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K HABITS FOR EVERYDAY PEOPLE · DENNIS OKHOLM · 2007
[목사님추천]수도원에서 배우는 영성 훈련
미국의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 교수인 데니스 오크홈이, 베네딕트회 수도원을 오래 드나들며 배운 영적 습관을 개신교 신자에게 소개한 책입니다. 경청, 청빈, 복종, 겸손, 환대, 착실함, 균형의 일곱 가지를 한 장씩 다루고, 종교개혁자들이 수도원 제도에 반대한 까닭도 따로 살핍니다. 책의 짜임과 장별 내용, 책에 대한 평가, 그리고 설교와의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정리 2026-10-11 · 책 본문은 읽지 못함 · 한국어판 서지, 목차, 책 소개, 발췌문, 저자 소개는 예스24와 알라딘으로, 원서의 서지와 차례, 설교에 나온 대목은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에 나오는 원서 본문 조각으로, 장별 내용과 평가는 영어권 서평과 한국어 서평, 독자의 글로 확인 · 자료로 확인하지 못한 내용은 [확인필요]로 표시함
베네딕트 규칙서하나님의 일(오푸스 데이)경청과 겸손착실함과 균형
한눈에
『수도원에서 배우는 영성 훈련』(원제 Monk Habits for Everyday People: Benedictine Spirituality for Protestants)은 미국의 신학자 데니스 오크홈이 2007년 브라조스 출판사에서 낸 책이다. 원서 부제는 "개신교 신자를 위한 베네딕트회 영성"이라는 뜻이다. 한국어판은 2022년 1월 19일 규장에서 배응준의 번역으로 나왔고 부제는 "개신교 신자를 위한 수도원의 영적 습관들"이다.
저자는 침례교회에서 자라 장로교회를 섬겨 온 복음주의 개신교 목회자다. 1987년에 우연히 수도원을 찾은 일을 계기로 베네딕트회 수도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뒤 수도원의 봉헌자(수도 서원은 하지 않고 수도원 밖의 일상에서 베네딕트의 가르침대로 살려는 사람)가 되었다. 책은 그렇게 스무 해쯤 배운 것을 같은 개신교 신자에게 전하려고 쓴 체험 수기이자 안내서다. 6세기 수도사 베네딕트가 쓴 규칙서에서 일곱 가지 덕목을 골라 한 장씩 풀고, 책 끝에는 종교개혁자들이 수도원 제도에 반대한 까닭을 살피는 후기와 일상에서 실천할 제안을 붙였다.
베네딕트는 종교개혁보다 천 년 앞선 사람이다. 저자가 개신교 신자의 망설임에 답하는 중심 논리다.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38쪽의 발췌문에서 저자는 베네딕트가 개신교에 속하지 않듯이 로마 가톨릭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쓴다. 그리고 "어거스틴을 존경하고 그에게 배우는 개신교 신자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죄책감 없이 베네딕트에게 배워도 된다"고 말한다.
책 정보
항목
내용
원제
Monk Habits for Everyday People: Benedictine Spirituality for Protestants
저자
데니스 오크홈(Dennis L. Okholm). 한국어판 저자 소개에 따르면 휘튼대학에서 철학을,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에서 교회사와 목회학을 공부했고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주사퍼시픽대학교 신학과 교수이자 풀러신학교 겸임 교수이며,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의 세인트앤드류장로교회에서 28년간 목회했다. 베네딕트 수도회 봉헌자이며 미국 베네딕트학회 이사회 회원이다.
원서
2007년 12월, 미국 브라조스 출판사(Brazos Press, 베이커 출판 그룹), 144쪽. 서문은 작가 캐슬린 노리스가 썼다.
한국어판
배응준 옮김, 규장, 2022년 1월 19일 출간, 256쪽. 부제 "개신교 신자를 위한 수도원의 영적 습관들". 전자책도 있다.
평가
미국의 출판 전문지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저자가 수도 생활을 이상으로 꾸미거나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보통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안내서로 성공했다고 평했다. 미국 개혁파 잡지 《모던 리포메이션》의 서평은 이 책이 2007년 11월 복음주의신학회와 미국종교학회의 연례 모임에서 모두 매진되었다고 전한다.
책의 열쇠 말
말
뜻
베네딕트 규칙서
6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사 베네딕트가 수도 공동체의 생활을 위해 쓴 규칙. 이 책이 풀이하는 바탕 글이다. 책 속의 인용에는 "베네딕트 규칙서 제1장 11절"처럼 장과 절이 붙어 있다.
하나님의 일(오푸스 데이)
라틴어 opus Dei. 저자는 이 말을 하루의 정해진 때마다 돌아오는 기도 시간으로 풀이한다. 시편 낭송이 한가운데에 있는 공동 기도이며, 시간 전례라고도 부른다.
봉헌자
수도 서원을 하지 않고 세상에서 살며 일하면서, 한 수도원과 관계를 맺고 성경 읽기와 기도와 일에서 베네딕트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사람. 저자가 봉헌자다.
착실함
한국어판이 8장 제목에 쓴 말. 원서의 낱말은 한곳에 머무는 안정(stability)이다. 평생 같은 공동체에 머물겠다는 수도사의 다짐에서 왔다.
균형
9장의 주제. 기도와 일과 공부가 하루 안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는 것. 저자는 이것이 베네딕트회 영성의 쐐기돌이라고 한다.
책의 짜임
책은 부로 나뉘어 있지 않다. 서문 뒤에 열 장이 이어진다. 1장과 2장은 저자가 왜 수도원에 갔고 왜 개신교 신자에게 베네딕트회 영성이 맞는지를 말하고, 3장부터 9장까지 일곱 덕목을 하나씩 다루며, 10장으로 맺는다. 그 뒤에 역사에 관한 후기와 실천 제안, 미주가 붙어 있다.
아래 한국어 제목은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규장, 2022) 목차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영어 제목과 쪽수는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에 나오는 원서 차례 쪽(5쪽)의 것이다. 원서 차례에는 후기와 실천 제안 사이에 추천 도서(Suggested Reading, 130쪽)가 있는데, 예스24의 한국어판 목차에는 이 항목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어판에 실렸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구분
한국어판 제목
원서 제목(원서 쪽수)
머리
서문
Foreword (캐슬린 노리스)
1장
착한 개신교 아이가 수도원에서 대체 뭐 하는 거지?
What's a Good (Protestant Evangelical) Boy Doin' in a Monastery? (15)
2장
베네딕트회 영성이 왜 개신교 신자에게 적합한가?
Why Benedictine Spirituality for Protestants? (23)
3장
경청 : 듣는 법 배우기
Learning to Listen (38)
4장
청빈 : 서로의 물건 나누기
Poverty: Sharing the Goods (46)
5장
복종 :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행하기
Obedience: Objectifying Providence (54)
6장
겸손 : 가면 벗기
Humility: Letting Go of the Mask (69)
7장
환대 : 손님으로서의 그리스도
Hospitality: The Guest as Christ (81)
8장
착실함 : 어딘가에 이르려고 그 자리에 머무르기
Stability: Staying Put to Get Somewhere (89)
9장
균형 :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나님
Balance: God in Everything (99)
10장
세상을 바꾸기 위해
To Change the World! (108)
후기
역사에 관한 후기 ·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수도원제도에 반대한 이유
A Historical Afterword: Why the Protestant Reformers Opposed Monasticism (115)
부록
베네딕트회의 영성을 실천하기 위한 제안
Suggestions for Practicing Benedictine Spirituality (134)
부록
미주
Notes (136)
표시에 대하여. 이어지는 탭에서 [확인필요] 표시가 붙은 대목은 정리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부가 틀릴 수 있으니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 표시가 없는 대목은 서점의 책 소개나 목차, 백과사전, 기사처럼 실제로 열어 본 자료에 나온 내용입니다.
서문, 1~2장: 개신교 신자가 왜 수도원에 가는가
책의 앞부분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와 변론이다. 수도원을 낯설어하고 가톨릭을 경계하는 개신교 독자에게, 자신이 어떻게 수도원을 만났고 왜 이것을 나누려 하는지를 말한다.
서문 (캐슬린 노리스)
서문은 미국의 작가 캐슬린 노리스가 썼다. 《모던 리포메이션》의 서평에 따르면 노리스도 장로교인이며 수도원 체험을 담은 책 『수도원 산책』(The Cloister Walk)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예스24에 실린 서문의 한 대목에서 노리스는, 개신교 신자들이 수도원에 끌리는 현상이 기독교 신앙의 원뿌리를 되찾고 교회가 나뉘기 전의 신앙 전통과 생활 방식에 다시 이어지려는 시도라는 점을 저자가 보여 준다고 말한다. 책 끝의 후기가 특히 귀하다고 하고, 이 체험 수기가 부드럽고 종종 익살스럽지만 적당히 요령을 피우며 사는 개신교 신자에게 던지는 도전으로 가득하다고 소개한다.
1장 착한 개신교 아이가 수도원에서 대체 뭐 하는 거지?
저자가 수도원을 만난 과정을 돌아보는 장이다. 한국어판 저자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제임스타운대학에서 철학 교수와 교목으로 일하던 1987년에 우연한 기회로 수도원을 방문했고, 이것이 수도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원서 16쪽에는 저자가 겪은 어려움이 나온다.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받은 신학 박사 학위가 공립 대학교에는 맞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그 학년도가 끝나면 그 대학교에서 더 가르치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15쪽에서 저자는 베네딕트회 수도원을 처음 만난 때로부터 겨우 3년 사이에 자기 삶이 크게 바뀌었다고 적는다.
저자는 수도원에 머물며 수도사들과 하루 네 번의 기도 시간을 함께하고, 수도원 식당에서 같이 먹고, 수도사들의 경험과 수도 생활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원서 18쪽).
저자는 그다음 해에 블루클라우드 수도원의 봉헌자가 되었고, 한 해 뒤에는 미국 베네딕트학회의 모임에 참여했으며, 몇 해 뒤에는 수도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또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이 학회의 이사가 되었다(원서 19쪽). 책머리에서는 자기가 정식 수도사가 되지 않고 봉헌자가 되는 데 그친 것을 아내가 다행으로 여길 것이라고 농담한다(13쪽).
[확인필요] 블루클라우드 수도원(Blue Cloud Abbey)은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있던 베네딕트회 수도원이다. 이번에 본 자료에는 수도원의 이름만 나오고 위치는 나오지 않았다.
책을 쓴 까닭을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베네딕트회의 영성이 자기 신앙생활을 넉넉하게 해 주었으므로, 베네딕트회 벗들에게 말하듯 개신교 형제자매에게 그들을 알리는 전도자가 된 것이 기쁘다는 것이다. 특히 자기처럼 침례교와 보수 복음주의의 내력을 지닌 개신교 독자를 끌어들이고 싶다고 하고, 이 책이 수도원 제도를 오해하고 로마 가톨릭 전반에 반대하는 개신교 형제자매에게 내놓는 변론이 되기를 바란다고 쓴다(원서 19~20쪽, 《모던 리포메이션》 서평의 인용).
저자는 베네딕트회의 덕목이 오늘의 문화에 퍼져 있는 영적인 불량 식품보다 몸에 좋다고 말한다(원서 20쪽, 같은 서평의 인용). 한 독자 서평이 책의 앞부분에서 옮긴 대목도 같은 이야기다. 우리는 영적인 삶을 가꾸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종교의 소비자가 되었으며, 어떤 비결이나 잘 팔리는 묵상집을 사면 영적으로 튼튼해질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그렇게 오지 않으며 제자의 삶은 마라톤을 준비하고 달리는 선수의 삶과 같다는 것이다.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28쪽의 발췌문에는, 이 보화를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개신교 신자가 같은 신앙의 개신교 신자에게 나누어 주는 책은 "정말 극소수"라는 말이 있다.
2장 베네딕트회 영성이 왜 개신교 신자에게 적합한가?
베네딕트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1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므로 개신교의 것도 로마 가톨릭의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어거스틴에게 배우는 개신교 신자라면 베네딕트에게도 당당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한국어판 38쪽, 예스24 발췌문). 한국어판 저자 소개는 저자가 베네딕트를 아퀴나스나 어거스틴처럼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나뉘지 않은 기독교의 보편적인 교사"로 본다고 전한다.
저자는 베네딕트가 6세기 이탈리아에서 그 시대의 풍조에 비판적으로 맞섬으로써, 어거스틴이 한 세기 전 『하나님의 도성』에서 그려 보인 타락한 세상을 회복하는 쪽으로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본다(원서 26쪽, 《모던 리포메이션》 서평의 인용).
규칙서가 낯설게 들릴 수 있다는 점도 숨기지 않는다. 원서 28쪽은 규칙서의 어떤 대목이 오늘의 귀에는 이상하거나 지나치게 들릴 수 있다고 하면서, 포도주를 두고 적어도 지나치지 않게 알맞게 마시는 데는 뜻을 모으자고 한 베네딕트의 말을 든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베네딕트회의 영성이 건강하지 못한 개인주의를 누그러뜨린다고 말한다. 영적 성숙은 혼자만의 골방보다 공동체 안에서 자란다는 것이다(원서 29쪽). 한 독자 서평이 책의 앞부분에서 옮긴 문장에 따르면, 저자는 베네딕트회가 개신교 신자에게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궁극적인 구실은 그리스도의 제자를 그분의 형상으로 빚어 가는 데 있음을 삶으로 일깨워 주는 일이라고 쓴다.
수도원이 현실과 동떨어진 곳이라는 생각에 답하는 대목이 있다. 수도원을 다녀온 한 대학생이 온종일 기도하며 지내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하자 저자는 날마다 햄버거 가게에서 손님에게 감자튀김을 권하며 지내는 삶을 들어 되물었다. 저자 자신은 수도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쇼핑몰에 들렀다가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적는다(원서 32쪽).
당당뉴스에 실린 오충환 목사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성경이 근원적인 규칙이며 수도원은 '주님을 섬기기 위한 학교'라고 말한다(한국어판 43~44쪽).
3~6장: 경청, 청빈, 복종, 겸손
일곱 덕목 가운데 앞의 넷이다. 네 가지 모두 자기 뜻과 자기 중심을 내려놓는 일과 이어져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3장 경청 : 듣는 법 배우기
수도원의 침묵에서 시작한다. 저녁의 마지막 기도인 끝기도가 끝나면 큰 침묵이 시작되고, 이 침묵은 아침 기도에서 수도사들이 한목소리로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시편 51:15)라고 말할 때 깨진다(원서 39쪽, 당당뉴스 서평이 전하는 한국어판 67쪽). 저자는 학생들이 수도원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이 대목을 꺼낸다.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69쪽의 발췌문에서 저자는 우리가 언제나 둘레를 소음으로 채우며 성찬식마저 소리로 채워야 직성이 풀린다고 꼬집는다. 그 까닭은 침묵이 두려워서만이 아닐 것이며 "아마도 우리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기를 정말로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저자 자신의 일화가 있다. 재의 수요일에 저자는 학생들에게 사순절 동안 영적 훈련으로 고칠 자기 삶의 모자란 점 하나를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뒷줄의 한 학생이 교수님은 무엇을 고칠 것이냐고 물었다. 저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더 잘 듣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반에 알리고, 작은 공부 모임에서 말을 훨씬 줄여 보기로 했다(원서 43~44쪽).
침묵하는 동안 듣는 법을 배우면 둘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눈을 돌릴 수 있고, 형제자매의 필요, 곧 그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필요에도 눈을 돌릴 수 있다고 한다(당당뉴스 서평이 전하는 한국어판 72쪽).
4장 청빈 : 서로의 물건 나누기
저자가 말하는 청빈은 가진 것을 다 버리는 가난보다는 가진 것을 공동으로 나누는 생활이다(당당뉴스 서평이 전하는 한국어판 81쪽). 장은 재물은 나눌 수 있을 때에만 참으로 좋은 것이라는 마르틴 루터의 생각을 따른다(원서 46쪽, 《모던 리포메이션》 서평).
저자는 오늘의 문화가 소비에 빠져서 탐욕이 대그레고리우스가 꼽은 대죄에서 빠지고 도널드 트럼프의 미덕이 되었다고 꼬집는다(원서 47쪽, 같은 서평의 인용. 책은 2007년에 나왔다). 구원받은 사람은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넉넉해진다는 이른바 개신교 노동 윤리도 짚는다(원서 48쪽).
베네딕트는 복된 삶이 물질의 욕구를 채우는 데 있지 않고, 모든 바람을 하나님을 찾고 이웃을 사랑하는 쪽으로 돌리는 데 있음을 일깨운다고 한다(원서 48쪽).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86쪽의 발췌문에서 저자는 우리가 듣도록 훈련받은 소리를 듣는다고 말한다. 소유욕이 강한 소비자로 살도록 훈련받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은 받지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다른 사람을 섬기는 능력을 잃었을 것이라고 한다.
저자가 컴퓨터를 사려던 때의 일화가 있다. 부엌에서 감자를 깎으며 식사를 준비하던 벗이 손을 멈추고 올려다보며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섬기게 되느냐고 물었다. 저자는 그 컴퓨터를 끝내 사지 않았고, 부드럽게 일깨워 준 벗에게 고마워한다(원서 52쪽).
마태복음 6장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서 잠깐 누리고 말 것에 마음을 쏟는 대신 하나님 나라에 시간과 노력과 관심과 물질을 들여야 한다고 말한다(당당뉴스 서평이 전하는 한국어판 89쪽). 장의 끝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저 살 수 있도록 소박하게 살라는 격언이 나온다(원서 53쪽, 《모던 리포메이션》 서평).
5장 복종 :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행하기
저자는 복종이 군사 학교 밖에서는 거의 더러운 말처럼 되었지만 그리스도인의 낱말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뜻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 주는 수도사의 삶은 개인의 자율과 선택의 자유를 으뜸으로 치는 오늘의 서구인에게 가혹하게 들린다고 한다(원서 55쪽, 《모던 리포메이션》 서평의 인용).
복종은 듣는 일과 이어져 있다.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105쪽의 발췌문에서 저자는 불평을 멈출 때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고 하고, 라틴어 '오보에디오'(oboedio)에 '복종하다'와 '경청하다'의 뜻이 함께 있다는 점을 든다. 형제자매의 필요를 듣거나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때 순종으로 응답한다는 것이다.
규칙서가 불평(투덜거림)을 어떻게 막는지도 살핀다. 규칙서는 그 주간에 식사 시중을 드는 사람이 식사 때에 투덜거리지 않고 섬길 수 있도록 한 시간 전에 마실 것과 빵을 더 받게 한다(원서 58쪽).
당당뉴스 서평에 따르면 저자가 말하는 복종은 한쪽의 뜻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닌 '서로 간의 복종'이며, 하나님 앞에서 서로 책임지는 공동의 책임감을 북돋아 준다(한국어판 99~103쪽).
수도원에서 본 장면들이 나온다. 식사가 끝나 수도원장이 마침 기도를 이끈 뒤 데니스 수도원장은 곧장 부엌 문으로 가서 식탁 치우는 일을 먼저 시작했다. 저자는 자기가 아는 개신교 교회의 목사들 가운데 그렇게 하는 이가 있는지 떠올려 보았다(원서 63쪽). 블루클라우드 수도원에서는 수도원장이 르네 수사에게 성무일도의 시편 노래에 맞추어 오르간을 치라고 했다. 저자는 르네 수사가 틀림없이 자기는 오르간을 칠 줄 모른다고 수도원장에게 말했을 것이라고 적는다(65쪽).
6장 겸손 : 가면 벗기
저자는 복종과 청빈처럼 겸손도 자기 뜻을 내려놓는 훈련이라고 말한다. 이 모두가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이 말한 자기 비움과 이어져 있으며, 복종과 말을 삼가는 것과 청빈과 겸손은 저마다 다른 길로 자기 고집과 자기 중심을 뿌리 뽑는다고 한다(원서 72쪽, 《모던 리포메이션》 서평의 인용).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125쪽의 발췌문에는 누군가 저자에게 "교수님은 통제하기를 좋아하시죠?"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저자는 이 말이 당신은 겸손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겸손은 이기적인 환상과 통제하려는 욕구와 남다른 예외가 되려는 욕구를 무너뜨린다고 한다.
당당뉴스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겸손한 사람을 자기 가면을 내던진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은 신이 아니며 피조물이며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사람이다(한국어판 126~127쪽).
갓피플이 이 책에서 뽑아 묵상 글로 소개한 대목에는 저자의 비유가 실려 있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바닷가 가까이에 산다. 거센 물살에 휩쓸린 사람이 구조를 받으려면 물살과 구조 요원에게 맞서 싸우기를 멈추고 몸을 맡겨야 한다. 해수욕장에서 구조받는 일은 굴욕스럽다. 그러나 자기가 물살에 끌려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부풀린 자아를 믿겠다고 고집하면 자기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
같은 대목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겸손이 낮은 자긍심이나 형편없는 자아상과 다르다고 말한다. 자기에게 죄가 없다는 거짓말에 속지 않겠다는 태도라는 것이다. 자기 가치를 현실적으로 보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지금보다 덜 중요해 보이는 자리나 덜 끌리는 일로 부르실 때 그것이 하나님만 아시는 더 큰 그림의 한 부분일 수 있다고 한다(원서 75~76쪽에 같은 내용이 있다).
7~10장: 환대, 착실함, 균형, 그리고 세상
나머지 세 덕목과 맺음 장이다. 설교에 나온 '하나님의 일' 이야기는 9장에 있다.
7장 환대 : 손님으로서의 그리스도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으라는 규칙서의 가르침을 다룬다. 당당뉴스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다른 사람을 내 형상대로 만들려 하는 대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리려고 죽으신 사람으로 여기라고 권한다(한국어판 151쪽, 원서 82쪽).
저자가 잊지 못하는 환대의 일이 나온다. 저자는 학생 여섯 명과 함께 열흘의 현장 학습 가운데 한 주를 블루클라우드 수도원에서 지냈다. 어느 목요일 아침 식사 뒤에 수도원장이 그들을 자기 방으로 불러, 수도원의 일상에 함께해 준 것을 얼마나 고맙게 여기는지 말했다. 그날 미사 뒤의 저녁 잔치는 참된 사랑의 식사의 절정이었다고 저자는 적는다(원서 82~83쪽). 수도원장이 무엇을 청했는지는 조각에서 끊겨 확인하지 못했다.
저자는 이것을 자기 딸이 대학 시절 자주 다니던 복음주의 교회를 찾아갔을 때의 일과 맞세운다(원서 84쪽).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150쪽의 발췌문은, 교회에서 사람을 차별하는 태도에 대한 야고보서 2장의 경고를 들면서, 예배당에 얼굴을 내미는 성공한 사람이나 유명 인사에게 우리가 보이는 세속적인 열광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은 다음 손님이 어디서 올지 알 수 없으며 우리가 아는 것은 그를 그리스도로 맞아야 한다는 것뿐이고, 그 일이 늘 쉽지는 않다는 말로 끝난다(원서 88쪽).
8장 착실함 : 어딘가에 이르려고 그 자리에 머무르기
평생 같은 공동체에 머물겠다는 수도사의 다짐을 다룬다. 당당뉴스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이것을 날마다 하나님을 향해 삶을 바꾸어 가는 일과 이어진 것으로 설명한다(한국어판 165쪽). 하나님이 뜻하신 사람이 될 때까지, 하나님이 두신 자리에 머물며 영적 변화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179~181쪽).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171쪽의 발췌문에서 저자는, 이리저리 떠도는 수도사들을 두고 베네딕트가 한 말이 오늘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을 겨눈 경고처럼 들린다고 한다. 규칙서 1장 11절의 그 말은 이렇다. "그들은 언제나 옮겨 다니기 때문에 정착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뜻과 천박한 성향의 노예들이다."
《모던 리포메이션》의 서평은 이 장이 교회를 물건 고르듯 옮겨 다니는 문화에 사는 사람을 찌른다고 전한다. 저자는 좋은 교회를 찾아, 베네딕트회 수도사가 대개 평생 자기 공동체에 매이듯 진지하게 거기에 매이라고 권한다. 저자의 말로는, 하나님이 두신 곳에 머무는 착실함을 통해서만 우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역설이다(원서 97쪽).
저자 자신의 경험도 나온다. 서로 떨어져 지내야 했던 한 해를 두고 저자는, 30년 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한 '착실함의 서원'이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쓴다(원서 90쪽). 앞뒤를 읽지 못했으나 혼인 서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쪽에서 수도사에게는 수도원이 '첫째 가족'이 되며 수도자가 아닌 그리스도인에게는 교회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착실함은 몸만 한곳에 있는 것과 다르다. 같은 사람들과 날마다 같이 있으면서도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착실함을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신실한 것, 함께 사는 사람들과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에 참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풀이한다(원서 91쪽).
9장 균형 :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나님
수도원에 대한 통념과 달리 베네딕트회 영성의 쐐기돌은 균형이라는 말로 장을 연다. 규칙서에는 가혹하거나 힘겨운 것이 없으며, 음식과 잠과 마실 것에 대한 베네딕트의 알맞은 요구는 동방의 수도사들이나 서방의 어떤 수도회에는 느슨하게 들렸을 것이라고 한다(원서 99쪽).
당당뉴스 서평에 따르면 베네딕트 수도회의 표어는 '노동하고, 공부하고, 기도하라'이며, 수도사는 보통 하루에 여섯 시간 일하고 세 시간 공부하고 네 시간 기도하며 지낸다(한국어판 185쪽). 한 서평 한 편에서만 확인한 숫자다.
'하나님의 일(오푸스 데이)'이 여기에 나온다. 원서 101쪽에서 저자는 이 말을 하루의 정해진 때마다 돌아오는 기도 시간이라고 풀이한다. 그래서 시간 전례라고도 부르며, 공동으로 드리는 기도 모임마다 시편 낭송이 한가운데에 있다. 본디 시간 전례는 하루 여덟 번의 기도였다. 이 수는 시편 119편에서 왔는데, 62절의 한밤중에 일어남과 164절의 하루 일곱 번을 합친 것이다. 저자는 이어 밤 기도, 아침 찬미 기도, 낮의 여러 기도, 저녁 기도의 이름을 든다.
저자는 하루에 이런 균형이 있어야 바른 눈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소유와 자아와 일자리, 그리고 우리의 전부를 요구하는 우상이 되기 쉬운 온갖 좋은 것들을 섬기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원서 101쪽, 《모던 리포메이션》 서평의 인용).
기도 시간에 늦는 수도사 이야기도 여기에 있다. 원서 103쪽에서 저자는 규칙서 43장 3절의 '하나님의 일'을 든 뒤, 베네딕트가 공동체를 위해 시간을 지키는 일을 몹시 중하게 여겨서 늦은 수도사는 수도원장이 일어나 자기 자리로 가도 좋다고 할 때까지 수도원장 앞에 엎드려 있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는다(규칙서 44장 1~3절). 저자는 오늘 수도사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하고, 그들은 좀처럼 늦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버릇처럼 지각하는 자기 학생들에게 엎드리는 벌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적이 있으나 그만두었다는 농담도 한다.
저자는 수도자가 아닌 그리스도인 직장인도 수도사들이 기도 시간에 일을 멈추는 것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베네딕트회 수도사가 낮에 혼자서나 작은 모임으로 드릴 수 있는 5분짜리 기도를 묶어 작은 책으로 펴냈다는 것을 소개한다. 요점은 일하는 낮 동안 거듭 돌아오는 기도 시간이 우리의 중심을 다시 잡아 주고 날마다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일깨워 준다는 데 있다(원서 103쪽).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189쪽의 발췌문도 정해진 시간마다 기도로 돌아가는 삶의 요점이 자기의 영적인 삶에 주의를 기울이려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가 나치 시대에 수도원과 비슷한 작은 공동체였던 지하 신학교에서 강조한 말을 든다. 기도와 일은 서로 다른 것이며 일 때문에 기도가 막혀서도, 기도 때문에 일이 막혀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원서 103쪽). 잠깐 멈추어 기도하거나 시편을 외는 일은 하나님의 붙드시는 은혜보다 자기 일을 더 믿으며 스스로 의롭다 하려는 시도를 꺾는다고 한다. 성무일도가 주님께 어서 와서 도와 달라고 비는 시편의 말로 시작하는 것도 뜻깊다고 본다(104쪽).
일에 대한 가르침으로 장을 맺는다.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193쪽의 발췌문에 따르면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은 삶의 어떤 영역도 하나님의 임재와 떼어서 다루려 하지 않으며, 그 태도를 배우면 일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할 수 있다. 저자는 규칙서 31장을 떠올리며 연장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도구라고 말한다(원서 106쪽). 무슨 일을 하느냐는 어떻게, 누구를 위해, 무슨 목적으로 하느냐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베네딕트의 일깨움이다(당당뉴스 서평이 전하는 한국어판 197쪽).
10장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저자는 앞에서 수도원이 현실 세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는데, 여기서는 더 과감한 주장을 편다. 수도 생활은 참된 세상의 표지일 뿐 아니라 타락한 세상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쓰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원서 108쪽).
당당뉴스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영성을,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평안을 전하는 증인으로, 곧 나그네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한국어판 203쪽).
책의 맺음말은 이렇다. 베네딕트는 복종과 착실함과 삶의 균형 같은 덕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 이 성인이 천오백 년 전 나뉘지 않은 기독교 세계에 내놓은 것을 우리 것으로 삼는 편이 좋다(원서 113쪽, 《모던 리포메이션》 서평의 인용).
역사에 관한 후기, 실천 제안, 그리고 책에 대한 평가
책 끝의 두 글과, 이 책을 두고 나온 평가를 모았다. 설교에 나온 금식 권고는 실천 제안에 있다.
역사에 관한 후기 ·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수도원제도에 반대한 이유
저자는 개신교 신자에게 수도원 제도를 권하려면 높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중세 말 가톨릭 교회의 수도원 제도가 받은 비판이 있고, 베네딕트의 생각 밑에 깔린 요한 카시아누스의 신학에 '반(半)펠라기우스주의'라는 딱지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원서 116쪽과 21쪽). 반펠라기우스주의는 구원에서 사람의 의지가 하는 몫을 크게 보는 생각으로, 종교개혁의 전통이 경계해 온 것이다.
저자는 카시아누스를 변호한다. 이 수덕 신학자는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었으며, 구원의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가 앞서고 함께한다는 것을 전제한 채 우리 의지의 책임을 강조했다는 것이다(원서 117쪽).
종교개혁 이전 교회의 중세 말 신학자들이 수도원 제도를 어떻게 보았는지도 살피며, 수도원 제도에 대한 비판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짚는다(원서 118쪽).
칼빈의 비판이 소개된다. 칼빈은 말씀과 성례를 섬기도록 세움받는 일과 세상에서 물러나 관상 기도를 하도록 부름받는 일이 서로 함께할 수 없다고 보았다. 수도 생활 자체에 악한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교회에 쓸모없고 위험한 본보기를 들여온 것은 작지 않은 악이라고 했다. 츠빙글리도 칼빈과 같은 생각을 드러냈다(원서 126쪽).
수도 서원에 대한 비판도 인용된다. 하나님께 새 별을 만들거나 산을 옮기겠다고 서원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묻고, 순결의 서원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하는 글이다. 순결은 그런 일 못지않게 놀라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원서 124쪽). 조각에서는 이 글을 쓴 종교개혁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한 종교개혁자는 중세 말의 형편을 하나님의 일과 놀라운 행적을 알지 못하고 규칙과 법과 관습에 매달렸던 이스라엘 자손의 때에 견주었다(원서 128쪽). 《모던 리포메이션》의 서평은 저자가 15세기의 타락한 수도원 제도에 대한 칼빈과 루터의 반대를 이 후기에서 다룬다고 전한다. 한 한국어 독자도 칼빈, 루터, 츠빙글리가 수도원에 대해 한 말이 정리되어 있다고 적었다.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이 후기를 짧은 분량에 견주어 놀랄 만큼 자세하고 흥미로운 개관이라고 하며 건너뛰지 말라고 권했다.
베네딕트회의 영성을 실천하기 위한 제안
원서 134쪽에 실린 이 글은 2004년 6월 23일부터 27일까지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베네딕트회 체험 모임에서 나온 것이다. '베네딕트회 영성을 집으로 가져가는 법'에 답하여 저마다의 생활 규칙을 세우도록 돕는 열다섯 가지 제안이다.
확인한 앞부분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날마다 적어도 두 번 정해진 시간 기도를 드린다. 둘째, 날마다 적어도 한 번 성경을 읽고 묵상한다. 셋째,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넷째, 날마다 관상하는 기도를 드린다. 다섯째,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임을 기억한다. 여섯째,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부분 금식이나 온전한 금식을 한다(또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일곱째, 적어도 매주 한 번 교회 예배에 참석하거나 성찬을 받는다. 여덟째, 함께 살고 함께 일하고 함께 예배하는 사람들을 돌본다.
아홉째 제안은 가족과 날마다의 일을 어떻게 대할지에 관한 것인데 조각이 거기서 끊겼다. 아홉째의 나머지와 열째부터 열다섯째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어지는 쪽에는 1973년 6월의 봉헌자 지도자 지침에서 옮긴 글이 있다. 봉헌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충실하고 활동적인 지체가 되려고 힘쓰며 평화의 사람들이라는 내용이다(원서 135쪽).
책에 대한 평가
말한 사람
내용
캐슬린 노리스(작가, 이 책의 서문)
개신교 신자가 수도원에 끌리는 까닭을 새로운 눈으로 보여 주는 책이라고 했다. 종교개혁자들이 수도원 제도에 반대한 본래의 까닭을 살피는 후기가 특히 귀하다고 했다(예스24에 실린 서문의 한 대목).
《퍼블리셔스 위클리》(미국의 출판 전문지)
저자는 장로교인이면서도 가톨릭을 편안하게 대하며 양쪽의 좋은 점과 짐을 현실적으로 본다고 했다. 수도 생활을 이상으로 꾸미지 않기 때문에 보통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안내서로 성공했다고 평했다. 수도원에 들어가 틀어박히라는 말이 아니며, 이 실천들이 평범하면서도 거룩하다는 점을 저자가 강조한다고 소개했다.
퍼트리샤 앤더스(미국 개혁파 잡지 《모던 리포메이션》, 2008년 9·10월호)
이 책이 개혁파 안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을 저자도 잘 안다고 썼다. 종교개혁자들이 내친 생활 방식에서 개신교 신자가 왜 배우려 하느냐는 물음을 스스로 던진다. 그러고는 일곱 가지 실천이 너무도 마땅한 것인데 자기 삶과 교회에 드물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고 했다. 다만 구원과 모든 좋은 선물은 우리 바깥, 곧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종교개혁 신학의 가르침을 먼저 놓고, 이 습관들은 그 위에서 자기를 죽이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돕는 성령의 열매로 늘 마음에 두면 좋다고 맺었다.
콜리지빌 연구소(Collegeville Institute) 누리집의 책 소개
초기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개혁의 열심 때문에 성수와 함께 성 베네딕트까지 내버렸으며, 저자는 그것이 잘못이라고 쓴다고 소개했다.
오충환 목사(꿈이있는미래교회, 당당뉴스 2022년 12월 21일)
일곱 가지 영성을 한국어판 쪽수와 함께 차례로 소개했다. 수도원이라는 말에서 세상과 동떨어진 삶이 떠오르지만, 그 안의 영성은 이 땅에서 주님의 자녀와 제자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다고 했다. 수도원의 규칙을 다 따를 수는 없으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대로 살려고 힘쓰는 정신은 배우고 지켜야 한다고 맺었다.
독자 애덤 실즈(미국의 서평 블로그 '북와이즈'. 2013년에 쓴 글을 2016년 9월 10일에 다시 올림)
휘튼대학에서 저자에게 조직신학을 배운 사람이다. 저자가 꼽은 덕목들이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니며 오래 걸리는 것들이라고 했다. 저자가 가톨릭 수도사와 복음주의 독자 사이에 다리를 잘 놓았다고 평했다. 책의 목적은 아니지만 저자가 왜 가톨릭 신자가 되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는 물음도 남겼다.
독자 미셸 모린(미국의 개인 블로그, 2014년 9월 5일)
영적 훈련에 이름이 붙어 있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교회 식구와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착실함의 훈련'이라고 부르면, 자기가 매인 곳이 마음 맞는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몸임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쓴 서평이라고 밝혔다.
독자(티스토리 블로그, 2022년 4월 12일)
수도원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깰 수 있었다고 적었다. 칼빈, 루터, 츠빙글리가 수도원에 대해 한 말을 정리한 부분이 있다고도 했다.
개신교 신자가 수도원 전통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한 우려
어디에 나오는가
내용
한국어판 출판사의 책 소개(예스24)
금욕과 경건을 강조하는 수도원적 삶이 대안의 하나로 떠올랐으나, 가톨릭 영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에 수도원적 영성에 대한 거부감과 우려도 크다고 적는다. 종교개혁자들의 반대로 개신교에는 수도원이 없고, 예수원과 동광원 같은 개신교 안의 자생적 수도원이 있으나 경험한 사람이 드물다고도 한다.
책의 후기
저자 자신이 종교개혁자들의 반대를 따로 다룬다. 칼빈은 수도 생활이 교회에 쓸모없고 위험한 본보기를 들여왔다고 보았고 츠빙글리도 같은 생각이었다. 베네딕트의 생각 밑에 있는 카시아누스의 신학에는 반펠라기우스주의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위의 후기 항목).
《모던 리포메이션》 서평
저자가 개신교 신앙과 로마 가톨릭 신앙의 신학적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구원이 우리 바깥에서 온다는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서평의 맺음에 다시 세웠다. 수도원의 습관을 구원의 길로 삼지 말고 성화의 과정에서 맺는 열매로 보라는 뜻으로 읽힌다.
이 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서평
이번 조사에서는 찾지 못했다. 열어 본 서평은 모두 호의적이거나 조건을 달아 권하는 글이었다. 영국의 가톨릭 학술지 《뉴 블랙프라이어스》(2008년 9월)에 베네딕트회 수도자 플래시드 휴스의 서평이 실린 것은 확인했으나 본문은 읽지 못했다.
설교와 이 책
김진영 담임목사는 2022년 4월 10일 주일설교 "이스라엘의 목자와 왕이 된 다윗"(사무엘하 5:1-5)의 끝부분에서 이 책을 소개하셨다.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가 있는 주간이었다. 왕이 된 사람이 가장 먼저 할 일은 말씀을 가까이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이어서였다.
목사님은 책의 제목과 부제 "개신교 신자를 위한 수도원의 영적 습관들"을 그대로 말씀하셨고 저자의 이름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속그룹 섬김이들이 보는 방에 올려 두었다고 하시며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하셨다.
설교에 나온 내용. 수도원 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일', 곧 오푸스 데이다. 엄격한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하루에 여덟 번,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하루에 네 번 기도한다. 종을 쳐서 기도 시간을 알리면 수도사들은 은혜로운 책을 읽고 있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든 모든 일을 멈추고 기도하러 온다. 책을 쓴 목사님이 수도원에서 이 시간에 늦는 수도사를 한 명도 보지 못해 수도원장에게 늦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모인 자리에서 수도원장 앞에 배를 깔고 엎드리는 벌을 받는다고 했다. 또 이 책이 권하는 것 가운데 실천할 만한 것으로 일주일에 한 번 부분 금식이나 하루 금식을 드셨다. 목사님은 우리의 오푸스 데이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은혜를 구하는 기도라고 하시고, 속그룹에서 이것을 서로 격려하자고 하셨다.
책이 맞다. 설교에 나온 제목과 부제가 한국어판(규장, 2022년 1월)과 글자 그대로 같다. 설교는 한국어판이 나온 지 석 달쯤 뒤의 것이다. 설교의 "책을 쓴 목사님"이라는 말도 맞는다. 저자는 장로교회에서 오래 목회한 목사다.
'하나님의 일(오푸스 데이)'은 9장 "균형"에 나온다. 원서 101쪽에서 저자는 이 말을 하루의 정해진 때마다 돌아오는 기도 시간으로 풀이한다. 원서 문장은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에 나오는 본문 조각으로 확인했다.
하루 여덟 번과 네 번도 책에 있다. 원서 101쪽은 시간 전례가 본디 하루 여덟 번의 기도였다고 적는다. 네 번은 1장에 나온다. 저자가 수도원에 머물며 수도사들과 하루 네 번의 기도 시간을 함께했다는 대목이다(원서 18쪽). 설교는 이것을 "엄격한 수도원은 여덟 번, 베네딕트 수도원은 네 번"으로 전했는데, 책의 조각에 글자로 나오는 것은 '본디 여덟 번'과 '저자가 함께한 네 번'이다.
기도 시간에 늦은 수도사가 수도원장 앞에 엎드린다는 이야기도 9장에 있다(원서 103쪽). 다만 설교와 조금 다르다. 책의 조각에서 저자는 이것을 베네딕트 규칙서 44장에 정해진 옛 벌로 소개한다. 그리고 오늘 수도사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그들은 좀처럼 늦지 않는다고 적는다. 설교에는 저자가 수도원장에게 물어서 들은 답으로 나오는데, 수도원장에게 물었다는 말은 확인한 조각에 보이지 않았다. 조각은 앞뒤 한두 문장만 보이므로 책의 다른 자리에 그런 대목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원서 문장은 책 안 검색의 조각으로 확인했다.
종이 울리면 모든 일을 멈추고 기도하러 간다는 문장은 책의 조각에서 찾지 못했다. 책 안 검색에서 종을 뜻하는 낱말로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확인한 것은 두 가지다. 저자는 늦은 수도사 이야기 바로 앞에서 규칙서 43장 3절을 들고, 바로 뒤에서 수도사들이 기도 시간에 일을 멈춘다고 말한다(원서 103쪽). 그리고 베네딕트 규칙서 43장은 기도 시간을 알리는 신호가 들리면 손에 든 것을 모두 놓고 서둘러 가라고 하며 하나님의 일보다 앞세울 것은 없다고 정한다(규칙서 영어 번역문으로 확인). 설교의 내용은 이 규정과 맞는다.
금식 권고는 책 끝의 "베네딕트회의 영성을 실천하기 위한 제안"에 있다. 열다섯 가지 제안 가운데 여섯째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부분 금식이나 온전한 금식을 하라는 것이다(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함께 든다). 원서 134쪽이며 책 안 검색의 조각으로 확인했다. 설교의 "일주일에 한 번 부분적으로 금식하거나 하루 온전히 금식"과 맞는다. 이 제안은 2004년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베네딕트회 체험 모임에서 나온 목록을 책이 실은 것이다.
설교에서 목사님이 대학 시절 강원도 황지의 예수원을 방문해 종소리를 들었다고 하신 것은 목사님 자신의 경험이며 이 책의 내용이 아니다. 가톨릭 사제가 서약할 때 엎드린다는 설명과 월요일 금식 이야기도 목사님이 덧붙이신 말씀이다.
한국어판에서 이 대목들이 몇 쪽에 어떤 문장으로 실려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위의 쪽수는 모두 원서의 것이다.
한국어판의 제목, 부제, 옮긴이, 출판사, 출간일, 쪽수, 목차, 책 소개, 발췌문, 저자 소개, 서문의 한 대목
예스24로 확인. 출간일과 쪽수는 알라딘으로도 확인
원서의 제목, 저자, 출판사, 출간 연월, 쪽수, 서문을 쓴 사람
구글 도서의 서지와 《퍼블리셔스 위클리》로 확인(144쪽, 2007년 12월). 개정판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함
원서의 장 제목과 쪽수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에 나오는 원서 차례 쪽(5쪽)의 조각으로 확인. 1장 제목의 앞머리는 《모던 리포메이션》 서평으로 확인
장별 내용 가운데 표시 없이 적은 것
예스24의 발췌문,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에 나오는 원서 본문 조각, 《모던 리포메이션》과 당당뉴스의 서평, 갓피플 묵상 글의 발췌로 확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대조한 것은 아니다. 조각은 검색어 둘레의 한두 문장만 보이므로 앞뒤 흐름은 읽지 못했다. 원서 쪽수는 구글 도서에 표시된 것과 서평에 적힌 것을, 한국어판 쪽수는 예스24와 당당뉴스 서평에 적힌 것을 옮겼다.
[확인필요]로 표시한 것
한 군데다. 블루클라우드 수도원이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있었다는 것은 정리자의 기억이며 이번에 자료로 확인하지 못함
한국어판 쪽수가 붙은 수도사의 하루 시간표(여섯 시간 노동, 세 시간 공부, 네 시간 기도)
당당뉴스 서평 한 편에서만 확인
실천 제안 열다섯 가지의 전체
첫째부터 여덟째까지만 확인. 아홉째의 뒷부분과 열째부터 열다섯째까지는 확인하지 못함
설교의 단서: 하나님의 일(오푸스 데이), 하루 여덟 번과 네 번의 기도
원서 101쪽(9장)과 18쪽(1장)의 조각으로 확인
설교의 단서: 늦은 수도사가 수도원장 앞에 엎드림
원서 103쪽(9장)의 조각으로 확인. 다만 저자가 수도원장에게 물어서 들었다는 대목은 확인하지 못함. 조각에는 규칙서의 옛 규정으로, 오늘은 본 적이 없다는 말과 함께 나온다.
설교의 단서: 종이 울리면 모든 일을 멈추고 기도하러 감
책의 문장으로는 확인하지 못함. 책이 그 자리에서 드는 베네딕트 규칙서 43장에 같은 내용이 있음은 규칙서 영어 번역문으로 확인
설교의 단서: 일주일에 한 번 부분 금식이나 온전한 금식
원서 134쪽 실천 제안의 여섯째 항목으로 확인
설교에 나온 대목의 한국어판 쪽수와 문장
확인하지 못함. 한국어 서평과 독자의 글에서 이 대목을 옮긴 것을 찾지 못했다.
저자가 봉헌자가 된 해
원서 19쪽 조각에는 수도원을 찾은 '다음 해'로 나온다. 한국어판 저자 소개는 첫 방문을 1987년으로 적는다. 봉헌자가 된 해를 숫자로 적은 자료는 확인하지 못함
이 책에 대한 비판적 서평
찾지 못함. 《뉴 블랙프라이어스》의 서평은 서지만 확인했고 본문은 읽지 못했다. 미국 누리집 '스피리추얼리티 앤드 프랙티스'와 '컬드업'의 서평은 열리지 않아 싣지 않았다.
읽는 분께. 이 글은 책을 읽고 쓴 독후 정리가 아니라, 공개된 자료로 책의 짜임을 잡고 알려진 내용을 덧붙인 안내입니다. 설교나 교재에 옮기실 때는 반드시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