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CIENCE: A BIOGRAPHY · MARTIN VAN CREVELD · 2015
[목사님추천]양심이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군사사학자 마틴 반 크레벨드가 고대부터 오늘까지 '양심'이라는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따라간 사상사 책입니다. 신앙 서적이 아니며, 기독교의 양심 이해도 여러 시대의 생각 가운데 하나로 다룹니다. 책의 짜임과 장별 내용,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설교에 나온 히틀러의 말이 이 책에 실제로 있는지를 확인한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정리 2026-10-12 · 책 본문은 읽지 못함 · 한국어판 서지, 목차, 책 소개, 출판사 리뷰, 발췌문은 예스24와 알라딘으로, 원서의 서지와 본문 조각은 원서 출판사 누리집과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으로, 저자에 관한 사실은 영어·독일어 위키백과와 독일 《슈피겔》 기사로, 장별 내용은 한국어 서평 두 편과 원서 조각으로 확인 · 자료로 확인하지 못한 내용은 [확인필요]로 표시함
양심의 역사신앙 서적이 아닌 사상사5장 제3제국의 양심히틀러의 말
한눈에
『양심이란 무엇인가』(원제 Conscience: A Biography, '양심: 한 편의 전기')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마틴 반 크레벨드가 2015년 영국 리액션 북스(Reaktion Books) 출판사에서 낸 책이다. 한국어판은 2020년 10월 1일 니케북스에서 김희상의 번역으로 나왔고, 부제는 "양심 과잉과 양심 부재의 시대"다. 464쪽이다. 서점에서는 인문 교양서로 분류되어 있다.
신앙 서적이 아니다. 저자는 전쟁사와 전략을 연구해 온 군사사학자이며, 이 책은 양심이라는 생각이 시대마다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따라간 사상사다. 책은 일곱 장으로 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와 스토아학파(1장), 바울에서 루터까지의 기독교(2장), 마키아벨리에서 니체까지(3장), 프로이트와 일본·중국(4장), 나치 독일(5장), 인권·건강·환경 운동(6장), 신경과학과 로봇(7장)의 차례다. 기독교의 양심 이해는 2장 한 장에서 다루며, 여러 시대의 생각 가운데 하나로 놓인다. 성경이 가르치는 양심이 무엇인지를 풀어 주는 책은 아니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집단 학살을 저지른 히틀러와 나치에게 양심이 있었을까 하는 물음에서 출발했고, 5장에서 그 물음으로 돌아온다. 2023년 4월 23일 주일설교에 나온 히틀러의 말은 이 5장에 실린 것으로 보인다. 원서의 해당 대목을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으로 확인했다. 자세한 것은 '설교와의 관계' 탭에 적었다.
가장 큰 악을 저지른 사람들도 '양심'을 말했다. 이 책 5장이 보여 주는 장면이다. 예스24에 실린 출판사 리뷰는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아돌프 히틀러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라고 쓴다. 저자는 히틀러의 연설과 대화, 친위대장 힘러와 괴링 같은 '명령한 자'들의 일화를 통해 이들이 옳고 그름과 양심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자기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했는지를 살핀다. 출판사 리뷰는 이 장의 뜻을, 양심이 때로 우리의 모든 상식을 비틀고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간추린다. 책이 히틀러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네덜란드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이다.
책 정보
항목
내용
원제
Conscience: A Biography
저자
마틴 반 크레벨드(Martin Levi van Creveld, 1946년 3월 5일~). 이스라엘의 군사사학자.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50년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라마트간에서 자랐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역사학 석사 학위를,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1940~1941년 히틀러의 전략에서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가 차지한 자리를 다룬 것이다. 히브리대학교에서 가르쳐 1988년에 교수가 되었고 2007년에 물러난 뒤 텔아비브대학교에서 강의했다. 전쟁사와 전략에 관한 책을 많이 썼다. 한국에는 『보급전의 역사』, 『전쟁에서의 지휘』, 『다시 쓰는 전쟁론』, 『예측의 역사』 등이 소개되어 있다(예스24 저자 소개).
원서
2015년, 영국 런던 리액션 북스(Reaktion Books). 출판사 누리집은 양장본 2015년 3월 1일 발행, 240쪽으로 적는다. 구글 도서는 2015년 5월 15일, 285쪽으로 적는다. 출판사 누리집에는 한국어 번역 판권이 팔렸다고 나온다.
한국어판
김희상 옮김, 니케북스, 2020년 10월 1일 발행, 464쪽, 가로 140 세로 215밀리미터. 부제 "양심 과잉과 양심 부재의 시대". 전자책도 있다. 책 끝에 주, 감사의 말, 찾아보기가 실려 있다(예스24, 알라딘).
옮긴이
김희상. 예스24의 소개에 따르면 성균관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독일 뮌헨과 베를린의 대학에서 헤겔과 그 이후의 철학을 연구했다. 14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책의 열쇠 말
말
뜻
양심과 도덕의 구별
저자는 둘을 구별한다. 출판사 리뷰의 풀이로는, 도덕이 선과 악을 가릴 줄 아는 능력이라면 양심은 그 도덕을 바탕으로 우리를 행동하게 하거나 한 일을 돌아보게 하는 안의 목소리에 가깝다.
시네이데시스와 콘스키엔티아
양심을 뜻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책의 발췌문에 따르면 글자 그대로의 뜻은 자기 자신을 '앎'이다. 로마의 키케로와 세네카가 이 라틴어 낱말을 자주 썼다.
제3제국
히틀러와 나치당이 다스리던 때의 독일을 가리키는 말. 책 5장의 제목에 쓰였다.
명령한 자, 실행한 자, 저항한 자
5장의 세 꼭지. 저자는 유대인 학살에서 양심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를 이 세 부류로 나누어 살핀다.
세 가지 새 우상
저자가 6장과 맺는말에서 쓰는 말. 종교가 약해진 자리에 서구인이 죄책감을 걸어 둘 곳으로 새로 찾은 것이 인권, 건강, 환경이라고 한다.
책의 짜임
책은 머리말, 일곱 장, 맺는말로 되어 있고 장마다 꼭지가 셋씩 있다. 아래 한국어 제목은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니케북스, 2020) 목차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원서 제목은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 조각에 글자로 나온 것만 적었다. 2장과 5장, 6장의 제목과 꼭지 제목 일부만 확인되었다. 나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II. The Christian Centuries (From Paul to Augustine / Conscience in the Age of Faith / 셋째 꼭지는 확인하지 못함)
3장
마키아벨리에서 니체까지 (거대한 분열 / 신의 죽음 / 하늘을 향해 포문을 열다)
확인하지 못함
4장
신 없는 세상 (프로이트와 양심 콤플렉스 / 일본에서의 양심 / 중국에서의 양심)
확인하지 못함
5장
제3제국의 양심 (명령한 자 / 명령을 실행한 자 / 명령에 저항한 자)
V. Conscience in the Third Reich (Those Who Commanded / 나머지 꼭지는 확인하지 못함)
6장
옛 우상과 새로운 우상 (양심과 인권 / 양심과 건강 / 양심과 환경)
VI. Idols Old and New (첫 꼭지 Learning to Say No / 나머지는 확인하지 못함)
7장
기술 시대 양심의 자리 (원자론에서 행동주의로 / 로봇의 부상 / 양심의 과학화)
확인하지 못함
맺음
맺는말 양심을 찾아 떠난 3천 년의 여정
확인하지 못함
끝
주 / 감사의 말 / 찾아보기
확인하지 못함
표시에 대하여. 이어지는 탭에서 [확인필요] 표시가 붙은 대목은 정리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부가 틀릴 수 있으니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 표시가 없는 대목은 서점의 책 소개나 목차, 백과사전, 기사처럼 실제로 열어 본 자료에 나온 내용입니다.
어떤 책이고 누가 썼는가
읽기 전에 알아 둘 것을 모았다. 이 책은 신앙 서적이 아니고, 저자는 기독교 신학자가 아닌 군사사학자다.
어떤 책인가
예스24의 책 소개는 이 책을 "인간 양심에 관한 최초의 전기"라고 부른다. 원서 제목의 'Biography'(전기)를 살린 말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쓰듯 양심이라는 생각의 일생을 쓴 책이라는 뜻이다.
책이 던지는 물음은 출판사 소개에 이렇게 나온다. 양심은 사람의 본성인가,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인가. 종교, 철학, 국가 권력, 심리학, 경제와 산업은 양심과 어떤 관계인가. 스토아 철학, 종교개혁, 근대 국가의 성립, 홀로코스트에서 양심은 어떤 구실을 했는가. 신경과학과 로봇 공학은 양심의 앞날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원서 출판사 리액션 북스의 소개도 같다. 양심은 다윈이 생각한 대로 우리의 생물학적 뿌리에서 나온 것인가, 순전히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인가를 묻는 책이라고 한다. 그리고 끝에 가서 저자가 보여 주는 것은 양심이 여전히 붙잡기 어려운 것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라고 적는다.
저자는 양심이 무엇인지 최종 답을 내놓지 않는다. 한 독자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양심의 '과학적' 정의를 내리거나 그 기원과 본성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데 있지 않고, 양심에 관한 이론과 논의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보여 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 출판사 리뷰도 이 책이 양심의 최종적인 대안을 마련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적는다.
출판사 리뷰가 옮긴 저자의 결론 한 줄은 이렇다. "양심은 거듭 처음에는 작고 자발적이며 해방을 추구하는 것으로 시작해 크고 강제적이며 기괴한, 심지어 전체주의적으로 변해가는 경향을 보여왔다."
저자 마틴 반 크레벨드
1946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50년에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와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히브리대학교에서 가르치다 2007년에 물러났다(영어 위키백과). 원서 출판사는 그를 히브리대학교 명예교수로 소개한다.
본업은 전쟁사와 전략 연구다. 예스24의 저자 소개는 그가 여러 나라의 국방 조직에 자문했고 캐나다, 뉴질랜드, 노르웨이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국방대학에서 강의했다고 적는다. 영어 위키백과는 그의 책이 서른세 권이라고 적고,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Supplying War(1977, 한국어판 『보급전의 역사』), Command in War(1985, 한국어판 『전쟁에서의 지휘』), The Transformation of War(1991), The Sword and the Olive(1998), The Rise and Decline of the State(1999)를 든다.
그는 나치 독일을 오래 연구한 사람이다. 박사 논문이 1940~1941년 히틀러의 발칸 전략을 다룬 것이었고 1973년에 책으로 나왔다(영어 위키백과). 이 책 5장이 나치의 지도자와 실행자와 저항자를 다루는 데에는 이런 바탕이 있다.
한 독자의 서평은 저자가 홀로코스트를 겪고 살아남은 유대인 부부의 자손이라고 적고, 그런 사람이 히틀러와 힘러 같은 전쟁 범죄자들의 생각을 그들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들여다본 점을 눈여겨본다. 영어 위키백과에도 그의 부모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비밀경찰을 피해 살아남았다는 문장이 있으나, 거기에는 출처가 필요하다는 표시가 붙어 있다.
저자 자신의 신앙이 무엇인지, 종교를 가졌는지는 이번에 본 자료에 나오지 않았다. 확인하지 못했다.
저자를 둘러싼 논란
저자는 전쟁사 밖의 주제, 특히 여성에 관한 주장으로 여러 번 논란이 되었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는 2013년의 책 『특권을 누리는 성』(The Privileged Sex)에서 여성이 체계적으로 억압받아 왔다는 주장은 제대로 된 자료로 뒷받침되지 않는 신화이며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사회적 보호와 특권을 누린다고 주장했다.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는 여성을 군대, 특히 전투 부대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1년에 『남자, 여자, 전쟁』(Men, Women, and War)이라는 책을 냈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의 2011년 10월 27일 기사에 따르면, 그는 독일 트리어대학교의 한 연구소에 객원 연구자로 초청되어 '남자, 여자, 전쟁놀이와 문화'라는 제목으로 첫 강연을 했다. 총학생회는 항의 편지에서 그의 주장을 여성을 깎아내리고 군사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며 해임을 요구했고, 대학은 그의 임기를 11월 1일로 앞당겨 끝낸다고 밝혔다. 저자는 이 조치가 부당하다고 했고 표현의 자유를 희생시킨 일이라고 반발했다.
이 논란은 『양심이란 무엇인가』의 내용과 직접 이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가 인권·건강·환경 운동을 다루는 6장에서 날 선 말투를 쓴다는 점은 독자의 서평에서도 지적된다('6~7장과 평가' 탭 참조).
기독교의 양심 이해를 어떻게 다루는가
구약에는 양심 개념이 없다고 본다.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1장은 통념과 달리 구약성경과 유대교에는 양심 개념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유대교는 하나님의 명령에 집중하여 보상을 기대하고 벌을 두려워하며 율법을 따르면 되었으므로 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원서 출판사의 소개도 구약을 서구 양심 관념의 샘으로 보는 통념이 틀렸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라고 적는다.
양심의 뿌리를 그리스와 로마에서 찾는다. 저자는 양심의 기초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에 있다고 본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나오는 안티고네를 기록에 남은 첫 양심의 사람으로 들고, 스토아학파가 '자기 자신을 아는' 이성을 내세워 양심에 가까운 개념을 다듬었다고 한다(출판사 리뷰, 원서 출판사 소개, 김천일보 서평).
기독교는 2장에서 사상사의 한 시기로 다룬다. 2장은 바울에서 아우구스티누스까지, 중세, 루터와 그 이후의 차례로 기독교와 양심이 어떻게 서로 작용했는지를 살핀다. 원서 출판사는 이 장의 인물로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그리고 무엇보다 마르틴 루터를 든다.
기독교의 양심을 사회를 다스리는 방식으로도 본다. 출판사 리뷰는 책의 흐름을 이렇게 간추린다. 양심의 가책을 강조하여 권위에 순종하게 만드는 방식은 사회를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방법이 되었다. 출판사 리뷰는 이 대목에 "통제하고 해방하고 다시 억압해온 양심의 역사"라는 소제목을 붙였다. 믿는 사람이 양심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보는 자리가 다르다.
책의 관점은 세속적이다. 저자는 양심이 본성인지 사회의 산물인지를 묻고, 신앙이 약해진 뒤 양심이 어디에 매였는지를 따라간다. 3장과 4장의 제목이 '신의 죽음', '신 없는 세상'이다. 예스24에 실린 7장의 발췌문에는 사람을 다른 동물과 가르는 것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1500년 동안 주장한 불멸의 영혼이 아니고 생각할 줄 아는 능력, 곧 이성이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이 저자 자신의 견해인지, 7장이 소개하는 원자론자나 홉스의 견해를 간추린 것인지는 발췌문만으로는 가릴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성경이 말하는 양심을 풀이하는 책으로 읽을 것이 아니다. 양심이라는 말이 역사에서 얼마나 여러 뜻으로 쓰였고 얼마나 쉽게 뒤틀렸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로 읽는 편이 책의 성격에 맞다.
머리말과 1~4장: 고대에서 '신 없는 세상'까지
양심이라는 생각이 그리스와 로마에서 싹터 기독교 시대를 거치고, 근대에 종교에서 떨어져 나오기까지를 다룬다. 장별 내용은 예스24의 출판사 리뷰와 발췌문, 김천일보에 실린 인천대학교 이상원 교수의 서평, 한 독자의 블로그 서평에 나온 대로 적었다.
머리말 양심, 무엇이 문제인가
이상원 교수의 서평은 한국어판 8쪽의 문장을 옮긴다. "양심은 도덕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도덕은 선과 악을 구별해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양심은 오히려 인간 영혼을 이루는 부분, 타고난 것이든 습득된 것이든 영혼의 부분이다."
같은 서평에 따르면 책을 꿰는 문제의식은 히틀러의 주장에서 나온다.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경멸과 편견 속에서, 양심은 유대인이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으니 역사에서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한국어판 21쪽). 저자는 이 주장이 유대 전통을 겉핥기로 알고 사실을 비틀어 푼 데서 나왔다고 본다(22쪽). 한 독자의 서평도 니체와 히틀러가 양심을 유대인이 만든 개념이라고 주장했다는 데서 1장이 시작된다고 전한다.
동물에게도 양심이 있느냐는 물음도 앞머리에서 다룬다. 한 독자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동물에게는 언어라는 소통 수단이 없어 양심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고 사람의 양심에 초점을 맞춘다.
1장 양심의 근원과 본성을 찾아서
구약과 유대교. 이상원 교수의 서평에 따르면, 유대교 전통에서 계율을 어긴 사람이 느끼는 죄책을 담은 말은 '아본', '하타트', '아샴' 등인데, 저자는 이 세 낱말이 안의 깊은 목소리인 양심보다 관습법의 맥락에서 책임과 더 이어진 뜻을 지닌다고 본다(한국어판 24쪽). 이 대목은 저자의 견해다. 구약에 양심에 해당하는 생각이 없다는 주장에는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책에 대한 신학 쪽의 반론은 이번 조사에서 찾지 못했다.
호메로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작품은 선과 악의 충돌보다 명예와 이득의 충돌을, 자기를 나무라는 것보다 남들 앞에서 당하는 굴욕을 더 무겁게 여겼다. 기원전 5세기 중반에 들어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데모크리토스의 글에서 양심이라 부를 만한 충돌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이상원 교수의 서평은 고대 그리스에 수치와 부끄러움을 뜻하는 '아이도스'라는 개념이 있었다는 대목(40쪽)을 든다.
안티고네. 저자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나오는 안티고네에게서 참된 양심의 모습을 본다. 안티고네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주검을 묻어 주려 하며 죽음의 위협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 바깥의 명령이나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자기 안의 목소리만 따라 세상에 맞섰다는 점에서 저자는 이것을 고대 세계에서 양심이 태어난 장면으로 본다(이상원 교수의 서평, 한국어판 47쪽).
스토아학파. 스토아학파는 사람 안에 있는 이성을 내세워 양심 개념을 다듬었다. 이상원 교수의 서평에 따르면 필론이 내놓은 '시네이데시스'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61쪽). 로마의 키케로와 세네카는 라틴어 '콘스키엔티아'를 쓰며 이 생각을 이었다(65쪽).
예스24에 실린 1장의 발췌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라틴어 낱말은 세네카의 글에 50번쯤 나온다. 키케로와 세네카에게 그것은 개인 행위의 길잡이이자 판관이다. 세네카는 그것을 사람 안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라고 불렀다. 남과 나누는 앎과 달리 자기의 잘못된 행동에 관해 자기 안에 숨겨진 앎이라는 것이다.
한 독자의 서평은 저자의 평가를 덧붙인다. 스토아학파는 양심을 신앙이 아닌 사람과 이은 첫 철학자들이었으나, 자유의지와 이성으로 감정과 욕구를 눌러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대중과 뒷시대 학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2장 기독교의 세기들
바울에서 아우구스티누스까지. 이상원 교수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양심을 자연을 지으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힘과 맺어 놓았다고 본다. 바울의 가르침은 창조주이신 인격적인 하나님이 개인의 일상에 늘 깊이 관여하신다는 점을 강조했다(한국어판 80쪽). 스토아의 개념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맺은 기독교의 양심은 오랜 세월 서구의 역사를 이끌었다.
원서의 조각에 따르면 이 장은 그리스어 '시네이데시스'라는 낱말 이야기로 시작한다(구글 도서가 보여 주는 46쪽). 조각이 거기서 끊겨 저자가 바울의 어느 구절을 어떻게 풀었는지는 보지 못했다.
신앙 시대의 양심. 중세를 다루는 꼭지다. 한 독자의 서평에 따르면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스콜라 철학자들은 이성에 바탕을 두고 양심을 설명하려 했다. 예스24의 발췌문(3장으로 표시되어 있다)에는 군주의 권력 남용을 막아 줄 유일한 것은 양심이라는 문장과,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든 중세 저술가들의 말이 실려 있다.
루터와 그 이후. 원서의 조각에는 루터가 보름스에서 했다는 말이 인용되어 있다. 자기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으며 양심을 거슬러 행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옳지도 않으므로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어서 루터가 같은 점을 거듭 말했다고 쓴다(구글 도서가 보여 주는 69쪽). 조각이 끊겨 그 뒤의 설명은 보지 못했다.
예스24에 실린 2장의 발췌문은 개신교와 가톨릭을 견준다. 가톨릭교회는 양심의 자유를 단호히 반대했고 오늘까지 그 입장을 지킨다고 저자는 쓴다. 개신교는 양심을 교회와 사제가 차지했던 자리에 올려놓았고, 양심을 은총의 전제 조건에서 은총의 결과로 바꾸었다. 그리하여 양심은 사람마다 자기 안에 지니는, 도덕적 올바름의 궁극적인 보증이 되었다.
같은 발췌문은 그 값도 적는다. 양심을 가지면서 치러야 하는 대가는 끊임없는 "불안, 참회, 두려움"이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픔과 가책"이다. 개신교에 반대하는 쪽은 그처럼 양심을 강조하는 것이 "영혼을 죽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저자가 역사의 흐름을 서술한 것이며, 가톨릭과 개신교에 대한 저자의 이런 평가에는 각 교회 쪽에서 다르게 볼 대목이 있다.
이상원 교수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기독교적 양심 개념이 현실에서 선택의 자유를 찾는 사람의 양심의 또 다른 면과 줄곧 부딪쳤다고 본다(82쪽).
3장 마키아벨리에서 니체까지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3장은 르네상스 때 정치와 종교에서 떨어져 나온 양심이 '국가'와 '의무'에 매이게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 양심을 걷어 냈다. 이상원 교수의 서평은 마키아벨리에게 정치를 이끄는 실제 힘은 양심이 아니고 '네세시타', 곧 필연성이라는 대목(142쪽)을 든다.
전쟁과 과학혁명 속에서 종교와 양심은 힘을 잃었다. 출판사 리뷰의 표현으로는, 이신론과 무신론은 기독교 시대 내내 하나님의 보상과 벌이라는 꼴로 양심을 매어 두었던 닻을 잃게 했다. 신이 사라진 자리에 루소는 교육을, 칸트는 이성을, 헤겔은 '세계정신'과 국가를 세웠다.
이상원 교수의 서평에 따르면 헤겔에게 세계정신의 완전함을 이루는 것은 국가다(155쪽). 이제 사람들은 삶의 지침을 안의 양심보다 국가에 기대게 되었다. 원서의 조각에서 저자는 히틀러가 국가, 정확히는 국가가 대표한다고 내세운 인종 공동체를 만물의 척도로 삼은 것은 어떤 면에서 헤겔의 발자취를 따른 것일 뿐이라고 쓴다(구글 도서가 보여 주는 237쪽).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포하고 사람의 자유의지를 풀어 놓았다(출판사 리뷰). 한 독자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이 장에서 기독교적 양심이 쇠퇴했다고 한탄하는 보수 쪽 논자들을 들고, 그들이 그리는 아름다운 과거의 실제 모습은 더 추했다고 반박한다(한국어판 175~178쪽).
4장 신 없는 세상
프로이트.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4장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양심과 신경증의 관계를 파고든 것이었음을 일깨우고, 그 뒤 커다란 보건 산업과 맞물려 달라진 정신 건강 체계를 돌아본다. 한 독자의 서평은 프로이트가 양심을 '초자아'와 '자아'의 갈등에서 생긴 콤플렉스로 보았다고 간추린다.
일본과 중국. 저자는 개인보다 공동체를 앞세우는 일본과 중국의 윤리 사상에서 양심을 대신하는 것을 살핀다. 출판사 리뷰는 그것을 '부끄러움', '존중', '공경'이라고 적는다. 한 독자의 서평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조직과 집단을 지키기 위해 구성원이 지녀야 할 덕목과 수치심이, 중국에서는 어짊과 예의와 공경 같은 사람 사이의 법도가 그 자리에 있었다.
예스24에 실린 맺는말의 발췌문에서 저자는 이 차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서구는 사회보다 개인을 더 무겁게 여기므로 서구인은 오래도록 죄책감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는 선과 악이 사회의 산물이므로 상대적인 값으로 여겨진다.
5장 제3제국의 양심: 명령한 자, 실행한 자, 저항한 자
설교에 나온 히틀러의 말이 실린 장이다.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저자는 여기서 책의 출발점으로 돌아와, 유대인 집단 학살에서 양심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를 명령한 사람, 실행한 사람, 비교적 적었던 저항한 사람으로 나누어 살핀다.
아래 내용은 책이 전하는 것을 자료에 나온 대로 옮긴 것이다. 책은 가해자들이 자기를 어떻게 여기고 어떻게 정당화했는지를 보여 줄 뿐 그들을 변호하지 않는다. 원서의 쪽수는 구글 도서가 보여 주는 판(전자책, 285쪽)의 것이다.
명령한 자: 히틀러, 힘러, 괴링
출판사 리뷰는 이 꼭지를 이렇게 소개한다. 저자는 히틀러가 한 연설과 대화로 그의 속을 따라가고,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와 비밀경찰 게슈타포를 만든 헤르만 괴링 같은 '명령한 자'들의 일화에서 이들이 옳고 그름과 양심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고 자기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했는지 살핀다.
원서의 조각에 따르면 저자가 쓰는 자료는 히틀러의 이른바 '비밀 대화'다. 1941년부터 1944년 사이에 사령부에서 가까운 협력자와 손님들에게 한 비공식 담화를 속기로 받아 적은 기록이다. 저자는 이 기록이 히틀러가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여겼음을 의심할 여지 없이 보여 준다고 쓴다(143쪽. 조각이 'decent human'에서 끊긴다). 책의 주에는 트레버로퍼의 『히틀러의 비밀 대화』(Hitler's Secret Conversations, 뉴욕, 1953)가 출처로 적혀 있고, 1942년 1월 8~9일과 9월 7일의 기록을 가리키는 주가 보인다(263쪽). 어느 주가 어느 문장에 붙은 것인지는 조각으로는 가릴 수 없다.
[확인필요] 이 담화 기록은 흔히 '히틀러의 식탁 담화'라고 불린다. 트레버로퍼의 이름으로 나온 영어판은 독일어 원문을 바로 옮긴 것이 아니고 프랑스어 번역을 거쳤다는 지적이 있어, 낱낱의 문장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에 자료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같은 쪽에서 저자는 히틀러가 장군들에게 자기는 오직 자신의 '양심과 의무감'에만 책임을 진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어서 히틀러의 말이 인용된다. 조각에 보이는 글자는 "bad conscience when I get the feeling that I have not been quite fair to somebody"이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공정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 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뜻이다. 문장의 앞머리는 조각에서 잘려 보이지 않는다. 바로 뒤에는 어떤 사람이 자기의 적수였다는 이유로 굶어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이어진다(143쪽).
책은 같은 장에서 정반대의 말도 싣는다. 원서의 조각에 따르면 히틀러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피의 바다를 기꺼이 건너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164쪽). 두 말이 책에서 어떻게 이어져 풀이되는지는 조각만으로는 알 수 없다.
한 독자의 서평은 이 꼭지의 내용을 이렇게 전한다. 나치들도 개인의 일상에서는 도덕적인 삶을 내세웠다. 히틀러는 사치를 부리지 않았고 둘레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정중했다. 힘러는 부하들에게 정직과 규율을 요구했다. 원서의 조각에는 히틀러가 뇌물을 받아 큰 재산을 모은 괴링 같은 측근과는 달랐다는 문장이 있는데, 그 앞에는 그가 내세우기 좋아한 만큼 검소하게 살지는 않았다는 말도 붙어 있다(142쪽).
힘러의 연설도 다룬다. 원서의 조각에는 힘러의 연설로 보이는 인용문이 있다. 이 가장 어려운 일을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해냈으며 그 때문에 우리 속과 영혼과 성품에 아무 흠도 입지 않았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어서 힘러가 이 연설을 한 목적에 대해 대부분의 역사가가 뜻을 같이한다고 쓴다(151쪽. 조각이 거기서 끊긴다). 한 독자의 서평에 따르면 힘러는 집단 처형 장면을 보고 쓰러졌고, 학살 부대의 지휘관 바흐첼레프스키도 악몽과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들은 학살을 큰 뜻을 위해 필요한 의무로 받아들였다.
명령을 실행한 자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저자는 폴란드에서 유대인 학살을 실행한 제101 예비경찰대대 같은 사람들을 살핀다. 우연히 사형 집행인으로 뽑힌 평범한 남자들은 국가가 준 명령과 잔혹한 임무에 익숙해졌다. 출판사 리뷰의 소제목은 "명령은 명령이다"이다.
원서의 조각에 따르면 지시를 따를 수 없다고 느껴 빠진 사람은 500명 가운데 열두 명쯤뿐이었고, 나머지는 그 마을의 유대인 1,500명을 여자와 아이까지 몰아 쏘았다(155쪽). 다른 조각에서 저자는 일 자체 때문에 가학적으로 변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에게는 명령은 명령이었고, 시간이 갈수록 더 그렇게 되었다고 쓴다(159쪽). 한 독자의 서평은 이 대목이 역사가 크리스토퍼 브라우닝의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 소개된 사례라고 덧붙인다.
예스24에 실린 5장의 발췌문은 전쟁 뒤의 조사와 재판을 다룬다. 대원들은 압력을 받아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기 일쑤였고, 뉘른베르크의 주요 전범 재판에서와 마찬가지로 유감이나 후회를 말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학살에 대한 거부감은 주로 몸으로 느낀 혐오에서 온 것이었지 도덕 원칙을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그들이 끝내 양심을 입에 올리지 않은 까닭을, 양심을 말하는 것이 선택의 여지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용소의 가스실을 운영한 정신과 전문의들은 그때 수용자 처리에 새롭고도 인간적인 방법을 들여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독자의 서평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가 가스실을 인간적인 방식이라고 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고 전한다. 저자가 이런 말을 싣는 것은 가해자들의 자기 정당화가 어디까지 갔는지를 보이기 위해서다.
명령에 저항한 자
원서의 조각에 따르면 제3제국에서의 저항은 여러 꼴을 띠었다. 되도록 사회에서 물러나 수동적으로 지내는 이른바 '내적 망명'과 적국의 라디오를 몰래 듣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165쪽).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저자는 유대인을 돕거나 정권을 뒤엎으려 한 사람들에게서도 뜻밖의 면을 짚는다. 저항한 사람들의 행동도 복잡한 사정과 이해관계가 얽혀 참된 뜻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대인을 도운 행동에는 이타심과 공감 말고도 나치에 대한 미움, 자기의 고결함과 정체를 지키려는 바람, 뒷날 받을 보상에 대한 셈도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한 독자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히틀러 암살을 꾀한 독일군 장교 트레슈코프와 슈타우펜베르크, 나치에 맞서다 처형된 한스 숄과 조피 숄 남매의 동기와 의무감을 살핀다. 원서의 조각에서 저자는 엘저라는 사람을 두고, 오직 양심에만 바탕을 두고 행동한 영웅이 있었다면 엘저가 그 사람이라고 쓴다(173쪽). 한 독자의 서평은 책에 나오는 인물로 게오르크 엘저의 이름을 든다.
[확인필요] 게오르크 엘저는 1939년 11월 뮌헨의 맥줏집에 혼자 힘으로 시한폭탄을 놓아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독일의 목수로 기억한다. 이번에 본 자료에는 이름만 나오고 이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이상원 교수의 서평은 이 장에서 다른 쪽을 읽는다. 저자에 따르면 나치의 현실 속에서도 사람의 양심은 없어지지 않았고, 독재 체제의 감시 아래 유대인을 돕는 것이 매우 위험했는데도 많은 비유대인이 위험에 놓인 이웃을 도왔다는 것이다(한국어판 287쪽).
출판사 리뷰는 장의 뜻을 한 문장으로 간추린다. 저자는 이 세 부류를 살핌으로써 때때로 양심이 우리의 모든 상식을 비틀고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일깨운다.
6~7장, 맺는말, 그리고 책에 대한 평가
2차 세계대전 뒤의 양심과 기술 시대의 양심을 다루는 뒷부분,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서평자들의 평가를 모았다.
6장 옛 우상과 새로운 우상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6장은 양심을 세 가지 새 우상, 곧 인권과 건강과 환경에 묶어 두려는 최근의 시도를 다룬다.
양심과 인권. 양심의 근거를 국가보다 높은 도덕에서 찾아 국가에 맞선 사람은 늘 있었고, 대표적인 보기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다. 예스24의 발췌문에서 저자는 병역 거부가 오래도록 중요한 구실을 한 까닭을 국가의 심장을 바로 겨누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국가는 전쟁 수행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는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있었다.
양심과 건강, 양심과 환경. 저자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시도, 곧 양심을 찌르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그 가운데 건강과 환경에서 두드러진 성공을 거두었다고 본다(출판사 리뷰). 한 독자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건강 운동과 환경 운동이 지나치게 교조적이고 좁은 쪽으로 흘러 거꾸로 양심의 자유를 숨 막히게 했다고 지적한다.
같은 서평은 이 장의 말투가 비꼬는 투라고 하며 저자의 문장을 옮긴다. 환경 운동가들을 두고 저자는 그들이 자기가 느끼는 죄책감, 또는 느낀다고 주장하는 죄책감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게 하려 했을 뿐이라고 쓴다(한국어판 341쪽).
7장 기술 시대 양심의 자리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7장은 사람을 화학과 전기의 자극에 반응하는 기계로만 보는 첨단 과학의 입장을 살피고 양심의 앞날을 내다본다.
한 독자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이 생각의 뿌리를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피쿠로스와 그를 따른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는 사람을 물질의 작용으로 보았고, 홉스와 디드로가 그 뒤를 이었다. 이어서 파블로프와 스키너의 행동주의, 오늘의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살핀다.
예스24에 실린 7장의 발췌문에는 홉스의 양심 이해가 나온다. 이 관점에서 양심은 하나님께 영감을 받는 '내면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고 그저 이름일 뿐이다. 사람이 자기의 새 의견과 사랑에 빠져 그것을 고집하면서 그 의견에 권위를 주려고 붙이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출판사 리뷰는 이 장이 던지는 물음을 든다.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와 화학의 반응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양심의 생물학적 뿌리를 확인하고 양심을 조작하고 통제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인가. 사람을 본뜬 로봇에게 인공 양심을 줄 수 있는가. 이런 기술이 군대와 경찰에 주어질 때 어떤 윤리 문제가 생기는가.
맺는말 양심을 찾아 떠난 3천 년의 여정
예스24에 실린 맺는말의 발췌문에서 저자는 서구인이 늘 죄책감을 걸어 둘 지렛대의 받침점을 찾는다고 쓴다. 종교가 쇠퇴하면서 새 우상을 찾아야 했고, 가장 중요한 셋이 '인권'과 '건강'과 '환경'이다. 셋 모두 처음에는 작았다. 어떤 악을 보고 충격을 받은 개인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 시작이었고, 따르는 대중이 늘면서 운동이 조직되어 크게 자랐다.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저자는 수천 년 양심의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모양을 찾았다고 한다. 양심은 처음에는 작고 자발적이며 해방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크고 강제적이며, 심지어 전체주의적인 것으로 바뀌어 가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한 독자의 서평은 맺는말이 책 전체를 다시 알기 쉽게 간추린다고 전한다. 이상원 교수의 서평은 저자가 강조하는 점으로, 사람이 안의 목소리를 밝히려고 오랜 세월 애써 왔으나 양심은 아직도 흐릿한 개념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든다.
책에 대한 평가
말한 사람
내용
폴 스트롬(미국 뉴욕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양심: 아주 짧은 입문』의 저자. 원서 출판사 누리집에 실린 추천의 말)
양심의 역사를 활기 있고 역사 지식에 밝게 서술한 책이며, 양심이 가장 큰 시험을 받던 때에 그것이 없었고 악용되었던 일을 눈 돌리지 않고 살핀다고 했다.
이상원(인천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정치사상. 김천일보 2021년 2월 12일 서평)
진지한 정치적 관점에 고대 사상의 문헌 분석과 역사적 사실을 엮는 저자의 접근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했다. 저자의 역사적 관찰을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옳고 그름에 대한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의 본성을 만나게 된다고 읽었다. 사람의 정신을 로봇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쉽게 믿는 오늘의 사람들이 새겨야 할 통찰이라고도 했다.
독자 '초보글쟁이'(네이버 블로그, 2026년 3월 18일)
어렵지 않은 말로 쓰여 잘 정리된 서양 철학사를 읽는 느낌이라고 했다. 유대인 저자가 히틀러와 나치를 그들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살핀 태도가 돋보인다고 평했다. 아쉬운 점으로는 양심에 대한 깊은 분석이 적다는 것을 들었다. 저자가 양심의 다양함과 상대적인 면을 보여 주는 데 힘쓰느라, 학살자들의 의무감과 책임감을 양심에 따른 행동이라 볼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더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심을 도덕과 이어 설명했다면 더 분명했을 것이라고 했다. 6장에서 건강·환경 운동을 비판하면서 그 운동이 비판하는 식품 회사나 화석 연료 기업에 대한 언급은 찾기 어렵다는 점도 짚었다.
김동옥(시민기자, 인천일보 2020년 9월 29일 소개 기사)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널리 읽혔으니 정의가 작동하게 하는 양심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며 책을 소개했다. 저자가 양심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말한다는 점을 전했다.
영어권의 신문·잡지·학술지 서평
이번 조사에서는 찾지 못했다.
한국 교계 언론의 서평이나 신학 쪽의 비평
이번 조사에서는 찾지 못했다. 구약과 유대교에 양심 개념이 없다는 저자의 주장, 기독교의 양심을 사회 통제의 방식으로 보는 서술에 대해 신학 쪽에서 어떻게 답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설교와 이 책
김진영 담임목사는 2023년 4월 23일 주일설교 "사람의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사무엘하 24:9-14)에서 이 책에 인용된 말 하나를 스크린에 띄워 회중과 함께 읽으셨다. 다윗이 인구를 조사할 때 양심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도 스스로는 몰랐다는 말씀에 이어,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고 해서 내가 하는 일이 다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하시는 자리였다.
목사님은 책 제목을 "최근에 출판된 『양심이란 무엇인가』"라고 하셨고 저자와 쪽수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책을 마틴 반 크레벨드의 이 책으로 본 것은 정리자의 추정이다. 아래에 그렇게 본 근거와 확인하지 못한 점을 적었다.
설교에 나온 내용. 스크린의 문장은 "나는 누군가에게 충분히 공정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였다. 목사님은 이 말만 들으면 공정하고 정의롭게 사람을 대하려고 애쓰며 살았고 그러지 못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많이 받은 사람, 곧 양심 있는 사람으로 느껴진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이 말이 최근에 출판된 『양심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인용된 말이며 말한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라고 밝히셨다. 히틀러는 저 말을 하고서 수많은 유대인을 죽였다. 그러므로 양심을 믿어서는 안 된다. 신자든 불신자든 우리는 죄로 타락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 내 신앙 양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그 말씀에 내 양심을 맞추어 가는 것이다.
책은 추정이다. 설교에서 저자를 말씀하지 않으셨다. 같은 제목의 책이 있는지 예스24와 알라딘에서 '양심이란 무엇인가'로 검색했다. 이 제목을 가진 책은 마틴 반 크레벨드의 이 책 하나뿐이었다. 함께 검색된 다른 책은 부제에 '양심'이 들어간 『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2014) 한 권이다.
확인 1. 이 책에 히틀러와 양심을 다룬 장이 있다. 5장 '제3제국의 양심'의 첫 꼭지 '명령한 자'가 히틀러의 연설과 대화를 다룬다. 출판사 리뷰는 히틀러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다는 사실을 이 책이 보여 준다고 소개한다.
확인 2. 설교의 인용문과 같은 뜻의 히틀러의 말이 원서에 있다. 원서 5장의 조각(구글 도서가 보여 주는 143쪽)에 히틀러의 말로 "bad conscience when I get the feeling that I have not been quite fair to somebody"가 인용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공정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 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뜻이다. 설교 스크린의 문장 "나는 누군가에게 충분히 공정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와 뜻이 맞는다. 책 제목, 히틀러의 말이라는 점, 문장의 뜻이 모두 맞으므로 목사님이 말씀하신 책이 이 책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확인하지 못한 점 1. 한국어판의 문장과 쪽수. 확인한 것은 영어 원서의 조각이다. 한국어판에서 이 문장이 어떻게 번역되어 몇 쪽에 실려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크린의 문장이 한국어판의 글자 그대로인지도 알 수 없다. 이 문장을 옮긴 한국어 서평이나 기사는 찾지 못했다.
확인하지 못한 점 2. "최근에 출판된". 한국어판은 2020년 10월에 나왔고 설교는 2023년 4월이다. 두 해 반의 간격이 있다. 이 간격만으로 다른 책이라고 볼 근거는 찾지 못했으나, 목사님이 어느 판을 어떤 경로로 보셨는지는 설교노트로는 알 수 없다.
말한 때. 설교는 히틀러가 "저 말을 하고서" 수많은 유대인을 죽였다고 했다. 책에 따르면 이 말의 출처는 1941년부터 1944년 사이에 사령부에서 한 비공식 담화의 기록이다. 유대인 학살이 벌어지던 바로 그 시기다. 이 문장을 정확히 어느 날 했는지는 조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책의 뜻과 설교의 쓰임. 책은 이 말을 히틀러가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여겼다는 증거로 든다. 설교가 이 말을 든 뜻, 곧 양심 있는 사람의 말처럼 들리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히틀러였다는 점과 통한다. 출판사 리뷰도 이 장의 뜻을 양심이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간추린다.
책에 없는 것. "그러므로 양심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양심을 맞추어야 한다"는 결론은 목사님의 말씀이다. 이 책의 결론은 아니다. 이 책은 신앙 서적이 아니며, 저자는 양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최종 답을 내리지 않고 양심이 여전히 붙잡기 어려운 것이라고 맺는다. 죄로 타락한 양심이라는 설교의 가르침은 성경에서 온 것이다. 설교노트의 풀이는 디모데전서 4장 2절과 디도서 1장 15절을 든다.
덧붙일 점. 책 2장에는 루터가 자기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 말이 인용되어 있다(원서의 조각, 구글 도서가 보여 주는 69쪽). 양심을 말씀에 매어야 한다는 설교의 결론과 닿는 대목이다. 다만 설교에서 이 대목을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설교노트의 '정리하며 확인할 점'에는 유대인 희생자 수가 자막에 "수백 명"으로 들리나 역사적으로는 약 600만 명이라고 적혀 있다. 한 독자의 서평도 이 책 5장이 6백만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와 나치를 다룬다고 적는다.
예스24로 확인. 서지와 쪽수는 알라딘으로도 확인. 교보문고 쪽은 열리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
원서의 제목, 출판사, 출간 연도
원서 출판사 리액션 북스 누리집, 구글 도서, 영어 위키백과, 알라딘의 원제 표기로 확인
원서의 발행일과 쪽수
자료가 갈린다. 출판사 누리집은 2015년 3월 1일, 240쪽. 구글 도서는 2015년 5월 15일, 285쪽. 어느 것이 맞는지, 판이 다른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함
원서의 장 제목
2장, 5장, 6장의 제목과 꼭지 제목 일부만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 조각으로 확인. 나머지는 확인하지 못함
장별 내용
예스24의 출판사 리뷰와 발췌문, 김천일보의 서평, 한 독자의 블로그 서평, 구글 도서의 원서 조각으로 확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대조한 것이 아니다. 조각은 검색어 둘레의 한두 문장만 보이므로 앞뒤 흐름은 읽지 못했다. 서평의 한국어판 쪽수는 그 서평에 적힌 것이다
[확인필요]로 표시한 것
두 군데다. 히틀러의 담화 기록 영어판의 정확성을 두고 논란이 있다는 것과 게오르크 엘저가 누구인지는 정리자의 기억이며 이번에 자료로 확인하지 못함
저자의 생애와 경력
영어 위키백과와 예스24 저자 소개, 원서 출판사 소개로 확인. 부모가 홀로코스트를 피해 살아남았다는 것은 한 독자의 서평과 영어 위키백과(출처 필요 표시가 붙은 문장)에만 나온다
저자의 종교와 신앙
확인하지 못함
저자를 둘러싼 논란
여성과 군대에 관한 주장은 영어·독일어 위키백과로, 2011년 트리어대학교의 일은 《슈피겔》 2011년 10월 27일 기사와 독일어 위키백과로 확인. 그 밖의 논란은 싣지 않았다
영어권 서평, 한국 일간지 서평, 교계 언론 서평
찾지 못함. 원서 출판사 누리집의 추천의 말 한 건과 한국의 지역 신문 두 곳, 블로그 한 곳의 글만 확인했다
설교의 단서: 책 제목과 저자
제목은 설교에서 말씀하셨고 저자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같은 제목의 다른 책은 예스24와 알라딘 검색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 책으로 본 것은 정리자의 추정이다
설교의 단서: 히틀러와 양심을 다룬 장
한국어판 목차(5장 제3제국의 양심)와 출판사 리뷰로 확인
설교의 단서: 히틀러의 인용문
영어 원서의 조각(구글 도서가 보여 주는 143쪽)에서 같은 뜻의 문장을 글자로 확인. 문장의 앞머리는 조각에서 잘려 있다. 한국어판의 번역문과 쪽수는 확인하지 못함
설교의 단서: 히틀러가 그 말을 한 때
책이 드는 출처가 1941~1944년의 담화 기록이라는 것만 확인. 이 문장을 한 날짜는 확인하지 못함
설교의 단서: "최근에 출판된"
한국어판은 2020년 10월 발행, 설교는 2023년 4월. 두 해 반의 간격이 있다. 목사님이 어느 판을 보셨는지는 확인하지 못함
읽는 분께. 이 글은 책을 읽고 쓴 독후 정리가 아니라, 공개된 자료로 책의 짜임을 잡고 알려진 내용을 덧붙인 안내입니다. 설교나 교재에 옮기실 때는 반드시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