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RONICLES OF NARNIA · C. S. LEWIS · 1950~1956
[목사님추천]나니아 연대기
영국의 작가이자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가 1950년부터 1956년까지 해마다 한 권씩 낸 일곱 권의 어린이 환상 소설입니다. 사자 아슬란이 노래로 나니아를 지은 때부터 그 세계가 끝나는 날까지를 그립니다. 일곱 권의 줄거리와 기독교적으로 읽히는 대목, 루이스 자신의 설명, 책을 둘러싼 비판, 그리고 설교에 나온 "길들일 수 없는 사자"가 책의 어디에 나오는지를 정리했습니다.
정리 2026-10-11 · 책 본문은 읽지 못함 · 한국어판 서지와 책 소개, 권별 줄거리는 예스24와 알라딘으로, 원서의 서지와 권별 줄거리, 읽는 순서 논쟁, 비판은 영어 위키백과와 《가디언》 기사로, 책 속 문장은 위키인용집과 해설 글, 한국어 글에 옮겨진 것으로, 루이스의 편지와 글은 그것을 실은 잡지와 연구자의 글로, 기독교적 읽기는 홍종락 등의 한국어 글과 영어권 해설로 확인 · 자료로 확인하지 못한 내용은 [확인필요]로 표시함
사자 아슬란길들인 사자가 아니다창조와 대속과 마지막 심판알레고리와 가정
한눈에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는 C. S. 루이스(1898~1963)가 쓴 일곱 권의 소설이다. 첫 권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1950년 10월 16일 영국에서 나왔고, 그 뒤 해마다 한 권씩 이어져 1956년 『마지막 전투』로 끝났다. 그림은 일곱 권 모두 폴린 베인즈가 그렸다. 말하는 짐승과 신화 속 존재들이 사는 나니아라는 세계에 우리 세계의 아이들이 불려 가서 겪는 일을 그린다. 일곱 권 모두에 나오는 인물은 사자 아슬란 하나뿐이다.
한국어판은 어린이책 기획실 햇살과나무꾼이 옮기고 시공주니어가 냈다. 2001년 7월에 '나니아 나라 이야기'라는 묶음 이름으로 낱권 일곱 권이 나왔고, 2005년 11월 5일에 일곱 권을 한 권으로 묶은 합본 『나니아 연대기』(양장, 1,080쪽)가 나왔다. 한국어판은 책이 나온 순서가 아닌 이야기 속 시간 순서로 권을 매겼다. 그래서 나니아의 창조를 그린 『마법사의 조카』가 1권이다.
루이스는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글을 많이 쓴 사람이고, 이 이야기에서 아슬란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 세계의 창조와 마지막 심판은 성경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루이스는 이 이야기가 교리를 하나하나 다른 것에 빗댄 알레고리가 아니라고 여러 번 말했다. 그의 말로는, 나니아 같은 세계가 정말 있고 그 세계도 구속이 필요하다면 그리스도가 거기서 어떤 모습으로 오셔서 죽고 다시 사실지를 가정해 본 이야기다.
"He's wild, you know. Not like a tame lion."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마지막 장(17장)에서 비버 씨가 아이들에게 아슬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말로 풀면, 그분은 오고 가실 것이고 어느 날은 보이다가 어느 날은 보이지 않을 것이며, 매여 있기를 좋아하지 않으시니 조르면 안 된다, 그분은 야생이며 길들인 사자 같은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같은 책 8장에서 비버 씨는 아슬란이 안전하냐는 물음에 답한다. 한국어판의 문장은 "당연히 안전하지 않아요. 하지만 좋은 분이세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분은 왕이신걸요."이다. 길들인 사자가 아니라는 말은 『새벽 출정호의 항해』와 『마지막 전투』에도 다시 나온다.
책 정보
항목
내용
원제
The Chronicles of Narnia. 일곱 권을 묶어 이렇게 부른 것은 동료 어린이책 작가 로저 랜슬린 그린이 1951년 3월에 처음 쓴 이름이다(영어 위키백과).
저자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한국어판 저자 소개에 따르면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고, 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의 모들린 칼리지에서 강의하다가 1954년 케임브리지의 모들린 칼리지 교수로 옮겨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1929년에 회심했고, 1963년에 세상을 떠났다.
원서
일곱 권, 1950~1956년. 앞의 다섯 권은 영국의 제프리 블레스 출판사가, 뒤의 두 권 『마법사의 조카』(1955)와 『마지막 전투』(1956)는 보들리 헤드 출판사가 냈다. 그림 폴린 베인즈.
한국어판
햇살과나무꾼 옮김, 폴린 베인즈 그림, 시공주니어. 낱권 일곱 권('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클래식)은 2001년 7월 출간. 합본 『나니아 연대기』는 2005년 11월 5일 출간, 양장, 1,080쪽이며 나니아 인명 사전과 연대표, 지도가 실려 있다. 2023년 7월 10일에 합본의 리커버 특별판(1,080쪽)이, 2021년 2월 15일에 일곱 권 세트가 다시 나왔다.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다른 번역본(전경자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등)도 적혀 있다.
평가
『마지막 전투』는 1956년 영국 도서관협회의 카네기상을 받았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은 2005년 《타임》이 고른 영어 소설 100편에 들었다. 영어 위키백과는 일곱 권이 47개 언어로 약 1억 2천만 부 팔렸다고 적는다. 2005년 한국어판 합본의 출판사 소개는 29개 언어, 8,500만 부 이상이라고 적었다.
책의 열쇠 말
말
뜻
아슬란
나니아를 지은 사자. 말하는 짐승들의 왕이며 '바다 건너 황제'의 아들로 불린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아슬란은 터키어로 사자라는 뜻이다. 루이스는 편지에서, 나니아가 말하는 짐승들의 세계이므로 그리스도가 여기서 사람이 되셨듯이 거기서는 말하는 짐승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자가 짐승의 왕이며 성경이 그리스도를 '유다의 사자'라고 부르기 때문에 사자로 그렸다고 썼다.
길들인 사자가 아니다
아슬란을 두고 나니아 사람들이 되풀이하는 말(영어 not a tame lion). 아슬란이 자기 뜻대로 오고 가며 누구의 조종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루이스의 책을 여러 권 옮긴 번역가 홍종락은 '길들지 않는' 사자라고 옮기고, 이 별명이 아슬란의 자유와 주권을 드러낸다고 풀이한다.
심오한 마법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하얀 마녀가 내세우는 법. 모든 배신자는 마녀의 것이며 마녀에게 죽일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다. 아슬란은 그보다 앞선 '태초 이전의 더욱 심오한 마법'을 말한다. 죄 없는 이가 배신자를 대신해 스스로 죽으면 돌 탁자가 깨지고 죽음이 거꾸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알레고리와 가정
알레고리는 추상적인 뜻을 인물이나 사물에 하나씩 빗대는 이야기 방식이다(『천로역정』의 '절망 거인'이 절망을 나타내는 것처럼). 루이스는 나니아가 그런 것이 아니고 가정(영어 supposal)이라고 했다. 나니아 같은 세계가 있다면 그리스도가 거기서 어떻게 하셨을까를 가정해 본 이야기라는 뜻이다.
칼로르멘
나니아의 남쪽, 사막 너머에 있는 큰 나라. 타슈라는 신을 섬긴다. 『말과 소년』과 『마지막 전투』에 주로 나오며, 이 나라 사람들의 묘사가 인종 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아슬란의 나라
세상의 동쪽 끝 너머에 있는 곳. 『마지막 전투』의 끝에서 아이들과 나니아의 충성된 이들이 들어가는 '진짜 나니아'가 여기에 이어져 있다.
책의 짜임
아래부터는 일곱 권의 줄거리와 결말이 모두 드러난다. 책을 먼저 읽고 싶은 분은 이 표까지만 보기를 권한다.
일곱 권은 저마다 따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아래 표는 한국어판(시공주니어)의 권 순서, 곧 이야기 속 시간 순서로 적었고, 원서가 나온 순서는 넷째 칸에 적었다. 한국어 제목과 쪽수는 알라딘에 실린 2001년 낱권의 것이고, 합본(2005)의 목차도 같은 순서다(합본은 '제1장 마법사의 조카'부터 '제7장 마지막 전투'까지, 그리고 나니아 인명 사전과 나니아 연대표). 각 권 안의 장 제목은 한국어판의 것을 확인하지 못해 싣지 않았다.
읽는 순서를 두고는 의견이 갈린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책이 처음 나올 때는 권 번호가 없었다. 미국의 첫 출판사 맥밀런은 나온 순서대로 번호를 붙였고, 1994년에 판권을 얻은 하퍼콜린스는 루이스의 의붓아들 더글러스 그레셤의 제안에 따라 이야기 속 시간 순서를 택했다. 그 근거는 루이스가 1957년 미국의 한 어린 독자에게 보낸 답장이다. 루이스는 거기서 시간 순서로 읽자는 그 독자의 생각에 더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이 연작을 미리 계획하고 쓴 것이 아니었으며 어떤 순서로 읽든 크게 상관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루이스 연구자 폴 포드와 피터 섀클은 나온 순서를 지지한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아슬란의 이름이 처음 나올 때 화자가 아이들도 독자도 아슬란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하는데, 『마법사의 조카』를 먼저 읽으면 이 말이 맞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어판 합본의 출판사 소개는 시간 순서로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큰 줄기를 따라가는 감동이 있고, 나온 순서로 읽으면 앞서 스치듯 지나간 이야기의 뿌리를 알아 가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담당 편집자는 어떤 순서든 좋으나 『마지막 전투』만은 맨 나중에 읽기를 권했다.
한국어판 순서
한국어판 제목(낱권 쪽수)
원서 제목
원서 출간(나온 순서)
이야기 속 시간
1권
마법사의 조카 (251쪽)
The Magician's Nephew
1955년 5월 2일 (여섯째)
나니아가 지어지는 날. 우리 세계로는 1900년 런던
2권
사자와 마녀와 옷장 (229쪽)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
1950년 10월 16일 (첫째)
창조로부터 1천 년 뒤. 우리 세계로는 1940년
3권
말과 소년 (265쪽)
The Horse and His Boy
1954년 9월 6일 (다섯째)
2권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네 남매가 나니아를 다스리던 때
4권
캐스피언 왕자 (283쪽)
Prince Caspian: The Return to Narnia
1951년 10월 15일 (둘째)
우리 세계로는 2권의 1년 뒤, 나니아로는 1,300년 뒤
5권
새벽 출정호의 항해 (316쪽)
The Voyage of the Dawn Treader
1952년 9월 15일 (셋째)
나니아로 4권의 3년 뒤
6권
은의자 (297쪽)
The Silver Chair
1953년 9월 7일 (넷째)
나니아로 5권의 수십 년 뒤. 캐스피언은 노인이 되었다
7권
마지막 전투 (259쪽)
The Last Battle
1956년 9월 4일 (일곱째)
나니아로 6권의 약 200년 뒤. 나니아의 마지막 날
표시에 대하여. 이어지는 탭에서 [확인필요] 표시가 붙은 대목은 정리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부가 틀릴 수 있으니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 표시가 없는 대목은 서점의 책 소개나 목차, 백과사전, 기사처럼 실제로 열어 본 자료에 나온 내용입니다.
1~3권: 마법사의 조카, 사자와 마녀와 옷장, 말과 소년
나니아가 지어지고, 아슬란이 배신자를 대신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네 남매가 다스리던 시절에 한 소년이 제 나라를 찾는다. 루이스는 1961년 3월의 편지에서 이 세 권의 내용을 차례로 창조와 악이 들어온 일, 십자가와 부활, 이방인의 부르심과 회심이라고 적었다.
1권 마법사의 조카 (1955)
1900년 런던. 이웃에 사는 두 아이 디고리와 폴리가 디고리의 삼촌 앤드루의 방에 들어갔다가, 삼촌이 만든 마법 반지 때문에 다른 세계로 가게 된다. 두 아이는 여러 세계로 통하는 웅덩이가 있는 숲을 거쳐 죽은 도시 찬(Charn)에 이른다. 폴리가 말리는데도 디고리가 종을 쳐서 마녀 여왕 제이디스(Jadis)를 깨운다. 제이디스는 싸움에 지지 않으려고 한마디 말로 찬의 모든 생명을 죽인 사람이다.
제이디스는 아이들을 따라 런던까지 와서 소동을 벌인다. 아이들이 그를 데리고 나가려다 삼촌 앤드루, 마부 프랭크, 마부의 말까지 함께 아직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그들은 사자 아슬란이 노래로 별과 해, 풀과 나무, 짐승을 불러내어 나니아를 짓는 것을 본다. 제이디스가 아슬란을 치려던 가로등 쇠막대는 튕겨 나가 새 땅에 박히고 가로등으로 자란다(2권에 나오는 숲속 가로등이다).
아슬란은 몇몇 짐승에게 말하는 능력을 주고, 마부 프랭크와 그의 아내 헬렌을 나니아의 첫 왕과 왕비로 세운다. 그리고 마녀를 깨워 이 세계에 데려온 책임을 디고리에게 묻고, 먼 동산의 나무에서 사과 하나를 따 오게 한다. 동산에서 제이디스는 사과를 먹어 죽지 않는 몸이 되고, 디고리에게 너도 먹으라고, 또 병든 어머니에게 가져가라고 꾄다. 디고리는 넘어가지 않고 사과를 아슬란에게 가져온다.
그 사과를 심어 자란 나무가 나니아를 오랫동안 마녀에게서 지켜 준다. 아슬란은 그 나무의 사과 하나를 디고리에게 주고, 디고리의 어머니는 그것을 먹고 낫는다. 디고리가 런던의 뒤뜰에 심은 사과 속에서 나무가 자라고, 훗날 폭풍에 쓰러진 그 나무로 교수가 된 디고리가 옷장을 만든다. 2권의 옷장이 이것이다.
기독교적으로 읽히는 대목. 루이스는 이 권이 창조와 악이 나니아에 들어온 일을 말한다고 했다. 영어 위키백과는 창세기와 닮은 점으로 창조, 금지된 열매, 유혹을 든다. 동산에서 마녀가 디고리를 꾀는 장면은 뱀이 하와를 꾀는 장면과 겹치지만 디고리는 하와와 달리 유혹을 물리친다. 다른 점도 적는다. 나니아에서는 사람이 지음받지 않고 우리 세계에서 건너오며, 짐승과 나무와 강도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을 받는다. 아슬란이 숨을 불어넣어 생명과 힘을 주는 것은 성령을 나타낸다고 풀이한다.
이 권에서 아슬란이 하는 말 가운데 위키인용집에 실린 것이 있다. 사과를 훔쳐 먹은 마녀를 두고 한 말로, 누구나 바라는 것을 얻지만 그것을 늘 좋아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14장). 마녀는 죽지 않게 되었으나 끝없이 불행하다.
영어 위키백과는 이 권에 루이스 자신의 어린 시절이 겹친다고 적는다. 디고리와 루이스는 둘 다 1900년대 초의 아이였고, 둘 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했다. 디고리의 어머니는 낫지만 루이스의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2권 사자와 마녀와 옷장 (1950)
1940년, 런던 공습을 피해 시골의 디고리 커크 교수 집에 온 페번시 집안의 네 남매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의 이야기다. 막내 루시가 옷장 속으로 들어갔다가 눈 덮인 숲과 가로등을 만나고, 파우누스 툼누스에게서 나니아가 하얀 마녀 때문에 늘 겨울이라는 말을 듣는다. 뒤따라 들어간 에드먼드는 하얀 마녀를 만나 터키 젤리를 얻어먹고, 형제들을 데려오면 왕자로 삼아 주겠다는 말에 넘어간다. 돌아와서는 루시의 말이 지어낸 놀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네 남매가 함께 나니아에 들어가자 비버 부부가 그들을 맞는다. 비버 부부는 아담의 아들 둘과 하와의 딸 둘이 케어 패러벨의 네 왕좌에 앉으면 마녀의 다스림이 끝난다는 예언과, 나니아의 참된 왕 아슬란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에드먼드는 몰래 빠져나가 마녀에게 이를 알린다. 눈이 녹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돌 탁자에서 아슬란을 만난다.
마녀가 찾아와 '태초부터 있던 심오한 마법'에 따라 배신자 에드먼드의 목숨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슬란은 마녀와 따로 이야기한 뒤 마녀가 그 권리를 포기했다고 알린다. 그날 밤 수잔과 루시는 아슬란을 몰래 따라가, 마녀의 무리가 아슬란의 털을 깎고 돌 탁자에 묶어 죽이는 것을 멀리서 본다. 아슬란이 에드먼드 대신 죽기로 한 것이다.
이튿날 아침 돌 탁자가 갈라지고 아슬란이 다시 살아난다. 아슬란은 마녀가 태초까지만 알았고 그 이전의 더 깊은 마법은 몰랐다고 말한다. 배신한 적 없는 이가 배신자를 대신해 스스로 죽임을 당하면 돌 탁자가 깨지고 죽음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15장, 위키인용집에 실린 대목). 아슬란은 마녀의 성으로 가서 돌이 된 이들을 되살리고, 싸움터에서 마녀를 죽인다.
네 남매는 왕과 여왕이 되어 오래 다스린다. 어른이 된 어느 날 흰 사슴을 쫓다가 가로등을 지나 옷장 밖으로 나오고, 다시 아이가 되어 있다. 우리 세계의 시간은 조금도 흐르지 않았다.
'길들인 사자가 아니다'가 처음 나오는 곳이 이 권이다. 8장에서 아슬란이 사자라는 말을 들은 아이가 그분이 안전하냐고 묻자 비버 씨가 답한다. 원문은 "'Course he isn't safe. But he's good. He's the King, I tell you."이다. 시공주니어 한국어판은 이것을 "당연히 안전하지 않아요. 하지만 좋은 분이세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분은 왕이신걸요."로 옮겼다(크리스천투데이에 실린 정인영의 글과 한 독자의 블로그가 같은 문장을 옮겨 적었고, 독자의 블로그는 낱권 97쪽이라고 적는다). 바로 앞에서 비버 부인은 아슬란 앞에서 무릎을 떨지 않는다면 아주 용감하거나 바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17장에서 대관식 뒤 아슬란이 떠나자 비버 씨가 다시 말한다. 그분은 오고 가실 것이고, 매여 있기를 좋아하지 않으시며, 돌보아야 할 다른 나라들도 있으니 조르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He's wild, you know. Not like a tame lion."이라고 덧붙인다(위키인용집에 장 이름과 함께 실린 대목).
기독교적으로 읽히는 대목. 루이스는 이 권이 십자가와 부활을 말한다고 했다. 아슬란은 죽기 전에 조롱을 받고, 두 소녀가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슬퍼하고, 아침에 주검이 있던 자리가 비어 있다. 영어 위키백과는 수잔과 루시를 복음서의 무덤가 여인들에 견준 해석을 소개한다. 돌 탁자는 모세의 율법을 나타내며 그것이 갈라지는 것은 율법의 엄한 정의가 대속에 바탕을 둔 은혜와 용서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고 풀이한다.
같은 글은 다른 점도 적는다. 아슬란은 나니아 전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에드먼드 한 사람을 구하려고 죽고, 하룻밤만 죽어 있다. 한 목사는 배신자 에드먼드가 용서받고 왕이 되는 것을 두고, 신약 성경이 가룟 유다가 구속받아 사도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성경과 하나하나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루이스는 이 책을 벗 오언 바필드의 딸이자 자기 대녀인 루시 바필드에게 바쳤다. 헌사에서 그는 책이 다 되기도 전에 네가 동화를 읽기에는 너무 커 버렸지만, 언젠가는 동화를 다시 읽을 만큼 나이를 먹게 될 것이라고 썼다.
3권 말과 소년 (1954)
네 남매가 나니아를 다스리던 때의 이야기이고, 주인공은 우리 세계의 아이가 아니다. 남쪽 나라 칼로르멘에서 어부의 아들로 자란 소년 샤스타가 자기가 종으로 팔리게 된 것을 알고, 나니아에서 잡혀 온 말하는 말 브레와 함께 북쪽으로 달아난다. 도중에 사자들에게 쫓기다가, 늙은 재상과 억지로 혼인하게 되어 달아난 귀족 소녀 아라비스(Aravis)와 말하는 암말 휜(Hwin)을 만나 넷이 함께 간다.
칼로르멘의 수도 타슈반에서 샤스타는 아첸랜드의 왕자 코린으로 오해받아 나니아 사람들 틈에 끼게 되고, 아라비스는 칼로르멘의 왕자 라바다슈가 수잔 여왕을 빼앗으려고 아첸랜드와 나니아를 몰래 치려 한다는 것을 엿듣는다. 넷은 사막을 건너 이 소식을 알리러 간다. 사막 끝에서 또 사자에게 쫓기고 아라비스가 등을 다친다.
샤스타는 혼자 달려가 아첸랜드의 룬 왕에게 알린다. 그 뒤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곁에서 함께 걷는 보이지 않는 이에게 자기의 불운을 늘어놓는다. 그 목소리가 답한다. 너를 아라비스와 만나게 한 사자도, 무덤가에서 너를 위로한 고양이도, 네가 자는 동안 들짐승을 쫓은 사자도, 말들에게 마지막 힘을 내게 한 사자도, 죽어 가는 아기였던 네가 탄 배를 뭍으로 밀어 준 사자도 나였다고(11장, 위키인용집에 실린 대목).
샤스타가 그러면 아라비스를 다치게 한 것도 당신이냐고, 왜 그랬느냐고 묻자 아슬란은 나는 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고 누구에게든 그 사람 자신의 이야기만 들려준다고 답한다. 영어 위키백과는 이 대목을 들어 이 권의 주제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적는다. 샤스타가 불운으로 여긴 일들이 더 큰 목적을 위해 아슬란이 이끈 일이었다는 것이다.
샤스타의 소식 덕분에 아첸랜드는 성을 지키고, 에드먼드 왕과 루시 여왕이 이끈 나니아 군이 와서 칼로르멘 군을 이긴다. 샤스타는 룬 왕의 잃어버린 쌍둥이 아들 코르로 밝혀진다. 그가 아첸랜드를 가장 큰 위험에서 구하리라는 예언을 막으려던 이에게 아기 때 납치되었던 것이다. 졌는데도 뉘우치지 않는 라바다슈를 아슬란은 당나귀로 바꾼다. 코르와 아라비스는 자라서 혼인하고 아첸랜드를 다스린다.
루이스는 이 권의 내용을 이방인의 부르심과 회심이라고 적었다. 홍종락은 이 권에서 아슬란의 다스림이 나니아를 넘어 아첸랜드와 칼로르멘까지 미치는 것이 드러난다고 풀이한다.
4~6권: 캐스피언 왕자, 새벽 출정호의 항해, 은의자
캐스피언이라는 한 왕의 소년 시절부터 죽음까지가 세 권에 걸쳐 있다. 루이스는 이 세 권의 내용을 차례로 타락한 뒤에 참된 신앙이 회복되는 일, 영적인 삶, 어둠의 세력과 이어지는 싸움이라고 적었다.
4권 캐스피언 왕자 (1951)
2권의 일이 있은 지 1년 뒤,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네 남매가 기차역에서 다시 나니아로 끌려간다. 닿은 곳은 폐허가 된 성인데, 자기들이 다스리던 케어 패러벨이다. 우리 세계의 1년 동안 나니아에서는 1,300년이 흘렀다.
그사이 나니아는 텔마르 사람들에게 정복되었고, 말하는 짐승과 옛 나니아 사람들은 숨어 산다. 지금의 왕 미라즈는 형인 캐스피언 9세를 죽이고 왕좌를 빼앗은 사람이다. 형의 아들 캐스피언 왕자는 가정 교사 코르넬리우스 박사에게서 옛 나니아의 이야기를 배웠고, 미라즈에게 아들이 태어나자 달아나 옛 나니아 사람들의 왕이 된다. 싸움에서 밀리자 캐스피언은 도움을 부르는 수잔 여왕의 뿔나팔을 분다. 네 남매가 불려 온 까닭이다.
난쟁이 트럼프킨(Trumpkin)의 안내로 캐스피언에게 가는 길은 험하다. 아슬란이 루시에게만 나타나 따라오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처음에 그를 보지 못한다. 피터는 미라즈에게 일대일 결투를 청해 이기지만 텔마르의 귀족들이 미라즈를 찌르고 싸움을 일으킨다. 아슬란이 숲의 나무들을 깨우고 강의 다리가 무너지자 텔마르 군이 항복한다.
아슬란은 텔마르 사람들에게 캐스피언 아래에서 나니아에 살지, 조상의 고향인 우리 세계로 돌아갈지를 고르게 한다. 네 남매도 그 문으로 돌아온다. 피터와 수잔은 이제 나이가 들어 다시는 나니아에 오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다.
기독교적으로 읽히는 대목. 루이스는 한 미국 소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권이 타락한 뒤에 참된 신앙이 회복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위키인용집에 실린 두 대목이 자주 인용된다. 루시가 아슬란에게 더 커지셨다고 하자 아슬란은 네가 자랐기 때문이며 네가 해마다 자랄수록 나를 더 크게 보게 될 것이라고 답한다(10장). 왕이 될 만하다고 느끼느냐는 물음에 캐스피언이 그렇지 않다고 하자 아슬란은 네가 스스로 넉넉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증거였을 것이라고 한다(15장).
미국 노트르담 대학교의 신학자 앤서니 팔리아리니는 이 권에서 아슬란이 루시에게 한 말, 일은 결코 같은 방식으로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 연대기가 되풀이해 말하듯 아슬란은 길들인 사자가 아니라고 쓴다. 지난번처럼 으르렁거리며 나타나 적을 다 쫓아 주리라고 기대한 루시에게 아슬란이 한 답이다.
5권 새벽 출정호의 항해 (1952)
에드먼드와 루시가 심술궂은 사촌 유스터스의 집에 머물다가, 벽에 걸린 배 그림 속으로 셋이 함께 빨려 들어간다. 그 배가 캐스피언 왕의 새벽 출정호다. 캐스피언은 왕이 된 지 3년이 지나 나라가 안정되자, 미라즈에게 쫓겨 바다로 떠난 아버지의 벗 일곱 귀족을 찾아 동쪽으로 항해하는 길이다. 말하는 생쥐 리피치프는 동쪽 끝 너머 아슬란의 나라에 가기를 바라며 함께 탔다.
섬마다 일이 벌어진다. 첫 섬에서는 노예 장사꾼에게 잡혔다가 풀려나 캐스피언이 노예 제도를 없앤다. 둘째 섬에서 유스터스는 일하기 싫어 혼자 빠져나갔다가 죽은 용의 굴에서 보물에 욕심을 내고 잠들어 용이 된다. 용이 되고서야 자기가 어떤 아이였는지 알게 되고, 스스로 허물을 벗으려 하지만 되지 않는다. 아슬란이 벗겨 주어야만 사람으로 돌아오는데 그 과정이 몹시 아프다. 그 뒤로 유스터스는 다른 아이가 된다.
담그는 것마다 금이 되는 물이 있는 섬에서는 캐스피언이 욕심에 흔들리고, 마법사 코리아킨(Coriakin)의 섬에서는 루시가 마법 책으로 자기를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유혹과 친구들의 말을 엿듣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꿈이 이루어지는 어둠의 섬에서는 악몽에 시달리던 귀족 하나를 구한다. 이 어둠의 섬에서 아슬란이 루시에게 용기를 내라고 속삭인다(12장).
'길들인 사자가 아니다'가 이 권에도 나온다. 11장에서 아슬란이 루시와 마법사 코리아킨을 잠깐 만나고 사라지자 마법사가 루시에게 말한다. 늘 저러시며 붙들어 둘 수 없다고 하고, 원문으로 "It's not as if he were a tame lion."이라고 덧붙인다(나니아 독자 모임 누리집의 해설 글에 장과 함께 옮겨진 대목).
배가 더 나아갈 수 없는 얕은 바다에 이르자 캐스피언은 자기도 세상 끝까지 가겠다고 한다. 왕이 나라를 버릴 권리는 없다고 선원들이 막자 화를 내며 선실로 들어갔다가, 아슬란이 선실에 나타나 말했다고 하며 뜻을 거둔다. 에드먼드, 루시, 유스터스, 리피치프만 작은 배로 백합의 바다를 지나고, 리피치프는 홀로 물벽을 넘어 아슬란의 나라로 간다.
세 아이는 물가에서 어린양을 만나고, 어린양은 아슬란으로 바뀐다. 영어 위키백과는 이 장면이 요한복음 21장 9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적는다. 아슬란은 에드먼드와 루시에게 너희는 이제 나니아에 다시 오지 못한다고 한다. 다시는 당신을 못 만나느냐고 우는 루시에게 아슬란은 너희 세계에도 내가 있다고 답한다. 거기서 나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그 이름으로 나를 알아 가야 하며, 너희를 나니아에 데려온 까닭이 바로 여기서 나를 조금 앎으로써 거기서 나를 더 잘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16장, 위키인용집에 실린 대목).
루이스는 이 권의 내용을 영적인 삶이라고 하고 특히 리피치프에게서 그것이 보인다고 적었다. 한 연구자는 이 권에 뚜렷한 악당이 거의 없고, 주인공들이 거듭 자기 성품의 흠과 맞닥뜨린다고 짚었다(영어 위키백과의 인용).
[확인필요] 유스터스가 용의 허물을 벗고 물에 씻기는 장면은 회개와 세례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으로 자주 읽힌다. 이번에 열어 본 자료에서는 이 풀이를 글자로 확인하지 못했다.
6권 은의자 (1953)
페번시 남매가 나오지 않는 첫 권이다. 달라진 유스터스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같은 반 질을 달래다가, 둘이 못된 아이들을 피해 문을 지나 아슬란의 나라에 들어선다. 아슬란은 질에게 일을 맡긴다. 10년 전 사라진 캐스피언 왕의 아들 릴리언 왕자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잡이가 될 네 가지 표지를 일러 준다.
나니아에 닿은 둘은 배를 타고 떠나는 노인을 보고도 그가 캐스피언인 줄 모르고 인사하지 않아 첫째 표지를 놓친다. 유스터스에게는 1년도 안 된 사이에 나니아에서는 수십 년이 흘렀다. 둘은 늪에 사는 침울한 길잡이 퍼들글럼과 함께 북쪽 거인의 땅으로 간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편한 잠자리만 생각하다가 눈보라 속에서 옛 거인 도시의 폐허를 그냥 지나쳐 둘째 표지도 놓친다. 거인의 성에서야 벼랑에 새겨진 글자가 셋째 표지임을 알아보고, 자기들이 잔치의 요리감이라는 것을 알고 달아나 땅속 나라로 떨어진다.
땅속 나라의 성에서 만난 젊은이는 밤마다 발작이 온다며 은의자에 묶인다. 묶인 젊은이가 아슬란의 이름으로 풀어 달라고 빌자, 셋은 그것이 넷째 표지임을 알아보고 망설이다가 풀어 준다. 그가 릴리언 왕자다. 초록 옷의 여인이 돌아와 마법으로 그들을 홀려 자기가 누구인지 잊게 하려 하자, 퍼들글럼이 맨발로 마법의 불을 밟아 끄고 주문을 깬다.
위키인용집에 실린 퍼들글럼의 말(12장)은 이 권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다. 나무와 풀과 해와 달과 별과 아슬란을 우리가 꿈꾸었거나 지어낸 것이라고 치자, 그렇다 해도 지어낸 것들이 당신의 진짜 세계보다 훨씬 중요해 보인다, 그러니 나는 이끌어 줄 아슬란이 없더라도 아슬란 편에 설 것이고 나니아가 없더라도 나니아 사람답게 살겠다는 말이다.
여인은 초록 뱀으로 변하고 릴리언이 그 뱀을 죽인다. 그 뱀이 어머니를 죽인 뱀이었다. 릴리언은 돌아와 아버지를 만나지만 캐스피언은 아들을 축복하고 곧 죽는다. 아슬란의 나라에서 유스터스가 아슬란의 발에 가시를 박아 흐른 피가 죽은 캐스피언 위에 떨어지자, 캐스피언은 젊은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한국어판 출판사의 줄거리 소개는 아슬란이 여기서 죽음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알려 준다고 적는다.
질이 아슬란을 처음 만나는 2장의 대목도 위키인용집에 실려 있다. 목이 타는 질이 시냇가의 사자가 무서워 다른 시내를 찾겠다고 하자 사자는 다른 시내는 없다고 답한다. 또 아슬란은 내가 너희를 부르지 않았다면 너희가 나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확인필요] 아슬란이 질에게 표지를 아침에 일어날 때와 밤에 누울 때 되뇌라고 이르는 대목은 신명기 6장의 말씀(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강론하라)에 견주어 읽히곤 한다. 이번에 열어 본 자료에서는 이 풀이와 해당 문장을 글자로 확인하지 못했다.
7권 마지막 전투 (1956): 거짓 아슬란과 나니아의 끝
루이스는 이 권의 내용을 적그리스도(원숭이)의 등장, 세상의 끝, 마지막 심판이라고 적었다. '길들인 사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쁘게 쓰이는 것도 이 권이다. 수잔의 결말과 칼로르멘 사람 에메스의 이야기도 여기에 나온다.
거짓 아슬란
나니아의 마지막 시절, 아슬란이 나타난 지 아주 오래된 때다. 꾀 많고 욕심 많은 원숭이 시프트가 어수룩한 당나귀 퍼즐에게 사자 가죽을 씌우고 아슬란이 돌아왔다고 속인다.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발췌문에서 시프트는 퍼즐에게 넌 그냥 아슬란 님인 척하라고, 무슨 말을 할지는 내가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시프트는 아슬란의 대변자 노릇을 하며 아슬란의 이름으로 나무를 베게 하고 말하는 짐승들을 칼로르멘 사람들에게 일꾼으로 넘긴다. 칼로르멘의 장수 리슈다(Rishda)와 손잡고는 칼로르멘의 신 타슈와 아슬란이 같은 분이라고 하며 '타슐란'이라는 이름까지 만든다. 따져 묻는 이들은 '타슐란'이 있다는 마구간에 들여보내 몰래 죽인다.
이 권에서 '길들인 사자가 아니다'는 두 가지로 쓰인다. 먼저 2장에서 나니아의 마지막 왕 티리언과 그의 벗 유니콘 주얼(Jewel)이 아슬란이 거룩한 나무를 베고 나무 요정들을 죽이게 했다는 소문을 듣는다. 티리언이 그것이 정말일 수 있느냐고 묻자 주얼이 괴로워하며 답한다. 원문은 "I don't know. He's not a tame lion."이다(문학 해설 누리집 리트차츠에 장과 함께 옮겨진 대목). 아슬란을 믿는 이들이 이 말 때문에 거짓을 곧바로 물리치지 못한다.
다음으로 시프트가 이 말을 이용한다. 홍종락의 풀이에 따르면, 예전의 아슬란은 짐승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왔는데 왜 이번에는 원숭이를 통해서만 말하고 종살이를 시키느냐는 물음에, 시프트는 아슬란이 길들지 않는 사자라는 것을 꺼내 들고 그분이 어떻게 하실지 너희가 어떻게 아느냐고 되묻는다. 길들일 수 없다는 말을 선과 악의 경계마저 넘나드는 종잡을 수 없는 폭군이라는 뜻으로 비튼 것이다.
홍종락은 이 위기에서 믿음을 지킨 이들이 붙든 것이 아슬란에 대한 참된 지식이었다고 풀이한다. 붙잡힌 티리언은 자기 백성의 피를 먹고 사는 타슈가 어떻게 모든 나니아 백성을 자기 피로 구한 선한 사자와 같을 수 있느냐고 외치려 한다. 아슬란이 배신자를 위해 죽었다는 지난 일이 가짜 아슬란을 가려내는 반석이었다는 것이다. 길들일 수 없다는 말이 선하다는 말과 떨어지면 거짓에 쓰인다는 것을 이 권이 보여 준다.
마지막 싸움과 마구간 문
묶인 티리언이 아슬란을 부르자 환상 속에 피터 왕과 여러 사람이 보이고, 곧 유스터스와 질이 나니아에 나타난다. 둘은 티리언과 주얼을 풀어 주고 마구간에서 퍼즐을 찾아낸다. 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를 본 난쟁이들은 구출되고도 이제 아슬란이든 누구든 믿지 않겠다고 하며 난쟁이는 난쟁이 편이라고 선언한다. 난쟁이 포긴(Poggin) 하나만 티리언 편에 선다.
시프트와 리슈다가 믿지도 않으면서 부른 진짜 타슈가 나니아에 온다. 독수리가 와서 티리언을 도우러 오던 군대가 모두 죽고 케어 패러벨이 칼로르멘에 넘어갔다고 알린다. 티리언의 작은 무리는 마구간 언덕에서 싸우지만 거의 다 죽거나 마구간에 던져진다. 티리언은 시프트를 마구간에 던지고, 타슈가 시프트를 삼킨다. 마지막에 티리언은 리슈다를 끌고 마구간 문으로 들어간다.
문 안은 마구간이 아니고 넓고 푸른 들이다. 거기에 디고리와 폴리, 피터, 에드먼드, 루시가 있다. 피터가 타슈에게 물러가라고 명하자 타슈는 리슈다를 움켜쥐고 사라진다. 믿지 않기로 한 난쟁이들도 그 들에 와 있지만, 자기들이 어두운 마구간에 갇혀 있다고만 여긴다. 아슬란이 차려 준 잔치도 알아보지 못한다. 아슬란은 그들이 스스로 믿지 않으려 하므로 자기도 도울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수잔이 없다
나니아의 벗들 가운데 수잔만 없다. 티리언이 수잔 여왕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12장) 피터가 내 누이 수잔은 이제 나니아의 벗이 아니라고 답한다. 질은 수잔이 요즘 나일론 스타킹과 립스틱과 초대장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하고, 유스터스는 나니아 이야기를 꺼내면 수잔이 어릴 때 하던 그 재미있는 놀이를 아직도 기억하느냐고 한다고 전한다. 폴리는 수잔이 어른이 되었다고들 하지만 자기는 수잔이 정말로 자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책의 끝에서 아슬란은 나니아의 벗들이 우리 세계의 기차 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수잔은 그 기차에도 역에도 없었으므로 살아남았다. 영어 위키백과는 수잔이 끝내 오지 못하는지는 책이 열어 둔 채로 끝난다고 적는다. 이 대목을 둘러싼 비판과 루이스 자신의 말은 '읽기와 논쟁' 탭에 정리했다.
나니아의 끝과 심판
아슬란이 문 앞에서 때가 되었다고 외치자 시간의 거인이 깨어나 별들을 하늘에서 불러 내린다. 나니아의 모든 피조물이 문 앞으로 와서 아슬란의 얼굴을 본다. 그 얼굴을 보고 사랑하는 이들은 문 안으로 들어오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말하는 능력을 잃고 아슬란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다. 화자는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자기도 모른다고 한다. 땅은 물에 잠기고 해가 꺼지며, 피터가 문을 닫는다.
에메스 이야기. 문 안에서 벗들은 칼로르멘의 젊은 장교 에메스(Emeth)를 만난다. 평생 타슈를 참되게 섬겼고 타슈를 제 눈으로 보겠다고 마구간에 들어온 사람이다. 그는 아슬란을 만나 자기는 타슈의 종이었으니 죽게 되리라 여겼으나 아슬란이 아들아 잘 왔다고 맞았다고 들려준다(15장, 위키인용집에 실린 대목). 아슬란은 네가 타슈에게 한 섬김을 내게 한 것으로 여긴다고 하고, 그것은 타슈와 내가 하나여서가 아니라 정반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악한 섬김은 아슬란에게 드려질 수 없고, 악하지 않은 섬김은 타슈에게 드려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영어 위키백과는 에메스라는 이름이 히브리어로 진리를 뜻하며, 이 대목이 그리스도를 분명히 믿지 않은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포용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읽혀 일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논란이 되어 왔다고 적는다. 루이스는 1952년의 한 편지에서, 거짓 신에게라도 참된 마음으로 드린 기도는 참 하나님이 받으시며 그리스도는 자기가 그분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많은 이를 구원하신다고 생각한다고 쓰고, 양과 염소의 비유(마태복음 25장)를 근거로 들었다.
아슬란은 벗들을 '진짜 나니아'로 이끈다. 지금까지의 나니아는 그것의 그림자였다. 더 높이, 더 깊이 들어가며 벗들은 오래전에 죽은 이들을 다시 만난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그림자 나라여 안녕'이라는 뜻(Farewell to Shadowlands)이다. 아슬란은 학기는 끝났고 방학이 시작되었으며 꿈은 끝났고 이제 아침이라고 말한다. 화자는 그분이 말할 때 더는 사자로 보이지 않았다고 적고, 이 세상에서의 삶과 나니아의 모험은 책의 겉장과 속표지였을 뿐이며 이제 아무도 읽어 본 적 없는 위대한 이야기의 첫 장이 시작된다고 맺는다.
팔리아리니는 시프트의 죄를 말의 오용이라고 풀이한다. 나무 위의 꾀 많은 짐승이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느냐고 묻는 창세기 3장과 닮았다는 것이다. 천둥이 치자 퍼즐은 그만두라는 표지로 알아듣지만 시프트는 거꾸로 계속하라는 표지라고 뒤집는다. 그는 이 권을 속임의 비싼 값과 믿음이라는 덕을 그린 책이라고 부른다.
루이스 자신의 설명, 그리고 책을 둘러싼 비판
이 이야기를 기독교적으로 읽는 일을 루이스가 어떻게 설명했는지와, 책이 받아 온 비판과 그에 대한 반론을 모았다. 비판과 반론은 양쪽의 말을 그대로 옮기려 했다.
알레고리가 아니라는 루이스의 말
루이스는 1956년의 글 「때로는 동화가 할 말을 가장 잘 전한다」에서, 자기가 어린이에게 기독교를 전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동화를 도구로 골라 기독교의 기본 진리 목록을 만들고 그것을 담을 알레고리를 짜냈으리라는 짐작은 순전히 헛소리라고 썼다. 자기는 그렇게 쓸 수 없으며, 모든 것은 그림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우산을 든 파우누스, 썰매를 탄 여왕, 위엄 있는 사자의 그림이다. 처음에는 거기에 기독교적인 것이 없었고 그 요소는 제 발로 밀고 들어왔다고 한다.
같은 글에서 루이스는 이런 이야기가 어린 시절 자기 신앙을 굳게 한 어떤 막힘을 몰래 지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마땅히 느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 의무감이 도리어 느낌을 얼어붙게 한다. 그런 것들을 상상의 세계에 옮겨 놓고 교회 색유리와 주일학교의 분위기를 벗겨 내면 처음으로 본디의 힘을 드러내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1958년 12월 29일 후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슬란이 『천로역정』의 절망 거인이 절망을 나타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신성을 나타낸다면 알레고리의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아슬란은 나니아 같은 세계가 정말 있고 그리스도가 우리 세계에서 실제로 하신 것처럼 그 세계에서 몸을 입고 죽고 다시 살기로 하셨다면 어떤 모습이 되셨을까 하는 물음에 상상으로 답해 본 창작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알레고리가 전혀 아니다.
1962년 12월 2일 미국의 교사 제임스 히긴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짧게 적었다. 원문은 "The Narnian books are not as much allegory as supposal."이다. 나니아 책들은 알레고리라기보다 가정이라는 뜻이다. 같은 편지에서 루이스는 아슬란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야기에 들어온 뒤에야 성경의 '유다의 사자'가 생각났다고 썼고,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쓸 때는 다른 책들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루이스는 뒤에 가서 각 권이 무엇에 닿아 있는지를 스스로 짚었다. 1961년 3월의 편지에서 일곱 권을 이렇게 정리했다. 『마법사의 조카』는 창조와 악이 나니아에 들어온 일, 『사자와 마녀와 옷장』은 십자가와 부활, 『캐스피언 왕자』는 타락 뒤 참된 신앙의 회복, 『말과 소년』은 이방인의 부르심과 회심, 『새벽 출정호의 항해』는 영적인 삶(특히 리피치프), 『은의자』는 어둠의 세력과 이어지는 싸움, 『마지막 전투』는 적그리스도(원숭이)의 등장과 세상의 끝과 마지막 심판이다.
한국어판 합본의 출판사 소개도 같은 쪽에 선다. 배신자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다시 살아나는 아슬란은 분명히 예수의 표상이지만, 그것이 전부였다면 이 작품은 알레고리 안에 갇혔을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성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북유럽과 남유럽의 신화와 동방의 이야기를 끌어왔다는 것이다.
루이스의 가까운 벗 J. R. R. 톨킨은 나니아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여러 신화의 요소가 마구 섞여 있다는 점, 실제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오가는 이야기를 못마땅해했다는 점 때문이다.
수잔의 결말을 둘러싼 비판과 반론
말한 사람
내용
필립 풀먼(영국의 소설가, 《가디언》 1998년 10월 1일 글 「나니아의 어두운 면」)
수잔은 신데렐라처럼 삶의 한 시기에서 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중인데 루이스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썼다. 루이스가 나니아를 쓰던 무렵에는 여성 일반도 성(性)도 좋아하지 않았고, 자라고 싶어 한다는 생각 자체를 두려워하고 질색했다는 것이다. 2002년 6월의 한 행사에서는 나니아가 소녀와 여성을 엄청나게 깎아내리고 노골적으로 인종 차별적이며, 한 소녀는 옷과 남자아이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지옥에 보내졌다고 말했다(《가디언》 2002년 6월 3일 보도).
J. K. 롤링(《타임》 2005년 7월 17일 대담)
나이 많은 소녀였던 수잔이 립스틱에 관심을 두게 되었기 때문에 나니아를 잃는 지점이 있다고 했다. 수잔이 성에 눈떴기 때문에 신앙을 잃은 사람이 된 셈인데 자기는 그것이 크게 걸린다고 했다.
닐 게이먼(단편 소설 「수잔의 문제」, 2004)
기차 사고로 온 가족을 잃은 노교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름은 밝히지 않으나 늙은 수잔으로 읽히는 인물이다. 이 소설 뒤로 '수잔의 문제'라는 말이 이 대목에 대한 문학적이고 여성주의적인 물음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영어 위키백과).
C. S. 루이스(1957년 1월 22일, 어린 독자에게 보낸 편지)
책은 수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 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수잔은 끝에서 이 세상에 살아 남아 있으며, 그 무렵에는 꽤 어리석고 우쭐대는 젊은 여자가 되어 있다. 그러나 고쳐질 시간은 넉넉하고, 어쩌면 끝내는 자기 나름의 길로 아슬란의 나라에 이를 것이라고 썼다.
C. S. 루이스(1960년 2월 19일, 수잔의 일로 속상해한 독자에게 보낸 편지)
자기는 그 이야기를 쓸 수 없다고 했다. 수잔이 아슬란의 나라에 이르리라는 소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여정의 이야기가 자기가 쓰고 싶었던 것보다 길고 어른 소설에 가까울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리고 당신이 직접 써 보면 어떠냐고 권했다.
데빈 브라운(미국 애즈베리 대학 교수, 2009년 3월 28일 학회 발표)
풀먼의 말이 루이스의 글을 인용하지 않고 줄거리도 틀리게 전한다고 반박했다. 책에서 질이 말한 것은 수잔이 그런 것들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므로, 수잔의 잘못은 자라는 것도 남자에게 관심을 두는 것도 아닌 허영이라고 했다. 다른 권에서 루시와 질과 아라비스가 옷과 치장을 즐기는 것은 흠으로 그려지지 않으며, 허영은 앤드루 삼촌과 말 브레 같은 남성 인물에게도 똑같이 나타난다고 짚었다. 또 수잔을 막은 것은 수잔 자신이며, 이 세상에 살아 있으므로 길이 닫힌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니아 독자 모임 누리집(나니아웹)의 한 독자 댓글
수잔이 나중에 구원받느냐보다, 이십 대 초반의 젊은 여자가 부모와 형제와 벗을 한꺼번에 잃고 홀로 남게 한 이 세상에서의 처지가 가혹하다고 적었다. 반론만으로 풀리지 않는 물음이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그 밖의 견해(영어 위키백과)
철학자 캐린 프라이는 연대기에서 호감 가는 여성 인물은 전통적인 여성의 구실을 넘어 소년들처럼 모험에 뛰어드는 이들이며, 전형적인 여성의 관심사가 얄팍한 것으로 깎이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모니카 힐더는 거꾸로 비평가들이 루이스를 잘못 읽었으며 루이스는 오히려 '여성적인' 영웅다움을 높였다고 본다. 아슬란의 죽음과 부활을 지켜보는 이가 두 소녀뿐이라는 점을 드는 이도 있다.
칼로르멘 묘사를 둘러싼 비판과 반론
말한 사람
내용
필립 풀먼
나니아가 노골적으로 인종 차별적이라고 했다. 1998년의 글에서는 나니아에서 살갗이 밝은 사람이 어두운 사람보다 낫게 그려진다고 썼다(브라운의 발표문과 영어 위키백과의 인용).
카이리 오코너(미국의 신문 편집자)
『말과 소년』의 이야기 솜씨는 뛰어나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환상 이야기의 어떤 대목은 아랍이나 동방이나 오스만 사람을 깎아내린다고 느낄 것이라고 썼다. 루이스의 시대에는 다른 문화를 놀리는 것을 재미있게 여겼으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하고, 이야기를 읽되 물음을 던지라고 권했다.
그레그 이스터브룩(《애틀랜틱》 2001년 10월, 루이스를 변호하는 글)
칼로르멘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슬람교도를 본뜬 것이라고 했다. 자기 아이들에게 연대기를 읽어 주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움찔했다고 하고, 못된 난쟁이들이 칼로르멘 사람을 살갗 빛깔로 낮추어 부르는 말은 건너뛰고 읽었다고 적었다.
폴 포드(가톨릭 신학자, 『나니아 길잡이』)
루이스를 대체로 지지하는 연구자다. 루이스는 그 시대와 계층의 사람이었고, 당시의 많은 영국인처럼 중동의 것과 사람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공감이 모자랐다고 했다. 그래서 나니아와 칼로르멘을 맞세울 때 과장된 틀에 박힌 묘사를 썼는데, 익살로 한 것이지만 지금이라면 이 무신경함을 다시 생각하고 싶어 했을 것이라고 썼다.
반론(영어 위키백과, 데빈 브라운)
루이스는 칼로르멘 사람 가운데 두 사람, 곧 『말과 소년』의 아라비스와 『마지막 전투』의 에메스를 좋게 그렸고, 나니아의 귀족들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아라비스는 아첸랜드의 왕비가 된다. 브라운은 칼로르멘이 여러 신을 섬기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나라로 그려지므로 유일신을 믿는 이슬람과 근본에서 다르다고 했다. 살갗 빛깔로 낮추어 부르는 말은 믿음을 저버린 난쟁이들의 입에서 나온다고도 짚었다.
한국어판 합본의 출판사 소개
칼로르멘을 잔혹하고 아름다우며 예의 바르고 부유하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의 나라라고 소개하고, 작가가 동방의 이야기를 끌어온 예로 든다.
그 밖의 평가
어디에 나오는가
내용
처음 나왔을 때의 반응(영어 위키백과)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 대한 첫 평단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당시에는 어린이 이야기는 사실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유행이었다. 지나치게 교훈적이라거나 기독교적 요소가 아이들을 가르치려 든다고 본 평자가 있었고, 폭력적인 장면이 아이들을 놀라게 할까 걱정한 이도 있었다. 출판사도 팔리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어린 독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일부 그리스도인의 비판(영어 위키백과)
술의 신 바쿠스와 강의 신 같은 이교의 형상이 좋게 그려진다는 이유로 이 책이 이교와 주술을 부드럽게 퍼뜨린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루이스 자신은 이교의 신화가 기독교를 위한 준비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영어 위키백과)
첫 권에서는 나니아에 사람이 없고 사람이 도리어 전설 속의 존재인데, 뒤의 권들에서는 나니아 둘레에 사람의 나라들이 있는 것으로 바뀐다는 지적이 있다.
신앙이 없는 독자의 읽기(영어 위키백과)
로라 밀러는 어린 시절 나니아를 사랑했다가 그 속의 기독교적 뜻을 알고 배신감을 느꼈으나, 어른이 되어 다시 읽고 이 책들이 기독교적 요소를 넘어선다고 보았다(『마법사의 책』, 2008).
홍종락(번역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좋은나무' 2021년 11월 1일)
어린이도 즐겁게 볼 수 있지만 어른도 루이스 사상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는 걸작이라고 했다. 아슬란을 통해 '길들일 수 없는 사자'로서 두렵고도 착한 존재라는 면을 탁월하게 그렸다고 평했다.
정인영(초등학교 교사, 크리스천투데이 2013년 9월 9일)
아이들이 권위를 느끼기 어려운 시대에 이 책의 아슬란이 하나님의 권위를 느끼게 해 준다고 했다. 아슬란은 '길들여지지 않은 사자'여서 보고 싶다고 불러낼 수 없고 어려움이 닥쳤다고 늘 도와주는 것도 아니며, 비버의 말대로 착하면서 동시에 무서운 존재라고 했다. 다섯 해 동안 아이들과 이 책을 읽으면서 아슬란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고 적었다.
이종태(월간 《빛과 소금》에 실은 글, 2020년)
루이스가 기독교 문학가로서 이룬 가장 큰 일은 두렵게 하면서 동시에 끌어당기는 신비, 곧 거룩을 느끼게 하는 아슬란이라는 인물을 지어낸 것이라고 했다. 참된 선은 봄볕처럼 착하기만 하지 않고 무시무시하다고 썼다.
설교와 이 책
김진영 담임목사는 2022년 11월 6일 주일설교 "아히도벨의 지혜, 다윗의 기도, 하나님의 뜻"(사무엘하 15:30-31, 17:1-14)에서 이 이야기를 예로 드셨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버리고 후새의 계략을 따른 것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사무엘하 17장 14절을 풀이하시면서, 하나님은 한번 작정하시면 그대로 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신 자리다.
목사님은 책의 제목을 말씀하지 않고 "C. S. 루이스의 나니아 왕국 이야기"라고 하셨다. 같은 설교의 뒷부분에서 루이스의 '교장 선생님 비유'도 드셨는데 그것이 어느 책에 있는지는 밝히지 않으셨다.
설교에 나온 내용. C. S. 루이스의 나니아 왕국 이야기에 아슬란이라는 사자가 나온다. 그 사자가 하나님을 표현한다. 아슬란을 경험한 나니아 왕국의 주민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슬란은 사자입니다. 참 자애롭고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그런데 아슬란을 길들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로우신 분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그 어떤 것으로도 조종할 수 없다. 하나님은 한번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면 그대로 하시는 분이다.
책이 맞다. 아슬란이 길들인 사자가 아니라는 말은 『나니아 연대기』에 여러 번 나온다. 이번에 자료로 확인한 곳은 세 권이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 17장(비버 씨의 말), 『새벽 출정호의 항해』 11장(마법사 코리아킨의 말), 『마지막 전투』 2장(유니콘 주얼의 말)이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원숭이 시프트도 이 말을 꺼내 든다.
"주민들이 이렇게 말한다"는 설교의 표현은 책과 맞는다. 이 말을 하는 이는 아슬란 자신이 아니고 나니아에 사는 이들이다. 말하는 비버, 마법사, 유니콘이 저마다 아이들이나 벗에게 아슬란을 설명하면서 이 말을 한다.
설교의 문장과 가장 가까운 것은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비버 씨의 말이다. 8장에서 비버 씨는 아슬란이 안전하지는 않지만 좋은 분이며 왕이시라고 하고, 17장에서 그분은 야생이며 길들인 사자 같은 분이 아니라고 한다. 원문은 위키인용집에 장 이름과 함께 실려 있다. 한국어판은 8장의 말을 "하지만 좋은 분이세요"로 옮겼다. 설교의 "참 자애롭고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그런데 길들일 수는 없습니다"는 이 두 대목의 뜻과 같다.
글자는 조금 다르다. 이번에 확인한 책의 문장에는 '좋은 분이다'(원문 good), '왕이시다', '야생이다', '길들인 사자 같지 않다'가 있다. 설교의 '자애롭다'는 이 '좋은 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를 보호해 준다'는 말은 확인한 문장에 보이지 않았고, 책에서 비버 씨는 도리어 그분이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설교의 문장은 책의 한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보다 책의 뜻을 풀어 전하신 것으로 보인다. 설교노트는 영상의 자동 자막을 정리한 것이어서 목사님의 표현과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시공주니어 한국어판이 17장의 '길들인 사자' 대목을 어떤 문장으로 옮겼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책은 이 말이 잘못 쓰일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준다. 『마지막 전투』에서 원숭이 시프트는 이 말을 아슬란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종잡을 수 없는 분이라는 뜻으로 비틀어 거짓 아슬란을 믿게 한다. 책에서 길들일 수 없다는 말은 처음부터 선하다는 말과 짝을 이룬다. 설교가 "사랑하시고 은혜로우신 분이지만"이라고 두 가지를 함께 말씀하신 것과 같은 짜임이다.
"그 사자가 하나님을 표현한다"는 설명에 대하여. 루이스 자신은 아슬란이 하나님을 빗댄 알레고리의 인물은 아니라고 했다. 나니아라는 세계에 그리스도가 오신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가정해 그린 것이라고 했다. 설교의 뜻과 어긋나는 것은 아니며, 루이스가 낱말을 가려 쓴 점을 덧붙여 둔다.
교장 선생님 비유는 『나니아 연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루이스의 다른 글 「노동과 기도」(Work and Prayer)에 있다. 1945년 영국의 신문에 실린 글이고 글 모음 『피고석의 하나님』(God in the Dock)에 들어 있다. 한국어판 『피고석의 하나님』(홍종락 옮김, 홍성사, 개정판 2020)에는 1부의 열한째 글 「노동과 기도」로 실려 있다(예스24의 목차와 발췌문). 미국 C. S. 루이스 연구소가 이 글의 발췌를 허락받아 실어 둔 것으로 확인했다. 글의 끝에서 루이스는 교장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쓴다. 이러이러한 일은 학교의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해도 된다, 그러나 저러저러한 일은 일반 규칙에 맡기기에는 너무 위험하니 하고 싶으면 내 방에 와서 청하고 그 일 전체를 나와 의논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보자.
설교의 교장 비유와 견주면 정해진 규칙대로 하는 일과 교장에게 와서 청하고 의논해야 하는 일을 나눈 뼈대가 같다. 설교에 나온 "학칙에 따라 행동하면 상을 받는다"와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교장"이라는 말은 이번에 본 발췌문에는 없었다. 루이스의 글에서 이 비유는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실지 말지를 정하는 권한을 스스로 쥐고 계신 까닭을 설명한다. 기도는 일보다 더 강한 원인이어서, 구하는 대로 다 되면 우리를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교에서 교장 비유 바로 뒤에 나오는 농부 이야기도 같은 글에 닿아 있다. 설교는 잡초 한 포기를 더 뽑고 땀을 흘린 만큼 수확하게 하시는 것이 섭리의 원리라고 했다. 루이스의 글도 밭의 잡초를 뽑는 일과 좋은 수확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나란히 놓는다.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발췌문으로는 "밭의 잡초를 뽑을 때와 풍작을 달라고 기도할 때 우리가 하는 일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이다. 다만 루이스의 문장은 조금 다르다. 밭에 무엇을 하든 좋은 수확을 장담할 수는 없으나 잡초 하나를 뽑으면 그 잡초 하나는 틀림없이 없어진다고 하며, 일로 내는 결과는 하나님이 보장해 두셨고 기도로 내는 결과는 하나님이 재량을 쥐고 계신다고 가른다. 목사님이 농부 이야기를 루이스의 것이라고 하셨는지는 설교노트에 적혀 있지 않다.
같은 글에는 설교의 큰 줄기와 맞닿는 문장이 더 있다. 루이스는 하나님이 역사의 줄거리를 얼마쯤 여지를 두고 지으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바뀔 수 있게 하셨다고 쓰고, 파스칼의 말을 빌려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원인이 되는 품위를 주시려고 기도를 세우셨다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순종과 기도를 통해 섭리하신다는 설교의 결론과 같은 쪽이다.
설교노트의 참고자료(7-4)는 작품 속에 "그는 길들인 사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거듭 나온다고 적어 두었다. 이번 조사로 그것이 세 권에서 확인되었다.
한국어판의 옮긴이, 출판사, 낱권 일곱 권의 제목과 출간 연월과 쪽수, 합본의 출간일과 쪽수
알라딘과 예스24로 확인. 낱권의 출간일은 알라딘에 『캐스피언 왕자』가 2001년 7월 20일, 나머지 여섯 권이 7월 30일로 나온다. 6권의 제목은 2001년 낱권에 '은의자', 2021년 세트에 '은 의자'로 적혀 있다.
한국어판 각 권 안의 장 제목
확인하지 못함. 본문에 적은 장 번호와 영어 장 제목은 위키인용집과 해설 글에 적힌 원서의 것이다.
원서의 출간일, 출판사, 수상, 판매 부수
영어 위키백과로 확인. 판매 부수는 영어 위키백과 안에서도 '약 1억 2천만 부'와 '1억 부 이상'으로 달리 적혀 있다.
권별 줄거리 가운데 표시 없이 적은 것
영어 위키백과의 권별 항목과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 출판사의 권별 줄거리 소개로 확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대조한 것은 아니다. 영화의 내용은 쓰지 않았다.
이야기 속 햇수
영어 위키백과에 따랐다. 하얀 마녀의 겨울은 영어 위키백과와 홍종락의 글에 100년으로, 한국어판 출판사 줄거리에 '몇백 년째'로 달리 나온다. 『은의자』와 『새벽 출정호의 항해』 사이의 햇수는 영어 위키백과 안에서 50년과 70년으로 달리 적혀 있어 '수십 년'으로 적었다.
인명과 지명의 한국어 표기
디고리, 폴리, 페번시, 수잔, 에드먼드, 샤스타, 브레, 코르, 코린, 라바다슈, 룬, 미라즈, 캐스피언, 유스터스, 리피치프, 질, 릴리언, 퍼들글럼, 시프트, 퍼즐, 티리언, 아첸랜드, 칼로르멘은 예스24의 한국어판 소개로, 타슈와 타슐란, 터키 젤리, 돌 탁자, 심오한 마법은 홍종락의 글로 확인. 영어를 함께 적은 이름(제이디스, 찬, 아라비스, 휜, 트럼프킨, 코리아킨, 주얼, 리슈다, 포긴, 에메스)과 앤드루, 프랭크, 헬렌, 툼누스, 코르넬리우스, 케어 패러벨, 타슈반의 표기는 한국어판의 것을 확인하지 못해 정리자가 소리대로 적었다. 맡은 쪽에서 '수전'으로 적어 준 이름은 한국어판 표기에 따라 '수잔'으로 적었다.
책 속 문장
위키인용집, 문학 해설 누리집 리트차츠, 나니아 독자 모임 누리집의 해설 글, 데빈 브라운의 발표문, 홍종락의 글에 옮겨진 것만 썼다. 영어 원문은 한두 마디만 인용 부호로 옮기고 나머지는 뜻을 풀어 적었다. 우리말 풀이는 정리자의 것이며 한국어판의 번역문이 아니다.
'길들인 사자가 아니다'가 나오는 곳
『사자와 마녀와 옷장』 8장과 17장, 『새벽 출정호의 항해』 11장, 『마지막 전투』 2장을 확인. 『마지막 전투』에서 시프트가 이 말을 쓰는 것은 홍종락의 글로 확인했으나 몇 장인지와 원문 문장은 확인하지 못함. 일곱 권 전체에서 이 말이 모두 몇 번 나오는지도 확인하지 못함
시공주니어 한국어판이 이 말을 옮긴 문장
8장 비버 씨의 말(안전하지 않지만 좋은 분)은 크리스천투데이의 글과 한 독자의 블로그에 옮겨진 한국어판 문장으로 확인. 17장과 다른 권의 '길들인 사자' 대목을 한국어판이 어떻게 옮겼는지는 확인하지 못함. 홍종락은 '길들지 않는 사자', '길들일 수 없는 사자'라고, 정인영은 '길들여지지 않은 사자'라고 쓰지만 이것이 한국어판의 문장인지는 알 수 없다.
설교의 단서: 주민들이 아슬란을 두고 자애롭고 보호해 주지만 길들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뜻이 같은 대목을 『사자와 마녀와 옷장』 8장과 17장에서 확인. 한국어판 8장에 '좋은 분이세요'가 있다. '보호해 준다'는 말이 들어간 책의 문장은 확인하지 못함
설교의 단서: 루이스의 교장 선생님 비유
『나니아 연대기』가 아닌 루이스의 글 「노동과 기도」(1945)에 있음을 미국 C. S. 루이스 연구소가 실은 영어 발췌문으로 확인. 한국어판 『피고석의 하나님』(홍성사)에 1부 11 「노동과 기도」로 실려 있음은 예스24의 목차로 확인. 교장 비유 대목의 한국어판 문장과 쪽수는 확인하지 못함. '학칙대로 하면 상을 받는다'는 말은 발췌문에 없었다. 발췌문은 글 전체가 아니다.
[확인필요]로 표시한 것
두 군데다. 유스터스가 용의 허물을 벗는 장면을 회개와 세례로 읽는 풀이, 『은의자』의 표지를 신명기 6장에 견주는 풀이는 정리자의 기억이며 이번에 자료로 확인하지 못함
풀먼의 1998년 《가디언》 글
원문 지면은 열어 보지 못했다. 영어 위키백과와 데빈 브라운의 발표문에 인용된 문장으로 확인. 2002년의 발언은 《가디언》 기사로 확인
루이스의 편지들
1957년 읽는 순서에 관한 답장, 1958년 후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 1961년 3월의 편지, 1952년의 편지는 영어 위키백과의 인용으로, 1958년 편지의 긴 본문은 루이스 연구자 브렌턴 딕키슨의 글로, 1962년 히긴스에게 보낸 편지는 그것을 처음 실은 《혼 북》 잡지로, 1957년 1월 22일 수잔에 관한 편지는 나니아웹과 브라운의 발표문으로 확인. 편지집 원본은 보지 못했다.
한국어 독후감과 기독교적 해설
홍종락, 정인영, 이종태의 글과 독자 블로그 한 편을 다시 열어 확인하고 실었다. 도우미 검색이 알려 준 그 밖의 글(나무위키, 다른 블로그들, 교장 비유를 다루었다는 한인 교계 신문 기사)은 다시 열었을 때 해당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거나 열어 보지 않아 싣지 않았다.
읽는 분께. 이 글은 책을 읽고 쓴 독후 정리가 아니라, 공개된 자료로 책의 짜임을 잡고 알려진 내용을 덧붙인 안내입니다. 설교나 교재에 옮기실 때는 반드시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