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성경 교사 브루스 윌킨슨이 역대상 4장 9-10절에 나오는 야베스의 짧은 기도를 네 가지 간구로 나누어 풀이한 작은 책입니다. 책의 짜임과 장별 내용, 이 책을 두고 미국과 한국에서 나온 지지와 비판, 저자의 그 뒤 이야기, 그리고 설교와의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목사님의 풀이와 책의 풀이가 같은 점과 다른 점도 나란히 적었습니다.
정리 2026-10-12 · 책 본문은 읽지 못함 · 한국어판 서지, 목차, 책 소개, 발췌문은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디모데 출판사 누리집으로, 원서 1장은 미국 의회도서관에 실린 출판사 제공 견본 본문으로, 나머지 장의 내용과 평가는 영어권 서평과 교계 언론 기사, 한국 교계 언론 기사와 독자의 글로 확인 · 성경 본문은 대한성서공회 누리집으로 확인 · 자료로 확인하지 못한 내용은 [확인필요]로 표시함
역대상 4:9-10네 가지 간구지경을 넓히시고번영 신학 논쟁
한눈에
『야베스의 기도』(원제 The Prayer of Jabez: Breaking Through to the Blessed Life)는 미국의 복음주의 성경 교사 브루스 윌킨슨이 2000년 미국 오리건주의 멀트노마(Multnomah) 출판사에서 낸 책이다. 원서 부제는 "복된 삶으로 뚫고 들어가기"라는 뜻이다. 한국어판은 2001년 2월 25일 디모데에서 마영례의 번역으로 나왔고 부제는 "내 삶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의 원리"다. 원서는 손바닥만 한 93쪽짜리 양장본이고 한국어판은 144쪽이다.
책이 다루는 성경 본문은 유다 지파의 긴 족보 한가운데에 놓인 두 절뿐이다. 저자는 야베스의 기도를 네 가지 간구로 나눈다. 복을 주시고,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도우시고, 환난(악)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책은 일곱 장으로 되어 있고, 2장부터 5장까지가 이 네 간구를 하나씩 풀이한다. 저자는 신학교 마지막 학년에 이 기도를 처음 드린 뒤 삼십 년 동안 날마다 드렸다고 하며, 독자에게도 이 기도를 날마다 드리라고 권한다.
책은 미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려 2001년의 가장 큰 출판 사건으로 꼽혔고 한국에서도 널리 읽혔다. 그만큼 논쟁도 컸다. 기도의 자리로 사람들을 불러낸 책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물질의 복을 약속하는 번영 신학과 닮았다는 비판, 한 구절을 주문처럼 되풀이하게 한다는 비판, 본문의 뜻을 넘어서 읽었다는 비판이 미국과 한국의 교계 양쪽에서 나왔다. 저자가 그 뒤 아프리카에서 벌인 큰 사역이 2005년에 좌절된 일도 이 책과 함께 이야기된다. 아래에 지지와 비판을 표로 나란히 실었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한 복이 있다. 책의 중심 주장이다.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40~41쪽 발췌문은 이렇게 쓴다. "당신이 하나님에게 복을 구하지 않으면 당신이 구할때에만 주어지는 복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저자는 이를 보이려고 천국에 간 사람이 창고에서 자기 이름이 적힌 흰 상자를 열어 보는 우화를 든다. 상자 안에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기 원하셨으나 그가 한 번도 구하지 않은 복들이 들어 있었다(한국어판 38~40쪽). 비판하는 서평 여럿이 이 우화를 문제 삼았다.
책 정보
항목
내용
원제
The Prayer of Jabez: Breaking Through to the Blessed Life. 출판사의 '돌파(BreakThrough)' 총서 첫째 권이다.
저자
브루스 H. 윌킨슨(Bruce H. Wilkinson). 미국 뉴저지주 출신의 복음주의 설교자이자 성경 교사. 달라스 신학교와 웨스턴 보수침례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1976년 스승 하워드 헨드릭스와 함께 성경 교육 단체 워크 스루 더 바이블(Walk Thru the Bible, 한국어판의 표기로는 WTB 선교회)을 세웠다. 한국어판의 저자 소개는 그가 신흠정역(NKJV) 성경의 개관 위원을 지냈고 여러 기독교 잡지의 발행인이었다고 적는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2002년 가족과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옮겨 '드림 포 아프리카'를 세웠고, 2013년에는 '티치 에브리 네이션(Teach Every Nation)'을 세웠다. 덴버 신학교의 서평은 서지에 이 책을 '데이비드 콥(David Kopp)의 도움을 받아' 쓴 것으로 적는다. 디자이어링 갓의 서평은 함께 쓴 사람의 이름이 처음에는 표지에 없었고 지금은 새 표지에 작은 글씨로 들어 있다고 적었다.
원서
2000년, 미국 오리건주 시스터스의 멀트노마 출판사. 양장, 93쪽(《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96쪽으로 적음). 출간 달은 자료마다 다르다. 출판 전문지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2000년 5월, 영어 위키백과의 저자 항목은 2000년 10월로 적는다.
한국어판
마영례 옮김, 디모데, 2001년 2월 25일 출간, 양장, 144쪽. 부제 "내 삶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의 원리". 예스24에는 전자책도 올라 있다. 성경 본문은 그때 널리 쓰던 개역한글판으로 실려 있다. 서점 세 곳의 검색에서는 2001년판 하나만 나오며 개정판은 찾지 못했다.
평가
《퍼블리셔스 위클리》(2002년 4월 1일)에 따르면 17개 언어로 920만 부가 팔렸고 《뉴욕 타임스》 실용서 분야 1위에 24주 동안 올랐다. 출판사는 처음에 3만 부쯤 팔릴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영어 위키백과는 첫해에 800만 부가 팔려 2001년에 가장 많이 팔린 비소설이었고, 2001년 복음주의기독교출판협회의 금메달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고 적는다. 디모데 출판사 누리집은 한국어판을 "발간 7개월만에 100만 성도를 감동시킨 베스트셀러1위"라고 소개한다. 코람데오닷컴의 한 필자는 자신이 빌려 읽은 책이 2002년에 찍은 153쇄였다고 적었다.
책의 열쇠 말
말
뜻
야베스
역대상 4장 9-10절에만 나오는 유다 지파의 인물. 부모와 형제의 이름도 행적도 나오지 않고 기도와 응답만 적혀 있다. 역대상 2장 55절에는 같은 이름의 땅이 나온다.
네 가지 간구
저자가 야베스의 기도를 나눈 틀. 복을 주시기를, 지경을 넓히시기를, 주의 손이 함께하시기를, 환난(악)에서 지켜 주시기를 구하는 넷이다. 책의 2장부터 5장이 하나씩 다룬다.
복에 복을 더하사
개역한글판의 표현. 히브리어에서 같은 말을 겹쳐 뜻을 세게 하는 표현이며 영어 신흠정역은 "참으로 복을 주시고(bless me indeed)"로 옮겼다. 개역개정판은 "복을 주시려거든"으로 옮겼다.
지경(地境)
땅의 경계, 영역. 개역개정판은 '지역'으로 옮겼다. 저자는 이것을 하나님을 위해 미치는 영향력과 책임과 기회로 넓혀 읽는다. 이 풀이가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주의 손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하심을 가리키는 구약의 표현. 저자는 사도행전 11장 21절의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와 이어서 읽는다.
번영 신학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재물과 건강과 성공을 주신다고 가르치는 흐름. 번영 복음이라고도 한다. 저자는 자기 책이 이것과 다르다고 여러 번 말했고, 비판하는 쪽은 책의 보기와 약속이 그쪽으로 기운다고 본다.
주문처럼 외우는 기도
뜻을 새기지 않고 정해진 말을 되풀이하면 효력이 난다고 여기는 기도. 비판하는 쪽은 예수님이 금하신 '중언부언'(마태복음 6:7)을 들어 이 책의 날마다 드리라는 권고를 문제 삼았다.
책의 짜임
책은 서문과 일곱 장으로 되어 있다. 1장이 들머리이고, 2장부터 5장이 네 간구를 하나씩 풀이하며, 6장은 9절의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를, 7장은 10절 끝의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를 다룬다. 장마다 본문의 한 구절이 작은 제목으로 붙어 있다.
아래 한국어 제목은 예스24와 디모데 출판사 누리집에 실린 한국어판(디모데, 2001) 차례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괄호 안의 숫자는 출판사 누리집에 적힌 시작 쪽이다. 원서 제목은 미국 의회도서관의 견본 본문(1장)과 영어권 서평 두 편에 적힌 것이다. 2장의 원서 제목은 서평에 따라 "So Why Not Ask?"와 "Why Not Ask?"로 조금 다르게 적혀 있다. 장에 붙은 구절은 한국어판을 요약한 독자의 글 두 편에서 확인했다.
장
한국어판 제목(시작 쪽)
원서 제목
장에 붙은 구절(개역한글)
머리
서문 (7)
Preface
1장
짧은 기도, 엄청난 상 (9)
Little Prayer, Giant Prize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2장
그렇다면 왜 구하지 않는가? (25)
So Why Not Ask?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3장
하나님을 위한 원대한 삶의 경험 (45)
Living Large for God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4장
위대한 접촉 (69)
The Touch of Greatness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5장
물려받은 것 안전하게 지키기 (95)
Keeping the Legacy Safe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6장
하나님의 존귀한 자의 명부에 오른 자 (117)
Welcome to God's Honor Roll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7장
야베스의 것을 나의 것으로 (133)
Making Jabez Mine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표시에 대하여. 이어지는 탭에서 [확인필요] 표시가 붙은 대목은 정리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부가 틀릴 수 있으니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 표시가 없는 대목은 서점의 책 소개나 목차, 백과사전, 기사처럼 실제로 열어 본 자료에 나온 내용입니다.
서문과 1~2장: 짧은 기도와 첫째 간구 "복에 복을 더하사"
저자가 이 기도를 만난 이야기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이 왜 옳은지를 말하는 부분이다. 쪽수 앞에 '한국어판'이라고 적은 것은 한국어판의 쪽이고, '원서'라고 적은 것은 영어권 서평이 적어 둔 원서의 쪽이다.
성경 본문과 번역
책이 다루는 본문은 역대상 4장 9-10절이다. 개역개정판은 이렇게 옮긴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한성서공회 누리집).
한국어판은 개역한글판을 쓴다.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11쪽의 본문은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다. 책 제목과 함께 널리 알려진 "복에 복을 더하사", "지경"이라는 말은 이 번역에서 왔다. 개역개정판에서는 이 말이 "복을 주시려거든", "지역"으로 바뀌었다.
원서는 영어 신흠정역(NKJV)을 쓴다. 이 번역에서는 기도의 끝이 "악에서 나를 지키사 내가 고통을 끼치지 않게 하소서"라는 뜻으로 되어 있다(미국 의회도서관의 견본 본문). 그래서 원서의 넷째 간구는 '악에서 지켜 주심'이고, 한국어판의 장 제목 아래에는 개역한글판의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가 붙어 있다. 덴버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 리처드 헤스는 이 끝 구절이 히브리어로 뜻을 정하기 어려워 '내가 고통을 끼치지 않게'와 '내가 고통을 겪지 않게'가 모두 가능하다고 적었다.
서문
디모데 출판사 누리집에 실린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담대한 기도는 어떻게 하는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 기도는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한 문장이고 성경 속에 잘 감추어져 있으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는 삶의 열쇠가 들어 있다고 한다. 이 기도가 자신이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과 날마다 경험하는 것을 바꾸어 놓았고, 이 기도의 진리를 적용하는 수많은 성도가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고 적는다.
영어 원문에서는 첫 문장이 "하나님이 언제나 응답하시는 담대한 기도"로 되어 있다(여러 서평이 옮긴 원서 7쪽). 한국어판 누리집의 문장에는 '언제나'에 해당하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와 '열쇠'라는 두 낱말은 뒤에 비판하는 쪽이 가장 자주 문제 삼은 표현이다.
1장 짧은 기도, 엄청난 상
노란 조리대가 있던 부엌. 저자의 이야기는 달라스 신학교 마지막 학년의 어느 봄날, 굵은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던 부엌에서 시작한다. 아내 달린과 함께 졸업 뒤의 길을 두고 기도하던 때였다. 그는 그 주에 신학교 교목 리처드 시움 박사에게서 들은 도전을 되새기고 있었다. 더 큰 꿈을 품고 싶으면 하나님을 위해 요구되는 것보다 조금 더 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미국 의회도서관에 실린 출판사 제공 견본 본문). 한국어판은 교목의 이름을 '리차드 슘'으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시움 박사가 설교 본문으로 삼은 것이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대상 4:9)였다. 저자는 야베스가 무엇을 했기에 남보다 뛰어났는지, 하나님이 왜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는지 궁금해서 다음 절을 읽었고, 조리대에 의자를 당겨 앉아 그 기도를 읽고 또 읽었다. 이튿날 아침 그 기도를 글자 그대로 드렸고, 그다음 날도 드렸으며,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멈추지 않았다고 쓴다(견본 본문).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그 해를 1972년으로 적는다.
족보 속에 숨은 사람. 저자는 역대상의 처음 아홉 장이 오백 개가 넘는 낯선 이름으로 채워진 족보여서 성경에서 가장 덜 읽히는 대목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4장에서 이름 마흔넷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이야기 하나가 튀어나온다. 족보를 적던 사람이 잠깐 멈추고 이 야베스라는 사람만은 꼭 알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견본 본문과 예스24의 책 소개).
저자는 야베스에 대해 성경이 알려 주는 것을 셋으로 간추린다. 아무도 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이 좋지 않은 형편에서 시작했다. 그가 흔치 않은 한 문장짜리 기도를 드렸다. 일이 놀랍도록 잘 끝났다. 그리고 그 결과가 그의 기도에서 왔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견본 본문).
저자는 달라스에서 9천 명에게 야베스의 복을 가르친 뒤 점심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한다. 한 사람은 십오 년 전 그의 설교를 듣고부터, 다른 사람은 십 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온 심장 전문의는 오 년 동안 이 기도를 드려 왔다고 했다. 저자는 자기는 살아온 날의 절반이 넘도록 드렸다고 답했다(견본 본문).
장의 끝에서 저자는 하나님께 아직 찾아가지 않은 복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독자 쪽에서 몇 가지 다짐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것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확신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강가에 서서 하루치 물 한 컵을 구하지 말고 강물에 뛰어들라는 비유로 장을 맺는다(견본 본문).
2장 그렇다면 왜 구하지 않는가?
이름의 짐. 저자는 히브리 말로 야베스가 '고통'을 뜻하며 글자대로는 '그가 고통을 불러온다'로 옮길 수 있다고 쓴다(가톨릭 변증 잡지의 서평이 옮긴 원서 20쪽, 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야베스는 이름이 뜻하는 어두운 징조에 굴하지 않고 길을 찾았다(한 독자의 요약).
[확인필요] 어머니가 겪은 고통이 무엇이었을지를 저자가 짐작해 보는 대목이 이 장에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아기는 누구나 아픔 속에 태어나니 유난한 난산이었을 수도 있고, 아이 아버지가 임신 중에 떠났거나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고, 집안 살림이 몹시 기울어 식구가 느는 것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는 식이다. 이번에 본 자료에서는 이 대목을 글자로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덴버 신학교의 리처드 헤스가 저자는 이 고통을 해산의 아픔으로만 보지 않고 더 넓은 수고와 괴로움으로 본다고 적은 것은 확인했다.
"복에 복을 더하사". 같은 말을 겹쳐 쓰는 히브리 표현은 느낌표를 다섯 개 붙이거나 굵은 글씨에 밑줄을 그은 것과 같다고 저자는 설명한다(한 독자의 요약).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33쪽에서 저자는 높은 성문 앞에 선 작은 야베스를 그려 본다. 슬픈 과거와 침울한 현재를 지고 꽉 막힌 앞날을 마주한 그가 두 팔을 들고 "아버지, 아버지! 제게 복을 주세요! 정말로 많이 복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부르짖었다는 것이다.
복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성경에서 말하는 복을 사람의 힘으로 얻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은혜라고 풀이한다(뉴스앤조이에 실린 한종호의 글과 한 독자의 요약이 함께 전함). 야베스는 그 복이 무엇이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받을지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다고 저자는 쓴다(미국의 종교 보도 비평지가 옮긴 2장의 문장). 저자 스스로 이것이 '말하고 요구하면 받는다'는 식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밝힌 대목도 이 장에 있다(디자이어링 갓의 서평이 적은 원서 23~24쪽).
저자는 묻는다. 하나님이 우리가 더 '이기적으로' 기도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닐까(여러 서평이 옮긴 원서 19쪽). 자기를 위해 복을 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생각을 뒤집으려는 물음이다. 그리고 복을 진심으로 구하면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삶이 기적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라고 말한다(서평이 옮긴 원서 24~25쪽).
천국 창고의 흰 상자. 한국어판 38~40쪽의 우화다. 존이라는 사람이 천국에 가서 베드로의 안내를 받다가 창문 없는 창고 같은 건물을 본다. 베드로는 안 보는 게 낫다고 말리지만 그는 끝내 들어간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선반이 차 있고 빨간 리본을 맨 흰 상자마다 이름이 적혀 있다. 그는 자기 이름이 적힌 상자를 찾아 연다. 그 안에는 그가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주기 원하셨던 많은 복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구하지 않았다(예스24의 발췌문). 영어 원서에서는 이 사람이 '존스 씨'다.
저자는 이어서 예수님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와 야고보의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 4:2)를 든다. 하나님의 선하심에는 끝이 없지만 어제 복을 구하지 않았다면 어제 받았어야 할 복을 다 받지 못한 셈이라고 말한다(한국어판 40~41쪽 발췌문).
복을 구하지 못하게 막는 생각도 다룬다. 내 이름처럼 나는 복 받을 사람이 못 된다는 생각, 복은 구하든 말든 정해진 대로 내린다는 생각, 하나님이 장부를 적고 계시니 요즘 많이 받았으면 조금만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제한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원이나 능력이나 주시려는 마음이 아니고 오직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두 편).
3~4장: 둘째 간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셋째 간구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가장 많이 비판받은 부분이다. 저자는 '지경'을 땅에서 영향력과 사역으로 옮겨 읽는다.
3장 하나님을 위한 원대한 삶의 경험
지경은 영향력이다.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46쪽은 이렇게 쓴다. 둘째 간구는 하나님께서 삶을 넓혀 주셔서 하나님을 위해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과 같다. 야베스의 간구에는 더 많은 땅을 바라는 것 이상이 들어 있었고,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더 많은 영향력과 책임과 기회를 원했다. 저자는 이 결론이 기도의 내용과 결과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저자는 야베스의 때를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지파마다 땅을 나누어 주던 무렵으로 본다. 야베스는 물려받은 땅의 경계를 둘러보고 나는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위해 태어났음이 분명하다고 결론짓고 지경을 넓혀 달라고 부르짖었다는 것이다(뉴스앤조이의 글이 옮긴 대목, 영어권 서평이 옮긴 원서 31쪽).
월 스트리트의 야베스. 한국어판 47~48쪽의 대목이다. "만일 야베스가 월 스트리트에서 일을 했더라면 그는 아마도 "하나님, 제가 투자한 주식의 가치를 올려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경영자들이 사업을 넓혀 달라고 기도해도 되느냐고 물으면 저자는 "물론이죠!"라고 답한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사업을 하기만 한다면 그렇다는 조건이 붙는다. 사업은 하나님이 맡기신 지경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과 세상에 영향을 미칠 기회로 받으라고 한다(예스24의 발췌문). 번영 신학과 닮았다는 비판이 가장 자주 든 문장이 이것이다.
저자가 권하는 기도는 이렇다. 주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 제게 더 많은 기회를 주시고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당신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게 하옵소서(한 독자의 요약과 영어권 서평이 옮긴 원서 32쪽).
하나님의 수학 공식. 한국어판 63~64쪽에서 저자는 우리가 망설이는 까닭이 계산을 잘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나의 능력+경험+훈련+인격과 외모+과거+다른 사람의 기대 = 나에게 주어지는 지경'이라고 셈한다. 하나님의 셈은 '나의 의지와 연약함+하나님의 뜻과 초월적인 능력 = 나의 확장된 지경'이다. 저자는 스가랴 4장 6절("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을 든다. 하나님은 당신이 도울 수 없는 사람을 당신에게 보내지 않으시며, 새 지경을 취할 때 두려움을 느끼겠지만 하나님이 이끄시는 전율도 맛보게 된다고 한다(예스24의 발췌문).
야베스 작전. 저자는 캘리포니아의 한 기독교 대학에서 일주일 동안 강의하며 학생 2천 명에게 세계 지도에서 섬 하나를 정하고 비행기를 전세 내어 하나님을 위해 그 섬을 취하러 가라고 도전했다. 워렌과 데이브라는 두 학생이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여름 학생과 교수 126명이 전세기로 트리니다드 섬에 가서 사역했다. 학생들은 이 일을 '야베스 작전'이라 불렀다(한국어판을 요약한 글과 뉴스앤조이의 글이 함께 전함).
저자는 지경을 넓혀 달라고 구하면 하나님이 만날 사람을 보내 주신다고 하고 이것을 지켜야 할 약속에 빗댄다. 그 기도를 드린 사람은 기적의 삶을 맨 앞줄에서 보게 된다고 말한다(영어권 서평들이 옮긴 원서 42~44쪽). 《크리스천 센추리》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가 드는 보기 가운데 유람선에서 전도한 일(원서 36~39쪽)과 대륙 횡단 기차에서 전도한 일(42쪽)이 있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밧모 섬에서 갓 결혼한 사람을 한나절 상담한 일도 책에 나온다고 적었다(어느 장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4장 위대한 접촉
넓어진 지경 뒤에 오는 무력함. 넓어진 사역을 용감하게 구한 그리스도인들이 상상 못 할 복을 받고 지경이 넓어지는 것을 본 뒤에 갑자기 날개가 접힌 듯 무기력하게 추락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아끼시는 종들을 위한 계획이라고 한다(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한국어판에는 '추락으로 얻게 되는 능력'이라는 꼭지 제목이 있다(예스24).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76쪽의 문장이 이 장의 뼈대다.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이 우리가 드리는 최고의 예배이고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것을 구하는 것이 최고의 야망이라면,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시기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위대한 일이 이어지게 하려는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손을 '위대한 접촉'이라 부른다. 우리가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강한 손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며, 감당할 수 없던 일이 하나님의 기회로 바뀐다고 한다(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녀라면 하나님이 나서지 않으시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만큼 큰 일을 시도해야 한다고도 말한다(《크리스채너티 투데이》가 옮긴 문장).
초대교회. 저자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 몇 시간, 며칠씩 기도하며 하나님의 손, 곧 성령의 충만하심을 구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쓰고 사도행전 11장 21절을 든다. 그리고 당신의 교회가 함께 모여 성령 충만을 간절히 구한 마지막 때가 언제였느냐고 묻는다(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미국의 종교 보도 비평지가 옮긴 4장의 문장).
롱아일랜드의 여름. 저자가 뉴저지에서 청소년 사역자로 있을 때 고등학생 열두 명과 함께 가까운 롱아일랜드의 교외에서 여섯 주 동안 전도한 일이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이번 주가 끝날 때까지 모임마다 백 명이 모이지 않으면 실패로 여기자고 말했고, 첫날이 끝나기 전에 서른 명이 결신하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했다. 결과는 기대를 넘었으나 야베스의 기도가 구한 범위와 꼭 맞았다고 저자는 쓴다(개혁파 목사 론 글리슨의 서평이 옮긴 원서 57~58쪽).
한 서평이 옮긴 원서 60쪽의 문장에서 저자는 하나님이 넓히시는 계획 가운데 하나님이 마련해 주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의 충성된 마음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확인필요] 이 장에는 저자가 어린 아들과 놀이터에 갔던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아들이 가장 높은 미끄럼틀의 사다리를 오르다 겁이 나서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가 함께 올라가 준다는 이야기로,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일의 비유로 쓰인다. 구글 도서가 뽑은 이 책의 낱말 목록에 '사다리'와 '미끄럼틀'이 보이지만 본문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다.
5~7장: 넷째 간구와 '존귀한 자', 그리고 날마다 드리라는 권고
받은 복을 지키는 법, 야베스가 '더 존귀한 자'라고 불린 뜻, 그리고 이 기도를 독자의 것으로 삼는 구체적인 계획이다.
5장 물려받은 것 안전하게 지키기
복이 가장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복된 삶을 지키려면 우리를 누르려는 사탄의 힘에서 보호해 달라고 초자연적인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복은 하나님을 향한 예민한 신뢰를 무디게 하고 우리를 무례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105쪽에서 저자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사탄의 공격을 이길 힘만 구하고 유혹에서 멀리 떨어져 있도록 지켜 달라고는 구하지 않는다고 짚는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거의 사분의 일이 보호에 관한 것이라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를 든다.
야베스가 환난을 이기게 해 달라고 하지 않고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한 데 주목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으르렁거리는 사자를 물리치는 길은 도망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사탄의 제안에 길게 대꾸하지 않으셨다(한 독자의 요약). 죄와의 싸움을 가장 잘 다루는 길은 유혹과 쓸데없이 맞붙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는 것이다(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장의 첫머리에 달라스 신학교 교수 하워드 헨드릭스와 한 학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학생이 이제는 유혹을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하자 헨드릭스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소식이며 네가 이미 싸움터에 없다는 뜻이라고 답했다(글리슨의 서평이 옮긴 원서 64쪽).
저자 자신의 일화도 있다. 시카고 무디 성경학교에서 한 주 동안 날마다 설교하고 학생 일흔여섯 명을 상담한 뒤 지칠 대로 지쳐 비행기에 탔는데, 양옆에 앉은 두 남자가 음란 잡지를 펴 들었다. 그는 지금은 감당할 수 없다고 속으로 기도했고 곧 두 사람이 잡지를 치웠다(글리슨의 서평이 옮긴 원서 65쪽).
이 장에는 번영 신학과 선을 긋는 문장이 있다. 저자는 미국의 꿈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과 얼마나 먼지를 우리가 아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자유와 독립과 개인의 권리와 쾌락의 추구를 떠받드는 문화에 잠겨 있으며, 야베스처럼 옳게 느껴지지만 그릇된 것의 끌어당김에서 지켜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덴버 신학교의 서평과 디자이어링 갓의 서평이 함께 옮긴 원서 70~71쪽).
장은 넷째 간구를 삶의 한 부분으로 삼으면 한 단계 높은 영광과 기하급수로 커지는 복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된다는 말로 끝난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안전한 투자가 가장 놀라운 수익을 낸다는 비유가 붙는다(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서평이 옮긴 원서 75쪽).
6장 하나님의 존귀한 자의 명부에 오른 자
저자는 하나님께 총애하시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시지만, 간단히 말해 하나님은 구하는 자를 더 아끼신다고 답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신다(글리슨의 서평이 옮긴 원서 76쪽, 한 독자의 요약).
하나님 보시기에 더 존귀한 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교만도 이기심도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 존귀한'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평가이지 우리가 스스로에게 주는 칭찬이 아니다. 남보다 잘하려고 할 때는 사람의 충동에 말려들 수 있으나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랄 때는 성령 안에서 사는 것이다. 빌립보서 3장 14절과 고린도후서 5장 9-10절을 든다(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두 편과 글리슨의 서평).
저자는 천국에서 하나님이 '내가 너를 통해 이루려 했으나 네가 허락하지 않은 것'을 보여 주시는 일은 겪고 싶지 않다고 쓴다(글리슨의 서평이 옮긴 원서 77쪽).
늦어진 비행기. 애틀랜타에서 강연하러 가는 길에 큰 사고로 길이 막혀 비행기를 놓치게 되자 저자는 비행기가 늦게 뜨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비행기는 늦어졌고, 그는 공항에서 몹시 흔들리는 한 여인을 만났다. 남편과 이혼하려던 그 여인에게 그는 좌석이 다른데도 우리가 나란히 앉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그렇게 되어 복음을 전했다(글리슨의 서평이 전하는 원서 79~82쪽). 《크리스천 센추리》의 서평은 책에서 그 여인이 믿고 결혼을 지키기로 한다고 전한다.
저자는 이 걸음을 되풀이하면 복의 순환이 시작되어 복과 영향력의 범위가 나선을 그리며 위로, 밖으로 넓어진다고 말한다. 복이 너무 커서 그만 주시라고 말하고 싶은 날도 온다고 한다(서평이 옮긴 원서 83~84쪽, 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이 순환을 끊는 것은 죄 하나뿐이라고 한다. 집으로 들어오는 전깃줄이 끊어지면 후버 댐의 큰 발전소와 떨어지는 것과 같다. 그럴 때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둘러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저자는 권한다(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7장 야베스의 것을 나의 것으로
저자는 복을 구하는 야베스의 기도를 날마다의 삶을 짜는 한 올로 삼으라고 도전한다. 앞으로 서른 날 동안 여기 적은 계획을 흔들림 없이 따르면 그 무렵에는 삶에 뚜렷한 변화가 보일 것이고 이 기도가 평생의 귀한 버릇이 되어 갈 것이라고 한다(디자이어링 갓의 서평과 영어 위키백과가 옮긴 원서 87쪽).
한 서평이 간추린 계획은 여섯 가지다(원서 86~87쪽). 아침마다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고 기록한다. 기도를 적어 성경책에 붙여 둔다. 다음 한 달 동안 이 책을 한 주에 한 번씩 다시 읽는다. 다짐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점검을 받는다. 삶에 일어난 변화를 적는다. 가족과 벗과 교회를 위해서도 이 기도를 드린다. 《크리스천 센추리》는 기도를 수첩이나 욕실 거울에 붙여 두라는 권고도 있다고 적었다.
저자는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나리라고 믿고 그다음에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 놓고 삶을 바꾼다고 말한다(서평이 옮긴 문장, 한 독자의 요약).
자기가 이끄는 단체의 숫자를 이 기도의 열매로 든다. 워크 스루 더 바이블이 2000년에 성경 대회를 2천5백 번 열 예정이고, 달마다 잡지 열 종을 펴내 누적 1억 부를 넘겼다는 것이다(서평이 옮긴 원서 88쪽). 1998년 1월에는 '월드티치'를 시작했다. 인구 5만 명에 한 사람꼴로 성경 교사 12만 명을 세우려는 15년짜리 계획이다(서평 두 편이 함께 전함).
책의 맺음은 이렇다. 하나님이 작정해 두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온 마음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지금 당신의 삶에 기적의 능력을 풀어 놓으시고 영원토록 그분의 영광과 기쁨을 아낌없이 부어 주신다(서평이 옮긴 원서 92쪽, 한국어판을 요약한 글).
책에 대한 지지와 비판, 그리고 저자의 그 뒤
먼저 책이 일으킨 일과 저자의 그 뒤를 적고, 평가를 좋게 본 쪽, 교계의 비판, 일반 언론의 반응, 한국에서의 반응, 본문 해석을 둘러싼 지적의 차례로 표에 모았다. 한쪽의 글만 읽으면 책의 모습이 한쪽으로 기울어 보이므로 나란히 읽기를 권한다.
책이 일으킨 일
《퍼블리셔스 위클리》(2002년 4월 1일)에 따르면 출판사는 첫 인쇄로 2만 6천 부를 찍었고 2000년 10월과 11월에 판매가 치솟아 2001년 2월에 110만 부, 3월에 200만 부를 더 찍었다. 기사가 나올 때 41쇄였다. 작은 출판사이던 멀트노마의 2001년 매출은 그 전 최고였던 2000년의 세 배가 되었다.
책에서 갈라져 나온 상품이 많았다. 어린이, 청소년, 여성을 위한 판(여성판은 저자의 아내 달린 윌킨슨이 씀), 묵상집, 일기장, 성경 공부 교재, 음반과 영상이 나왔고, 열쇠고리, 컵, 가방, 양초, 마우스 받침, 액자 같은 물건도 나왔다(《퍼블리셔스 위클리》와 영어 위키백과). 이 상품화는 그 자체로 비판거리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디모데가 『어린이를 위한 야베스의 기도』, 『학령전 어린이를 위한 야베스의 기도』(2002년 4월), 『청소년을 위한 야베스의 기도』(2002년 6월), 『묵상을 위한 야베스의 기도』(2003년 1월)를 냈다(예스24의 검색 결과).
영어 위키백과는 《뉴스위크》를 인용하여 이 기도가 2001년에는 미국 의회의 위원회 자리에서도 들렸고, 저자가 그해 부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국가 기도의 날 행사에 갔다고 적는다.
저자의 대답과 뒤이은 책
저자는 번영 신학이라는 비판에 여러 번 답했다. 지역 신문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과의 2001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내가 그것을 가르친다고 말하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것을 믿지 않으며 그것은 내가 믿는 것의 반대라고 말했다(미국의 종교 보도 비평지 《릴리전 인 더 뉴스》 2001년 가을호가 옮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가 옮긴 다른 인터뷰에서는 이 구절의 일차적인 뜻은 사업을 넓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든 믿는 이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도록 부름받았다는 넓은 뜻의 사역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2001년 4월에는 다음 책 『포도나무의 비밀』(Secrets of the Vine)이 나왔다. 《릴리전 인 더 뉴스》는 이 책이 고난과 믿음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의 이야기여서 비판하던 사람 몇을 잠잠하게 했다고 적었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도 인내와 일상의 고난이라는 주제가 이 책에서 더 큰 자리를 차지한다고 평했다.
2005년 1월에는 『야베스의 기도, 그 후』(Beyond Jabez, 브라이언 스미스와 함께 씀, 208쪽)가 나왔다. 미국의 서평 누리집 북리포터에 따르면 저자는 기도의 네 부분을 더 깊이 파고드는 한편 첫 책을 둘러싼 논란을 낳은 오해를 바로잡으려 했고, 이 기도를 주문이나 요술 램프로 삼으라는 뜻이 전혀 아니었으며 기도 생활을 넉넉하게 하는 본으로 내놓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국어판은 2005년 12월 15일 디모데에서 마영례의 번역으로 나왔다(254쪽). 예스24의 책 소개는 이 책이 첫 책이 불러일으킨 현상을 둘러싸고 생긴 의혹을 푸는 책이라고 적는다.
아프리카 사역과 2005년의 좌절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06년 2월호 기사 "야베스의 저자, 아프리카를 떠나다"(티머시 모건)에 따르면 저자는 2002년 미국 조지아주의 집을 떠나 아프리카로 옮겼다. 그가 세운 '드림 포 아프리카'는 다달이 미국인 자원봉사자 수백 명을 남부 아프리카로 보냈고, 텃밭 가꾸기 사업 '끝없는 텃밭'으로 채소밭 50만 개를 일구도록 도왔다. 부시 행정부는 에이즈 예방을 위한 절제와 정절 교육에 10만 8천 달러를 지원했다.
그의 꿈은 스와질란드(지금의 에스와티니)에 '아프리카 드림 센터'를 세우는 것이었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아이 1만 명을 3만 2천5백 에이커의 땅에서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는 계획으로, 골프장과 관광 시설도 들어 있었다. 같은 잡지의 2006년 3월호 사설은 이것이 1억 9천만 달러짜리 계획이었고 스와질란드는 인구 110만 명에 고아가 7만 명이라고 적었다.
드림 포 아프리카는 40쪽짜리 제안서를 내면서 스와질란드 정부에 닷새 안에 승인해 달라고 했으나 승인은 나지 않았다. 2005년 9월 저자는 국왕 음스와티 3세를 만나러 뉴욕에 갔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만나지 못했고, 한 주가 안 되어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쉰여덟 살이던 그는 아프리카를 떠나 활동적인 사역에서 일찍 물러난다고 밝혔다. 이 일은 2005년 성탄절 직전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로 알려졌다(《크리스채너티 투데이》가 그 보도를 인용함). 스와질란드의 언론은 그가 고아를 돕는 일보다 땅을 차지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비난했는데,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현지 보도 가운데 사실이 아닌 선정적인 기사도 있었다고 적었다.
사설 "야베스의 교훈"은 저자가 야베스 같은 기도가 이 대담한 사업에는 통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고 쓰고, 그가 《월스트리트 저널》에 한 말을 옮긴다. 내 일생의 실망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로 적어 두겠다는 것이다. 한 스와질란드 목사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들에게 브루스는 모든 것이었다고 말했다. 가까운 사람은 그가 몸과 마음과 영과 재정에 큰 상처를 입어 몹시 꺾여 있었다고 전했다.
사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선교의 눈으로 짚는다. 자기의 꿈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여긴 지나친 자신감, 이미 있던 기관들을 믿지 않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본 순진함, 고아를 살던 땅에서 떼어 놓는 것이 그곳 문화와 맞지 않는다는 미국 대사의 경고를 듣지 않은 것, 국왕의 원칙적인 동의를 승인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설은 세상의 고통을 생각하면 교회에는 윌킨슨처럼 크게 무릅쓰는 성도가 더 필요하며, 다만 그 무릅씀이 선교의 기본을 살펴야 한다고 맺는다.
드림 포 아프리카는 새 대표 아래에서 훨씬 작은 규모로 이어졌다(《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저자는 2013년 남반구의 목회자와 지도자를 훈련하는 '티치 에브리 네이션'을 세워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부의 훈련원에서 일을 이어 갔다. 이 좌절을 두고 한국어로 쓰인 언론 기사는 이번 조사에서 찾지 못했다.
좋게 본 쪽과 균형을 잡으려 한 쪽
말한 사람
내용
하워드 헨드릭스(달라스 신학교 교수, 한국어판에 실린 추천사)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복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작은 책이지만 삶을 바꾸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디모데 출판사 누리집).
마크 갤리(《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편집장, 2001년 6월 11일)
족보 속의 묻힌 두 문장에서 하나님의 영감을 읽어 낸 것은 저자의 공이라고 했다. 저자가 야베스의 기도를 성경 전체의 큰 주제, 곧 팔복의 복됨, '내 뜻대로 마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로 풀이했다고 보았다. 다만 책에 실린 이야기가 모두 잠깐 다녀가는 사역이며, 여러 해 병든 부모를 모시거나 열매 없는 선교지를 지키는 것 같은 낮고 긴 충성의 보기가 없다고 짚었다. 그래도 수백만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새로 깨닫게 했으니, 하나님의 뜻 전체는 못 되어도 나쁘지 않은 출발이라고 맺었다.
리처드 헤스(덴버 신학교 구약학 교수, 《덴버 저널》 2001년 6월)
저자가 이 책 어디에서도 번영 복음의 덫에 빠지지 않는다고 평했다. 책의 보기들이 전도와 깨어진 관계의 회복에 쏠려 있으니 번영 복음이라는 비난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날마다 이 기도를 드리라는 권고도 그것이 믿는 이를 하나님께 가까이 이끄는 한 그릇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이스라엘의 이름 짓기와 히브리어 말놀이를 더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며, 성경 어디에도 이 기도를 드리라는 명령이 없고 야베스가 한 번 드렸는지 여러 번 드렸는지도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필립 잘레스키(가톨릭 계열 잡지 《퍼스트 싱스》 2001년 10월호, "야베스를 변호함")
비판 대부분이 복음주의에 대한 거북함, 저자의 광고판 같은 문체에 대한 거북함, 구하는 기도를 낮게 보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문체의 흠은 문체의 죄이지 하나님께 지은 죄가 아니며, 예수님도 주기도문에서 구하는 기도를 가르치셨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는 진지한 반론이라고 인정했다. 기독교는 버림과 영적 싸움을 거쳐 거룩함에 이른다고 가르치는데 책은 고난의 값을 내비칠 뿐 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릴리전 인 더 뉴스》(미국 트리니티 대학의 종교 보도 비평지, 2001년 가을호)
일반 언론의 서평 대부분이 놓친 것이 있다고 했다. 야베스는 까닭이 있어 복을 구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뜻은 독자를 부자로 만드는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 이끌어 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이끌게 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인이 지경을 넓혀 달라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지경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세령(코람데오닷컴, 2009년 2월 7일)
이 책의 값어치는 기도가 지닌 힘을 성도들에게 알리고 기도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고 했다. 한 시간이면 읽을 분량으로 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고 있으며 자신도 감동을 받았다고 썼다. 그러면서 본문을 따로 풀이하여, 지경을 넓힌다는 말은 신명기 19장 8절처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다 받는다는 뜻이고 야베스는 그 약속을 믿고 구한 것이라고 했다.
김신정(한 선교 단체 게시판의 독후감, 2003년 8월 13일)
좋은 책이 아니라는 선입견을 갖고 읽었으나, 저자가 사람들이 비난하는 만큼 물질 만능의 복을 말한 것은 아니었고 한편으로 기복 신앙이라 비난받을 대목도 있었다고 적었다. 조심해서 읽을 부분도 있고 배울 것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교계의 비판
말한 사람
내용
필립 라이큰(미국 제십장로교회 누리집의 글, 2001년 5월 20일)
성경의 기도로 기도를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고, 저자가 물질보다 영적인 복을 구하라고 한 것도 도움이 된다고 먼저 인정했다. 그러나 책이 더 이기적으로 기도하라고 부추기고, 기적을 구하라고 하며, 어제 구하지 않았으면 받을 것을 다 받지 못했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흐린다고 비판했다. 한 기도의 낱말에 믿음을 두면 그 기도가 주문이 되고 공로가 된다고 했다. 야베스가 정말 열쇠라면 주기도문은 무엇이 되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이고 기적을 구하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존 바우어스(배너 오브 트루스 누리집, 2001년 9월 3일. 《크리스천 리뉴얼》 2001년 7월호에 먼저 실림)
잘 쓰인 책이고 안일한 신앙을 흔들어 깨운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한 구절에서 배울 것을 거의 절대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언약 안에서 그리스도께 모이는 기업을 구한 기도를 개인의 왕국을 넓히는 기도로 읽었고, 하나님을 복의 창고지기로, 기도를 그 문을 여는 주문으로 줄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론 글리슨(미국 장로교 목사, 서드밀 누리집 잡지 2001년 7월)
저자를 주 안의 형제로 여긴다고 밝히고 유익한 대목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흰 상자 우화는 하나님이 주시려던 복을 사람이 구하지 않아 못 받는다는 것이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해친다고 보았다. 본문의 앞뒤를 살피지 않고 야베스의 속마음을 지어냈고, 결신자의 수를 미리 정해 놓고 구했으며, 걸음을 되풀이하면 복이 불어난다는 말은 주문의 원리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책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공 쪽으로만 그려 실제의 시련을 빠뜨린다고 목회자로서 걱정했다.
마크 탤벗(미국 개혁파 잡지 《모던 레퍼메이션》 2001년 11·12월호)
여섯 자리 소득 같은 것을 구하라고는 하지 않으니 '말하면 받는다'는 가르침과 꼭 같지는 않지만 가깝다고 했다. 우리의 성공에 성경이 두지 않는 무게를 둔다는 것이다.
행크 해너그래프(미국 기독교연구소, 《크리스천 리서치 저널》 24권 3호, 2001년)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야베스의 기도를 가리키지 않고 주기도문을 주셨다고 했다. 주님은 외울 주문을 주지 않고 기도의 방식을 주셨다는 것이다. 성경 인물이 한 기도 한 토막에서 지나친 결론을 끌어내는 일의 위험을 사사 입다의 서원을 보기로 들어 말했다.
지미 에이킨(가톨릭 변증 잡지 《가톨릭 앤서스》 2002년 4월)
야베스의 기도는 자기 이익을 구하는 기도이며 그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야베스가 하나님을 위해 영향력을 넓히려 했다는 풀이는 20세기 말 복음주의의 말투를 옛 본문에 입힌 것이라고 비판했다. 본문은 그가 날마다 드렸다고 하지 않으며 한 번의 서원이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로드니 클랩(미국의 기독교 잡지 《크리스천 센추리》 2002년 10월 23일, "산타가 된 하나님")
저자가 번 돈을 성경 교육 사역에 쏟았음을 인정하고, 자기를 높이는 데 이 기도를 쓰지 말라고 한 것도 인정했다. 그러나 책이 주기도문을 한 번 언급할 뿐 야베스의 기도를 그 자리에 앉힌다고 했다. 주기도문은 '우리'의 기도인데 책이 그리는 야베스의 기도는 개인에게 쏠려 있고, 보기 속의 사람은 늘 더 편해지고 넉넉해진다는 것이다. 흰 상자 우화는 하나님을 구하는 대로 선물을 나눠 주는 산타클로스로 보이게 한다고 했다.
하나님이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복 주기를 원하신다는 점은 기쁘게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 다른 곳에 한 번도 인용되지 않는 두 절을 하나님이 언제나 응답하시는 기도로 키운 데는 근거가 없으며, 기도를 늘 통하는 도구처럼 다룬다고 했다. 기도 자체가 기도를 받으시는 분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매시스(미국 디자이어링 갓, 2022년 3월 30일)
책이 나온 지 스무 해 뒤에 다시 읽고 쓴 글이다. 저자가 번영 복음을 분명히 부인했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여러 번 말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언제나', '열쇠' 같은 말과 이 땅의 복을 보기로 든 것이 문을 열어 두었고, 많은 독자가 단서는 건너뛰고 흐름만 따랐다고 보았다. 가장 큰 불균형은 족보 속 두 절을 날마다 드리라고 올려놓은 마지막 장이며, 이 시대의 고통과 고난에 대한 성경의 시야가 빠져 있다고 했다. 글의 뒤쪽은 야베스의 기도에서 지금도 배울 것을 차례로 적는다.
그 밖에
영어 위키백과는 복음주의 저술가 베릿 쇼스가 마태복음 6장 7절의 '중언부언'을 들어 비판했다고 적고, 이 책을 풍자하거나 반박한 책으로 『야베스의 주문』(2001) 등을 든다. 미국 틴데일 신학교의 맬 카우치는 《보수 신학 저널》 2001년 12월호에 비평을 실었는데, 책에 믿는 독자가 반길 좋은 점도 있다고 한 앞부분만 읽을 수 있었다. 루터교 미주리 시노드도 이 책의 신학을 살핀 글을 냈다고 하나 열어 보지 못했다.
미국과 영국의 일반 언론
매체
내용
《뉴욕 타임스 북 리뷰》(주디스 슐레비츠, 2001년 5월 20일)
야베스의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미국의 성공 숭배 안으로 들여보낸다고 썼다. 세상이 비극의 자리일 수 있다는 생각도, 내 지경이 넓어지면 남의 지경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도 없다는 것이다.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존 블레이크, 2001년 4월)
저자가 사는 곳의 신문으로 가장 먼저 다루었다. 복이 무엇일지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다는 2장의 문장과 사업을 넓혀 달라고 구해도 된다는 3장의 문장을 나란히 놓아 보였다. 두 주 뒤 저자의 반론 인터뷰를 실었다.
《뉴스위크》(케네스 우드워드, 2001년 8월 27일)
저자가 이 기도를 그리스도인의 주문으로 만들었다고 평했다(영어 위키백과의 인용으로 확인).
《뉴 리퍼블릭》(2001년 6월 11일)
이 책은 여러모로 자기 계발서의 정반대라고 했다. 우리 안에서 끌어낼 힘은 없고 온전히 하나님께 기대라고 하기 때문이다(영어 위키백과의 인용으로 확인).
영국 《더 타임스》(2001년 5월)
"주여, 저를 부자로 만들어 주소서"라는 제목을 달았고, 영국 사람들은 이런 종교적 저속함을 늘 낮추어 보았다고 썼다(《퍼스트 싱스》와 《릴리전 인 더 뉴스》가 전함).
조지프 로콘테(미국 공영 라디오 논평, 2001년 5월 3일)
드물게 다른 데를 본 논평이다. 야베스는 악에서 지켜 주셔서 고통을 끼치지 않게 해 달라고 구했으며, 속임과 이기적인 야망에 얽히지 않는 삶을 구한 신선한 생각이라고 했다(《릴리전 인 더 뉴스》가 전함).
한국에서
어디에 나오는가
내용
한종호(뉴스앤조이, "야베스는 과연 어떤 기도를 했던 것일까?")
장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는 책을 받아 읽고 서글펐다고 썼다. 책이 자기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기보다 바라는 것을 기도로 얻으라는 기복주의적 권고에 치우쳐 있다고 보았다. 저자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라고 말하기는 하나 보기와 중심 메시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경'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감당할 삶과 역사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으로 읽어야 하며, 주식 투자에 빗댄 것은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저자가 뒤쪽에서 지경을 맡은 임무로 풀이한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트리니다드 선교 이야기는 서구의 정복주의 선교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누리집에는 입력일이 2000년 10월 5일로 찍혀 있으나 한국어판의 부제를 언급하는 글이므로 2001년 2월보다 뒤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최승호(뉴스앤조이, "부르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의 위험")
복을 구하는 것도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도 문제가 아니라고 먼저 밝혔다. 문제는 야베스의 기도가 주기도문을 앞지를 만큼 되어 가는 현실이며, 사람들이 '열려라 참깨' 같은 주문을 찾은 듯 들뜨는 데 있다고 했다. 야베스의 기도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는데 저자가 '지경'에 하나님 나라를 넣어 풀었고, 성숙한 사람은 그렇게 받겠지만 어떤 사람은 부동산과 사업과 재산에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책은 잠깐 열심을 내게 하지만 복잡한 삶 속에서 더 깊은 실망을 낳는다고도 했다. (입력일 표시는 위와 같다.)
김홍만, 『다시 쓰는 야베스의 기도』(생명의말씀사, 2003년 3월, 126쪽)
이 책을 비평한 한국어 단행본이다. 미주 한인 신문 크리스찬투데이(2003년 7월 2일)의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로스앤젤레스의 목회자로, 개인의 체험에 바탕한 비성경적 기도의 위험을 짚고, 교회가 말씀의 객관적 진리보다 쓸모와 성과에 치우칠 때 『야베스의 기도』가 세속화된 교회의 입맛에 맞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책 본문은 보지 못했다.
예스24 '책 속으로'에 한 독자가 덧붙인 말
한국어판 33쪽의 성문 앞 야베스 대목을 옮기고는, 성경 본문 어디에 이런 말이 있느냐며 책에 성경이 아닌 저자의 상상이 가득하다고 적었다.
한 독자의 블로그(티스토리, 2009년에 쓰고 2019년에 다시 실은 글)
본문에서 지경은 신명기 19장 14절의 옮기지 말라는 '경계표'와 같은 낱말이며,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말을 붙여 읽는 것은 본문에 없는 것을 넣는 일이라고 했다. 기도를 들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점, 곧 기도가 뛰어나서 응답된 것이 아님을 책이 놓쳤다고 했다.
한 독자의 요약과 독후감(티스토리, 2007년 9월)
일곱 장을 차례로 간추린 뒤 이제부터 기도하는 방식을 좀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맺었다.
서점 독자 평점
예스24에는 회원 55명의 평가가 올라 있고 평균은 10점 가운데 8.2점이다.
그 밖의 한국어 책
알라딘에는 김나사로의 『야베스 기도의 숨겨진 진실』(2008)과 『동산 중앙의 선악과가 되어버린 야베스의 기도』(2022)도 올라 있다. 내용은 보지 못했다.
한국 교단의 공식 결의나 보고서 가운데 이 책을 이름으로 다룬 것
이번 조사에서는 찾지 못했다.
본문 해석을 둘러싼 지적
쟁점
책의 풀이와 그에 대한 지적
이름 '야베스'의 뜻
책은 야베스가 히브리 말로 '고통'을 뜻한다고 한다. 구약학자 리처드 헤스와 가톨릭 변증가 지미 에이킨은 이름이 '고통'을 뜻하는 낱말과 자음의 차례가 바뀐 채 소리가 닮은 말놀이이며 이름 자체를 글자대로 '고통'으로 옮길 수는 없다고 짚었다. 헤스는 고통이나 수고를 담은 이름이 구약 시대에 드물지 않았고 그런 이름이 꼭 무거운 짐이 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존귀한 자"
책은 야베스가 기도로 하나님께 '더 존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읽는다. 에이킨과 《크리스천 센추리》는 이 낱말이 '더 존경받는', '더 무게 있는', 나아가 '더 부유한'을 뜻할 수 있어 꼭 덕이 높다는 말은 아니라고 했다. 한국의 한 독자도 본문이 야베스가 이미 존귀했다고 말한 뒤에 기도를 적는다고 짚었다.
"지경을 넓히시고"
책은 영향력과 사역의 기회로 읽는다. 비판하는 쪽은 본문에 그런 뜻을 뒷받침하는 것이 없고 땅을 구한 것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저자 자신도 이 구절의 일차적인 뜻은 사업(땅)을 넓히는 것이며 자신은 그것을 사역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기도인가 서원인가, 한 번인가 날마다인가
책은 날마다 드리라고 권한다. 헤스와 에이킨은 본문이 야베스가 몇 번 드렸는지 말하지 않는다고 했고, 에이킨은 옛 주석가 카일을 따라 '주께서 복을 주시면'으로 시작하는 서원일 수 있다고 했다. 개역개정판의 "복을 주시려거든"도 이 읽기에 가깝다.
족보의 앞뒤
《크리스천 센추리》, 바우어스, 매시스는 이 기도가 다윗으로 이어지는 유다 지파의 족보 속에 놓여 있다는 점을 책이 다루지 않았다고 했다. 이세령은 역대상 2장 55절을 들어 야베스가 유다 지파에 들어온 겐 족속의 후손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설교와 이 책
김진영 담임목사는 2025년 11월 2일 주일설교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내게 구하라!"(열왕기상 3:1-15)에서 솔로몬의 기도를 다루신 뒤, 기도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솔직하고 진실하게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야베스의 기도(역대상 4:9-10)를 소개하셨다. 회중과 함께 두 절을 한 절씩 번갈아 읽은 다음 이 책을 권하셨다.
목사님은 책의 제목 『야베스의 기도』는 말씀하셨으나 저자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같은 제목으로 한국 교회에서 널리 읽힌 책은 브루스 윌킨슨의 이 책이며, 설교노트의 참고자료도 이 책으로 적고 있다.
설교에 나온 내용. 목사님은 "한 10~20년 전"에 한국 교회에서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많은 사람이 읽었다고 하셨다. 분량이 굉장히 짧고 어렵지도 않은데, 역대상의 이 구절을 가지고 기도에 대해 정말 은혜롭게 잘 풀었다고 하셨다. 아직 읽지 않은 분은 "죽기 전에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하셨다. 기도에 대해 큰 도전과 은혜를 주는 작은 책이라는 것이다.
맞는 점 1. 짧고 어렵지 않은 책. 한국어판은 144쪽짜리 작은 양장본이고 원서는 93쪽이다. 여러 서평이 한 시간이면 읽는 책이라고 적는다. 일곱 장 가운데 네 장이 야베스의 네 간구를 한 장씩 풀이하므로 "역대상의 이 구절을 가지고 기도에 대해 풀었다"는 말씀 그대로다.
맞는 점 2. 한국 교회에서 널리 읽혔다. 디모데 출판사는 한국어판을 "발간 7개월만에 100만 성도를 감동시킨 베스트셀러1위"라고 소개하고, 한 필자는 2002년에 찍은 153쇄를 읽었다고 적었다. 한국어판의 판매 부수를 밝힌 독립된 통계는 찾지 못했다.
때. 목사님은 "한 10~20년 전"이라고 하셨다. 원서는 2000년에, 한국어판은 2001년 2월에 나왔으므로 설교한 2025년에서 보면 스물네 해쯤 전이다. 설교노트의 '정리하며 확인할 점'에도 이 점이 적혀 있다.
통하는 점. 솔직하게 구하라. 목사님은 야베스가 고상하게 기도하지 않고 자기 형편을 그대로 아뢰었으며 하나님이 그 기도를 기쁘게 들으셨다고 하셨다. 책의 2장도 자기를 위해 복을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고, 하나님이 우리가 더 '이기적으로' 기도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문제가 있는데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지 않는 것을 목사님이 "놀라운 미스터리"라고 하신 것과, 책 2장의 제목 "그렇다면 왜 구하지 않는가?"도 같은 데를 가리킨다.
다른 점 1. 네 간구를 읽는 방향. 목사님은 야베스의 기도를 솔로몬의 기도와 견주어, 하나님 나라와 뜻을 구한 훌륭한 기도가 아닌 "저의 형편과 처지를 보십시오"라는 기도로 읽으셨다. '지경'도 학업과 직장과 사업, 손으로 하는 일로 푸셨다. 책은 야베스의 간구 자체를 하나님을 위한 영향력과 책임과 기회를 구한 것으로 읽는다(한국어판 46쪽). 곧 목사님은 본문을 글자에 가깝게 읽고 그 솔직함을 본받으라 하셨고, 책은 본문을 사역의 확장으로 넓혀 읽었다. 책에도 사업을 넓혀 달라고 구해도 된다는 대목은 있다(47~48쪽).
다른 점 2. 주기도문의 자리. 목사님은 솔로몬의 기도와 야베스의 기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으냐는 물음에 "주기도문을 보시면 됩니다"라고 답하셨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함께 드리되,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리로 이끌린다는 것이다. 이 책을 비판한 사람들(필립 라이큰, 로드니 클랩, 행크 해너그래프, 최승호)이 든 잣대도 주기도문이었다. 책이 주기도문을 한 번 언급할 뿐 야베스의 기도를 '열쇠'로 올려놓았다는 것이 그들의 지적이다. 책은 5장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를 인용한다(한국어판 105쪽).
다른 점 3. 응답에 대한 말. 목사님은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다 "예스"라고 하지 않으시고 다 "노"라고도 하지 않으시지만, 기도하며 찾는 사람에게 은혜로 반드시 갚아 주신다고 하셨다. 책의 영어 원문 서문은 이 기도를 "하나님이 언제나 응답하시는" 기도라고 부르고, 서른 날 동안 날마다 드리면 삶에 뚜렷한 변화가 보일 것이라고 한다. 목사님은 이 서른 날 계획이나 날마다 같은 기도를 되풀이하라는 권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야베스의 아버지에 대한 풀이. 목사님은 어머니가 이름을 지었다는 데서 아버지가 안 계신 형편으로 생각된다고 하셨고, 과부로 가난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푸셨다. 설교노트는 이것이 목사님의 풀이이며 성경 본문에 직접 적혀 있지는 않다고 밝히고, 어머니가 이름을 지은 다른 예(레아와 라헬, 한나)도 든다. 책에도 어머니의 고통이 무엇이었을지 짐작하는 대목이 있고 거기에 아이 아버지가 떠났거나 죽었을 가능성이 들어 있는 것으로 정리자는 기억하지만, 이번에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다. 같은 풀이는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이상명의 글(미주중앙일보, 2010년 1월 12일)에서 확인된다. 그는 본래 아버지가 짓는 이름을 어머니가 지었다는 것이 재난으로 아버지를 잃은 가정사를 비춘다고 썼다. 이세령은 성경에서 어머니가 이름을 짓는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드물지도 않다고 적었다.
이름의 뜻. 목사님은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이 고통, 슬픔이라고 하셨고 책도 '고통'이라고 한다. 설교노트의 참고자료는 야베스가 '고통'을 뜻하는 히브리어와 소리가 닮았다고 적는데, 이것이 구약학자들의 설명에 더 가깝다.
목사님이 덧붙이신 것. "주의 손으로 도우사"를 푸시며 요셉을 예로 드신 것, 야베스가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기록이 없다고 하신 것은 설교의 흐름에서 나온 목사님의 말씀이다. 책에 요셉이 나오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번역. 설교에서 함께 읽은 개역개정판은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다. 책 제목과 함께 알려진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는 한국어판이 쓴 개역한글판의 표현이다. 목사님도 풀이하실 때 '복에 복을', '지경'이라는 말을 쓰셨다.
논쟁. 목사님은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책에 대한 지지와 비판, 저자의 아프리카 사역 이야기는 정리자가 자료에서 찾아 '평가와 그 뒤' 탭에 실은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설교의 결론인 주기도문을 곁에 두면, 목사님이 권하신 뜻(솔직하게 구하라)과 비판자들이 염려한 것(한 구절을 열쇠로 삼지 말라)을 함께 붙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