느 한쪽만 보면 그의 전도를 비뚤게 그리게 된다고 한다.
스펄전 자신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도한 모습, 청교도의 전도 설교를 닮은 그의 설교, 전도를 위해 쓴 작은 책들, 회중을 영혼을 얻는 사람들로 훈련한 일, 해마다 2월쯤 타버나클에서 연 특별 집회를 차례로 다룬다.
내리막길 논쟁 때 교리 다툼에 쓸 힘을 전도에 쓰라는 말이 나오자 스펄전은 전할 복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전도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저자는 이것을 전도가 신학을 따른다는 말로 간추린다.
스펄전은 런던이 교회보다 빨리 자란다고 보고 1881년에 복음이 필요한 지역을 알려 달라고 청했다. 큰 방 하나와 뜻이 맞는 몇 사람이면 교회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9장 복음 전도자들과의 동역
이 장은 원서 출판사가 견본으로 공개한 장이다(원서 317~338쪽). 저자는 스펄전이 진리에 대한 사랑과 영혼에 대한 사랑이라는 두 열정을 하나로 묶으려 했다고 쓴다. 영혼을 얻으려는 마음 없이 차갑게 진리만 내놓는 설교도, 진리를 줄여 결단을 짜내는 전도도 그는 싫어했다.
스펄전은 무디와의 우정에 힘입어 전도자의 직분이 귀하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1877년부터 목회자 대학을 통해 전도자들을 후원했다. 처음 두 사람은 클라크와 맨턴 스미스였다. 스미스는 노래하고 코넷을 불었으며, 스펄전은 그에게 시편 구절을 새긴 은 나팔을 선물했다. 클라크는 건강이 나빠져 1879년에 호주의 교회로 갔고, 그 뒤로 풀러턴과 스미스가 짝을 이루어 다녔다.
두 전도자가 브리스틀에 갔을 때의 보고가 실려 있다. 점잖은 교인들은 전도자라는 이름과 코넷 소리를 걱정했으나, 집회는 선정적이지도 천하지도 않았고 까다로운 사람들의 편견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1879년 리즈에서는 한 주 내내 삼천에서 오천으로 헤아린 사람들이 밤마다 모였다.
스펄전은 집회 보고가 부풀려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진리의 일이 진리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도움받을 수는 없다고 썼고, 부풀리기 좋아하는 형제들에게 터무니없이 큰 구스베리 이야기는 신문에 맡기고 이웃에게 참말을 하라고 했다.
무디와 생키에 대한 태도도 다룬다. 스펄전은 1873년 스코틀랜드 집회 때부터 두 사람을 지지했고, 1875년에는 런던에서 무디를 위해 설교했다. 두 사람을 분파주의자라고 욕한 국교회의 태도를 "한심한 편협함"이라고 불렀다. 망설이는 교인들에게는 그 일에 맞서는 거의 모든 반대의 밑바닥에 불신앙이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조심해야 할 것을 말했다. 스펄전은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리라는 권유가 주 예수를 믿으라는 복음의 명령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쓰는 신조와 상담실에서 쓰는 신조가 달라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선택과 대속의 제사와 성령의 일하심을 믿으면서도 부흥을 일으키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의 마지막 절은 "조심스러운 맺음"이다. 스펄전은 집회 뒤에 따로 두는 상담실이 늘 있어야 하는 순서로 굳어지는 것을 걱정했다. 그 방에 가야만 얻을 것이 있다는 생각이 생기면 옛 제단과 고해소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경고했다.
10~12장: 자선 사역과 책
스펄전이 세우고 이끈 기관들과, 책을 쓰고 평하고 퍼뜨린 일을 다룬다.
10장 자선 사역의 신학적 근거
저자는 스펄전의 사역이 끝없이 넓어진 까닭이 그의 신학에 있다고 쓴다. 스펄전은 자선의 일이 믿음의 설교와 발을 맞추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온전히 자라지 못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산모를 돕는 여성 모임이 한 해에 이백 명쯤을 도왔다는 보고와 함께 한 말이다.
저자는 2013년 인터뷰에서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에 예순여섯 가지에 이르는 자선 사역이 있었고, 스펄전에게는 그 모두에 신학적 바탕이 있었다고 말했다(남침례신학교 소식 글).
목회자들의 가난을 다룬 절이 있다. 스펄전은 가난을 견디는 동료 목회자들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넉넉히 살면서 목회자를 궁핍하게 두는 교인들을 꾸짖었다.
목회자 대학을 길게 다룬다. 스펄전은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 복음의 사역자라고 믿었고, 참된 사역자는 주께서 고르시고 은사를 주신다고 보았다. 첫 학생이자 한동안 하나뿐인 학생은 메드허스트였다. 스펄전보다 넉 달 어린 사람으로 런던에서 밧줄 만드는 일을 배우던 청년이었다. 대학은 타버나클 아래의 어두운 방들을 쓰다가, 1871년부터 스펄전이 따로 건물을 짓자고 호소했다.
스톡웰 고아원은 1866년 힐야드 부인이라는 낯선 사람이 아버지 없는 소년들을 위한 고아원을 세우라고 2만 파운드를 내놓겠다는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그 돈이 법적인 문제로 묶여 있음이 드러나자 다른 사람들이 헌금했고 터를 살 3천 파운드가 모였다. 스펄전은 1871년부터 여자아이들을 위한 고아원도 준비했다.
책을 지고 다니며 파는 서적 행상인 사역도 다룬다. 이 사역은 복음적인 가르침이 닿지 않는 시골에서 좋은 책을 팔아 전도의 길을 여는 일로 소개된다.
마지막 절은 이 기관들을 먹여 살리는 걱정을 다룬다. 스펄전은 처음에 조지 뮬러의 "믿고 보라"는 모금 방식을 본받으려 했으나 나중에는 뮬러와 생각을 달리했다. 그는 기도하는 만큼 자주 헌금을 청했다. 저자는 이 짐이 그의 마음에 준 영향을 17장에서 더 다룬다고 예고한다.
11장 경건서 저술에 대한 이론과 관점
스펄전은 소년들에게 팔리는 거친 읽을거리를 개탄했고, 모든 나이의 사람을 위한 경건한 책을 권하고 펴내는 데 힘쓰기로 했다. 쓸모없고 해로운 책은 경고하고 덕을 세우는 책은 권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설교단에 서기 전부터 언젠가 자기 설교가 인쇄되리라고 생각했다. 집사이자 출판업자인 조지프 패스모어가 동업자 앨러배스터와 함께 그의 글을 펴냈다. 저자는 스펄전이 글 쓰는 데 드는 수고를 독자에게 자주 알렸다고 쓰고,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많은 학문을 꼼꼼히 살필 수 있음을 보이려는 뜻이 있었으리라고 본다.
아내의 책 기금을 다룬다. 1875년 7월 《칼과 삽》에 스펄전은 아픈 아내가 가난한 침례교 목회자 백 명에게 자기 책 한 권씩을 보내고 싶어 한다고 알렸다. 이것이 가난한 목회자들에게 책을 보내는 기금의 시작이었다.
서평에 대한 절에서 스펄전은 잡지의 서평을 자기가 다 쓰지는 않는다고 밝힌다. 대부분은 직접 쓰고 모두 책임지지만, 출판사가 "스펄전 씨가 말하기를" 하고 끌어 쓰는 것이 늘 참말은 아니라고 했다.
소설과 시, 과학과 탐험 같은 일반 교양서, 어린이 책, 전기에 대한 그의 평이 이어진다. 그는 속임수 같은 책 제목을 싫어했다. 전기에 대해서는 사건만 모아 놓고 풀이가 없는 책을 벽돌 더미와 저택을 가리지 못하는 것에 견주었다. 한 서평은 시에 대한 스펄전의 평이 무척 우스꽝스럽다고 전한다.
장은 크롬웰 전기에 대한 평으로 맺는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주권과 언약과 은혜와 예정과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돌아와야 영국이 다시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리라고 썼다.
12장 옳고 그름과 진리에 대한 문헌
저자는 스펄전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읽은 책이 옳고 그름, 참과 거짓에 대한 생각을 빚는 책이었다고 쓴다. 자기 영혼과 독자의 영적 안녕이 거기 달려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사회의 도덕을 높이려는 책을 반겼다. 일찍이 자기를 조롱했던 국교회 성직자 윌버포스가 불신앙과 음란과 술에 맞서 쓴 책도 기꺼이 추천했다.
신앙을 변호하는 학문적인 책도 찾았으나, 그런 변증이 불신앙을 실제로 꺾으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바른 교리와 깊은 영성이 함께 있는 책을 가장 좋아했다. 그는 메마르고 영적이지 못한 학문에서 건져 달라고 썼다.
주석에 대한 절에서는 스펄전의 주석 안내서가 목회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신학적 오류가 든 책을 경고하는 일도 파수꾼인 자기의 부르심으로 여겼다.
마지막 절은 인쇄된 설교가 퍼져 나간 이야기다. 배 위에서 선장이 주일마다 선원들에게 스펄전의 설교를 읽어 주어 한 사람이 회심한 일이 나온다. 장을 맺는 일화에서는 런던에서 한 설교가 미국 신문에 실리고, 그 신문지가 호주에서 소포를 싸는 데 쓰여 영국으로 돌아와, 죽어 가던 한 여인이 그 조각을 읽고 구원에 이른다.
13~18장: 논쟁, 고난, 죽음, 그리고 책에 대한 평가
책의 뒷부분은 스펄전이 치른 논쟁들, 미국 침례교인들과의 관계, 오랜 병과 우울, 마지막 날들을 다룬다. 이 책에 대한 평가도 여기에 모았다.
13장 신학과 논쟁
저자는 스펄전이 가장 힘을 쏟은 일이 죄인의 구원을 위한 복음 설교였고, 길고 복잡한 신학 논쟁은 그 첫사랑과 이어져 있었다고 쓴다. 스펄전에게 논쟁은 피할 수 없는 궂은일이었다. 잘못된 가르침을 알리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으나, 그냥 두는 것은 양들에게 안전하지 않았다.
그는 쉽게 성내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들이 불건전하다고 한다는 것만으로 어떤 생각을 물리치지 않았고 스스로 판단했다. 어떤 일탈은 저절로 사라지리라 여겨 모른 체했고, 어떤 차이는 좋은 마음으로 견뎠다.
작지만 그를 잘 보여 주는 다툼들이 이어진다. 《리불렛》이라는 시집을 둘러싼 초기의 논쟁, 런던의 설교자 조지프 파커와의 관계, 과학에 대한 태도, 여러 정기 간행물과의 실랑이, 플리머스 형제단에 대한 비판, 예언 해석, 전쟁에 대한 반대다. 과학에 대해서 스펄전은 과학과 과학자를 존중하면서도 과학자들이 내놓는 세계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쟁에 대해서는 교회가 전쟁을 남김없이 규탄해야 한다고 썼다.
한 서평은 이 장을 스펄전에게 목회신학이 있었다는 저자의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게 펼쳐진 곳으로 꼽는다. 이 서평에 따르면 스펄전은 전도의 열정 때문에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회심에 대한 열심에는 따뜻했고, 전도에 게으른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꾸짖었다.
장 끝의 "막간"에서 저자는 지금까지의 다툼은 짧은 경고로 넉넉했지만, 복음의 몸통을 도려내는 다른 싸움들은 끝까지 맞서야 했다고 쓰고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14장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저자는 스펄전이 양쪽의 적과 화해할 수 없었다고 쓴다. 로마 가톨릭과 영국 국교회의 보수주의는 복음을 자기 전통에 맞게 길들이거나 무너뜨렸고, 새로운 사상을 따르는 개신교의 자유주의는 웃는 얼굴로 복음을 죽였다는 것이다. 지금의 신자들이 이 적과 싸우지 않으면 주인께 불충한 것이라고 스펄전은 보았다.
로마 가톨릭과 국교회 고교회파가 저마다 참 교회라고 하는 주장을 스펄전은 터무니없다고 여겼다. 국교회에 대해서는 나라가 세운 교회라는 점을 겨누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을 사람으로서 깊이 존경했으나, 누구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머리 자리를 나눌 수 없다고 했다.
1864년 6월 5일의 설교에서 비롯된 논쟁이 여기 나온다. 물로 세례를 받으면 거듭난다는 국교회의 가르침을 겨눈 설교다. 스펄전은 이 설교 때문에 설교집 판매가 크게 줄 것을 각오했고, 출판사에 한 번에 시장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말했다.
셋째 절은 신학 안에서 자라난 합리주의를 다룬다. 장의 끝에서 저자는 한때 한 교회에 묶여 있지 못하고 온 나라를 돌던 사람이 이제는 눈앞의 맡은 일에 충실할 힘만을 구했다고 쓰고, 그러나 형제들을 벼랑에서 불러 돌이키려는 마지막 시도 없이는 양심이 쉴 수 없었다고 적어 다음 장의 논쟁으로 잇는다.
15장 내리막길 논쟁
저자는 먼저 스펄전이 사람의 취향이나 사소한 차이로 교단을 싸움에 끌어들일 사람이 아니었다고 쓴다. 그는 침례교 연맹에서 인기가 높았고 연맹 모임에서 설교를 자주 맡았다.
1887년 3월 《칼과 삽》에 "내리막길"이라는 글이 실렸다. 글쓴이 로버트 쉰들러는 여러 비국교도 교단이 바른 교리에서 이단으로 흘러간 역사를 더듬었다. 스펄전은 이 글에 주를 달아 우리는 목이 부러질 듯한 속도로 내리막을 가고 있다고 썼다.
스펄전은 1887년 10월 연맹에서 탈퇴했다. 10월 28일 연맹 총무 부스에게 탈퇴한다는 편지를 보냈고, 다시 생각해 달라고 사람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했다. 11월 호에는 우리는 당장 그리고 분명하게 침례교 연맹에서 물러난다고 알렸다.
1888년 1월 연맹 평의회가 보낸 조정단이 스펄전을 만났다. 한 주 뒤 평의회는 스펄전이 교리가 느슨해졌다는 비판을 하면서 당사자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는 까닭으로 사실상 그를 견책하는 결의를 했다. 스펄전은 끝내 개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저자는 평의회에 존 클리퍼드가 있었던 것이 한 까닭이었다고 쓰며, 두 사람이 서로 아끼는 사이였음을 적는다.
1888년 4월 23일 연맹 총회는 신앙의 바탕을 밝히는 글을 채택했으나, 스펄전이 보기에 그 글은 일부러 모호하게 쓰여 서로 반대되는 두 뜻으로 읽힐 수 있었다. 그는 총회를 앞두고 우리는 희망 없이 쓴다고 적었다.
저자는 이 논쟁을 뒷사람들이 어떻게 풀이했는지도 다룬다. 1933년의 전기 작가 칼라일은 침례교인이 권위 있는 신조를 오래 싫어해 왔다며 스펄전의 요구를 못마땅해했다. 저자는 한 세기 사분의 일이 지난 눈으로 보면 스펄전의 말이 참되고 부풀림이 없었다고 판단한다. 스펄전은 진리를 부인하는 사람들과 겉으로 하나인 척하느니 지도자의 자리를 잃는 쪽을 택했고 실제로 잃었다고 저자는 쓴다. 한 서평은 저자가 이 대목에서 교회가 신앙고백을 더 분명히 붙드는 쪽을 넌지시 권한다고 읽었다.
16장 스펄전과 미국의 침례주의자들
장은 1892년 1월 31일에서 시작한다. 그날 스펄전이 프랑스 남쪽에서 죽었고, 같은 날 미국 남침례신학교의 배질 맨리 2세도 루이빌에서 죽었다. 저자는 침례교 세계가 가장 뛰어난 두 일꾼을 한날에 잃었다고 쓴다.
남침례신학교를 세운 제임스 보이스가 1888년 여름 건강 때문에 유럽에 갔다가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에서 스펄전의 설교를 들은 이야기가 나온다. 스펄전은 통풍으로 앉아서 설교했다. 보이스는 만남 뒤에 눈물을 글썽이며 저 사람에 견주면 자기는 이룬 것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미국 침례교 신문과 인물들의 평이 이어진다. 1857년 텍사스의 한 침례교 신문 통신원은 그의 표현력을 칭찬하면서도 지나침과 자기 과시가 있다고 했다. 브라운 대학교 총장 프랜시스 웨일런드는 반대로 스펄전이 자기와 자기 평판을 누구보다 잊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미국 남부의 침례교인들이 한 가지 못마땅해한 것은 주의 만찬을 교인이 아닌 신자에게도 여는 스펄전의 관행이었다. 그것 말고는 거의 모든 신학적 문제에서 그와 뜻을 같이했고 그를 크게 우러렀다고 저자는 쓴다. 장은 미국의 침례교 설교자 B. H. 캐럴이 스펄전의 죽음을 두고 한 추도의 말로 맺는다.
17장 질병과 고통과 우울증
저자는 스펄전의 믿음과 건강을 서른다섯 해 넘게 시험한 긴장을 다룬다. 비서 해럴드는 스펄전이 서른다섯 살 때부터 아프거나 요양하느라 강단을 비운 때가 전체의 삼분의 일이었다고 헤아렸다.
스펄전은 스물두 살이던 1856년 1월에 이미 하나님이 병과 고난과 마음의 침체로 자기 백성을 가르치신다고 설교했다. 저자는 그가 고난을 늘 겪기 훨씬 전에 고난의 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고 쓴다.
서리 가든 음악당 참사, 끊임없는 과로, 해마다 되풀이된 통증이 차례로 나온다. 1869년 가을 스펄전은 지나친 일의 압박이 몸보다 마음에 뿌리를 둔 탈을 냈다고 스스로 적었다. 몸이 약한 아들 토머스에 대한 걱정, 유난히 힘들었던 1878년과 1879년도 다룬다.
자선 기관들이 그의 마음의 힘을 닳게 했다는 점도 짚는다. 스펄전은 1870년에 벗들에게, 대학과 고아원에 필요한 것을 꾸준히 채워 주어 걱정에 빠질 틈을 없애 주는 것이 자기에게 베풀 가장 큰 친절이라고 썼다.
저자는 스펄전의 오랜 고통이 그의 생각과 마음의 탄력에 영향을 주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병 때문에 그가 사리를 가리지 못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하며, 반대자들이 그의 병을 이용한 것을 비판한다.
저자는 2013년 인터뷰에서 스펄전이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믿었기에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았고, 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로마서 8장 28절을 인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4년 인터뷰에서는 스펄전에게서 배운 것의 첫째로, 가장 깊은 시련 가운데서도 자기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절망하지 말라는 것을 들었다.
18장 하나님 품으로
1891년 5월 말 스펄전은 그때 돌던 독한 유행성 감기에 걸렸다. 세 주 만에 얼마쯤 나아 6월 7일 아침에 설교했다. 본문은 다윗이 전리품을 나눈 규례를 다룬 사무엘상 30장이었고, 그는 다윗의 군대에서 지쳐 뒤처진 사람들에게 마음을 썼다. 자기도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그 뒤 석 달 동안 그는 여러 번 죽음의 문턱에 섰다. 10월 26일 아내와 동생 부부, 비서와 집사 몇 사람과 함께 길을 떠났고, 기차를 기다리며 한 벗에게 이 싸움이 나를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10월 29일 멘톤에 닿았다.
여러 교파와 나라에서 그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저자는 이 기도의 물결에 깊이 움직인 스펄전이 다 나으리라고 지나치게 확신하는 잘못된 판단을 했을 수 있다고 쓴다. 저자가 스펄전을 높이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멘톤에서 그는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지냈다. 열다섯 해 동안 아내를 데려오고 싶어 했으나 그때까지는 그럴 수 없었다. 수재나는 주께서 석 달의 온전한 행복을 주셨다고 썼다. 1892년 1월 9일 그는 인쇄될 마지막 설교 원고를 고쳤다.
1월 20일 마지막 나들이 뒤로 자리에 누웠다. 그즈음 비서에게 내 일은 끝났다고 말했다. 1월 31일 오후에 의식을 잃었고 밤 11시 5분에 숨졌다.
멘톤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추도 예배가 있었고, 런던에서는 2월 11일 타버나클의 예배에 이어 장례가 치러졌다. 책은 무덤 앞에서 벗 아치볼드 브라운이 한 고별사로 끝난다.
책에 대한 추천과 좋은 평
말한 사람
내용
앨버트 몰러(남침례신학교 총장, 한국어판 추천사)
스펄전은 복음주의라는 산맥의 큰 산 같은 인물이며, 네틀즈가 그를 사람으로, 신학자로, 목회자로 드러내어 그의 신념과 목회신학의 한가운데로 이끈다고 했다.
데이비드 도커리(유니언 대학교 총장, 한국어판 추천사)
스펄전의 많은 저서와 목회 사역, 지도력과 고난을 살펴 "설교의 황태자"의 여러 면을 폭넓게 그렸고, 침례교 역사와 기독교 전기에 권위 있는 기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데이비드 베빙턴(스털링 대학교 역사학 교수, 한국어판 추천사)
저자가 스펄전을 깊은 존경으로 대하면서도 증거에 대한 판단은 매우 조심스럽다고 했다. 이 책의 특별한 점으로 월간지 《칼과 삽》을 새 자료의 샘으로 풍성하게 쓴 것을 꼽았다.
마이클 리브스(한국어판 추천사)
스펄전은 널리 알려졌으면서도 받아 마땅한 진지한 관심을 이제야 받기 시작했고, 네틀즈가 소홀히 다루어진 자료들을 캐내어 스펄전의 모습을 더 또렷하게 했다고 했다.
스티븐 위버(미국 켄터키주의 침례교 목사, 도서 서평 사이트 '북스 앳 어 글랜스', 2014년 5월)
이 책의 강점은 스펄전에게 영향을 준 것과 그가 신학적 확신을 목회에서 살아 낸 모습을 그린 신학적 전기라는 데 있다고 했다. 새 문서를 찾아낸 책은 아니며, 설교와 《칼과 삽》 같은 이미 출판된 일차 자료를 캐내어 스펄전의 생각을 조직신학처럼 정리했다고 평했다. 저자가 분석가의 자리에 앉지 않고 스펄전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는 점도 좋게 보았다.
제러미 워커(영국의 침례교 목사, 영국 신문 《에반젤리컬 타임스》, 2014년)
강점을 세 가지로 들었다. 저자가 스펄전을 아끼면서도 떠받들기만 하지는 않는다. 스펄전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 열여덟 장의 짜임 덕분에 스펄전을 설교자, 신학자, 전도자, 교사, 교회의 사람, 자선가, 논쟁가로 두루 보게 된다. 오늘의 복음주의가 스펄전을 쉽게 자기편으로 삼을 수 없음을 책이 보여 준다고도 했다.
조 김(복음주의 학술지 《테멜리오스》 39권 2호, 2014년)
스펄전에게 다듬어진 목회신학이 있었다는 대담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친다고 했다. 스펄전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전기이며 진지한 학자는 이 책과 씨름해야 한다고 평했다.
그레고리 윌스(남침례신학교 신학대학원장, 2014년 5월)
네틀즈의 은퇴를 알리는 학교 소식 글에서 그의 보이스 전기와 스펄전 전기를 "놀라운 성취"라고 했다.
조정의(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유평교회 담임목사. 크리스천투데이, 2026년 4월 17일)
한국어판을 읽고 쓴 서평이다. 기자 같은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정확한 사실을 전하려는 열정이 두드러진 전기라고 했다. 저자가 자기 의견을 많이 담지 않고, 스펄전 자신의 말과 글, 당시 사람들의 증언으로 사실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쓴다고 평했다. 읽고 얻은 교훈으로 하나님이 스펄전을 통해 베푸신 은혜, 귀하게 쓰인 만큼 병과 비방과 무거운 책임에 시달린 삶, 진리를 지키는 싸움의 고귀함을 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에 스펄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책에 대한 비판과 아쉬움
말한 사람
내용
조 김(《테멜리오스》, 2014년)
가벼운 비판을 내놓았다. 첫째, 스펄전의 결정을 좋게만 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스펄전이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을 하나님과 그분의 일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결론짓지만, 결정이란 보통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대학 교장과의 중요한 만남이 어긋난 일에 낙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 머리말에서 모든, 델리모어, 드러먼드, 크루파, 머리를 들면서도 최근에 활발해진 스펄전 연구와 깊이 대화하지는 않는다.
제러미 워커(《에반젤리컬 타임스》, 2014년)
이미 긴 책이지만 분석과 평가와 결론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곳이 있다고 했다. 저자의 목소리가 고르지 않아 논지의 실이 끊어질 듯한 곳이 있고, 필요 이상으로 자세한 곳이 있으며, 거슬리는 표현과 적지 않은 오류가 있어 다음 쇄에서 고쳐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조정의(크리스천투데이, 2026년 4월 17일)
비판은 아니지만 1,050쪽이 넘는 분량이 보통의 독자에게는 부담이 될 만하다고 적었다.
분량과 난이도(위버, 워커)
두 서평 모두 이 책이 스펄전 입문서로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위버는 가볍게 읽을 책이 아니라고 했고, 워커는 책의 크기 자체가 입문서로 쓰이는 것을 막는다고 했다.
자료의 한계(저자 자신의 말)
저자는 머리말에서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과 스펄전 대학의 보관 문서를 직접 보지 못했고 설교를 다 읽지는 못했다고 밝힌다.
한국어판을 읽은 사람들의 글
글쓴이
내용
조정의(크리스천투데이의 '크리스찬북뉴스' 서평, 2026년 4월 17일)
책의 짜임을 이렇게 간추렸다. 출생과 중생,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의 목회자가 되기까지를 빠르게 다룬 뒤, 설교와 신학, 그리스도의 화목 제사, 전도를 자세히 소개하고 평가한다. 이어 전도자들과의 동역, 자선 사역, 신앙 서적의 저술과 평가, 논쟁과 내리막길 논쟁, 미국 침례교인들과의 관계를 다루고, 질병과 고통과 우울증을 견디다가 하나님 품에 안긴 일과 장례 예배로 끝난다. 원서 본문에서 확인한 짜임과 같다.
독자 '나무지팡이'(네이버 블로그, 2019년 7월 2일)
한국어판을 조금씩 읽으며 적은 독서 메모의 첫 회로, 들어가는 말의 내용을 옮겼다. 멘톤의 추도 모임에서 펠프스가 스펄전의 능력의 비결을 두 가지로 답한 대목, 스펄전이 주교들은 사랑했지만 주교 제도는 미워했다는 대목, 오류는 미워하되 오류에 빠진 사람은 사랑한다는 스펄전의 말이 한국어판의 표현으로 적혀 있다. 이 쪽에서 원서로 확인한 들어가는 말의 내용과 맞는다.
설교와 이 책
김진영 담임목사는 2022년 4월 3일 주일설교 "이스보셋의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사무엘하 4장)에서 박사 과정 때 논문을 지도해 주신 교수님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를 왜 이 자리에 두셨는지를 알고 그 일에 충성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화였다. 이야기 끝에 목사님은 강단에서 책 한 권을 들어 보이시며, 몇 해 전에 그 교수님이 쓰신 책이 이 책이라고 하셨다. 설교노트는 그 책을 스펄전의 평전이라고 적고 있다.
설교에서 책 제목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교수님의 이름은 설교 영상의 자동 자막에 "탐내 로즈"로 들린다. 설교노트는 이것을 남침례신학교에서 가르치며 스펄전 평전을 쓴 톰 네틀즈 교수로 짐작하되 확정하지 않았다고 적어 두었다.
설교에 나온 내용. 목사님이 공부한 곳은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남침례신학교다. 그 학교의 신학대학원장이 다른 신학교의 총장으로 가면서 새 대학원장을 뽑게 되었다. 목사님이 지도 교수님을 찾아가 교수님이 적임자 같다고 하자, 교수님은 총장에게서 이미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답하셨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는 연구하고 책을 쓰는 것이며, 자신은 칼빈주의 전통에 서 있는 침례교인으로서 연구와 저술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신학교와 교회와 교인들이 복음의 기초 위에 서도록 돕는 것이 사명인데, 대학원장이 되면 행정에 매여 그 일을 하지 못한다는 까닭이었다. 총장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교수의 이름과 책은 추정이다. 자막의 "탐내 로즈"를 톰 네틀즈로, 강단에서 들어 보이신 책을 이 평전으로 본 것이며 확정할 수는 없다. 설교에서 책 제목과 저자 이름은 분명히 나오지 않았다.
학교와 때는 맞는다. 설교노트에 따르면 목사님이 공부한 곳은 루이빌의 남침례신학교다. 네틀즈는 1997년부터 2014년 5월까지 이 학교의 역사신학 교수였다(남침례신학교 소식 글).
스펄전 평전을 쓴 교수라는 점이 맞는다. 네틀즈는 2013년에 스펄전의 평전을 냈고 한국어판은 2016년에 나왔다. 설교는 2022년 4월의 것이므로 "몇 해 전에 쓰신 책"이라는 말과 어긋나지 않는다. 목사님이 드신 책이 원서인지 한국어판인지는 설교노트에 나오지 않는다.
칼빈주의 전통의 침례교인이라는 점이 맞는다. 남침례신학교의 소식 글은 네틀즈가 침례교 역사 속의 칼빈주의에 관한 중요한 책을 썼다고 적고, 그의 책 『By His Grace and for His Glory』가 침례교인이 종교개혁의 신학적 상속자임을 밝힌 책이라고 소개한다. 2014년 인터뷰에서 묻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남침례교 안의 칼빈주의 회복에서 중요한 구실을 주셨다고 말했다. 제자인 매슈 배럿은 칼빈주의가 인기를 얻기 훨씬 전부터 그가 은혜의 교리를 알렸다고 썼다.
연구와 저술을 사명으로 여겼다는 점과 어울리는 기록이 있다. 네틀즈는 2014년 인터뷰에서 자기 글의 대부분이 깊이 느낀 확신과 필요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침례교의 성경관을 다룬 책은 성경의 무오성이 침례교의 오랜 확신이었는지를 묻는 데서, 칼빈주의를 다룬 책은 자기의 신학적 확신에 공감한 사람이 침례교 역사에 있었는지를 찾는 데서 나왔다고 했다. 그는 열다섯 권의 책을 쓰거나 엮었다. 설교에 나온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복음의 기초 위에 서도록"이라는 말과 결이 같다.
대학원장이 다른 신학교의 총장으로 간 일이 실제로 있었다. 남침례신학교의 신학대학원장이던 대니얼 에이킨이 2004년 1월 15일 사우스이스턴 침례신학교의 총장으로 뽑혔고, 러셀 무어가 2004년부터 그 뒤를 이었다(남침례신학교 소식 글 두 편). 설교의 줄거리와 어울린다. 다만 목사님이 말씀하신 일이 이때의 일인지는 설교노트에 나오지 않으므로 확정할 수 없다.
네틀즈가 대학원장 자리를 제안받고 사양했다는 공개 기록은 찾지 못했다. 이 일화는 설교에서 목사님이 직접 들은 이야기로 전하신 것이다. 공개된 글에는 그가 2007년에 한 교회의 목회 자리를 거의 받아들일 뻔했으나 학교에 남았다는 이야기만 보인다.
이 책 안에도 같은 주제가 있다. 네틀즈는 2014년 인터뷰에서 스펄전에게서 배운 것을 꼽으며, 스펄전이 자기의 부르심과 은사와 청지기로서 져야 할 책임을 뚜렷이 보았다고 말했다. 설교의 예화가 말하려던 것, 곧 하나님이 주신 자리와 사명을 알고 거기에 충성하는 삶과 통한다. 다만 목사님이 설교에서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시지는 않았다.
읽지 못함. 장별 내용은 원서 본문에서 확인한 것이며, 한국어판이 낱말과 문장을 어떻게 옮겼는지는 대조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어판의 문장을 인용 부호로 옮기지 않았다. 사람 이름과 땅 이름의 한글 표기도 한국어판의 표기와 다를 수 있다. 다만 한 독자의 블로그 메모에 옮겨진 한국어판 들어가는 말의 내용은 원서 본문과 맞았다.
원서의 출간일, 임프린트, 쪽수
원서 출판사 크리스천 포커스의 누리집으로 확인(2013년 9월 20일, 멘토, 양장본, 700쪽). 서평 두 편은 683쪽으로 적는다. 본문과 찾아보기를 어디까지 세었는지에 따른 차이로 보이나 확인하지 못했다.
원서의 장 제목
원서 본문을 올려 둔 미국의 한 교회 누리집의 차례로 확인. 9장의 제목은 출판사가 공개한 견본으로, 1장과 13장의 제목은 《테멜리오스》 서평으로도 확인.
장별 내용 가운데 표시 없이 적은 것
9장은 출판사가 공개한 견본(원서 317~338쪽)으로 확인. 나머지 장은 미국의 한 교회 누리집에 올라 있는 원서 본문에서 각 장의 첫머리, 절마다의 첫 부분, 맺음 부분과 찾아본 대목 몇 곳을 읽어 확인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은 아니므로 각 장의 가운데 부분에 있는 내용은 빠져 있을 수 있다. 그 누리집에 본문이 올라 있는 것이 출판사와 저자의 허락을 받은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함.
[확인필요]로 표시한 것
이번 정리에는 없다. 자료에서 글자로 확인하지 못한 내용은 싣지 않았다.
저자의 학력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의 2020년 소식 글은 네틀즈가 이 학교에서 1971년에 목회학 석사를, 1976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76년부터 1982년까지 교회사 교수진에 있었다고 적는다. 예스24와 알라딘 쪽의 한국어판 저자 소개는 그가 켄터키 루이빌의 남침례신학교에서 공부했다고 적어 서로 다르다. 저자 자신의 2014년 인터뷰도 사우스웨스턴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말하므로, 이 쪽에서는 한국어판 소개의 학력을 옮기지 않았다.
한국어 서평과 독후감
크리스천투데이에 실린 조정의 목사의 서평(2026년 4월 17일)과 네이버 블로그의 독서 메모 한 편(2019년 7월 2일)을 열어 확인. 예스24와 알라딘의 독자 평은 0건이었다. 그 밖의 교계 언론 서평은 찾지 못함.
영어권의 다른 서평
《에반젤리컬스 나우》의 서평은 앞부분만 열려 있어 싣지 않았다. 《복음주의 신학회지》에 실린 로버트 스트리븐스의 서평과 정통장로교회 잡지에 실린 앨런 폰티어의 서평은 출판사 누리집에 한두 문장이 인용되어 있을 뿐 전문을 열어 보지 못함.
설교에서 말한 교수가 톰 네틀즈인지, 들어 보이신 책이 이 평전인지
추정. 설교 자막에 "탐내 로즈"로 들린 이름을 네틀즈로 본 것이다. 남침례신학교의 교수였고, 스펄전 평전을 썼으며, 칼빈주의 전통의 침례교인이라는 세 가지 단서가 모두 맞지만 확정할 수는 없다.
네틀즈가 신학대학원장 자리를 제안받고 사양했다는 일
공개된 글에서는 확인하지 못함. 설교에서 목사님이 지도 교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 전하신 것이다.
대학원장이 다른 신학교의 총장으로 간 일
남침례신학교의 신학대학원장 대니얼 에이킨이 2004년 1월 사우스이스턴 침례신학교 총장이 된 일은 그 학교 소식 글로 확인. 설교의 일화가 이때의 일인지는 확인하지 못함. 설교노트에 적힌 것 이상으로 목사님의 재학 시기를 짐작하지 않았다.
읽는 분께. 이 글은 책을 읽고 쓴 독후 정리가 아니라, 공개된 자료로 책의 짜임을 잡고 알려진 내용을 덧붙인 안내입니다. 설교나 교재에 옮기실 때는 반드시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