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DOM THROUGH COVENANT: A BIBLICAL-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COVENANTS · PETER J. GENTRY, STEPHEN J. WELLUM · 2012
[목사님추천-확인필요]언약과 하나님 나라
미국 남침례신학교의 구약학자 피터 젠트리와 조직신학자 스티븐 웰럼이 함께 쓴 책으로, 창조 때부터 새 언약까지 성경의 언약들이 차례로 이어지며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고 설명합니다. 한국어판의 서지와 목차, 세 부의 내용, 다윗 언약을 다룬 11장, 저자들의 입장이 장로교의 전통적 언약신학과 다른 점, 그리고 개혁파와 세대주의 양쪽의 비판을 정리했습니다. 목사님이 가리키신 책이 이 책인지는 확정되지 않았으며, 그 사정을 '설교와 이 책' 탭에 적었습니다.
정리 2026-10-12 · 책 본문은 읽지 못함 · 한국어판의 서지, 목차, 책 소개, 책 속 발췌, 출판사 리뷰, 추천사는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으로, 원서 초판과 2판의 서지와 차례는 출판사 크로스웨이 누리집으로, 2판 서문과 초판 서문, 2판 1장은 크로스웨이가 공개한 발췌본으로, 장별 내용과 평가는 영어권 서평과 저자들의 답변, 저자 인터뷰, 한국어 독자 서평으로 확인 · 자료로 확인하지 못한 내용은 [확인필요]로 표시함
언약들의 차례점진적 언약주의다윗 언약침례교의 관점
한눈에
『언약과 하나님 나라』(원제 Kingdom through Covenant: A Biblical-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Covenants)는 피터 J. 젠트리와 스티븐 J. 웰럼이 2012년 6월 미국 크로스웨이 출판사에서 낸 848쪽의 책이다. 원제는 "언약을 통한 하나님 나라: 언약들에 대한 성경신학적 이해"라는 뜻이다. 한국어판은 김귀탁이 옮겨 새물결플러스에서 2017년 12월 8일에 양장 1,160쪽으로 나왔다. 원서는 2018년 6월에 960쪽의 2판이 나왔는데, 한국어판은 그보다 먼저 나왔고 목차가 초판과 같다.
책은 세 부 열일곱 장이다. 1부(1~3장)와 3부(16~17장)는 조직신학자 웰럼이, 2부(4~15장)와 부록은 구약학자 젠트리가 썼다. 1부는 언약을 둘러싼 두 신학 체계인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을 소개하고 해석의 원칙을 세운다. 2부는 노아 언약, 창조 언약, 아브라함 언약, 이스라엘(모세)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을 본문 주해로 하나씩 풀이한다. 3부는 그 결과를 간추리고 신학의 여러 주제에 적용한다.
저자들은 자기 입장을 '점진적 언약주의'(progressive covenantalism)라고 부르고, 세대주의와 언약신학 사이의 다른 길이라고 소개한다. 두 저자는 침례교 신학교의 교수이며, 교회는 거듭나 믿음을 고백한 사람들로 이루어지므로 세례도 믿음을 고백한 사람에게만 주어야 한다고 본다. 이 점에서 유아세례를 베푸는 장로교·개혁파의 전통적 언약신학과 갈린다. 한국어판 출판사도 책 소개에서 장로교 신자들은 이 점을 유념하면서 읽으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자세한 차이와 양쪽의 비판은 '평가와 논쟁' 탭에 정리했다.
저자들이 책머리에서 밝힌 두 가지 목적. 첫째, 언약이라는 개념이 성경 이야기의 줄거리 짜임에 얼마나 중심이 되는지를 보인다. 둘째, 기독교 신학 안의 여러 중요한 견해 차이와 그 해결이 성경의 언약들이 어떻게 펼쳐지고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한 이해와 곧바로 묶여 있음을 보인다(초판 21쪽, 여러 서평이 인용). 저자들은 언약이 성경신학의 '중심'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언약들이 차례로 이어지는 것이 성경 이야기의 '등뼈'라고 말한다.
책 정보
항목
내용
원제
Kingdom through Covenant: A Biblical-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Covenants
저자
피터 J. 젠트리(Peter J. Gentry)와 스티븐 J. 웰럼(Stephen J. Wellum). 한국어판 저자 소개에 따르면 젠트리는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남침례신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치며, 독일 괴팅겐 70인역 총서의 전도서와 잠언을 편집하고 있다. 웰럼은 미국 로버츠 웨슬리안 대학에서 학사, 트리니티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남침례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친다. 크로스웨이 누리집은 웰럼을 《남침례 신학 저널》의 편집인으로 소개한다. 복음연합 누리집에 지금 실린 소개에는 젠트리가 피닉스신학교의 구약학 초빙 석좌교수로 적혀 있다.
원서 초판
2012년 6월 30일, 미국 크로스웨이(Crossway) 출판사, 848쪽, 양장, ISBN 978-1-4335-1464-7. 크로스웨이 누리집에는 절판으로 표시되어 있다.
원서 2판
2018년 6월 30일, 크로스웨이, 960쪽, 양장, ISBN 978-1-4335-5307-3. 열아홉 장으로 늘었다. 2판에서 달라진 점은 '평가와 논쟁' 탭에 적었다.
축약판
God's Kingdom through God's Covenants: A Concise Biblical Theology(하나님의 언약들을 통한 하나님 나라: 간추린 성경신학). 2015년 8월 31일, 크로스웨이, 304쪽. 같은 두 저자가 이 책을 줄여 다시 쓴 책이다. 이 축약판의 한국어판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한국어판
김귀탁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년 12월 8일, 양장, 1,160쪽, ISBN 9791161290447(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는 크기 160×232×59mm, 무게 1,752g으로 적혀 있다. 교보문고에는 판매 중으로 표시되어 있다.
한국어판이 옮긴 판
서점 자료에는 어느 판을 옮겼는지 적혀 있지 않다. 다만 한국어판 목차(17장, 14장 다니엘서, 15장 에베소서 4:15, 부록)는 크로스웨이 누리집의 초판 차례와 장 하나하나가 같고, 한국어판은 2판보다 여섯 달 먼저 나왔다. 그러므로 초판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옮긴이
김귀탁. 예스24의 소개에 따르면 총신대학교 신학과와 같은 대학교 일반대학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ESV 스터디 바이블』, 『성경적·신학적·역사적 관점에서 본 언약신학』 등을 옮겼다.
평가
한국어판에는 김회권, 기민석, 김재윤, 류호준, 성주진, 이경직, 이승구, 차준희, 한상화, 황선우, 홍성혁 등 국내 신학자들과 토머스 슈라이너, 마일스 반 펠트, 조나단 리먼 등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영어권에서는 2012년 9월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이 세대주의, 언약신학, 그 사이의 입장에 선 학자 세 사람의 서평을 잇달아 싣고 저자들의 답변을 받았다. 주해의 꼼꼼함은 널리 인정받았고, 신약 본문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과 양쪽 전통에서 나온 반론이 있었다.
책의 열쇠 말
말
뜻
언약
저자들이 따르는 정의는 "맹세 아래 의무를 지는, 선택으로 맺은 관계"다(휴겐버거의 정의, 초판 132쪽). 언약의 중심에는 사랑 안에서의 신실함과 충성으로 이루어진 당사자 사이의 관계가 있다고 본다(141쪽).
언약을 통한 하나님 나라
책의 원제이자 주장. 더글러스 무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들은 '통한'이라는 말을 '수단으로 삼아'와 '차례로 이어져'의 두 뜻으로 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언약들을 수단으로, 그리고 언약들이 차례로 이어지는 가운데 세워진다는 뜻이다.
점진적 언약주의
저자들이 자기 입장에 붙인 이름. '점진적'은 하나님의 계시가 옛것에서 새것으로 차츰 펼쳐진다는 뜻이고, '언약주의'는 하나님의 계획이 언약들을 통해 펼쳐지며 그 언약들이 모두 그리스도와 새 언약에서 완성된다는 뜻이다(초판 24쪽). 한국어판 추천사에는 '점진적 언약사상'으로 옮겨져 있다.
언약신학
개혁파와 장로교의 전통적 체계. 한국어판 2장 발췌에 따르면 언약신학은 하나님이 하나의 구속 계획과 한 백성을 갖고 계시며 언약 공동체로서 이스라엘과 교회가 비슷하다고 늘 주장해 왔다. 저자들은 이 체계가 성경의 언약들을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의 두 범주로 나눈다고 설명한다.
세대주의
한국어판 2장 발췌에 따르면 모든 형태의 세대주의 신학의 핵심에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는 생각이 있다. 저자들은 세대주의가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의 약속이 민족 이스라엘에게 문자 그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점을 비판한다.
모형론(예표론)
구약의 인물, 사건, 제도가 그보다 더 큰 신약의 성취를 미리 보여 주도록 하나님이 정하셨다고 보고 그 대응을 살피는 해석. 저자들은 리처드 데이비슨의 정의를 쓴다. 저자들은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이 저마다 다른 지점에서 이 대응을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다고 본다.
세우다와 맺다
젠트리가 무게를 두는 히브리어 구분. 언약을 '자르다'(카라트 베리트)는 새 언약을 처음 맺는 것이고, 언약을 '세우다'(헤킴 베리트)는 이미 있는 언약을 지키고 다시 확인하는 것이라고 본다. 노아 언약이 창조 때의 언약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여기에 기대고 있다.
사람의 법
사무엘하 7장 19절 끝의 말. 개역개정은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로 옮긴다. 젠트리는 이 말을 다윗 언약이 온 인류를 위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읽는다. '다윗 언약' 탭에 적었다.
책의 짜임
한국어판과 원서 초판은 세 부 열일곱 장에 부록 하나다. 1부(1~3장)와 3부(16~17장)는 웰럼이, 2부(4~15장)와 부록은 젠트리가 썼다. 2부에서 노아 언약(5장)이 창조 언약(6장)보다 앞에 놓인 것은 성경에서 '언약'이라는 낱말이 처음 나오는 곳이 노아 이야기이고, 거기 쓰인 말이 창조 때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젠트리가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아래 한국어 제목은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새물결플러스, 2017) 목차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영어 제목은 크로스웨이 누리집에 실린 원서 초판의 차례다. 초판 차례에는 부와 장만 적혀 있어, 머리말과 부록, 참고문헌의 영어 제목은 2판의 차례에서 확인한 것만 적었다.
2018년에 나온 2판은 열아홉 장이다. 새 언약의 에스겔서 부분이 따로 한 장(14장)이 되었고, 에베소서 4장 15절을 다룬 장은 차례에서 빠졌으며, 3부가 네 장(16~19장)으로 늘었다. 그러므로 2판을 가리키는 영어 자료의 장 번호와 쪽수는 한국어판과 다르다. 다윗 언약은 초판과 2판 모두 11장이다.
부
한국어판 제목
원서 초판 제목
머리
머리말 / 약어표
2판 차례에는 Preface to the First Edition, Abbreviations로 실려 있다
1부 서론
1장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에서 언약의 중요성
Part 1: Prolegomena / 1. The Importance of Covenants in Biblical and Systematic Theology
1부
2장 성경적·신학적 체계에서의 언약들: 세대주의 신학과 언약신학
2. Covenants in Biblical-Theological Systems: Dispensational and Covenant Theology
1부
3장 성경의 언약들을 "하나로 종합할" 때 나타나는 해석학적 문제
3. Hermeneutical Issues in "Putting Together" the Covenants
2부 성경의 언약들에 대한 해설
4장 성경과 고대 근동의 언약 개념
Part 2: Exposition of the Biblical Covenants / 4. The Notion of Covenant in the Bible and in the Ancient Near East
2부
5장 노아 언약
5. The Covenant with Noah
2부
6장 창세기 1-3장의 창조 언약
6. The Covenant with Creation in Genesis 1–3
2부
7장 아브라함 언약(I)
7. The Covenant with Abraham (I)
2부
8장 아브라함 언약(II)
8. The Covenant with Abraham (II)
2부
9장 이스라엘(모세) 언약: 출애굽기
9. The Israelite (Mosaic) Covenant: Exodus
2부
10장 이스라엘(모세) 언약: 신명기
10. The Israelite (Mosaic) Covenant: Deuteronomy
2부
11장 다윗 언약
11. The Davidic Covenant
2부
12장 새 언약: 서론/이사야서/에스겔서
12. The New Covenant: Introduction/Isaiah/Ezekiel
2부
13장 새 언약: 예레미야서
13. The New Covenant: Jeremiah
2부
14장 다니엘서의 일흔 이레 본문에 나타난 새 언약
14. The New Covenant in Daniel's Seventy Weeks
2부
15장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라(엡 4:15): 새 언약 공동체의 삶
15. Speaking the Truth in Love (Ephesians 4:15): Life in the New Covenant Community
3부 신학적 통합
16장 "언약을 통한 하나님 나라": 성경신학적 요약
Part 3: Theological Integration / 16. "Kingdom through Covenant": A Biblical-Theological Summary
3부
17장 "언약을 통한 하나님 나라": 몇 가지 신학적 의미
17. "Kingdom through Covenant": Some Theological Implications
부록
부록: "베리트"의 사전적 분석
2판 차례에는 Appendix: Lexical Analysis of bĕrît로 실려 있다. 베리트는 '언약'을 뜻하는 히브리어다
끝
참고문헌: 1부와 3부 / 2부, 인명 색인
2판 차례에는 General Index, Scripture Index가 있다
표시에 대하여. 이어지는 탭에서 [확인필요] 표시가 붙은 대목은 정리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부가 틀릴 수 있으니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 표시가 없는 대목은 서점의 책 소개나 목차, 백과사전, 기사처럼 실제로 열어 본 자료에 나온 내용입니다.
머리말과 1부 서론(1~3장) · 웰럼 집필
1부는 조직신학자 웰럼이 썼다. 언약이 왜 중요한지를 말하고(1장), 언약을 놓고 갈라진 두 체계인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을 소개하며(2장), 여러 언약을 하나로 엮어 읽을 때의 해석 원칙을 세운다(3장).
아래에서 쪽수를 '초판 ○쪽'이라고 적은 것은 영어 서평이 인용한 원서 초판의 쪽수이고, '한국어판 ○쪽'이라고 적은 것은 한국어 독자 서평이 인용한 쪽수다. 2판의 서문과 1장은 출판사가 공개한 발췌본으로 읽었고, 그 내용은 2판의 것이라고 밝혀 적었다.
머리말(초판 서문)
저자들은 이 책의 설계가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이 손을 맞잡고 간다는 확신에 바탕을 둔다고 밝힌다. 조직신학은 성경신학 위에 서야 하고, 성경신학은 본문의 문화적·역사적 배경, 언어 자료, 문학적 장치,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줄거리 짜임을 꼼꼼히 살피는 주해 위에 서야 한다. 거꾸로 주해와 성경신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우리의 생각과 삶을 성경 아래 두려는 조직신학을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2판에 다시 실린 초판 서문).
그래서 성경학자와 조직신학자가 함께 써야 했다고 한다. 젠트리는 2부(4~15장)에서 구속사를 따라 성경의 언약들을 길게 풀이하고 책 끝의 부록을 썼다. 웰럼은 1부(1~3장)와 3부(16~17장)를 썼다. 1부에서는 오늘의 두 주된 신학 견해인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에 견주어 논의의 틀을 세우고, 3부에서는 '언약을 통한 하나님 나라'라는 제안의 큰 그림을 간추린 뒤 신론,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에서 따라 나오는 결론을 끌어낸다.
서문은 원고를 마친 뒤에 나온 같은 주제의 책들을 짧게 평한다. 스콧 한의 『언약에 의한 친족 관계』(2009)는 고대 근동의 왕의 하사 조약과 종주·봉신 조약이라는 범주를 본문이 허락하는 것보다 굳게 따른다고 본다. 제임스 해밀턴의 책(2010)은 '심판을 통한 구원'을 성경 전체의 중심 주제로 내세우는데, 저자들은 그것이 큰 주제임은 인정하되 다른 주제를 제쳐 둘 만한 유일한 주제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레그 니콜스의 침례교 언약신학(2011)은 전통적 언약신학의 표준 주해를 대부분 그대로 받아 침례교에 맞게 고친 것이라고 보고, 지난 50년의 연구가 주해를 처음부터 다시 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샌드라 릭터의 구약 안내서(2008)는 언약이 구약 줄거리의 열쇠라고 보는 점에서 자신들과 같다고 한다.
그레고리 빌의 『신약성경신학』(2011)에 대해서는 좋은 점이 많다고 하면서도 길게 반론한다. 빌은 창조와 새 창조를 성경의 주된 주제로 삼는데, 저자들이 보기에 그것은 줄거리의 양 끝일 뿐이고 그 사이의 짜임은 언약들이 이룬다. 또 빌이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주일은 새 창조의 표이고 안식일은 첫 창조와 이제 낡은 옛 언약의 표라는 것이다. 빌이 유아세례를 변호하는 것도 새 언약의 표인 세례와 아브라함 언약의 표인 할례를 뒤섞는 일이라고 본다. 저자들은 빌의 책을 세련된 언약신학이라고 부르고, 성경 자신이 언약들을 펼치는 방식에 비추어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젠트리의 자녀와 손주들, 그리고 웰럼의 부모에게 바쳐졌다. 젠트리의 헌사에는 시편 78편 5~7절이 실려 있다. 서문 끝에는 이 책이 성경의 언약들을 더 잘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도록 이끌기를 바란다는 기도가 적혀 있다.
1장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에서 언약의 중요성
저자들은 책의 두 가지 목적을 밝힌다. 언약 개념이 성경 줄거리의 짜임에 얼마나 중심이 되는지를 보이는 것, 그리고 기독교 신학 안의 여러 중요한 차이와 그 해결이 언약들이 어떻게 펼쳐지고 이어지는지에 대한 이해와 묶여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초판 21쪽, 새뮤얼 레니한의 서평과 《성경신학·신학연구 저널》 서평이 인용).
저자들은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이 정경 전체에 걸쳐 언약들을 풀어내는 지금의 방식이 "아주 옳지는 않다"고 확신하며, 두 전통에서 배우면서도 둘을 중재하는 다른 읽기, 곧 '가운데 길'을 내놓는다고 말한다(초판 23쪽, 《웨스트민스터 신학 저널》 서평이 인용).
초판에서 저자들은 자기 견해가 넓게는 '새 언약 신학'이라 불리는 것 아래 들어간다고 하면서, 더 나은 이름으로 '점진적 언약주의'를 만들어 쓴다고 했다(초판 24~25쪽, 여러 서평과 한 독자의 댓글이 인용). 웰럼은 인터뷰에서 이 이름을 남침례신학교의 학생 리처드 루커스가 제안했다고 밝혔다. 2판에서는 '새 언약 신학' 안에 견해 차이가 크다는 까닭으로 '점진적 언약주의'만을 자기 이름으로 삼는다.
한국어판 1장 발췌(예스24 '책 속으로').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전체 경륜"을 밝히고 하나님을 따라 그분처럼 생각하고자 시도하며, 모든 신학과 교리의 기초와 토대를 준다. 조직신학은 성경을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하는 일을 포함하므로 성경신학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그러므로 조직신학은 성경신학에 기초하고 역사신학에 비추어 이루어지는 신학의 구성과 교리의 형성을 포함한다.
2판 1장(공개 발췌본)은 성경신학의 역사를 짧게 훑는다. 1787년 가블러의 취임 강연에서 비롯된 길은 성경의 영감과 통일성을 전제하지 않는 역사비평의 길이어서 받아들이지 않고, 게할더스 보스가 프린스턴에서 닦은 길, 곧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받고 구속사의 전개를 따라 읽는 길을 따른다고 밝힌다. 성경신학의 정의는 브라이언 로스너의 것을, 조직신학의 정의는 존 프레임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는 것"을 쓴다.
2판 1장은 저자들의 주장이 새 통찰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개혁파 전통은 언약의 중요성에 대해 길게 써 왔고 언약을 중심으로 신학을 짜 왔으며, 마이클 호튼의 말처럼 개혁신학은 언약신학과 같은 말이라고 할 만하다. 저자들이 다투는 것은 언약이 중요한가가 아니고 언약들을 어떻게 하나로 엮느냐다. 또 두 체계가 복음의 핵심에서는 일치하므로 차이를 부풀려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한다.
2장 성경적·신학적 체계에서의 언약들: 세대주의 신학과 언약신학
한국어판 2장 발췌(예스24). 모든 형태의 세대주의 신학의 핵심에는 "이스라엘-교회" 구분이 있다. 언약신학은 세대주의와 달리 시대 전체에 걸친 하나님의 계획의 연속성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 왔고, 특히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에서 그러하다. 이 지점에서 두 체계의 교회론과 종말론의 차이가 갈라진다. 언약신학은 하나님이 하나의 구속 계획과 한 백성을 갖고 계시며 언약 공동체로서 이스라엘과 교회의 비슷한 점이 중요하다고 늘 주장했다.
세대주의 쪽 서평자 크레이그 블레이징에 따르면 이 장은 세대주의의 여러 갈래를 『점진적 세대주의』라는 책의 구분을 따라 소개하고, 이어 언약신학을 설명하면서 교회를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가 섞인 모임으로 보고 유아세례를 베푸는 견해에 초점을 맞추어 끝맺는다.
웰럼은 두 체계가 저마다 아브라함 언약의 한 요소를 붙든다고 본다. 세대주의는 땅의 약속을, 언약신학은 '너와 네 후손'이라는 혈통의 원리를 새 언약 시대까지 그대로 잇는다는 것이다(프레드 재스펠과 에바 디트만의 서평). 그는 언약신학이 그리스도를 '참 이스라엘'로 보면서도 모형인 이스라엘이 원형이신 그리스도께 어떻게 이르는지를 먼저 따지지 않고 이스라엘에서 교회로 너무 빨리 넘어간다고 쓴다(초판 125쪽, 데이비드 토멘의 서평이 인용).
웰럼은 언약신학이 새 언약의 실재를 구약 안으로 거슬러 읽고 그 반대로도 읽는 경향이 있다고 쓴다(초판 113쪽). 그가 든 실재는 성령의 내주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조너선 브랙의 서평이 인용). 또 언약신학이 말하는 '은혜 언약'은 사실상 아브라함 언약을 영적인 면으로만 줄인 것이라고 본다(초판 70쪽, 토멘의 서평이 인용).
이 장의 소개가 공정한지에 대해서는 평이 갈린다. 더글러스 무는 좀 이상하고 좁게 고른 저자들에 기대고 있으나 충분히 공정하다고 했다. 재스펠은 공정하고 잘 아는 서술이어서 어느 쪽에서도 대체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 저널》의 서평은 언약신학을 호튼과 더글러스 윌슨 같은 몇 사람으로 대표시키고 오웬, 굿윈, 튜레틴, 바빙크 같은 중요한 인물을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3장 성경의 언약들을 "하나로 종합할" 때 나타나는 해석학적 문제
한국어판 3장 발췌(예스24). 성경의 각 언약은 먼저 그 자체의 문맥 속에 놓이고, 이어 구속사에서 그 앞에 오는 것에 비추어, 다음으로 그 뒤에 오는 것에 비추어, 마지막으로 정경 전체와 그리스도의 오심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이 절차를 따를 때에만 구약의 문맥을 그 자체로 진지하게 다루고, 구약 안에서 본문끼리 이어지는 전개를 밝히며, 모든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발견한다.
이것이 이른바 해석의 '세 지평'이다. 본문 자체의 가까운 문맥(본문의 지평), 그 본문이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놓인 자리(시대의 지평), 정경 전체와 새 언약(정경의 지평)이다. 웰럼은 인터뷰에서 이 틀을 리처드 린츠에게서 빌렸고, 린츠는 게할더스 보스에서 이어지는 웨스트민스터 전통의 성경신학에 힘입었다고 밝혔다.
한 한국어 독자 서평(샤마임)이 전하는 이 장의 흐름은 이렇다. 성경은 스스로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완전히 권위 있고 충분하며 신뢰할 수 있음을 증언한다(한국어판 119쪽). 한 분이 말씀하신 것이므로 신구약은 통일성과 일관성을 지닌다(120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자 행위'이고, 차츰 펼쳐지는 계시다. 이 서평은 성경이 구속의 드라마에 대한 하나의 줄거리와 하나님의 해석을 펼친다는 대목(131쪽)을 1부의 결론으로 든다.
저자들은 모형론의 정의를 리처드 데이비슨에게서 가져온다. 모형론은 하나님이 구약의 구원사적 실재(인물, 사건, 제도)를 신약 구원사에서 더 커진 성취에 대응하고 그것을 미리 보여 주도록 특별히 정하셨다고 보고 그것을 연구하는 일이다(초판 103쪽, 블레이징의 논문이 인용). 블레이징은 이 정의가 변호 없이 그대로 쓰였다고 비판했다.
웰럼은 인터뷰에서 성경의 모형들이 거의 모두 언약들과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말했다. 아담, 아브라함, 모세, 다윗 같은 인물도, 출애굽 같은 사건도, 제사장직과 성막·성전과 왕권 같은 제도도 언약을 따라 전개된다. 모형론을 언약에 묶어 두면 멋대로 하는 풍유적 해석을 막을 성경적 근거가 생긴다고 한다.
2부 성경의 언약들에 대한 해설(4~10장, 12~15장)과 부록 · 젠트리 집필
2부는 구약학자 젠트리가 썼고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언약 개념을 다루는 4장에 이어 노아, 창조, 아브라함, 이스라엘(모세), 다윗, 새 언약을 차례로 풀이한다. 다윗 언약(11장)은 다음 탭에 따로 적었다.
젠트리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방법을 네 가지로 말했다. 문화적 배경을 살피고, 언어 자료를 살피고, 본문의 문학적 짜임을 살피고, 그 본문이 성경 전체의 줄거리와 맺는 관계를 늘 눈여겨본다는 것이다. 고대 근동의 자료와는 같은 점뿐 아니라 다른 점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한다.
4장 성경과 고대 근동의 언약 개념
젠트리는 고든 휴겐버거의 정의를 쓴다. 언약은 보통의 뜻으로는 날 때부터 주어진 관계와 달리 선택으로 맺는, 맹세 아래 의무를 지는 관계다(초판 132쪽). 언약의 중심에는 사랑 안에서의 신실함과 충성으로 이루어진 당사자 사이의 관계가 있다(141쪽). 디트만과 무의 서평이 이 대목을 인용한다.
이 장의 논제는 언약들이 더 큰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는 것, 곧 언약들이 성경 서사의 등뼈라는 것이다(초판 138쪽, 한국어판 199쪽). 한 한국어 독자 서평은 하나님이 대등한 처지의 계약과 다른, 충성을 요구하시는 언약을 맺으시며 언약의 목적은 사랑(한국어판 210쪽)이라는 것을 이 장의 요점으로 전한다. 2판 차례에는 이 장에 '언약과 계약의 비교와 대조'라는 표가 있다.
젠트리는 히브리어 낱말 짝 '헤세드'(충성된 사랑)와 '에메트'(신실함)를 언약마다 살핀다. 《성경신학·신학연구 저널》의 서평은 이 두 낱말이 저자들이 각 언약을 풀이할 때 의미의 등뼈 구실을 한다고 전한다.
젠트리는 구약이 언약을 처음 맺는 말(언약을 '자르다')과 이미 있는 언약을 다시 확인하는 말(언약을 '세우다' 또는 '지키다')을 한결같이 가려 쓴다고 주장한다(초판 155쪽, 무의 서평이 인용). 이 구분은 뒤의 장들에서 중요한 근거로 쓰이며, 서평자들의 질문도 여기에 모였다.
책의 논쟁적인 주장 하나는 성경의 언약들이 고대 근동의 두 조약 유형, 곧 종주·봉신 조약과 왕의 하사 조약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약은 하나님이 성취를 보증하신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이면서, 신실하고 순종하는 언약 상대가 있어야 성취된다는 점에서 조건적이다(무의 서평). 젠트리는 인터뷰에서 두 조약 유형이 예전에 생각한 만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요즘 연구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5장 노아 언약
한국어판 5장 발췌(예스24). 신학자들은 언약들을 조건적 언약 아니면 무조건적 언약으로 나누는 데 힘써 왔다. 그러나 본문을 정확히 드러내려 한다면 이런 범주는 쓸모가 없다. 노아 언약은 결코 꺾일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동물과 인간 공동체에게 그들의 행동과 청지기 임무에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젠트리에게 가장 중요한 근거는 창세기 6장 18절과 9장 9, 11, 17절에 '세우다'라는 말이 쓰였다는 점이다. 그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새 언약을 처음 맺으신 것이 아니고 창조 때 이미 맺으신 언약을 지키고 다시 확인하신 것이라고 읽는다(재스펠의 서평).
한 한국어 독자 서평에 따르면 젠트리는 노아가 받은 명령이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것이라고 하고(한국어판 239쪽), 홍수를 심판을 넘어선 '새 창조'로(234쪽), 노아를 '새 아담'으로(236쪽) 소개한다.
재스펠은 이 논증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물었다. 창세기 6~9장을 처음 읽으면 하나님이 여기서 따로 한 언약을 맺으시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세우다'라는 말에 다른 뜻빛깔이 있을 수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6장 창세기 1-3장의 창조 언약
젠트리는 창세기 1~3장에 '언약'이라는 낱말이 없어도 언약이 있다고 논증한다. 디트만의 서평에 따르면 그는 창세기 1장 26절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 관계(아들 됨)와 사람과 땅 사이의 언약 관계(섬기는 왕 노릇)를 함께 연다고 본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과 아담의 아들 됨이 그 근거다.
젠트리가 노아에서 창세기 1~3장으로 되돌아가는 까닭을 한 한국어 독자 서평은 이스라엘의 구원 교리가 창조 교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한국어판 321쪽)로 전한다.
저자들은 이 창조 언약을 전통적 언약신학의 '행위 언약'과 같은 것으로 놓지 않는다. 다만 2판 1장의 각주에서 창조 언약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자신들이 인정한다고 밝혀, 이 둘을 부정하는 일부 '새 언약 신학'과 선을 긋는다.
서평자들의 반응. 세대주의자 대럴 복은 이 책이 창세기의 행위 언약에 의문을 던지면서 그것을 창조 언약으로 다시 짰다고 보았다. 재스펠은 증거에 감명받았으나 약속도 맹세도 명시된 조건도 없다는 점이 걸린다고 했고, 축약판 서평에서는 저자들의 창조 언약이 행위 언약, 아담 언약 등으로 불려 온 것과 내용에서 구별되지 않아 보인다고 썼다.
7~8장 아브라함 언약
젠트리는 아브라함을 아담과 노아 뒤의 또 한 번의 새 출발로 읽는다. 아담에게 세 아들이 있었고 창세기 5장의 족보가 세 아들을 둔 사람(노아)으로 끝나며 11장의 족보도 세 아들을 둔 사람(데라)으로 끝난다는 문학적 대응을 근거로, 아브람과 그의 가족이 또 하나의 아담이라고 본다(초판 224쪽, 토멘의 서평이 인용).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복을 받음으로 하나님과 세상 모든 민족 사이의 깨어진 관계가 화해되고 고쳐진다(초판 245쪽). 아브라함 언약은 이때부터 하나님이 인류를 대하시는 모든 일의 바탕이 된다(295쪽). 토멘과 디트만의 서평이 인용한 대목이다.
《성경신학·신학연구 저널》의 서평에 따르면 젠트리는 아브라함 언약이 창세기 15장 18절에서 '맺어지고' 17장에서 '세워진다'고 본다. 2판 차례에는 8장에 고대 근동 지도와 '창세기 12장, 15장, 17장, 22장의 관계'라는 그림이 있다.
한 한국어 독자 서평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새 창조'의 산물로 소개되고(한국어판 325쪽), 아브라함 언약 안에 '나라'(히브리어 고이)가 들어 있어 여기서부터 특별한 나라의 개념으로 나아가며, 젠트리는 언약이라는 수단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갖는다고 주장한다(353쪽).
저자들은 아브라함 언약에 민족적 약속과 온 세계를 향한 약속이 함께 들어 있다고 보고, 땅의 약속이 가나안이라는 한 지역에 그치지 않는다고 읽는다. 이 읽기는 3부에서 세대주의와 갈라지는 근거가 된다. 세대주의 쪽의 반론은 '평가와 논쟁' 탭에 적었다.
9장 이스라엘(모세) 언약: 출애굽기
한국어판 9장 발췌(예스24).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가족을 통해, 마지막 아담인 이스라엘을 통해 첫 사람 아담이 일으킨 죄와 죽음의 해결책을 주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고대 세계의 강대국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자리에 있었고, 거기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법, 서로를 참으로 사람답게 대하는 법, 땅의 자원을 청지기로서 신실하게 돌보는 법을 민족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의 뜻이다.
같은 발췌에서 저자는 토라가 단순한 '법'이 아니고 자기 백성의 아버지이자 왕이신 하나님이 주신 인격적인 '교훈'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언약의 교훈' 같은 말이 더 쓸모 있다고 한다. 무의 서평도 저자들이 율법을 '교훈'이라 부르기를 좋아한다고 적는다.
한 한국어 독자 서평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내 소유'(한국어판 455쪽), '제사장 나라'(459쪽), '거룩한 백성'(467쪽)으로 풀이된다. 제사장 나라로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길을 민족들에게 알리고 민족들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이끄는 구실을 한다(초판 303쪽, 토멘의 서평이 인용).
젠트리가 이 장을 맺는 말.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왕으로 다스리기를 바라시고 그들의 삶을 인도하고 가르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사랑과 충성과 신뢰의 관계 안에서 그렇게 하려 하신다(초판 356쪽, 한국어판 513쪽). 토멘은 이 말이 다윗 언약에 대한 젠트리의 견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썼다.
10장 이스라엘(모세) 언약: 신명기
젠트리는 신명기를 시내산 언약의 갱신이자 보충으로 본다(초판 379~381쪽).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맡겨진 아담의 구실을 다하게 하려는 것이다(388쪽, 《성경신학·신학연구 저널》 서평).
무는 여기서 논리의 틈을 짚었다. 저자들은 신명기 29장 1절이 모압 언약을 '맺다'(자르다)라는 말로 적으므로 그 자체로 하나의 언약이라고 하면서도 그것이 시내산 언약을 대신하지 않고 보충한다고 말한다(초판 377~382쪽). 그렇다면 새 언약을 '맺는다'는 말만으로 앞선 언약이 모두 끝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저자들은 답변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모세 언약이 깨졌고 처음 약속한 세대가 죽었으므로, 새 세대가 그 언약을 잇기 위해서는 언약을 '맺어야' 했다. 젠트리는 이를 은혼식에 부부가 혼인 서약을 다시 하는 일에 견주며 '언약을 지키려고 언약을 맺는 것'이라고 부른다(초판 390쪽 각주, 재스펠의 서평이 인용). 재스펠은 그렇다면 '맺다'라는 말이 갱신을 가리킬 때도 있다고 보는 편이 쉽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2판 차례에는 이 장에 고대 근동의 조약 형식을 견준 그림과, 고대 근동의 법·조약과 신명기를 견준 그림이 있다. 젠트리는 인터뷰에서 모세 언약의 문서가 형식은 조약이고 내용은 법률 논고여서 고대 근동의 어느 문서와도 다르다고 말했다.
12장 새 언약: 서론/이사야서/에스겔서
토멘의 서평은 이 책이 새 언약을 예레미야 31장 하나에 가두지 않고 이사야와 에스겔에서 시작해 예레미야, 다니엘의 일흔 이레로 나아가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디트만의 서평에 따르면 선지자들은 앞선 언약들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알린다. 이스라엘과의 전혀 새로운 언약 관계, 백성을 건질 영원한 다윗 계통의 왕, 성전의 회복, 이방인이 함께 들어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은 바탕, 목적, 피로 시작한다는 점, 하나님의 교훈의 성격에서 같다. 새 언약에는 죄 없는 더 나은 중보자, 더 나은 제사, 더 나은 공급(성령), 더 나은 약속이 있다(초판 513쪽, 디트만의 서평이 인용).
저자들은 새 언약을 '맺는' 일이 이스라엘 언약을 법전 또는 격식을 갖춘 약정으로서는 저절로 낡은 것으로 만든다고 쓴다(초판 512쪽, 무의 서평이 인용). 그래서 이스라엘 언약의 율법이 새 언약의 그리스도인에게 곧바로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무는 이 결론에는 동의하면서도 거기에 이르는 낱말 논증에는 의문을 달았다.
에스겔 16장 60절과 62절은 새 언약을 '맺다'가 아닌 '세우다'로 말한다. 초판은 여기서 자신들이 세운 구분이 들어맞지 않음을 인정했고 무가 이 틈을 지적했다. 저자들은 답변에서 풀이를 고쳤다. 59절과 61절의 언약은 모세 언약이고 60절 뒤쪽과 62절의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이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셔서 이웃 민족들을 이스라엘에게 딸로 주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 고친 풀이는 축약판(2015)과 2판에 실렸다.
저자들은 구약 안에서 이미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뜻이 바뀌어 유대인과 이방인을 함께 아우르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게 된다고 읽고, 이사야 19장과 56장, 예레미야 12장과 16장을 근거로 든다(저자들의 답변). 세대주의 쪽 구약학자 마이클 그리산티는 이 본문들이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에 넓게 들어올 것을 내다볼 뿐 이스라엘을 새로 정의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13장 새 언약: 예레미야서
한 한국어 독자 서평에 따르면 젠트리는 예레미야서의 새 언약에서 '새 마음'을 강조한다. 예레미야서는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는 백성의 마음의 완악함(한국어판 720쪽)을 드러낸다.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의 교훈(토라)이 안으로 새겨져, 사람이 헤아리고 느끼고 결심하고 계획하는 삶의 중심인 마음에 기록될 것이다(724쪽).
이 장은 책의 교회론을 받치는 기둥이다. 저자들은 예레미야 31장 34절의 "다 나를 알리라"를 새 언약 공동체의 지체가 모두 주를 아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읽는다. 호튼은 이 말이 모든 족속이라는 말처럼 복이 두루 미친다는 표현이며 고백하는 지체 하나하나가 다 믿게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저자들은 새 언약의 지체를 죄 용서를 받고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께 연합한 사람으로 말하는 본문이 매우 많다고 답했다.
14장 다니엘서의 일흔 이레 본문에 나타난 새 언약
다니엘 9장의 일흔 이레 본문을 새 언약과 이어 풀이하는 장이다. 한 한국어 독자 서평은 이런 짜임이 국내에 번역된 책들까지 합해도 시도된 적이 없는 것이라고 평했다.
무는 다니엘 9장 한 본문에 한 장을 통째로 들인 까닭을 알기 어렵다고 썼다. 젠트리는 2판 서문에서 다니엘 9장을 다룬 장을 완전히 다시 썼다고 밝혔다. 기본 입장은 거의 같으나 여러 주해 문제를 다시 따졌다고 한다.
[확인필요] 젠트리는 이 본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그리스도로, 일흔 이레를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절정에 이르는 기간으로 읽는다. 이번에 본 자료에는 이 장의 구체적인 풀이가 나오지 않았다.
15장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라(엡 4:15): 새 언약 공동체의 삶
2부에서 신약 본문 하나를 통째로 다루는 유일한 장이다. 젠트리는 에베소서의 짜임과 새 언약 공동체의 모습을 출애굽기 19~24장에 담긴 기대와 잇는다(초판 565~570쪽).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앞선 언약들의 '충성된 사랑'과 '신실함'을 함께 이룬다(570~582쪽, 《성경신학·신학연구 저널》 서평).
한 한국어 독자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정의와 공의'로 표현된 사회 정의를 토라의 요약으로 보고(한국어판 829쪽),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일이 새 언약 공동체에서 그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한다(840쪽). 토멘의 서평도 이 말이 새 인류 안에서의 관계의 사회 정의를 요약한다는 대목(초판 586쪽)을 인용한다.
무와 《테멜리오스》의 크리스토퍼 브루노, 디트만은 한목소리로 이 장이 책의 핵심 논증에 보태는 것이 적다고 평했다. 로마서 11장, 고린도후서 3장, 갈라디아서 3장, 히브리서 8장 같은 본문이 더 알맞았으리라는 것이다. 2판의 차례에는 이 장이 없다.
부록: "베리트"의 사전적 분석
젠트리가 쓴 부록으로, '언약'을 뜻하는 히브리어 낱말 베리트의 쓰임을 정리한 것이다. 2부의 낱말 논증을 받치는 자료다. 분량은 서평마다 61쪽 또는 100쪽가량으로 다르게 적혀 있어 여기에는 싣지 않는다.
11장 다윗 언약 · 젠트리 집필
설교의 맥락이 다윗 언약이므로 11장을 따로 정리했다. 이 장의 본문은 읽지 못했다. 아래는 한 독자가 2판의 11장을 쪽수와 함께 간추린 블로그 글(Raising Lazarus, 2021년 2월 9일), 초판을 다룬 서평들, 젠트리의 인터뷰와 그가 같은 주제로 쓴 논문의 초록에 글자로 나온 내용이다. 블로그의 쪽수는 2판의 것이며 한국어판의 쪽수와 다르다.
초판과 2판의 11장이 어디가 다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젠트리는 2판 서문에서 고친 곳으로 에스겔 16장, 신명기, 다니엘 9장, 선지서의 새 언약 부분을 들었고 다윗 언약 장은 따로 들지 않았다. 초판을 다룬 서평들이 전하는 요점은 2판 요약과 어긋나지 않는다.
다윗 언약이 놓인 자리
모세 언약 다음에 오는 큰 언약이 다윗 언약이다. 젠트리에 따르면 다윗 언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뜻하신 왕정의 본을 연다. 모세 언약이 아브라함 언약을 이루는 수단이었듯이 다윗 언약은 모세 언약의 목적을 이어 가는 수단이다(2판 443쪽, 한 독자의 요약).
왕이 세워지는 일은 하나님의 계획이 어그러진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왕들이 나올 것을 약속하셨다(창세기 17:6, 16, 민수기 23:21, 24:17, 신명기 17:14-20). 왕정은 계획의 일부이고,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심으로 나라를 세우신다(2판 446쪽, 한 독자의 요약).
축약판은 한 문장으로 이렇게 간추린다. 다윗과의 언약은 왕이 언약의 집행자로 일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이 그분의 백성 가운데 세워지는 왕정을 세운다. 하나님이 민족 전체를 위해 계획하신 것이 이제 왕과 그의 지도력을 통해 이루어진다(축약판 207쪽, 재스펠의 서평이 인용).
사무엘하 7장: 아버지와 아들
젠트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윗 언약을 왕의 하사 조약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사무엘하 7장에 따르면 이 언약 관계의 중심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있고, 그 관계에 쓰이는 말은 하사 조약보다 종주·봉신 조약의 특징이다. 하나님은 듣는 사람의 문화와 언어에서 시작하시되 그것을 바꾸어 고유한 것을 전하신다(《크레도》 인터뷰, 2012년 5월 18일).
다윗 언약의 약속에는 다윗의 생전에 이루어질 것과 그의 죽음 뒤로 이어질 것이 함께 있다. 하나님이 다윗 계통의 왕과 맺으시는 유대는 여호와가 그의 '아버지'가 되시고 왕이 여호와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2판 449~450쪽, 한 독자의 요약). 개역개정의 사무엘하 7장 14절은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이고, 15절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이다.
여기서 아들 됨은 핏줄의 뜻이 아니다. 성경에서 '아들'이라는 말은 무엇의 특성을 지녔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다윗 계통의 왕은 여호와의 성품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고대 근동의 둘레 문화에서도 왕은 신의 '아들'이기에 신의 '형상'이라고 했고, 왕이 어떻게 행하느냐가 그 신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 준다고 여겼다(2판 450쪽, 한 독자의 요약).
이 아들 됨은 창조 언약에서 하나님의 모양이자 형상인 아담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린 이스라엘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므로 다윗 계통의 왕은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의 구실과 하나님의 아들인 이스라엘의 구실을 함께 이어받는다(2판 456쪽, 초판 398쪽. 토멘의 서평은 초판의 이 대목을 신명기 17장과 묶어 인용한다).
사무엘하 7장 19절: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다윗의 왕권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왕조는 민족들에게도 뜻이 있다. 젠트리는 사무엘하 7장 19절을 따라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인류의 헌장'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아들인 다윗 계통의 왕은 하나님의 교훈 곧 토라를 온 민족 안에서 이루어야 했고, 그래서 모세의 토라를 중개하는 사람이었다(2판 457쪽, 한 독자의 요약이 인용).
다윗 계통의 왕은 본이 되는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토라와 다스림을 민족들에게도 중개해야 했다. 아브라함 언약의 약속에 민족과 온 세계가 함께 들어 있었듯이, 다윗 언약도 민족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면서 온 세계에 미치는 뜻을 지닌다(2판 457쪽, 한 독자의 요약). 세대주의 쪽 서평자 마이클 블라크도 초판을 요약하며, 다윗 언약의 목적이 "인류를 위한 교훈"(사무엘하 7:19)이 되는 것이었고 이는 언약의 목표가 온 세계의 복임을 가리킨다고 저자들의 주장을 전했다.
이 읽기는 젠트리만의 것이 아니다. 제이슨 드루시는 다윗이 이 약속들이 세상을 위한 소망과 지침을 담고 있음을 알아보았다(사무엘하 7:19)고 쓰면서, 월터 카이저의 1974년 논문 「다윗의 복: 인류를 위한 헌장」, 윌리엄 덤브렐의 책, 이 책 2판 456~459쪽을 함께 근거로 든다.
[확인필요] 개역개정이 '사람의 법'으로 옮긴 히브리어는 '토라트 하아담'이다. '토라'를 법이나 교훈으로, '하아담'을 사람 또는 인류로 옮길 수 있어서 번역본마다 이 구절의 옮김이 크게 다르다. 이번에 본 자료에는 영어 풀이만 나오고 히브리어 표기는 나오지 않았다.
조건적인가 무조건적인가
이 언약 관계는 왕 쪽의 순종도 요구한다. 여호와가 앞으로 올 다윗 계통의 왕들을 징계하셔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실함이 기대된다는 증거다(2판 449쪽, 한 독자의 요약).
뒤의 성경 본문들은 다윗 계통의 왕이 토라를 알고 지켜야 그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바탕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2판 461쪽). 그래서 무조건적인 요소(사무엘하 22:51, 시편 18편)와 조건적인 요소(시편 132:12, 열왕기상 2:3-4, 6:12, 8:25, 역대하 6:16, 7:17-18, 예레미야 22:1-5, 24)가 섞여 있다(2판 460쪽). 시편 89편도 다윗의 순종을 강조하는 본문으로 다루어진다(한 독자의 요약).
책 전체의 논리로 보면 이 긴장은 풀려야 할 이야기의 매듭이다. 언약마다 하나님이 은혜와 능력으로 성취를 홀로 보증하시면서 동시에 순종하는 상대를 요구하시는데, 언약을 따라 내려올수록 그 요구를 채우는 사람이 없어 긴장이 커진다. 결국 언약을 맺으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 신실하고 순종하는 아들을 주심으로 자기 약속을 홀로 지키신다(초판 609~611쪽, 668쪽. 여러 서평이 인용).
축약판은 다윗의 아들들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설명한다.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넘어가며 조금 나아지는 듯하나 오래가지 않는다. 솔로몬은 크게 실패하고, 다윗을 포함한 다윗 계통의 왕들이 모두 실패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다스림을 들여오지 못한다. 다윗의 더 큰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야 다윗의 본이 성취에 이른다(축약판 1장, 공개 발췌본).
재스펠은 이 대목에 토를 달았다. 다윗 언약에 조건이 들어 있어도 더 큰 약속이 그 조건의 성취를 확실하게 하므로, 넓게 보면 다윗 언약의 성취는 한 번도 의문에 놓인 적이 없고 그런 뜻에서는 여전히 무조건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무조건적'이라는 범주를 버리기만 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약속의 확실함을 담을 다른 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사야 55장 3절: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개역개정의 이사야 55장 3절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이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베푸신 확실한 은혜로도, 다윗이 행한 신실한 사랑의 일로도 읽을 수 있다. 젠트리는 뒤쪽을 택한다(2판 470~471쪽, 한 독자의 요약).
젠트리는 2007년 《웨스트민스터 신학 저널》에 실은 논문 초록에서 같은 주장을 폈다. '확실한 은혜'는 통설과 달리 다윗을 위한 것이기보다 다윗이 행한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신명기 17장과 사무엘하 7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이 본문을 놓으면, 이사야는 사무엘하 7장 19절을 이사야 53~54장에서 영원한 언약을 이루는 장차 올 다윗 계통의 종이신 왕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읽힌다. 사도행전 13장의 인용이 이 풀이를 강하게 뒷받침한다고 한다.
한 독자의 요약에 따르면 젠트리는 다윗이 행한 '확실한 은혜'가 장차 올 새 다윗의 죽음과 부활이라고 본다. 이 본문은 바울이 사도행전 13장 34절에서 인용하는 대로 예수 안에서 성취된다(2판 470~471쪽, 479~480쪽).
대럴 복은 서평에서 이 읽기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썼다. 저자들은 복이 까닭도 구약의 증거도 들지 않았다고 답했다.
모세 언약, 아브라함 언약과의 관계
다윗 언약은 모세 언약과 이어진다. 다윗 계통의 왕이 모세 언약의 집행자가 되기 때문이다. 왕은 제사장적인 면도 띠게 되는데, 온 민족이 이제 왕 한 사람 안에 모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2판 480쪽, 한 독자의 요약). 초판을 다룬 서평도 이 왕권이 출애굽기 19장 3~6절을 이루는 수단이라는 대목(초판 422쪽)을 인용한다.
다윗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과도 이어진다. 첫째, 다윗은 아브라함 언약이 약속한 대로 백성에게 안식을 주고 살 곳을 준다(2판 481쪽). 둘째, 다윗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처럼 민족의 언약이면서 온 세계에 미치는 뜻을 지닌다. 민족들이 다윗 계통의 왕의 다스림 아래로 들어올 것이다(한 독자의 요약). 초판을 다룬 서평은 아브라함 언약의 복이 다윗 계통의 왕과 그 나라를 통해 올 것이라는 대목(초판 427쪽)을 인용한다.
디트만의 서평은 이 장을 이렇게 간추린다. 다윗은 본이 되는 신실함으로 모세 언약을 집행하고 백성이 언약에서 더 실패하지 않도록 막는 일을 맡았다.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을 아브라함의 약속을 이룰 이로 정하심으로 구속의 계획을 좁히시고 자기 백성 가운데서 자신의 다스림을 세우신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결
저자들의 큰 줄거리에서 아담의 구실은 노아, 아브라함, 이스라엘, 다윗에게 차례로 넘어가고 그들은 모두 실패한다. 새 언약에서 그 구실은 다윗 계통의 메시아이신 예수께 넘어가고 그분은 성공하신다(블라크의 요약). 저자들은 답변에서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 아브라함의 참 아들, 참 이스라엘, 다윗의 더 큰 아들로 부르고, 아담과 아브라함과 이스라엘과 다윗에게 하신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사도행전 15장이 다시 지어진 다윗의 집이 구약의 두 뜻 곧 왕조와 성전의 뜻 모두에서 민족들을 품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심 본문이라고 본다(저자들의 답변). 그리산티는 아모스 9장과 야고보의 인용이 이방인이 구원에 함께 들어온다는 뜻일 뿐 이스라엘을 새로 정의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지난 구원 행위를 앞날로 비추어, 하나님이 새 출애굽으로 백성을 건지시고 새 다윗 계통의 왕이 영원한 나라를 다스릴 것을 내다본다. 신약이 열리면 구약의 이 모든 기대가 예수의 오심과 삶과 죽음과 부활에 묶인다(초판 591~601쪽, 토멘의 서평이 간추림).
이 장에 대한 평가
《웨스트민스터 신학 저널》의 서평은 다윗 언약, 이사야·에스겔, 다니엘을 다룬 젠트리의 장들에서는 실질적으로 새로운 주장이 없다고 적고 넘어갔다. 개혁파 쪽의 비판은 이 장보다 새 언약과 교회론에 모였다.
세대주의 쪽의 비판도 이 장의 주해보다 그 결론의 쓰임에 모였다. 블라크는 누가복음 1장 32~33절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의 오심을 다윗 언약과 민족 이스라엘에 대한 다스림에 잇는다는 점을 들어, 다윗 언약의 약속이 민족 이스라엘과 떼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산티는 에스겔 37장이 '다윗'이 왕으로 다스리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을 말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어 자료에서는 이 장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서평이나 독후감을 찾지 못했다. 열어 본 한국어 독자 서평 한 편은 모세 언약 다음에 "곧장 다윗 언약을 탐색한다"고만 적었다.
3부 신학적 통합(16~17장) · 웰럼 집필
3부에서 웰럼은 2부의 주해를 하나의 줄거리로 간추리고(16장), 그것이 신론,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에 어떤 결론을 낳는지를 보기로 든다(17장). 장로교의 전통과 갈리는 주장은 대부분 17장에 있다.
16장 "언약을 통한 하나님 나라": 성경신학적 요약
웰럼은 먼저 정경 전체에 걸친 '하나님 나라' 개념을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초판 591~601쪽). 토멘의 서평이 간추린 요지는 이렇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신다. 창조는 끝이 아니고 구속 계획의 시작이다. 하나님이 온 피조물의 주권자이신 것과, 반역한 피조 세계 안에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는 구원의 다스림은 구별된다. 이 나라는 언약들을 통해 온다.
나라가 언약을 통해 오는 길은 두 겹이다. 하나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그분의 형상들을 통해서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언약 공동체의 삶을 거쳐 온 피조 세계로 넓혀지며, 그것은 '충성된 사랑'과 '신실함'의 언약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초판 594쪽). 다른 하나는 시간을 따라 이어지는 언약들을 통해서다. 하나님은 언약들을 통해 타락의 결과를 되돌리신다.
웰럼은 하나의 '은혜 언약'을 말하는 언약신학과 달리 여러 언약을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여러 언약은 새 언약에서 성취되는 하나님의 한 계획이 차츰 계시되는 과정의 부분들이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계획의 연속성을 말하면서도 언약들 사이의 관계를 납작하게 누르지 않고 그 사이의 불연속을 볼 수 있다고 한다(초판 602쪽, 토멘의 서평이 인용).
앞선 언약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에 이르렀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그 언약들 아래에 '언약으로서' 있지 않다(초판 605쪽). 구약의 모형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바로 가리려면 예수와 새 언약이 해석의 렌즈가 되어야 한다(608쪽). 《성경신학·신학연구 저널》의 서평이 인용한 대목이다.
아담과 맺으신 것이든 다른 언약의 머리들과 맺으신 것이든, 창세기 3장 15절의 약속에 묶인 하나님의 헌신은 결코 꺾이지 않는다. 그 약속은 정경 전체를 가로질러 언약들을 통해 전개되다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으로 가장 깊은 성취에 이른다(초판 610쪽, 토멘의 서평이 인용).
2판 차례에는 16장에 '시간과 언약 지체의 범위', '시간과 언약 상대·구실'이라는 그림 두 장이 있다. 웰럼은 2판 서문에서 16장을 완전히 다시 썼다고 밝혔다.
17장 "언약을 통한 하나님 나라": 몇 가지 신학적 의미
디트만의 서평이 간추린 네 가지. 신론: 삼위일체 하나님은 언약의 주님이시며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지으려고 다가오신다. 기독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는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신다. 교회론: 새 언약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의 부어 주심으로 본질과 짜임이 바뀌었다. 이 공동체에 들어가는 길은 민족이 아닌 믿음이므로 유아세례는 교회의 관행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종말론: 땅의 유업은 십자가로 새 창조를 여신 예수 안에서 성취된다.
기독론에서 저자들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힘써 변호한다. 그리스도는 사람이자 하나님으로서 구약의 언약들이 찾았으나 얻지 못한 순종하는 언약 상대가 되신다(무의 서평). 호튼도 이 변호를 대단하다고 평했다.
저자들은 속죄의 범위도 다룬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리자이자 대제사장으로 죽으셨고 그 제사장의 일이 새 언약의 일이라면, 누가 새 언약의 지체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논리로 제한 속죄(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속죄)를 변호한다. 무와 복은 이 논의가 책의 핵심 논증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뚜렷하지 않다고 했고, 저자들은 17장의 보기들이 말 그대로 보기일 뿐이라고 답했다.
교회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앞선 언약들이 모두 성취에 이르렀으므로, 예수께서 이루시고 자기 백성에게 적용하시는 구원의 실재는 옛 언약 아래의 것과 꼭 같지는 않다(초판 684쪽, 브랙의 서평이 인용). 이스라엘은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가 섞인 공동체였고 교회는 거듭난 공동체다(646쪽, 토멘의 서평). 세례는 그 유효함을 위해 언제나 믿음을 전제한다(700쪽, 호튼의 서평이 인용).
저자들은 아브라함 언약에서 '너와 네 후손'이라는 말(창세기 17:7)이 가리키는 혈통의 원리를 인정한다(초판 633쪽). 그러나 그 원리가 새 언약에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골로새서 2장 11~13절도 세례가 할례를 대신했다는 뜻으로 읽지 않으며, 두 표의 뜻이 그토록 비슷하다면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서 왜 할례가 사라졌느냐고 묻는다(80쪽, 호튼의 서평이 인용).
종말론. 땅은 에덴과 온 피조 세계의 모형이며 새 창조에서 성취에 이른다. 이스라엘의 원형이신 그리스도가 땅의 약속을 받으시고 새 언약을 여심으로 그것을 이루신다(초판 122쪽, 706쪽). 약속의 땅의 경계가 본문마다 한결같지 않다는 점, 바울이 아브라함을 '세상의 상속자'라 부른다는 점(로마서 4:13)을 근거로, 땅의 약속이 처음부터 한 지역보다 큰 것을 가리켰다고 본다(707~708쪽, 그리산티의 논문이 인용).
저자들은 민족 이스라엘의 앞날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답변에서 밝혔다. 그 앞날은 마지막 때에 많은 유대인이 메시아를 믿게 되고(로마서 9~11장) 한 새 사람인 교회에 들어오는(에베소서 2:11-22) 것이라고 한다. 천년왕국 때 민족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따로 누릴 약속이 남아 있다고 보는 세대주의의 그림과는 다르다.
웰럼은 책의 끝에서 자신들이 '언약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신학적 의미를 겨우 겉만 긁었을 뿐이며 모든 점에서 더 많은 말이 필요하다고 적는다(초판 716쪽, 토멘의 서평이 인용).
저자들의 입장, 장로교 전통과 다른 점, 양쪽의 비판
이 책은 장로교·개혁파의 전통적 언약신학과 세대주의를 함께 고치려 한 책이어서 양쪽에서 반론이 나왔다. 저자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을 나란히 적는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이 쪽에서 가리지 않는다.
아래 표에서 전통적 언약신학의 설명은 이번에 열어 본 개혁파 서평자들의 글과 한국어판 출판사 리뷰에 적힌 대로 옮겼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조항은 서평자들이 인용한 대목이다.
저자들은 자기 입장을 어떻게 말하는가
2판 1장(공개 발췌본)의 요약. 점진적 언약주의는 성경이 여러 언약을 내놓으며, 그 언약들이 한 백성을 위한 삼위 하나님의 한 구속 계획을 차츰 드러내고, 그 계획이 그리스도와 새 언약에서 성취와 종착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언약들을 신학적으로 중요하게 보고 성경 줄거리의 등뼈로 본다는 점은 언약신학과 같다.
언약신학과 다른 점으로 저자들이 직접 든 것. 성경의 언약들을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의 두 범주로 나누지 않는다. 하나님의 한 계획은 아담과 창조에서 시작해 그리스도와 새 언약에서 절정에 이르는 서로 이어진 여러 언약으로 펼쳐진다. 창조 언약이 모든 언약에 이어지는 바탕이다. 또 교회는 옛 언약 아래의 이스라엘과 본질과 짜임이 다르다. 이스라엘은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가 섞인 공동체였으나 교회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연합한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표인 세례는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에게만 주며, 할례와 세례가 같은 실재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은 언약의 범주를 혼동한 것이라고 한다.
세대주의와 다른 점으로 저자들이 직접 든 것. 예수는 이스라엘과 아담의 원형적 성취이시며, 땅의 약속을 포함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분 안에서 그분의 백성인 교회를 위해 이루어진다. 땅의 약속은 새 창조에서 온전히 실현된다(로마서 4:13, 히브리서 11:10, 16 등).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다. 교회는 곧바로 '새 이스라엘'이거나 이스라엘의 대체물인 것이 아니고, 마지막 아담이자 참 이스라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새 창조다.
저자들은 '가운데 길'이라는 말이 두 체계와 다른 언약 이해를 내놓는다는 뜻일 뿐이라고 2판 각주에서 못 박았다. 또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이 더 많고 이 책은 아직 갈라져 있는 대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니, 복음의 본질적 진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갈라져 있다고 읽지 말아 달라고 2판 서문에서 당부한다.
블레이징은 이 책이 3부에서 점진적 언약주의를 개혁파 침례교의 성경 읽기로 내놓는다고 요약했다. 무는 저자들이 참으로 믿는 사람만 새 언약에 속하고 세례도 믿음을 고백한 사람에게만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데서 자신들이 속한 교회 전통을 드러낸다고 했고, 그것이 부당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한국어판 출판사 리뷰도 두 저자를 침례교도라고 적는다.
저자들의 답변
저자들은 2012년 9월 20일 복음연합 누리집에 세 서평에 대한 답변을 실었다. 복과 호튼의 서평이 오히려 책의 논지를 입증한다고 했다. 두 사람이 저마다 아브라함 언약의 한 요소(세대주의는 땅의 약속, 언약신학은 혈통의 원리와 언약 공동체의 성격)를 붙들고 그것이 새 언약까지 그대로 이어진다고 전제한 채, 저자들이 내놓은 증거는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호튼에게는 이렇게 답했다.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은 성경 서사에서 언약들이 이어지며 펼쳐지는 하나님의 계획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든 것이다. 언약의 '바탕'과 '시행'의 구분, 율법 언약과 은혜 언약의 구분은 고대 근동의 자료와 성경 본문에 밖에서 씌운 것이며 성경 자료에서 나온 범주가 아니다. 세례를 사람이 믿든 안 믿든 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세례가 그리스도와의 믿음의 연합을 가리킨다는 신약의 가르침(로마서 6장, 갈라디아서 3:26-29, 골로새서 2:11-13)과 맞추기 어렵다.
무에게는 그가 증거를 실제로 따져 에스겔 16장에서 논증의 틈을 찾아냈다고 감사하고 풀이를 고쳤다. 신약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세 가지를 들었다. 신약을 철저히 다루려면 큰 책이 한 권 더 필요하다. 자신들과 비슷한 생각의 사람들 사이에서 구약이 자주 소홀히 다루어진다. 구약의 뼈대를 바로 세워야 바울이 로마서 9~11장에서 하는 일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모형론으로 돌린다는 평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주장이 하나님의 계획이 언약들의 진행을 따라 어떻게 펼쳐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에 관한 더 큰 논증이며 모형론은 그 안에 들어 있는 한 부분이라고 답했다. 땅도 문자적이기를 그치고 모형이 된 것이 아니고 둘 다라고 했다.
2판(2018)에서 달라진 것
저자들은 2판 서문에서 초판에 대한 모든 서평을 읽고 따져 보았다고 밝혔다. 젠트리는 주해의 실제 문제를 짚은 서평자가 더글러스 무 한 사람이었다고 하며, 에스겔 16장의 '언약을 세우다'에 대한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모압 언약에 '언약을 맺다'가 쓰인 까닭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감사했다.
젠트리가 고친 것. 에스겔 16장의 풀이를 바꾸었다. 신명기의 문학적 짜임을 1~33장으로 넓혀 다시 살펴 시내산 언약과 모압 언약의 관계를 새로 설명했다. 다니엘 9장을 다룬 장을 완전히 다시 썼다. 선지서의 새 언약 부분은 선지자들이 앞선 선지자의 말을 되새기며 발전시킨 시간 순서를 살려 고쳐 썼고(예레미야는 이사야의 논의를 또렷하게 하고 에스겔은 예레미야가 남긴 물음을 더 설명한다), 신약 자료를 더 넣었다.
웰럼이 고친 것. 1부와 3부를 다듬고 고쳐 썼다. 16장을 완전히 다시 썼고, 신약을 다루는 17장을 새로 넣어 그리스도께서 앞선 언약들을 자기 안에서 어떻게 성취하시는지, 교회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약속을 받는지를 다루었다. 초판에 대한 주된 비판 하나가 신약 자료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8~19장에서는 신학적 결론을 기독론과 그리스도인의 삶, 교회론과 종말론으로 나누어 적었다.
웰럼은 일부 서평이 각주의 내용을 본문과 맞세우거나 '대체', '가운데 길' 같은 낱말 하나를 붙들어 자신들이 뜻하지 않은 입장을 자신들에게 돌렸다고 하고, 그런 대목을 빼거나 고쳐 적었다고 한다.
한국어판은 초판을 옮긴 것으로 보이므로, 위에 적은 고침은 한국어판에 들어 있지 않다. 특히 에스겔 16장의 풀이와 다니엘 9장, 신약을 다루는 장이 그렇다.
한국어판 추천사에 나타난 평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이승구 교수는 이 책에 기본적으로 동감하면서도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적 거리를 두고 있다고 쓰고, 그럼에도 언약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잘 정리한 이 책을 읽기를 적극 추천한다고 했다. 어느 주장에 거리를 두는지는 추천사에 적혀 있지 않다.
같은 학교의 성주진 교수는 전통적 언약신학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이 신구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언약의 조건성과 무조건성,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 같은 쟁점을 세대주의와의 대화를 통해 더 넓은 해석의 폭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고 썼다. 총신대학교의 황선우 교수는 언약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의 명쾌한 비교가 이 책의 백미라고 했다.
숭실대학교의 김회권 교수는 이 책의 특징을 세 가지로 들었다. 성경을 관통하는 언약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는지를 보여 준다. 성경의 특정 시기와 특정 언약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어 빗나간 종말론에 빠진 사람들에게 알맞은 경고가 된다. 구약과 신약이 언약들의 역사를 통해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리는지를 보여 준다.
한국어판 출판사 리뷰는 이 책이 전체적으로 세대주의에 대한 비판에 무게 중심을 둔다고 소개한다. 영어권의 개혁파 서평자들은 이 책이 전통적 언약신학을 겨냥한 대목을 길게 다루었다. 읽는 자리에 따라 책의 어느 면이 크게 보이는지가 다르다.
[확인필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은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신 첫 언약을 행위 언약이라 부르고(2항), 타락 뒤에 맺으신 둘째 언약을 은혜 언약이라 부른다(3항). 이번에 본 서평들은 7장 4~5항과 20장 1항, 25장 2항만 인용했다.
장로교·개혁파의 전통적 언약신학과 다른 점
주제
전통적 언약신학
이 책의 입장
개혁파 쪽의 반론
언약의 큰 틀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 은혜 언약은 하나이며 시대마다 시행 방식이 다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 4~5항이 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성취이심과 은혜 언약의 서로 다른 시행을 말한다(토멘).
두 범주로 나누지 않는다. 창조 언약에서 새 언약까지 서로 이어진 여러 언약이 한 계획을 차츰 드러낸다. 창조 언약은 인정한다.
토멘: 저자들이 '여러 언약'이라 부르는 것을 언약신학은 '은혜 언약의 여러 시행'이라 부른다. 같은 것을 다른 이름으로 말하는 셈이다. 호튼: 그리스도가 행위 언약을 성취하여 얻으신 것을 우리가 은혜 언약으로 물려받는다. 저자들이 변호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는 조건적 언약과 무조건적 언약의 뚜렷한 구분이 필요하다.
조건적 언약과 무조건적 언약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약속, 아브라함, 다윗, 새 언약은 하나님이 홀로 맹세하신 약속이고, 시내산 언약은 백성이 맹세한 율법 언약이다(호튼).
이 분류는 쓸모가 없다. 언약마다 하나님이 성취를 보증하시는 면과 순종하는 상대를 요구하시는 면이 함께 있다.
호튼: 명령이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언약의 바탕이 조건적이 되지는 않는다. 언약의 '바탕'과 '시행'을 구분해야 한다. 은혜 언약에서 명령은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이들이 드리는 마땅한 섬김이다.
교회의 성격
보이는 교회는 온 세계에서 참 종교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과 그 자녀들로 이루어진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 2항, 호튼이 인용).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구분한다.
교회는 새 언약의 공동체로서 구속사에 새로 나타난 공동체다. 이스라엘처럼 섞인 집단이 아니고 거듭나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호튼: 보이는 교회가 이미 보이지 않는 교회와 같다면 '이미와 아직'의 긴장은 어떻게 되는가. 목사와 장로는 믿음의 고백이 믿을 만한지를 가릴 뿐 누가 거듭났는지를 정할 권한이 없다. 히브리서 6장과 10장, 로마서 11장, 고린도전서 5장은 언약 안에 있으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연합하지는 않은 사람들을 전제한다. 토멘: 이쪽 세상의 지역 교회가 참으로 거듭난 사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저자들도 안다.
세례와 유아세례
할례와 세례는 형식은 달라도 기본적으로 같은 뜻을 전하는 언약의 표다. 신자의 자녀는 언약 안에 포함되므로 유아에게 세례를 준다(한국어판 출판사 리뷰의 설명).
할례와 세례는 서로 다른 언약의 표이며 같은 실재를 가리키지 않는다. 세례는 믿음을 고백한 사람에게만 준다. 유아세례는 정당하지 않다.
호튼: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 39절에서 세례와 관련해 '너희와 너희 자녀'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사도행전의 집안 세례들과 고린도전서 7장 14절을 더하면 증명의 짐은 침례교 쪽에 있다. 더 나은 언약에서 자녀가 빠진다는 뚜렷한 본문이 어디 있는가. 세례는 믿는 이가 자기 응답을 증언하는 행위이기에 앞서 하나님이 자기 약속을 증언하시는 행위다. 브루노: 저자들이 비판하는 것은 언약신학 자체보다 유아세례다. 1689년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처럼 믿는 이의 세례를 지키는 언약신학의 오랜 전통과는 충분히 씨름하지 않았다.
구약 성도의 구원 경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딸린 구원의 유익은 율법 아래의 신자들에게도 공통된 것이었다. 새 언약의 새로움은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넓어지고 은혜의 보좌에 더 담대히 나아가며 성령이 더 풍성히 주어지는 데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0장 1항, 브랙이 인용).
구약 성도는 거듭남, 은혜로 받는 구원, 주를 아는 지식, 죄 용서를 경험했으나 성령의 내주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경험하지 못했다(초판 684쪽 각주, 한국어판 출판사 리뷰).
브랙: 구원을 이루신 일(역사 속의 단번의 성취)과 구원을 적용하시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성령의 일 없이 어떻게 거듭나며 그리스도와의 연합 없이 어떻게 죄 용서를 받는가. 저자들은 이 둘을 뒤섞어 구약 성도의 구원을 줄여 놓았다. 《웨스트민스터 신학 저널》의 서평도 같은 점을 짚었다.
주일과 안식일
초판 서문이 비판하는 빌의 견해: 주일은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다.
주일은 새 창조의 표이고 안식일은 첫 창조와 이제 낡은 옛 언약의 표다. 둘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저자들은 십계명과 안식일·주일의 적용이 언약 이해에 달린 쟁점이라고 본다.
이번에 열어 본 개혁파 서평들은 이 점을 따로 다루지 않았다.
방법
구약은 신약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 예수와 신약의 저자들이 그렇게 읽었기 때문이다(개핀의 말, 《웨스트민스터 신학 저널》 서평이 인용).
각 언약을 먼저 그 자체의 문맥과 고대 근동의 배경에서 주해하고, 그다음에 정경 전체에 비추어 읽는다.
《웨스트민스터 신학 저널》 서평(브랙·올리핀트): 구약 주해를 신약에서 떼어 놓고 고대 근동 자료에 크게 기대는 방법 때문에, 성경 밖의 것에 기대지 않겠다는 목표와 반대의 결과가 났다. 히브리서 8~10장, 고린도전서 15장, 갈라디아서 3장의 자세한 풀이가 왜 없는가. 이 서평은 책이 주요 논지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맺었다.
세대주의 쪽의 비판
서평자
비판의 요지
대럴 복(댈러스신학교), 복음연합 누리집, 2012년 9월 11일
언약을 조건적이냐 무조건적이냐로만 보는 것이 지나친 단순화임을 저자들이 보였다는 점, 새 창조와 그리스도 안의 성취를 강조한 점은 높이 샀다. 그러나 로마서 9~11장과 누가복음·사도행전의 이스라엘 본문을 자세히 다루지 않은 것이 놀랍다고 했다. 사도행전 1장 6~8절에서 예수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제자들의 기대를 바로잡지 않으시고 때만 밝히지 않으신다. 땅이 온 세상의 모형이라는 원리 하나가 다른 가능성을 모두 눌러 버렸으며, 둘 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저자들이 살피지 않았다고 했다. 걸려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고 썼다.
마이클 블라크(마스터스신학교), 《마스터스신학교 저널》 24권 1호, 2013년 봄
성경의 언약들에 대한 좋은 정보가 있으나, 모형론에 대한 오해와 하나님의 계획에서 이스라엘이 맡은 구실에 대한 오해 때문에 세대주의보다 나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예수와 이스라엘의 관계, 마지막 때에 민족들이 지니는 뜻을 저자들이 바로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크레이그 블레이징(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 같은 저널 26권 1호, 2015년 봄
2014년 11월 복음주의신학회의 세대주의 연구 모임에서 저자들과 마주해 발표한 글이다. 구약 언약 본문의 주해 연구가 풍성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정경 전체의 줄거리를 '얇게' 읽었다고 비판했다. 민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을 빠뜨렸고, 이스라엘에게 하신 언약의 약속이 지닌 실행의 힘을 놓쳤다는 것이다. 새 언약이 앞선 약속들의 뜻을 녹여 바꾼다고 보는 것은 교회론의 목적 하나를 위해 성경 이야기의 풍성함을 잃는 일이라고 했다.
마이클 그리산티(마스터스신학교), 같은 호
구약학의 처지에서 다섯 가지를 들었다. 구약은 약속의 땅으로의 회복을 구체적 실재로 거듭 말한다. 민족들을 향한 약속이 있다고 해서 땅의 약속이 문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들의 줄거리는 민족 이스라엘의 구실을 지운다. 구약에서 '에덴'이라는 말의 쓰임은 약속의 땅을 에덴의 모형으로 볼 근거를 주지 않는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언제나 민족 이스라엘을 뜻한다.
그 밖의 평가
서평자
평가의 요지
더글러스 무(휘튼대학), 복음연합 누리집, 2012년 9월 12일
즐겁고 유익하게 읽었고 저자들이 옳은 길에 있다고 본다고 했다. 언약들이 무조건적이면서 조건적이라는 주장, 새 언약과 옛 언약들 사이의 불연속, 그에 따라 이스라엘 언약의 율법이 그리스도인에게 곧바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동의했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는 낱말 논증에 틈이 있고, 신약에서의 지속적인 주해가 없으며, 논증에 보탬이 되지 않는 세부 주해가 많다고 지적했다. 언약이 성경 이야기를 짜는 요소라는 주장에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크리스토퍼 브루노, 《테멜리오스》 37권 3호
조직신학에서 성경신학과 주해로, 다시 신학적 종합으로 오가는 드문 책이라고 평했다. 모든 언약의 조건적인 면과 무조건적인 면을 이보다 잘 설명한 글을 읽은 적이 없다고 했다. 세대주의 비판은 대체로 탄탄하다고 보았다. 어려운 낱말 연구와 독일어·프랑스어 문헌 인용 때문에 목회자들이 겁낼 수 있으니 축약판을 내 달라고 출판사에 권했다. 축약판은 2015년에 나왔다.
프레드 재스펠, 《크레도》, 2012년 11월 26일
개혁파 침례교 목사의 서평. 언약들이 성경 줄거리의 등뼈라는 논지는 입증되었다고 보았다. 창조 언약, '맺다'와 '세우다'의 구분, 무조건적 언약이라는 범주를 버리는 일, 땅의 약속에 대해서는 질문을 달았다. 땅의 약속이 '한 지역만은 아니다'라는 데 동의하더라도 그 지역 자체가 빠지는 것인지는 따로 물어야 한다고 했다.
새뮤얼 레니한, 《개혁파 침례교 연구소 저널》 1호, 2014년
개혁파 침례교의 서평 논문. 공개된 앞부분은 책의 두 가지 목적과 세 부의 짜임을 요약한다. 뒷부분의 평가는 구독자만 볼 수 있어 확인하지 못했다.
에바 디트만, 휘튼대학 박사 과정생들의 블로그, 2014년 7월 21일
성경신학과 목회에 훌륭한 자료라고 평하면서 네 가지를 지적했다. 신약 본문을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자신들의 제안이 얼마나 독특한지를 때로 부풀렸다. 언약마다 조건과 무조건의 무게가 다르다는 점을 놓쳤다. 언약을 성경 서사를 짜는 중심으로 삼는 까닭을 충분히 논증하지 않았다.
데이비드 토멘, 모너지즘 누리집
언약신학을 따르는 서평자. 성경신학의 통찰과 '세 지평'의 방법을 높이 샀다. 그러나 저자들의 '가운데 길'은 결국 침례교 교회론을 굳게 지키는 언약신학처럼 보인다고 했다. 2부가 너무 촘촘해 논증이 낱말 형태와 긴 인용에 묻히므로 일반 독자에게는 권하지 않는다고 썼다.
샤마임, 한국어 독자 서평, 2017년 12월 20일
천 쪽이 넘는 책인데도 뜻밖에 술술 읽힌다고 했다. 성경신학적으로 치밀하고, 정경 전체의 통일성을 보면서 시대마다 달리 나타난 언약의 특징을 놓치지 않으며, 세대주의와 견주어 버릴 것은 버리고 얻을 것은 얻었다고 평했다.
설교와 이 책
김진영 담임목사는 2022년 6월 19일 주일설교 "다윗의 감사 기도"(사무엘하 7:18-29)에서 다윗 언약의 핵심을 설명하시기에 앞서, 다윗 언약에 관해서는 장년 성경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에 대해 따로 시간을 내어 꼭 읽어 보라고 권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풍성해지면 신앙과 믿음 생활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더 풍성해지는 은혜가 분명히 있다고 하셨다.
목사님이 이 책을 가리키신 것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설교노트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이 '책 또는 주제 이름'으로 적혀 있다. 목사님이 특정한 책을 가리키신 것인지, 그 주제의 책을 읽으라고 하신 것인지 설교노트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이 쪽에서 『언약과 하나님 나라』를 정리한 것은 사이트 주인의 판단(2026년 10월 11일)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제목 앞에 '[목사님추천-확인필요]'를 붙였다.
목사님은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지 않으셨다. 아래에 설교의 다윗 언약 설명과 이 책 11장의 풀이를 나란히 놓은 것은 정리자가 견준 것이다.
설교에 나온 내용. 목사님이 말씀하신 다윗 언약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다윗의 후손들의 아버지가 되시겠다는 말씀이다. 계약 관계를 맺어서 잘하면 받아 주고 못하면 버리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지는 않는다. "내가 너와 너의 후손들에게 아버지가 되겠고 그들은 내 아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아들을 통해서 너의 나라, 다윗 왕국, 그리고 다윗 왕국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한 나라가 되게 하겠다."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의 아들로 와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은 다윗 언약으로 약속하실 때 이것을 염두에 두셨다. 다윗의 후손으로 올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실 것이고, 그 나라가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이며, 그 나라를 통해 이 땅에 구원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다윗이 이 언약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자기 후손 가운데 그 아들이 있을 것이며 그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한 나라가 되리라는 점은 어렴풋하게나마 믿고 기대했을 것이라고 목사님은 보셨다.
설교의 말과 이 책의 제목은 같지 않다. 설교노트에 적힌 말은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이고 이 책의 제목은 『언약과 하나님 나라』다. 두 낱말은 같으나 차례가 다르다.
그 말도 자막을 바로잡은 것이다. 설교노트의 '정리하며 확인할 점'에 따르면 영상의 자동 자막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냥"으로 들리며, 설교노트가 이를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으로 적었다. 설교노트는 이 대목의 자막이 분명하지 않으니 영상으로 확인이 필요하다고 적어 두었다.
비슷한 제목의 책이 여럿 있다. 예스24에서 "하나님 나라와 언약"으로 찾으면 열두 권이 나온다. 그 가운데 전정구의 『하나님 나라와 언약적 관점으로 보는 성경신학』(김태형 옮김, 부흥과개혁사, 2019년 2월, 494쪽)은 제목의 낱말 차례가 설교의 말과 같고 5장이 "다윗 언약과 하나님 나라"다. 김성주의 『언약과 하나님 나라』(칼빈아카데미, 2012년 2월, 544쪽)는 이 책과 제목이 같다. 세 권 모두 설교가 있던 2022년 6월보다 먼저 나왔다. 목사님이 이 가운데 어느 책을 가리키셨는지, 또는 어느 책도 가리키지 않으셨는지는 알 수 없다.
같은 점 하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중심이다. 목사님은 다윗 언약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하나님이 다윗과 그 후손의 아버지가 되시겠다는 말씀으로 드셨다. 이 책의 저자 젠트리도 사무엘하 7장에 따르면 이 언약 관계의 중심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2012년 인터뷰).
같은 점 둘: 계약과 다른 관계다. 목사님은 잘하면 받아 주고 못하면 버리는 계약 관계가 아니라고 하셨다. 이 책도 4장에서 언약과 계약을 견주고, 언약의 중심을 사랑 안에서의 신실함과 충성의 관계로 본다.
같은 점 셋: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목사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다고 하셨다. 이 책도 그리스도를 '다윗의 더 큰 아들'이라 부르고, 다윗에게 하신 약속이 그분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다윗 왕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언약을 통한 하나님 나라'라는 이 책의 원제와도 통한다.
강조가 다른 점: 왕의 순종. 목사님은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쪽을 힘주어 말씀하셨다. 사무엘하 7장 15절도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고 한다. 이 책은 그 확실함을 인정하면서, 같은 언약이 왕의 순종을 요구하고 뒤의 성경 본문들에 조건의 말이 섞여 있다는 점을 함께 든다. 그리고 그 요구를 온전히 채우는 이가 순종하신 아들 예수라고 풀이한다. 서로 어긋나는 말은 아니며 무게를 두는 자리가 다르다.
책에만 있는 내용. 다윗 계통의 왕이 아담과 이스라엘의 구실을 이어받는다는 것, 사무엘하 7장 19절의 "사람의 법"을 온 인류를 위한 가르침으로 읽는 것, 이사야 55장 3절을 다윗이 행한 신실한 사랑의 일로 읽는 것은 설교에 나오지 않는 이 책의 풀이다.
장로교 교인이 읽을 때 알아 둘 점. 이 책의 저자들은 침례교 신학자다. 교회는 거듭난 사람들만의 공동체이고 세례는 믿음을 고백한 사람에게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이라는 전통적 언약신학의 틀을 쓰지 않는다. 이것은 장로교의 가르침과 다르다. 설교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차이와 개혁파 쪽의 반론은 '평가와 논쟁' 탭에 적었다.
확인하지 못한 점. 목사님이 가리키신 것이 책인지 주제인지, 책이라면 어느 책인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교회의 장년 성경공부에서 이 책을 다루었는지도 설교노트에 나오지 않는다. 이 책 11장의 본문은 읽지 못했으므로, 위의 견줌은 서평과 인터뷰, 한 독자의 요약에 나온 범위 안의 것이다.
확인하지 못함. 설교노트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이 '책 또는 주제 이름'으로 적혀 있고, 책인지 주제인지 가려져 있지 않다. 이 책으로 본 것은 사이트 주인의 판단(2026-10-11)이다. 설교의 말과 이 책의 제목은 낱말 차례가 다르다.
설교의 말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 자체
자막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냥"으로 들리며 설교노트가 바로잡아 적은 것이다. 설교노트는 영상으로 확인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이번 작업에서 영상은 확인하지 못함
비슷한 제목의 다른 책
예스24 검색 결과(열두 권)와 전정구, 김성주의 책 상품 쪽으로 서지와 목차를 확인. 그 책들의 내용은 살피지 않았다. 전정구의 책은 예스24에 원서가 Biblical Theology로 적혀 있고, 이 책의 2판 서문이 2017년에 나온 Jeong Koo Jeon의 Biblical Theology라는 책을 고전적 언약신학의 책으로 들어 비판한다. 두 책이 같은 책인지는 판권으로 확인하지 못함
한국어판의 제목, 저자, 옮긴이, 출판사, 출간일, 쪽수, 판형, ISBN, 목차, 책 소개, 책 속 발췌, 출판사 리뷰, 추천사, 저자 소개
예스24로 확인. 서지는 교보문고의 서지 자료와 알라딘으로도 확인
한국어판이 옮긴 판
서점 자료에 판 표시가 없음. 목차가 크로스웨이 누리집의 초판 차례와 같고 한국어판이 2판보다 먼저 나왔다는 두 가지로 초판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어판의 판권 면은 보지 못했다.
원서 초판과 2판의 서지와 차례
크로스웨이 누리집의 두 판 소개 쪽으로 확인(초판 2012년 6월 30일 848쪽, 2판 2018년 6월 30일 960쪽). 2판의 장이 시작하는 쪽수와 그림·표 목록은 공개 발췌본의 차례로 확인. 크로스웨이의 2판 전자책 쪽에는 쪽수가 848로 적혀 있는데 초판의 숫자가 남은 것으로 보인다.
서문과 1장
크로스웨이가 공개한 2판 발췌본(2판 서문, 초판 서문, 1장)으로 확인. 초판 서문은 2판에 다시 실린 것을 읽었다. 1장은 2판의 것이며 초판과 문장이 다른 곳이 있다. 초판 1장의 내용은 서평들이 인용한 대목과 예스24의 한국어판 발췌로만 확인
2장부터 17장까지 표시 없이 적은 것
예스24의 한국어판 발췌(2, 3, 5, 9장), 영어권 서평과 저자들의 답변, 저자 인터뷰, 한국어 독자 서평 한 편에 글자로 나온 것만 적었다. 이 장들의 본문은 읽지 못했다. 영어 문장은 정리자가 우리말로 옮긴 것이며 한국어판의 번역 문장과 다를 수 있다. 영어 서평이 든 쪽수는 원서 초판 또는 2판의 것이고 한국어판 쪽수와 다르다.
11장 다윗 언약의 내용
한 독자의 블로그 요약(2판 기준), 초판을 다룬 서평들의 인용, 젠트리의 인터뷰와 2007년 논문 초록으로 확인. 본문은 읽지 못했다. 블로그 요약은 한 사람의 글이므로 세부는 '한 독자의 요약'이라고 밝혀 적었다. 초판과 2판의 11장이 어디가 다른지 확인하지 못함. 한국어판 11장의 쪽수와 번역 문장도 확인하지 못함. 시편 2편, 72편, 역대상 17장을 이 장이 어떻게 다루는지는 자료에 나오지 않았다.
[확인필요]로 표시한 것
세 군데다. 다니엘 9장에 대한 젠트리의 구체적 풀이, 사무엘하 7장 19절의 히브리어 표기와 번역 차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 2~3항의 내용은 정리자의 기억이며 이번에 자료로 확인하지 못함
전통적 언약신학의 설명
개혁파 서평자들(호튼, 브랙, 토멘, 브랙·올리핀트)의 글과 그들이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조항, 한국어판 출판사 리뷰에 적힌 대로 옮겼다. 신앙고백의 본문을 따로 열어 대조하지는 않았다.
책 안 검색으로 본문을 확인하는 일
하지 못함. 구글 도서에 이 책의 초판과 2판이 올라 있으나 미리 보기가 없어 책 안 검색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열어 보지 못한 서평
제이슨 드루시의 서평은 누리집이 열리지 않아 싣지 않았다. 새뮤얼 레니한의 서평 논문과 젠트리의 2007년 논문은 공개된 앞부분만 보았다. 《마스터스신학교 저널》 26권 1호에 실린 대럴 복의 신약 관점 응답은 제목만 확인했다. 하이델블로그의 서평은 열리지 않아 싣지 않았다.
한국어 서평
한국어판을 읽고 쓴 독자 서평은 한 편(샤마임, 2017년 12월 20일)만 찾았다. 그 밖에 열어 본 한국어 블로그 글은 출판사의 책 소개를 옮긴 것이어서 싣지 않았다. 추천사를 쓴 국내 신학자들이 이 책을 따로 평가한 글은 찾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