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술가 로드 드레허가, 기독교에서 멀어진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신앙을 지키며 살 것인지를 다룬 책입니다. 6세기 수도사 베네딕투스의 공동체 전통에서 길을 찾자고 제안합니다. 책의 짜임과 장별 내용, 책을 둘러싼 찬반, 그리고 설교와의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정리 2026-10-11 · 책 본문은 읽지 못함 · 한국어판 서지, 목차, 책 소개, 발췌문, 추천평은 예스24와 알라딘으로, 원서 정보와 논쟁은 위키백과와 영어권 서평으로, 장별 일화와 설교의 단서는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에 나오는 원서 본문 조각과 한국어 서평, 독자 서평으로 확인 · 자료로 확인하지 못한 내용은 [확인필요]로 표시함
탈기독교 시대베네딕투스의 규칙신앙 공동체대항문화
한눈에
『베네딕트 옵션』(원제 The Benedict Option: A Strategy for Christians in a Post-Christian Nation)은 미국의 저술가이자 보수 논평가인 로드 드레허가 2017년에 낸 책이다. 한국어판은 2019년 3월 IVP에서 이종인의 번역으로 나왔고 부제는 "탈기독교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선택"이다.
저자는 서구 문화가 이미 기독교의 덕을 버렸다고 본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주류 문화에 맞추려 애쓰기보다, 신앙과 덕을 지키고 길러 낼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공동체는 꼭 한곳에 모여 살거나 이주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교회, 학교, 그 밖의 단체가 그 자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본보기는 6세기 수도사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가 세운 수도 공동체와 그 규칙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그리스도인이 사회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를 두고 교회 안팎에 큰 논쟁을 일으켰다.
제목이 나온 곳. 제목은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책 『덕의 상실』 끝부분에서 왔다. 매킨타이어는 오늘의 서구를 서로마 제국이 무너지던 때에 견주고,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또 한 사람의, 그러나 아주 다른 성 베네딕투스라고 썼다. 드레허의 책은 이 말을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해 보려는 시도다. 다만 매킨타이어 자신은 2017년에 이 책의 흐름을 비판했다("8~10장과 논쟁" 탭의 표).
책 정보
항목
내용
원제
The Benedict Option: A Strategy for Christians in a Post-Christian Nation
저자
로드 드레허(Rod Dreher). 미국의 저술가이자 보수 논평가. 한국어판 저자 소개에 따르면 잡지 《아메리칸 컨서버티브》의 선임 편집인이며, 감리교인으로 자라 가톨릭을 거쳐 그리스 정교회 신자가 되었다.
원서
2017년, 미국 센티넬(Sentinel) 출판사, 304쪽
한국어판
이종인 옮김, IVP, 2019년 3월 15일 출간, 410쪽. 부제 "탈기독교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선택". 2026년 10월 현재 예스24와 알라딘에는 절판으로 표시되어 있다.
평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한국어판 저자 소개). 추천평의 직함은 한국어판에 실린 대로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지난 10년 동안 나온 종교 서적 가운데 가장 논쟁적이고 중요한 책이라고 평했다(한국어판 추천평).
책의 열쇠 말
말
뜻
베네딕트 옵션
저자가 붙인 이름. 주류 문화에 편입하려 애쓰는 대신 한 걸음 물러나, 수도원 전통의 영성을 살아 내는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선택을 가리킨다. 저자는 한 영국 잡지에 쓴 글에서 이것을 신앙을 더 철저하게 실천할 새 길을 찾는 그리스도인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베네딕투스의 규칙
6세기 수도사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가 수도 공동체를 위해 쓴 생활 규칙. 책은 여기서 질서, 기도, 노동, 절제, 정주(한곳에 머묾), 공동체, 환대, 균형을 끌어낸다.
도덕주의적 치료적 이신론
하나님은 계시지만 사람이 착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실 뿐이며, 문제가 생길 때 말고는 삶에 깊이 관여하지 않으신다고 여기는 얕은 신앙. 저자는 미국 교회 안에 이런 신앙이 퍼져 있다고 진단한다.
대항문화
주류 문화의 흐름을 거슬러 다르게 사는 삶의 방식. 원서 표지 글은 주류 문화에서 밀려난 처지를 받아들이고 쉽게 꺾이지 않는 대항문화를 세우자고 말한다.
창조적 소수
수는 적어도 살아 있는 가치로 사회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 저자는 교회가 이런 소수로서 무엇보다 교회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책의 짜임
한국어판은 부로 나뉘어 있지 않다. 한국어판 서문과 서론 뒤에 열 장이 이어지고 결론으로 맺는다. 그 뒤에 감사의 글, 주, 찾아보기, 해설이 붙어 있다. 잡지 《복음과상황》의 서평에 따르면 해설은 배덕만 교수가 썼고, 이 책에 대한 미국 안의 찬반과 한국 사회와 교회에 견주어 읽는 눈을 짚어 준다.
아래 한국어 제목은 예스24에 실린 한국어판(IVP, 2019) 목차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같은 자료의 발췌문 머리에는 8장이 "고된 노동을 위한 준비", 9장이 "에로스와 새로운 그리스도인 대항문화"로 적혀 있어 목차의 표기와 조금 다르다. 영어 제목은 영어권 도서 요약 사이트에 실린 원서 목차의 것이며, 서론의 영어 제목은 확인하지 못했다.
구분
한국어판 제목
원서 제목
머리
한국어판 서문
(한국어판에만 있음)
머리
서론: 각성
(확인하지 못함)
1장
대홍수
The Great Flood
2장
위기의 근원
The Roots of the Crisis
3장
삶의 규칙
A Rule for Living
4장
새로운 유형의 기독교적 정치
A New Kind of Christian Politics
5장
모든 계절을 위한 교회
A Church for All Seasons
6장
그리스도인 마을에 대한 발상
The Idea of a Christian Village
7장
그리스도인 형성으로서의 교육
Education as Christian Formation
8장
고된 노역을 위한 준비
Preparing for Hard Labor
9장
에로스와 그리스도인 대항문화
Eros and the New Christian Counterculture
10장
인간과 기계
Man and the Machine
맺음
결론 베네딕트 결단
Conclusion: The Benedict Decision
부록
감사의 글 · 주 · 찾아보기 · 해설
표시에 대하여. 이어지는 탭에서 [확인필요] 표시가 붙은 대목은 정리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부가 틀릴 수 있으니 책과 대조하시기 바랍니다. 표시가 없는 대목은 서점의 책 소개나 목차, 백과사전, 기사처럼 실제로 열어 본 자료에 나온 내용입니다.
서문, 서론, 1~2장: 무엇이 무너졌는가
책의 앞부분은 진단이다. 서구 사회와 교회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핀다.
한국어판 서문
저자는 한국 교회가 이 도전에 어떻게 응답할지를 묻는다. 세속적 근대성의 도전은 아시아, 북미, 유럽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소망을 가지고 함께 대처해야 할 위기라고 말한다(예스24 발췌문).
서론: 각성
살아남으려면 생각과 실천에서 신앙의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서구의 신앙인들이 잊어버린 마음의 습관을 되찾고, 삶의 방식을 근본에서 바꾸어 타협하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예스24 발췌문).
서평들에 따르면 저자는 보수 교회, 주류 개신교, 가톨릭을 가리지 않고 교회가 도덕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타협했다고 비판하며 책을 연다.
저자가 이 생각을 품게 된 과정을 돌아본다. 저자는 2006년에 낸 자기 책 『Crunchy Cons』에서 이미 철학자 매킨타이어를 끌어왔다고 적는다. 매킨타이어는 서구 문명이 닻을 잃었다고 선언했고, 덕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주류 사회에 계속 온전히 참여하는 길을 다시 보게 될 때가 온다고 말한 사람이다(원서 2쪽).
이어 미국 인디애나주의 일을 든다. 인디애나주는 연방의 종교 자유 회복법과 같은 법을 통과시켰다. 차별로 소송을 당한 사람이 종교의 자유를 방어 사유로 내세울 수 있게 했을 뿐인 법이었다. 그러나 인디애나주는 대기업들의 압력에 물러섰고 아칸소주도 한 주 뒤에 물러섰다. 저자는 이 일을 분수령으로 본다. 대기업이 반대하면 공화당이 우세한 주의 정치인들도 버티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1960년대 성 혁명과 함께 시작된 문화 전쟁이 보수 그리스도인의 패배로 끝났다고 쓴다(원서 2~3쪽). 전에 이 쪽에는 연방 대법원의 동성 결혼 판결도 서론에 나오는 것으로 적었으나, 확인한 본문 조각에서 이 판결은 1장(원서 9쪽)에 나온다.
매킨타이어가 우리는 또 한 사람의, 그러나 아주 다른 성 베네딕투스를 기다린다고 한 말을 풀이한다. 전통을 공동체 안에서 살아 낼 길을 여는 창의적인 지도자를 뜻한다는 것이다(원서 4쪽). 서론은 하나님이 교회를 되살리려고 부르시는 그 새 베네딕투스가 어쩌면 바로 당신일지 모른다는 말로 끝난다(5쪽).
1장 대홍수
서구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대홍수"를 맞았고, 이 물은 사람들이 기대한 것과 달리 빠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기독교의 언어는 낯선 말이 되어 가고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1960년대 성 혁명 뒤로 이어진 낙태, 동성 결혼, 가족의 해체, 전통 도덕의 상실을 시대가 바뀐 표지로 든다.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동성 결혼 합법화 판결(오버거펠 대 호지스)을 보수 그리스도인이 문화 전쟁에서 진 결정적 사건으로 꼽는다(원서 9쪽).
교회가 맞선 적으로 세속주의, 도덕주의적 치료적 이신론, 소비주의를 든다(원서 9~11쪽). 도덕주의적 치료적 이신론의 다섯 신조는 이렇다. 세상을 지으시고 지켜보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서로 착하고 공정하게 지내기를 바라신다. 삶의 목표는 행복하고 자기를 좋게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문제를 풀어야 할 때 말고는 삶에 깊이 관여하실 필요가 없다. 착한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
근대에 서구 교회도 크게 바뀌었다고 진단한다. 예스24 발췌문에는 "교회는 더 이상 영혼을 형성하는 곳이 아니라 개개인의 구미를 맞추는 곳이 되었다"는 문장이 실려 있다.
미국 기독교 우파가 정치로 문화를 되돌리려 한 길은 잘못이었다고 말한다. 대안으로 그리스도인이 지금 사는 자리에서 일종의 유배 생활을 하며, 성경과 베네딕투스의 규칙에서 실천과 공동체를 가꿀 길을 찾자고 한다. 목표는 저항의 공동체와 연결망을 세우는 것이다(원서 12쪽).
장은 2016년 8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남부에 닥친 큰 홍수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 문장은 아무도 대홍수가 올 줄 몰랐다는 말이다. 신문은 그 주말에 큰비가 온다고 했지만 여름에 비가 잦은 루이지애나에서는 별일이 아니었고, 일기 예보는 닷새 동안 3~6인치의 비를 내다보았다(원서 7쪽). 저자는 이 홍수가 천 년에 한 번 있을 일이었고 기록된 역사에서 이 땅이 물에 잠긴 것을 본 사람이 없었다고 적는다(8쪽). 장 끝에서는 물이 차오르는 동안 루이지애나 남부 곳곳에서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나서서 갇힌 이를 구하고 집 잃은 이를 재우고 굶주린 이를 먹였다고 돌아본다(19쪽).
도덕주의적 치료적 이신론이라는 말은 사회학자 크리스천 스미스와 멀린다 런퀴스트 덴턴의 조사에서 왔다. 두 사람은 여러 배경의 미국 십 대의 신앙생활을 살폈고, 대부분의 십 대가 이 흐릿한 유사 종교를 따르고 있음을 보았다. 복음주의 십 대는 눈에 띄게 나았으나 역사적인 성경적 정통과는 여전히 멀었다. 두 사람은 이 신앙이 기존 교회들을 차지해 가고 있다고 했다(원서 10쪽). 저자는 스미스의 2005년 조사에 이어, 2011년에 나온 18~23세 대상의 후속 연구는 더 어두웠다고 적는다(11쪽).
저자는 이 흐름이 이어지면 교회가 곧 텅 빌 것이라고 내다보고(원서 9쪽), 홍수가 미국 교회의 서까래까지 차오르고 있으니 모든 교회가 세상과 얼마나 타협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11쪽).
이 장에는 베네딕투스의 이야기와 매킨타이어의 진단도 들어 있다(원서 12~17쪽). 한 독자가 한국어판 33~36쪽에서 옮긴 바에 따르면, 청년 베네딕투스는 공부를 마치러 로마에 갔다가 범죄와 부패에 충격을 받고 숲과 동굴로 들어가 3년 동안 기도하고 관조하며 살았다. 그 뒤 수도원장이 되어 수도원 열 곳을 세웠고, 수도자들이 검소하고 질서 있게 살도록 작은 책을 썼다. 이것이 베네딕투스의 규칙이다. 매킨타이어는 도덕적 선택이 개인이 옳다고 느끼는 바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근대 서구를 지배한다고 보았고, 이를 서로마 제국이 무너지던 때에 견주었다. 저자는 베네딕투스의 본보기가 오늘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고 쓴다(원서 15쪽, 한국어판 34~36쪽).
2장 위기의 근원
위기의 뿌리를 14세기부터 1960년대 성 혁명까지 거슬러 살핀다. 한국어판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유명론(보편적 본질은 이름뿐이라는 중세 후기의 사상),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 혁명, 계몽주의, 산업 혁명, 세계대전, 성 혁명을 차례로 짚는다.
중세 사회는 흠이 많았지만 사람과 피조 세계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속해 있다고 보았다. 근대의 여러 변화는 하나님을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개인의 자기실현을 높였다. 저자는 근대성이 낳은 원자화(사람들이 낱낱이 흩어짐), 파편화, 불신앙에 주목한다.
우리는 편안함을 얻었지만 하나님, 창조 세계, 이웃과 이어 주던 끈을 잃었다고 말한다. 예스24 발췌문에는 "우리가 이를 다시 찾지 못한다면 우리의 해체를 막을 희망은 없다"는 문장이 실려 있다.
한국어 서평들은 이 장의 출발점을 중세의 실재론과 유명론의 맞섬으로 전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누리집의 서평이 한국어판 50쪽에서 옮긴 대로, 중세 사람들은 자기를 둘러싼 현실을 "하나님에 의해 질서 잡히고 의미를 부여받은 조화로운 전체의 일부"로 여겼다. 유명론은 사물에 붙은 이름은 이름일 뿐 그 안에 뜻이나 실재가 없다고 보는 생각이다. 저자는 과학 혁명, 근대 자유주의 국가, 성 혁명이 모두 여기서 길이 열렸다고 진단한다.
주류 개신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이 장에서 짚는다. 원서 39쪽은 사회 복음 운동이 개인의 경건과 전도보다 사회 개혁의 열정을 앞세우면서 주류 개신교의 오랜 자유주의화가 시작되었다고 적는다.
3~4장: 규칙과 정치
베네딕투스의 규칙에서 무엇을 배울지, 그리고 정치를 어떻게 대할지를 다룬다.
3장 삶의 규칙
베네딕투스는 6세기 사람으로 누르시아 총독의 아들로 태어나 출세를 위해 로마로 갔다. 쇠락하는 로마 사회를 본 뒤 도시를 떠나 은수자(홀로 기도하며 사는 수도자)가 되어 기도와 관조의 삶을 살았고, 수도원의 유산을 이어받아 발전시켰다(한국어판 출판사 소개).
저자는 베네딕투스의 규칙을 흐르는 물처럼 모든 것이 쉽게 바뀌는 오늘의 사회와 맞세운다. 규칙에서 끌어내는 가치는 질서, 기도(말씀을 천천히 읽고 묵상하는 거룩한 독서를 포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노동, 금식 같은 절제, 한곳에 머무는 정주, 공동체, 환대, 균형이다.
베네딕투스의 길은 세상을 피하는 길로 그려지지 않는다. 예스24 발췌문에는 "베네딕도회의 영성은 이 세계를 사랑으로 참고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듯 세계를 변화시키라고 가르친다"는 문장이 실려 있다.
한국어판 출판사는 이 책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수도원에 들어가라고 하는 책은 아니라고 소개한다. 영어권 서평들도 같은 점을 짚는다.
저자가 베네딕투스의 고향인 이탈리아 노르차의 수도원을 찾아가 수도사들과 나눈 대화가 이 장의 뼈대다. 수도원을 이끄는 카시안 폴섬 신부는 예순한 살의 미국인이다. 나라가 수도원 문을 닫은 지 거의 두 세기 만인 2000년 12월에 베네딕도회 수도사 몇 사람과 함께 이곳을 다시 열었다(원서 48쪽). 저자는 수도원 손님방에 묵으며 이야기를 듣는다(49쪽).
카시안 신부는 생명을 주지 못하는 것을 물리치는 일과 새것을 세우는 일이 함께 간다고 말하고, 수도사들이 다시 세우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수도원으로 모여든다고 한다(원서 50쪽). 규칙의 구실은 물길에 견준다. 물이 빠지지 않아 잠긴 밭에서는 곡식이 자라지 못하거나 썩지만, 물길을 내면 달라진다는 것이다(51쪽). 수도 생활은 밖에서 그리는 낭만과 달리 아주 수수하다고도 한다(52쪽). 기도에는 몸도 함께한다. 수도사들은 기도할 때 노래하고 서고 앉고 절하고 무릎 꿇고 엎드린다(59쪽).
수도사들은 하루의 정해진 때마다 성당에 모여 시편과 찬미가와 성경 봉독과 기도로 이루어진 성무일도를 노래한다. 관광객들이 성당에 조용히 앉아 라틴어 기도를 지켜보기도 한다(원서 57~58쪽). 식당에서 수도사들과 처음 밥을 먹는 손님은 규칙에 정해진 대로 손을 씻어 주는 예식으로 맞이받는다. 환대는 분별을 따라 베풀어서 손님이 수도원의 생활을 흩뜨리지 않게 한다(72~73쪽).
기독일보의 서평에 따르면 수도사들은 순종, 안정, 삶의 회심이라는 세 가지 서원을 하고 살며, 자신들이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문화를 회복하기 위해 일한다고 여긴다. 이 서평이 옮긴 한국어판 문장은 규칙을 "평범하고 약한 이들이 신앙 가운데 강건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규칙이 수도원을 위한 것이지만 평신도가 자기 삶에 맞게 고쳐 쓸 수 있을 만큼 간명하다고 강조한다(한국어판 89쪽).
장 끝에서 저자가 베네딕트 옵션을 이야기하자 카시안 신부는 곰곰이 생각한 뒤, 이런 일을 어떤 꼴로든 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가올 일을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이라고 답한다(원서 77쪽).
4장 새로운 유형의 기독교적 정치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정치적으로 집이 없는 처지라고 말한다(원서 80쪽). 교회를 공화당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태도를 거부하고(78쪽), 도덕적으로 흠이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나라를 구해 주리라는 기대도 거부한다(79쪽). 권력을 섬기는 일을 경계한다(81쪽).
법은 마음을 바꾸지 못하므로 투표만으로 문화 전쟁을 이길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라고 하지는 않는다. 분별을 가지고 종교의 자유와 지역의 문제에 힘을 모으라고 권한다. 믿음은 지역에서 시작할 때 세상을 바꾼다고 말한다(95쪽).
인신매매, 가난, 에이즈 같은 문제에서는 진보 진영과도 함께 일하라고 권한다(원서 83쪽).
체코의 반체제 인사 바츨라프 하벨과 바츨라프 벤다가 본보기로 나온다. 저자는 하벨과 그의 동료들이 박해 아래서 내놓은 생각이, 그리스도인이 힘없고 멸시받는 소수가 된 세상에서 참된 기독교 정치의 그림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원서 91쪽). 하벨의 글 〈힘없는 자들의 힘〉에 나오는 청과물 가게 주인 이야기가 소개된다. 가게 주인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표어를 내건다. 믿어서 하는 일이 아니고 말썽을 피하려는 것이다. 하벨은 이렇게 거짓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체제에 협력하고 자기의 온전한 사람됨을 내준다고 보았다(92쪽).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벤다는 공산 체제가 사람들을 서로 떼어 놓고 자연스러운 유대를 끊어서 지배한다고 보았다. 그가 내놓은 생각이 "평행 폴리스"다. 공식 공산 질서 곁에 따로 있으면서도 드나들 수 있는 사회를 뜻한다. 벤다는 이 일이 자기들만이 아닌 둘레의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다(원서 93~97쪽). 저자는 베네딕트 옵션 공동체가 가장 좋은 모습일 때 세속 문화 앞에서 뜻하지 않은 정치적 증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97쪽). 전에 이 쪽에는 하벨의 말을 "진실 안에서 살기"로 적었는데, 확인한 본문 조각에 글자로 나오는 것은 그 반대편인 "거짓 안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다.
기윤실 누리집의 서평은 저자의 대안을 "반정치적 정치학"이라는 말로 전한다. 그리스도인만의 삶의 방식을 지키고 만들어 가는 것으로 정치를 한다는 뜻이다. 이 서평과 또 한 편의 서평이 옮긴 한국어판 154쪽의 권고는 이렇다. 주류에서 문화적으로 탈퇴하라. 텔레비전을 끄고 스마트폰을 치우라. 책을 읽고 놀이를 하고 음악을 만들라. 이웃과 잔치를 벌이라. 교회를 시작하거나 교회 안에서 모임을 만들라. 고전적 기독교 학교를 열거나 이미 있는 학교에 힘을 보태라. 정원을 가꾸고 지역 농산물 직판장에 참여하라. (쪽수와 서평의 차례로 보아 이 장의 끝부분으로 보인다.)
5~7장: 교회, 마을, 교육
공동체를 실제로 어떻게 세울지를 교회, 가정과 이웃, 학교의 차례로 다룬다.
5장 모든 계절을 위한 교회
가장 좋은 증언은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며, 교회는 창조적 소수로 서야 한다고 말한다(원서 101쪽). 많은 교회가 세속적 오락에 종교적 도덕을 얹어 놓은 곳이 되었다고 비판한다(102쪽).
복음주의 교회가 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잘 모르고 대중문화에 젖어 있다고 본다. 예전(예배의 정해진 순서와 형식)의 회복, 금식 같은 옛 실천의 회복, 교회 권징의 강화, 예술을 통한 아름다움과 선함의 강조를 요청한다.
예스24 발췌문에는 "우리는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대응하는 일을 멈추고, 세상과 구별되는 공동체에서 충성을 쌓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문장이 실려 있다.
6장 그리스도인 마을에 대한 발상
미국에서 종교의 앞날은 가정에 달려 있고 가정은 공동체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원서 123쪽). 가정을 위협하는 것들에는 지역에서, 교회 안의 공동체와 교파를 넘는 연결로 맞서야 한다고 한다.
자녀는 가정과 더 넓은 공동체 안에서 빚어지므로 교회들의 연결망을 튼튼히 해야 한다고 한다.
이탈리아 산 베네데토 델 트론토의 가톨릭 평신도 공동체 "티피 로스키"가 이 장에 나온다.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늘 보던 용의자들'이라는 뜻이다. 구성원은 200명쯤이고, 공동체 학교인 G. K. 체스터턴 자유 학교와 협동조합 세 곳을 꾸린다(원서 141쪽). 저자가 이들의 가정생활에서 얻은 조언은 너무 따지지 말 것, 의무로만 하는 일 말고 즐거운 일을 함께할 것, 일이 자연스럽게 되게 둘 것, 위험을 무릅쓰되 실패해도 무너지지 말 것이다(142쪽). 이 공동체는 7장(학교), 8장(협동조합), 결론에 다시 나온다. 저자는 다른 글에서 이 공동체를 화난 사람들이 아닌 기쁨이 넘치는 사람들로 그렸다(영국 잡지 《스펙테이터》의 저자 기고).
미국의 공동체들도 나온다.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알렐루야 공동체는 1973년에 은사주의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들이 세운 언약 평신도 공동체다. 처음 사람들은 집값이 싼 낙후된 동네에 자리를 잡고 서로 집을 고쳐 주며 공동의 삶을 시작했고, 지금은 800명쯤이다(원서 132쪽). 메릴랜드주 하이어츠빌에 사는 한 가톨릭 신자는 사람을 낱낱이 흩어 놓는 미국 교외 생활의 짜임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어렵게 한다고 말한다(133쪽). 한 한국어 독자 서평은 저자가 손해를 보더라도 교회 공동체 가까이에 모여 살라고 권한다고 전한다.
7장 그리스도인 형성으로서의 교육
장은 1980년대 중반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시작한다. 벤다는 반체제 운동이 이룬 일을 돌아보며 평행 폴리스를 넉넉히 세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는데, 그 가운데 재앙이라고까지 부른 실패가 하나 있었다. 자기들의 학교 체계를 세우지 못한 일이다(원서 144쪽).
본보기가 된 학교들이 나온다. 메릴랜드주 하이어츠빌의 성 제롬 본당 학교는 2010년 워싱턴 대교구가 문을 닫으려 했을 때 학부모들이 학교를 살릴 마지막 수로 고전 학교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교장도 뜻을 같이했다. 저자는 이 학교를 미국에서 가장 이름난 고전 기독교 학교로 꼽을 만하다고 적는다(원서 163쪽). 티피 로스키의 학교는 마르코 세르마리니와 아내 페데리카가 주류를 거스르는 신념을 밀고 나가 시작되었고, 한 가지를 남다르게 해낼 수 있음을 알게 되자 더 많은 일을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173~174쪽).
저자는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자녀를 공립학교에서 데리고 나오라고 권한다(원서 155쪽). 공립학교가 진보적인 성 가치관을 가르치고 주로 일꾼을 길러 내는 데 맞추어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통의 기독교 학교도 같은 틀에 성경 수업 몇 개를 얹은 것에 그친다며 거기서도 나오라고 한다(158~159쪽). 얕은 신학 교육은 오히려 학생이 진지한 신앙에 면역이 생기게 할 수 있다고 본다(159쪽).
대안은 모든 배움을 기독교 세계관 아래 엮는 고전 기독교 교육이다. 그런 학교가 가까이에 없으면 가정 학습을 권한다.
예스24 발췌문에는 "학습을 덕으로부터 분리한 결과, 과학, 법, 돈, 이미지, 말 등을 다루는 데 성공하는 사람들이 높이 평가되는 사회가 만들어졌다"는 문장이 실려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학생의 지적 삶과 영적 삶에 하나로 엮이지 않으면 신앙을 떠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8~10장, 결론, 그리고 책을 둘러싼 논쟁
일, 성, 기술을 다루고 결론으로 맺는다. 이 책을 두고 나온 찬반도 여기에 모았다.
8장 고된 노역을 위한 준비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양심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내다본다. 그래서 스스로 사업을 시작하거나 손기술을 익히고 서로 돕는 길을 준비하라고 한다.
캐나다의 기독교 대학인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교 졸업생이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학교의 입장 때문에 변호사로 일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움직임이 법조계에 있었다는 일을 예로 든다.
베네딕도회의 본보기에서 일과 예배가 하나라는 점을 배운다. 예스24 발췌문에는 "베네딕도회의 모델에서는, 일과 예배는 통합되어 있으며 우리의 직업이 우리의 신앙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문장이 실려 있다. 몸으로 하는 노동도 선물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한국어 서평 두 편에 따르면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사업을 일으키고 서로 일자리를 이어 주는 연결망을 만들라고 권한다. 원서 189쪽은 레바 플레이스(Reba Place)와 티피 로스키 같은 곳을 들어, 교회와 기독교 단체가 스스로를 떠받칠 경제 사업을 세울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본보기라고 한다. 기윤실 누리집의 서평은 저자가 값이 더 들더라도 그리스도인이 만든 물건을 사 주라고 하고, 가능하면 약사나 의사나 법조인이 되지 말라고까지 말한다고 전한다(뒤의 내용은 이 서평 한 편에서만 확인).
9장 에로스와 그리스도인 대항문화
동성애, 결혼, 동성 결혼, 음란물, 문란한 성생활, 성교육, 그리고 성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를 다룬다.
오늘의 미국인은 성을 전적으로 사적인 문제이자 개인의 권리로 본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것이 잘못이라고 보며, 성의 뜻을 공동체의 규범과 전통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예스24 발췌문).
창조와 성육신에 뿌리를 둔 가르침을 되찾아 순결과 부부의 신의를 세우고, 혼자 사는 그리스도인을 돌보며, 음란물에 맞서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책이 나온 2017년 3월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성 혁명에 맞추어 준 교회들은 번성하지 못했고 얼마간 저항한 교회들보다 더 빨리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내용이 책의 이 장에도 실려 있다(아래 항목과 "설교와 이 책" 탭).
주류 개신교와 진보적 가톨릭에 대한 대목. 기독일보의 서평에 따르면 저자는 젊은 세대의 압도적 다수가 동성애자의 권리를 지지하고, 교회를 떠난 젊은이들이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떠난 까닭으로 든다는 사정을 먼저 적는다. 그러고는 젊은 층을 붙들려고 타협하지 말라고 한다. 이 서평이 옮긴 한국어판 문장은 이렇다. "상황이 그렇다면 동성애에 대한 교리를 진보적으로 바꾼 주류 개신교파들이나 그 중요성을 평가절하한 진보적 가톨릭 교구가 번창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더 정통적인 교회보다 더욱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 원서에서는 202쪽에 있다. 원서의 낱말로는 가톨릭 쪽이 교구보다 작은 단위인 본당(parishes)이다.
두 쪽 뒤에서 저자는 같은 말을 다시 한다. 주류 개신교 교회들이 이 길을 써 보았지만 여전히 교인 수가 무너지고 있다. 정통 교회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나, 배를 거친 바다에 띄워 두려고 성경의 가르침을 배 밖으로 던지는 것은 답이 아니다. 성에 대한 전통의 가르침을 드러내 놓고든 말없이든 골라잡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도 잘못이라고 한다(원서 204쪽). 설교단과 가르치는 이들이 입을 다물면 교인들이 신실하게 사는 데 필요한 가르침과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덧붙인다(205쪽).
저자는 리프(Rieff)라는 학자의 통찰을 빌려, 성이 기독교의 한가운데는 아니지만 한가운데에 아주 가까워서 이 문제에서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잃으면 근본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원서 203쪽). 기독일보의 서평은 이 장에서 다음을 전한다. 성적 순결과 결혼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성적 착취가 흔하던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해방으로 받아들여졌다. 부모가 먼저 자녀의 성교육 교사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미혼의 교인들을 사랑하고 도와야 한다. 동성애자인 그리스도인도 미혼의 모든 그리스도인처럼 순결하게 살도록 부름받았으며, 공동체는 그 무거운 십자가를 혼자 지게 두어서는 안 된다.
10장 인간과 기계
인터넷, 스마트폰,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다룬다. 저자는 새 기술을 모두 반대하지는 않지만 기술이 도덕적으로 중립은 아니라고 본다. 기술은 사람을 얼굴을 맞대는 만남에서 떼어 놓고, 마주 보고는 하지 못할 분노를 쉽게 쏟게 하며, 광고와 정보를 쏟아붓는다.
예스24 발췌문에는 "인터넷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은 우리의 능동적 힘에 대한 의식이다"는 문장이 실려 있다. 십 대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말라고 권한다.
기술을 대하는 사고방식이 생명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복음과상황》의 서평이 10장에서 옮긴 대목에서 저자는, 많은 보수 그리스도인이 낙태에는 강하게 반대하면서 수정된 생명을 많이 잃게 하는 체외 수정을 막으려는 움직임은 없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이런 위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기술 관료적 사고방식"이라고 답한다.
소비에 대해서도 말한다. 크리스천 스미스의 조사에서 소비주의를 심각한 도덕 문제로 여긴 젊은 세대는 9퍼센트뿐이었다(원서 234쪽).
결론 베네딕트 결단
그리스도인은 일하고 기도하며, 죄를 고백하고 긍휼을 베풀며,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한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충실히 살아간다. 예스24 발췌문에는 "우리는 고난당할 때, 특히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할 때 감사를 드리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는 문장이 실려 있다.
한 서평은 저자가 이 선택을 두려움이 아닌 사랑에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고 전한다.
결론에는 티피 로스키가 다시 나온다. 저자는 이 공동체를 카시안 신부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다. 지도자 마르코 세르마리니와 차를 타고 언덕길을 가며 다른 사람들도 이런 공동체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을 진지하게 여기는 데서 시작하라고 답한다(원서 239쪽).
책은 노르차의 지진 이야기로 맺는다. 2016년 8월 큰 지진이 이 지역을 흔들었다. 한밤이었지만 수도사들은 밤 기도를 드리려고 깨어 있었고, 수도원에서 나와 탁 트인 광장으로 피했다(원서 241쪽). 이어진 흔들림으로 성당은 예배를 드리기에 위험해졌고 수도원 대부분도 살 수 없게 되었다. 수도사들은 마을을 떠나 산비탈의 자기들 땅으로 옮겨, 옛 수도원의 폐허에 천막을 치고 기도 생활을 이어 가며 마을 사람들을 돌보러 내려갔다. 10월 30일 일요일 이른 아침에는 이탈리아에서 30년 만에 가장 강한 지진이 났고, 14세기에 지은 성 베네딕투스 성당이 무너졌다(242쪽). 카시안 신부는 이 지진이 서구 기독교 문화가 무너지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지만 그날 밤에는 희망을 주는 둘째 상징도 있었다고 돌아보았다(241~242쪽). 전에 이 쪽에는 수도사들이 다시 짓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확인한 본문 조각에는 다시 짓는다는 말이 인용문의 끝에 보이나 앞뒤를 읽지 못했으므로, 천막 수도원에서 기도 생활을 이어 간 데까지만 적는다.
책에 대한 지지와 추천
말한 사람
내용
데이비드 브룩스(《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지난 10년 동안 나온 종교 서적 가운데 가장 논쟁적이고 중요한 책이라고 평했다(한국어판 추천평).
러셀 무어(미국 남침례회 윤리와종교자유위원회 위원장)
자신은 수도원적이기보다 선교적인 사람이라고 밝히면서도 모든 그리스도인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했다. 책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한국어판 추천평).
찰스 채풋(가톨릭 필라델피아 대교구장)
공동체에서 함께 읽고 토론할 만한 책이라고 했다(한국어판 추천평).
칼 트루먼(그로브 시티 칼리지 교수)
공동체 안의 사려 깊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기 좋은 책이라고 추천했다(한국어판 추천평).
신원하(고려신학대학원 윤리학 교수)
매킨타이어가 말한 덕의 공동체를 탈기독교 사회에 적용한 시도이며 한국 교회가 깊이 고려할 만한 대안이라고 평했다(한국어판 추천평).
정재영(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신앙의 이어짐이 끊어지기 전에 기독교의 알맹이를 새 환경에 담아낼 바탕을 내놓았으며 한국 교회에도 들어맞는다고 평했다(한국어판 추천평).
책에 대한 비판
말한 사람
내용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책에 영감을 준 철학자)
2017년 미국 노트르담 대학교 강연 뒤 문답에서 이 흐름을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운동이라고 평하고, 자신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이 자기 책에서 그 한 문장만 읽은 것 같다고 했다. 베네딕투스의 수도원은 새로운 사회 제도를 만든 것이므로, 새 베네딕투스를 기다린다는 말은 사회에서 물러나자는 뜻이 아닌 사회에 새롭게 참여하자는 뜻이었다고 말했다(영어 위키백과).
R. R. 리노(미국 잡지 《퍼스트 싱스》, 2017년 5월 서평)
세상과 너무 타협하지 않았는지 묻게 하는 점과 화면 기기에 대한 경고는 옳고 좋은 조언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위기를 지나치게 부풀린 말투가 그리스도인을 돕기보다 헷갈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리스도인이 모든 전선에서 졌다는 주장은 지나치고, 기독교는 언제나 대항문화였으므로 근대만이 전에 없던 홍수는 아니며, 위기를 외치는 말이 기쁨과 사랑과 관조를 밀어낸다고 했다.
그레고리 복(미국 텍사스 대학교 타일러 캠퍼스, 《성경과 신학 연구 저널》 서평)
학교와 기술과 음란물에 대한 경고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문화의 쇠퇴에 대한 진단이 맞더라도 물러날 때라고 하기에는 이르며, 미국 그리스도인이 겪는 일은 다른 시대와 지역의 박해와 같지 않다고 했다. 20세기 초 근본주의도 공적 삶에서 물러났고 지금은 많은 사람이 그것을 잘못으로 본다고 짚었다. 인종 화해에 대한 관심이 모자라며, 물러남이 인종 분리를 더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로버트 트루브(미국의 서평 블로그 '밥 온 북스', 2017년 3월)
공동체가 함께 지키는 삶의 규칙이라는 가르침은 값지다고 했다. 그러나 홍수의 비유는 물러나라는 말로 잘못 읽히기 쉽고, 공립학교에서 한꺼번에 나오라는 권고는 걱정스럽다고 했다. 책이 백인 중심으로 느껴지고 유색 인종 교회와의 대화가 없으며, 성 문제에 치우쳐 인종 연대, 소득 격차, 창조 세계 돌봄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고 했다.
진보 쪽의 반응(한 미국인 블로그의 2017년 4월 정리)
진보 쪽에서는 이 책을 지나치게 겁을 주는 책이며 특권을 잃은 데 대한 불만에서 나왔다고 보았다고 한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그런 읽기가 틀렸다고 보았다.
미국종교학회 남동부 지회(2020년)
학자 네 사람이 이 책을 비판하거나 대안을 내놓는 토론 자리를 열었다(영어 위키백과).
저자의 답
저자는 2017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견해가 성 혁명에 대한 반발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데이비드 브룩스와 잡지 《애틀랜틱》의 읽기에 대해 꼭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위협은 성 혁명보다 넓어서, 진리를 주관적인 것으로 보고 자아를 주인으로 삼는 근대의 사고방식 전체라고 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은 세상과 담을 쌓는 일이 아닌 견디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 교계와 독자의 반응
말한 사람
내용
배덕만 교수(한국어판 해설)
한국어판 끝에 실린 해설에서 이 책에 대한 미국 안의 긍정과 부정의 반응을 소개하고, 한국 사회와 교회에 견주어 읽는 눈을 짚어 준다고 한다(《복음과상황》 서평이 전하는 내용이며, 해설 본문은 읽지 못했다).
이범진(《복음과상황》 2019년 5월호, '에디터가 고른 책')
저자가 실천 제안들을 매우 과감하고 단호하게 내놓아서 하나하나가 논쟁과 토론의 주제라고 했다. 낙태와 동성애에 대한 저자의 반대 입장은 강경하지만, 입장이 다르다고 책을 덮기에는 참고할 내용과 고민할 지점이 많다고 평했다. 한국 교회에도 논쟁할 체력과 여유가 남아 있기를 바란다고 맺었다. 이 잡지는 2018년 2월호에 저자의 인터뷰도 실었다고 밝힌다.
이대웅 기자(기독일보, 2019년 4월 26일)
저자가 정권 교체 같은 정치적 움직임보다 그리스도인의 변화와 실천으로 회복을 꾀한다고 소개했다. 9장의 내용을 두고는 성 윤리에서 법률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는 한국 교회에 던져진 성찰적 외침이라고 했다. 진리를 지키려는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또 하나의 '옵션'이 준비되었다고 맺었다.
최경환(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기윤실 누리집 '좋은나무' 2019년 6월 5일)
글의 제목은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이다.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책이라고 했고, 지키려는 가치를 굳게 지키는 저자의 태도에는 경외감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점을 비판했다. 저자의 공동체는 찾아오는 손님은 환대하지만 바깥의 사람들을 찾아가지는 않는데, 교회는 방어의 진지를 쌓으라는 명령이 아닌 세상 속에서 공적 증인으로 살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8장의 직업윤리는 성 소수자 문제를 피하는 일 하나로 모이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가 비판하는 자유 민주주의가 저자의 비판할 권리와 대안 공동체를 세울 권리를 지켜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공적 영역에서 물러나면 세상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게 된다. 그는 베네딕트처럼 사는 것도 좋지만 예수처럼 사는 것이 더 좋다고 맺었다.
송광택 목사(본헤럴드, 2020년 5월 23일)
내용이 도발적이고 빈틈없으며 매력적이라고 평했다. 책에 대한 비평도 소개했다. 초점이 작고 지역적이라는 점, 공교육에서 완전히 나오라는 요구 때문에 세상에서 물러나라는 말로 비칠 수 있다는 점, 미국 유색 인종에 관한 인용이나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저자는 그리스도인을 세상에서 떼어 놓으려는 도피주의자가 아니라고 보았고, 이 책을 오늘의 문화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방법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라고 불렀다.
이춘성(개인 블로그 '춘성의 기독교 윤리', 2019년 2월 7일. 한국어판이 나오기 전에 원서를 읽고 쓴 글)
오늘의 교육이 사람을 도구로 만든다는 저자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고 했다. 그러나 가정 학습과 새 기독교 학교에 드는 큰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교회가 그런 교육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물었다. 이 제안이 한국 교회에서는 과격하고 급진적이라고 배척받거나 다른 신학이라고 무시당할지 모른다고 내다보면서도,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베네딕트 옵션이 노아의 방주일 수 있다고 했다.
독자 '운동이'(네이버 블로그, 2019년 5월 27일)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읽었지만 몇몇 주제의 세부 적용에는 동의하지 못했다고 했다. 흩어진 서구 사회에는 없는 유교 문화와 거기서 나온 공동체 문화가 한국에는 있으므로, 책의 진단과 대안을 한국 사회와 각 교회의 사정에 맞게 다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설교와 이 책
김진영 담임목사는 2020년 7월 26일 주일설교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과 성취"에서 책 한 권의 내용을 소개하셨다. 동성애에 관한 법은 서구 나라들에서 이미 통과되었으므로 우리는 그 역사를 알고 있다고 하시며 꺼내신 책이다. 설교에서 저자의 이름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설교 영상의 자동 자막에는 책 제목이 "맨 edt 옵션"으로 들린다. 설교노트는 이것을 『베네딕트 옵션』으로 보았으나, 자막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고 적어 두었다.
설교에 나온 내용. 서구의 교단들 가운데 동성애를 옹호하려고 성경적인 교리를 바꾸고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 주류 개신교 교파들이 있고, 같은 까닭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 가톨릭 교구들도 있다. 세상이 세게 밀고 들어올 때 동성애가 성경적으로도 괜찮다고 말한 교단과 교구들이 번영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런 주류 개신교 교파의 교회들과 진보적인 교구들이 정통 교회보다 더 빠르게 무너지고, 힘을 잃고 사라지고 있다.
책 제목은 추정이다. 자막의 "맨 edt 옵션"을 『베네딕트 옵션』으로 본 것이며, 목사님이 가리킨 책이 이 책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주제는 맞는다. 이 책은 성 혁명 뒤의 서구 교회를 다루고, 9장에서 동성애와 결혼을 다룬다. 서평들에 따르면 저자는 보수 교회와 주류 개신교와 가톨릭을 모두 타협한 교회로 비판한다.
저자가 인터뷰에서도 같은 취지로 말했다. 저자 로드 드레허는 책이 나온 2017년 3월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성 혁명에 맞추어 준 교회들은 번성하지 못했고 얼마간 저항한 교회들보다 더 빨리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설교에 소개된 내용과 뜻이 같다.
책 본문에서 그 대목을 찾았다. 9장 "에로스와 그리스도인 대항문화"에 있다. 원서 202쪽에서 저자는, 가르침을 바꾼 주류 개신교 교파들이나 그 가르침을 낮추어 다룬 진보적 가톨릭 본당들이 번창하고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더 정통적인 교회들보다 빨리 무너지고 있다고 쓴다. 204쪽에서는 주류 개신교 교회들이 이 길을 써 보았으나 여전히 교인 수가 무너지고 있다고 다시 말한다. 원서 문장은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에 나오는 본문 조각으로 확인했다.
한국어판의 문장과 설교의 말이 거의 같다. 기독일보의 서평이 옮긴 한국어판 문장은 "동성애에 대한 교리를 진보적으로 바꾼 주류 개신교파들이나 그 중요성을 평가절하한 진보적 가톨릭 교구가 번창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더 정통적인 교회보다 더욱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이다. 설교의 "교리를 바꾸고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 주류 개신교 교파", "가톨릭 교구", "번영할 것 같았다", "정통 교회보다 더 빠르게"와 차례와 낱말이 맞는다. 책 제목이 자막에서 추정한 것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이지만, 이 대목은 그 추정을 뒷받침한다.
한국어판에서 이 문장이 몇 쪽에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원서의 낱말은 교구보다 작은 단위인 본당(parishes)인데 한국어판은 "교구"로 옮겼고 설교도 "교구"라고 했다.
설교는 2020년 7월의 것이고 한국어판은 2019년 3월에 나왔으므로, 목사님이 한국어판을 보셨을 수 있는 때다. 설교의 낱말이 한국어판 번역과 같다는 점도 이와 어울린다. 다만 어느 판을 보셨는지는 설교노트에 나오지 않으므로 확정할 수는 없다.
예스24의 발췌문과 출판사 소개, 영어권 서평과 요약 글, 한국어 서평과 독자 서평, 구글 도서의 책 안 검색에 나오는 원서 본문 조각으로 확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대조한 것은 아니다. 원서 쪽수는 서평에 적힌 것과 구글 도서에 표시된 것을 옮겼고, 한국어판 쪽수는 서평과 독자의 글에 적힌 것을 옮겼다.